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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250화 (250/255)

제 250화. 총포 시대와 왕족의 의무 (1)

“어머, 총포는 장전 절차가 너무 복잡하네.”

목을 길게 빼고 궁병과 총포병의 비교 발사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평원 대군의 부인 홍씨가 옆에 앉아 있는 영응 대군의 부인 송씨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이제 열다섯 살이 된 송씨가 까르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활 세 번 쏠 동안 총은 고작 한 번 쏠까 말까니.”

부군 평원 대군이 저 멀리 바다 건너 대만에 나가 있는지라 홍씨는 자가를 위해 불공을 드린다는 구실로 여기저기 절에 다니고 있고, 그때마다 송씨도 동행하며 야단스러운 풍류를 즐기고 있다.

“저 꼬챙이로 장전하다가 큰일을,”

“자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는가!”

임영 대군의 부인 최씨가 두 동서를 보며 싸늘히 말했다.

“금상 전하와 우리 자가, 금성 자가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것인데 감히 자네들 따위가 입을 뗀단 말이야!”

“맞습니다. 자네들 평소에도 행동거지가 요란하더니만,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도 어째서!”

금성 대군의 부인 최씨도 철 없는 두 동서를 혼내었다.

임영 대군과 금성 대군은 화포 개발에 매진하느라 연일 고단하였고, 두 부부인 최씨는 서로 고모와 조카 사이로 또 돈독하였다.

“아니이, 사실을 말하였을 뿐인데요.”

“저 두꺼운 과녁이 총알에 찢긴 것이 아니 보이는가? 파괴력이 크니 살상력이 빼어나겠고, 느린 장전 속도를 보완할 방법쯤은 어련히 다 생각셨을 터인데!”

임영 대군 부인이 다시 엄히 말하였다.

이렇게 대군 부인들까지 앉아 관심 깊게 지켜볼 정도로 새 화포 시연은 규모가 크게 개최되었다.

군기시 너른 뜰.

용봉 차일이 높게 쳐진 가운데 중앙의 최상석에는 두 분 전하가 좌정하시고, 한 단 아래에는 세자와 대군들이 자리하고, 동쪽에는 3품 이상의 조정 관료와 옹주와 공주의 배우자인 부마 무리가 앉아 있다.

서쪽에 높게 세워진 차일 아래에는 소헌 대비와 중전 윤서, 혜빈 양씨와 신빈 김씨 등 상왕의 후궁과 정 귀인, 유 소용과 문 소용, 양 소용 등 내명부 여인들이 품계에 따라 앉고,

그 옆으로 한 무리는 공주와 옹주, 대군 부인과 군부인, 정승과 판서 부인 등 외명부 여인들이 품계에 맞춰 앉아 있다.

“아바마마께서 어머니가 그려주신 모양을 구현하느라 아주 애 많이 쓰셨어요.”

윤서 옆에 앉아 있던 경혜 공주가 몸을 기울이고 속삭였다.

공주인 희아는 원래 저쪽 외명부 좌석 맨 앞 열에, 정의 공주 옆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총포를 만드는 과정에 희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윤서는 총의 겉모습을 제시하였기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내명부 여인석에 나란히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해도 그 방아쇠만 당겨서는 아래에 있는 약실에 불이 붙지 않는 거에요. 방아쇠를 당기면 저 위쪽 쇠가 땅 때리면서 불꽃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런 부싯돌을 찾지 못해서, 그래서 숙부님과 아바마마께서 군기시 장인들과 별별 거를 다 시험하셨어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화승(火繩)에서 실마리를 얻어 저 화승을 만들게 된 거에요.”

희아가 총포 옆으로 길게 늘인 끈을 가리켜 보이며 말하였다.

평소보다 어조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보니 희아는 지금 아홉 대의 총포에서 총알이 모두 무사히 발사되어 과녁을 꿰뚫은 것에 무척 흥분해 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구나. 그런데도 이향은 껍데기만 그려준 내게 거듭 고맙다고만 하였구나.‘

총의 구조에 대해 잘 알면 좋을 텐데. 아니 군대라도 다녀와서 총을 쏘아본 경험이라도 많았으면 참 좋을 텐데.

윤서는 새삼 지난 생에서 총의 실물을 본 일이라고는 딱 한 번, 대학교 때 부모님과 부산 여행을 갔을 때 해변 근처에 있던 사격장에서 권총 열 발 쏘아본 일이 전부인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도 그 때 한 발 쏘았을 때 생각보다 강한 반동에 놀라서 손바닥에서 얼마나 땀이 많이 났던지, 손바닥에 땀샘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었다.

“그래도 화승을 떠올려서 정말 다행이네.”

“예, 그럼요. 야철 기술이 더 좋아지면 어머니가 그려주신 그 뽀족한 총알도 만들어서 쏠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지금 저렇게 앞에서 넣고 다져야 하는 과정이 생략될 터이니 발사 속도도 훨씬 더 빠르고, 명중률도 훨씬 더 좋아질 수 있어요. 앞이 뾰족하면 바람의 저항을 덜 받아서 직선 거리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으니까.”

“와아, 눈닝! 어떠케 그연 걸 다 알아요?”

(와아, 누님!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요?)

윤서 무릎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새벽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희아에게 물었다.

“초아, 게적도 계단할 뚜 있떠요?”

(총알, 궤적도 계산할 수 있어요?)

“총알 궤적은 아직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해. 다만 둥근 총알보단 앞이 뾰족한 총알이 더 곧게 더 멀리 나간다는 것만 알아. 하지만, 음, 수식이 좀 더 정교해지면.”

희아는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동생을 귀여워하며 열심히, 진지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는 새, 내병조 병사들이 총탄에 찢긴 과녁을 들고 와, 총포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를 상왕 전하와 조정 대신에게 보이고 있었다.

“총알의 파괴력은 두 치 송판을 너끈히 통과할 정도로, 실제 실험 결과 가장 좋은 품질의 갑옷 두 겹도 무난히 관통하였습니다.”

군관의 보고에, 세종이 하문하셨다.

“살상 거리도 활의 두 배는 더 될 것 같다. 그럼 느린 장전 속도는 어떻게 보강하느냐?”

“예! 두 가지 방법으로 보강하였습니다.”

군관의 말이 끝나자, 두둥두둥 힘찬 북소리와 함께 십대 초중반의 사내 아이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등장하였다.

홍위는 “오!” 손뼉을 치고, 옆쪽의 계동과 도원군, 오산군에게 자랑하였다.

“반송방 보육원 아이들이야. 기본 무예는 오래 익혔지만 총포술은 고작 사흘 배웠어.”

“사흘이라고요? 고작 사흘로 총을 빠르게 쏠 수 있을까요?”

“저 아이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총을 쏠 수 있다면, 새 화포가 실제 전투에서 얼마나 유용한지가 바로 증명되는 것이로군요!”

“맞아! 바로 그 점이다. 궁술은 몇 년을 연습하고도 매번 과녁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 또 활 줄 당기다가 지치기 쉬운데 총포는 그렇지 않아.”

홍위의 말이 끝날 무렵, 아이들은 다섯씩 무리를 이뤄 사격 시범을 보였다.

두 명은 커다란 방패로 포수를 엄폐하고, 포수는 방패 사이로 목표물을 겨누고, 뒤에서 두 명은 다른 총기에 화약을 넣고 다지면서 곧 이어 쏠 준비를 한다.

총포를 쏜 자는 뒤로 물러나 다시 장전하고, 대기하던 아이가 앞으로 나와 방포한다.

사격을 맞은 세 아이는 모두 이십오 장 (약 75m) 떨어져 있는 과녁을 모두 정확하게 맞췄다.

한 차례의 순번이 끝나자, 이번에는 총을 들었던 두 아이들이 대신 활을 들었다. 다시 북이 울리고, 총을 든 아이가 과녁을 향해 발사한 후 재 장전을 위해 뒤로 물러나자 활을 든 아이들이 화살을 연거푸 쏘아 적을 살상하였다. 그 사이 재장전한 아이가 다시 교대하여 총을 쏘았다.

“봐봐! 저렇게 하면 총포 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공백을 없앨 수 있어.”

홍위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

“······.”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고개를 돌려보니 게동이도 도원군도 오산군도 모두 또래 아이들의 총포술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 있느라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올리고 총 위에 난 조준경을 통해 과녁을 조준한 후, 검지로 방아쇠를 당기면,

따당!

굉음과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다음 순간 벌써 과녁이 꿰뚫린다.

무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겐 혼이 빠질 정도로 매혹적인 광경이었다.

“여인들도 배워서 쏠 수 있어. 다음엔 우리 궐을 경호하는 나인들이 나와 총을 쏠 거야.”

“응? 아니, 예? 나인들도 경호를 해요?”

오산군이 놀라서 물었다.

“경호 나인이 있어야지. 총포의 시대인데 우리 중전마마를 지킬 나인이 필요하지!”

홍위가 빙긋 웃으며 금동이를 바라보았다.

“내 보모 나인이 매금이에요. 그언데 (그런데), 매금이가 겅호 나인이야.”

금동이가 앉은 자리에서 배를 쑥 내밀며 자랑했다.

그러자 수복이가 코를 찡그렸다.

“매금이! 무더웠더 (무서웠어). 너무 빨라.”

수복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육원 아이들이 물러나 자리를 나인 복장의 여인들이 채웠다.

깡마른 체격의 매금이와, 그리고 매금이처럼 모두 마른 몸에 눈매가 날카로운 매은이, 매동이, 난금이, 난은이부터 죽동이까지, 모두 박 상궁이 책임졌던 비밀 조직에서 전조 고려 부흥을 꿰한다는 명목으로 길러졌던 살수들이었다.

윤서는 총포술 시연을 이 여인들이 궐의 경호 나인으로 양지의 삶을 시작할 기회로 활용하였다.

윤서는 고개를 돌려 뒤쪽에 시립해 있는 박 상궁을 찾았다.

’마마님 조직, 이제 양지로 나왔어요. 혹여 탄로날까 그만 마음 졸이셔도 돼요.‘

’중전마마! 이제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습니다!‘

박 상궁이 입술을 꽉 다물고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금이를 필두로 능숙하게 과녁을 향해 총을 발사하였다. 이들은 심지어 총신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다시 화약 가루를 넣어 재장전하기까지 손도 아주 빨랐다.

“저런 나인들이 궐을 경호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감히 내궁을 넘볼 마음을 먹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희아가 윤서 귀에 속삭였다.

역시!

희아는 윤서가 굳이 이날 저 경호 조직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박 상궁의 안위를 위하는 점과 더불어, ’총‘이라는 위험한 무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혹여라도 총포를 믿고 불온한 생각을 품을지 모를 자들에 대한 사전 경고이기도 하였다.

“중전, 상왕 전하와 또 금상이 이렇게 크게 화포 시연을 열게 하신 이유를 내 알 것 같구나.”

경호 나인들의 총포술까지 묵묵히 지켜보신 소헌 대비께서 윤서에게 귓속말을 하셨다.

소헌 대비는 요즘 부쩍 기력이 약해지셨다.

원래 역사에서 오래 사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향은 최소의 호위 내관만 거느리고 윤서와 함께 회암사에 가 여러 번 불공을 올렸다.

지난 번 학질 증상으로 편치 않으실 땐 이향과 대군들 모두 대비마마 회복 불사를 올리면서 팔에 쑥을 올리고 살을 태우기까지 하였다.

윤서는 소헌 대비께서 날로 쇠약해지시는 이유가 수양 대군과 평원 대군의 부재, 특히 수양 대군의 부재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세종께서 수양 대군 이야기만 나오면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시고, 늘 공손하고 다정한 아들인 이향마저 어색한 미소만 짓기에, 소헌 대비는 수양 대군의 외유에 차마 캐묻지 못할 내막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계셨다.

“이리 대단한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려면 재원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똑똑히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더냐?”

소헌 대비가 윤서를 보며 물으셨다.

“그러니 왕족들에게도 전세를 걷겠다고 하는 것이겠지? 아니 그러하오, 중전?”

“···예, 대비마마. 그러하실 것으로 아옵니다.”

“그래. 그래야지.”

소헌 대비께서 주름진 입술을 비죽 내미셨다.

“상왕의 두 아들도 저 총에 쓸 화약을 구해온다, 또 커피 나무를 키워온다 하며 먼 이방의 땅에 목숨 걸고 나가 있고, 금상도 매일 늦게까지 정무를 보고 또 안평은 요새 정 대감과 함께 도성의 건축을 바꾼다고 분주하고, 또.”

소헌 대비는 속이 상하신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이리 수고로이 고생하는데,

다른 왕족들은 낮에 진법 훈련을 받는다지만 밤에는 기생들 끼고 풍류를 즐기며 편히 사는 것이 못마땅하신 것이었다.

“예, 대비마마. 시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수양 자가께서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우리 유가 오고 있지. 우리 염이도 한번 다녀가면 좋겠구나.”

한숨을 쉬는 대비마마의 주름마다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

“모두 신무기의 빼어난 성능을 실감하였을 것이오.”

소헌 대비의 말씀처럼 이제까지 면세전이었던 왕족의 방대한 토지에 전세를 부과하기 위한 실행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때마침 북방의 상황도 긴급하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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