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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248화 (248/255)

제 248화. 홍위의 조선은 (1)

“서로 이득이 되는 관계가 오래 가는 거라고, 여진의 여러 부족과의 관계도 그러할 거라고,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잖아요.”

홍위가 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윤서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바마마께선 또 우리 조선의 절대적인 강함이 없이는 저들과 시혜적 관계도 호의적 관계도 지속되기 어렵다고 하셔요.”

윤서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세종께서 거의 매일 오후 홍위를 천추전에 불러 여러 경서를 직접 가르치신 후 홍위의 어휘와 사고 체계가 하루가 다르게 폭넓어지고 정교해진다.

역사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아시게 된 후 일평생 부지런히 쌓아온 모든 지식과 경륜을 다 전수하시려 하는 세종의 그 심정도, 그리고 그런 할바마마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는 홍위의 빠른 성장도 모두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새삼 벅차게 생각하며 윤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치의 영역은 윤서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바마마 말씀이 옳아.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끌고 가기 어렵겠지. 특히나 국제 관계에서는 힘의 논리가 다른 모든 것에 앞서니까.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서로 이득을 주고받는 관계여야만 충돌과 낭비가 적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송로가무가 한 제안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두만강 쪽 야인 여진 중 조선에 가장 우호적인 오도리 족 추장의 아들 송로가무는 홍위에게 왕실 학당의 분원을 온성이나 경원에 세우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고 하였다.

“지금 한양의 학당에는 대추장급 자제만 유학 올 수 있는데, 그쪽이라면 두만강 이북의 자잘한 여진 부족 자제들이 유학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조선에 대해 자연스럽게 호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소자 생각에는 또,”

홍위가 윤서 곁에 바싹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서너 걸음 뒤에서 두 손 모으고 호종하고 있는 궁인들의 귀를 의식한 신중함이었다.

“지금 북방에서 긴장이 날로 높아지고 있잖아요. 이만주가 다른 여진 부족장에게 사람을 보내 조선은 언제고 여진을 싹 쓸어버릴 것이라고 회유와 위협을 병행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만약 자제가 우리 조선의 영토에 유학와 있는 부족이라면, 어머니.”

“!”

홍위는 북방 왕실 학당이 여진 자제에게 최신의 지식을 전하는 배움의 전당이자, 그들을 일종의 볼모로 경원이나 회령 등지에 잡아두어 여진의 부족이 함부로 조선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제어장치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여진족도 사람이니 호의를 베풀면 호의로 답하리라 정도로만 간단히 생각했는데.’

홍위는 호의와 함께 정치적 이득을 냉철하게 함께 고려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세자로서 키워지는 이가 갖추는 권력자의 사고방식일까.

놀라우면서도 경이로워서, 윤서는 저도 모르게 홍위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허리를 숙여 귀에 속삭였다.

“네 생각을 아바마마나 할바마마께 말씀 올렸니?”

“아니,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께 먼저 여쭤본 후 괜찮으면 말씀드리려고요.”

“말씀 올려. 그리고 그냥 단순히 지식만 전수하는 학당이라고 하면 전조 고려에서 윤관이 행한 일이 있어서 자제를 보내기 꺼려하는 부족이 많을 것이니, 불안해도 보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탁월한 학당이 될 수 있도록 나도 적극적으로 뒷받침을 해야겠구나.”

<폭군 이야기>란 책에서 보면 오스만 제국에서는 정복지에서 똑똑한 사내 아이들을 뽑아와 군인, 관료, 기술자 등으로 엄격하게 교육을 시켰다. 그 아이들은 오스만 제국의 정책을 시행하고 수호하는 전사가 되어 제국의 확장과 번영을 뒷받침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는데.

당장 대만과 호주로 갈 백성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을 고려한다면.

“어머니, 전조 윤관이 저지른 실책이라면,”

홍위의 말에 자극받아 팽팽 돌아가는 중전 윤서의 생각 회로는 홍위의 물음에 의해 중단되었다.

“포로를 풀어주겠다는 구실로 여진의 여러 추장을 불러들인 다음, 연회를 베푸는 척하면서 그들을 모두 척살하면서 여진족 전체의 원한을 산 일을 말씀하시는 거에요?”

“응, 맞아. 엄마는 그냥 윤관이 동북 9성을 쌓았다가 유지하지 못하고 도로 여진의 손에 넘겼다고만 배웠는데, 아바마마께서 그것의 시작과 끝의 여파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고 상세히 말씀해주셨어.”

교과서에서 세종의 4군6진 개척은 그곳에 사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조선의 국경선을 확정지은 큰 업적이다 정도로 배우고 말았는데,

조선에 와서 보니 여진족과 조선과의 관계는 적대와 호의가 복잡하게 켜켜히 쌓여 있고 여러 여진족은 연초마다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고, 그들 자제중 몇은 벼슬을 받아 궁궐 수비도 서는 등 긴밀하게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윤서는 얼마 전에 이향에게 왜 이만주가 유독 조선에 골칫거리가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이향은 훌리가이 부족 추장 이만주의 누이가 명나라 영락제의 총애 후궁이었고,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식량과 백성을 약탈하는 등의 침략을 해오다가 여연 등의 사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을 조선군에게 잃었다고 그간의 일을 말해주었다.

“죽여 없애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명분 없이 이만주를 제거하면 다른 여진족이 우리 조선에 적대적으로 뭉치는 계기가 될까 저어하는 것이오. 전조에서 윤관이 여진의 여러 추장과 유대를 맺자고 불러 몰살하고 승리한 일이 오히려 뿔뿔이 흩어져 갈등하던 여진족들을 고려에 대한 원한으로 뭉치게 하였고, 그 때 구심점이 된 완안부가 결국 금나라를 건국하게 한 결과를 낳았소. 그래서 여진의 도모는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두어서도 아니 되지만 경솔하게 죽이면 자칫 저들을 한데 뭉치게 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서. 부인이 말한 애신각라란 자도 아마 그런 과정을 거쳐 여진의 모든 부락을 모아 세를 키웠던 것일 테지.”

윤서가 배운 바로는 조선이 임진왜란을 거치는 동안 여진족이 명나라 지원군에게 전쟁 물자를 제공하고 함께 전투에 참전하면서 부를 쌓고 전투 실력을 기르게 된 것이 청나라의 발흥의 계기였는데.

실은 이렇게 오랫동안 이합집산하는 복잡한 관계도에서 하나의 계기만 잡으면 결집하여 중원을 지배할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 여진족이었다.

또한 그렇게 강대했던 여진족이 윤서의 현대에서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족에 동화되고 말았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였다.

“그러니 여진의 여러 부족을 상대하는 일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셨단다.”

“맞아요, 어머니. 소자도 할바마마께 배웠어요. 할바마마께서는 우리 백성을 위협하는 여진 세력은 단호히 몰아낼 필요가 있지만 전투 과정에서 그쪽 양민을 함부로 학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윤관의 정벌을 말씀해주셨어요.”

아, 벌써 홍위는 세종께 북방의 여진족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었구나. 그래서 호의를 베푸는 동시에 저들을 인질로 장차의 반발을 억제할 안까지 다층적인 안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게 되었구나.

“소자도 올해 겨울에 아바마마 북방 순행에 따라가고 싶어요. 고조부 태조께서 여진의 여러 부족을 이끌며 세력을 키워가셨던 그곳에 소자도 가보고 싶어요.”

꼬물거리며 품 안에 안겨 오던 그 작은 아기가 어느새 북방 경영에 빼어난 식견을 제시할 만큼 이렇게 성장하였구나!

우리 홍위는 이렇게나 찬란하도록 영민하였구나!

벅차도록 가슴을 적시는 감동에 습관처럼 홍위를 당겨 안으려고 하던 윤서는 뒤에서 크흠,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는 홍 내관의 기침 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중전마마께서 협경당 밖에서도 너무 스스럼없이 세자 저하를 안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친밀한 행위가 왕실 예법에 맞지 않다는 말이 많다는 것을 고하는 기침 소리였기 때문이다.

대신 윤서는 홍위의 손을 잡았다.

작고 말랑하던 손가락이 반복된 검술 훈련으로 굵어지고 단단해진 손을 잡고 비현각으로 향하며 윤서는 격식을 갖춰 조선의 세자에게 속삭였다.

“그래요, 세자. 북방 순행에 함께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전하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 중전마마. 소자 아바마마와 함께 북방을 돌아보며 장차 조선의 미래를 그려보겠습니다.”

진지하게 답하는 홍위의 목소리엔 장난스러운 웃음이 섞여 있었다.

*

*

*

“그리도 기특한 것이오?”

산더미처럼 높은 장계며 상소를 처리하고 해시(밤 9시)를 훌쩍 넘겨 협경당을 돌아온 이향의 옷시중을 들며 윤서가 낮에 있었던 일을 쉴새 없이 말하자 이향이 물었다.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말할 만큼 그리도 홍위가 자랑스러운 것이오?”

“숨은 다 쉬었습니다. 평소 달리기를 해서 폐활량이 큰지라 이 정도 말하는 것으로는 숨이 차지 않아요. 그나저나 참 좋은 안이 아닙니까?”

“응. 그런데 부인이 우려하는 것처럼 저들도 볼모로 잡아둘 수 있다는 것은 예측을 할 거요. 지금이야 몇몇 관원이 직접 넘어가 가르치니 반기지만, 경내로 들어와 배우라고 하면 여려 계산이 많을 수밖에 없지. 더구나 엊그제 그리 위협적으로 화포를 쏘아대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 같아요. 송로가무와 유다롱개가 말하는데요.”

열다섯 살의 오도리 족 후계 송로가무, 골간 족 추장의 아들 유다롱개, 올량합 추장의 아들 이질개는 모두 몸이 아주 다부지고 눈매가 예리했다.

셋은 계절마다 조선의 의복을 하사받았던 일에 대해 윤서에게 따로 흰 담비 털 열 장과 검은 여우 털 스무 장을 올리며 깊게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 고작 여덟 살의 홍위에게도 정중하게 예를 행한 후, 억양은 조금 어색하나 완벽한 한양 말로 청을 올렸다.

“조선국의 국왕께서 우리들 부락에도 두창 예방 침 요법을 시행해 주시고, 의원에게 출산 시 지켜야 할 여러 수칙, 그리고 손을 씻고 물을 끓여 먹는 등의 기초 위생을 배운 후 우리 부락민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여 그간 사냥을 하고 살던 저희도 이제 본격적으로 농업을 시행해야 하는데 기후가 혹독하여 근심이 많습니다.”

요는 전농시에서 파견한 신농법 선생의 숫자가 너무 부족하니, 젊고 영민한 몇 명의 젊은이를 중전마마나 세자 저하께서 소유하신 농장에 파견해 직접 농사를 배울 기회를 허락하실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그에 대해 윤서는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검토한 후 답을 주겠다고 일단 미뤘다.

“그 청년들이 홍위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지극합니다. 물론 외교 관계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늘 변할 수밖에 없지만, 강력한 화기를 가진 조선이라면 더욱 친교의 희망을 가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또 생각한 것이 있는데요.”

“이 아리따운 머릿속에 또 무슨 기발한 생각을 품으신 거요, 중전.”

“!”

이분은 왜 이렇게 훅훅 들어오시는지.

저절로 치솟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고 윤서는 고단하게 굳어 있는 이향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여진의 청년들이 홍위를 진심으로 따르더라고요. 홍위도 학당에서 저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 조선의 백성뿐 아니라 북쪽 여진의 무리까지 함께 다스릴 사람들로 시야를 넓게 가지게 되었고요. 그런데 아쉽게도 학당은 이제 졸업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진의 여러 주요 부족뿐 아니라 일본의 여러 번에서도 빼어난 인재를 보내기를 원하고 있고요. 저는 우리 세자가 그 청년들과도 접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인의 말은, 그러니까 학당보다 더 위의 상급 교육 기관을 만들자는 거요? 홍위와 다른 나라의 인재들이 함께 배울 수 있는?”

“예! 바로 그것입니다! 상급 대학에서 홍위가 저들과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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