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6화. 북방 여진 경영 (1)
“이만주가 명의 조정에 우리 조선을 음해하는 주본을 올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은, 이번 것은 그 음해의 정도가 너무 심한 것을 요동 도사가 근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동의 판도가 불안정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음해는 아니지요. 우리 조정에서 모련위에 속하는 올적합이나 올량합의 여러 여진 추장에 관직을 하사한 것도 사실이고 최근 전농시에서 농사 경험이 많은 속량 노비들을 보내 선진 농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예조판서 황보인의 말에 병조판서 김종서가 덤덤하게 의견을 내었다.
“이만주가 우리 조선의 행보를 명에 이른 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입니다. 언제고 제거해야 할 대상인데 먼저 나서 우리 조선을 비방하니 말입니다. 전하, 지금 냉철하게 짚어봐야 하는 점은 요동 도사는 물론 명 조정이 과연 우리 조선의 행보를 저지할 여유가 있느냐이옵니다.”
사정전 안.
요동도 지휘사 왕진이 사신을 통해 전한 소식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대책을 논하는 조정의 중신을 보며 이향은 생각했다.
‘국제 외교에서 국왕이 시야를 넓게 가지면, 신하 또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국가의 장래를 대비할 수 있다.’
사흘 전 요동 도사 왕진이 조선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신을 보내 전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건주위의 이만주가 황제께 주문을 올리길 ‘조선은 이미 상국의 신민이 된 모련위의 여러 여진 족장에게 높은 관직을 하사하며 조선의 신민이 되도록 회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진 농법과 학문을 가르쳐 준다는 구실로 모련위 부락에 여러 조선의 관리를 파견하여 장차 자신의 영토로 삼을 야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건주의 여러 부족에겐 생계를 꾸려갈 수 없을 정도로 핍박하니, 황제께서는 부디 조선의 국왕에게 엄히 경고하여 요동의 질서를 바로 세우소서.’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황제의 근심이 크신지라 곧 칙사를 보내 조선의 진의를 하문하실 것이라 하니, 조선의 국왕께선 부디 처신을 삼가며 앞날의 화근에 대비 하오소서.”
의례적인 수사를 걷어내고 나면 요동 지휘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하였다.
[이만주가 말하길, 조선이 최근 두만강 이북 모련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하고 있다는데! 그곳이 우리 명나라에서 관직 내려서 관리하는 지역임을 잊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우리 명에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니, 관직을 하사하고 관리를 보내는 등의 모략을 중지하라!]
이전 같으면 이런 경고를 받았을 때 조선의 조정은 당황한 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또 명나라에서는 어디까지 어떻게 추궁하겠다는 것인지 연일 대책을 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근자 들어 조선의 대응은 담담하면서도 치밀하였다.
이는 신하들이 국왕의 역량을 깊게 신뢰하기 때문이다.
영의정 황희부터 병조판서 김종서에 이르기까지, 상왕의 치하에서 오래 조정을 책임져온 신하들은 이제 금상 전하께서 명의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리라 믿었다.
그 믿음대로 이향은 북경에 거하고 있는 정보통을 통해 이미 이만주가 명 황실에 올린 주문의 내용과, 그에 대한 명 각료의 반응을 보고 받아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 사신이 북경에 갔을 때 머무는 회동관 근처 고급 상점가에서 비누와 화장품, 서점을 운영하는 예서 상단과 한확의 서자 한치유를 통해 지금 명나라 조정은 북경 바로 위를 위협하는 달달의 세력에 온통 신경이 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이향은 김종서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명나라는 지금 달달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지라 조선까지 적대 세력으로 돌릴 여유가 없소. 또한 경들도 알다시피 명나라에서 요동에 여러 위를 설치하여 여진족을 관리하는 것은 과거 금나라처럼 여진이 서로 통합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발흥할까 두렵기 때문이오. 하니 명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고려하여 우리 조선이 여진과 힘을 합쳐 명의 동쪽을 위협할 의도가 없음을 적절하게 해명하면 될 것이오.”
“명에서 진정으로 우리 조선의 행보를 막을 역량이 없다면 해명할 방법은 많사옵니다, 전하.”
좌의정 하연이 고하였다.
김종서가 덧붙였다.
“해명을 넘어서서, 이만주 세력을 결단할 명분까지를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전하. 이에 대해서는 신에게 계책이 있사옵니다. 지금 우리가 여진에게 열어준 국경의 무역 시장이 회령, 온성 그리고 여연에 있사온데, 이 시장을 통해 여진의 여러 부족은 면화와 소금 등의 생필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이만주가 우리 조선을 음해하였으니, 이를 구실로 저들에게만 이 시장에서의 교역을 금하시옵소서.”
“오호! 곰 같이 융통성이 없는 종서 자네가 오랜만에 영리한 계책을 내놓았구먼. 전하, 병판의 의견이 참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교역을 금지당하면 당장 이만주의 훌리가이 부족은 곤란을 당할 것이고, 그리하면 이만주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만주 세력을 궁지에 몰아넣어 명나라를 약탈하거나 조선에 군사 행동을 하게 유도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간 압록강에서 불과 반나절도 안 걸리는 오녀 산성 쪽 환인 지역 일대에서 몸을 숨기며 건주 여진의 여러 습격을 배후에서 지도하고 있는 이만주를 드디어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범찰도 우리 조선이 왜와 힘을 합쳐 명나라 강토를 노리고 있다는 주본을 올려다고 하니 함께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건주 좌위의 동창은 일전 북방 순행 때 아들을 보내 전하께 문후를 올리며 한양의 학당에 수학하기를 청하였사오니, 건주 여진의 분열과 회유 차원에서 이자는 받아주심이 어떠하올지요?”
“그럼 우리도 명나라처럼 무역할 수 있는 패를 부족마다 정식으로 발급해야 할 것입니다. 마침 여진과의 무역 규모도 이전과 달리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체계를 갖출 때이옵니다.”
이렇게 착착 조선의 북방을 위협해 온 건주 여진의 복속을 위한 준비가 착착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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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이나 몽골이 위협적인 것은 어릴 적부터 말 등에서 먹고 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기병의 압도적인 위협을 막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이것이옵니다.”
2월.
명의 칙사가 오기 전, 장차 있을 북방의 기마병과의 전투를 대비하여 군사를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지 논의가 조정에서 한창이었다.
북방에서 여진과의 전투를 지휘해 본 적 있는 신료는 모두 모여 기마병의 전술을 토론하며 효과적인 대응 전투 방법을 논의하고, 그에 따라 갑사를 훈련시키는 군무가 한창일 때.
신왕의 통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학당과 교육, 경제에 관련한 일이 아니면 편전에 나가지 않는 세종께서 윤서와 이향을 천추전으로 부르셨다.
이제 정식으로 책봉례를 올린 세자 홍위도 함께였다.
“중전이 왜 일전에 장창병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
세종은 윤서가 지나가듯 긴 창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던 장창병 묘사를 잊지 않고 계시다가 하문하셨다.
“그 왜, 임진년의 왜란에서 우리 조선군이 고전한 이유가 두 개였다고 하였던 것 말이다.”
홍위가 듣고 있는데도 세종은 거리낌 없이 장차의 일을 하문하셨다.
“아, 중전. 나도 기억나오. 조총과 함께 우리 조선이 왜의 긴 창과 칼에 고전하였다 하였던 거 말이오.”
이향도 어서 윤서에게 기억을 해내라고 채근하였다.
윤서는 아빠께서 류성룡의 징비록에 대해 들려주시며 임진왜란 때 우리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대책 없이 밀린 것이 두 가지였다고 들었던 것을 기억해 세종과 이향에게 보고한 바 있다.
“첫째는 조총이라는 휴대용 화약 총기였고, 둘째는 긴 창과 칼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조총은 갑옷을 뚫는 살상력이 빼어나고, 또 이 장(6m) 가까이 되는 긴 창과 칼을 휘둘러 환도가 주인 우리 조선군이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윤서는 내친김에 영화에서 보았던 장창병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보였다.
“이렇게 긴 창을 빼곡하게 앞으로 내밀고 서 있으면 기마병이 돌진해 올 수 없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윤서의 말에 홍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어머니. 어디에서 보셨어요? 저기, 반송방의 보육원 아이들이 마침 매금이한테 장창 훈련을 받고는 있지만 이런 편제는 아니었는데요.”
홍위의 질문에 세종과 이향은 빙그레 웃었다.
이향이 홍위의 건을 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홍위야. 어머니는 많은 것을 알고 계신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홍위 네가 크면 어머니께서 직접 말씀해주실 것이야. 그때까지는 그저 듣고 배우거라.”
영민한 홍위는 어머니께서 가끔 어느 서책에서도 본 적 없는 지식을 말씀하시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리고 그 출처에 대해서 할바마마도 아바마마도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신다는 것도.
그래서 홍위는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의견을 내었다.
“음, 저의 생각에 그럼 이렇게 긴 창이라면 앞으로 찌르기나 위에서 후려치기 등만 훈련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전투 기법이라면 평소 농사짓던 우리 백성도 쉽게 익힐 것이고, 또 이렇게 긴 창을 쥐고 밀집 대형으로 함께 서 있으면 앞에서 적병이 철퇴를 휘두르며 우두두두 말을 달려온다고 해도 서로 의지가 되어 겁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 홍위는 참으로 예측 능력이 빼어나구나.”
이에 따라 군사 훈련의 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화포의 개량은 개량대로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조선의 보병은 기존의 환도와 달리 일 장 팔 척 길이의 장창을 가지고 훈련을 하게 되었다.
기존에 방패병을 앞에 주욱 세우고 그 뒤에서 궁병과 기병이 진법에 따라 서던 대형에서, 맨 앞에서 방패병과 장창병이 빼곡이 서고 뒤에 궁병과 기병이 서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북방의 백성들은 평소 둔전에서 농사를 짓고, 여진족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나무 목책 뒤에 서서 방패와 장창으로 무장한 채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춘궁기에 들어 식량이 한창 부족하게 된 시기가 왔다.
여진의 여러 부족은 두만강과 압록강의 접경지에서 인삼과 모피, 석탄을 캐와 쌀을 사갔다.
문제는 오녀 산성 주변의 이만주 세력이었다.
명나라 조정에 조선을 음해한 죄로 무역을 금지당한 이들 일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선을 원망하고 또 조선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만주와 범찰은 먼저 아들을 사신으로 보내 부디 시장을 열어주십사 청하였다.
“너희가 명에 올린 자문으로 인해 명의 황제께서 노하시어, 앞으로 너희 부족과 서로 교통하지도 적대하지도 말라는 칙서를 보내오셨다. 이에 따라 부득이하게 교역을 금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고 돌아가거라.”
평안도의 절제사는 그리 말하고 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곤경에 빠진 이만주와 범찰의 일족은 기병 오백 인을 이끌고 동팔참 너머 태자하 유역의 중국 한인 마을을 약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이만주에 대한 명나라의 분노가 차곡차곡 임계점을 향해 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