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243화 (243/255)

제 243화. 택현(擇賢)의 군주 (1)

“상왕 전하! 이제의 죄가 한도에 차고도 넘쳐 태종 대왕께서 먼 외방으로 폐출하시고 그 처분을 여러 신하에게 맡긴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상왕 전하께옵서는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대신과 아름답게 의논하시었는데, 유독 제에 대해서는 우애만으로는 입을 다물라 명하시며 태종 대왕의 유조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온데 그리 은혜를 베푼 결과가 무엇이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데, 상왕 전하께서는 부디 신들의 분통과 우려를 외면하지 마옵소서!”

사간원의 사간 김돈이 쩌렁쩌렁 외쳤다.

‘와아, 떼자앙 게동이가 사암 잡는다!’ 소리치며 할바마마께 도망치던 금동이는 여러 신하들이 거적 위에 엎드려 천추전을 향해 외치는 소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간 종종 천추전에 가 할바마마께서 보여주시는 온갖 진귀한 보물을 만지며 놀았지만 오늘은 할바마마 처소로 도망치면 안 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금동이는 수복이 손을 잡고 “도아가다(돌아가자)” 속삭이며 몸을 돌렸다.

“잡았······. 어? 쉿! 조용히 해 봐!”

한 걸음 늦게 뛰어 들어온 홍위는 입에 손을 대고 대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릇 강무는 평안한 때에 국방의 변을 대비하고자 하는 국가의 대업이옵니다. 금상 전하께서 몸소 나가 행하시는 신성한 강무에 기생을 데려와 춤판과 술판을 벌인 이제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백부가 여러 조카를 위해 행한 위무라는 망발은 종사의 지엄을 짓밟는 참람이오니, 부디 이제를 대의로 결단하소서!”

사헌부 집의 김맹헌이 외쳤다.

홍위는 금동이와 수복이의 손을 잡으며, “돌아가자! 지금 소리치며 놀 때가 아니다.” 하고 몸을 돌렸다.

홍위의 손을 잡고 협경당으로 가던 금동이가 불쑥 물었다.

“헝님, 이제가 누구에여?” (형님, 이제가 누구예요?)

“양녕 종조부님.”

“아, 나 시어, 그 하부지.” (아, 나 싫어. 그 할아버지.)

금동이가 코에 주름을 잡으며 온통 얼굴을 찌푸렸다.

“그 종조부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엊그제 왕족 군무 훈련 끝났는데 기생들 마차에 한가득 태우고 가서,”

“쉿! 애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홍위가 계동에게 고개를 흔들며 입을 다물라 할 때였다.

금동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홍위에게 물었다.

“헝님, 때켠이 뭐야, 때켠?”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앙영 종조부님이 저번에 나한테 녹옥으요 판 언적 주먼서, 너한테두 때켠이 있다 그앴어. 그언데, 어머이가 엄청 화 내졌떠. 어머이가 그엏게 화 내지는 거 첨 봤떠여.”

(양녕 종조부님이 저번에 나한테 녹옥으로 판 연적 주면서, 너한테도 택현(擇賢)이 있다 그랬어. 그런데, 어머니가 엄청 화 내셨어. 어머니가 그렇게 화 내시는 거 처음 봤어요.)

금동이의 말을 듣자 계동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덟 살의 계동이도 이제 왕가 후손에게 택현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았다.

계동이는 홍위의 손에서 수복이의 손을 떼어내 잡고, 허리를 굽혔다.

“세자 저하, 수복이와 전 이만 퇴궐하옵니다. 우리가 있을 때가 아닌 듯합니다.”

“왜여? 나 금동이앙 땃찌 치기 해야 되는데. 어제 다 이었떠요.”

(왜요? 나 금동이랑 딱지 치기 해야 되는데. 어제 다 잃었어요.)

“딱지가 문제가 아니다, 수복아. 저하, 저희 가 옵니다!”

계동이는 협경당에서 대기 중인 종 넷을 손짓으로 불러 서둘러 건춘문 쪽으로 향하였다.

수복이는 “금동이, 내이, 딱 기다여!” (금동이, 내일, 딱 기다려!) 하며 마지못해 질질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금동이가 홍위에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헝님, 제가 머, 자못했떠요?”

(형님, 제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야, 금동아. 그런데 양녕 종조부님은 어디서 만났어? 추석 이후로 입궐이 금지되어 있는데.”

“응, 반동방에 공장 갔으 때, 거기 왔떠.”

(응, 반송방에 공장 갔을 때, 거기 왔어)

“누가? 종조부님이?”

“응. 어머이앙 안펑 죽부앙 이야기 해더, 나는 매금이앙 둘래잡기 하는데, 왔떠.”

(응, 어머니랑 안평 숙부랑 이야기 했어. 나는 매금이랑 술래잡기 하는데, 왔어.)

홍위는 일이 어찌 되었는지 짐작했다.

요새 일본의 여러 번에서 보낸 사신단이 왕실 도요 도자기와 함께 어머님 소유 목가구 공장에서 만드는 여러 종류의 물품을 무역해주십사 청하고 있다.

그를 논하기 위해서 미적 감각이 뛰어나 도자기와 도성의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안평 숙부와 어머니께서 가구 공장에 간 것을, 궐 출입을 금지당하고 연일 상소의 탄핵 대상이 되고 있는 양녕 종조부가 어머니께 사정을 봐달라 청하기 위해 간 것이겠지.

“그애서, 나, 그거 안 받았떠. 이어케 손 주먹만하고, 응, 고양이가 앞발을 이엏케 들고 있는 녹옥이었는데, 굉장히 예뻤떠. 그애도 안 받았어여, 헝님.”

(그래서, 나, 그거 안 받았어. 이렇게 손 주먹만하고, 응, 고양이가 앞발을 이렇게 들고 있는 녹옥이었는데, 굉장히 예뻤어. 그래도 안 받았어요, 형님.)

“안 받았어? 어이구, 우리 금동이, 그렇게 옥이며 금은보화 좋아하면서 어떻게 안 받았대?”

“눈빛이 이당해가지고. 그이고 어머이도 엄청 시어하시고.”

(눈빛이 이상해가지고. 그리고 어머니도 엄청 싫어하시고.)

새해가 되면 여덟 살이 되고 정식으로 세자 책봉례를 올리게 되어 있는 홍위는 지금 양녕 대군을 둘러싼 저 비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이후 틈이 날 때마다 천추전에 부르셔서 대학연희를 몸소 가르쳐주시는 할바마마께서 전과 달리 왜 양녕 종조부의 비판 상소를 그냥 놓아두시는지도 알 것 같았다.

“금동아, 새벽이랑 매금이랑 놀고 있을래? 나 교태전에 가서 어머니 좀 뵙고 올게.”

“응! 빠이 와여. 이따가 누님이 와더 텬자문 뜨기 시험 보는데, 헝님이 도와줘야 해요.”

“으이구, 미리미리 외워 놓으래도!”

“외었떠요. 다 외웠는데, 누님이 무어보면, 금방 생각이 안 나요.”

(외웠어요. 다 외웠는데, 누님이 물어보면, 금방 생각이 안 나요.)

“한 상궁, 금동이 한자 쓰는 것 좀 봐 줘.”

홍위는 금동이가 또 천자문 마지막 부분을 못 써서 누이에게 엄히 혼이 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보모 상궁에게 보내고 내관 자선이와 함께 교태전으로 향했다.

어머니께 여쭙고 확인해둘 사안이 있었다.

*

*

홍위가 교태전으로 향하고, 사간원의 간관이 모두 몰려와 양녕 대군의 처벌을 강력하게 외칠 때 세종은 천추전 안에서 정인지와 함께 있었다.

미래에서 온 중전에게서 역사 속 비극을 들은 후 세종이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던 대상이 둘째 수양 대군과 함께 정인지였다.

스스로 천재인 세종은 자신 수준의 천재성을 지닌 또래의 정인지를 진심으로 아꼈고, 그 총애에 부합하게 정인지는 새 토지세에 대한 백성의 찬반 여부를 전국적으로 실행할 방법을 고안하고, 또 새로 만든 문자의 해례도 음양오행의 철학에 빗대어 아름답게 풀이해 내었다.

일반 경서는 물론 주역과 풍수학, 산학에도 일가를 이룰 정도로 빼어난 정인지가, 그 빼어남으로 그 누구보다 지극한 총애를 받은 정인지마저!

세종은 따져묻고 싶었다.

‘그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조선의 동량이 되는 신하의 절반이 참살당할 때, 우리 홍위가 저 먼 벽지에서 비참하게 스러질 때, 그때 정인지와 너희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배신감이 노여움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라 이놈이고 저놈이고 모두 끌어다 혹독하게 고신하고 수군으로 복무하게 시키라고 명하고 싶었던 며칠이 흐른 후.

세종은 냉철하게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게 되었다.

‘내가 택현(擇賢)으로 왕위에 올랐기에 무의식적으로 왕족의 활약을 금하지 않은 것이다.’

윤서에게서 ‘무의식’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배운 세종은 원래 역사에서 자신이 미리 야심만만한 수양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를 자신의 등극 과정에서 찾았다.

‘택현으로 왕위에 오른 후 왕권 경쟁에서 밀려난 양녕을 끝까지 살리며 상감오륜의 법도를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기에, 그리고 그에 따라 향이를 가르쳤기에 나도 향이도 후대에 왕권 다툼이 일어난다고 해도 설마 목숨까지 빼앗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터무니없이 순진한 낙관에 의해 빗어진 일이니 자신의 손으로 정리해야 옳았다.

그래서 세종은 양녕 대군의 무례한 언사를 비판하는 상소를 부러 방치하였다. 언사만으로 엄격한 처벌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녕 대군은 일평생 그래왔듯 반성하는 척하다가 이내 충동이 이끄는 대로 황음무도한 행위를 저지를 것이고, 그에 동조하는 왕족 무리도 반드시 생겨날 것이었다.

세종은 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혹독하게 처분하여 한 번에 왕실의 기강을 엄히 세월 계획이었다.

양녕 대군의 결정적 일탈을 기다리는 동안 세종은 조선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개인으로서는 홍위의 일이 가슴 미어지게 아픈 일이었으나, 군주로서의 실패는 더욱 살 떨리게 사무치는 일이었다.

미래 지식까지 모두 쥐게 된 지금, 금상과 중전과 함께 새 조선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였다.

세종은 장단기 국정의 목표를 세우고 그를 이루기 위해 여러 아들과 신하를 무지막지하게 부렸다.

가장 혹독하게 부려지는 것은 정인지였다.

오늘도 정인지는 오전부터 불려와 한양과 개성, 경주, 전주, 평양에 생겨난 은행의 대부 업무를 체계적으로 산정하는 임무를 받아 계산에 여념이 없었다.

윤서에게서 금융업으로 저 먼 서쪽 유럽을 지배한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를 듣고, 세종은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한 조선에 선진 금융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한 참이었다.

세종은 정인지에게 적정 대부 금액과, 그에 따라 시중에 풀리는 화폐의 통화량을 계산해내라 명하였다.

상왕께서 연일 천추전으로 호출하여 여러 분야에서 막연한 개념만 주고 구체적으로 산술화 해내란 명을 내리시니, 정인지는 눈이 쾡해지고 살이 쏙 빠졌다.

“은행이 유지해야 할 지급준비율을 이 할로 잡으면, 경혜 공주께서 고안한 아라비아 수자의 소수점 개념을 이용해 계속 0.8을 곱해나가면 되옵니다.”

정인지가 편의상 백 냥을 대부한 경우, 지급준비율로 은행에 예비해두어야 할 금액과, 추가로 몇 명에게 얼마만큼의 금액을 대부할 수 있는지 정리한 표를 올리며 고하였다.

“하오나 전하, 현재 왕실 내수사에서 화폐의 지급을 보증하고 있으니, 당장 지급준비율을 명확히 산정할 필요는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현재 우리 조선은 미곡 값을 기준으로 화폐의 가치를 연동하였으니, 일본에서 도자기와 면포, 비단 등을 사가며 지급하는 은이 대량으로 쏟아진다고 하여도 다른 물품의 가격이 앙등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옵니다. 아직도 화폐 유통량이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너구리처럼 시커멓게 검어진 눈 밑을 비비며 정인지가 고하였다.

그 때 밖에서 양녕 대군 이제를 탄핵하는 간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추석 연회에서 추태를 보인 후 궁궐 출입을 금지당한 양녕 대군은 이천의 거처로 물러나 두 달간 근신하였다.

그러나 이전처럼 상왕이 신하들의 비판 상소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 확신하고는 다시 한양으로 올라왔다.

그러다 최근 어여뻐하게 된 기생 하나가 ‘이제 상왕 전하의 총애를 잃었으니 자가께선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아니시오?’ 하는 말을 듣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냐 역정을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돈의문 밖 왕족 군무 훈련장에 여러 기생을 마차에 태워 데려갔던 것이었다.

양녕 대군은 훈련장이 있는 바로 옆에 커다랗게 천막을 치고 찬모를 시켜 고기를 굽고 술을 데우고, 기생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게 하였다.

눈 덮인 벌판에서 온종일 병법에 따라 진을 치고 궁기병과 마창병을 차례로 내보내고 화포병의 방포를 감독하는 훈련을 하느라 녹초가 된 왕족들로서는 어여쁜 기생들이 가져온 술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수는 양녕 대군의 권주를 정중히 사양하고 무구와 말을 챙겨 그대로 돌아갔다. 전하께서 참관하고 계시지 않으시다고 해도 전문 갑사와 번상을 올라온 지방군도 함께 훈련을 받고 있기에 왕족으로 규율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은 양녕 대군의 아들 순성군과 서산군, 그리고 만류하면서도 아들된 도리로 자리를 지킨 함양군, 그리고 노래하는 가기 중 하나와 인연이 있는 계양군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무기를 내려놓고 평복으로 갈아입은 왕족 몇이 기생의 빼어난 미모를 못 잊고 나중에 또 합류하였다.

처음에는 점잖게 술을 마시던 이들은 흥이 돋자 기생들과 함께 훈련용으로 세워둔 과녁에 활을 함께 쏘며 기방에서 놀 듯 황음무도하게 놀았다.

평소 상왕께서 왕족에 대해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에 불만을 가져온 대신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다만 양녕 대군은 금상께서 처분을 내리시기엔 왕가 종법상 항렬이 높으므로, 이들은 강녕전으로 달려가는 대신 천추전 앞에 몰려와 처벌을 강력하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간관들은 늘 그렇듯 양녕 대군을 비판하여 평소 함부로 대신들의 첩과 내통하고 권세를 부려대는 왕족의 지나친 행동을 제어하려는 의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상왕께선 이들의 예상을 넘어서셨다.

정인지의 설명을 듣고 난 세종은 밖에서 들리는 외침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다가 내관 조창의를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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