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6화. 모내기와 전농시 노비 문제 (4)
“왜 하필 지금이냐?”
이미 박팽년을 시켜 노비 세습제의 폐지를 위한 사전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는 말을 들은 세종께서 불쾌한 듯 되물으셨다.
태종께서 제정하셨던 노비종부법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고심 끝에 노비종모법을 정하신 세종으로서는 아들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벌인 것에 기분이 단단히 상하신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절대 권력을 가져온 최고 권력자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쾌감이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나 죽은 후 더욱 거칠 것 없이 마음대로 할 것을. 왜 지금이야?”
상왕이 현재의 왕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세자로 있으면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한 이향이 공손히 고하였다.
“제도가 원래 취지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역사상 많이 있습니다. 노비종부법과 노비종모법 모두 그러합니다,. 할바마마께서 양인과 국가 재정을 늘리기 위해 노비종부법을 제정하시자, 여종들은 자식의 신분을 양인으로 만들기 위해 천인과 양인 남성을 번갈아 동침하는 도덕의 타락이 있었습니다. 하여 아바마마께서는 아비를 알 수 없게 되는 윤리 질서의 타락을 막고자 오랜 숙고 끝에 노비종모법을 제정하셨습니다. 하온데 종모법 또한 원래의 취지와 달리 노비 증식 수단으로 변질되는 조짐이 엊그제 의금부에서 고발한 승지 박중림과 송중손의 일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라 생각했는지, 이향은 윤서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다시 의자에 가 앉았다.
그리고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박중림은 그 아들 박팽년과 더불어 유학의 도를 철저히 실행하는 선비 중의 선비입니다. 하온데 정3품 당상관인 박중림조차 현감인 송중손의 계집종 분이가 낳은 사내종 천보를 자신의 계집종 삼가가 낳은 사내종 김산(金山)으로 꾸미기 위해 위계를 이용해 직장 이양동, 경차관 권기 등에게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네 말은 그럼 지금 여염에서 아비든 어미든 둘 중 하나가 천인이면 그 소생이 자동으로 천인이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이 행해지고 있단 말이냐?”
“예, 그러합니다. 노비종부법 때 아비가 노비면 그 소생도 노비였다가, 노비종모법이 실행되자 이젠 어미가 노비면 그 소생도 노비가 되는 것으로 두 제도가 합쳐져 일천즉천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윤서의 역사에서,”
이제는 이향도 윤서가 미래에서 온 영혼이란 사실을 대놓고 고한다.
“불과 십여 년 뒤 공표되는 경국대전에서 일천즉천(一賤則賤)이 법령으로 명시된 결과 백성의 사 할까지 노비로 전락한다 합니다.”
“사, 사 할이라니!”
선사 이래 고려 중반기까지 노비는 인구의 일 할을 넘어서지 않았거늘.
이제야 노비에 관련하여 내놓은 대책이 의도와 다른 결과로 귀결되는 심각성을 명확히 인지하게 된 세종이 한심하다는 듯 이향을 흘겨보셨다.
“어째서 너는 그런 한심한 조항을 명문화한 게야?”
“···예?”
“십여 년 뒤라고······!”
말씀을 하시다 말고 세종은 입을 꾹 다문 채 다시 낯빛이 무섭게 창백해졌다.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이향이라면 절대 일이 그 지경으로 흘러가는 것을 좌시하고 있지 않았으리란 것을.
“물러가거라. 정말로, 물러들 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기이한 정보 때문에 드물게 혼란에 빠진 세종이 손을 홰홰 내저어 아들 내외를 물렸다.
‘향이가 마흔도 되기 전에 죽었단 말인가.’
금상과 중전을 내보낸 후 세종은 오랫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권가가 그리 수양을 그리 극도로 경계한 것이로구나. 향이가 일찍 죽어서 어린 홍위가 밀려나게 되어서.’
왕이 되지 못하고 폐세자된 자에겐 죽음뿐이다.
자신의 강력한 비호 덕분에 양녕 형님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역사에 있어 이 경우는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그 예외를 만들어 왕실의 형제 사이에 아름다운 우애의 정을 본보이기 위해 부단히 극기복례(克己復禮) 하였는데.
‘그 결과가 홍위가 밀려나 죽고 노비가 사 할이나 되는 조선이라니.’
아무리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왕조의 운명이라지만.
허망하고도 또 허망하도다.
세종의 깊은 탄식은 근정전 월대 위 괘종시계가 은은한 소리로 이경을 알리고 나서도 그치지 않았다.
*****
천추전을 나온 윤서와 이향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협경당으로 곧바로 돌아가는 대신 궐의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앞서 걷는 홍 내관의 등롱 불빛이 겨우 한 치 앞의 어둠만을 쫓을 뿐이다.
멀찍이 물린 호위 내관의 발자국 소리도 희미한 밤, 윤서는 뒤늦게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았는지 실감하고 몸을 떨었다.
“부인이 용기를 내어 고한 덕분에 아바마마께서 현실을 직시하시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나, 앞으로가 걱정이구려.”
윤서의 불안을 느낀 이향이 손을 꽉 쥐고 말하였다.
아니, 그럼 정말로.
“···귀신에 들린 괴상한 여인이라고 저를 내쫓으실까요?”
“응? 무슨 그런 황당한 말을! 국왕인 내가 이리 부인을 애착하는데!”
상왕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인 태종이 와서 명한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이향은 윤서의 허리를 바싹 끌어안고 귀에 속삭였다.
“내 말은 이제 부인은 매일 아바마마께 불려가 혹사를 당할 거란 말이었소.”
“···아!”
“짐작만 하고 계실 때도 매일 불러다 지식을 탈탈 털어서 학당 교재로 만들어 내셨는데, 이제 부인 입으로 미래에서 온 영혼임을 고하였으니.”
정말로 연대별로 동서양의 모든 역사를 다 기억해 내라 닦달하실 것이다.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전하와 우리 홍위 치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저는 괜찮아요.”
“더 좋은 세상이 될 거요. 아바마마도 이제 부인이 말한 과거 지향의 버리시게 될 터이니.”
“으응? 과거 지향의 지식이요?”
“부인이 해 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나를 근원적으로 바뀌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아오?”
“···장차의 비극?”
“아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것만 염두에 두었다면 수양을 제거하고 말았겠지. 그것이 아니오. 부인, 아바마마께서 내일 필히 부르실 터인데, 가면 <폭군 이야기>를 읽고 부인이 느꼈다는 점부터 상세히 고하시오.”
이향은 윤서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고 지금은 중국 다음으로 최강의 세력을 가졌던 조선이 어찌하여 점점 중국만 숭앙하고 다른 세계는 모두 오랑캐라며 배타하는 폐쇄적인 나라로 전락하였는지를 내내 고심하였다.
오랜 고심 끝의 실마리는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푹력적인 지도자를 파헤친 <폭군 이야기>란 책의 내용을 윤서가 들려줄 때 문득 찾아졌다.
이향이 여럿에게서 들은 명 태조의 폭정을 들려주자 윤서는 먼 훗날 독일이란 나라에서 유태인이란 특정 계통의 무리를 조직적, 체계적으로 멸살하려한 나치 지도자를 들려주며,
“저도 늘 궁금했어요. 개개인으로 보면 그냥 평범했던 사람들이 집단으로 뭉쳐 어찌 그리 끔찍한 학살을 할 수 있는가, 그런 폭력적인 군중심리를 촉발한 지도자는 어떤 신념 체계를 가지고 있는가 궁금해서 동기들이랑 권력 의지 등에 대해서 세미나를 했었거든요.”
그들의 공통점은 역사상 실재 존재했는지 여부가 불명확한 이상향 하나를 상정해놓고, 현재의 타락한 무리와 제도를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멸절해 이상향을 현세에 이룩하려 한다는, 이념에 대한 헌신이라 하였다.
여기서의 방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평등하게 나누어 갖는 공산제 사회, 자연 속에서 계급도 사유 재산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던 원시 사회 등, 문명이 발달하면서 잃게 된 그 먼 과거의 이상향을 이루려는 과도한 헌신과 열정이 역설적으로 가장 무자비한 폭력을 낳게 된다고 분석한 책의 내용을 윤서가 말해줄 때.
이향은 주나라의 제도를 이상향으로 상정하고 주나라의 종법 질서를 조선에 구현하려 한 과거 회귀적 국시가 조선 퇴행의 근본 원인임을 성찰하게 되었다.
“아바마마께선 재위 내내 주나라의 종법 질서를 그대로 계승하는 공자의 예기에 따라 우리 조선의 국조오례의를 상세히 규정하는 데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소. 그것은 분명 건축 초 아직 통치 체계가 재대로 확립되지 않은 우리 조선에 필요한 일이었으나, 그러나 아마 미래에는 아바마마께서 그 필요를 느끼신 취지는 없어지고 그 복잡한 형식만 남아 한층 더 편협하게 교조화되었겠지.”
그러니 상왕께서 지금 당신 손으로 직접 당신이 세우신 조선의 기틀을 허물어 미래를 위한 본질만을 남기고 재조합하셔야 한다.
그래야 조선이 더 부강한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다.
미래의 지식을 폭넓게 흡수한 젊은 왕 이향이 내린 결론이었다.
“좋아요. 심리학 이론도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시는 상왕 전하시니, 삼천 년 전의 작은 나라에서도 통할까 말까 한 이상적 질서를 현재의 복잡한 정치 사회 현실에 구현하시려는 것의 한계를 금방 깨치시고 새로운 사회 질서 학문 체계를 금방 만들어 내실 거에요.”
세종 대왕이시니까!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종은 윤서를 당장 다음날부터 따로 부르시지 아니하셨다.
다만 이향에게,
“지금 당장은 북방 경영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오. 주상은 그 토목보의 변인가 하는 것이 정말로 벌어질 것인지 척후를 파견해 정세를 살피고, 내탕고를 아끼지 말고 화포를 개량하고, 전문 갑사와 기병을 기워내시오.”
명하셨을 따름이다.
이향은 세종의 명을 충실히 시행하는 한편,
4월 10일 세종의 탄신일에 상왕 전하의 명으로 한양과 경기 지역 전농시 소속 공노비 일천오백다섯 명을 양민으로 속량한다고 공표하였다.
이앙법과 퇴비법의 발달, 물소와 한우를 개량하여 힘 좋은 일소를 만드는 종자 개량, 또 산동 반도에서 들여온 중국 돼지를 성공적으로 전국 전역에 보급한 공을 치하한다는 명분을 가진 속량이었다.
노비에서 양민이 된다고 해도 전농시 소유 전답을 소작을 받아 농사를 짓는 한 기존에 노비로서 신공으로 바치던 남성 종의 면포 두 필, 여성 종의 면포 한 필은 그대로 바친다는 조건을 달아서였다.
얼핏 보면 십만 명이 훌쩍 넘는 공노비 중 겨우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노비가 그 신분만 명목상으로 양민으로 놓여난 조처 같아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구(口)의 어린 사내종을 차지하기 위해 현직의 고관대작 세도가들이 서로 증인을 매수하고 위증하여 소송을 일삼기 시작한 복잡한 조선의 현실에서,
상왕 전하와 금상 전하가 보인 파격적 행보는 모두의 기대와 또 다수의 불안과, 소수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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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석회 가루이온데, 여기에 모래와 나무재를 섞은 후 물을 섞어서 굳히면 돌처럼 단단하게 굳게 됩니다.”
공조 판서 정분이 경복궁 서북쪽 군기시 분원 작업장에서 드디어 초보적으로 배합해 낸 시멘트를 선보이는 날이었다.
함께 참관하게 된 희아가 윤서 귀에 속삭였다.
“실은 저걸 저의 궁방에 적용하려 해요. 정종이 벌써 얻어다가 작은 건물 하나를 만들었어요. 철근은 당장 어려우니 단단한 대나무로 골조를 세우고요.”
“하지만 당장 석탄으로 난방을 할 생각은 절대 해선 안 돼.”
새벽이의 손을 잡고 있는 윤서가 희아에게 고개를 숙여 속삭일 때였다.
“중전, 이제 천추전으로 와야 할 때가 되었구나.”
둘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세종이 드디어 윤서를 호출하셨다.
모내기할 때 천추전에서 정체를 밝히고 무려 넉 달이 지나, 이삭이 막 팰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