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0화. 이향은 정종에게 (1)
“경이 항시 행동을 삼가며 모범을 보이니 휘하 장병 또한 엄숙하게 규율을 따라 무탈하게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초석을 무역해온다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출항하게 되었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무탈하게 돌아오라.”
“예, 전하. 이미 여송까지 항해한 경험이 있사옵고, 또한 가을부터 인천 연안에서 목포까지 항해하며 원거리 항해에 적합한 돛과 여러 직공과 함께 배를 개선하였습니다.”
사정전 안.
이향은 수군 갑사와 격군 등의 함대를 지휘하여 천축국에 다녀올 책임 첨사 유응부를 접견하고 있었다.
수양 대군과 상인을 호위하여 여송까지 다녀왔던 유응부는 귀국한 후 인천 연안에 새로 세워진 조선소에서 항해에 필요한 선박의 제작을 감독하고, 건조한 배를 몰고 인천에서 먼 바다로 나가 목포를 향해 내려가며 장착한 화포를 실험하고,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돛을 조절하고, 화물의 선적 무게에 따라 선체가 어디까지 가라앉는지 등을 꼼꼼히 실험하였다.
수양 대군이 외교관의 역할을 한다면, 유응부는 실제 함단을 지휘하고 필요시 무력으로 수양 대군과 화물을 지켜내는 장수 역할을 하게 된다.
“중전마마께서 이번에도 모기장 오백 장과 해열제, 상처에 바를 연고 등의 여러 상비약과 의원 다섯을 특별히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산삼 일백 근을 꿀에 재워 하사하시고 각종 절임 채소도 넉넉히 마련해 주셨으니, 참으로 은혜가 황공하옵니다, 전하.”
서해안의 만조가 다가와 출항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커다란 짐마차가 열 대나 도착했다.
모기장, 각종 상비약, 습한 고온에도 상하지 않게 꿀에 절인 산삼과 생강, 마늘, 여러 약재 그리고 소금에 절인 채소 등을 실은 마차였다.
모두 중전이 특별히 마련해 보내신 하사품이었다.
“덥고 습한 기후의 풍토병을 연구한 의원 다섯도 파견할 것입니다. 중전마마께서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라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중전마마를 모시는 내관 강인구가 전한 말씀이었다.
“중전이 경에게 여러 가지를 진심으로 고마워하네. 특히 경이 여송을 샅샅이 뒤져 커피와, 커피를 거래하는 아라비아 상인이 한양에 올 수 있게 설득한 것을 무척 고마워하지.”
중전이 가장 고마워하는 것은 이전의 역사에서 그대가 우리 홍위에게 지킨 군신의 의리였지만, 그런 것은 이미 흘러간 과거이자 영영 오지 않을 미래라는 말을 이향은 하지 않았다.
“아! 전하, 어찌 아셨습니까?”
상왕 전하께서 지극히 커피를 사랑하신다는 소문과 함께 그 귀한 커피를 수양 대군이 어렵게 구해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두셋씩 짝을 지어 여송의 삼점가를 이 잡듯 뒤져서 회회인의 한 상점에서 은밀히 거래되고 있는 커피를 간신히 찾아낸 수군 갑사들로서는 서운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하께서 알고 계셨다니!
“내가 내린 명이지 않은가. 또 중전도 경의 부인과 또 항해를 다녀온 수군의 내자들을 교태전에 초빙하였을 때 확인했다고 하더군. 말도 통하지 않는 먼 이역의 섬에서 중전이 그렸다는 콩알 그림 한 장씩 들고 온 상점을 다 뒤져서 겨우 찾아내었다고.”
“아, 그래서 중전마마께서 저희 부인들에게 커피를 두 되씩 하사하셨군요.”
그렇게 하사받은 커피를 열 섬이나 받고 팔아 살림에 보탠 여인들이 많았다.
유응부로서는 수하 장병들에게 면이 크게 서는 일이었다.
“신 등이 떠나 있는 동안 중전마마께서 식솔을 다 살펴주시니, 저희는 초석을 구하는 데 모든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전하께서 항해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시는 것과 별개로 중전께서 노 젓는 격군과 잡일 하는 공노비 식솔까지 모두 챙겨주시는 것은 크게 감동할 일이었다.
그래서 유응부와 수군 갑사, 수군 장병과 격군, 허드렛일을 하는 자들까지 모두 해양 조선을 개척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가슴에 충만하게 들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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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유역의 부족들이야 원래 조선에 알랑거려 구걸이나 하는 것들이었지만, 우리 건주의 여러 부족들까지 동요하고 있네. 이러다간 자칫 우리 여진 전체가 다 조선에 넘어갈 수 있어!”
파저강 유역의 건주위를 이끄는 이만주가 건주좌위 수장 범찰에게 말하였다.
이번 신년 하례에 조선의 한양에 입조한 여진족 추장의 수가 평소의 세 배나 되었다. 그리고 한양에 입조하였다가 돌아온 여진족 상당수가 자제를 한양의 학당에 유학을 보내길 희망하고 있었다.
“요동 도사와 명 황제에게 주본을 올리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조선이 우리 여진족을 회유하여 세력권 안에 들이고자 한다고 고하면, 명의 황제가 반드시 경고하고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조선으로서도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우리 여진을 회유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아. 내가 저 달단에 쫓겨 경원에 머물다가 여기 파저강으로 옮겨온 지 겨우 네 해일세. 명 황제가 그나마 비호해 준 덕에 여기로 옮겨왔지만, 그 이후 내가 좀······.”
경원을 떠나 파저강 유역에 터를 잡은 이만주 일족은 농경 기술이 부족했다. 그래서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강토에서 약탈을 하여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는 한편 요동에 사는 한인을 잡아 와 농사를 짓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만주의 세력은 조선과 명나라 요동 도사 양측에서 모두 눈엣가시와 같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대해지는 것을 요동 도사나 황제가 반길 리가 없지. 그러니 주본을 써서 낱낱이 고해야지. 듣자 하니 왜와도 교류가 활발해진다는데, 그것도 고할 일이야.”
이만주는 범찰과 함께 조선이 여러 여진 부족을 의술과 식량, 벼슬로 회유하여 장차 요동으로 세력을 넓히려 하고 있고, 또 남으로는 왜와 힘을 합쳐 명나라 강토를 노린다는 내용의 주본을 써서 황제와 요동 도사에게 바치기로 하고 글 잘 짓는 자를 즉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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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나시면 내년에나 돌아오시겠네요. 흐흑. 소첩, 자가의 품이 그리워 어찌 살까 근심이옵니다.”
“길다면 길지만, 또 우리 도원군과 귀동이를 키우다 보면 훌쩍 흐를 세월이기도 하오. 강건하게 견디면서, 훗날을 준비하시오.”
석별의 정이 수양 대군과 그의 부인 윤씨 사이에 애틋하게 무르익는 밤이었다.
둘 사이의 첫아들 귀동이가 이제 십 개월의 나이다.
발발 기어 다니는 어린 아들을 두고 멀리 떠나가는 마음이 착잡하였지만, 수양 대군은 내색하지 않고 다시 어린 아내에게 당부하였다.
“어마마마와 중전이 하시는 모든 것을 잘 보고 성심껏 익히시오. 백성들 사이에서 어마마마에 이어 중전에 대한 신망도 아주 높아요.”
“···소첩도 언젠가는,”
그리 귀하게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물으려던 윤씨는 화급히 뒷말을 삼켰다.
수양 대군의 얼굴이 침중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어디서건 무리를 이끌어야 할 수도 있소. 배를 타고 나가보니 세상이 참 넓더이다.”
수양 대군은 한명회가 보내온 서찰을 떠올렸다.
[영락제의 신하가 갔던 항로를 아는 자들을 찾아내 천축국에 갈 항로를 미리 익혀두고 있습니다. 연안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는 바닷길이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허니 무역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 우리 함단에 동행 여부를 묻는 상인 무리가 있다면 적극 모집하십시오. 장차 자가의 대업에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중략)]
그 대업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상인은 이문을 위해 움직인다.
큰 이문은 큰 권력이 있는 곳에 있다.
정말로 거대한 부와 함께 공주와 옹주의 남편이란 작위마저 가진 거부 윤사로, 박종우, 안맹담 등은 자신이 아니라 평원 대군을 따라 미개한 곳에 가고자 하는 것을 한명회가 알게 되면.
그때에도 한명회는 나와 함께 대업을 꿈꿀 것인가.
‘그럴 것이다.’
아바마마 때부터 활약한 중신들이 조정을 꽉 장악하고 있고, 또 집현전에서 길러진 실력자들이 형님 전하의 치세에서 하나둘씩 조정의 현장 정치에 진출하고 있다.
한양에 돌아와 봐야 한명회는 대단한 가문의 못난 자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처럼 저속한 왈패 무리나 거느리게 되겠지.
‘그러니 한명회. 그대가 중전이 말한 대로 내 귀에 불온한 마음을 불어넣는 거울이라 할지라도, 내가 마음먹는 것만을 비춰야 할 것이오.’
수양 대군은 부디 몸 성히 다녀오라며 자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던 어마마마의 말씀을 떠올렸다.
“유야, 내가 미안하다. 중전이 아이들 키우는 것을 보니 어렸을 적에 유 네가 홀로 민가에 나가 살면서 참으로 외로웠을 거란 마음이 이제야 든다. 그때 외롭고 서럽던 마음 때문에 혹여 다른 마음이 때로 드는 것이라면, 그럴 때마다 부디 이 어미를 생각해다오. 몰라서, 다들 그렇게 하기에 생각 없이 너를 떼어두었던 이 무지한 어미를 봐서라도, 마음을 다잡아다오.”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드신다면서, 때때로 한없이 잔혹해질 수 있는 왕가에서 너를 감쌀 이가 없을 것이란 경고도 하셨다.
“그러니 충성을 다하거라, 유야. 아바마마께, 또 형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이 어미의 소원이다!”
마음 한쪽 응어리를 진 채 살아오시다가 요 몇 년 새에서야 비로소 웃으시게 된 어머니 소원이시라면.
“이번에는 영민한 가노를 많이 데리고 가오. 장차 나를 도와 해외 일을 해야 하니, 미리미리 배워두고 익혀야 해서. 그러니 부인도 농법이며 의술이며, 다양한 지식을 쌓아두길 바라오.”
그렇게 당부하고 수양 대군은 세종과 금상 전하, 그리고 문무백관과 백성들의 따스한 전송 속에 신형 범선 함대 열 척을 이끌고 천축국으로 항해를 떠났다.
평원 대군이 애첩 초요갱을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하다가 못 데리고 간 것이 왕실 내부에 두고두고 회자된 하나의 우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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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경혜 공주 희아의 친영을 하루 앞둔 날이 왔다.
보통 민가에서는 신랑이 신부 집에서 혼인 생활을 하는 남귀여가(男歸女家)혼의 풍속이 일반적이었다. 신랑은 신부 집에 마련된 거처에서 아이를 낳고 살면서 친가는 이따금씩 들르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을 세운 성리학자들은 주자가례에 따라 신부가 신랑의 집에 들어가 사는 유교식 혼인 의례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고, 그에 따라 왕실이 모범을 보이는 차원에서 친영례를 실시하게 되었다.
내일 희아는 광화문을 나와 의통방에 마련된 공주 본궁으로 가 정종을 기다려야 한다.
이향은 정종을 따로 강녕전으로 불렀다.
이제 열한 살의 꼬마 신랑 정종은 부름을 받고 들어와 좌불안석이었다.
평소 인자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전하의 용안이 서늘하게 식어 있기 때문이다.
‘중전마마라도 함께 계시면 좋겠는데.’
중전마마께서는 어찌나 다정하게 자신을 챙기시는지,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여염의 말이 무엇인지 실감이 났다. 그래서 정종은 경혜 공주가 몹시 좋지만 중전마마도 좋았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되시는 우리 전하께서는 홍 내관이 달여낸 차만 묵묵히 마시실 뿐 아무 말씀도 아니 하신 채 벌써 이각이 지나고 있다.
꿇어앉은 다리가 저리기 시작한 지 한참이다.
“아바마마는 다정한 분이시니 걱정할 거 없어요, 정종. 평소 내게 말하듯 하문하시는 말씀에 답을 하면 되어요.”
이제 부부가 되니 서로 존대해야 한다면서 공주께서 여기 들기 전 꼼꼼하게 관복 깃을 정돈해 주셨었다.
‘헌데 다정하시다는 전하께서는 어찌 저리 무섭게 침묵하시는가.’
정종은 마른침을 삼키며 소반 위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았다.
왕실 도요에서 새로 구워낸 찻잔은 나무 덩굴 당초 무늬가 선명한 청색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정종!”
드디어 전하께서 부르셨다.
그런데 어째 아까보다 옥음이 더 싸늘하다.
“예, 전하. 말씀하옵소서.”
와들와들 떨리는 손을 꽉 잡아 소매 속으로 감추며, 정종은 온힘을 다해 의연하게 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