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7화. 세종의 결심 윤서의 결심 (3)
음력으로 7월 말, 들판의 오곡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의 초입이었다.
정 귀인은 문 소용과 함께 다가올 추석 왕실 연회 준비 사항을 점검 중이었다.
왕실 직계 종친들이 모두 모이는 오찬 연회와, 늦은 오후 외명부 여인들이 입궐하여 음식과 선물을 바치는 석찬 연회를 나누어 준비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려야 할 선물도 해마다 달라져야 하고 또 대비마마 등 웃어른의 취향과 조정에서 중시하는 바에 따라 여악이 부르는 노래와 춤의 종류도 달라져야 하기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었다.
금상 전하께서 즉위하신 후 두 번째로 추석 연회 준비를 책임진 정 귀인은 올해도 작년처럼 사과 등 제철 과일과, 유밀과 등 왕실 정과를 선물로 내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평소 정 귀인이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문 소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왕실에서 내리는 명절의 선물은 주상 전하의 치세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올해 신년 하례와 망궐례에 그간 왕래가 없던 여진의 부족장들도 많이들 왔지요. 또한 일본의 여러 번에서도 사절을 보내 우리 조선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한남군께선 일본과의 교역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아 대마도 동쪽 대내씨의 땅에 나가 계시고, 수양 대군께서도 벌써 두 번째로 노상 더위가 지속된다는 여송까지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
정 귀인은 깜짝 놀라 문 소용을 바라보았다.
늘 열의 없이 하품이나 슬쩍하던 것이, 어째서!
“그래서, 무얼 어쩌자는 게야?”
“왕실이 하사하는 선물로 제철 과일과 유밀과, 각종 정과는 너무 흔해서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현물 공납이 폐지되어 우리 왕실도 모두 다 구입하여 쓰니, 여염에서도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것들 아닙니까?”
“······?!”
정 귀인은 어째서 문 소용이 이리 주체적으로, 그것도 박식하면서 주체적으로 변모하였는지 의아했다. 또한 맹렬한 불쾌감을 느꼈다.
“누가 자네에게 선물 목록에 대해 왈가왈부하라 허락했지?”
“내가, 허락했네, 정 귀인.”
두 사람이 모여 논의 중인 장소는 연회가 열리는 교태전에 딸린 함홍각이었다.
정 귀인이 날카롭게 문 소용을 추궁하였을 때 문이 열리며 중전이 들어왔다.
“주, 중전마마!”
“중전마마, 벌써 이리 분주하셔도 되시옵니까?”
정 귀인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고, 문 소용은 방긋 웃으면서 허리를 굽힌 후, 급히 의자를 빼어 상석으로 중전을 모셨다.
윤서는 문 소용이 빼 준 의자에 앉아 밖을 향해 외쳤다.
“양 소용을 불러오게.”
“예, 중전마마!”
명을 받잡는 궁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정 귀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까지 궁중의 행사는 모두 자신이 알아서 주관해 왔는데, 왜 갑자기 중전이 나서서 태생이 천하고 무식한 양 소용까지 불러들이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 귀인, 자네가 학당에서 여인의 도리는 웃어른의 뜻을 힘껏 받잡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지. 대비마마께서 왕실의 일에 내명부의 모든 여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이르셨네. 그래서 이번 추석부터는 모두 함께 의견을 내어 일을 진행할 것이네.”
“···하오나, 그 일의 절차가 복잡한지라,”
“복잡하지. 그래서 문 소용에게 혜빈 자가께 가 상왕 전하 때엔 어찌 하였는지 다 배워 익혀 오라 미리 말해 두었네.”
“예, 중전마마. 소첩 여기 다 꼼꼼히 적어 익혔습니다.”
문 소용이 허리춤에 매단 어여쁜 주머니를 풀러 손바닥 크기의 작은 서책을 꺼내 펼쳤다. 서책 안에는 정음으로 일 년 동안 열리는 왕실 행사의 종류가 시기 별로 상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혜빈 자가께서 말씀하시길, 본래 왕실 행사에 정해진 바가 없었는데 상왕 전하께서 고금의 사례를 통해 하나씩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우리 금상 전하의 치세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어야 시대를 앞서 선도할 수 있다고도 하셨어요.”
문 소용이 뿌듯한 얼굴로 고하였다.
그 말을 들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윤서와 달리 정 귀인의 얼굴은 희게 질렸다.
“···중전마마, 이것은 제 일이 아니옵니까? 경서 지식이 깊지 않으신 중전 마마를 대신하여 제가 귀인으로 주관하던 일을, 어째서, 어째서.”
정 귀인이 여쭈었다.
윤서는 대답 대신 정 귀인을 직시하였다.
그 눈빛이 서늘하고 날카로워, 정 귀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증거는 아직 손에 쥐지 못하였지. 그러나 좀 전에 세종께서 집현전으로 행차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현전의 여러 학자가 연명하여 왕실 여인의 난행과, 불교를 비판하며 아울러 여인의 지나친 바깥 활동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저주 제웅이 발견된 바로 그 시기와 맞물려서.
상소를 올린 집현전 인사 중 하나가 정 귀인의 숙부 정창손이다.
“정 귀인, 귀인의 작위가 나를 대신해 왕실의 행사를 책임지는 일이라면, 마찬가지로 내가 해산을 하게 되어 산실에 들게 될 때, 나를 대신해 여기 경복궁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이가 누구입니까?”
“!”
“내가 부재할 때 나를 대신해 내명부를 책임져야 하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주, 중전마마!”
정 귀인은 순간 자신의 말에 스스로 걸려들었음을 깨달았다.
“정 귀인 그대의 일이 그저 왕실 연회나 주관하는 것이던가요? ‘빈’ 작위가 없는 내명부에서 ‘귀인’이 바로 중전 다음입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 교태전의 산실에 들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 중전마마! 그, 그것은 너무 은밀하게 일어났고 또 대비마마께서 행차하신 때에 일어난 일인지라, 제가 미처 살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예, 중전마마! 하오나, 미처 막지 못한 것은 제 과실이기도 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중전마마. 송구하옵니다!”
자칫하면 귀인의 업무는 물론 귀인 작위까지 빼앗길 일이다.
저주 제웅 건만은 들키지 말아야 하니. 과실 정도로 넘어가면서 중전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면 된다!
정 귀인은 한미한 가문 출신의 어린 중전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하니 호락호락하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실은 두려기까지 한 존재였다.
아까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중전의 시선이 속을 꿰뚫어 보듯 서늘하고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귀인은 먼저 엎드렸다.
“소첩의 불찰을 부디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의 부족함을 통감하오니, 부디 중전마마의 가르침을 주옵소서.”
“당분간 궐의 행사는 문 소용과 양 소용이 주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정 귀인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근신의 의미로 양화당에서 자숙하세요.”
한마디로 거처인 양화당에 머물며 궐의 일에서 손을 떼라는 명이었다.
“···알겠습니다, 중전마마. 소임을 다하지 못한 점,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정 귀인은 의자에서 일어나 윤서에게 절을 올리고, 물러갔다.
“···제가 이렇게, 벼락 출세를 해도 되는지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나가는 정 귀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문 소용이 윤서에게 물었다.
“제가, 정 귀인보다 학식이 일천하고, 또 절차에 그리 능숙하지 않아서······.”
“그래서, 하기 싫으신가?”
“아, 아닙니다! 하고 싶습니다! 혜빈께 잘 배우고 있어요, 중전마마!”
권력은 좋은 것이다!
궐 안의 상궁과 궁녀에게 일을 시키는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어 버린 문 소용은 뜻밖에 잡은 이 기회를 절대 다시 잃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만 약조하시게.”
“예, 중전마마. 열 가지도 약조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해치지 마시게. 우리 전하의 아이든, 그 누구의 아이든. 아이는 해치지 말아. 그게 내가 자네에게 요구하는 조건이네.”
권력 암투는 있을 수밖에 없다.
증거가 없어도 다른 꼬투리를 잡아 정 귀인을 쳐낸 것처럼, 문 소용도 점점 권력의 맛에 취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 큰 즐거움을 위해 여러 일을 벌이게 될 것이다.
괜찮다.
그런 욕심과 욕망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니.
이번 추석에는 늘 내리던 과일과 정과 대신, 우리 전하의 달라지는 치세를 상징하는 설탕과 후추를 선물로 하면 어떠하겠냐고 먼저 제의하는 것처럼.
문 소용의 욕망이 더 나은 궐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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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상소에 ‘부(富)한 뒤에 가르친다.’란 공자의 말씀과 ‘백성의 하는 도(道)는 일정한 직업이 있는 자라야 일정한 마음이 있다.’라는 맹자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즉 제왕의 정치는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 내 묻겠노라. ‘부(富)는 어떻게 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상왕으로 물러났으나 조선의 학문과 기초 과학 분야는 여전히 총괄하고 계신 세종께서 집현전으로 행차하여, 지난달 왕실 여인의 난행과 불도를 비판하는 상소를 연명해 올린 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집현전의 직제학 신석조, 응교 정창손, 부수찬 송처검 등이 그들이었다.
그리고 상소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수찬 성삼문, 신숙주 등은 뒤에 따로 고요히 앉아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생재유대도 생지자중 식지자과 위지자질 용지자서 즉재항족의(生财有大道 生之者衆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则财恒足矣)‘라, 즉 재물을 만들어 내는 큰 방법이 있으니, 생산하는 자가 많되 먹는 자는 적고, 또 일하는 자는 빠르고 쓰는 자는 느리면 재물이 항상 풍족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즉 힘써 일하고 검약하는 것에 부의 원천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직제학 신석조가 답을 올렸다.
“그래? 진정 그것만이 부를 늘리는 일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상왕 전하. 국초에 농업을 장려하고 상업을 억제한 것 또한 상인 무리는 농민이 땀 흘려 생산한 것을 싸게 사서 백성에게 비싸게 팔아 편안하게 부를 쌓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처를 신봉하는 승도 무리는 생산하지도 유통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무지한 백성을 현혹해 시주와 재물을 받아 소비하기만 하니, 상인보다도 못한 버러지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현전 응교 정창손이 당당히 고하였다.
“······.”
물끄러미 정창손을 바라보던 세종께서 금색 실로 용을 수놓은 가죽 함에서 안경을 꺼내썼다.
우유 빛깔의 상아를 깎아서 테를 만들고, 햇빛 아래에서도 눈이 부시지 않게 하기 위해 엷은 갈색의 황수정을 깎아 만든 안경으로, 최근 저 먼 서역에서 입수한 서적까지 모두 읽으시느라 눈을 혹사하는 세종을 위해 중전이 만들어 바친 것이었다.
안경을 쓴 세종이 앞에 엎드린 자 하나하나를 쏘아보며 하문하였다.
“그럼 너희는 무엇을 생산하느냐?”
“사, 상왕 전하!”
“너는 무엇을 생산해 우리 조선의 부에 기여하고 있는가 말이다!”
“저희는 성현의 도를 익히고 또한 고금의 지식을 연구하고 취합하여 상왕 전하와 금상 전하의 치세를 보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상왕 전하께서 일찍이 저희에게 명하신 생산의 소명이 아니옵니까?”
“그러하다! 너희의 소명은 고금의 지식을 연구하고 취합하여 이 나라 조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내가, 그리고 주상이 더 나은 조선을 만들어 왔노니! 그러한데, 지금의 너희는 어떠한가!”
“!”
“!”
“···상왕 전하.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세종께서 앞의 서탁에 놓인 상소를 짚었다.
“여기서 너희는 ’우리 동쪽 나라는 산천이 많아서 전토를 만들 만한 땅이 본래 적고, 토질(土質)이 나빠서 생산하는 이익이 또한 적사옵니다.‘ 고하고는 바로 밑에서 ’가업을 늘린다는 구실로 여인들이 주도하여 산천 개발에 나서는 일 등을 줄이게 하시고‘ 라고 고하였다. 전토를 만들 만한 땅이 적으면 여인이 나서 개간하는 일을 칭송해야 마땅하고, 토질이 나쁘면 여인들이 나서 퇴비를 만들어 토질을 북돋는 것을 장려해야 하거늘!”
“!”
“!”
세종의 일갈은 멈추지 않았다.
“승도 무리가 생산하지도 유통하지도 않는다는데, 애초에 생산하는 자가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물건을 그들에게 바치겠느냐? 또한 유통하는 자가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절에 바칠 물건을 마련하겠느냐?”
“!”
“!”
“여염의 무지한 여인들조차 새로운 지식이 쌓아 부를 늘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 너희는 어째서 게으르게 앉아 앵무새처럼 이전에 하던 주장을 그대로 받아서 외치기만 하느냐? 이 밥버러지 식충이 같은! 게으른 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