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5화. 세종의 결심, 윤서의 결심 (1)
“저주 제웅 건은 제게 맡겨두세요, 전하.”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에 걸맞는 의미로 피어난다는 시의 구절처럼,
‘미래에서 온 선녀’라 이향이 불러준 순간 윤서는 이제 더 이상 ‘이향을 사랑하게 된 미래인’만이 아니게 되었다.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마음먹었다면 사랑하는 나무꾼을 위해 이 지상을 하늘나라처럼 만들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향을 사랑하는 ‘부인’으로 이향이 오래 살고 홍위가 무사히 장성하여 보위에 오르는 것을 삶의 주요 목표로 정했던 윤서는, ‘미래에서 온 선녀’로서 선녀다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을 더욱 굳혔다.
그것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내향적인 기질을 극복하고, 중전답게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여 이 시대의 조선을 미래의 한국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작이 정 귀인 건이었다.
저주 제웅에 정 귀인이 관여되어 있을 거란 의심을 한 이향이 정 귀인을 불러 직접 심문하려 할 때, 윤서는 이향의 손을 잡고 만류하였다.
“정 귀인은 제가 적절하게 조치하겠습니다. 전하께선 순행 동안 돌아보고 오신 농업과 내치, 그리고 국방의 일에 전념하시어요.”
재위 내내 여러 후궁을 두고도 서로 평화로운 내명부에, 자손도 아들 열여덟, 딸 일곱으로 번성한 아버지 세종과 달리,
이향은 그간 이혼 두 번에 세 번째 현덕 빈은 돌아가시고, 홍 승휘는 비구니가 되고, 어린 권 승휘는 공식적으로 병사하는 등 유난히 박복한 처복에, 태어난 자손도 일찍 죽은 경우가 많아 겨우 홍위와 희아, 선아, 아픈 금아뿐이었다.
윤서가 중전이 되어 이제 겨우 아들이 셋이 되고, 금아도 점점 건강해지는 등 이제 막 자손이 번성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점에서 정 귀인이 또 제주 제웅으로 엮이면!
그러면 역시나 이향은 처복이 없고 덩달아 우리 홍위 태어나던 날 대전에서 부러졌다는 초 이야기도 다시 나올 것이다.
윤서가 미래에서 오면서 이미 파기된 그 구질구질하고 불길한 서사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정 귀인을 차츰 실무에서 배제하여 영향력을 없애고, 저주 제웅의 일에 관여하였단 확고한 증거를 손에 쥐게 되면 수양 대군이 개척할 신대륙에 ‘예법 선생’으로 파견할 계획이다.
신대륙에서 인재는 귀한 법이다.
또 이제 철이 나기 시작한 윤씨에 비해 학식 높은 가문 출신인 정 귀인이 유교 예법에 밝고 여러 큰 행사를 보기 좋게 치르는 능력도 탁월하다. 개척 초기일수록 그렇게 권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니.
‘권력욕이 만만치 않은 두 사람이 붙어서 적당히 경쟁하며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고.’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정 귀인이 넌지시 그 아버지 정갑손을 움직여 만들어낸 상소 정국은 윤서가 예상했던 대로 세종께서 전면에 등장하며 더욱더 첨예하게 끓어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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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학당의 기본 교재를 만들어내신 후.
비로소 격무에서 놓여난 틈을 타 세종은 윤서가 꿈에서 얻었다는 여러 분야의 지식이 정말로 올바른 지식인지 검증하는 작업에 홀로 착수하셨다.
그 일환으로 한양에 집단 거주하고 있는 회회인 중 학식이 빼어난 자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정말로 이슬람 세계 너머 기독교 국가가 존재하는지,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에서는 우리 사는 땅이 둥근 원형이라고 믿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확인하였다.
세종 즉위 후 십 년까지만 해도 개성에 거하다 새 왕조를 따라 한양에 정착한 회회인들은 이슬람 특유의 복식을 유지하며 여진족과 왜인들과 함께 신하로서 궁중 신년하례에 참석하고, 종묘 제례에서도 코란 송축 노래를 부르며 엎드려 예를 다하였다. 그 후 이단의 종교가 종묘에서 제를 올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성리학자들에 의해 특유의 복식과 의례를 금지당하게 되었지만.
그 회회인 중 가장 총명한 자가 일족의 대표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상세히 암기하고 있었다.
‘로마란 곳에 정말로 예수교의 황제가 사는 황궁이 있고, 술탄이 이끄는 회회교의 나라와 여러 번 충돌하였다는 윤서의 지식이 사실이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주나라 시대의 가르침이 틀렸고, 윤서가 쓰는 ‘지구(地球)’라는 말이 의미하는 ‘둥근 땅’이란 세계가 맞다는 것은 월식 달에 비친 우리 세계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것으로 증명된다라.’
그러면 정말로 둥근 지구를 믿고 발달된 항해술을 바탕으로 여기, 발달된 문명이 없다는 신대륙에 유럽인들이 가서 무진장 은과 광석을 캐고, 또 우리 조선에까지 장차 와서 정복할 것이라는 미래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식은 어떠한가.
보이지 않는 미생물, 세균의 존재는 두창 예방 침으로 그 일부가 증명되었고.
저 먼 서양에서는 우리처럼 명주실로 만든 악기가 아닌 금속 줄로 만든 악기를 켜서 더 맑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도 사실이겠구나. 다섯 개가 아닌 일곱 개를 기본 음계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우리 홍위가 ‘나리 나리 개나리’란 노래에서 증명되었으니.
윤서가 가르쳐주는 노래를 연주할 수 있도록 희아가 오동나무 조각을 크기 별로 잇고 밑에 통을 대어 소리를 증폭하도록 만든 건반 악기로 통통 ‘나리 나리 개나리’와 ‘산토끼 토끼야’를 쳐 보시면서 미래 지식 검증에 푹 빠져 세월을 까맣게 잊고 있던 세종은,
갑자기 올라오는 상소 무더기에 비로소 조선의 현재로 돌아오게 되었다.
“저 아이들이 사찰에서 술을 먹고 마차를 타고 논 일이 결국 이리 확대된 것이라고? 중전은 이 일이 여학당을 폐쇄하자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질까 봐 미리 저리 나와 무릎 꿇고 반성을 하게 만들고?”
소헌 대비께 그간 있었던 일과 상소 파동의 전모를 확인한 세종께서는 윤서와 이향, 광평 대군을 천추전으로 부르셨다.
“그래, 돌아보니 어떠하오, 주상?”
세종은 이향에게 먼저 순행에 관해 하문하셨다.
“지난 겨울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던지라 가뭄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퇴비를 만들어 뿌린 논과 밭의 작물이 훨씬 실하게 여물고 있으니, 내년부터는 퇴비법이 저 궁벽한 곳까지 확대될 것입니다. 올 겨울에 눈이 많이 와 보에 물이 충분히 모인 곳에서는 먼저 모 싹을 키워 논에 심는 이앙법을 시행할 것입니다.”
“으흠, 왜수차는 잘 사용되고 있던가? 전에 박서생이 왜에 통신사로 다녀오면서 스스로 돌아가는 수차를 보고 온 것을 주상이 듣고 모형을 만들어 각 지방에 보내지 않았던가?”
하문은 이향에게 하시면서 세종은 윤서를 빤히 바라보셨다.
그 시선이 아주 의미심장하여서, 윤서는 처음 세종을 뵙던 시기처럼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온 선녀’로서 윤서는 이제 자신의 지식을 숨기지 않을 결심이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세종과 문종, 그리고 이 두 분 못지않게 벌써부터 대단한 왕재를 보이는 우리 홍위, 이렇게 연속으로 탁월한 성군이 연이어 셋이 이어지는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선녀의 도리도 아니고 인간의 도리 또한 아니다.
“실제 쓰이는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바마마. 제가 설계한 대로 만들어진 수차들이 자갈밭에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일본과 우리가 지형이 다르고 강수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응? 자세히 말해보거라.”
이향은 강수량이 많고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여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르는 일본과 달리 우리 조선은 겨울부터 봄까지 가뭄이 들어 냇물이 바싹 마르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수차를 돌릴 수 있는 물 자체가 없다는 점을 고하였다.
“그럼 윤서야. 아니, 이제는 중전이라고 불러야지.”
세종께서 윤서를 보며 빙긋 웃으셨다.
“!”
윤서는 직감하였다.
‘확신을 하시는구나. 이 시대 기준에서 볼 때 내가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기초 학당 교재에 실릴만한 기본 지식만 세종께 말씀드렸다. 더 깊은 지식을 말씀드려야 하는 경우 이향에게 먼저 수준을 확인받고 고하거나 아예 이향이 다른 곳에서 알게 된 것처럼 직접 고하였다.
‘시대의 지식을 지극히 초월해 있는 며느리를 세종께선 어찌 생각하실지.’
그러나 윤서는 근심하지 않는다.
국왕인 이향이 지극히 사랑하는 중전이고, 이미 왕손을 둘이나 낳은 며느리니.
그래서 윤서는 세종께서 하문하시기 전에 가지고 있는 지식 모두를 먼저 고하기 시작하였다.
“전하, 계절에 따라 강수량이 달라져 수차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 큰 보를 세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물을 많이 담아 둘 경우 수압에 의해 보가 약해져서 무너지게 되면 아랫동네에 큰 홍수가 나듯 참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보를 세우기 전, 첫째, 보의 벽을 단단히 보강할 방법을 찾고,”
뚫어져라 윤서를 응시하고 계신 세종께서 씨익, 입꼬리를 올리기 시작하셨다.
“둘째, 보의 벽이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수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보의 벽에 수문을 내어야 합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수문을 열어 방류하다가 갈수기엔 수문을 닫아두면 됩니다. 그리되면 보 옆으로 설치한 수차에 늘 일정한 수량이 공급되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인근의 논밭으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보급할 수 있습니다.”
“!”
광평 대군은 점점 더 하얗게 질리는 표정으로 귀신을 보듯 윤서를 보고.
이향은 며칠 전 “조선의 국왕을 사랑하게 된 선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열심히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전하!” 하고 다정하게 외쳤던 윤서의 말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보의 벽을 단단히 구축할 방법을 말하거라.”
네가 이 방면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감추지 말고 모두를 다 털어놓으라 명하시며 세종은 부처님의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온 얼굴로 환희하고 있었다.
윤서는 현대의 상식을 고하였다.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양생하는데, 그 콘크리트라는 것은 시멘트를 물에 개어 만듭니다. 정확하게 시멘트를 어떻게 만드는지까지 알지 못하나, 영월에······.”
‘영월’을 발음하는 순간 윤서는 밀려오는 기억에 목이 콱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영월에 고모할머님 댁이 있어 부모님과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고모할머님과 고모할아버님 모두 인근 시멘트 공장에서 날아든 분진으로 호흡기 질환과 심장 쪽에 만성 질환을 앓고 계셨다는 기억과 함께.
‘고씨 동굴을 둘러보고 메밀국수를 먹은 후 배를 타고 청령포에 갔었다.’
19대 조상님이신 현덕 왕후의 아드님, 단종이 돌아가신 곳을.
아빠는 그때 단종이 시해되신 방 앞에 미리 준비한 향을 피우고, 사과 세 알, 배 세 알을 종이 위에 올려 놓고, 맑은 정종을 종이컵에 따라 놓으시고, 윤서와 엄마와 함께 두 번 절을 올리신 후.
단정하게 꿇어앉으시고 단종이 여기 청령포에 귀양 오는 길에 지었다는 한시를 읊으셨었다.
[일자원금출제궁 (一自寃禽出帝宮)
한 마리 슬픈 새 궁전을 나와
고신척영벽산중 (孤身隻影碧山中)
외로운 그림자 푸른 산을 헤매네
가면야야면무가 (假眠夜夜眠無假)
밤이 오고 가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한연년한불궁 (窮恨年年恨不窮)
일 년이 오고 가나 원한은 그치지 않네.
성단효잠잔월백 (聲斷曉岑殘月白)
새 지저귐 끊긴 새벽 남은 달빛은 흰데
혈류춘곡낙화홍 (血流春谷落花紅)
봄 계곡에 핀 꽃은 피같이 붉더라
천롱상미문애소 (天聾尙未聞哀訴)
하늘은 귀가 멀었는가, 슬픈 기도는 듣지 못하고
하내수인이독청 (何乃愁人耳獨聽)
어찌 수심 깊은 내 귀에만 들려오는가]
(나무 위키 시 인용)
그때 아빠께선 이 시를 비장하게 읊으시고 한참을 묵연히 계시다가 탄식처럼 말씀하셨다.
“참으로 빼어난 칠언율시다. 1, 2, 4, 6, 8구의 끝이 궁, 중, 궁, 홍, 청으로 딱딱 절구가 맞고, 시상의 전개는 또 얼마나 색채로도, 내용으로도 절묘하냐. 고작 열여섯 살의 나이에 죽음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이리 격조 높은 시를 지으신 것만으로도, 아아 얼마나 아까우신 분이신지!”
기이한 지식을 말하다 말고 뚝 그친 채 갑자기 울먹이는 윤서를 세종과 이향, 광평 대군 모두 당황해서 쳐다보았다.
이향은 옆에서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손을 내어 윤서의 손을 꽉 쥐어 위로하고,
당당하게 말하던 며느리가 무슨 연유로 저리 목이 메었는가 아는 지식을 모두 짚어보던 세종께선 문득 말씀하셨다.
“<육아보감>에 출산 후 여자들은 산후 우울증에 걸리기 쉬우니 주변에서 많이 배려해야 한다고 했지. 향아, 넌 도대체 네 안사람을 어찌 대했길래, 응, 윤서가 저리 울먹거리게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