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0화. 홍위의 학당 입학 (3)
“간밤 꿈에 외조부께서 오셨다. 나의 친가가 그리된 후 어머니가 천인(賤人)이 되시고 칠 년간이나 뵙지를 못하다가 전하의 배려로 겨우 외조부 댁에서 뵈었잖니. 그때 그 모습으로 조부께서 오셔서는, 나 어릴 적에 그리하셨던 것처럼 내 손을 꼭 잡고 녹음이 우거진 정자에 오르셔서,”
소헌 대비의 눈빛이 점점 무거워졌다.
친정이 멸문되고 어머니 안씨가 노비 신분으로 되시면서 만나 뵙지조차 못하시던 시절의 고통이 새삼 떠오르신 듯했다.
그러나 대비께서는 이내 깊은 심호흡으로 숨을 뱉으시고, 다시 말씀하셨다.
“조부님께[서 거문고를 켜시는데 사방에서 온통 오색 찬란한 날개를 가진 딱정벌레가 날아드는 것이다. 너무도 화려하고, 너무도 어여쁜 딱정벌레 무리가 정자를 둘러싸고 조부님 운율에 맞춰 춤을 추듯 날아다녔어.”
어여쁜 딱정벌레 떼가 춤을 추듯 날아다녔다니!
“오색 찬란한 딱정벌레라니, 그럼 딸일까요?”
희아 같은 딸 낳아서 꼬물꼬물 예쁘고 씩씩하게 크면!
“아니야. 딸이라면 우아한 나비가 나왔어야지! 날아다니는 모양이 저번에 그, 모의 수전 때 수군 갑사들 행진처럼 아주 절도가 있게 아름답더라.”
윤서가 희망에 차 여쭈었으나,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예. 정말로 안평 자가처럼 미적 안목이 대단한 아이가 태어나려나 봅니다.”
“그래. 용이가 풍류를 좀 과하게 즐기는 것만 빼고는 모두 다 훌륭하다. 신숙주니 성삼문이니 전하께서 아끼는 젊은이들이 다 용이를 좋아하잖니.”
그 풍류를 과하게 즐기는 것이 문제란 말이옵니다!
윤서는 부르짖고 싶었지만, 태몽이 무엇이든 아버지 이향을 더 닮겠지 아무렴 별로 본 적도 없는 안평 대군을 닮겠나 싶어 “예, 안평 자가께서 워낙 식견이 높으시지요.” 맞장구를 쳤다.
언젠가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했던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이 그 그림을 그리기 전인가, 후인가.
윤서가 궁금해하는 사이 새 학당에 입학할 아이들이 학당에서 가르치게 될 안평 대군, 광평 대군, 성삼문, 이순지, 박연, 전순의 등에게 악공의 연주에 맞춰 절을 올리며 스승의 예를 갖췄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아이들 가운데 맨 앞에서 절을 올리는 홍위를 눈 한가득 담은 순간,
“!!!”
윤서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두 눈을 꾹 감았다.
‘정말로 조선이 변하는구나.’
새 화폐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유통을 시작한 것도,
백성을 가장 힘들게 하는 현물 세금인 공납이 경기 지역에서부터 폐지되며 쌀로 대신 바치게 된 것도,
인간 본성을 탐욕스럽게 만든다며 터부시하던 상공업이 암암리에 장려되기 시작한 것도 모두 다 큰 변화지만.
교육처럼 사회 전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없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글고, 중국 너머로 다른 종교와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또 다른 여러 강대국이 점차 그 세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는 지식을 알게 된 이들은 더 이상 우리 조선을 ‘동방의 소중화’란 자부심에 묶어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이 조선을 바꿔나가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때,
우리 홍위가 사는 통치할 세상은 날로 발전하는 과학에 기반하여 더 많이 풍요롭고, 더 많이 평등하고, 더 많이 자유로운 조선이 될 것이니.
“어머이, 우여여? (어머니, 울어요?)”
윤서의 벅찬 감동의 물결은 세종의 무릎에서 내려와 뒤뚱뒤뚱 윤서 앞으로 걸어와 젖은 눈꺼풀을 쿡 찍어 들어 올리는 금똥이의 손가락에 의해 끊어지고 말았다.
“어머이, 애 우여여? 우디 마데여. (어머니,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하여간 이향의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를 닮아 다정도 병(病)인양 하다, 정말.
그리고 윤서의 눈물을 보신 세종께서는 그날 오후 천추전으로 따로 윤서를 부르셨다.
*****
“다른 과목은 그렇다 쳐도 세계 역사에서 ‘서역의 역사’ 부분과 기초 위생에서 맨 처음 ‘세균과 기생충’ 부분은 전적으로 윤서 너의 미래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느냐?”
천 상궁이 내준 유자차의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윤서에게 세종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서역의 역사도 중국을 통해 들여온 많은 역사서와 한양에 들어와 있는 회회인에게 물어가며 교차 검증하였고, 세균과 기생충의 개념도 전순의가 여러 의원을 이끌고 혜민국과 약 공장에서 다각도로 실험하며 확인해 나가는 사안이긴 하다. 그러나 맨 처음은 윤서 네가 꿈에서 본다는 그 서적에서 시작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아까, 울었더냐?”
얼핏 들으면 중전 며느리의 눈물을 걱정하시는 상왕 시아버지의 다정하신 염려 같은 하문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짬짬이 심리 이론을 세종께 가르쳐 드리며 여러 번 깊은 대화를 나눈 적 있는 윤서는 상왕 전하의 하문 속에 다른 염려가 짙게 깔려 있음을 눈치챘다.
“···신지식 교재를 만드는 데 기여한 제 공에 대한 생각보다는, 신지식이 가져올 세상에 대한 기대의 눈물이었습니다, 전하.”
“으흠, 그래.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윤서야.”
세종께서는 뒤를 보시며 천 상궁에게 손짓하셨다.
그러자 천 상궁이 무엇인가를 정리한 종이 뭉치를 세종 앞에 가져다 놓았다.
상왕 전하께서는 윤서가 고안하여 맞춤 제작해드린 우각 수정 돋보기 안경을 척 코에 얹으시고는 종이를 천천히 넘기셨다.
그러더니 어느 한 장을 쿡 집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군중심리에 대해 가르쳐 준 것이 있지 않느냐? 보자, 여기.”
세종께선 윤서가 적어드렸던 사회 심리학 이론 중 군중 심리학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시고 그대로 읽으셨다.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개인으로 홀로 있을 때와 다르게 행동하는 독특한 심리를 말한다. 집단으로 모였을 때 인간은 평소 지녀왔던 개인의 신념과 가치 체계를 잊은 채 집단적 사고와 행동에 휘말리기 쉽다.
집단적 상태에서의 군중심리는 개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폭력, 학살 등의 광기에 휩쓸리기 쉬운데 이는 대개 특정 종교나 이념을 옹호하고 수호하고자 하는 헌신에서 기인되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이념에 헌신하는 행위 자체가 특히 젊은이들에게 기이한 고양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멈추신 세종께서는 돋보기 너머로 윤서를 바라보셨다.
그 모습이 ‘모택동과 문화혁명 속 군중심리의 푹력성’에 대해 가르쳐주셨던 대학 시절 은사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였다.
그래서 윤서는 세종께서 무엇을 묻고자 하시는지, 어떤 미래를 예견하고 계시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왜 하필 이 부분을 찾아 읽었는지 짐작하느냐?”
“···예.”
“그래. 그럼, 말해보거라.”
“전하께서는 신지식이 조선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래, 맞다. 네 눈물을 보고 불현듯,”
세종께서는 잠시 생각의 타래를 정리하신 후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네가 꿈에서 보는 세상이, 그 미래의 조선이 단순히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 굶어 죽는 가여운 백성이 없고, 병에 걸리면 무당부터 찾지 않고 의원을 찾아 상응하는 약으로 치료하고, 수양처럼 배를 타고 저 멀리 나가 새로운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맞느냐?”
“···예.”
“그래. 그렇겠지.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그렇게 다르게 세상을 보게 된 백성 중에 어느 누가 큰 소리로 선동하면, 그러면 그 ‘군중심리’에 따라 지금까지와 아주 다른 조선을 만들자는 과격한 움직임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
“예, 하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일 것입니다.”
“그으래?”
“예!”
윤서가 자신 있게 답을 올리자 세종께서는 적잖이 안도하게 되신 얼굴로 찻잔을 들어 호로록 약차를 한 모금 마시셨다.
왜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으셨다.
사회 체제와 왕조가 바뀌는 일은 몇몇 백성이 목숨을 걸고 봉기한다고 이룰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고,
정말로 백성 다수의 분노와 절망이 쌓일 땐 그 열망을 기반으로 새 시대를 열 권력자가 출현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 년이 가장 많이 바쁘겠구나. 여학당에서 직접 가르치며 선생들도 키워내야 하니.”
“여선생의 양성도 안평 대군과 광평 대군이 많이 돕기로 하여서, 많은 일을 덜었습니다.”
다음날 입학식을 치른 경복 여학당은 연로하신 소헌 대비는 뒤로 물러나고, 윤서와 정의 공주가 공동 운영을 맡았다. 소헌 대비께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신 친정어머니인 국대부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여학당의 기본 과목은 유 소용이 계속 가르치는 <정음과 글쓰기>, 정의 공주가 가르치는 <기초 상업 산학> 윤서가 가르치는 <국사>, <중국과 일본, 서역의 역사> 한학에 조예가 깊은 정 귀인이 가르치는 <천자문과 기초 경서>가 있다. 그리고 새로 꾸려진 호위 궁녀 조직에서 파견된 선생이 <궁술과 기마술>을, 혜민국의 여성 의원 순덕이 <기초 위생 의학>을 가르치고 <운율과 악기>는 희아와 정의 공주가 번갈아서 가르치기로 하였다.
왕족이 선생으로 가르치는 일은 올해가 거의 마지막이다.
내년부터는 올해 키워낸 여선생들이 가르침을 담당하게 될 것인데, 여선생은 주로 양민 출신으로 입궁한 궁녀 중에 자질이 빼어난 이를 뽑아 양성하기로 하였다.
이 선발 원칙은 전국 학당에 파견될 남선생도 마찬가지여서, 잡과에 응시하고자 하는 양인 중 자질이 빼어난 이들을 선발하여 선생으로 길러내기로 하였다.
선생 양성 과정을 총괄하는 것이 안평 대군과 광평 대군인지라, 호방한 풍류남아인 안평 대군은 당분간 유흥을 즐길 수 없게 된 것을 굉장히 애석해하고 있다.
이번 학당 설립을 추진하면서 윤서는 세종이 말년에 왜 대군의 세력을 키웠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신왕인 이향은 조정 전반과 국방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바빴다. 대리청정을 맡았던 원 역사에서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집현전의 학사나 조정의 신료는 완고한 유학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세종은 원래 역사에서도 불교의 경전을 정음으로 번역해 펴내는 편찬 사업과, 여러 과학 기물을 실험하고 발명하는 일들을 똑똑하고 말 잘 닫는 아들들을 시키셨던 듯하다.
지금 역사에서 기존에 없는 신지식 교과 과목 교재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데 윤서와 안평 대군과 광평 대군, 평원 대군, 산학 분야에서는 정의 공주와 희아도 갈아 넣은 것처럼 말이다.
“여학당에서 추문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하게 유의하거라.”
세종께서 당부하셨다.
기존의 여학당은 조선의 최상류층 여인들의 친목 모임의 성격이었다.
유 소용이 정음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정의 공주가 기초 산학을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은 취미로 끼적이는 자기표현의 글쓰기와, 가정 경제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셈을 하고 손익을 가늠할 수 있는 기초 산술 지식에 불과했다.
왕족과 종친, 유력 가문의 여식들은 학당에 와서 배우는 것만큼 어여쁘게 꾸며 미를 과시하고, 비슷한 가문의 여식과 친교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종친과 공신의 자제를 대상으로 경복 학당을 시범적으로 열 때 여성 학당은 기존의 교과 과정을 그대로 이어가자는 주장이 많았다.
그 주장에 대해 윤서는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지난번 지방에서 올라왔던 유력 가문의 안주인들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다양한 신농법을 시도하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진 그 여인들은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줄 신지식을 강렬하게 희망하였습니다. 그러한 새 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돌아갔는데, 정작 지방에 세워진 학당에서 여아들을 대상으로는 소일꺼리에 불과한 지식을 가르치게 되면 여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번 흐르기 시작한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순 없다.
그리하여 결국 윤서의 강력한 주장과 세종의 과감한 지지로 여학당에서도 남학당과 동일한 교재로 가르치기로 결론이 난 것이었다.
“윤서야, 정말로 추문이 있으면 여학당은 도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니 아예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세종께서 다시 당부하셨다.
“예,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학당을 열고 초여름까지 순조롭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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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가 둘째의 출산을 코앞에 둔 유월 말.
엉뚱한 곳에서부터 문제가 터져 나왔다.
[화장품 상점에서 산 비누란 요물을 쓴 여인 둘의 얼굴이 타들어 가는 변고가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날로 쏟아져 나오는 온갖 상품 중 그 성분을 믿을 만한 것이 있사옵니까.
나라에서 상업을 장려하니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쓰지 말아야 할 것들을 써서 물건을 만들어 이득만 챙기려 드니, 도덕과 인륜이 사라지고 오로지 탐심만이 횡횡하는 조선이 되었습니다.]
상소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