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98화 (198/255)

제 198화. 홍위의 학당 입학 (1)

“여기가 아라비아, 천축국 등의 서역 세력과 명나라와 일본, 조선 등 동쪽 세력이 만나는 요충지이기 때문이오. 지도상으로 봐도 확인되지 않소?”

수양 대군은 왜 여송이어야 하는지에 묻는 한명회에게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바마마께서 자신을 영영 해외 개척에 종사하게 하실 것이란 사실을 그대로 밝히면 한명회가 떠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이 앞으로 공도(空島) 정책을 폐기하고 당나라에 신라방을 두었던 신라처럼 해외 경영을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어서 그러하오.”

“···예. 해외 경영······.”

해외에 과연 기회가 있을까.

한명회는 의심 반 기대 반이었지만, 다른 길이 없기에 일단 마음을 다잡았다.

*****

수양 대군과 한명회, 거대 상단 관련 인사, 유력 가문의 자제, 무역품 등을 실은 거대한 배 한 척, 그리고 유응부가 이끄는 화포 탑재 호위선이 한 척, 일용 식량과 무역품, 대마도주나 유구국, 또 중간에 수교를 맺게될 부족장에게 보내는 국왕의 교서와 선물, 시중을 들 노복 등을 실은 배 등 커다란 배 세 척이 인천을 벗어나 대마도로 향했다.

이 때의 배는 바닥이 평평한 첨저선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사각 돛 대신 삼십 도가량 회전할 수 있는 거대한 삼각돛을 세 개 세워 범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돛을 제외하고 배의 구조가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노를 젓는 격군의 수는 그대로였다.

수양 대군과 유응부 일행은 다음 해 남서 계절풍이 부는 여름이 되어서야 돌아올 예정이다.

윤서는 예서 상단의 중견 간부 둘을 한명회 곁에 붙였다. 이들은 살수가 아니고 정말로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들로 한명회가 평소 어떤 이들과 어울리고 무슨 일을 하는가를 조사해 보고하는 수준이었다.

윤서가 살수 대신 상인을 붙인 것은, 박 상궁 조직에서 오로지 살인 기계로 길러진 이들이 장기 첩보 업무에 부적절하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명회가 수양 대군과 교류한 장소는 양녕 대군의 한강진 별장으로 밝혀졌다.

한명회가 한양에 돌아온 후 수양 대군과 교류한 장소가 양녕 대군의 한강진 별장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노산대가 감시 업무를 맡은 난금이 왜 실패했는지를 보고하였다.

“오늘 아침 난금이 자복하길, 한명회가 몇 번 친절을 베풀어 마음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쪽 조직을 누설하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살수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지극히 단순해진 정신이 한 번 정을 주면 걷잡을 수 없이 맹목적이 되는지라, 목표와 오랜 접점을 가져야 하는 감시 업무는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매금이만 봐도 맞는 분석이었다. 아주 초창기부터 매금이는 윤서에게, 그리고 지금은 홍위와 금똥이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서는 박 상궁 조직은 천 내관이 키우는 궁궐 호위 조직에 넣기로 하고, 세간의 민심과 필요할 경우 주요 인사의 동향을 수집하여 보고하는 일은 순덕이 이끄는 혜민서의 의녀 조직과, 노산대를 통해 상단의 직원을 활용하기로 했다.

****

수양 대군과 유응부가 출항한 후, 이향도 한 달간 북방 순행을 나섰다.

이번 순행에서는 산악 지형에서 화포와 기병, 보병의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압록강 너머 여진족이 쳐들어오는 길목의 나무를 벌목해 침입 여부를 조기에 발견하게 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북방 경영과 후대의 전쟁을 막기 위한 외교도 의주에서 진행하였다.

[부인, 무창에서 강 상류를 향해 화포를 실험발사했을 때, 높은 산새 가득 푸드덕 날아오르던 장대한 새 떼를 부인도 봤으면 하였소.

날짐승과 길짐승 모두 놀라 울부짖으며 날아오르고, 뛰어오르고, 강 너머 깊은 산중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여진인들도 놀라 부락을 버리고 달아날 궁리를 하였다지.

그렇게 상왕께서 개척하신 사군 지역에서 화포 실험을 하고 또 궁병과 방패병, 기병, 보병이 어우러진 진법 훈련과 식량 보급 훈련을 하고 의주로 돌아왔다오.

(중략)

부인이 말한 ‘애신각라’가 어느 부족인지 알 수 없으나, 여기 흩어져 사는 여러 여진인을 조사한 성삼문에 따르면 ‘애신’이란 한자는 이들 말로 ‘금(金)’을 의미하는 ‘아이신’, 각라는 이들 말로 ‘고향’을 의미하는 ‘기오로’란 것을 알아냈소.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성을 쓰는 부족이 없으니 훗날 성을 바꾼 것 같습니다.

(중략)

태조 휘하에 있던 맹가첩목아가 급사한 후, 그의 아들 동청은 건주좌위 수령으로 명에서 임명받고 그의 이복동생 범찰도 좌위도독첨사 자리를 하사받았는데 서로 적통 후계라며 반목 중이오.

여진에서 금나라를 이을 제국이 출현한다면 이 두 부족 중 하나이거나, 오도리 족 추장 이만주의 후손이거나 할 것 같소.

그리하여 나는 이들이 계속 반목하고 갈등하여 힘을 약화시킬 요량으로 각기 따로 의주 성에 초청하여 접견하고, 압록강 북부에서 무역을 허가하는 한편 그들의 자제를 한양에 유학할 수 있게 약속하였소.

여긴 아침이면 이가 딱딱 맞물릴 정도로 춥소. 부인의 따스한 품이 무척 그립습니다.

나는 열흘 후면 돌아갈 것이오.

돌아갈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또 뱃속의 우리 새벽이와 함께 부디 잘 있으시오.]

이향이 파발을 통해 보내온 서신이었다.

****

이렇게 한 해가 가고. 희아가 열한 살, 홍위가 여섯 살, 금똥이가 세 살이 되는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1월 5일.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당이 드디어 전국 요처에서 문을 여는 날이자 홍위가 학당에 입학을 하는 날이 되었다.

협경당은 아침부터 아주 분주하였다.

“자 이쪽 봐봐. 음, 오른쪽이 좀 올라갔네. 잠깐.”

“어마마마, 허리띠 뒤쪽도 약간 접혔어요”

윤서는 홍위 머리에 앞 중앙에 배꽃 무늬가 금박으로 박힌 아청색 건을 씌워주고 희아는 소매 없는 도포인 아청색 쾌자 위에 배꽃 무늬가 수 놓인 암적색 허리띠를 매주고 있다.

“나두, 엉아, 나두우!”

“금똥아, 일곱 살은 되어야 학당에 갈 수 있어. 수복이랑 놀고 있어. 형아가 다녀와서 낚시 놀이 해주께.”

형이 가는 시강원에 이따금 따라가 놀았던 금똥이는 형아가 새 옷을 멋지게 입는 것을 보고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고, 홍위는 데려갈 수 없다고 달래고 있다.

원래 세자 시강원을 꾸려 배동과 따로 공부해야 하는 홍위가 학당에 입학하게 된 것은 세종의 결단이었다.

“신지식의 빠른 보급을 위해서는 왕세자는 물론 대군과 종친 모두 학당에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혼인한 영응 대군, 신빈의 막내아들 담양군, 도원군, 오산군 등 여덟 살에서 열네 살까지 왕족과 종친은 모두 입학하고, 어린 홍위도 임영 대군의 아들 구성군 이준과 함께 학당에 입학하게 되었다.

왕실과 종친, 공신의 자제, 유학 온 여진족 추장의 자제들이 입학하는 학당은 경복 학당이란 현판을 달고 경복궁 북쪽 현대의 청와대 자리에 세워졌다.

경복 학당에서 왕족과 명문가 자제를 대상으로 일 년 동안 가르치며 동시에 전국 학당에서 가르칠 선생을 양성하고, 후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양에서 네 곳, 지방에서는 서울 근교 성저십리에 네 곳, 개경, 남경, 동경 등 세 곳과, 진주 등 열두 개의 목에 세워진 관아 건물에서 학당을 운영할 계획이다.

오늘 경복 학당에 가면 조선 명문가와 북방 힘 꽤 있는 북방 만호 출신 여진 부족의 자제와 그 부모를 거의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여 학당은 기존에 대비마마가 설립하신 왕실 학당에 교재를 보강하여 다시 열었다.

희아는 “전 이미 다 교재 만들면서 배웠고요. 정종과 혼인 준비도 해야 하고요.” 말하며 더 이상 학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희아가 학당에 나가는 것보다 군기시 분원에 따로 마련된 연구실에 나가 여러 기물을 만들며 과학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조선에 더욱 이로울 것이기 때문에 세종도 이향도 기꺼이 허락하였다.

윤서가 조선 왕실의 상징인 배꽃 무늬가 정교하게 수 놓인 저고리 깃을 정리해 주는데, 홍위가 배시시 웃으며 속삭였다.

“어머니.”

“으응?”

“너무 아는 척하면, 형님들이 불편하겠지?”

홍위는 학당 교재에 들어 있는 내용을 대강 들었다. 윤서가 천추전에서 세종과 광평 대군에게 지식을 전수할 때 희아와 함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아는 내용이 많아서 훨씬 나이가 많은 다른 학생들과 차이가 두드러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으이구, 누가 세자 아니랄까 봐 늘 타인을 먼저 배려하지!

윤서는 홍위의 홀쭉해진 (이번에는 정말로 크느라 홀쭉해졌다. 이향의 골격을 닮은 홍위는 겨울 동안 키가 벌써 여덟 살 아이 정도로 커졌다)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가 최종 감수하면서 보았는데, 정말 놀랄 정도로 달라. 거의 처음 배우는 것 같을 걸.”

“맞아, 홍위야. 그때 어머니가 두서없이 말씀하신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면서 굉장히 달라졌어. 새로운 지식을 보는 느낌일 거야.”

희아가 말한 것처럼 윤서는 세종이 어떻게 무에서 한글을 창제하셨는지 이번 교재 편찬 과정을 지켜보면서 실감했다.

학당의 기본 교재는 <정음과 글쓰기> <중국과 일본 서역의 역사> <기초 상업 산학> <인간 도리의 윤리학> <기초 농업 과학> <기초 위생 의학> <천자문과 기초 경서> <운율과 악기> <궁술과 기마술> 등이다.

교재 제목에서 보이듯 윤서가 대강 전달한 각 분야의 지식을 세종께선 분야 별로 정리한 후 광평 대군, 천 상궁, 그리고 추석 때 희첩을 궐에 불러들여 춤을 추게 한 일로 소헌 대비의 노여움을 단단히 산 안평 대군, 평원 대군 등을 밤낮으로 부려 체계적인 교재로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기초 위생 의학은 몸을 청결히 하고 특히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 이유, 음식을 익혀 먹어야 하는 이유 등 생활 속 기초 위생 사항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기생충 개념으로 설명한 후, 중간부터 여러 질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 약재, 환자 보양법 등을 기존의 의학서 내용을 취합해 수록하고, 끝부분에 정서가 신체에 끼치는 영향, 건강한 정서를 유지하기 위한 호흡, 운동, 명상 등의 양생법까지 수록되어 있다.

장담하건데 이 교재 하나만으로도 조선의 영유아 사망률과 질병 사망률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실용 지식이 갑자기 체계를 갖춰 등장하자 지금 조선의 식자층에서는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세균이란 존재만 해도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창 예방 침의 보급이 이미 실증한 바가 있고, 다른 이라면 모르겠지만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낸 상왕께서 보급하는 지식이기에, 학당의 교재가 한 번쯤 공부해야 할 기본 지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학 경서랑 겹치지 않아 과거 시험과 경쟁이 되지 않는 것도 유학자 지식층의 반감이 덜한 이유였다.

윤서는 홍위 옷을 다 입히고, 금똥이도 든든하게 입힌 후 일어섰다.

“자, 그럼 가볼까?”

“어머니는 그렇게 평복을 입고 가세요?”

머리에 가채를 두르고 스란 치마에 화려한 금색 용보를 어깨와 등, 가슴에 단 왕비 복이 아니라 수수하게 단색의 짙은 청자색 단삼 차림에 머리는 빗어 소박하게 쪽을 진 윤서를 보고 희아가 물었다.

“응, 오늘은 중전이 아니라 홍위 어머니로 가는 것이니까. 홍위도 교복을 입었잖니.”

그렇다.

경복 학당의 모든 학생은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동일한 복장을 입도록 규정하였다. 연한 하늘색 저고리와 바지에 위에 아청색 긴 쾌자를 입고 암적색 허리를 맨 후, 머리에는 아청색 건을 쓰고 등교하게 되어 있다.

“눈나도, 가?”

홍위가 고운 연분홍색 단삼에 머리에는 정종이 선물한 백옥과 녹옥, 붉은 산호로 만든 정교한 머리꽂이를 한 희아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평소 희아는 번잡한 모임보단 유모 백씨와 함께 연구소에 있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정종도 학당에 입학하잖아. 세붓과 벼루와 먹을 선물로 준비했어.”

희아가 살풋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나는?”

“넌 할마마마께서 벌써 선물해 주셨잖니.”

“칫, 눈나! 너무 정종만 챙긴다.”

“나뚜, 나뚜! 눈나 나뚜우!”

“알았어. 금똥이는 이따 다녀와서 누나가 글씨 쓰는 거 가르쳐 줄게.”

“응, 가다! 빠이 가다!”

금똥이가 희아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앞장서고, 윤서는 홍위를 다시 꼼꼼히 살핀 후 뒤따라 나섰다.

협경당을 나와 근정전 앞을 가로질러 집현전 뒤로 해서 경회루를 지나 신무문으로 향하는데,

“중전 마마! 세자 저하! 저희도 같이 가요!”

유 소용이 금아 손을 잡고 빠르게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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