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1화. 그 여인들이 한양에 오게 된 까닭 (2)
“여성 여러분이 가문의 부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 자란 고향에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아이를 키우고 재산을 키워낼 수 있는 실질 주체가 바로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기까지 혼인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풍속으로, 아내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남편은 본가와 처가를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 홍위의 스승 성삼문도 외갓집인 충청도 홍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른 아침 너른 들에 자욱하던 안개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하고 말한 적이 있다.
21세기에 예당 평야 같은 풍경 속에서 자랐던 윤서는 성삼문의 말이 불러온 그리움에 “예,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저수지에서 조각배를 탄 어부가 그물을 던지곤 하였지요.” 하고 대답하다가 저도 모르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서 성삼문을 당황하게 하고 홍위도 덩달아 울린 적이 있었다.
“이 거름 밭은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 밭이 아니라 우리를 배불리 먹여주고 우리 미래를 밝혀줄 보물 밭입니다!”
윤서는 두창 예방 침과, 출산 시 위생 개선으로 현저하게 줄고 있는 아동 사망률을 예로 들면서, 앞으로 더욱 늘어날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서도 새로운 농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살곶이 다리 너머 말 목장 옆에 거대하게 만든 거름 밭을 조선 팔도 유력 세도가의 여인들이 참관하는 행사에는 세종과 소헌 대비, 홍위와 광평 대군도 함께 보러온 참이었다.
뒤쪽에 내걸린 차양막 아래에 앉아 윤서 하는 모양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시던 세종께서 옆에 앉아 계신 소헌 대비에게 말씀하셨다.
“윤서가 저리 선전 선동을 잘하는지 미처 몰랐소, 대비.”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하. 여기 올 때도 세상에, 안평이 만들었던 그 흉한 꽃마차를 고쳐 만든 큰 마차에 저 여인들을 나눠 수송해 왔다잖아요. 사방 꽉 막힌 가마에서 멀미 나게 흔들리며 상경하였을 것인데, 사방 탁 트인 마차에서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왔으니, 새삼 세상이 어찌 변하고 있는지 실감들 하였을 것이에요.”
소헌 대비도 대견하다는 듯 윤서를 바라보았다.
‘여인이어서 여인 편을 들고자 하는 줄 알았더니, 그 이상의 계획이 정말로 있었구나.’
세종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세종과 신왕 이향은 왕실 학당 설립, 토지 단위로 세를 매기는 대동법의 시행 등이 사대부 계층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을 예견하고 대응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었다.
조선의 건국 주역인 신진 사대부는 경제적으로는 중소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고,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이 주가 되는 유학을 기반으로 과거 시험을 통해 관료 사회에 진출하는 독점적인 상승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학당에서 정음 교재로 가르치는 신학문을 배운 이들이 하급 잡직에 임용될 것입니다. 또 다양한 분야의 상공업과 갑사 등의 무관직에 의욕적으로 진출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사대부들로선 자신들만 독점하던 지식 사회에 하층의 신지식인이 유입되는 것을 반길 이유가 없습니다.”
학당의 설립이 사대부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면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왕은 그들을 가을 강무에 초청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직접 목격하게 함으로써 설득하자는 안을 세종에게 제시하였다.
그런데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윤서가 생각해보지도 않은 안을 들고나왔다.
“지방에서 넓은 토지를 소유한 이들이 다 여식을 끼고 살며 재산을 동일하게 물려 줍니다. 여인들이 자산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충만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남편은 주로 처가에 머물다 가끔 본가를 다녀오기 때문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농지 경영을 하기 어렵고, 또 향교에서 공부하다 과거에 합격한 후에는 중앙직이나 지방직 벼슬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사내들에게만 학당의 필요와 신농법의 중요성을 시연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전하.”
윤서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럴 방법이 있겠거니 하며 다짜고짜 팥부터 내놓을 팔불출 아들과 달리, 새로운 농법과 학당을 학당의 보급을 위해서 지방의 유력 세도가를 초청할 때 그 안주인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윤서의 주장에 세종은 회의적이었다.
대개의 여인들은 어여삐 가꿔 사내의 사랑을 받고, 자식을 번듯하게 키워내는 것에나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세종이 가진 여성관이었다.
그러니 낙후된 지방에 살던 여인들이 한양에 와 근자 유달리 화려해진 운종가와, 사대문 안 곳곳에 세워진 대중 목욕탕, 제법 많이 굴러다니는 사륜마차 등의 도회 생활을 접하고 나면 한양에 정착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세종의 내심 우려였다.
‘그런데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똥 밭 옆에서 행해지는 윤서의 연설에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익을 탐하는 마음은 여인이나 사내나, 귀하거나 천하거나에 관계없이 인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성입니다, 전하. 법과 제도로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을 때 그 이익 추구의 본성이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낳고 그 결과 우리 조선은 빠르게 부강해질 것입니다, 전하!”
마치 그러한 조선에서 살아본 것처럼 윤서가 심리학 강론 중에서 확신에 차 선언하던 말이 귀에 쟁쟁 울렸다.
여인들이 저리 나오면 삼강오륜을 쉽게 풀어서 쓴 기초 윤리와, 기본 계산과 장부 작성법을 가르치는 기초 산학, 사물 존재 원리와 건강법을 가르치는 기초 과학, 일상을 퐁요롭게 살기 위한 기초 음악과 미술 과목과 함께 기초 경제와 신농법도 가르치는 학당에 소작인과 노비의 자식까지도 보내 배워오라고 할 것이고,
그러면 죽기 전에 왕실 학당이 조선 팔도는 물론 향이가 개척할 저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여진 지역에도 자리 잡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세종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윤서는 신농법이 얼마나 작물의 소출을 늘일 수 있는지, 돼지와 닭은 어떻게 쳐서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실제로 보고 싶으면 왕실 소유의 전국 각지 농장이나 자신의 김포 농장에 언제든 사람을 보내 배워가란 말을 한 참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중전 마마는 정말 의욕이 불끈 솟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제가 저 여인 중 하나라도 돌아가면 거름 밭부터 조성하고, 청지기와 가노를 중전 마마 김포 농장에 견학을 보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세자 저하?”
“예, 광평 삼촌. 저도 김포 농장에 다시 가서 금똥이랑 거기 아이들이랑 같이 미꾸라지랑 붕어 잡으면서 또 놀고 싶어요. 거머리는 무섭지만.”
광평 대군과 홍위도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옆에 가만히 서서 윗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 귀인은 긴 소매 속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내내 견학 행사를 다 진행한 것은 나인데, 왜 칭찬은 중전만 받는가.’
왜 윗전뿐 아니라 시골에서 올라온 저 무지렁뱅이 촌스러운 여인들도 왜 중전에게만 저리 격렬하게 호응하는가.
공장이며 운종가의 상점을 안내할 때마다 부러 시간을 내어 열녀전, 소학, 예기, 여교 등에서 공자 등 성현이 가르치신 여인의 도리를 쉽게 풀어 가르칠 땐 쩍쩍 입을 벌리며 교양은 눈곱만큼도 없이 하품이나 하던 것들이 왜!
물을 데우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땔감인 석탄을 설명할 땐 중전이 하란 대로 통에 토끼를 넣고 밀봉해 토끼가 그 연기를 맡고 죽는 것까지 보여주며 그 위험성과 편리성을 함께 가르친 내게는 그저 “연기 맡고 죽은 토끼 고기를 먹어도 되옵니까?” 같은 허접한 질문이나 한 것들이, 왜!
왜 이 똥 냄새 작렬하는 곳에서 천한 출신 아니랄까 봐 재물 운운하는 중전의 말에는 “중전 마마! 눈이 번쩍 떠지는 깨달음이옵니다!” 외치며 열광한단 말인가!
‘중전이 전하를 독점해서다!’
중전이 전하를 독점하여 내 전각에 오시지 못하게 해서이다!
‘혼자서만 사랑을 받아 왕손을 잉태하니 저리 뻔뻔하게 당당하고, 그리하여 저 촌스러운 것들을 요괴처럼 홀리는 것이다!’
중전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뱀처럼 또아리를 틀게 된 정 귀인의 눈에 활짝 피기도 전에 시들고 있는 같은 처지의 문 소용이 들어왔다.
‘유 소용은 금아 옹주를 키우면서 뭘 그렇게 쓰는지 붓대를 놀리는 데에 미쳐 있고, 선아 옹주를 키우는 양 소용은 한번 전하를 모시려고 하다 실패한 후엔 천한 노비 출신 아니랄까 봐 궁방전에서 거둬들인 것으로 입고 쓰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내가 시키는 일은 하는 시늉이나 겨우 내는데.’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고분고분 일을 돕는 문 소용은 잘난 허 내관의 튼실한 등판에 곁눈도 주지 않을 만큼 고지식하다.
‘가만, 문 소용이 저기 부부인 윤씨와 가까운 인척이었지!’
보아하니 어려 철모르고 혀를 놀리는 윤씨 저것도 중전에 대한 반감이 제법 대단하던데.
‘지금 당장이야 상왕 전하와 대비 마마께서 중전을 어여뻐 한다지만.’
관례까지 무시하며 궐에서 도원군을 낳게 할 정도로 끔찍하게 아꼈던 윤씨도 결국 자진하게 내친 분들이시니. 권력자의 애정이란 본시 변덕스러운 것이라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니 중전에 대한 세간의 비난이 왕실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높아진다면.
‘반가 남성들이 중전의 행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지. 광평 대군이 두 분 전하를 통해 내놓은 희한한 것들이, 실은 중전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해괴한 망상이라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다고.’
‘게다가 중전은 여러 개의 공장과 상단을 박 상궁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심지어 여러 척의 상선(商船)까지 건조 중이라지. 그 어마어마한 부를 시기하며 탐내는 이들도 부지기수!’
가진 권한을 선하게 사용하며 보람을 느끼기보단, 가진 권한을 모두 이용해 중전을 끌어내릴 모략이 정 귀인의 머릿속에서 착착착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문 소용. 이따가 말일세.”
그 첫 번째 계략은 문 소용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여인이 저리 앞에 서서 임금님처럼 멋지게 연설할 수도 있구나!’
중전 때문에 자신이 모욕을 당한다는 원한을 쌓아가는 정 귀인과 달리, 윤씨는 눈을 반짝거리며 윤서를 보고 있었다.
‘나도 중전처럼 우리 자가께 아낌을 받고 있으니.’
우리 자가께서 전하처럼 되시는 날, 나 또한 저리 당당하게 여인들 위에 군림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중전이 하는 모습을 배워 두어야지.’
어린 윤씨는 벌써 아이를 가진 것부터가 중전이 승휘일 때 아이를 턱 가진 것과 똑 닮아 있는 행보라면서, 방금 중전이 여인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은 말을 달콤하게 입안에 굴려보았다.
“다행히 상왕 전하께서 만드신 문자가 있기에 우리 여인도 다방면의 지식을 쉽게 익혀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어머니, 저도 이다음에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연설할 수 있을까요?”
연단에서 내려와 여인들 한 명 한 명씩 모두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며, 지형 및 토질에 적합한 작물 선택법, 퇴비 및 시비법, 이앙법을 비롯한 각종 파종법, 가뭄에 대비한 둠벙 조성 및 관리법, 수차 이용법, 대규모 사육 가능한 가금류 종류 및 각각의 관리법 등 신농법을 항목별로 상세히 한글로 쓴 <신농사직설>을 한 부씩 선물하고 환궁하는 마차 안.
보통 왕과 왕비의 말씀은 교서로 전달하고, 그 내용은 도승지나 시녀 상궁이 대신 낭독하는 것이 관례였다.
오늘 윤서가 여인들 앞에서 직접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행위였기에, 홍위가 묻는 것이다.
“여인들이 모두 손뼉까지 치며 환호해서, 깜짝 놀랐어요. 어머닌 정말 말씀을 잘하셔요.”
“그건요.”
아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윤서는 홍위를 가깝게 끌어당겨 품에 안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