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83화 (183/255)

제 183화. 운종가에서 우리 홍위는 (3)

“음식을 다 싸다가 포청의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우리 홍위가 벌써 홀로 판단하여 비밀리에 실행할 정도로 컸단 말인가. 기쁘면서도 마음 한구석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온데, 너무 마음을 다치시옵니다.”

“···으응?”

자선이가 고한 풍경은 이러하였다.

“오늘은 왜 떡이랑 다식밖에 없어요? 그 전약이라는 쫄깃한 거도 없고.”

“맞네. 생선포도 없네.”

“아이 비려. 소 새끼도 아니고 어치기 고기 한 점이 없냐.”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던 아이들이 시일이 지나자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끝도 없이 먹습니다. 정말 걸귀가 들러붙었는지.”

처음에는 가져다주는 음식이 적어서 그런가 싶어 좌포청의 스물세 명의 아이들에게 서른 명의 어른이 먹을 양을, 그 다음에는 마흔이 먹을 수 있는 양을, 그 다음에는 오십 명 분의 떡과 고기와 나물을 수레로 가져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수라간에서 남은 음식을 얻었는데, 소인이 오죽하면 엄 상선 영감께 몰래 부탁을 드려 따로 만들어서 아예 방자들을 시켜 수레로 실어 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아.”

배가 수박을 넣은 듯 볼록해지고, 너무 먹어 토하고도 다시 먹었다고 한다.

홍위는 그 장면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자선아, 쟤들도 백성이야? 백성이 원래 저러한 것이냐?” 하고 내내 울면서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렇게 마음 상하셨으면서도 중전 마마께 말씀 올리면 음식을 가져다주지 말라 하실까 봐 홀로 우울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반송방으로 옮겨가면 자주 못 보니, 내일 또 음식을 가져다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소인, 정말로 우리 저하 때문에 마음이 아파 미치겠습니다.”

“···자선이 네가 올해 스무 살이지?”

“예, 마마.”

“홍위 나면서부터 모신 거지?”

“···예. 예?!”

윤서가 자신에게 책임을 물려 내칠 것이라 생각했는지 자선이 창백해진 얼굴로 머리를 쾅쾅 찧으며 소리쳤다.

“중전 마마. 소인이 다 잘못하였습니다. 다 소인 불찰입니다! 제발 우리 저하만 모실 수 있게 하옵소서!”

“그만! 머리 찧지 말고. 앞으로도 우리 홍위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잘 보필해야 한다. 다만,”

“예, 예예!”

“홍위가 잘 못 먹는 일이 있을 땐 반드시 고해야 할 것이야. 한참 클 때라 잘 먹어야 한다.”

“예, 중전 마마.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윤서는 자선을 내보내고 협경당의 수라 상궁을 불렀다.

“오늘 저녁은 전하께서도 함께 하시니 평소처럼 차리되, 전복과 해삼을 다져 넣은 쌀죽을 올리고, 또 찹쌀가루 입혀 튀긴 닭강정에, 설탕 듬뿍 뿌린 꽈배기도 함께 올리게.”

해삼 전복죽은 홍위가 몸이 안 좋을 때 해주는 것이고, 닭강정과 꽈배기는 홍위가 평소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

윤서가 자선에게서 홍위의 비밀 선행을 듣게 되었을 때.

이향은 천추전에서 세종을 알현하고 있었다.

“홍위가 포도청의 거지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것을 알고 있느냐?”

“예, 아바마마. 어떻게, 아셨습니까?”

“상왕으로 물러앉아 있다고 부리는 귀가 없을 줄 아느냐?”

말씀은 그리하셨지만 실은 오랜만에 입궐한 황희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상왕으로 물러나신 후에도 세종은 영의정 황희만은 정기적으로 따로 불러 조정의 현황과 세간의 인심을 들으셨다.

“연치 어리신 세자께서 벌써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시니, 걸핏하면 더러운 거지 새끼들이라고 머리를 후려쳐대던 나졸들도 아이들을 제법 친절히 대하고, 머리 큰 아이들에겐 허드레 일감도 챙겨주어 구걸하지 않게 도와준다고 합니다. 게다가 중전마마께서도 ‘보육원’이란 걸 세워 어린 고아들을 거두신다고 하니, 저잣거리에 왕실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옵니다.”

고하는 말과 달리 며칠 노환을 앓아 한층 주름이 깊어진 얼굴엔 근심이 깊어 보였다.

일을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탁월하기에 신왕 즉위 후에도 퇴직하지 못하고 지박령처럼 의정부에 붙들려 있는 신하의 우려를 세종은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고하시게. 경은 무얼 그리 걱정하시는가?”

“상왕 전하. 내일모레 뗏장 아래 누울 늙은이의 노망인지 모르오나, 염치를 알기엔 우리 백성이 너무 가난한 작금의 현실이 신은 염려가 되옵니다.”

어리석고 가난한 백성은 하나를 주면 두 개를 달라 아우성치기 십상이라는 염려였다.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삶만을 살아온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시되 정작 그 백성 개개인이 얼마나 다채롭게 다양한지 잘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황희가 내관의 부축을 받고 끙끙대며 물러간 후 한참 홀로 ‘백성이란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셨던 차에, 저녁 문후 겸 조정 현안을 보고하기 위해 천추전에 온 이향에게 홍위의 일을 물으신 것이었다.

“주상도 홍위처럼 나 몰래 무얼 해본 적이 있더냐?”

“저는 그럴 배짱이 없었습니다, 아바마마.”

자라면서 부왕과 신료의 기대를 저버린 적 없던 이향의 목소리엔 스스로 일을 벌일 줄 아는 어린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뚜렷하였다.

새 시대를 열고 있는 젊은 왕다운 패기였다.

그래서 이제 고된 왕업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조선의 새로운 교육 내용을 이끌며 동시에 윤서가 글로 정리해 올린 <심리학 이론>을 깊게 파고들기 시작한 세종은 스스로 통찰해 낸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슬쩍 꺼내었다.

“쉽게 얻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쉽게 잊히는 법이다. 처음에는 그 선행을 찬양하던 이들도 이내 곧 왕실과 작은 연줄이라도 얻으려고 멀쩡한 자식을 고아라 속이고 윤서의 보육원에 넣으려 할 수 있다.”

“······!”

“그렇게 전국 사방에서 ‘고아’라 주장하는 아이들이 반송방 일대로 몰려들 경우, 주상은 어찌 대처할 생각이오?”

“······.”

“선의가 선의로 열매를 맺기까지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한 법이오, 주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그 끝의 여러 향방을 면밀하게 먼저 따진 후에 비로소 실행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오.”

“예,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다만 보육원에 관한 것은,”

이향은 윤서가 이미 그 부분을 고민했음을 고하였다.

“주요 도호부에 왕실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을 세워 고아가 된 아이들을 거둬 가르치고, 아홉 살이 되면서부터 농업과 재능이 있는 분야의 기술을 배워 열두 살에 제대로 독립할 수 있게 할 것이라 합니다.”

이향은 그 정도의 연줄을 노리고 자식을 보육원에 몰아넣을 부모는 흔치 않을 것이고, 설령 있다 하여도 그러한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교육하는 것이 조선의 장래를 위해 더 나을 것이란 점을 지적하였다.

“중전이 말하길 자식을 고아로 만들어 연줄을 만들려는 서민보다는, 재산의 일부를 헐어 왕실 보육원에 희사하거나 그 비슷한 것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으로 왕비와 왕실과 연줄을 만들고자 할 자산가들이 더 많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왕비가 그를 치하하면서 아름답게 기리면 조선의 상류층은 부의 일부를 가여운 백성을 위해 쓰는 것을 차차 명예로운 의무로 알며 다양한 자선 기관이나 교육 기관을 설립하려 할 것입니다.”

“명예로운 의무!”

“예, 그 명예로운 의무를 아무나 지지 못하게 엄격하게 심사를 하는 것이 더 큰 열망을 키울 것이라고,”

“희소성이다. 희소성의 원칙이야! 어허. 윤서가 경제학과 심리학을 알아, 아주!”

재산 꽤 있는 자들의 허영심을 제대로 자극하겠구나!

세종께선 아주 흐뭇하게 수염을 쓸며

‘황희도 감이 많이 떨어졌네. 은퇴를 시켜야 하나.’

쯧쯧, 혀를 차셨다.

*****

“홍위야, 오늘은 내 무릎에서 먹을까?”

협경당에서 이향까지 모두 함께 저녁을 먹는 경우 윤서는 기미 상궁의 기미가 끝나면 시중드는 이들을 모두 내보냈다.

방 안에는 오롯하게 이향과 윤서, 희아와 홍위, 금똥이만 각자 앞에 상을 받고, 반 시진 가량 그간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다.

늘 엄격한 의례에 묶인 왕족이 아니라 가족으로 보통의 시간을 보내야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윤서의 고집이었다.

이제 어금니가 나기 시작해 잇몸이 근질근질한 금똥이도 등받이 의자에 야무지게 앉아 홀로 앞에 놓인 상 위의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먹거나 답답하면 손으로 집어 먹는데.

“요새 보육원 설립으로 바빠서 우리 홍위 못 챙겼더니 볼살이 너무 해쓱해졌어. 이리 와. 엄마가 먹여 줄게.”

“···예에? 왜, 왜요? 어머니?”

윤서가 홍위에게 무릎에 앉아 먹자고 부르자, 홍위는 지레 찔리는 마음에 평소와 달리 쭈뼛거리고.

희아는 이제 어머니도 아시게 되었으니 홍위가 행여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긴장하고.

금똥이는 숟가락을 들고 벌떡 일어서 먼저 엄마한테 오려 하였다.

“금똥이는 거기 앉아서 먹고. 오늘은 형아만.”

윤서가 엄한 어조로 말하자, 금똥이는 이향을 보며 입술을 울먹거렸다.

“금똥이는 그럼 아버지한테 오렴.”

신이 나서 도도도 달려온 둘째 아들을 무릎 위에 앉히며 이향은 ‘용기를 내거라, 아들아!’란 격려의 의미로 홍위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홍위는 예상과 다른 아이들의 반응에 실망한 마음과 어머니한테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미안함으로 눈썹을 심각하게 찌푸린 채 윤서의 무릎에 와 앉았다.

“엄마도 얼마 전에 우리 홍위와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어.”

윤서는 홍위에게 해삼과 전복, 여러 보양 재료가 듬뿍 들어간 죽을 떠먹이며 대학 때 돌봄 센터에서 봉사했던 일을 적당하게 각색하여 들려주었다.

“엄마도 주로 궐에서만 살아서 부모님 없는 아이들이나 병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랑만 사는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몰랐어. 그래서 설을 지내고 난 뒤에 가서 아이들한테 물었단다. ‘애들아, 떡국 잘 먹었어? 세뱃돈 많이 받았어?’ 하고.”

이것은 실화였다.

윤서는 대학 사학년 때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 아동 돌봄 센터에서 겨울 방학 동안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같이 그리며 심리치료도 하고, 그때 배우기 시작한 아로마테라피의 지식을 이용해 따스한 느낌을 주는 에센셜 오일을 로션에 블렌딩하여 손과 발 마사지도 해주는 봉사였다.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온 윤서는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거나, 아니면 여러 이유로 조부모에게 맡겨져 자라는 아이들이 정확하게 어떻게 사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설을 맞아 고향 홍성에 내려가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라온 후, 아이들에게 떡국 맛있게 먹었냐고, 세뱃돈 많이 받았냐고 물었다.

평소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대답하던 아이들이 그날은 못 들은 척 답을 하지 않고 다른 말만 하였다.

나중에 수녀님께 여쭸더니.

“윤서 학생. 우리 아이들은 명절이 제일 싫은 날이에요. 여기 돌봄 센터도 문을 닫는데, 집엔 아프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셔서 떡국은커녕 굶지나 않으면 다행이거든.”

그 대답은 뒤통수를 몽둥이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 다음부터 윤서는 돌봄 센터에 가는 것이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다른 아이들의 어둠을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의 봉사로 조금이나마 밝혀줄 수 있을까란 무기력감이 두려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개강을 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게 되어 봉사를 이어갈 수 없게 된 날, 윤서는 마지막으로 이 리터짜리 큰 병에 로즈와 오렌지, 베티버 등 심신을 밝게 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주는 향을 내는 에센셜 오일을 블렌딩한 로션을 넣어 센터에 갔었다.

마지막으로 열댓 명의 아이들의 종아리를 차례로 마사지해 주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또 보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로션을 바르고 또 발랐다.

이미 충분히 로션을 발라 마사지를 한 종아리와 발에 거듭거듭 로션을 발라, 로션이 바닥에 떨어지는데도 여전히 처덕처덕 유화 물감을 덧붙이듯 다리와 발에 로션을 발랐다.

결국 한두 달은 충분히 쓰게 하려고 만들어갔던 로션은 그날로 바닥이 났다.

“또 바를 수 있단 보장이 없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향이 좋은 로션을 또 바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믿지 못해요. 그래서 있을 때 다 바르고자 하는 거에요.”

원장 수녀님이 나중에 들려주신 답이었다.

윤서는 그날 많이 울었다.

흐느껴 울며 이런 결핍을 어떻게 매일 견딜 수 있느냐는 물음에, 원장 수녀님이 답을 하셨다.

“봉사를 할 때 마음의 바운더리를 잘 설정해야 해요. 여기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돌아가선 완전하게 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거죠. 그 경계를 잘 설정하지 못하면 다른 환경을 목격하는 부담에 지게 돼요. 그럼 봉사를 못 하게 되죠. 평소에는 여기를 잊고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살 수 있어야 다시 여기에 올 끈기도 나는 거예요.”

그리고 수녀님은 윤서를 힘껏 안아주시며,

“오늘 아이들이 맡은 이 좋은 향기는 아이들 마음 어딘가에 강렬하게 남아 가장 힘이 들 때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심지가 될 거에요. 그것만으로 충분한 거 아닌가요? 한 달을 더 쓰든, 오늘 한 번에 다 쓰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하셨다.

원장 수녀님의 말씀이 윤서가 대학원을 마치고 청소년 쉼터에서 심리 치료 봉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한 지침이 되었다.

“홍위야. 아이들의 굶주림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챙기려 한 너의 마음이 엄마는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그런데 너의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더 달라고, 더 많이 요구하는 건 그 아이들은 여지껏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 또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렇게 배운 지침을 이제 십오 세기 조선에서 너무도 따스한 마음을 가진 장차의 성군, 우리 홍위에게 전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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