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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68화 (168/255)

제 168화. 윤서의 왕비 책비의(冊妃儀)

이향은 윤서의 왕비 책봉례인 책비의를 세종께서 만드신 오례 가례 의식에 따라 성대하게 행하고 싶어 했다.

두 번의 정식 혼인이 이혼으로 끝을 맺고 세 번째 세자빈인 홍위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면서 처복이 없어 자식 복마저 없을 것이란 소문에 시달려온 이향으로서는 윤서의 성대한 책봉례를 통해 자신의 치세가 어린 세자에게까지 강건하게 이어질 것임을 선언하고자 하였다.

왕실 전체로 보아도 조선의 창업, 왕자의 난을 통한 등극, 폐세자하면서 갑작스럽게 등극 등 다사다난했던 선대 왕비 책봉례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순조로운 책비의였다. 이런 이유로 세종과 대비가 되신 소헌 왕후께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였다.

윤서로서도 자신의 책비의가 성대하게 열릴 필요가 있었다.

만인 앞에 중전으로서의 권위를 내보이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재물로 향이의 치세를 뒷받침하거라!” 하신 세종의 명을 실현하는 첫 단계로 신왕의 즉위식과 왕비 책비의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월 내내 신왕의 즉위식과 왕비 책비의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의 유력 가문, 명나라 축하 사신단, 북방 여진족의 유력 부족의 추장 일파, 그리고 일본의 여러 번에서 보내는 축하 사절이 한양으로 줄줄이 상경하였다.

이때를 맞춰 이향은 새해부터 호조와 공조의 협력하에 사섬서(司贍署)를 통해 본격적으로 동화(銅貨)인 조선통보를 재발행하여 고액권 은화와 함께 유통시키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교역 수단인 포화와 쌀과 병행해 통용하기 때문에 아직 쓰임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이전과 달리 한양의 시전과 사전에는 사고팔 물건이 풍부하였다.

윤서는 박 상궁과 내수사 전수 내관과 함께 가을부터 면포 공장, 목 가구 공장, 도자기 공장, 비누 공장, 화장품 공장을 총가동하고, 민간에서 운영하기 시작한 여러 공장에도 미리 일러 한양에 든 조선인은 물론 여진족과 일본인에게 대량의 물품 판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또 호조에서는 외국 사신이 함부로 물품을 가지고 와서 판매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하던 과거와 달리 신왕의 치세 하에서는 태평관과 동평관 일대에서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아예 공식적으로 마련해 주었다.

또한 새해 들어 학당에서 가르칠 교사 양성을 위한 교재도 광평 대군과 함께 집필하느라 낮 동안 금똥이 옆에 끼고 입에서 단내나게 일하고 밤에 금똥이 재우다가 함께 곯아떨어져서 본의 아니게 이향을 독수공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향의 즉위식을 성대하게 치른 이틀 후.

관상감에서 왕을 잘 보필하고 왕실에 무수히 많은 후손을 안겨줄 길일로 잡은 2월 3일.

유난히 따스한 봄바람 속에서 윤서의 왕비 책비의가 정전인 근정전과 내전인 교태전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국왕이 된 이향은 강사포에 원유관을 입은 예복 차림으로 근정전의 어좌에 올라앉고, 뜰에 품계대로 서 있던 문무백관과 종친은 왕을 향해 네 번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왕의 전교를 받은 전교관이 “권씨를 책립하여 왕비로 삼는다!” 선언한 후,

장중하게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너무 늙어 거동이 불편한 영의정 황희 대신 좌의정 하연과 예조판서 김종서 등이 각각 교명함(敎命函), 책함(冊函), 보함(寶函)을 전하께 받아 교태전으로 들어갔다.

윤서는 이때 공주와 옹주, 내외명부 여인과 상궁, 나인들이 모두 품계에 맞춰 도열해 있는 가운데 붉은색 비단 차일이 높게 걸린 장막 안 왕비석에 앉아 있었다.

‘초봄이라 다행이야. 여름에 책봉례가 열렸으면 더워서 기절하였을 것이다.’

위엄 있게 표정을 짓고 앉아 있지만 실은 몹시 덥고 머리도 몹시 무거웠다.

왕비 대례복이 예복 저고리만 세 벌, 금박 용 무늬 대란 치마 두 벌에 두루마기처럼 길게 늘여 입는 용보가 박힌 푸른색 중단, 그리고 그 위에 명나라에서 하사받은 붉은색 대삼을 입고 허리에는 대대와 후술, 패옥과 옥대를 두르고, 어깨에는 꿩과 구름을 수 놓은 심청색 하피를, 머리에는 약 4천 알의 진주, 비취, 봉황 등을 장식한 칠적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등으로 땀이 줄줄 흐르지만, 윤서는 이따금 얼굴의 땀을 닦아주고 분을 칠해주는 조 상궁의 손길에 힘입어 차분하게 앉아 전하의 사자가 오길 기다렸다.

이날 책례의는 격식에 맞춰 정교하게 진행되었다.

근정전을 출발한 왕의 사자들이 윤서를 중전으로 책봉한다는 책봉 교서, 왕비의 인장 등이 든 교명함, 책함, 보함 등을 들고 교태전으로 들어왔을 때,

윤서는 미리 뜰에 준비되어 있는 자리에 나가 근정전에 있는 이향을 향해 네 번 절을 올린 후 (혼자서 앉고 일어나고 할 수 없어 조 상궁과 최 상궁이 옆에서 보조하여 주었다), 꿇어앉았다. 그러자 전언과 상기 상궁이 교명함과 책함, 보함을 받아 윤서 앞에 놓았다.

윤서가 함을 전달 받은 후 다시 왕비 의자에 가서 앉으면, 공주와 옹주, 후궁이 윤서를 향해 네 번 절을 올린후 “왕비 책봉을 경하드리옵니다!” 하고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외명부의 부인들이 또 네 번 절을 올리고 “왕비 책봉을 경하드리옵니다!” 외친 후,

교태전 밖 정문에 종친과 문무 백관이 서서 윤서를 향해 네 번의 절을 올리고 마찬가지로 “왕비 책봉을 경하드리옵니다!” 외치고 다시 근정전 뜰로 물러갔다.

이때 좌의정 하연과 예조 판서 김종서 등 사자로 온 신하들도 윤서에게 함께 절을 올리고 근정전으로 돌아가 이향에게,

“전하, 중전마마 책봉 교서를 잘 바치고 돌아왔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공식 절차가 하나 더 남아 있다.

여러 상궁과 내관의 안내를 받아 근정전에 가 꿇어앉아서 이향이 내리는 전함을 받는 절차였다.

윤서는 사실 이 절차를 가장 고대하고 있었다. 왕비 책봉 교서가 낭독되기 때문이다.

보통 신하가 지어 올리는 것이 관행인데, 이향은 여러 날을 고심하여 직접 작성하였다고, “그러니까 옷 여러 겹 입고 덥다고 투정하지 말고 의연하게 잘 절차를 치르고 들으러 와야 하오!” 하고 전날 밤 이향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땅을 길게 끌리는 의상이기에 홀로 걸을 수 없어 옥으로 된 홀을 쥐고 조 상궁과 박 상궁 마마님의 부축을 받아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

승휘 책봉 교서도 받고 이미 금똥이도 낳았지만 윤서는 이 절차가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향해 걸어가는 길만 같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유난히 푸른 하늘 어디에선가 부모님이 내려다보고 계실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살아 계셨다면 오늘 이 길을 걸었을 19대 조상 홍위 어머님도 하늘 어디선가 축복하며, 또 내 아들 잘 키우라고 당부하며 내려다보실 것만 같았다.

그렇게 푸르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 아래 월대 위를 올라 윤서는 근정전으로 들어갔다.

근정전 안을 환히 밝힌 등롱과 촛불의 불빛 아래 원유관을 쓴 이향이 어좌에 앉아 윤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서는 근정전 중앙에 놓인 전함 앞으로 가 이향을 향해 네 번의 절을 올리고 꿇어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좌 위 이향과 시선을 맞췄다.

멀리서도 이향의 눈이 흐뭇하게 빛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마 윤서의 눈도 기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어좌 아래 서 있는 도승지 성상문이 책봉 교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임금은 이르노라. 내 장차 보위를 이어받을 임무를 지고 성덕 높으신 상왕 전하와 자애로우신 대비마마께 태어났음에도 올바른 인연을 만나지 못해 오래도록 불효하였고 백성의 근심이 되었다.

다행히 하늘께서 돌보사 마침내 내게 영민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내주셨으니, 그 여인은 이미 세자의 목숨을 구하고 왕실의 살림을 윤택하게 하였다.]

윤서는 ‘하늘께서 돌보사 아름다운 여인을 보내주셨으니’ 하는 구절을 읽을 때부터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지금 옆에서 듣고 있거나 훗날 실록에서 이 책봉 교서를 읽을 후손들은 이 구절이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향은 이 비유 속에 윤서의 진실과, 그에 대한 자신의 고마움을 솔직하게 담고 있었다.

온 세상에서 오롯하게 둘이서 공유하는 비밀과, 그 비밀로 인해 더욱 견고하게 다가섰던 사랑을 생각하자 부드러운 감동이 몰려왔다.

성삼문이 책봉 교서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바라볼 때마다 용기가 되고 의지가 되는 여인 권윤서를 성대한 예를 갖춰 나의 사랑하는 아내,]

여기까지 읽다가 성삼문이 갑자기 읽기를 멈추고 “크흠.”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어좌 위의 이향을 바라보고 다시 몸을 돌려 윤서를 보더니, 다시 “크큼” 목을 가다듬고 마저 교서를 읽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내 아이들의 어머니로, 또 이 나라 왕비로 맞이하노니, 이에 종사와 백성에 큰 복이 될 배우자를 맞아 잡범은 모두 용서하고 벼슬에 있는 자는 모두 한 자급을 올린다.]

교서 낭독이 끝나자 성삼문은 교서를 가지런히 접어 두 손으로 들고 걸어와 전함에 넣었다.

그때 이향이 어좌에서 내려와 윤서에게로 걸어왔다.

“전하, 이는 오례에 없는 법도입니다.”

당황한 성삼문이 허리를 굽히며 고했다.

그러자 이향은 빙긋 웃고는 “도승지, 비밀로 해 주시오. 내 아내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하고는 윤서 앞에 와 손을 내밀었다.

윤서로서는 저기 어좌 밑에 앉아 붓대를 열심히 놀리고 있는 사관이 이 장면을 뭐라 적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까 성삼문이 “크흠” 하며 잠시 읽기를 멈춘 것도 사관은 물론 나중에 신하들에게도 보여질 책봉 교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격의 없이 친밀해서였는데, 이렇게 절차에 없는 행동까지 하시면!

그러나 윤서도 서슴없이 이향의 손에 손을 맡기고 일으키는 대로 일어섰다.

옆에 서 있던 상궁과 나인, 내관, 성삼문 등이 모두 멀찌감치 물러섰다.

“나는 이렇게 부인을 왕비로 책봉하는데, 부인이 내게 들려주는 말이 문득 듣고 싶어서. 물론 이따 들을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느끼는 감정이 좀 식어 있을 것 아니오?”

윤서는 이향의 궁금증이 무엇인지 이해가 갔다.

보통의 부인이 아니라 정말로 하늘을 통해 건너온 부인이니. 그리고 평소 애정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 아닌 부인이니.

그런 부인에게 지금 심정을 듣고 싶다 말하는 것은 왕비를 지극히 아끼는 왕의 모습이자, 또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원하는 대로 국정을 이끌 수 있다는 젊은 왕다운 패기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윤서는 조금 가까이 다가서 이향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수려한 외모에 반했는데, 날이 갈수록 더욱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후회되지 않을 만큼?”

영혼이 조선에 오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그런 처사를 한 하늘과 홍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을 만큼 자신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아끼느냐는 질문이었다.

윤서는 진심을 다해 속삭였다.

“예. 이곳에 온 것이, 전하의 아내가 된 것이, 진심으로 기쁩니다.”

“좋소.”

이향은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어 흡족함을 표현한 후 다시 어좌로 돌아갔다.

윤서는 강사포 붉은 자락을 펄럭이며 어좌로 돌아가는 이향의 뒷모습을 아주 많이 행복하면서 한 줄기 슬픔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기쁜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이따금 떠나온 세계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향의 따스한 애정 덕분에 윤서는 15세기 중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

“이것이 거름 밭이란 것이로구나. 저기가 닭을 치는 숲이라고?”

삼 개월 후.

초여름에 접어든 날, 윤서는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를 모시고 김포 너머 내수사 농장에 순행을 나왔다.

“아이, 그런데, 어머니! 저 구더기들 좀 보아요! 아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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