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화. 양위 교서와 즉위 교서와 홍위의 춤
양위 교서는 세종께서 자신의 통치 기간을 돌아보신 후 직접 초안을 작성하셨고, 이향의 즉위식이 열리기 이틀 전 황희와 함께 검수한 후 김종서가 최종 손을 보도록 하였다.
황희는 세종의 치세를 초기부터 함께 이룬 대신이고, 김종서는 최윤덕과 함께 세종의 북방 개척을 책임진 신하이자 빼어난 문신이었기 때문이다.
양위 교서 초안을 읽는 황희의 주름진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저, 전하. 학당의 문호를 정말로 천, 천민까지 개방하실 계획이십니까?”
“그렇네. 내가 상왕으로 물러나 주관할 분야가 교육과 농업 아닌가? 날로 발전할 농업 신기술을 전파하려면 교육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
“왜 그렇게 근심스럽게 한숨만 쉬시는가?”
“···사대부와 유자(儒者) 층의 반발이 심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경이 당분간 더 일해야 한다는 거다.”
“예!?”
세자 저하께서 즉위하시면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선왕의 늙은 신하인 자신은 은퇴할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가 컸던 황희의 눈이 푹 꺼졌다.
“각계각층의 다른 의견을 가장 잘 조율할 수 있는 신료가 경이 아니신가? 젊은 신하들이 너무 의욕이 넘쳐 과하게 빨라지는 속도 조절도 경이 충고해야 하고.”
“······.”
이번에도 은퇴가 무산된 황희는 뒤늦게 불려온 김종서에게 평소의 온화함을 버리고 사납게 분풀이를 했다.
“내가 경을 키웠듯 경이 미리미리 젊은 후배들을 독려하며 길을 닦아주었더라면 나 같은 늙은이가 여적 조정에 늙은 몸을 끌고 나오겠는가 말일세. 경은 그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정을 싹 뜯어고쳐야 신왕 전하의 치세를 제대로 보필할 걸세!”
세종은 평소 독선적이고 치밀한 김종서가 황희 앞에서 절절매며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며, 역시나 황희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홀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곧 즉위하실 세자의 명에 따라 갑사 일백 인을 선발하여 군사학 전반을 가르칠 상급 군 교육기관 설립에 분주한 김종서는 억울하였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양위 교서를 교정하여, 이틀 뒤 근정전 월대 위에서 낭독하게 된 것이다.
양위 교서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일찍이 4군과 6진을 개척하여 북방의 소란을 잠잠하게 하였지만 근자 명나라와 달단의 형세가 심상치 않으니 자칫 북방 외적의 침입으로 백성의 안위가 위태로워질까 근심하노라. 하여 영명하고 진법과 군사에 빼어난 지도력을 가진 세자에게 대보를 주어 군국의 일을 맡기노니, 너희 대소신료들은 모두 충심으로 신왕을 보필하여 부국 강대한 나라를 세우게 하라.
나는 종사의 위를 세자에게 전하면서 태종께 보위를 받으며 다짐했던 시인발정(施仁發政)의 어진 정치를 농업과 교육으로 이끌며 조종의 선왕께서 베푸신 은택을 이어갈 것이다.]
김종서가 우렁우렁 읽어내리는 양위 교서를 들으며, 근정전 뜰에 서 있는 모두는 전하께서 여전히 교육과 농업 분야를 맡아 군무 중심의 신왕 치세를 뒷받침하려 하신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알아들었다.
‘당신께선 교육과 농업을 맡으실 터이니 나는 유황, 구리, 그리고 질 좋은 초석까지 구해와 형님의 부국강병 치세를 뒷받침하라는 말씀이로군.’
수양 대군은 다섯 살 꼬마 주제에 가지런히 홀을 쥐고 꼿꼿하게 서 있는 어린 조카의 화려한 원유관을 내려다보며 양위 교서로 인해 펼쳐질 앞날을 짚어보았다.
‘무가이가 예언하고 한명회가 천기로 확인한 그 시기까지, 조선은 격변에 휩싸여 있겠구나.’
그 격변의 끝에 고작 세자의 장자로 태어났단 이유로 당연히 다음번 즉위식을 치를 것이라 혀 짧은 소리로 앵앵거린 저 꼬맹이가 형님처럼 저리 당당하게 월대 위에 서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터.
부서져라 홀을 움켜쥐는 수양 대군의 귀에 드디어 형님 전하의 즉위 교서가 들리기 시작했다.
[삼가 생각하건데 태조와 태종께서 천명으로 세우고 닦으신 이 나라 조선을 부왕 전하께서 백성을 위한 윤택한 나라로 거듭나게 하셨나니. 이십칠 년 부왕 전하의 치세에 국토는 북방으로 넓어져 먼 곳에서부터 와 앙망하며 복종하고, 의례가 바로 서 풍속이 아름다워지고 무지한 백성이 드디어 문자를 알아 성현의 말씀을 배우게 되는 은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근일 북방의 정세가 위태로운 조심을 보이면서 부왕께서 나라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백성의 안위를 공고히 하는 대업을 감당하라 명하시니, 나는 학문이 얕고 경험이 일천하여 거듭 사양하였느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다. 이에 정통 10년 정미년 2월 3일 전하의 교지를 받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백관의 조하(朝賀) 속에 왕위에 오르노라.]
홍위는 고개를 한껏 젖혀 월대 위 높이 세 계신 부왕을 바라보았다.
늘 인자하게 웃으시는 아바마마께서 지금 풍성한 수염 아래 입매를 엄숙히 굳히시고 아홉 줄 면류관 아래 형형한 눈빛으로 허리 굽힌 신하들을 내려 보신다.
‘어머니는 언젠가 나도 저 위에 올라 신하들을 내려볼 것이라 하셨어. 그때까지 나는 할바마마와 아바마마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해.’
홍위가 엄숙한 표정으로 오늘따라 아바마마의 모습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하는데 뒤에서 “아바! 아바!” 하며 평소처럼 아바마마를 부르는 금똥이 목소리를 들었다.
홍위가 살짝 몸을 돌려보니 금똥이가 저 위 월대 위 아바마마께 가고 싶다고 광평 대군 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홍위는 홀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의 검지를 들어 입술을 가렸다.
“쉿! 금똥아! 네가 그렇!게 시끄여우면, 형아가 어먼니한테 혼나! 쉿! 쉿!”
그러자 형아 말에 따라 금똥이가 입을 꾹 다무는데,
홍위 바로 뒤 상석에 서 있던 늙은이가 “누가 저런 핏덩이를 여기 들이라 하였나.” 심술궂게 중얼거리며 매섭게 금똥이를 노려보았다.
왕실의 큰 어른 중 하나인 양녕 대군이었다.
저 싸늘한 눈길.
어릴 적부터 애정이라곤 한 톨도 들어 있지 않은 눈길로 자신을 쏘아보던 큰할아버지가 이번엔 어린 동생을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보자, 홍위는 가슴이 철렁해 금똥이를 다시 보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며 인간의 적의를 경험하지 못한 금똥이는 세종과 많이 닮은 양녕 대군을 “하바! 하바!” 불렀다.
“세자 저하, 앞을 보소서.”
광평 대군이 금똥이를 얼르며 홍위에게 걱정하지 말고 앞을 보라 말하였다.
홍위는 어린 동생이 여전히 밝게 웃는 것에 안도하며 앞을 향했다.
그 사이 왕의 즉위에 으례이 행해지는 사면령의 내용을 읊은 김종서는 오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즉위 교서의 핵심, 신왕이 앞으로 어떻게 정책을 펼칠 것인지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아아, 나는 종사를 이어받아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성현의 말씀과 선왕의 가르침을 한결같이 따르며 또한 새 시대가 보여주는 새로운 지식을 땀 흘려 익혀, 날로 새롭게 백성이 윤택해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종여일 힘쓸 것이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 가르침을 힘써 복습하고 새로운 것을 애써 익히면 스승이 될 수 있느니.
신왕은 고래의 가르침과 신지식을 조화롭게 아울러 백성을 새로운 조선으로 이끌겠다는 다짐을 즉위 교서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홀을 든 신하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며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법과 무기에 밝은 신왕이 벌써 무재(武才)가 빼어난 청년들을 선발하며 군사학 이론과 실제를 가르치는 무관 전문 교육기관을 창설 중에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신왕은 부국강병의 새 나라를 향해 앞서 나아가고 상왕은 교육과 농업으로 그 뒤를 뒷받침하며, 두 왕이 함께 만백성의 스승이 되어 조선을 이끌겠다는 의지!’
둘의 협력이 과연 두 교서에 나온 대로 조화롭게 무르익을지 아니면 부자 사이에도 나누기 어려운 권력의 속성상 미묘한 갈등으로 파국으로 끝이날지.
어떤 이는 조화로운 번영을 기원하고, 또 어떤 이는 갈등의 파국을 기원하는 가운데,
문무백관과 종친, 멀리서 온 여진족 추장과 일본 여러 번의 사신들까지.
모두를 홀을 들었다 몸을 굽히고 무릎을 꿇어 절을 올리며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입을 모아 외쳤다.
십오 년 세자의 삶에서 드디어 서른두 살 젊은 왕이 된 이향 치세의 시작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날 즉위식 장면을 상세히 기록한 후, 뒤에 열린 연회의 풍경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다.
[상왕 세종께서 매우 즐거워하며 우리 전하를 위해 주연을 베푸셨다. 평소 술을 즐겨 드시지 않는 세종께서 이날 연거푸 술을 드시고, 옆에 앉은 양녕 대군에게 권하며,
아바마마께서 내게 양위하시고 ‘이제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내려서 평안히 즐기겠노라’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신 그 심정을 내가 오늘 알겠습니다.
말씀하셨다.
이미 불콰한 술기운이 오른 앙녕 대군은
아바마마께서 호랑이 등에 내리셨다고 하셨네만, 과연 그러하셨던가요. 군권은 여전히 꽉 쥐고 여러 권한을 마음껏 휘둘러 동생 전하의 마음을 아프게 하셨는데, 어째서 동생 전하도 우리 신왕 전하께 교육 분야는 내주지 않는 것이오.
하고 무례한 발언을 하였다.
그리하여 좌중의 분위기가 잠시 어색하여졌는데, 우리 전하께서 세종께 술잔을 올리며
아바마마께옵서는 고금에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다양한 대업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일의 이치를 빼어나게 아는 신하들을 길러내셨습니다. 그러한 탁월한 솜씨로 앞으로 각계각층의 인재를 길러 미욱한 소자에게 주실 뜻을 보이셨으니, 소자 이 은혜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고하시자 세종께서 그 효성 가득한 말씀에 눈물을 흘리셨다.
또 우리 전하는 평소 여색과 음악을 즐겨 하시지 않으셨음에도, 상황 세종께서 일찍이 태종을 위해 춤을 추었던 일을 기억하고
소자 아바마마의 은덕에 감읍하며 춤으로 보답하고 합니다.
말씀하시고, 악공에게 상왕 세종께서 직접 만드신 여민락(與民樂)을 연주하라 명하시고 음률에 맞춰 춤을 추셨으니 그 움직임이 우아하고 아름다워 모두 감탄하였다.
태종께서 승하하신 후 한 번도 춤을 추지 않으시던 상왕 세종께서도 우리 전하의 춤에 크게 기뻐하시며 함께 일어나 춤을 추셨고, 이에 대군과 신하 모두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며 상왕 세종의 업적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바쳤다.
이날 춤의 백미는 장차 세자의 직위에 오르시게 된 어린 저하의 춤이었으니.
상왕 세종의 무릎 위에 앉아 연회에 참석하였던 다섯 살의 세자 저하는 또랑한 목소리로
할바마마께서 이룩하신 빛나는 치세에, 아바마마께서 장차 이룩하실 영광의 나날을 소손도 노래와 춤으로 기원하고자 하옵니다.
고하고, 우리 전하의 즉위식 음악 연주를 총괄 감독하는 인순부윤 박연에게 다가가 무어라 속삭이셨다.
그러자 박연이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그 곡조가 자못 경쾌하고 흥겨워 모두 박수를 치며 몸을 들썩였다.
어린 저하는 임영 대군의 아들 이준과 함께 연회가 열린 근정전 한가운데 서서 흥겨운 음악에 맞춰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비틀며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하고 노래하셨는데, 그 몸짓이 너무 귀여우시고 앙증맞으신지라 상왕 세종은 물론 영의정 황희부터 저 여진족 추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사관은 논한다.]
세종 통치기 후반부터 후대의 교훈과 참고를 위해 실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날 사관은 놀라움과 감탄을 담아 이향의 즉위식 연회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