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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64화 (164/255)

제 164화. 세종의 양위와 이향의 즉위 (1)

이향이 협경당에서 잠을 잔 경우 윤서는 여러 종류의 옷 위에 곤룡포를 입는 의대 시중을 홀로 들었다.

보통 홍 내관이 다른 지밀나인과 함께 들던 옷시중을 윤서 홀로 드는 것은 혹여 종기의 기미가 있는지 살필 필요가 절반,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손과 숨결이 이향의 몸에 닿는 것이 싫은 마음이 절반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이향이 왕으로 즉위하게 된 2월 3일 오전은 홀로 의대 시중을 들 수 없었다. 어깨에는 용이, 소매 끝에는 불꽃 무늬가 있는 구장복을 걸치기 전에도, 그리고 구장복을 걸친 후에도 또 걸쳐야 할 많은 예복이 엄격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서는 피부에 좋은 약재와 꽃잎을 넣어 우려낸 물로 이향의 수려한 얼굴과 등과 가슴, 그리고 간밤에 금똥이 동생을 만들기 위해 힘쓴 흔적을 닦아주는 것까지만 홀로 하고, 홍 내관과 함께 세종의 의대 시중을 오랫동안 들어온 대전 상궁과 함께 의대 시중을 들게 되었다.

세종께서는 대전 상궁을 보내심으로 이향의 치세에 대한 확고부동한 기대와 지지를 널리 표명하셨다.

예복을 입기 전 물을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보니 이향은 손끝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25년 가까이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고 최근 2년은 대리청정으로 국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면서도 정식으로 아홉 줄 면류관을 쓰고 용상에 오르게 된 즉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듯했다.

윤서는 윤서대로 여러 소회가 복잡하게 올라와 눈길이 자꾸 눈을 감고 있는 이향의 얼굴로 향했다.

역사 기록에서 이향은 세종께서 승하하신 영응 대군의 사저에서 상복을 입은 채로 즉위식을 올리다가 소맷부리가 흠뻑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지. 소헌 왕후 돌아가시고 삼 년 상을 치르며 정무를 돌보느라 이미 쇠약해진 몸이었다는데, 결국 세종의 3년 상은 치르지도 못하고 죽게 되면서 우리 홍위는······.

그에 비해 눈을 꾹 감은 채 윤서의 손길을 받고 있는 오늘의 이향은 얼마나 건장한가. 너그럽고 관대하던 성품에 역사를 알게 되면서 갖추게 된 단호함까지, 그는 얼마나 준비된 임금인가.

여전히 이따금 새벽에 눈을 뜨면 옆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긴 머리의 수염 풍성한 사내의 윤곽과 또 옆에서 고롱고롱 아기 특유의 향취를 풍기는 금똥이를 확인하고서야 이곳이 21세기 한국이 아니라 15세기 조선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윤서는 이향에게 여러 말을 하고 싶었지만, 홀로 여러 소회와 각오를 곱씹고 있는 장차의 임금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곁에서 그의 아이를 낳으며 이향처럼 준비된 임금으로 보위에 오를 때까지 홍위를 지켜야 할 임무를 띠고 조선에 소환된 자신을 위해서,

마찬가지로 자꾸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며 고운 면 수건으로 이향의 몸을 정성을 다해 닦아주었다.

“새 중전마마께서 키가 크셔서 다행입니다.”

이향이 속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붉은색 버선을 신고 바지의 대님을 맨 후 늘 하던 대로 윤서가 구장복 안에 입는 중단을 입혀 주는 것을 지켜보던 대전 상궁이 말했다.

“평소 마마께서 신왕 전하의 의대 시중을 드신다 들었지요. 구장복 안에 입으시는 불문 무늬 중단은 곤룡포 안에 입으시는 중단보다 소매가 길기 때문에 구장복을 걸치신 후 또 한 번 손을 보셔야 합니다. 구자복 소매 밑으로 청색 선이 보일 듯 말 듯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말이지요.”

윤서가 이향의 옷을 직접 시중드는 것이 유별나게 금슬이 좋은 신왕 내외의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하는지 대전 상궁이 웃으면서 꼼꼼하게 예복 입는 것을 설명하였다.

중단 위에는 마름, 쌀, 도끼, 불문이 그려진 세 폭 치만인 상을 입고, 그 위에 거트로 드러나는 예복인 구장복을 비로소 입었다. 홍 내관이 구장복 밑으로 중단과 상의 아랫단이 켜켜이 잘 드러나게 엎드려 손을 보았다.

이제부터는 대전 상궁이 맡아 옷시중을 들었다.

구장복 위에 허리띠인 대대를 두르고 앞에는 상과 같은 무늬가 있는 폐슬을 걸어 늘어뜨리고 뒤에는 붉은색 비단에 세 가지 옥 매듭 실을 늘인 후수를 걸고, 옆에는 흰색, 빨간색, 하얀색, 초록색의 받침에 옥구슬을 꿴 네 줄의 패옥을 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줄의 금색 선으로 장식한 옥대를 허리를 둘렀다.

이제 머리에 구슬을 꿴 아홉 줄의 류를 내린 면류관만 쓰면 이향의 즉위 예복은 완성을 보게 된다.

키가 큰 홍 내관이 대전 상궁에게서 면류관을 받아들자, 이제까지 양팔을 벌린 채 묵묵히 의대 시중을 받던 이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면류관은 중전이 내게 씌울 것이다. 너희는 모두 물러가 밖에서 기다려라.”

홍 내관이 윤서에게 면류관을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고, 대전 상궁과 함께 침전을 나갔다.

“좀 구부리셔야 하나, 아님 다리를 옆으로 이렇게 벌리면 높이가,”

“윤서야.”

“!”

홍 내관이 넘긴 면류관을 들고 어떻게 하면 단정하게 면류관을 씌울 수 있을까 고심 중인 윤서를, 이향이 ‘윤서야’ 하고 불렀다.

금똥이 낳은 후 줄곧 ‘부인’이라고 불러온 이향이 보모 나인 시절 부르던 음색으로 ‘윤서야’ 하고 부르자 왠지 가슴이 철렁하여 윤서는 이향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거 내려놓고 잠시만, 잠시만 이리 와 안기거라.”

윤서는 ‘옥대 때문에 걸리적 거릴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향의 어조가 심상치 않아 가죽 함 위에 면류관을 얹어두고 이향의 품에 안겼다.

이향이 윤서의 쪽 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나직 물었다.

“많이, 떨리느냐?”

아까 몸을 닦아 줄 때에도, 속저고리와 중단의 옷고름을 매어 줄 때에도 후둘후둘 떨던 손길을 다 느꼈나 보다.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요.”

머리를 쓰다듬는 손끝을 자신도 떨고 있으면서 윤서의 떨림만 근심하는 이향의 마음을 모른 척하며 윤서는 대답했다.

왕은 왕만이 가진 고독이 있을 터이고, 아무리 미래에서 온 아내라고 해도 그 무게를 나눠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향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리라.

“역사에서 나는 즉위한 지 2년 만에 죽었다고 하였느냐?”

“저하!”

이 좋은 날 왜 그리 불길한 일을 입에 담는 것입니까!

의식적으로 원래 역사의 불행한 일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윤서가 놀라 고개를 들자 이향이 윤서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윤서야. 네가 오지 않았다면 그리 속수무책 사직의 죄인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서. 오늘 아바마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건강하게 보위에 오르면서 쓰게 될 저 면류관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으나 그 또한 기꺼운 일이라서. 그래서 즉위식을 보지 못하는 네게 왕으로서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윤서는 문득 어제 홍위의 손을 잡고 가서 보았던 금군과 내병조의 즉위식 도열 연습 장면을 떠올렸다.

세자로 책봉된 지 두 잘 만에 또 태종께서 갑작스럽게 양위를 하신지라 제대로 된 예식 없이 왕위에 오르신 세종께선 이번 이향의 즉위식은 예법을 세워 성대하게 치르라 명하셨다.

그리하여 선대 왕의 승하 후 선왕의 빈전에서 애통해하는 속에 화급히 치러지는 후대의 즉위식과 달리, 이향의 즉위식은 금군과 내병조가 모두 의장을 갖춰 도열한 가운데 문무백관과 종친은 금관 조복 차림으로 손에는 홀을 들고 각자 정해진 자리에 서고,

악공이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이향이 어도를 걸어 월대 위를 올라 근정전 안으로 들어서면, 어좌에 앉아 계시던 세종이 동승지를 시켜 어보를 전한다. 어보를 받은 이향이 도승지에게 어보를 넘기고 근정전을 나와 서면,

도열해 있던 종친과 문무백관, 여진과 왜에서 보낸 사신은 모두 “천세, 천세, 천천세”를 외친 후, 도승지가 세종의 양위 교서와 이향의 즉위 교서를 낭독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장엄하게 감동적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왕의 즉위식은 남성의 영역인지라 윤서도, 중전마마도 가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윤서는 어제 홍위의 손을 잡고 의장기를 든 수백 명의 금군과 내병조 병사들이 근정전 가장자리에 도열해 있는 장면을 바라보며, 비어 있는 자리에 종친과 백관이 품계에 맞춰 서 있고 그 사이 어도를 걸어가는 이향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뿐이었다.

윤서는 이향의 눈을 마주 보며 속삭였다.

“잘 하실 거에요, 전하는. 역사와 달리 건강하게 보위에 올라 선왕 세종보다 훨씬 더 위대한 성군이 되어 더욱 강대한 조선을 우리 홍위에게 물려주실 거예요.”

누구에게나 격려는 필요하다.

워낙 빼어났던 세종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르는데, 세종은 여전히 살아 이향의 등 뒤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고. 삼정승을 비롯해 당상관과 당하관, 집현전의 학사들까지 모두 세종이 길러낸 신하들이다.

세자란 보호막 없이 이제 정말 제왕으로서의 통치 역량을 선보여야 할 때.

수양 대군 같은 이들이야 모두가 우러르는 가운데 어도를 걸어 월대 위를 올라 근정전에 들어가 어보를 받아들 이향의 장엄한 겉모습을 부러워하겠지만,

이향 자신은 오늘의 즉위가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믿으세요, 이향. 당신은 제가 보고 듣고 읽은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품을 가진 군주예요. 그리고 또,”

윤서는 뺨을 감싼 이향의 손에 손을 겹치며 요염하게 속삭였다.

“가장 밤일을 잘하는 사내이기도 해요.”

“하핫, 권윤서!”

윤서의 엉뚱한 말에 폭소하며 이향의 긴장이 풀어졌다.

윤서는 이향이 다리를 죽 벌려 키를 낮추게 하며 또 속삭였다.

“면류관 쓰고 어서 가세요. 저, 홍위 옷도 살펴서 보내야 해요. 오늘 홍위도 종친석 맨 앞줄에 의젓하게 서서 아버지가 어떻게 즉위하시는지 잘 보고, 훗날 따라서 잘해야 하니까.”

윤서는 이향의 상투관 위에 면류관을 잘 씌우고 턱에 고정끈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후수와 대대와 폐슬이 제 자리에 잘 늘여져 있는지, 옥대가 삐뚤어지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뜰에 도열해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향을 보냈다.

****

“어먼니도 같이 가셔서 보면 좋으텐데.”

홍위의 세자 책봉례는 여덟 살에 올리기로 결정되었기에 오늘 이향의 즉위식에는 팔량 원유관을 쓰고 강사포를 입게 되었다.

조그만 꼬마가 색색의 옥이 화려하게 박힌 원유관을 쓰고 붉은색 강사포에 색색의 폐슬, 패옥까지 패용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 윤서는 홍위를 꽉 안았다 놓아주고 삐뚤어진 원유관을 바로 하고 턱에 끈을 고쳐 매어주는데,

홍위가 문득 말했다.

“어먼니앙 눈나도 같이 가고 싶어.”

“여자들은 즉위식에 못 들어가게 되어 있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희아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제 우리 잠깐 가서 내병조 병사들 색색 의장기 든 건 봤잖아. 악공들 음악 연주 연습하는 것도 듣고.”

희아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짓던 홍위가 희아 품에서 홍위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금똥이를 보았다.

“어먼니, 자선이한테 금똥이 안고 가아고 해요. 어제도 금똥이는 안 데여 갔었잖아요.”

“금똥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 모른답니다. 가만, 패옥도 잘 걸려 있으니. 걸어봐요.”

윤서의 말에 홍위가 방 안을 서너 걸음 의젓하게 걸어 보였다.

홍위의 옆구리에서 다섯 줄의 옥구슬 패옥이 걸을 때마다 차르락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그러자 붉은색 화려한 복장에 앞으로 내린 초록색 폐슬에 패옥까지, 처음 보는 형아의 화려한 복장에 금똥이가 몸을 비틀어 희아의 품에서 벗어나 발발거리고 기어 왔다.

그러자 홍위가 또 윤서를 보며 말했다.

“어먼니, 금똥이가 제 예복을 신기해 해요. 저번에 수문장 옷도 신기해 했는데. 그어니까 자선이한테 금똥이 안고 가아고 해요.”

아직 한 돌도 안 되어 걷지도 못하는데 홍위 형아 하는 것은 뭐든 다 따라 하겠다고 떼를 쓰는 금똥이를 자선이에게 안겨 즉위식에 데려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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