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57화 (157/255)

제 157화. 수양 대군의 새 아내 (1)

‘윤씨의 5촌 조카라.’

윤서는 팽팽 머리를 굴렸다.

그날, 희아가 저고리 깃까지 잡아 흔들며

“말해봐. 권 승휘가 할바마마께 전한 역사에서 계모가 전실 자식 해치고 제 자식 왕위에 올린 경우가 몇이나 되었는지, 말해보라고!”

울부짖은 이후로 윤서는 자신이 ‘계모’란 자격지심을 의식에서 지웠다.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여기 조선의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그래서 냉철하게 윤희의 딸이 수양 대군의 두 번째 부인이 될 경우 파평 윤씨 가문 내의 권력 구도가 어떻게 요동칠지 역사에 비추어 빠르게 짚어보았다.

‘세조의 왕비, 성종의 두 번째, 세 번째 왕비, 중종의 첫째 왕비와 두 번째 왕비 문정 왕후가 모두 파평 윤씨 가문이었지.’

죽은 윤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계비라는 점, 성종의 두 번째 왕비는 연산군을 낳은 폐비 윤씨, 성종의 세 번째 왕비는 연산군을 몰아내는 반정을 통해 세워진 중종의 모비였고, "뭬야" 하는 대사로 유명한 문정 왕후도 같은 파평 윤씨 가문 출신의 전 왕비 소생 인종을 견제하며 자신의 아들 명종을 기어이 왕으로 만들었으니.

역사상 세조의 부인 정희 왕후를 제외하고 파평 윤씨 가문의 여식들은 모두 계비로 왕비가 되고, 두 사람은 같은 파평 윤씨 출신 전 왕비 소생과 갈등을 겪고 끝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올린 전력이 있었다.

‘얄궂네.’

인종의 모후와 문정 왕후가 같은 파평 윤씨 일족이었으니 원래 뽑힐 때의 의도는 지금 소헌 왕후께서 기대한 바와 같았다. 같은 윤씨 일족이니 어린 인종을 보호하리라는 기대.

문정 왕후는 그 기대대로 처음에는 어린 인종을 보호하다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 태도를 싹 바꿔 결국 인종이 단명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로 유명하다.

‘지금 파평 윤씨 가문 중 도원군의 외가 윤번의 집안은 모두 충청도로 유배를 가 있는 상태이고, 정현 옹주의 남편 윤사로 또한 귀양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납작 엎드려 몸을 사리는 상태다. 서로 제 몸보신하기에 바쁜 이 때에 계모로 들인 윤씨 소저에게서 아들이 태어나게 되면, 내심 수양 대군의 야심에 동조한다고 하여도 그 안에서도 도원군 지지파와 계모 소생의 둘째 아들 지지파로 나뉠 터.’

다른 가문에서 두 번째 부인이 들어와 두 세력이 합쳐지는 것보다, 파평 윤씨 가문 내에서 세력이 나뉘어 갈등하는 것이 더 낫다. 윤씨끼리 서로 견제하게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수양 대군의 두 번째 부인이 수양 대군을 사랑으로 감화 감동시켜 헛된 망상을 꾸지 않게 하고 도원군과 그의 여동생을 진심으로 아끼며 잘 사는 것이겠지만······.

셈은 길지 않았다.

“왕실의 혼사는 전하와 중전마마께서 정하시는 일이옵니다. 저는 혼사가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윤서는 공손히 고하였다.

파평 윤씨 내의 세력 갈등 외에도, 윤서에게는 아까 세종께서 명하신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 파평 윤씨 가문의 윤사로와 정현 옹주와 협력할 예정이었다.

지난 제석 나례에서 옹주의 현실을 깨달은 정현 옹주가 매일 선물을 보내오며 협력을 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하, 신첩이 윤서를 보며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윤서의 대답에 만족하신 소헌 왕후께서는 며칠 내로 들어올 수양 대군을 위해 이 일을 당장 결론짓고자 하셨다.

“새로 어머니가 될 여인은 지아비와의 관계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친밀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런데 예분이가 그 아이를 제법 잘 따른다고 합니다.”

예분이는 도원군 현동의 여동생으로, 원래 역사에서는 정인지의 아들과 혼인하게 된 의순 공주였다.

윤씨가 죽은 후 현동은 궐 내에서 신빈 김씨가, 다섯 살 예분은 윤번의 집이 몰락했기 때문에 윤희의 집에서 돌보고 있었다.

“대비로 물러앉기 전에 수양의 혼사를 매듭짓고 싶은 중전의 소망을 내 잘 알겠습니다. 일간 중전께서 그 아이를 궐에 불러 수성 부부인과 예성 부부인 등 여러 왕실 어른들께 선을 보이고 판단을 내리세요.”

자꾸 길어지는 말씀과 촉촉한 눈빛에서 둘째 수양 대군의 가정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주고 싶으신 소헌 왕후의 간절한 소망을 읽으신 세종께서 선선히 허락하셨다.

“윤서야, 중전께서 결정을 내리시면 네가 수양의 혼례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거라. 중전께선 창덕궁 이어와 국대부인의 병환만으로도 마음 쓰실 일이 많으시니.”

“예, 전하. 성심을 다해 중전마마를 보필하겠습니다.”

세종께서는 이제 내명부와 외명부의 수장이 될 윤서에게 첫 임무로 수양 대군의 혼사를 맡기셨다.

그 속에 든 함의가 무엇인지를 이 자리에서 소헌 왕후만 모르셨다.

모두 소헌 왕후께서 이미 겪으신 비극에 다른 비극을 더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한마음이었기 때문이다.

*****

“어마마마께서 돌아가신 자선당에 홍위가 홀로 있을 것이 영 마음에 걸렸는데, 잘 되었어요.”

새해가 되자 한결 더 의젓해진 희아가 윤서에게 말했다.

이향의 즉위를 앞두고 궐은 한창 이사를 나가고 거처를 바꾸는 문제로 소란하였다.

상왕이 되실 세종께서 창덕궁으로 이어하시면서 중전마마와 더불어 세종의 후궁인 신빈과 양 귀인 등도 모두 함께 옮겨가시게 된다.

그렇게 비게 된 경복궁을 새 왕과 왕비, 새 후궁과 더불어 홍위, 희아가 물려받게 되는 것이었다.

윤서는 자선당 북쪽 전각에서 머물던 이향의 후궁들을 신빈과 양 귀인 등의 거처로 옮겨가게 하면서, 비게 된 전각들의 담을 허물어 지금 윤서의 거처인 협경당과 한 집처럼 꾸미기로 결정하였다.

승휘들이 쓰던 거처 두 채를 터서 각각 희아와 홍위가 머물게 하고, 윤서도 지금처럼 협경당을 주 침전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홍위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다.

“겉으로 많이 의젓해졌다고는 하나 세손 아기씨 나이 이제 겨우 다섯 살입니다. 적어도 열 살이 될 때까지는 제가 곁에 모시고 키우고 싶습니다.”

윤서가 이렇게 간곡히 청을 올린 또 다른 이유는 자선당의 불길한 이력이었다.

경복궁의 동궁으로 지은 자선당에서 이향이 세자로 기거한 후 두 여인이 폐빈이 되고 급기야 홍위의 어머니 현덕 빈은 급사까지 하였다. 이렇게 비극이 연이어 일어났던 동궁에 어린 홍위를 홀로 머물게 할 마음이 윤서는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럼 홍위야, 할아비와 함께 창덕궁에 갈까?”

요새 홍위와 함께 하는 시간에 쏙 빠지신데에다 실은 태종 때부터 아들 모두를 이방원에게 잃은 신덕왕후 강씨의 귀신과 이매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한때는 굳게 잠가두고 큰 행사 때에만 이용하였던 경복궁에 손주를 두고 싶지 않은 세종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건 홍위가 싫다고 똑부러지게 거절하였다.

“하바마마, 소손 하바마마께 배우는 것이 즈겁습니다만, 어머니 곁에 금똥이앙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론 지은 안이 협경당을 넓혀 종전처럼 모두 함께 기거하는 것이었다.

윤서는 낮에는 교태전에서 왕비로서 업무를 보고 저녁 때는 협경당으로 와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왕비의 정식 처소인 교태전은 홍위 지낼 곳이 마땅하지 않은 데다가 사방이 모두 상궁과 나인들이 기거하는 행각으로 둘러싸여 방을 나서기만 하면 모두의 눈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종종 수양 대군이나 광평 대군의 궁, 연희궁, 수강궁 등으로 나가 계실 때가 많은 소헌 왕후께서도 윤서의 안에 찬성하셨다.

이향은 지금 세종께서 침전으로 쓰시는 강녕전에 머물 예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공식적인 것이고 정무가 끝나면 지금처럼 협경당에 와 윤서와 아이들과 함께 지낼 것이다.

향후 십 년에 걸쳐 노비 제도를 혁파해나가기로 결정한 천추전의 회동을 끝으로 윤서는 뒤로 물러나 내외명부의 수장인 중전의 임무를 익히는 데 당분간 전념하기로 하였다.

세종의 양위 교서와 이향의 즉위 교서에 담길 내용은 세종께서 광평 대군과 함께 집현전의 학사들과 치열하게 실질 실행안을 논하고 계시다.

이향은 초석과 염초를 제조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내기 위해 금성 대군을 산동 반도에 보내는 한편, 화폐 제조와 유통 등의 실무를 지도하고, 북경에 나가 있는 상단을 통해 명나라의 정세를 파악하는 동시에 전술과 화포 운용 등에 탁월한 직업 군인을 키워낼 무관 학교 설립 준비에 한창이었다.

거처를 정하는 것 외에도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윤서는 세종과 소헌 왕후의 창덕궁 이어를 궁인 조직을 재편하는 기회로 삼았다. 죽은 윤씨와 수양 대군에게 호의적이었던 궁인들은 모두 상왕을 모시는 창덕궁으로 보내고, 경복궁의 궁인 조직은 엄자치와 박 상궁, 조 상궁을 필두로 이향과 윤서, 홍위에게 충성하는 이들로 재편하고 있다.

그리고 또 이향의 다른 후궁들의 거처와 직위도 정해야 하는 일도 있다.

정 승휘와 문 승휘, 유 승휘, 작은 권 승휘, 양 사칙과 장 사칙, 선아와 금아 두 옹주에게 거처로 어떤 전각을 내어줄지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왕의 후궁으로 어떤 직책을 수여할지도 정해야 한다.

윤서는 조만간 각자 따로 면담하고 궐 내명부의 일을 나누며 그에 합당하게 직책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이향의 즉위식에 윤서 자신의 중전 책봉식을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하고, 또 수양 대군의 혼사도 챙겨야 한다.

그래서 윤서는 지금 희아와 함께 교태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수양 대군의 새 부인으로 거의 확정된 윤씨 소저를 보기 위해서였다.

원래 궐의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희아가 윤서를 따라나선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현동이랑 고작 일곱 살 차이가 나서, 좀 어색할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엄마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뒤따르는 궁인들이 듣지 못하게 윤서에게 바싹 붙어 이 말을 한 희아는 뒤이어 아주 작은 소리로 “어머니처럼.” 하고 속삭였다.

그 말에 윤서는 속절없이 마음이 뿌듯해져서 희아의 손을 꽉 잡고 슬쩍 물었다.

“연화 소저랑은 마음이 잘 통해요?”

지난 제석 나례 연에서 정종의 누이 정연화를 소개받은 후, 희아는 거의 매일 연화를 협경당에 불러 교류하는 중이었다.

윤서가 지켜보니 예상했던 대로 정연화는 희아랑 마음이 잘 맞아 함께 책도 보고 승마도 배우는 중이었다. 궁중 여학당이 겨울 동안 방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응, 씩씩해요. 이제 혼처를 슬슬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는 귀한 가문보다 좀 낮은 가문으로 가야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점괘를 받아서 당분간 학업에만 열중하고 싶대요. 나중에 정의 고모님처럼 여학당에서 가르치고 싶대요.”

정연화는 이번 생애에서는 영응 대군과 혼인할 일이 없을 터이니 과연 신통한 점괘라고 할 수 있다. 윤서는 조금 장난스럽게 물었다.

“남동생 정종 이야기는 안 해요?”

“정종? 장난꾸러기래요. 아버님도 돌아가셨는데 늘 해맑게 철이 없다고 걱정했어요. 덕분에 어머님이 많이 웃으시긴 한다고······.”

다행이다. 그렇게 원래 밝은 아이였으니 나중까지 우리 희아에게 다정한 것이었겠지.

“!”

걸음을 걷던 윤서는 문득 걸음을 멈칫하였다.

“왜, 요?”

의아하게 보는 희아에게 웃어 보이며 윤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죽은 윤씨가 산 윤 소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겠지.’

조상 현덕 왕후가 자신을 데려온 것처럼, 죽은 윤씨도 윤 소저에게 빙의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윤서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죽은 윤씨가 무슨 자격으로 천기를 비틀어 산 윤 소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지금쯤 저 하늘에서 홍위 어머님께 철저히 응징당하고 있거나 지옥 불에서 참회의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

궁인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는 가운데, 윤서는 희아의 손을 꽉 잡고 중궁전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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