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56화 (156/255)

제 156화. 교육과 노비 제도 (2)

그러나 현실은 말 몇 마디로 명쾌하게 해결될 수가 없는 법.

“······.”

광평 대군의 말을 들은 세종께서는 눈을 감으시고 농업 생산력과 비례해 늘어날 인구 규모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어보기 시작하셨다.

그 사이 광평 대군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향과 윤서를 보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가지런한 흰 이를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는 광평 대군은 이향처럼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운 자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여실히 내보이고 있었다.

조금은 잔망스럽기까지 한 눈짓에 이향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향아, 무오년의 과거 시험의 책문을 기억하느냐?”

“근정전에서 치러진 그 해의 과거 시험에서 세 가지를 하문하셨던 것으로 소자 기억합니다. 첫째는 종학을 세우고 박사를 두어 왕의 자제를 가르치게 하였으나, 왕의 자제는 사치하고 안일하여 배움에 힘쓰지 않고 박사는 그 기세에 눌려 독실히 학문을 권하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시며 스승과 제자가 서로 직책을 다하여 성취하게 하는 법과,”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이향은 동요 없이 바로 십 년 전의 책문을 기억해내 답을 올렸다.

“호적도 없이 흩어진 백성을 찾아내어 호구(戶口)로 등록하는 호패법을 시행할 수 있는 방법, 또 호구에 등록된 백성이 평소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에 나가 싸우게 하는 병농(兵農) 제도에서 농민이 전쟁에 나갔을 때 진퇴의 술법을 익히지 못하여 국방이 어려워지는 점을 개선할 방법을 물으셨습니다. 세 번째 하문하신 것은,”

“어허! 윤서야, 여야.”

광평 대군이 자꾸 웃어서 윤서도 덩달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신 세종께서 아이들 혼내듯 둘을 꾸짖으셨다.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

“잘 듣겠습니다, 전하.”

윤서는 큼 목을 가다듬고 이향의 말에 집중했다.

“세 번째로 전하께서는 ‘우리나라의 노비는 중국과 다른데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가. 어떤 사람은 ‘예의의 습속과 염치의 풍도가 노비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옳은가. 동중서가 말한 한전(限田)의 설은 지금 행할 수 없는 것인가.’ 하문하셨습니다.”

‘세종 대왕께서는 이미 노비 문제를 고심하고 계셨구나.’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전하께서 이미 과거를 통해 물으실 정도로 노비 제도에 대해서 고심하시고도 그 이후 변화가 없었다면 이미 손을 못 댈 정도로 어렵다는 소리가 아닌가.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때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내놓은 답이 무엇일지 윤서는 궁금해졌다.

“그때 노비에 대해 나온 답도 기억하느냐?”

“고래로 전쟁의 포로나 죄를 지은 자를 노비로 삼아 왔고, 그 천함은 대를 이어 이어졌다고 유례를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있어 온 노비를 지금에 와 없애는 것은 부당하며, 적절한 정도에서 수를 관리하는 것만이 가(可)하나 그것 또한 나라에서 강제할 수 없는 사적인 재산의 영역이라는 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향은 뒤이어 조선의 노비는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설명을 올렸다.

“소자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우리 조선에서는 전조 고려에서 관청 등에 소속되어 있던 노비와 사찰에 속해 있던 노비를 이어받아 공노비로 삼았는데 그 수가 대략 8만이었고, 그 후 범죄 등으로 지금 전국의 관가와 역, 향교 등에 흩어진 공노비의 숫자는 대략 20만 명이 넘습니다.”

“!”

윤서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위해 애를 썼다.

호패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어 호적에 잡히지 않는 인구까지 추산하면 대략 5백만에서 7백만이 좀 넘는 인구가 조선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중 15세에서 60세까지 역을 제공하는 공노비만 20만이라면 셈에는 빠진 그들의 가족도 있다. 거기에 전국 각지에 흩어진 내수사 소속의 왕실 내노비에 개인이 거느린 사노비까지 더하면,

지금 세종 시기에도 노비의 숫자는 너무도 많았다. 문득 한명회가 도망하여 추쇄하지 못하는 노비까지 셈하면 백만 명이 넘을 거라고 말했다던 것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세종께서 놀란 얼굴로 입매를 굳힌 윤서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들었느냐? 너무도 방대한 숫자가 이미 노비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이 가진 사노비는 우마처럼 사고팔 수 있는 재산으로 취급되기에 반발이 클 수밖에 없어. 내 이 문제를 고심하다가 과거의 책문으로 물었을 때는 임금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도 노비는 점차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답하며 그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리라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도 그렇게 말하는 선비가 없었다.”

세종께서 아주 드물게 무기력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래서 노비가 많아지면 나라 운영에 필요한 세수가 줄고, 또 특히 군역을 질 장정이 줄어 나라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손을 대지 못한 것이다.”

“하오나, 아바마마.”

윤서에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줄곧 들어온 이향이 신중한 어조로 반론을 제시하였다.

“당장은 어렵지만 차차 손을 댈 수 있다고 소자는 보옵니다. 그걸 가능케 할 방법이 첫째, 교육입니다. 오늘날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지나칠 정도로 유교의 원리에 천착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각 지방의 향교와 한양의 성균관에서 수학한 유자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여 지배층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향은 유교만 공부하는 신하들이 관직에 들어서면서 더욱 교조적으로 유학을 좁혀나가고, 그 결과 태조와 신의왕후의 신위를 모신 문소전에 불당이 안치된 것까지 격렬하게 문제 삼아 결국 불상과 사리함 등을 철거하게 된 일을 예로 들었다.

“건국 후 오십 년이라는 시간에 이토록 성리학적인 태도가 지배적이 된 원인이 관료의 등용 체제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장차 여러 분야를 가르치고 그를 기반으로 여러 분야의 관리를 키워 낼 학당의 교육을 통해 노비와 천인에 대한 사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노비가 언제까지나 경제적 이득을 주는 것만도 아니기에, 사회 경제가 달라지면 노비에 대한 필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말이냐?”

“노비를 유지하는 비용이 노비로 인해 얻는 이득보다 더 커질 때 노비 제도는 자연스레 소멸할 것입니다. 지금도 내수사의 내노비를 비롯 대개의 노비는 주인의 농장 주변에 거주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로 예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굳이 노비로 부리지 않고 소작을 주는 형태가 더 이득이 된다면 그리들 할 것입니다.”

이향은 결국 학문을 위한 추상적인 이념과 가치의 추구든 노비를 부리는 실질적인 경제 활동이든, 그 이면에는 모두 출세와 경제적 이득이라는 점이 자리하고 있고 모두 그에 맞춰 철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으흠,”

세종께서는 이향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문득 말씀하셨다.

“네 시대에는 하겠다는 말이로구나.”

“예, 아바마마. 그리고 노비가 지금보다 상당히 줄거나 아예 없어져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무엇이냐?”

“윤서가 심리적 측면에서 설명드릴 것입니다.”

이향은 윤서에게 설명을 넘겼다.

이 분야는 윤서가 자신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생사여탈권까진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인간의 운명을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익숙해진 인간은 부지불식간 자신의 존재를 너무 크게 평가하게 됩니다. 노비들 사이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오만이 몸에 배게 되는 것이지요. 이 비대해진 자만심이 학문을 닦으면 누구나 군자에 이를 수 있다는 유학 사상과 합쳐지면, 결국 임금 무서운 줄 모르게 될 것이옵니다.”

“!”

세종께서 눈을 부릅뜨고 윤서를 보셨다.

윤서는 흔들림 없이 고하였다.

“그래서 입으로는 늘 임금께 마음과 학문을 부지런히 닦아 군자가 되시라는 조언을 입버릇처럼 고하면서 자신들의 실생활에서 가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집안의 노비와 양인을 적극적으로 혼인시켜야 한다는 유언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게 유지되려면 노비가 아니라 건장한 양인이 대거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충의를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모순의 수준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세종께서는 무거운 침묵에 빠져 드셨다.

앞날을 본다는 윤서의 말이 곧 머지않아 조선에서 벌어질 현실임을 깨달으셨기 때문이다.

한참을 침묵하신 세종께서 이윽고 이향을 부르셨다.

“향아,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고 있느냐!”

“예, 아바마마. 단순히 노비를 없애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달려들다간 자칫 왕권마저 위태로울 일이란 것을 소자, 잘 아옵니다.”

“좋아, 윤서야, 여야.”

“예, 전하.”

“재물이 필요하다. 아주 많은 재물이. 지금 한 해에 거둬들이는 세수의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막대한 재물이 있어야 공노비 쪽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좋다!”

세종께서 결연한 표정으로 이향과 윤서, 광평 대군을 차례로 응시하였다.

“이것은 정말로 조선을 다시 세우는 것과 다름없는 제2의 창업이다. 너희는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신념과 결의를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광평!”

“예, 아바마마.”

“이 안에 대한 격렬한 반발의 표적은 광평 네가 될 것이다. 노비 폐지안의 제안자가 광평 너로 외부에 공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광평이 모든 비난의 초점이 될 것이란 말씀이셨다.

정말로 실패하게 되더라도 왕권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광평만 희생양이 되는 수준으로 끝이 나게 되는.

왕에게 등용되어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 개혁은 실패하고 자신은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된 많은 사상가들이 윤서의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그러나 광평은 의연하였다.

“하하! 왕가의 고귀한 아들로 태어나 시나 짓고 격구나 하던 삶에서 이리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자 충분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광평 대군은 환한 웃음으로 결의를 내보였다.

“네 뒤에는 내가, 그리고 너의 형수가 서 있을 것이다, 여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자가의 개혁안을 뒷받침하겠습니다.”

윤서도 결의를 보탰다.

“휴우.”

세종께서 마침내 노비 제도에 대해 결단을 내리시자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며맹렬하게 허기가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긴장하여 거의 먹지를 못했던 까닭에 등가죽이 뱃가죽에 들러붙는 것만 같았다.

윤서가 살포시 장삼 위로 배를 쓰다듬을 때였다.

“전하, 중전마마께옵서 교태전에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세자 저하 내외분과 광평 대군께서도 함께 모시라는 명이십니다.”

밖에서 대전 내관이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시라더냐?”

“상세한 것은 잘 모르옵고, 수양 대군에 관해 논의할 말씀이 있으시단 전언이었습니다.”

“!”

“!”

수양 대군.

지금 대마도를 출발해서 사나흘 내로 한강 하류로 들어올 수양 대군에 관한 일이라면.

“유의 혼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보다. 함께 가서 말씀을 듣자꾸나.”

세종께서 먼저 일어나셨다.

******

“유가 얼마나 상심이 큰지 제게 보내오는 서신마다 현동 어미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토로하였습니다, 전하. 현동이도 신빈이 잘 보살핀다고는 하나 늘 풀이 죽어 있고요. 그래서 제가 찾아낸 아이가 있어요. 현동 어미의 외양을 많이 닮았습니다.”

세종께서 짐작하신 대로 수양 대군의 혼사 이야기였다.

소헌 왕후께서는 왕손을 해친 윤씨를 용서하지 않으셨지만, 그와 별개로 아내를 잃고 먼 이국을 떠도는 아들과, 어머니를 잃고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손주를 위해 윤씨와 닮은 이를 찾아서 위로해 줄 방법을 찾아내셨다.

“윤희의 여식이에요.”

“!”

윤서는 얄궂은 운명의 장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윤희는 윤규의 아들이었고, 죽은 수양 대군 부인 윤씨의 친정아버지 윤번과 윤규는 형제 사이였다.

그러니까 소헌 왕후께서 수양 대군을 위해 고른 여인은 죽은 윤씨의 조카인 셈이었다.

그리고 더욱 얄궂은 것은 원래 역사에서 윤희의 딸은, 홍위 외에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동궁에 이향의 후궁으로 들어왔던 여인이었단 사실이었다.

현덕왕후의 후손으로 홍위와 경혜 공주, 이향의 가계를 유심히 보았던 윤서는 이 기막힌 인연의 뒤엉킴을 생각해내고 저도 모르게 이향의 얼굴을 살폈다.

“왜요, 부인?”

영문을 모르는 이향이 윤서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윤서야, 달리 생각이 있는 것이냐?”

이를 본 소헌 왕후께서도 윤서에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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