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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39화 (139/255)

제 139화. 미래를 보는 여인, 권윤서

“전하.”

“···아!”

상책 내관이 차를 올리며 아주 작게 부르는 목소리에 세종께선 문득 정신을 차리셨다.

명의 칙사와 임금에게 차를 올리는 다례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국가의 통치 틀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통치의 위엄을 더하고 매끄러운 외교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허조 등에게 명해 엄격하게 의례화된 국조오례의를 정하게 한 왕이 바로 세종 당신이었다.

그러하기에 매번 명에서 사신으로 온 자가 말에서 내려 거처인 태평관에 들었을 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음악을 울리며 찻잔을 들고,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면 음악이 그치고, 또 음악이 다시 울리며 꽃을 바친 후, 음악이 그치면서 환영의 말을 나누고 하는 등의 환영 의식이 정교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매번 세종은 각자의 절차가 적절한지, 음악의 빠르기와 높낮이는 격식에 맞는지, 여악이 추는 환영의 춤이 엄숙한 자리에 걸맞은 동작인지를 세심하게 살펴 개선을 거듭 명해왔던 바이셨다.

그러나 이날 세종께서는 좀처럼 하마연 연회에 집중하지 못하시는지라 차를 올리는 내관이 불경을 무릅쓰고 전하를 부르게 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신 세종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맞은편을 바라보니 또 다른 상책 내관에게 찻잔을 공양받는 명의 칙사 함평준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찻잔을 올려 예를 나눈 후 다시 음악이 울리며 내관이 찻잔을 내어가고 또 다른 내관이 종이를 정교하게 오려 만든 지화(紙花)를 바쳤다.

이제 치사의 말을 할 차례였다.

세종께서는 “황제 폐하의 칙유를 전하기 위해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모쪼록 정성을 즐겨 주길 바랍니다.” 치하하였다.

그러자 명의 칙사 함평준도 읍하여 예를 마주 갖추고, 치하의 인사를 올렸다.

“전하께서 이렇게 좋은 음악과 차와 꽃을 베푸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특히 신이 의주에 들었을 때 의원과 의녀를 보내시어 미리 마두창 예방 침을 맞게 하여 주신 배려,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요동을 지나오면서 두창으로 죽은 여진인을 많이 보았는데, 압록강을 건너오니 조선의 백성은 전하의 성덕 하에,”

통사 김을현이 통역하는 말을 들으며 세종은 단 아래 앉아 있는 광평 대군을 보았다.

칙사에게 마두창 예방 침을 접종하는 배려를 행한 광평 대군이 싱긋 웃으며 세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세종은 문득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윤서가, 오십 년 후를 말했구나.’

천축국을 넘어 열사의 땅을 지나 있다는 여러 열강의 치세를 마저 다 듣지 못하고 연회에 참석했기에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 집중하기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계시던 세종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식었다.

‘따지고 보면 마두창 예방 침도 윤서가 혜민국을 맡으면서 찾아내게 된 방법이 아닌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여 이 귀중한 두창 예방법을 우리 명국에도 가르쳐주시길 청하옵니다.”

통사 김을현이 함평준의 통역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언제나 상국으로 받들던 명나라에서 가르침을 청한다라.’

예전 같으면 감동에 벅찰 노릇이지만, 진실인지 아니면 총명한 윤서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정교하고도 탁월한 망상인지 모를 서역의 역사를 접하신 세종께서는 이제 냉철하셨다.

“인명을 구하는 일에 어찌 국경을 두겠소. 내 기꺼이 말의 두창을 이용해 두창을 예방할 수 있는 법을 깨우친 의원을 보내드리겠소. 마찬가지로 우리 조선도 상국의 가르침을 청할 일이 있소이다.”

“···옥음을 받들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함평준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과거 조선에서 지속적으로 청하는 것이 각궁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물소의 뿔이거나, 화약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초석이나 또 화약 제조법 자체였기 때문이다.

“한양에 오시면서 보았겠지만 우리 조선은 온통 산이 높아 교통이 발달하기 어려운 형편이오. 하여 의주에서 여기 한양까지 오시는 길도 고되었을 것이오. 상국은 고래로부터 넓은 땅을 다스릴 통치 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도로를 닦고 특히 다리를 놓는 건축술을 발달시키지 않았소? 우리 조선은 상국의 축조술을 배우고 싶소이다.”

“!”

그렇다.

세종께서는 윤서가 가르쳐 준 로마사에서, 로마는 가는 곳마다 일단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았다는 점을 인상 깊게 들으셨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금나라 시기에 북경으로 들어가는 강 위에 놓은 다리가 아직도 튼튼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기록을 발견하셨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광나루에서 매 사냥을 즐기는 부왕 태종을 위해 살곶이에 돌로 다리를 짓고 있지만 기술력이 미진하여 아직도 미완성이었다. 그리고 한강에는 배를 얽어 부표 다리를 임시로 놓아 사용하는 형편이었다.

‘화폐가 돌려면 먼저 물자가 돌아야 하고, 물자가 돌려면 교통이 편리해야 한다. 로마는 그 옛날에도 벌써 인력과 물력을 함께 보낼 도로부터 닦았다는데.’

‘다리라니.’

뜻밖의 청에 함평준은 눈을 꿈벅거리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 폐하께 청을 올리겠습니다. 마두창 예방법을 나눠 받는 대가로 축조술을 나누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 칙서에 관해서 말씀입니다.”

함평준이 어제 모화관에서 낭독한 칙서의 내용을 다시 거론하려 하였다.

그러자 세종께서는 손을 들어 제지하셨다.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실질적인 정무는 우리 세자가 맡아 하고 있소이다. 순행을 나간 세자가 곧 돌아와 폐하의 심려를 풀어드릴 것이니, 경께서는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과연 열흘 가까이 침식을 잊고 연구에 몰두하고 계신 세종의 낯빛이 창백하고 안구까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전하께서옵서 동방의 요순이라 칭해지실 만큼 선정을 펼치시는 것은 우리 명나라까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오면서 보니 조선 백성의 삶이 아주 평안하고 안전하여 그 명성이 조금의 과장도 아님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오니 부디 옥체 보중하옵소서.”

함평준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실은 두창 예방 침을 맞고, 귀한 인삼도 선물로 받은 데다가 북경에서 팔리고 있는 조선 비누보다 훨씬 더 고급인 비누까지 대량으로 선물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실마리는 이미 풀렸는지도.’

함평준은 조선의 신료들 사이 말석에 관복을 입고 앉아 있는 한확을 힐끗 보았다.

칙사의 눈길을 받은 한확이 깊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몸이 편치 않음을 구실로 다례 이후 술과 탕, 여러 안주를 올리는 절차는 광평 대군과 예조 판서 김종서에게 맡기고 세종께서는 먼저 태평관을 나왔다.

“창의야, 지금 세자는 어디에 머물러 있더냐?”

“철원에 계시옵니다.”

“금선패(金宣牌)를 가지고 가 당장 세자를 서울로 돌아오시라 전하거라.”

“예, 전하.”

세종은 급하게 사람을 호출하는 금선패를 들려 대전 내관 김창의를 철원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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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북경으로 보내야 한다는 옛말이 틀린 거 하나 없수다.”

박 상궁이 명나라에서 온 전병을 뿌듯한 표정으로 우물거리며 말씀하셨다.

“한치유가 조선에서 살았더라면 그 어마어마한 부자인 홍여방의 딸 홍씨의 기세에 숨이라도 쉬었겠소? 북경에 가 공신 부인의 시중을 드느라 황궁에도 들락날락했으니 저리 보는 시야가 탁 트인 게지요.”

“홍씨가 그리 부자예요?”

“그럼, 그럼. 홍여방의 집에서 일하는 노비가 천 명도 넘는다오. 한확이 누이 여비와 공신 부인 덕에 신분은 귀해졌다고는 하나, 그 당당한 위세를 가능하게 한 것은 부인 홍씨가 아니겠소?”

박 상궁이 윤서에게 고하고 있는 한치유는 한확의 서자로 명나라에서 귀국해 반송방에서 다담점을 운영하고 있는 자였다. 또한 이번 <여비 한씨의 기록>을 문제 삼는 칙사의 파견에 있어 윤서 쪽에서 방패로 내세운 이이기도 하였다.

한확의 빼어난 풍채에 기생 출신 어미의 외모까지 이어받은 한치유는 어릴 적부터 명나라 황궁의 일을 보고 듣고 자란 덕분에 이번 칙사의 파견 판이 무엇을 목표로 짜였는지 단숨에 눈치챘다.

영민하고 야심 많은 한치유는 무기력하게 희생양이 되길 거부했다. 오히려 서러운 서자의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바꾸고자 이 판을 짠 한 축인 권 승휘의 오른팔 박 상궁을 은밀히 찾아와 당돌하게 제안하였다.

“제가 아버님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북경 황궁에 계신 고모님께서도 힘을 가지시려면 조선 내의 친정 입지가 든든해야 함을 내세울 것입니다. 실제로 아버님께서 귀양을 가신 후 황궁 내 고모님 입지가 많이 약화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둘째 사위인 계양군 이증과 거리를 유지하고, 차기 조선의 국왕이 될 세자의 편에 서시라고 설득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럼 그 서책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 서책으로 인해 자네 아버님의 위신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추락하였는데?”

박 상궁이 묻자 한치유가 답했다고 한다.

“솔직히 그 당시 한미한 자들치고 우리 가문을 부러워하지 않은 가문이 드뭅니다. 그리고 누이나 여식의 미모를 팔아 권세를 구한 가문은 역사서에 차고도 넘칩니다. 하니 아버님께서 지금 납작 엎드려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께 충의를 다하고, 고모님 공신 부인께서 조선과 명나라 황실 간의 가교 역할을 잘하신다면 오명은 차차 미담으로 바뀔 것입니다.”

한술 더 떠 한치유는 아주 재미난 제안을 했다고 한다.

“중국도 때로 미인을 오랑캐에 바친 역사가 있다고 하오. 특히 흉노라나 뭐라나 하는 흉악한 오랑캐 왕에게 바쳐진 왕소군이란 미녀 이야기가 아주 유명하다지요. 그러니 빼어나게 심금을 울리는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도 아예 북경에서 펴내고 싶다고 하더이다. 명에서 유명해지면 조선에서 오히려 미모와 비극적인 운명으로 동정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오.”

지금 중국에는 맛깔난 문체로 재미나게 쓰인 삼국지연의 수호지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한치유는 자신이 다담점에서 취급하고 있는 연정 소설을 번역해 북경에서 팔 판권을 사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유 승휘야 자신의 작품이 중국에서 읽히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다. 시장이 크니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그러면 이야기책만 전문적으로 펴내는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는 유 승휘 소망도 하루 빨리 이룰 수 있고.’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이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 문제가 될까 싶어 미리 한치유를 회유해 조선에 불러들였던 것이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윤서는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어 박 상궁에게 물었다.

“그래서 한확이 칙사를 만났답니까?”

“예, 어젯밤 한치유와 함께 은밀하게 모화관에 들어 칙사를 만났다지요. 칙사가 북경으로 돌아갈 때 한치유가 도서를 유통시킨 유포 책임자로 들어가기로 이미 말을 맞췄답니다.”

“오호, 그럼 공신 부인이 눈물로 황제에게 선처를 호소하며 또 동시에 왕진 등의 태감에겐 한확 측에서 두둑하게 뇌물을 먹이겠군요.”

이렇게 되면 장차 황실 내에서 더욱 큰 힘을 가질 공신 부인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토목보의 변 이후 천덕꾸러기로 홀대받을 지금 황제의 어린 아들을 공신 부인이 키우는 것이 원래 역사였지. 그 꼬마가 훗날 황제가 된 덕에 공신 부인이 명 황실의 실세가 되어서······.

“!”

장차의 역사를 생각하던 윤서가 갑자기 이마를 짚었다.

“왜? 왜 그러시오? 전하께서 또 너무 부려 먹으셨구려. 하, 전하는 말씀으로는 인재를 아끼신다고 하시지만 실제로는 죽도록 부려 먹으시니. 저 가여운 황 대감을 보구려. 은퇴도 못 하고 죽도록, 하! 그러니까 너무 재주를 보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황 대감은 퇴근이라도 한다지! 응, 아이고! 응! 시아버지라 퇴근도 못 하고!”

홀쭉해져서 청초한 미를 가지게 된 윤서가 이마를 짚고 괴로워하자 피곤해서 저런다고 안타까워하며 박 상궁이 흥분해서 대신 화를 내고 있을 때.

아까 천추전에서 돌아온 후 뭔가 개운하지 않고 마음 한구석 불안하던 것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은 윤서는 속으로 적지않이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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