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화. 연애 소설과 세종 대왕 (2)
“여긴 이리도 활기찬데.”
눈동자를 떠시는 것이 돋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윤서가 안경을 벗겨드리기 위해 손을 뻗을 때였다.
세종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탄식하셨다.
“운종가 이천 칸짜리 시전에 간판을 다는 게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간판 달린 상점이 하나도 없어. 물건도 모두 2층에 숨겨두고, 거리로 보이는 1층엔 변변한 견본도 내놓질 않는다. 그러니 뭐 하나 사고자 하여도 애걸복걸 종일 흥정해야 겨우 살 수 있다는데. 그런데 여기는 어째서.”
고금의 지식에 통달하신 전하께서 윤서에게 하문하셨다.
“고작 스무 개 남짓한 상점뿐인데, 어째서 이 거리는 이리 흥성스러운 것이더냐?”
“···전하, 그것은.”
윤서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말씀드리고 싶었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의 기적 덕분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인의 이기심이 모여 빚어내는 사회의 선(善)입니다.’
시대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덕분에 운종가의 종로 거리보다 왜 이 작은 골목에서 더 활기차게 상행위가 일어나는지 말씀드릴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 조선에는 15세기에 알맞은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윤서는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지나다니는 행인의 귀를 피해 고하였다.
“전하, 저들이 활달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것 또한 모두 전하의 성덕이옵니다.”
윤서는 평복 차림의 금군 둘에게 품 한가득 연애 소설을 들려 나온 광평 대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장사하는 이들 거의가 전하께서 제게 내려주신 노비거나, 내수사 소속의 공노비들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상행위를 천하게 여기며 제재를 가하려는 유력 세력의 입김도, 상인들의 이익을 갈취하려는 무뢰배의 폭력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전하의 보호에 힘입어 저들이 저리 자유롭게 제 이익을 추구하며 번성하는 것이옵니다.”
“···입에 꿀을 발랐구나.”
말씀은 그리하시면서도 전하께서는 이곳이 가지는 특수성과 상업의 발달의 연관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저, 아버님. 저 위 다점(茶店)에 가시겠습니까?”
서책을 든 금군을 돈의문 안 마차로 보내고 온 광평 대군이 세종께 물었다.
세종은 윤서를 바라보셨다.
“저 서점도 네 입김이 닿았느냐? 저 위 다점도 네 입김이 닿았고?”
“서점은, 아닙니다!”
윤서는 솔직하게 부정했다.
노산대를 통해 이 거리 대개의 상인의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산도적 같은 서점 주인 막개는 아니었다.
“지난달 상점에게 거둬들이는 월세 목록에 저 서점 이름은 없었습니다.”
이 일대 토지가 박 상궁과 윤서의 궁방 소유였기에 노산대가 사람을 시켜 매월 동전 세 문씩을 월세로 받았다. 그런데 장부에 <월화야담>이란 점포 명은 들어 있지 않았다.
“저 위에서는 무엇을 팔길래 가자는 것이야?”
“괜찮은 차와, 서적과, 시 모임이 열립니다.”
“시 모임?”
“예, 전하. 오늘 마침 정음으로 시 솜씨를 뽐내는 모임이 있다고 하여, 제가 전하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윤서는 전하께서 마차에 실려 있을 서책 따위는 까맣게 잊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시화회를 선전하였다.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저기 위의 다담점에는 한양과 그 인근에서 밥술 꽤 뜨고 사는 부유한 평민들이 모여 정음으로 시를 겨뤘다.
상업이 발달한 조선 후기 중인들의 시 모임과 비슷한 양태의 고급 문화 모임이 태동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윤서가 박 상궁과 의논하여 세운 찻집이었다.
그리고 또 그 이상의 목표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세종께서는 다시 흥성스러운 거리와, 야한 이야기 책이 가득한 서점을 착잡한 눈길로 바라보시고, 안경을 접어 허리춤에 걸린 거북이 껍질 안경집에 넣으셨다.
“가자꾸나.”
세종께서 먼저 걸음을 떼시고, 앞뒤로 행인으로 위장한 호위가 자연스럽게 골목 끝의 다점으로 향하였다.
“창의야.”
세종께서 불현듯 뒤에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대전 내관 조창의를 부르셨다.
“예, 나리.”
조창의가 자연스럽게 답하며 전하의 옆에 와 보조를 맞춰 걸었다.
“넌 저 월하야담에서 파는 책들을 누가 지었는지 은밀하게 알아 오너라. 절대로 조사한다는 티를 내어서는 아니 된다.”
“예, 나리.”
조창의는 평소의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지만, 윤서는 심장이 쿡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버님. 저 서책들이 법률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삼강오륜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글자를 읽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생각의 힘을 키워주지 않습니까? 저기 서점 주인 막개만 해도 아들 이름을,”
“그래. 무슨 말인지 안다.”
세종께서는 부드러우나 단호하신 어조로 윤서의 말을 자르셨다.
“······.”
궐에서 산 세월이 제법 되었고, 지난번 윤서가 글씨를 필사한 비구니를 흔적 없이 숨기는 것도 보았으니 유 승휘는 꼬리를 밟히지 않게 잘 처신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실은 전하께서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으신 덕도 있었다.’
명 황실을 뒷배로 두고 함부로 왕실의 후계 구도에 개입하려 하는 한확을 쳐내기 위해서 전하께서는 의도적으로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을 유포한 자를 무시하셨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대전 내관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셨으니,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윤서는 짐작하였다.
‘차라리 먼저 밝히고 선처를 읍소해야 하나.’
세자의 후궁이 이런 이야기를 펴낸 것에 대해서 전하께서 어찌 판단을 내리실지 몰라 대책을 고심하는 윤서는, 실은 세종께서는 여비 한씨 이야기도, 저 서점의 야한 이야기들도 모두 윤서가 지었다고 생각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상상하지 못했다.
‘여비 한씨 유모 이야기는 그렇다고 쳐도, <종사관 나리와 세답방 무수리>라니. 대체 윤서는 무슨 생각으로, 시간은 또 언제 내서. 하아.’
겁을 주기 위해 부러 듣는 데서 대전 내관에게 조사를 하라 명해지만, 창의가 알아내도 고민 못 알아내도 고민, 참으로 난감한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버님, 아버님의 문자로 쓴 표현이 참으로 심금을 울립니다. 제가 사(詞) 읽기를 즐겨하는데, 정음으로 번역해 펴낼까 합니다.”
글을 잘 짓고, 특히 사를 잘 짓기로 이름이 높은 광평 대군이 세종과 윤서의 근심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하였다.
“예, 그것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름다운 한시와 사 등을 다 정음으로 번역하면 우리 시의 수준도 한층 더 올라갈 것입니다.”
윤서가 부러 수선스럽게 장단을 맞추는데, 세종께서는 아무런 말씀 없이 여전히 생각에 잠겨 계셨다.
‘유 승휘를 숨기고 차라리 내가 다 지었다고 말씀 드려야 하나? 금똥이 엄마인데. 설마, 엄하게 처벌하실까.’
윤서가 또 고민할 때 <다담점(茶談店)>이란 간판이 고급스럽게 걸린 다점에 도착했다.
미리 반 시진 전에 와 자리 잡고 있던 호위 내관이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리 약속은 하셨습니까?”
“노산대 이름으로 예약했습니다.”
“아, 저쪽에 일행분들이 계십니다.”
다담점 안은 차 향과 고급 종이 향이 운치 있게 어우러져 있었다.
벽마다 정음과 한문으로 된 시집과 책이 빼곡하고, 또 여러 고급 차도 함께 놓여 있었다.
안내하는 점원도 옷을 고급스럽게 입고 있었지만, 점원 뒤에서 공손하게 웃고 있는 젊은 미남자는 조선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항주 비단으로 지은 도포를 입고 있었다.
그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세종께서 윤서를 돌아보셨다.
“예. 맞습니다, 아버님.”
윤서는 이 공으로 저 <월하야담>에서 드러난 착오를 덮을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 내관 넷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방에 들어가자, 얇은 문풍지 문 너머로 여인의 콧소리도 섞인 웃음소리와 비파와 거문고를 튕기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세종께서 상석에 앉으시고, 윤서와 광평 대군이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자, 단정하게 생긴 점원 넷이 차를 달일 도구와 간단하게 요기가 되는 유밀과와 각종 과일 정과, 여러 꽃을 올린 떡 종류를 내어왔다.
“차는 내가 달일 것이니 너희는 나가보거라.”
광평 대군이 말하고, 우아하게 찻상 앞에 앉아 흰색 청화 도자 차호에 찻잎을 넣고, 온도를 맞추기 위해 무쇠솥에 든 물을 격조 있게 사발에 따랐다.
‘이향도 차를 내릴 때 참으로 우아한데, 광평 대군도 한 폭의 미인도네.’
윤서가 감탄할 때 건넌 방에서 큼큼,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의 젊은 남자가 말하였다.
“아까 헌재 자네가 내게 ‘강물’을 운으로 주었으니 내 한번 읊어보겠네.”
사내는 거문고를 솜씨 좋게 드르릉 긁더니, 천천히 운율을 고르며 자신이 지은 시를 낭송했다.
“새는 서리 내린 숲의 새벽을 지저귀고, 바람은 나그네의 잠을 놀라 깨우네. 처마엔 지새는 반달 해사히 남아 있는데, 이 몸은 외딴 하늘 가에 와 있구나. 낙엽은 돌아갈 길을 메우고 찬 나뭇가지엔 밤안개가 걸려 있다. 강동은 가도 가도 다 못 가는데 가을은 이 물가 마을에서 끝나려 하네. (손종섭님 번역, 고조기의 숙금양현 인용)”
“오오, 찬성 자네! 어찌 그리 대단한가? 가을에 꼭 맞는 시에 거문고 음률하고도 참으로 잘 어울리는구먼.”
“오늘 이 그림은 아무래도 찬성 서방님 것인가 봐요.”
목소리만으로도 제법 아름다운 정취를 가졌을 여인이 감탄한 기색으로 말을 할 때였다.
“자네 그 시, 정말로 자네가 지은 것인가?”
갑자기 문 너머로 딱딱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찻물을 내려 세종께 먼저 두 손으로 바친 후 윤서 앞에도 한 잔을 놓아주던 광평 대군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저 무리에도 제법 글을 아는 자가 있나 보옵니다.”
“?”
빼어난 시라고, 벌써 이렇게 우리 말로 멋진 시를 다 짓는다고 감탄하던 윤서가 건넌방에 귀를 기울였다.
“무, 무슨 소리인가? 일전에 내가 소금을 사러 저 멀리 강릉에 갔을 때 지은 시인데.”
“이 사람아! 그거, 의종 때의 시인 고조기가 지은 <숙금양현(宿金陽縣)>이란 한시를 번역한 것 아닌가?”
“아! 하핫, 어찌 알았는가? 헌재 자네가 한시도 해박했네, 그려.”
“차라리 처음부터 밝히지 그러셨어요? 한시로 읽을 때와 우리 정음으로 옮길 때와 너무도 다른데요. 조어상림효(鳥語霜林曉) 풍경객답면(風驚客榻眠) 하는 것이랑, ‘새는 서리 내린 숲의 새벽을 지저귀고, 바람은 나그네의 잠을 놀라 깨우네.’ 하고 읊는 것이랑 어떻게 정취가 같습니까? 정말로 우리 임금님 글자 덕분에 이리 풍성하게 시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요.”
기생인지 여염의 여인인지 모를 이가 비파를 뚱뚱 퉁기며 노래하듯 이야기를 해 날이 섰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아버님, 이제 그 문제는 걱정 없으시지요?”
윤서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그런데 저자가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냐?”
“북경에 나가 있는 상단을 찾아왔었더랍니다. 내심 귀국하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중국은 차가 유명하니 게서 배운 차 솜씨로 여기 찻집을 내면 좋겠다고 제의하였습니다.”
“···으흠. 돌아가자. 볼 것도 다 보았고, 들을 것도 다 들었으니. 돌아가 이야기하자.”
세종께서는 귀궐을 명하셨다.
한양과 이 일대를 통틀어 가장 차 맛이 좋기로 유명해진 다담점의 주인은 젊은 날의 한확을 빼어 닮아 있었다.
명나라에 머물고 있던 한확의 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