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화.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이 불러온 나비효과 (1)
[황제는 조선의 국왕에게 칙유하노라. 조선은 대대로 순유하게 황제 섬기기에 극진하였는 바 짐은 그 마음을 어여삐 여겨 각별하게 대우해 왔노라. 근자 조선의 왕은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널리 쓰게 하고 있다고 들었다. 글자를 만들어 쓰는 일은 말과 음이 다르니 따로 거론할 바가 없노라. 그러나 조선의 글자로 감히 상국 황궁의 내밀한 일을 그릇되게 기록하고 유통하여 짐과 선황제를 모욕하고 있노니. 너희는 마땅히 그 책을 파쇄하고 책을 쓰고 유통한 이들을 엄벌하여 짐을 섬기는 바의 신실을 보이라.]
“칙사가 이걸 들고 오고 있다는 것이로군요.”
“그래. 북경에 있는 우리 상단이 조선 출신 환관 정동에게 오랫동안 돈을 처바른 보람이 이제 나타나는구나. 이렇게 사전에 칙서의 내용까지 입수하고 또 황궁의 내밀한 사정까지 듣잖니.”
“돈보다는, 권력이죠. 황궁에 있으니 권력의 향방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거고, 그럼 조선의 권력에서 한확이 배제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권력의 박정한 세계를 읊던 윤서가 말끝을 흐리며 미소를 지었다.
“······?”
박 상궁이 윤서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는 세손 각하와 금똥 아기씨가 있었다.
홍위가 희아의 개 몽몽이를 데리고 들어와 금똥이에게 보여주자, 큼지막한 삽살개를 가까이서 처음 보는 금똥이가 흥분해서 “머머, 머머머머” 괴성을 지르며 파다다닥 기어가 개 꼬리를 잡고 끙끙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몽몽이는 참을성 있게 아기의 손길을 견디고, 홍위는
“꼬이 놔. 아이, 헝아가 잇켜(일으켜) 주께. 몽몽이 꼬이(꼬리) 빠져어.”
울상을 짓고 금똥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주고 있었다.
여염의 형제들처럼 투닥거리며 노는 홍위와 금똥이 모습을 덩달아 흐뭇한 웃음으로 지켜보던 박 상궁이 문득 말했다.
“···귀한 분들은 다 붙이는 유모를 한사코 마다할 때 뭔 유난인가 싶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재산 좀 있는 가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따로 젖어미나 유모를 붙여 키웠다. 부모야 아이들을 한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하나 유모는 입장이 달라 제가 모시는 아기씨만을 어여뻐하고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천한 신분을 벗어나 출세할 수 있는 길이 모시는 아기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유모나 보모로 인해 동복의 형제자매 간에도 미묘하게 경쟁심이 들게 마련이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어린 형제들 간에도 마냥 친하기가 어려웠다.
수양 대군이 유난히 제 동복형제인 안평 대군과 금성 대군, 그리고 친조카 홍위에게 유독 잔혹했으면서도 반대로 신빈 김씨의 자식들인 이복형제와 내내 친밀했던 이유가 어릴 적 홀로 민가에 떨어져 자라다 궐에 들어온 후엔 신빈 김씨에게서 보살핌을 받은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윤서는 생각했다.
홍위와 금똥이는 함께 윤서의 손에 키워지니 그런 경쟁심이 없었다.
보통의 형제들처럼 헤헤 웃으면서 놀다가 어린 금똥이가 떼를 쓰면 의젓한 홍위가 “아이고, 금똥아아!” 한숨을 쉬며 말리다가, “헝아가 안 된다고 했지!” 혼도 내고, 그럼 금똥이는 울먹울먹 입술을 비죽거리다가 “와앙!” 엎드려서 우는 시늉을 하면 마음이 약해진 홍위가 “안니야, 우지 마. 헝아가 해 주께.” 달래도 주는.
왕실에서 보기 어려운 친밀감과, 투닥거림과 다시 웃으면서 노는 보통 아이들의 유대가 둘 사이에 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터(털)는 안 대. 지지야, 지지!”
홍위가 지지해주어서 일어난 금똥이가 이제 몽몽이의 긴 털을 입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홍위는 울상을 지으며 말리다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최가 나인에게 “안 대겠다. 금똥이 좀 안고 있떠!” 명했다.
두 아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윤서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박 상궁에게 말했다.
“노산대더러 반송방 일대의 기강을 더욱 엄정하게 단속하라 하세요. 칙사가 와서 이 칙서를 근정전 앞에서 읽으면, 그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겠습니까?”
“으응? 서, 설마!”
“우리 공장 일대는 지금 주목의 대상이고, 또 가장 활발하게 여러 물품이 팔리고 이야기 책도 팔리고 대여되는 곳이에요. 희생양을 찾고자 할 때 어디일지는 아시겠지요? 하지만 미리 칙서의 내용을 입수했으니 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지요. 마마님께선 너무 걱정마시되,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지만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그리 말하며 윤서는 중전마마와 함께 있는 광평 대군을 떠올렸다.
원 역사에서라면 이즈음 두창으로 죽었던 광평 대군이 건강하게 살아 지금 한양에 돌아와 있다. 이향과 광평 대군의 외할머니, 즉 소헌 왕후의 친정어머님인 삼한국대부인 안씨께서 노환으로 병석에 눕게 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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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를 모시고 반송방의 다담점(茶談店)에 가 달라니······, 아니 형수님 왜 그리 제 얼굴을 빤히 보십니까?”
광평 대군이 윤서의 물기 어린 시선에 당황해 어색하게 수염을 쓸었다.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안심이 되는지, 모르시지요.’
광평 대군이 살아 있는 것이 훗날 이향도, 홍위도 살아 있을 거란 징표가 될 것이라 윤서는 믿었다. 그래서 흥남에서 두창 예방 침을 접종하다 전하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그가 보이는 건강함이 눈물겹도록 감사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할 수 없기에 윤서는 옷고름을 들어 슬쩍 눈물을 찍어내고 “수복 아기씨가 우리 금똥이랑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둘 다 무사히 잘 커서 기뻐서요.” 웃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칙서가 오고 있단 소식은 들으셨지요? 저하께선 지금 기근이 심한 지역에 구휼미가 제대로 돌고 있는지 살피시느라 외방에 나가 계셔서 대신 자가께 부탁을 드립니다.”
윤서는 윤서의 공장과, 공장에 근무하는 직공이 모여 사는 반송방 일대를 전하께서 돌아보시는 것이 왜 필요한지 광평 대군에게 설명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잘 고하겠습니다. 좀 있다 전하를 알현할 예정이었습니다.”
깊게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고 협경당을 나서며 광평 대군은 ‘늘 서늘한 형수님이 그리 애틋하게 날 보실 정도로 애들한테는 각별하시구나.’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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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을 왜 간단 말이냐?”
평양에서 시작한 두창 예방 접종을 그 위 순안과 숙천, 안주, 함흥 일대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한 일을 고한 뒤, 반송방 일대를 함께 돌아보시길 청하자 세종께서 의아하게 물으셨다.
광평 대군은 권 승휘와 논의한 대로 고하였다.
“지금 의주에 막 도착한 칙사 함평준이 우리 조선 출신 환관 정동의 양부(養父)라 들었습니다. 그자가 가져온 칙서가 공표되면 그 일에 대해 책임질 자를 색출해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질 않습니까?”
명 황제가 파견한 태감 함평준이 들고 오는 칙서는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담고 있었다.
명나라 황실에 공녀로 바쳐진 조선 여인들의 운명을 담은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 빼어난 문체와 비극적인 내용으로 조선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정음을 배운 백성이 양반부터 노비까지 두루두루 많아, 전하의 새 문자가 전국 방방곡곡에 빠르게 퍼져나가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서책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공녀로 명나라에 바쳐진 조선 여인들의 기구한 죽음을 담고 있기에, 가문의 영달을 위해 누이를 둘이나 공녀로 보낸 한확의 가문은 물론 명나라 황실마저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정을 한확의 누이 공신부인 한씨가 명의 어린 황제에게 눈물로 고하는 바람에, 칙서가 오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북경에 상주하며 비누를 만들어 파는 윤서의 상단 책임자가 조선에서 바쳐진 환관 정동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덕에 미리 칙서의 내용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동은 칙서의 내용뿐 아니라 지금 황제는 태감 왕진의 절대적 영향 아래 귀뚜라미 싸움에나 탐닉하고 있을 뿐 정사에는 도통 무심하다는 점, 그래서 이번 칙서는 평소 황실 예법에 밝아 명 황실의 내명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공신 부인 한씨의 개입이 심하게 들어가 있다는 점, 하여 대응 방안은 공신 부인 한씨와 그의 오라버니인 한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칙서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 조선에서 유포자를 잡아내 처벌하는 것이지만 칙사가 유포자를 잡아내 명으로 끌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습니다.”
광평 대군의 말에 세종께서 “끙” 침음성을 흘리고 입을 꾹 다무셨다.
이 일은 조선 건국 초 표전문의 글자가 불경했다는 이유로 명의 태조에게 고초를 당하다 죽은 조선의 신하 정총과 정신의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명 황제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이 끝내 가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적당한 희생양을 내세워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경우든 국왕으로서 마음 아프고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세종께서 근자에 근심이 크셨다.
“지금 너의 외조모도 편치 않으신데 무슨 잠행이라더냐.”
“혜민국에서 아주 빼어난 의녀들로만 선별하여 할머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전순의가 지은 약을 드시고 보살핌을 받으신 후 기력은 쇠하시지만 잘 드시고 잘 주무시니 당분간 무탈하실 것이옵니다.”
“······?”
용모가 단아하고 성품이 고요한 아들이 무리하게 부왕의 잠행을 청하는 것을 의아하게 보던 세종께서, 일순 눈을 가늘게 뜨셨다.
그리고는 별안간 밖을 향해 외치셨다.
“밖에 창의 있느냐?”
“예, 전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전 내관 조창의가 대답했다.
“가서 권 승휘를 데려오너라. 잠행을 나갈 것이니, 사내처럼 입고 오라 이르거라.”
“예, 전하.”
“아바마마!”
“이제 겨우 한양에 돌아온 네가 돌아가는 상황을 무얼 그리 많이 안다고. 이는 필시 윤서의 계책이겠지.”
수양 대군이나 임영 대군에겐 냉랭하기 그지없는 권윤서가 광평 대군과 금성 대군에겐 유난히 각별하게 대하는 것, 또 광평 대군과는 혜민국도 같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종께서 떠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비 한씨 유모의 기록 유출에 윤서가 관련되어 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하였다.
“너도 가서 평복으로 갈아입거라. 나 또한 잠행 차비를 할 터이니.”
광평 대군을 내보내고 세종께서는 평복을 준비하라 일렀다.
원 역사에서 세종은 이즈음 거동이 불편해 군권을 제외한 모든 조정의 업무를 세자 이향에게 넘기셨다.
그러나 이번 역사에서는 틈이 날 때마다 함께 말을 타자거나 활을 쏘자고 조르는 어여쁜 손주 홍위와, 함께 악기를 개량하고 음률을 새로 만드는 큰 기쁨을 주는 손녀 희아 덕분에 많이 웃고 움직이시고, 복잡한 정무는 세자가 잘 처리하고 있는 덕에 그럭저럭 건강하셨다.
게다가 요새는 친정어머니의 병환으로 울적하신 중전을 위로하기 위해 윤서가 종종 어린 금똥이와 홍위와 함께 중궁전에 드는데, 그때마다 금똥이가 새카만 눈동자로 자신을 보며 방긋방긋 웃어 마음을 화사하게 밝혔다.
이제 여덟 달에 들어선 금똥이는 유모의 손에 자라나는 다른 왕족 아기들과 달리 윤서가 전적으로 키우고 홍위와 희아가 틈날 때마다 놀아주어서 그런지 처음엔 낯을 가려 비죽비죽 울려고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방글거리고 친근하게 웃기를 잘했다.
아직 한 돌도 안 된 아이의 눈망울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이 천진하게 밝았다. 여러 이해관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어른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천성적인 밝음이 어린 손주의 웃음 속에 있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이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의 특징이라는 그 안정된 정서.’
이론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권윤서는 자신이 쓴 <육아보감>에 나오는 것처럼 제 아들을 지극히 사랑 많은 아이로 키웠다.
게다가 강서원에서 돌아오는 홍위를 매일 건춘문 앞으로 마중 나가 둘이서 도란도란 한참을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자칫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겼다고 서운해할까 염려했던 홍위도 더욱 밝고 의젓해졌다.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홍위랑 금똥이가 밝게 웃으면서 노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다 나는구나.’
저 멀리 거친 바다에 떠도는 둘째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윤서에게 복잡한 감정이 드는데, 두 손주 녀석들을 보고 있자면 또 윤서가 대견하고 기특하였다.
의대 시중을 받으며 여기까지 세종께서 생각하였을 때, 밖에서 내관이 아뢰었다.
“전하, 광평 대군과 권 승휘 들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수려한 미남자 광평 대군과, 방한용 모자인 이엄 아래 수염 하나 없이 매끈하여 용모가 빼어난 관상용 내관으로 딱 보이는 윤서가 들어섰다.
그리하여 부유하고 위엄이 절로 배어나는 중늙은이 하나와, 부유하고 수려한 미남자 하나와, 무척 미색이 빼어나 남녀 모두 홀리고 남을 사내 하나가 섣달 초나흘 추운 오후, 표 나지 않게 호위를 거느리고 반송방 일대로 잠행을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