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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11화 (111/255)

제 111화. 연생전의 벼락과 두창 예방 (2)

“아밤마마, 벼악은 나쁜 사암이 맞는 거에요?”

(아바마마, 벼락은 나쁜 사람이 맞는 거예요?)

7월 중순.

오랜만에 이향이 겨우 짬을 내어 윤서 거처에서 다 함께 저녁 수라를 들고 있었다.

이향이 세종의 수라 시중을 들지 않고 윤서의 거처에서 수라를 들 때, 윤서는 기미를 마치고 나면 기미 상궁과 앞에 엎드린 나인들까지 모두 나가게 하였다.

이향과 홍위, 희아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금똥이가 태어난 이후 부쩍 어리광이 늘어난 홍위는 제 앞에 놓인 상을 마다하고 이향의 무릎에 앉아 아바마마가 먹여 주신 전약 한 점을 오물거리다가 낮에 강서원에 들었던 말을 여쭙는 중이었다.

“하지만 연생전의 상궁은 좋은 사암이었는데요.”

(하지만 연생전의 상궁은 좋은 사람이었는데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상관없어. 벼락 맞은 사람은 그저 운이 나쁜 가여운 사람인 거야. 벼락은 높은 물체나 쇠붙이에 내리치는 것이라고 권 승휘가 말해줬어. 맞지?”

윤서 옆에서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희아가 불쑥 말했다. 연생전에 벼락이 내리치던 날 벌써 벼락의 원리에 대해 윤서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구름 속에 음전하와 양전하가 많아져서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전기 현상이라는 걸 그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윤서는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을 때 구름끼리 부딪치면서 생겨난 불꽃이 지상의 높은 곳에 내리치는 거라고 설명했었다.

물론 이향에게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을 설명했었고, 그래서 이향이 궐의 주요 전각에 뾰족한 피뢰침을 세우게 하였다.

“맞아요. 그분은 그날 쇠로 된 자를 들고 까마귀를 쫓아내시다가 그리되셨다고 들었어요.”

“맞다, 홍위야. 이제 궐 곳곳에 피뢰침이라는 걸 달았으니 앞으론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야. 피뢰침은 뾰족하게 생긴 철 막대로······,”

이향이 홍위에게 연근 구이 하나를 입에 물려준 후 차분하게 피뢰침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홍위는 오물오물 씹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희아가 윤서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홍위는 아직 어린데, 저런 어려운 말을 알아들을까?”

“어머나, 자가께선 고작 아홉 살인데 저보다도 수학을 잘하시면서.”

“그거야, 뭐. ···이 수어증(소고기와 숭어 살을 넣고 끓인 찜) 참 맛있다. 돼지 족만 먹지 말고 이것도 먹어봐요.”

칭찬을 들은 희아가 쑥스러워서 배시시 웃으며 공연히 음식을 칭찬했다. 그러다가 문득 젓가락을 놓으며 윤서에게 또 속삭였다.

“오늘 학당에서 송가네 여식이 작별 선물을 돌렸어.”

“응, 왜요?”

“저번에 사정전에서 영응 대군 삼촌 정혼자를 간택했잖아. 거기에 뽑혔나 봐. 그래서 이제 규방에서 여인의 덕목을 익혀야 한대.”

“!”

그러고 보니 영응 대군의 첫 부인이 송씨였고, 세종께서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강제 이혼시키고 계부인으로 들인 사람이 정씨였는데. 그 정씨가, 우리 희아 경혜 공주의 부군 되는 정종의 누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당에 정종의 누이 정씨 소저도 있어요?”

“정종이 누구야?”

희아는 아직 정종을 모르는지 무심하게 답하며 다시 밥을 먹었다.

때마침 벼락과 피뢰침에 대해 설명을 끝낸 이향이 윤서와 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둘이 재미나게 하오?”

“응, 호위도 이야기에 꺼 줘.”

(응, 홍위도 이야기에 껴 줘.)

“송씨 가문의 여식이 영응 대군과 정혼 하는 이야기요. 우리 두 분 아기씨들께선 장차 누구와 혼인하려나, 궁금하네요.”

윤서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이향은 ‘배우자를 절대 말해서는 아니 되오’ 하는 엄한 눈빛으로 윤서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홍위도 고개를 흔들었지만 다른 의미였다.

“나는, 아밤마마랑 건 승휘랑 계속 가치 사 꺼야.”

(나는, 아바마마랑 권 승휘랑 계속 같이 살 거야.)

“그렇겐 못 하는 거야. 크면 다 혼인을 하는 거야. 금똥이 같은 아기도 낳고.”

“아, 금똥이! 우이 금똥이 혼자 씃쓰하겠다.”

(아, 금똥이! 우리 금똥이 혼자 쓸쓸하겠다.)

홍위가 의젓하게 대청마루 건넌방에 잠들어 있는 금똥이를 걱정했다.

“그럼, 보모 나인더러 데려오라고 할까?”

이향이 물었더니, 홍위가 윤서를 보면서 또 고개를 흔들었다.

“안니에요, 아밤마마. 어먼니 밥 드서야 해요. 밥 다 먹꼬 언는 안아오면 대요.”

(아니에요, 아바마마. 어머니 밥 드셔야 해요. 밥 다 먹고 얼른 안아오면 돼요.)

우리 홍위는 이렇게나 다정하고 또 영리했다.

이향의 무릎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도, 그리고 또 그 옆에 윤서가 앉아서 눈을 맞춰주는 것도 모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아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걱정했다.

홍위는 또 재잘재잘 오랜만에 본 아버지께 그날의 일을 고했다.

“오느 혼자 고삐 잡고 달렸어요. 이제 홧쏘기도 배운대요. 아밤마마가 먼저 가이켜 주데요.”

(오늘 혼자 고삐 잡고 달렸어요. 이제 활쏘기도 배운대요. 아바마마가 먼저 가르쳐 주세요.)

“활을 쏠 땐 과녁에 집중해야 해. 그리고 쏘는 순간에는 숨을 참아야 한다. 그래야 손끝이 흔들리지 않아.”

강서원에서 승마를 배우고 말 위에서 활쏘기를 배울 예정인 모양이었다.

다른 배동들에 비해 어리면서도 홍위는 뒤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활을 무척 잘 쏘는 아버지에게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두 부자는 또 한참 말을 잘 다루는 법, 활을 잘 쏘는 법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금보다 서너 살은 더 큰 홍위와 지금의 홍위만큼 큰 금똥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금똥이도 어서 커서 홍위한테 말타기도 배우고, 활쏘기도 배우면 좋겠다. 홍위는 친절하고 자상하니 이향처럼 다정하게 잘 일러주겠지.’

상상만 해도 코끝이 찡해지도록 포근한 광경이었다.

연생전의 벼락은 이렇게 안타까운 사건으로 궐 내에서는 넘어갔는데, 며칠 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

[하늘과 인간 사이는 아득히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말로 통할 수는 없으나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주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가 울리는 것과도 같이 빠릅니다. 근년 들어 전하께서 거하시는 곳에 벼락이 떨어져 궁인이 죽기까지 하였으니, 이는 가까운 과거에는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풍속은 마땅히 소박하고 삼가야 함에도 한양 거리 곳곳에 상점이 들어서 입고 바르고 쓸 물품들이 쏟아지며 이로 인해 날로 사치하는 병폐가 깊어지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재물을 얻는 자가 많아져 농업에 힘쓰지 아니하고 상업과 공업에만 힘쓰니 항차 인륜지대사가 어찌 되겠습니까.

또한 성현의 가르침을 힘써 배우고 익혀야 할 자제들까지 잡학에 용력을 허비하고 깊은 규방에서 부덕(婦德)을 익혀야 할 아녀자들이 학당에 나간다는 구실로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며 품행을 어지럽히고 (중략)

생각하건데 전하께서 진실이 아닌 형식으로만 하늘에 응답하신 것은 아니십니까? 하늘이 꾸짖어 경고하심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전하를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심이 마치 부모가 그 자식을 꾸짖어 경고하는 것처럼 곁에서 도와주어 안전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전하께서 진실된 마음으로써 응답하는 데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중략)]

(고려사 열전 제신 임완 편의 글 부분 인용 및 변형)

7월 하순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슬슬 더위가 잦아들면서 광평 대군과 혜민국이 주도하는 두창 예방 접종의 구체적 일정과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전하의 근심이 깊어 보이셔서 여쭈었더니 말없이 상소문 하나를 내주셨다.

“아바마마께선 우리 형수님을 정말 많이 아끼시는군요.”

광평 대군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옆에 앉은 이향에게 속삭였다.

부왕께서 천추전에 권 승휘를 자주 부르셔서 함께 논의하신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상소문까지 서슴없이 보여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까닭이다.

그러자 이향이 손으로 한 자 한 자 짚으며 더듬더듬 상소문을 읽고 있는 윤서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수염을 스윽 쓸었다.

“너 그 두창 예방법도 따지고 보면 우리 윤서한테서 처음 나온 생각 아니냐?”

“하이고, 세상 근엄하시던 우리 형님 저하, 팔불출이 다 되셨습니다.”

혜민국에서는 전순의가 매일 “우리 권 승휘 마마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셨을 것인데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노래를 부르더니, 날 때부터 세자답게 태어나셨다고 칭송받으시는 우리 큰형님까지 이러시네.

광평 대군이 입꼬리를 올리고 피식피식 웃을 때였다.

“이 자가 누구랍니까?”

윤서가 종이를 내려놓으며 여쭈었다. 어조가 너무 살벌했다.

“누구길래 감히 우리 전하께 부덕(不德)을 논한답니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우리 전하만큼 학문과 수양에 힘을 쓰시고 백성을 사랑하시는 군주가 또 어디 있다고요? 이자가, 진정!”

“아니, 윤서야. 좀, 흥분을 가라앉히거라. 원래 상소문은 좀 과장해서,”

세종께서 짐짓 윤서를 말리셨다.

사실 세종 본인께서도 밀려드는 상소에 무척 기분이 언짢으시던 차였다. 하지만 재변이 있을 때마다 군주의 과실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차마 불쾌함을 표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윤서는 단순히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상 최고의 성군인 우리 세종 대왕께 감히 ‘덕’을 운운했다는 반사적인 분노를 넘어서, 이 무리가 품은 반동적 시대 역행의 의도가 선명히 읽혔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을 방치하시면 장차 두창의 예방책을 두고도 하늘의 뜻을 어기고 어찌 금수의 질병으로 인간의 질병을 예방하고자 하느냐는 덜 떨어진 상소도 분명 올라올 것입니다.”

“아, 이건 형수님 말씀이 옳습니다. 당장 우리 종친을 대상으로 하는 두창 예방책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지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거 찔리면 말이나 소처럼 변하거나, 마소처럼 미련해질까 두렵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광평 대군까지 윤서의 말을 거들자, 여러 사안에 대해 으레 올라오는 상소에 익숙해져 기분은 나쁘나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세종과 이향이 표정을 굳혔다.

“아바마마. 벼락이나 다른 자연재해의 원리와 대처법을 담은 소책자를 펴내면 어떻겠습니까? 혜민국에서도 여러 질병의 증상, 예방법, 처치법 등을 정리해 펴낼 계획이지 않습니까?”

이향이 안을 내어놓았다.

그러나 윤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책자를 펴내어도 다른 말을 지어내길 좋아하는 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거나, 여전히 다 군주 탓으로 돌리려 들 것입니다. 앞으로 전하께서 펼치실 새 정책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또 자연재해를 들어 이런 상소질을 할 것입니다! 하니 이 상소를 올린 불경한 자들에게 벼락 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허, 윤서야 그건 너무 과격하구나.”

이향이 만류하는데 세종께선 눈을 반짝 빛내셨다.

“벼락을 불러올 수 있다고? 어떻게?”

“그건 쉽습니다. 피뢰침의 원리를 들으셨지요?”

윤서가 생각하는 바를 설명하자 세종께서는 노안으로 흐려진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더니 무릎을 탁 치셨다.

“새로운 지식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한 줌의 옛 지식만 고집하며 제 이익만 챙기려 드는 이들에게 정신 바싹 나게 하는 행사겠구나. 좋다! 상소를 올린 자들을 다 끌어모아라. 그리고 벼락으로 혼을 빼놓고, 두창 예방 침을 찌르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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