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04화 (104/255)

제 104화. 세종 대왕은 윤서에게

“너는 어떤 조선을 우리 홍위와 금똥이에게 물려줄 계획인 것이냐?”

“···전하!”

홍 상궁과 윤씨에 대해 물으시리라 예상하고 있던 윤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승휘로 책봉된 후 빈틈없이 지키던 예법을 잊고 세종의 눈을 빤히 직시할 만큼 뜻밖의 질문이었다.

“저, 저는······.”

“목공장을 만들 때도 부리는 노비들을 양인으로 속량시킬 이십 년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는 네가, 세자빈이 되면 어떤 조선을 만들고 싶다 벌써 다 적어두었겠지.”

물음이 아니라 확신이셨다.

‘세종께선 이미 오래전이라 증거를 잡아낼 수 없는 내궁의 일 따위보다 조선의 미래에 집중하신다!’

제왕의 사고는 이러한 것인가.

장차 있을 명나라의 혼돈을 조선에 유리하게 이용하고자 벌써 김종서와 신숙주, 황보인을 데리고 북방 시찰에 몸소 나선 이향도 이렇게 생각할 것인가.

윤서가 군주의 마음을 힘껏 살필 때, 세종께서 “어서 고하거라.” 다시 재촉하셨다.

윤서는 우선 생각나는 것을 말씀드렸다.

“저는, 조선이,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화폐도 없이 물물교환하는 후진적인 경제, 가뭄이 들 때마다 수천씩 굶어 죽는 그런 가난은 우리 홍위와 금똥이의 세상에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또, 또, 모두 기본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서당이나 여학당처럼 말이냐?”

“예. 서당이나 여학당이 가난한 양민과 노비에게까지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왜냐고 물으시면······.”

가진 건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인재를 키워야지요, 전하!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시각이다.

“백성에게 법률과 도덕을 쉽게 가르칠 수 있도록 전하께서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배우기 쉬운 정음으로 백성들에게 기본 지식과 수 연산 등을 가르치면 자연히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되고, 그리되면 전하의 조선이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예, 전하. 생각하는 것을 종이 위에 쓰는 행위 자체가 생각의 힘을 길러주지 않습니까?”

문자 이야기가 나오면 늘 열성적으로 찬양하는 윤서를 물끄러미 보던 세종께서 툭 말씀하셨다.

“···윤서 너만큼 정음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살뜰하게 활용하는 이도 참 드물다.”

“그, 제가 하, 한문을 잘 몰라서 곤란했는데, 전하의 문자 덕에 똑똑해져서 그, 그렇습니다.”

윤서는 재빨리 얼버무렸다. “방납 비리를 고발한 벽서와 한씨 부인 유모의 기록 뒤에 마마님이 있다는 것을 절대, 절대로 인정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충고하였던 엄 상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웅웅거렸다.

“기본 교육이라.”

즉흥으로 올린 답변을 곱씹으시는 세종을 곁눈질하며 윤서도 이 상황을 짚어 보았다.

‘이거! 혹시! 압박 면접인가?’

엄 상전이 말한 것처럼 양원이나 그 위 세자빈으로 승진시키기 위한 면접!?

그러나 세종께선 윤서가 의도를 더 가늠해볼 틈을 주지 않으시고 또 질문을 던지셨다.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기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을 말해보거라.”

엄혹한 신분제에, 대부분의 백성이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대체 어떻게 기본 교육을 시킬 수 있을지 실행안을 내놓으라는 요구셨다.

“다섯 명 이상의 노비를 거느린 가문이나 일터에서 일정 기간 하루 한 시진씩 정음과 숫자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기본 연산을 가르치란 어명을 내리시면,”

“오지 산간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말고 인적 드문 곳은 어찌할 바냐는 물음에 윤서는 바로 심훈의 <상록수>를 떠올렸다. 이래서 기본 교육이 중요하다!

“···동네마다 가르칠 사람을 파견하면 됩니다. 교육과 계몽을 목적으로 하급 관리를 등용해 파견하든, 그것이 당장 어려우면 내수사 소속 관노비가 전국 각지에 퍼져 있으니 그들을 교육시켜 파견하든 방방곡곡에 기본 교육을 시킬 이들을 파견하면 될 것입니다. 이는 또한 그 지역 토호들이 함부로 백성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하는 감시 효과도 낼 수 있습니다.”

“오호! 문제점은?”

“예?”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있지 않느냐? 네가 말한 안을 시행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문제점이 무엇이냐?”

“무, 문제점은······.”

이거 진짜 압박 면접인가. 이향의 정부인으로, 우리 홍위와 희아의 새어머니로 과연 자격이 충분한지 검증하시려는 압박 면접.

그럼 잘 대답해야 하는데. 윤서가 머릿속에 든 모든 지식을 다 뒤져가며 머리를 팽팽 굴릴 때였다.

“아앗!”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윤서는 배에 손을 올리며 옅은 신음을 흘렸다.

엄마가 긴장해서인지 금똥이가 뱃속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며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자기 여기 있다는 듯, 그러니까 위대하신 세종 대왕 앞이라고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듯.

“왜, 그러느냐?”

별안간 배를 감싸며 신음하는 윤서를 보신 세종께서 놀라 물으셨다.

윤서는 얼굴을 붉히며 솔직하게 답을 드렸다.

“태동이 심해서 그렇습니다.”

“하핫, 그놈, 참, 효자구나. 제 어미한테 정신 차리고 잘 대답하라고 격려를 다하고.“

“······.”

콧등이 시큰 달아올랐다.

세종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다정한 분이셨다.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르는 양녕 대군부터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여러 아들에 이르기까지, 또 거세게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신하에서 신분 천한 노비, 감옥에 갇힌 죄수에 이르기까지.

전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애민 군주시다.

그러니 물증도 없는 심증만으로 윤씨를 벌해 아들 수양 대군과 첫 손주 도원군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겠지.

윤서가 힘껏 세종의 마음을 짐작해볼 때, 세종께서 다시 물으셨다.

“금똥이 격려도 받았으니, 어디 말해보거라. 의무 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일지.”

“백성이 문자를 알게 되면 자연히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삶의 조건이 자신들에게만 불리하게 가혹하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자를 통한 계도가, 나라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지금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장차의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서는 그간 배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단어를 골랐다.

“백성은 곧 하늘이니, 교육을 통해 높아진 민도(民度)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임금과 신하와 지배층이 합심하여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오호!”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는지 세종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다행이다.

용기를 얻은 윤서는 그간 생각한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수양 대군이 개척한 무역로를 통해 앞으로 일본에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들어 가져다 팔 인재들도 필요하고, 화폐가 유통되면 시장의 원리에 의해 다양한 직업과 직군도 생겨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기본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백성이 깨우치고, 백성이 부유한 조선을 홍위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라. 좋다! 내 그런 조선을 만들 기회를 네게 상으로 내려주마.”

“예?”

일을 더 시키시겠다는 뜻이었어?

지금도 혜민국과 화장품, 목공장에 새로 시작할 면포와 도자 공장까지.

일이 너무 많은데.

윤서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세종께서 껄껄 웃으셨다.

“세자빈이 되는 것이 영화만 누리는 자리인 줄 알았느냐? 장차 만백성의 어버이가 되는 자리니 지금보다 더욱 힘써 일을 해야지.”

“세, 세자빈 말씀입니까?”

“그럼, 네가 홍위와 도원군의 목숨을 구하는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또 곧 아이를 낳을 것이니, 해산 후 길일을 잡아 세자빈으로 책봉하기로 중전과 벌써 말씀을 나눴다.”

“저, 전하. 그러면 상 하나를 더 주십시오.”

홍위를 구한 공으로 세자빈의 직위를, 그리고 이향을 도와 전국민 의무 교육 체계를 갖추라는 어마어마한 임무를 부상으로 내려주시는 세종께 윤서는 정말로 받고 싶은 상을 청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말만 하거라.”

“금똥이를 낳고 향후 일 년은 제 손으로 직접 키우며 바깥 활동은 가급적 줄이고 싶습니다.”

이미 이향에게는 말해 두었다.

혜민국 일은 광평 대군을 통해 간접적으로 처리하고, 공장 업무는 당분간 박 상궁 마마님께서 노산대와 처리하시기로.

윤서는 수양 대군 일파를 감시하는 일만 직접 챙기고, 금똥이가 생후 6개월이 될 때까지 매일 곁에 머물며 직접 돌보고, 그 이후 한 돌이 될 때까지는 잠깐씩 나가 일을 볼 예정이었다.

윤서가 당장 일을 줄이겠다고 하자, 세종께서는 으흠, 수염을 쓸었다.

“네가 그 <육아보감>에서 말한 ‘애착 형성’ 때문이냐?”

“예, 일 년은 제가 온전하게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래야 금똥이는 세상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사랑을 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배우고, 나중에 복잡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현명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너도 금똥이가 처할지 모를 복잡한 상황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것이지? 그럼, 지금 내 심정도 알겠구나.”

“!”

윤서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네 생각을 거짓 없이 아뢰거라. 수양의 안사람이 내민 증거가 조작된 것이냐?”

“의원이 죽어 필체는 검증할 수 없사옵고, 처방전의 종이는 오래된 것과 새것이 때에 알맞게 구비되어 있습니다.”

“흥, 그런 건 조금만 신경 쓰면 다 구비 가능하다는 건 그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나는 네 판단을 묻는 것이다.”

“!”

윤서는 전하께서 왜 처음에 이 일을 무덤까지 가져가라 명하셨는지 이해하였다.

전하께서는 윤서에게 단순히 이향의 후궁이 아닌, 장차의 세자빈으로, 나라와 왕실을 위해 최선의 판단을 하라 주문하시는 것이었다.

“전하, 저는 세자 저하께 숨기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만 넌 내 며느리기도 하고 장차 동궁 내궁의 수장, 나아가 내명부의 수장이 될 것이지.”

“······.”

“······.”

천추전에 침묵이 흘렀다.

윤서는 찬찬히 지금의 정국을 다스리는 자, 세자빈의 시각으로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지금 한확, 윤사로, 박종우, 윤번 등 왕실과 혼맥을 맺은 집안 다수가 방납 비리로 걸려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증거가 없이 심증만으로 부부인 윤씨를 처벌한다면 유력 지배층 사이에 왕실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고,”

“그래. 그것이다!”

세종께서 무릎을 탁 치셨다.

“네가 홍가가 일을 저질렀을 때 그걸 홍위를 구한 것으로 포장해 백성들 앞에 세웠듯, 그래서 그날 단오제에 왕실의 위상을 더욱 높였듯, 앞으로도 너는 판단 하나하나를 조선 전체를 놓고 행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을 광인처럼 된 아이 말만 믿고 증거도 없이 처벌한다면, 그럼 어떻게들 나오겠느냐?”

“저하께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계신 대동법, 그리고 장차 추진할 의무 교육 등에도 차질이 있을 것입니다.”

윤서가 보는 너른 시야가 만족스럽다는 듯 세종께서 굳어졌던 얼굴을 펴셨다.

“그렇지만 또한 경고는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 말입니다, 전하.”

“경거망동하게 네가 보고만 있을 것이냐?”

“아닙니다! 외부 세력의 입김이 우리 동궁에 미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치밀한 네가 아니냐. 그리고 중전께서 알게 하고 싶지 않다. 네가 그런 심증을 품었다는 사실을 중전께서 알게 되시면 과거의 악몽에 다시 사로잡히실 것이다.”

중전마마를 위해서라도 세종께선 그 심증을 무시하겠다는 태도를 명확히 하셨다.

“그리고 네가 세자빈이 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경고가 어디 있겠느냐? 너는 해외에 나가 있는 수양까지, 장차 수양이 벌일 일까지, 그리고 그의 수족들까지, 다 살필 것이 아니냐?”

*****

결국 윤서는 중전마마께 심증 부분을 뺀 채 보고서를 올렸다.

홍 상궁은 병이 심하다는 이유로 출궁하게 되었고, 사가에서 병으로 죽은 것으로 곧 공표되었다.

그리고 후궁은 궐을 나가서 해산해야 하는 관례를 깨고, 윤서의 해산청이 궁궐 내에 차려졌다.

해산 후 공식적으로 세자빈으로 책봉될 것이란 어명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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