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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102화 (102/255)

제 102화. 홍 상궁과 수양 대군 부인 (1)

홍 상궁의 일은 내명부에서 조용히 조사하여 처벌을 결정하기로 정해졌다.

단오제 날 세손과 도원군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든 후궁이 둘이나 나왔다고 알려진 덕분에 ‘처복 지지리도 없는 세자’란 오명을 단번에 떼어버린 이향을 위해서, 그리고 조선 개조의 채찍을 높이 든 왕실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홍위와 도원군이 별 탈 없이 구조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홍위와 도원군이 탄 배 위에 있던 이들이 비슷한 또래의 꼬마 배동들과, 이미 눈치를 채고도 입을 꾹 다문 광평 대군과 금성 대군, 그리고 이향 휘하의 호위 내관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윤씨 부인을 궐에 불러들이기 전날, 윤서는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금 간 가슴뼈 때문에 들것 위에 꽁꽁 묶여서 궐에 돌아온 홍 상궁을 만났다.

그리고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답변을 듣고 기록해 중전마마께 보고하였다.

홍 상궁이 죽을 각오로 도원군을 갑판 바깥으로 밀어낼 때, 도원군이 홍위의 옷자락을 낚아채 함께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짐작했던 대로였다.

“작년 여름, 권가 당신이 여기를 수색하기 전 체질이 바뀌었다고 남은 약재를 싸그리, 찌꺼기까지 다 가져갔던 윤씨가 몇 달 전부터 새 약제를 주었어. 그런데 꺼림칙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한번 달여 마셨더니······. 달거리를 하더라고. 매우 규칙적으로. 그래서 약재를 전순의 주부에게 보였더니 정말로 자궁을 보하는 것이라잖아. 그럼, 그 전 거는. 그 전 거는 마셔도 마셔도 손발은 뜨거워지는데 달거리가 영 불규칙했다고!”

전에는 몸이 나른하고 우울했는데, 요새는 기운이 솟는다고도 하였다. 그러니까 새로 준 약재는 정말로 귀한 보약이라는 말이었다.

“이미 몸은 다 망가졌는데. 저하는 이제 날 안지도 않으시는데.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홍 상궁이 부러진 가슴뼈를 부여쥐고 눈을 하얗게 뜨며 울부짖었다.

“금아는 왜 정기적으로 아팠던 거지? 그것도 윤씨가 준 약을 먹어서인가. 아니면, 혹시······?”

윤서가 추궁하자 홍 상궁은 턱을 치켜올렸다.

“그래! 네 짐작이 맞아. 전순의가 지어준 약을 먹이고, 네가 말한 대로 채소와 미역국을 매일 먹였더니 금아가 정말로 조금씩 나아졌지. 그런데 우리 금아가 나아지면,”

홍 상궁은 깊게 숨을 내쉬더니 윤서를 노려보며 도발적으로 속삭였다.

“금아가 아파야 저하가 오시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윤서는 혐오감을 참지 못하고 “매금아!” 소리쳤다. 배가 부풀어 움직임이 굼뜨기 때문이다.

매금이는 윤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펄쩍 뛰어 “나쁜 년! 애기를!” 외치며 홍 상궁의 뺨을 전력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윤서를 보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죽여?” 물었다.

단오제 날 매금이는 신분이 낮아 배 위에 오를 수 없었다. 나중에야 홍위가 강물에 빠지고, 또 홍위를 구하기 위해 만삭의 윤서가 물에 뛰어들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매금이는 당장 홍 상궁을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어서 호위 내관 천가가 밧줄로 꽁꽁 결박해 내사옥에 하룻밤 가둬두어야 했었다.

“아니야. 홍가는 중전마마께서 처벌을 결정하실 거야.”

윤서는 일단 매금이를 물린 후 다시 홍 상궁에게 물었다.

“증거, 있어? 이전 약에 대한 증거가, 있어?”

윤서가 묻자 홍 상궁은 치맛자락을 훌렁 걷어 보였다. 속살이 아토피에라도 걸린 것처럼 긁어서 딱지투성이였다.

“내 몸뚱아리가, 증거야.”

“하아.”

증거도 없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무모할 수가 있는지.

한숨을 쉬며 윤서가 돌아서는데, 홍 상궁이 통증에 신음하며 짐승처럼 외쳤다.

“내가 죽어도, 금아는 돌봐, 줄, 거지? 넌, 아이는, 해치지 않으니까. 도원군도, 살렸으니까!”

“······.”

대꾸 없이 나오는 윤서의 뒤로 홍 상궁의 절규가 쏟아졌다.

“권가, 네가 있어서, 너 때문에, 도원군을, 죽일, 용기를, 냈다구! 네가, 네가, 금아는, 돌봐줄, 테니까! 다, 너! 너! 때문이야!”

윤서가 적어 올린 홍 상궁의 주장을 읽으신 중전마마께서는 딱 한 마디 하셨다.

“이렇게 윤서 너를 탓하는 것도 그 신경독인지 뭔지 하는 것이 들어 있다는 백분 때문이냐? 참으로 딱하구나.”

그렇게 홍 상궁 조사를 먼저 하고 윤씨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

이틀 뒤 중궁전에 불려온 윤씨는 뜻밖에도 뒤로 물러앉아 있는 윤서에게까지 절을 올렸다.

“내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소.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아 바치고 싶은 심정이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정4품 승휘에게 정1품 부부인이 절을 올리다니!

당황한 윤서가 올챙이처럼 부푼 배를 하고 일어나려고 버둥거리자 먼저 절을 받았던 소헌 왕후께서 화급히 손을 저어 만류하셨다.

“받아도 된다, 받아도 돼. 도원군의 목숨을 구했으니 평생 앉아서 절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런데 요새 윤서를 볼 때마다 업고 다니고 싶으신 듯 눈에서 꿀을 뚝뚝 떨어뜨리시는 중전마마야 그렇다고 쳐도.

“예, 소첩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너무 큰 은혜를 입어 어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을 가득 담은 상자로나마 감사를 표했는데 도로 돌려보내고.”

윤씨는 너무 공손하게 납작 엎드려서 다시 치하했다.

너무 매끄러운 감사의 표시였다.

보통 그간 그렇게 갈등이 있었으면 감사를 표할 때 어색하고 투박하게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그간 저지른 낯 뜨거운 무례, 정치적으로 죽게 놓아두는 것이 당연한데 굳이 구해준 의도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움,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혼란 등으로 코를 벌름거리고 눈은 자꾸 왼쪽을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윤씨의 감사는 지나치게 청산유수였다.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해온 것처럼.

‘수양 대군 측에 누군가 치밀한 자가 붙었구나!’

윤서는 직감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요새 방박량진(사쓰마시)에서 보내온 소식 중 별다른 것이 없었는데. 수양 대군이 도진(시마즈) 가문의 주요 인사와 교류하고 이제 그 밑 열도로 항해를 준비한다는 외에 새로운 소식이 없는데.’

간자의 정체가 탄로났다. 그리고 수양 대군에게 생긴 새로운 조력자가 윤서의 간자의 소식을 조작해 보내고 있다!

작년 말부터 전국에 파발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십 리마다 역참이 생기고, 이 역참에 명나라 은자를 내면 민간도 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윤서도 노산대가 수양 대군 세력에 심어둔 자들로부터 발 빠르게 동향을 보고 받고 있었다.

그간 수양 대군과 윤씨 부인은 역사서를 읽으면서 예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경솔하고 얄팍했다. 이향이 건재하게 대리청정까지 하고 있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고는 하나 우리 홍위가 건강하게 크고 있었는데도 수양 대군은 조심성 없게 야망을 내보였고, 윤씨 부인은 거리낌 없이 궐 안을 휘저었었다.

이 부부가 오늘까지 무탈했던 것은 세종께서 자식들을 워낙 아끼시고, 그런 아버지의 강한 의지에 이향도 동생들의 무례와 야망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있어서였는데.

‘누구를 얻은 것일까. 누구를 책사로 얻었기에 저리 치밀해진 것인가.'

혹시!

중궁전을 나서자마자 박 상궁을 불러 한명회가 최근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수양 대군의 명례궁에서 부산까지 역참을 이용하는 자가 누가 있는지 당장 알아내야 한다고 윤서가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윤씨 부인이 윤서를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긴 권 승휘는 요새 한양의 돈이란 돈은 싹싹 긁어모으고 있는데 내가 바치는 은자 한 상자가 무슨 대수이시겠소? 아니 그렇습니까, 중전마마?”

그래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윤씨는 살짝 말에 뼈를 심어 윤서의 비상한 사업 수완에 대한 경계심을 일으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윤씨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 우리 윤서가 재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지. 그래서 전하께서도 윤서의 면포 공장과 도자 공장에 절반이나 투자하지 않으셨느냐? 내수사에 속한 공노비들이 거기서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중전마마께서는 윤서의 사업 수완을 세종께서 무척 기꺼워하신다는 사실을 흘리며 ‘쓸데없는 시기 말고, 좀 있다 물을 말에 추호의 거짓도 없어야 하느니라.’ 서늘하게 경고하셨다.

윤씨 부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예,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재물로라도 보은하고 싶은데 필요 없다고 하니 대신 소첩 매일 인시 반각(새벽 네 시)에 일어나 몸을 정갈히 하고 부처님께 백팔 배를 올립니다. 권 승휘의 순산을 기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윤씨는 사뭇 진실하고 공손한 어조로 고한 후 뒤쪽을 향해 “조 전언!” 하고 조그맣게 불렀다.

그러자 문가에 엎드려 있던 조 전언이 비단 보따리 두 개를 종종걸음으로 윤씨에게 가져다주었다.

윤씨가 보따리를 들고 중전마마께 나아갔다. 그리고 직접 보따리를 풀어 내용물을 중전마마께 보여드렸다. 하나에는 가지런히 정돈된 종이 뭉치가, 다른 하나에는 한약재가 든 종이함이 들어 있었다.

“무엇이냐?”

“종조카 홍 상궁에게 왜 우리 도원군을 밀었는가 따져 물었더니 제가 입궐 초부터 건넸던 약재에 흉한 것이 들어 있어 자신과 금아의 몸이 상했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오늘 중전마마께서 소첩을 부르신 연유도 그것이 아니옵니까?”

“!”

“!”

중전마마께서는 종이 뭉치를 그대로 서탁 위에 내려놓고 윤서부터 바라보셨다. 며칠 새 부쩍 흰 머리가 많아지신 중전마마의 복잡한 눈빛엔 지극히 아꼈던 둘째 며느리가 큰아들의 후궁에게 손을 썼다는 끔찍한 일을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홍 상궁에게 주었던 처방전과 해당 약재입니까?”

윤서가 중전마마 대신 윤씨에게 물었다.

“그러하네. 약재 처방전과 처방전 대로 준비해 홍 상궁에게 주었던 약재일세. 중전마마, 우리 윤씨 가문에서 오래 거래한 의원이 홍 상궁을 진맥하고 체질에 맞춰 처방을 낸 기록과 그 약재들입니다. 진맥을 볼 때도, 또 처방을 내어 약재를 선별할 때도 매번 홍 상궁의 친정어머니, 저의 사촌 언니도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무슨 수를 썼겠습니까? 소첩, 진실로 억울하옵니다.”

“···그러하냐?”

“예, 추호의 거짓이 없는 진실입니다. 저는 세자 저하의 아낌을 받으면서도 쉽게 잉태하지 못하는 조카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고 전하와 중전마마의 아낌을 받는 둘째 며느리로서 어서 보위를 이으실 왕손이 태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귀한 약재로만 성심을 다한 호의를 보였을 뿐입니다.”

자신 있게 답을 올리며 윤씨는 ‘한명회란 자가 정말 대단하기는 하구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숨겼다.

4월 초, 가져간 선물용 부채가 바닥이 났다고 연통이 와 다시 마련한 고급 부채를 집사를 통해 방박량진으로 보냈더니, 4월 말 돌아온 집사가 수양 대군의 말을 전했다.

“부인, 이제 기밀 사항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전하시오. 서신은 언제든 중간에 가로채일 수 있소. 내게 한명회란 인재가 찾아왔소이다. 한명회가 말하길,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야심을 내보이는 것은 죽음을 불러들이는 경솔함이니, 앞으로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철저하게 복종하는 시늉을 하라 하였소. 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로 우리는 너무 순진하게 뜻을 내보여 형님 저하의 경계심을 사고, 그 결과 이렇게 거친 바다 위에 팽개쳐지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소. 하니, 부인. 엎드리시오. 온 힘을 다해 순종하시오. 그리고 홍가에게 했던 일은 언제든 탄로날 수 있으니 반드시 증거를 미리 만들어 두라고 한명회가 말하였소. 행한 모든 일에 대해 그럴듯한 증거를 만들어 두시오!”

그래서 부랴부랴 이미 죽여 없앤 의원의 필체를 흉내 내 처방전을 위조해 두었던 것이 이렇게 금방 쓸모가 생겼다!

윤씨는 그 훤칠한 한량 한명회의 치밀함에 다시금 감탄하였다.

윤서는 침착하게 윤씨의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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