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86화 (86/255)

제 86화. 새봄, 동생을 맞는 홍위는 (1)

“저하, 우리 희아에게 아주 빼어난 수학 선생이 필요해요.”

안에 좁쌀과 솜이 들어 있어 눕는 대로 편안하게 모양이 잡히는 쿠션 의자에 함께 누워 윤서는 희아처럼 재능이 빼어난 아이는 수학 자체에 통찰력을 가진 빼어난 수학자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제 조금 부풀기 시작한 배를 쓰다듬던 이향이 윤서를 당겨 안았다.

“무얼 걱정하는지 안다. 아라비아 숫자와 네가 쓰는 그 낯선 부호를 정리해서 기초 산학 교재를 만들도록 내가 조치해 두었다. 그 교재를 이해한 네가 희아를 가르친 것으로 아바마마께 말씀드리면 되고, 기초 교재는 이미 이순지와 정인지에게 넘겨 정리하라 했으니, 이순지가 희아를 가르치게 될 것이야.”

“와, 대체 언제 다 그런 것까지!”

수양 대군이 출항하고, 안평 대군과 임영 대군도 각자 탄광을 감독하러 떠나는 일을 처리하면서, 여진 부족과 왜의 사신들을 접견하고, 임지로 떠나가는 수령관들을 불러 각오를 다지게 하는 분주한 업무 속에서도 이향은 희아와 윤서를 위해 꼼꼼하게 일을 챙기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고단하게 일을 하니. 이제 삼십 대도 되었는데.’

윤서는 문득 입덧에 시달리고 육아보감 최종 편집을 하고, 조선 실정에 맞게 이야기를 각색하고, 또 광평 대군과 마진과 두창 치료법을 정리하느라 바빠 이향의 몸을 챙기지 못했다는 자각이 퍼뜩 들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사나흘에 한 번은 목욕 시중을 들며 온몸을 살폈는데!

놀란 윤서가 이향의 저고리를 들춰 배를 살피며 물었다.

“저하, 요새 종기는 어떠세요?”

“비누로 잘 씻고 있소. 하지만 홍 내관은 사내니 부인처럼 꼼꼼하게 살피지는 못하지.”

이향의 목소리에 은근한 장난기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종기에 관해서 윤서는 늘 단호했다.

“벗어보세요, 저하. 등을 살펴야겠어요. 작은 거라도 있으면 고약을 붙여야 하니까. 놓쳤다간 신숙주처럼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윤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향은 솜을 넣어 정교하게 누빈 저고리와, 안에 입는 속저고리까지 다 벗고 윤서에게 등을 들이밀었다.

윤서는 촛대를 들어 눈으로 등과 옆구리까지 꼼꼼히 살피고 또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보며 피부 밑으로 부어오른 부위가 있나 살폈다.

그런데 손 끝에 와 닿는 몸이 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근육이 잡혀 있었다.

“저하, 요새 활 열심히 쏘시고 말 열심히 타시더니, 와, 이 잔근육 좀 봐요.”

그러자 이향은 윤서를 당겨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부인을 안지 못하니 힘이 남아돌아서, 응?”

“······!”

“어의에게 슬쩍 물어보니 삼 개월이 지나면 조심스럽게 해도 된다고 하더이다.”

잊고 있었다.

전에도 종기 검사는 늘 뜨거운 밤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신년 연회에 참석했던 이들 중 눈치가 빠른 여인들 몇이 윤서의 임신을 눈치채 소문을 내었다.

그래서 요새 동궁의 후궁들은 이제 이향이 자신을 찾아줄까 몹시 기대하는 눈치였다.

내 사내를 유혹의 눈길로 갈망하는 저 지붕 너머의 여인들을 생각하자,

욕망과 애정과 독점욕이 강렬하게 휘몰아쳤다.

“저하······.”

윤서는 매혹적으로 속삭이며, 저고리 고름을 풀고 밤의 유희에 몸을 맡겼다.

*****

이미 작년 가을부터 진행 중이던 탄광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새해 초부터 한양으로 검은 석탄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군기시와 여러 작업장에서 석탄 가루에 나무 부스러기, 짚 등을 섞어 태우기 시작하자 그간 연료로 쓸 나무가 부족해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물품들이 활발하게 생산되기 시작했다.

칼과 활, 창 등의 무기뿐 아니라 삽과 쟁기 등의 농기구, 도자기, 흙과 모래를 섞어 구운 벽돌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자염법으로 생산하는 소금의 양도 대폭 늘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이향은 전국 각지에서 여러 사업을 의욕적으로 시행하였다.

한양에서는 위생을 개선하기 위한 정비 사업에 들어갔다. 하수도 정비 공사, 왕궁 내와 도성 곳곳에 목욕탕 공사, 정릉 계곡물을 끌어 쓸 수 있는 수영장 건설 등의 토목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겨울철 도로 정비처럼 일당을 쌀로 지불하는 유상 사업이었다.

특히 궁궐 후원에 세워진 목욕탕은, 깊게 땅을 판 후 모래가 많이 들어간 단단한 방수 벽돌을 붙이고 높게 세운 외부 건물에서 석탄을 때서 끓인 물이 자동으로 흘러 들어가게 설계되었다.

효성 지극한 이향은 파발 시스템을 이용해 온천에서 물을 실어와 다시 덥혀서 세종과 소헌 왕후께서 사철 목욕을 하실 수 있게 해드렸다.

세종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실록에

[궐 내 온천 목욕탕이 완성되었다. 임금께서는 효성 지극한 세자 덕분에 노년에 큰 기쁨과 위안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며 굵은 눈물을 흘리시었다. 임금의 병증을 염려하던 노신들도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하였다.]

기록되었다.

또 이향은 토목 공사에 일가견이 있는 정분을 경차관으로 삼아 바로 전 해에 많은 이들이 굶주려 죽은 북방에 파견했다. 정분은 현지 관원과 함께 유민들을 동원해 눈 녹은 물을 가둘 수 있는 보를 곳곳에 파고, 농지를 개간하고, 씨앗을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노역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일당을 쌀로 지급하고 또 나머지 백성에겐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받는 의창 제도를 시행하게 했다.

이 모든 공사에 필요한 기금은 주로 함경남도 단천에서 엄자치가 보내온 은으로 충당했다. 엄자치는 지난 가을부터 단천에 내려가 은광을 개발하는 임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왕실과 조정에서 벌이는 공사로 민간에 쌀과 포목, 그리고 은까지 돌자 나라 전체에 활력이 생겨났다.

운종가에서 파는 물품도 다양해졌다.

윤서와 박 상궁이 낸 비누와 소금 치약 상점이 잘 되자 이를 본 세도가 부인들이 비슷한 사업에 많이 뛰어들었다. 주로 장신구와 화장품, 옷을 지어 파는 상점들이었다.

윤서와 박 상궁은 기존 상점 외에 가정에서 상비약으로 구비 해 놓으면 좋을 각종 연고, 고약, 식물로 술을 만든 후 증류해 만든 소독약 등을 파는 약국을 하나 더 내었다.

또한 전통적인 방석 외에 왕겨나 귀리 등을 넣고, 솜이 들어간 겉감으로 편안하게 기대앉을 수 있는 큰 쿠션, 인체 공학을 응용한 좌식 의자 등을 파는 가구점도 내었다.

"황금 똥을 싸는 태몽을 꾼 아이를 품고 있어서 그런가, 부인! 조선의 재물을 싹 다 쓸어담을 작정이오?"

이향이 놀릴 정도였다.

윤서는 또 중전마마의 허락을 얻어 희아 명의로 운종가에 장난감 가게를 하나 냈다. 희아가 설계한 조립 장난감들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희아의 유모 백씨가 노비 출신이면서도 글을 잘 알고 똑똑하여 목공 장인들을 고용해 제법 수완 좋게 상점을 운영했다.

여학당 운영은 중전마마께서 총괄하시고 정 승휘가 업무를 보조하게 되었다.

기본 수업 교재는 윤서와 유 승휘, 정의 공주가 주로 만들었고, 한학에 조예가 깊고 정음으로 글도 잘 짓는 유 승휘가 기초 한문과 정음 교육을 맡았다. 그리고 기초 산학은 수학에 재능이 많은 정의 공주가 일단 맡았다.

혜민국의 의녀 교육은 어린 권 승휘가 제법 잘 이끌고 있다. 여성 의원으로 양성할 의녀들과 함께 침술과 탕약 쓰는 법까지 익히면서, 어린 권 승휘는 의녀 집단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면서 차근차근 궐에서 나가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일이 돌아가도록 해 놓고 윤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날로 배가 부르기 시작한 임산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 위에서만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백조처럼,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티 안 나게 분주하였다.

가장 크게 시간을 쓰는 일은 마진과 두창 치료법과 예방법이었다.

아직 바이러스나 균 개념이 없는 시대이고, 윤서는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기초 상식밖에 없어서 치료법을 특정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광평 대군은 아버지를 닮은 성실함으로, 전순의와 함께 의서를 총망라해 뽑아낸 치료법에서 두 병증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약재를 추려냈다.

“마진과 두창은 증상이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지금 당장 병자가 없으니, 마진과 두창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병자들에게 각각 약을 써보면서 효과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일단 발진이 돋고 열이 나면서 설사를 하는 증상을 잡는 약재와 처방은 찾은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치료법을 정리해 나갔다.

또 광평 대군이 중국 송나라 시대 의서에서 천연두의 종묘를 채취하고 보관하는 법을 찾아내었다. 어떤 천연두 환자에게서 어떻게 생긴 딱지를, 언제 떼어낼까가 상세히 적힌 책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병자를 구할 수 없어, 윤서는 교과서에서 배운 지석영의 우두법을 생각해 냈다.

“원래 우두라고도 하여, 소를 치는 이들이 소에게서 옮은 창진을 앓고 난 후 자연스럽게 면역이 생긴다고 어디서 보았습니다만, 우리나라 소가 아니라 저 먼 서역에서 우유를 짜내는 소 종류에서 채취하는가 봅니다. 우리의 누렁소가 아니라면, 비슷하게 발굽을 가진 다른 동물은 어떨까요?”

메르스 같은 것이 인수공통의 질병으로 발굽 짐승에서 기인했다는 걸 생각해 낸 윤서가 묻자, 광평 대군이 아! 하는 표정으로 전순의를 보았다.

“말도 발굽이 있지 않은가? 소는 귀하지만 말은 흔하니 한번 찾아보시게.”

그리하여 예방법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의 두창 대신 말과 소에서 예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기로 이야기되었다.

치료법에서는 제법 성과가 나는데 예방법에서 진척이 느려 초초해 하던 윤서가 돋보기와 안경을 만들게 된 것은 부수적인 성과였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처럼 곰팡이를 배양해 바이러스나 균을 확인할 수 있게 현미경을 만들어볼까 하다가 생겨난 성과였다.

석영을 깎아 만든 유리의 두께에 따라 글자의 크기가 달라지는 걸 확인하신 세종께서는 윤서의 손을 덥석 잡으시고는

“영 침침해 고생이었는데, 네 덕에 내가 책을 마음껏 보게 된다. 고맙구나.”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그러나 진실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여전히 우리 홍위를 돌보는 일이었다.

세손 책봉례를 치르고 정식으로 세손 각하가 된 홍위는 새해부터 세손 강서원에서 또래 배동 열다섯 명과 함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배동은 주로 다섯 살에서 여덟 살까지 아이들로 구성되었는데, 이향은 훗날을 생각해 주요 인물의 자손을 많이 포함시켰다.

그래서 수양 대군의 장남 도원군, 정의 공주의 장남 안여달, 신숙주의 차남 신면, 정인지의 차남 정현조, 한확의 삼남 한치례 등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향이 대리청정을 맡아 강력하게 조정을 장악하고, 암암리에 세를 키워가던 대군들이 모두 외방으로 나가자 세손 홍위의 위상은 전과 달리 아주 높아졌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아이다.

강서원에서 오전 수업을 하고 돌아오면 홍위는 많이 지친 듯 윤서에게 달려와

“아나져!”

하고 안기기를 여전히 좋아했다.

아이들이 그 특유의 순진함으로 홍위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각하, 어른들 하시는 말씀 들었는데 아무리 예뻐하던 아이라도 자기 자식이 생기면 덜 예뻐진답니다.”

하는 종류의, 천진하나 홍위에겐 상처가 되는 말 등이었다.

3월 말, 벌써 봄 꽃망울이 환하게 피어난 날에 아지 이씨의 손을 잡고 윤서의 거처로 건너온 홍위가 다른 때처럼 윤서에게 달려오지 않고, 앙다문 입술로 울먹울먹했다.

‘무슨 일이에요?'

윤서가 이씨 부인께 입 모양으로 물었다.

이씨 부인이 "휴우" 한숨부터 내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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