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화. 종기 수술 시연과 세종의 아들들 (1)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종기가 종종 목숨을 앗아가는 큰 병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음을 근심하신 전하의 어명에 따라 혜민국에서는 지난 육 개월간 종기의 예방과 치료법을 연구하였습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진 10월 24일.
혜민국에서 종기 치료법에 대한 시연이 열렸다.
뜰에 찬바람을 막는 간이 벽이 세워지고, 맨 앞줄에 의자가 다섯 개 놓였다.
의자에는 가장 귀하신 분인 세종과 소헌 왕후, 세자 이향, 효령 대군, 영의정 황희가 앉았다. 그 뒤로 나머지 정승과 육조의 판서, 안평 대군, 임영 대군을 비롯한 여러 대군과 계양군, 한남군을 비롯한 서왕자들이 빼곡하게 섰다.
이날 종기의 예방, 치료법의 성과를 발표하는 이는 수양 대군이었다.
스물여섯 살의 수양 대군은 이렇게 중차대한 성과를 발표해 아바마마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성과집을 보시겠습니다.”
수양 대군의 말에 따라 견습 의녀들이 실로 상단을 꿰맨 두툼한 종이 뭉치를 하나씩 귀빈께 바쳤다.
표지에는
[腫氣 豫防 治療法]
(종기 예방 치료법)
이라 한문으로 써 있다.
한 장을 넘기면 <종기 예방 치료법> 이란 큰 제목 밑으로 개괄, 예방법, 초기 종기 치료법, 중증도 종기 치료법, 수술 치료법 등이 작은 목차와, 해당 목차의 쪽수가 쓰여 있다.
그러하다.
이러한 보고서의 형식은 모두 다 윤서가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써본 보고서의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보고서를 받아본 이들 모두는 “오오!” 감탄음을 내며 육조 산하 각 부처에도 이런 식의 양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양 대군이 각 부의 책임자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고 총책임자 수양 대군을 칭찬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향만은 고개를 돌려 차일 안 동쪽 모여 서 있는 혜민국 관계자와 동궁의 여인 중 윤서를 찾아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보고 윤서 옆에 서 있던 양 사칙이 환하게 마주 웃어 보였지만.
“종기의 예방은 규칙적인 목욕이 가장 중요합니다. 거기 다섯 번째 쪽의 표를 보십시오. 수표교 밑의 거지 떼를 대상으로 한 달간 삼 일에 한 번씩 목욕을 한 무리 십 인과, 전혀 목욕을 하지 않은 무리 십 인을 비교하여 종기의 발생 여부, 발생하였다면 그 증세의 심각함의 정도를 조사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다섯 번째 쪽에 수록된 <목욕 종기 상관관계>란 도표는 세로축은 크게 목욕, 비목욕으로 나눠 목욕을 한 10인, 목욕을 하지 않은 10인의 이름을 칸칸마다 적어 놓았다. 가로축에는 증상 없음, 가벼운 종기, 중증의 종기, 극심한 종기, 처치법, 경과, 결론 등을 칸칸마다 적어, 20인의 증상과 처치법, 결론을 한 눈에 보이게 한 도표였다.
“오호, 이 도표는 정말로 한눈에 쏙 들어오는구나. 이걸 그대로 필사해 정부 관원 모두에게 나눠주도록 하라.”
전하께서 명하실 만큼 도표는 목욕과 종기와의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목욕을 삼 일에 한 번씩 목욕을 한 자들에게는 종기가 없는 이들이 5인, 가벼운 종기 3인, 중등도의 종기 2인 정도에 그쳤다.
그렇지만 한 달 내내 목욕을 하지 않은 거지들 중 6인은 크고 작은 종기가 나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중증도 종기에 이른 자도 3인이었는데, 이들은 오늘 시연할 종기 수술을 이미 받아 모두 완치된 상태다. 이들 중 수표교 거지패 수장 칠성이가 이따 치료 흉터를 보이며 치료 과정을 직접 묘사할 예정이었다.
수양 대군은 종기 치료약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수양 대군이 약을 보일 때마다 의녀들이 해당 약제를 귀빈들에게 바쳤다.
“이 약제는 살이 벌겋게 부어오르며 통증이 생겨나는 초기에 바르는 자운고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살이 벌겋게 붓고 누런 농이 차기 시작할 때 붙이는 고약을 소개했다.
윤서가 어릴 적 아빠께서 “옛날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명래 고약을 붙였단다.” 하신 말씀을 떠올려 전순의에게 말해 만들어 낸 고약으로, 쉬나무 기름과 송진에 금은화, 연교, 목향, 유황, 창출 추출물을 넣어 꾸덕하게 만든 것으로, 붙이고 있으면 농이 빠져나왔다.
“자 그럼 이제부터 가장 심한 형태의 종기를 침이 아닌 칼로 절개하여 치료하는 법을 보이겠습니다.”
오늘 수술 시연의 대상자는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장장 9개월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신숙주였다.
일본에서 가는 곳마다 조선의 빼어난 학문을 전파하고 해당 지역의 산천을 살펴 지도를 작성하고 각 지역의 풍속과 지배자 현황을 기록하는 등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인천으로 귀국한 신숙주는, 과로한 탓에 등에 한 뼘 정도의 종기가 크게 잡혔다.
사흘 전 수양 대군을 통해 신숙주의 종기 소식을 들었을 때, 윤서는 전순의에게 그를 수술 시연 대상자로 삼으라고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탕약을 복용하게 하고 침으로 일부 배농한 다음 고약을 붙이면 될 것이온데요.”
전순의가 처음으로 윤서의 지시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지극한 충성심을 권력을 향해 굳건하게 피워내는 성품의 전순의는 혜민국의 일을 맡게 된 후 권 승휘를 거의 숭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약이든 치료법이든 도달해야 할 최종 결과물의 형태를 명확하게 먼저 제시하고 과정은 자율로 맡겨 두기 때문에 전순의는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치료법을 마음껏 시도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서너 번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면서 세자 저하께서 혜민국에 오셨는데, 그때마다 권 승휘를 보는 저하의 눈길엔 노골적으로 애정이 넘쳐흘렀다.
그러니 전순의는 절대로 권 승휘 마마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일이 없었는데, 윤서 밑에서 점차 ‘의원으로서의 직업윤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차츰 가지게 된 의원의 양심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윤서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신 수찬께서는 오랫동안 해외에 체류하시면서 몸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몸이 약해지면 종기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질 수 있지 않습니까? 전하와 조정께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니 후딱 낫게 해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오나,”
“어허!”
권 승휘는 드물게 큰 소리까지 내며 기존에 정해진 거지 시연자 대신 신숙주를 고집했다.
“!”
눈치가 아주 기민한 전순의는 권 승휘 마마님이 개인적인 무엇인가로 나름의 ‘징벌’을 행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거 참. 권 승휘 마마님께 잘 못 보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군.’
전순의는 등줄기가 서늘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수양 대군도 종기 치료법을 통해 신숙주에게 빚을 하나 지우려는 계산으로 수술 치료법을 찬성했고, 이는 또 전하의 입을 통해
“신 수찬은 수술로 어서 종기를 떼어내고 속히 몸을 보한 후 집현전에 나와 나를 도우라.”
하는 어명으로 신숙주에게 도달하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 신숙주가 공식적인 종기 수술 대상자 1호가 되게 된 사연이었다.
수술 시연은 대치료실이라 이름 붙여진 혜민국 내의 가장 큰 치료실에서 행해졌다.
전하를 비롯한 참관인 모두는 출입구에서 술을 증류한 알코올로 손을 닦고, 의녀들이 얼굴에 씌워주는 입 가리개,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가리는 흰색 천을 쓴 다음에야 치료실로 들어갔다.
이런 의식은 굉장히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술법에 대한 신뢰를 엄숙하게 높여주는 효과를 내었다.
윤서로서는 기껏 성공한 수술이 귀빈들 중 누가 묻혀 들어온 세균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절차였고, 수양 대군은 이 일이 장대해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의 평판이 높아지기 때문에 적극 찬성하였다.
“이언 모스브로 뵈어 송구하오니다.”
(이런 모습으로 뵈어 송구하옵니다.)
역사 속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윤서의 작은 복수의 대상이 된 가여운 신숙주가 기다란 수술대에 엎드려 동그란 구멍을 통해 환부를 노출하고, 입에는 작은 대나무 재갈이 물려진 굴욕적인 모습으로 인사말을 올렸다.
“!”
신숙주가 수술 1호 대상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이향이지만, 고통 때문에 혀를 깨물지 말란 용도로 저리 우스꽝스러운 재갈을 물린 모습을 보자마자 감을 잡은 이향이 고개를 돌려 입구에 서 있는 윤서를 보았다.
입 가리개 위로 드러난 윤서의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 유쾌하게 빛이 났다.
‘권윤서!’
이향은 짐짓 무섭게 미간을 찌푸려 보이고 다시 수술대 위의 신숙주를 보았다.
‘신숙주, 너마저!’
저절로 잔혹하게 싸늘해지는 눈빛을 몇 번 눈을 깜빡거려 지워내고, 이향은 다시 평온한 낯빛으로 수술대 뒤에 선 전순의를 바라보았다.
전순의는 먼저 수술에 쓸 용도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과 핀셋을 알코올 묻힌 천으로 닦아낸 후 귀빈을 향해 말했다.
“그럼, 시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신 수찬 어르신,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니 고통스러워도 참아주십시오.”
그리고 혹시 너무 고통스러워 치욕스러운 모습을 보일까 봐 배려하듯 신 숙주의 머리 위로도 천을 덮었다.
칼이 동그란 구멍 위로 벌겋게 부풀어 오른 환부의 중심부를 거침없이 갈랐다.
“끄으으으으.”
덮인 천 아래 고통스러운 신음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치료실 안의 그 누구도 신숙주의 고통에 신경을 쓰는 이가 없었다.
모두 벌려진 상처 안에서 누렇게 고름이 나오기 시작하자 수술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세종께서는 이향의 부축을 받아 더욱 가깝게 다가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셨다.
전순의는 얇은 가위와 핀셋으로 거침없이 고름 덩어리를 빼내기 시작했다.
보조하는 의원 하나가 핀셋 두 개로 절개 부위를 벌리면 전순의는 보기에 퍽 징그러운 노란 고름을 사정없이 빼내고, 다른 의원 하나는 연신 알코올에 적신 천으로 계속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을 닦아냈다.
“겉보기에는 아주 작은 종기였는데, 안에 이렇게나 많은 농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냐?”
“쉿, 아바마마. 말씀을 삼가소서. 침 튀깁니다.”
세종께서 놀라실 정도로 환부 안에서는 고름 주머니가 계속 이어 나왔다.
환부를 조금 더 째고, 전순의가 알코올로 다시 손가락을 닦고 누르자 안에 깊게 숨어 있던 농이 다시 흘렀다.
일 각에 걸쳐 누런 농이 달린 조직을 모조리 다 떼어냈을 때 환부에는 엄지 손가락 크기의 큰 구멍이 뚫렸다.
전순의는 그 구멍 속으로 알코올 적신 천을 넣어 구석구석 소독했다.
“끄아아아아.”
마취도 없이 속살에 적용되는 알코올의 쓰라림에 신숙주가 꽁꽁 묵힌 사지를 들썩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전순의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더 힘을 주어 속살을 빠짐 없이 소독한 후 비로소 고개를 들어 말했다.
“지금 보셔서 아시겠지만 겉으로는 손톱만큼만 농이 잡힌 종기도 이렇게 열어서 보면 그 밑으로 상당히 넓고 깊게 농이 잡혀 있습니다. 그대로 둘 경우에는 점점 더 주변으로 퍼져나가서 전신이 붓고 열이 나게 되며 위험해집니다. 반드시 열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 환자의 상처가 오염될 수 있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시지요.”
수양 대군의 제안에 따라 모두 전에 있던 뜰로 나왔다.
이향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은 대신 윤서의 곁에 와 섰다. 그리고 곤룡포 뒤로 윤서의 손을 단단히 잡은 후,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오늘의 은혜를, 내 잊지 않으마.”
권윤서에 따르면 자신의 사인이 등에 두 뼘은 되게 난 커다란 종기라고 하였다.
태조께 물려받은 튼실한 육체 덕분에 종기로 죽는다는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오늘 보니 정말 그 정도 크기의 종기라면 그 밑에 얼마나 많은 농이 넓고도 깊게 박혀 있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종기를 그냥 침으로 몇 군데 찔러서 배농하는 정도의 기존 치료법이라면 자신은 정말 죽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실감이 되었다.
“신 수찬 환부는 이대로 열어둔 채 닷새 정도 소독하면서 농이 다 제거되고 살이 건강하게 되면 꿰매게 됩니다. 여기 이런 식으로 수술한 환자의 중간 상태를 보십시오.”
수양 대군은 수표교 밑 거지패 수장의 등어리를 모두에게 내보였다.
한 뼘은 되게 실로 꿰맨 부위에 새 살이 돋으면서 지렁이처럼 불쑥 솟아 붙어가고 있었다.
귀빈들 모두 거지패 수장의 환부에 집중해 있을 때, 수양 대군 이유는 애정에 가득 찬 눈길로 서로만 담고 있는 세자 이향과, 그의 총애 후궁 권 승휘를 쏘아 보았다.
‘오늘은 나의 날이거늘!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