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66화 (66/255)

제 66화. 금아 현주의 중독 (1)

“손톱 끝의 검은 줄은 일반적으로 중독 증세를 나타냅니다만······,”

전순의는 식은땀을 흘리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간 혜민국에서 권가 나인, 아니 이제는 종4품 후궁이 되신 권 승휘 마마님과 함께 여러 약제와 치료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다.

‘이분은 치료법과 치료약 개발에서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시나 때로 죽일 것 같은 잔혹한 살기를 풍기며 노려볼 때가 있다.’

의원 전순의는 권윤서가 제시하는 기초지식 덕에 지금 내의원에서도, 조선 의학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쌓아가고 있다.

권 승휘가 치료에 앞선 ‘예방’이라는 개념을 알려준 덕에 환자들에게 손 씻기, 물 끓여 마시기, 주정을 강하게 증류한 ‘알코올’로 병균이 있을 법한 곳 소독하기 등을 실천하게 하자 혜민국 내에서 병이 서로 옮는 것이 확 줄었고 치료 효과도 탁월하게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몸을 보하는 기준으로 달여 마시던 탕약을 적극적 치료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해 준 덕에 전순의는 새로운 방법으로 다양한 치료약을 만들며 실험 중이었다.

황기, 백지, 어성초, 작약, 상백피, 금은화, 맥문동 등 열을 내려주고 염증을 줄여주는 약재들만 따로 강하게 달여 소량 복용하게 하거나 술 고리를 응용한 긴 증류기에서 약리 성분이 강하게 농축된 정유를 뽑아내 바르는 형태로 만드는 외용약은 치료 효과가 가시적으로 탁월했다.

실제 약을 만들고 치료법을 발전시키는 것은 전순의 자신과 점점 더 많이 거느리게 되는 휘하 의원들이었지만, 새로운 방식이 분명히 더 탁월한 효과를 낼 것이란 확신을 먼저 주는 권 승휘 마마님이 없었다면 감히 시도조차 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방법들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도 때때로 뭐 하나만 잘못하면 늘 함께 다니는 무시무시한 방자를 시켜 죽이고 말 것처럼 살기를 풍기는 권 승휘가 전순의는 무서웠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더 두려웠다.

그래서 홍 상궁의 딸 현주 금아 아기씨를 진맥하고 보고하면서도 극도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손톱 끝의 검은 줄은 일반적으로 비상의 중독 증세를 나타냅니다만, 소량의 비상은 여러 약제에 많이 들어갑니다. 홍 상궁께 조심스럽게 여쭸더니 피부 발진 때문에 약을 발라주었을 뿐이라 하셨습니다. 피부약에도 흔히 소량의 비상이 들어가 있지요.”

“···그러니까 중독은 중독인데 그게 어디에서 온 독인지 알 수 없단 말인가?”

“그러합니다, 마마님. 애석하게, 정말로 그러합니다.”

“···알겠네. 약재를 아끼지 말고 해독 탕약을 제조해서 먹게 하시게.”

이렇게 전순의에게 지시하며 전하께서 내려주신 산삼 한 뿌리도 내주었는데, 가끔 봐서는 금아가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전순의 말로는 더 나빠지진 않고 있다 하였다.

‘홍 상궁을 직접 만나 물어야겠다.’

자식의 생사와 관련되어 있으니 무조건 부인하진 못하겠지. 금아의 중독이 윤씨에게서 받은 한약재와 관련이 있다면 홍 상궁 자신의 건강도 상당히 나빠져 있을 것이니, 확인해야 한다.

윤서가 결론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간이 수영장의 차일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그러더니,

“중전마마 납시오!”

하는 목소리와 함께 출입구의 차일이 들리고 중전마마께서 최 상궁의 부축을 받아 안으로 들어오셨다.

“중전마마를 뵈옵니다!”

모두 물에서 나와 평평한 바위 위에 엎드렸다.

“일어들 나거라. 우리 홍위가 올챙이처럼 물에서 수영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해서 구경 왔느니.”

“할마마아, 오챙이처럼 꼬무꼬무 수영할 뚜 있떠요!”

홍위가 바위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 할머니에게 안기며 어리광을 부렸다.

“아직 자세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원손 아기씨도, 우리 군주 자가도 물에 떠다니며 놀 수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그래. 향이가 이런 수영장을 내년에는 지어주겠다고 해서, 대체 그게 뭔가도 보고 싶었다.”

중전마마께서 중궁전 나인이 가져온 커다란 방석 위에 편하게 앉으셨다.

간이 수영장 길이는 대략 십오 미터 정도였다.

윤서와 매금이가 희아와 홍위 옆에 각각 서고, 홍위와 희아가 그간 배운 수영 솜씨를 보이기 시작했다.

“잎새뜨기!”

윤서가 외치자 홍위와 희아는 물 위에 눕듯 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오! 어떻게 저렇게 편안하게 떠 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신기합니다.”

중전마마와 최 상궁이 속삭이고.

“자, 배영. 실시!”

윤서의 지시에 따라 홍위와 희아가 누운 채로 발을 살살 차며 손을 귀 뒤로 돌려 물속을 저어 뒤로 쭉쭉 나갔다.

“오오오!”

“누워서도 수영을?”

“자세 바꿔, 개구리 평영.”

그러자 이번에는 두 아이가 몸을 옆으로 비틀어서 머리는 늘 물 밖으로 내놓는 변형 평영 자세를 만들었다. 윤서가 깊은 물에서 편하게 수영하는 방법이었다.

“할마마아, 개구이 새끼 오챙이 보세요!”

홍위가 소리치며 정말로 올챙이 다리처럼 짧은 팔과 다리를 쭉쭉 놀리며 앞으로 빠르게 나가기 시작했다. 어려서인지 사내아이여서인지 홍위는 물에서 겁이 없어 수영도 빨리 배웠다. 매금이가 옆에서 함께 헤엄쳤다.

반면에 희아는 조심스럽게 수영을 즐겼다. 지금도 팔다리를 우아하게 뻗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윤서도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춰 천천히 가며 속삭였다.

“무섭지 않아요?”

“아니야. 물속에 들어오면 편안해져. 특히 누워 있으면 귀가 먹먹하게 변하면서 내 숨소리만 들리잖아. ···엄마, 품속 같아.”

“···저도 그래요. 물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운 이들이 떠오르지요.”

두고 온 이들, 다시는 볼 수 없는 교수님과 친구들과, 엄마 아빠가 잠들어 계신 동그란 봉분과 고향 집이 그립게 떠오르지요.

홍위와 희아는 일 각 정도 수영하는 모습을 소헌 왕후께 보여드렸다.

“아유, 이제 이리 와 화채 좀 먹거라. 할미가 수박과 오미자로 화채 만들어 왔다.”

“화때!”

홍위가 신이 나서 물 밖으로 뛰쳐나가 달려가다 쭉 미끄러지려는 걸 매금이가 단숨에 안아 올렸다.

“걸어!”

매금이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자, 홍위가 “히히, 미안!” 하고 매금이 손을 잡고 중전마마 앞으로 갔다.

“양 사칙도, 선아 아기씨도 이리로 오세요.”

윤서는 저쪽 편에서 없는 듯 존재감을 감추고 있는 양 사칙과 그의 딸 선아 현주를 불렀다.

그제야 중전마마는 온통 홍위와 희아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을 들어 또 다른 서손주와 양 사칙을 보았다.

“오, 선아도······!”

양 사칙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선아 현주를 보고 반갑게 손짓하던 소헌 왕후께서 양 사칙을 알아본 순간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윤서는 몸을 말리기 위해 가져다 둔 커다란 면포를 양 사칙 몸에 둘러씌웠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어서 가만히 있으면 춥네.”

그렇지만, 늦었다.

중전마마는 무서운 눈으로 양 사칙을 차림새를 훑고 또 윤서와 권 승휘의 푸대 자루처럼 벙벙한 수영 옷을 훑고는 최 상궁에게 나지막하게 명하셨다.

“아이들을 저쪽에 데리고 가서 다과랑 먹게 하게.”

그러자 눈치가 아주 빠른 최 상궁이 나인 넷, 매금이와 함께 홍위와 희아, 선아를 데리고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쪽으로 옮겨갔다.

“양 사칙, 너는 지금이 얼마나 중대한 기로인지 모르겠느냐?”

중전께서 엄히 물으셨다.

“권가가 주장하여 너희 동궁의 여인들이 지금 혜민국에 나가고 여기 와 수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 모르겠어?”

“송, 송구하옵니다, 중전마마. 소인은 그저 권 승휘 마마님께서 간편하게 입어야 물에서 움직일 수 있다 하시어······.”

“어리석기는!”

중전께서는 더 역정을 내고 싶지만 저쪽에서 즐겁게 화채를 먹고 있는 손주들 즐거움을 깨트리고 싶지 않으신 듯 입술을 깨무셨다.

“당장 옷을 갈아입고, 얼굴색, 바로 하거라!”

결국 그날 홍위와 희아, 선아의 물놀이 강습이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 속에 반 시진 가량 더 이어졌다.

그렇지만 양 사칙은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하기보단 윤서가 미리 제대로 일러주지 않았음을 원망하며 홀로 좌절감을 곱씹어야 했다.

*****

윤서는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매금이와 조 상궁, 나인 둘을 데리고 홍 상궁의 거처로 갔다.

홍 상궁은 윤서가 입은 연두색 비단 당의를 사나운 눈길로 노려보았지만, 상석을 내어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금아, 금아 아기씨 내 처소로 모시고 가서 놀고 있어라. 홍 상궁, 유모 딸려 보내게 할 테니 걱정말고.”

“무슨, 수작질이야?”

홍 상궁은 오만 인상을 다 썼지만 지난 번에 매금이가 워낙 애들하고 잘 놀아주는 걸 봐서인지 순순히 유모 딸려 내보냈다.

“금아 아기씨에 관한 일이네.”

윤서가 금아 아기씨가 보이는 중독 증상을 상세히 설명하자 홍 상궁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눈동자가 쏟아져 나올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 조산이라 그런 거야!”

홍 상궁이 울부짖었다.

“여, 여덟 달만에 낳아서. 그래서! 그래서, 늘 몸이 약한 거라고!”

홍 상궁은 완강히 부인했다.

“그간 먹어온 약재, 내어놓게.”

윤서가 명하자 홍 상궁이 피식 웃었다.

“그걸 왜, 내가 너한테? 그 귀한 걸?”

“홍 상궁, 아직도 모르겠어?”

“웃기시네, 진짜. 너 따위가 우리 가문과 종이모님을 무얼로 보고!”

홍 상궁은 부르짖으며 늘 조 전언을 통해 수양 대군의 부인 윤씨가 줄곧 보내온 약재를 떠올렸다.

종이모님의 상궁 조 전언은 늘 화려한 비단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싼 약재 꾸러미를 가져와 펼쳐 보여주었다.

“이거, 부부인 마님께서 조카님께 보내신 귀한 약재입니다. 자궁의 양기를 북돋는 산삼과 부자, 황기 등을 넣어 귀한 왕손을 잉태하게 해 줄 것이옵니다.”

안에는 정말로 정포 백 필을 주어도 구하기 어려운 최상급 산삼과 부자, 황기 등 귀한 약재가 한 포씩 포장되어 가득 들어 있었다.

“지난번 부부인께서 보내신 용한 의원이 마마님께선 비장과 자궁의 양기가 서로 소통하지 못해 아기씨를 쉬이 담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씀을 들으신 부부인 마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조카님을 위해 사방으로 좋은 약재를 찾으셨어요.”

정말로 종이모님이 보내신 약재를 달여 마시면 손발까지 후끈하게 더워져 땀이 뻘뻘 나며 기혈이 잘 돌고 힘이 났다.

그 덕에 겨우 금아를 가졌는데, 무슨 개소리야!

홍 상궁은 정말로 화가 났다.

“네가 승휘 따위가 되었다고 지금 나를 모함하고, 장차 우리 종이모님까지 엮어보려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살지 마라. 그렇게 살지 마.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날 있다는 거, 몰라?”

긴 세월 궐에 살면서 세자의 다른 후궁들에게 표독스러운 짓을 삼가지 않았던 홍 상궁이라 들었다.

다른 간택 후궁들의 회임을 막기 위해서 은밀하게 수를 썼고, 세자께서 말이라도 거는 궁녀가 있으면 모조리 세답방이나 침방으로 내쫓고 돌아가신 세자빈께도 포악을 떨었다고 박 상궁마저 몸서리를 쳤는데.

그렇게 자신은 온갖 술수를 썼으면서도 수양 대군의 부인 윤씨가 자신에게 손을 썼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시야가 좁은 홍 상궁을 보며 윤서는 혀를 찼다.

“약재 내놓지 않으면 강제로 수색하는 수밖에!”

“흥, 너 때문에 내가 몸이 아파서, 체질이 바뀌는 바람에 다시 약을 지어야 했다고. 마침 질 좋은 산삼과 황기 구하기가 어렵대서, 기다리는 중이야.”

“!”

“지금 없다고! 네가 슬쩍 가져다 다른 약재 섞어서 모함할 줄 알고 하늘이 도우신 거지!”

“체질이 변한 게 혹시 내의 전순의가 금아 아기씨를 진맥한 다음인가? 그다음에 홍 상궁 자네 체질이 변했다고, 그래서 약을 바꿔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무, 무슨 소리야. 아니야. 그 전이야. 상궁으로 떨어져 화병 났을 때라고!”

“조 상궁, 뒤지시게!”

윤서의 명을 받은 조 상궁이 나인 둘과 함께 홍 상궁의 거처를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조 상궁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했다.

“어, 없습니다. 한약재가 없습니다, 권 승휘 마마님.”

“그 봐! 너! 너! 투기는 칠거지악이지. 내 너를 투기한 죄로 고변할 거야. 너, 그냥 안 둘 거야!”

악을 쓰던 홍 상궁이 마침내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새끼 아픈 것도 서러운데에! 아이고! 모함을 당하다니! 아이고오! 서러워라!”

“이게, 무슨 소란인가!”

동궁 내궁의 수장 정 승휘가 기세 등등하게 뜰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뒤로 문 승휘와 양 사칙도 따라 들어왔다.

“권 승휘, 홍 상궁 거처에서 이 무슨 행패인가!”

그런데!

묵묵히 서 있던 윤서의 눈에 무엇인가가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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