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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51화 (51/255)

< 제 51화. 수양 대군 권가를 만나다 (3) / 일부 내용 수정 >

“!”

바지도 제대로 못 추스르고 끌려 나온 일곱의 사내중 넷이, 병자라고는 도저히 봐줄 수 없이 튼실한 왈패 네 놈의 얼굴이 몹시도 낯이 익었다.

입성으로 보나 행동거지로 보나 평소라면 별저는커녕 혜민국 안에도 발도 들여놓지 못했을 놈들의 상판때기가!

‘부인이 벌써 권가를 해치려고 저놈들을 넣었구나. 경솔하게도!’

수양 대군은 생전 처음 자신이 화살 끝에 겨눠진 사냥감이 된 듯한 한기를 느꼈다.

‘권가는 이미 알고?’

수양은 재빨리 서너 걸음 뒤에 서 있는 권가를 돌아보았다.

“!”

그 눈빛이다.

자신의 야망을 모두 꿰뚫는 듯한 그 눈빛으로 권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저것들 입에서 부인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수양은 데리고 온 명례궁의 가노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저 음탕한 것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끌어내 광에 가둬라. 내 직접 의금부에 저것들을 넘길 것이다!”

수양 대군의 지시에 “예이!” 하며 명례궁에서 온 건장한 하인들 대여섯이 우르르 몰려가 신고 있던 버선을 벗어 사내들 입에 쑤셔 넣고 반항하는 놈들의 뒤 목을 손날로 내리쳐 끌고 갔다.

그리고 또한 의녀들도 몰려와 함께 어울린 음탕한 의녀들을 끌고 뒤를 따라갔다.

수양 대군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떠는 혜민국의 주부와 의학 교수에게 일갈했다.

“이런 추문이 다시 한번 내 눈에 띄는 날, 너희 모두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예, 예, 대군 자가.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입을 막아야 할 무뢰배들을 우선 치워놓고, 수양 대군은 권가 앞에 다가섰다.

“내 진정 저리 음탕한 것들이 여기 있는 줄 몰랐네. 엄히 치죄할 것이야. 미안하네. 이런 꼴을 보게 해서.”

“대군 자가······.”

윤서는 말끝을 흐리며 저 무뢰배들의 입을 막기 위해 먼저 움직인 수양을 바라보았다.

‘터트릴까, 말까.’

원래는 다 터트리려 했던 윤서였다.

자신을 추문에 빠트릴 목적으로 잠입해 온 저들의 입을 열어 수양을 나락으로 몰까 생각했던 윤서였다.

그러나 입을 열어 자신이 내사옥으로 데려가 심문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오늘 아침 주상 전하의 아침 수라 시중을 들고 잠깐 동온돌에 다시 돌아와 자신을 불러 들여 했던 이향의 당부를 떠올렸다.

“오늘 혜민국에서 드디어 수양을 만날 것 같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 윤서야. 수라를 드시면서 아바바마께서 네 칭찬을 많이 하셨다. 어제 전순의가 네가 작성한 그 약재 배합표라는 걸 보여드렸다면서, 그런 도표를 다른 공문서에도 다 쓰라고 하셨고.”

이향은 나인과 내관 모두 대청마루에서까지 물러나라 한 뒤에도 그래도 듣는 귀가 있을지 걱정이 되는지 윤서를 꼭 안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헌데 아바마마께서 네가 혜민국에서 아주 잘하고 있어서 좋아하시면서도, 또 이렇게 총명한 네가 수양을 계속 경계할까 근심하셔서인지 어제 전순의를 불러 탕제를 드시게 되었다. 네가 걱정하는 그 일이 십 년도 더 뒤였다지?”

그런데 속삭이는 것은 그렇다 치고, 왜 저하의 손이 자꾸 옷 속을.

“예, 저하. 십 년 뒤, 저하!”

“어마마마께서 많이, 변하셨다. 많이, 웃으시고 우리 평창 군주를 다정하게, 돌보신다. 네가 심리학자라는 것 덕분에, 윤서야. 부인, 가만. 밀어내지 말고, 가만히 좀.”

“저하, 아침, 인데.”

“내가 아바마마를, 닮아가나 보오”

하고는 또 정신없이 몰아쳐 짧고도 강렬한 쾌락을 선사한 후에, 겨우 빗은 머리와 겹겹이 갖춰 입은 옷이 다 헝클어져 난감해하는 윤서의 머리를 손수 빗겨 가지런히 쪽을 쪄주며,

“어마마마께서 변하신 것처럼 우리 유도 변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아바마마 어마마마 살아 계신 동안 만큼은 난 효를 다하고 싶다. 그러니 윤서 네가 힘을 써보거라. 내 늘 유의 동향을 주시하다 네가 우려하는 일의 기미가 보이면 즉시 손을 쓸 터이니, 응? 부탁한다.”

다정히 명하였던 바였다.

윤서가 이향의 당부를 떠올리며 자신에게 추문을 일으키기 위해 윤씨가 집어넣은 네 명의 무뢰배의 입을 막는 발빠른 대처를 보인 수양 대군에게 이번 한 번은 넘어가주며 변화를 봐야할지 다시 고심하고 있을 때.

수양 대군도 권가를 보며 근자에 겪은 일과 여기 오기 전 들었던 무당의 말을되짚어 보고 있었다.

얼마 전 정현 옹주의 남편 윤사로가 장인 윤번과 함께 찾아와 은밀히 말하길,

“대원각에서 우연히 정인지를 만났는데 그자가 술에 진탕 취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세법이 변할 것 같다 근심하더이다. 세자 저하도 주상 전하를 닮아 일을 치밀하게 도모하시는지라, 미리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장인 윤번이,

“이번에는 우리 명문가 중 하나가 과감히 희생을 해야 합니다. 참하고 교양 있는 요조숙녀 하나를 세자빈으로 바칩시다. 가장 가까이서 세자를 사로잡아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소?”

“그러다 후사라도 생기면요? 지금 형님 저하도, 그리고 원손도 변변한 외척과 처가가 없는 것이 우리의 최대 강점이 아닙니까?”

수양 대군이 되묻자, 윤사로가 빙긋이 웃으며,

“에이, 대군 자가는 왜 부부인보다도 담이 작으시오? 세자 저하의 후사 일은 우리 부부인께서 잘 대처하실 것이오.”

타박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복잡한 마음에 짐승 몇 마리 잡을 핑계를 대고 선바위 쪽에 굿당이 있는 무가이를 찾았더니, 검은 소반에 쌀을 촤라락 펼친 무가이가 낱알 하나하나를 들춰보며 말하였다.

“대군 자가. 칠성님께서 보여주시길 자가께선 오늘 귀인을 만나 선택에 기로에 서실 것이라 하십니다. 지금 당장의 호쾌함을 추구하신다면,”

무가이는 다시 쌀을 한 줌 쥐어 촤락 펼치고는 꼼꼼하게 하나씩 모두 들여다보고 말을 이었다.

“동귀어진이라 상대도 심하게 다칠 것이나 자가께선 회생불가로 다치실 것입니다. 허나 당장은 몸을 굽혀 공존을 도모하신다면 훗날을 도모하실 수 있지요. 선택은 자가께서만 내리실 수 있는 일입니다.”

삐뚜룸하게 바라보며 말하곤, 잠시 망설이다가 은밀한 어조로 다시 말하였다.

“소인이 이만큼이나 재물을 쌓고 명성을 쌓은 것이 부부인 마님 덕이 컸습지요. 부부인 마님의 의지와 집념이 대군 자가를 광영의 자리로 밀어 올리실 것은 확실하나, 하오나! 지금 당장은 아니옵니다. 별의 징조가 최근 급변하였어요. 소인이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하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그럼 권가가 그 귀인이란 말인가. 권가는 과연 알고도 입을 다물고 주고 있는 것인가?’

수양 대군은 부인 윤씨의 명을 받고 여기 들어와 있던 왈패 네 놈의 일을 권가가 이미 알고서 자신을 이리 불러왔던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윤서의 낯빛을 샅샅이 살폈다.

입에 버선을 쳐넣어 입을 막은 놈들은 마포나루 일대와 칠패 시장에서 돈을 뜯어내는 무뢰배들로, 말석 군관 자리를 노리며 자신의 사냥에 종종 동행하는 힘세고 잔혹한 놈들이었다.

‘부인은 저놈들을 넣어 권가에게 추문을 일으켜 왕실에서 쫓아내려 한 것을 왜 내게 미리 귀띔하지 않았는가.’

부인의 성급함이 서운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대업을 위해 하는 일인지라 부인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훨씬 더 컸다.

왈패란 것들은 의리가 없는 놈들이니 권가가 직접 족치겠다고 나서 몇 대만 장을 때리면 술술 부인의 음모를 다 불 것이니.

하아.

초조해하는 수양 대군의 얼굴을 살피던 윤서는 사랑하는 이향이 몸까지 바치며 부탁한 일이니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윤서는 수양 대군이 변할 것이라 쉽게 믿지 않았다.

평생 형에 대한 콤플렉스로 괴로운 수양은 당장은 오늘 일을 덮어준 것을 감사하겠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다시 또 왕위를 꿈꾸며 은밀한 모략을 꾸미기 시작할 것이다.

일단, 얻을 것 먼저 얻자.

“의녀를 창기로 알아 몸을 더듬는 사내들, 그리고 그런 사내들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 첩으로라도 들어가려는 의녀들 모두 이 기회에 솎아내야 할 것입니다, 자가.”

“!”

“우리 동궁전에서 책임지고 음탕한 의녀를 솎아내고 자질이 출중한 아이들로 새로 뽑아 교육시키는 일을 감독하겠습니다.”

“······.”

혜민국에서 의녀를 길러내는 걸 시작으로 자신의 조직을 키워가겠다는 윤서의 뜻을 수양 대군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지금 뻔히 알면서도 반대할 입장이 못 되었다.

“그리하시게. 자네들, 들었는가?”

“예, 대군 자가. 권 상궁 마마님. 전의감과 협력하여 일을 속히 처리하겠습니다. 이 일은 이 정도로 묻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처벌을 면한 주부와 의학 교수 및 혜민국의 관원들이 두려워 떨며 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다.

별저 앞에는 이제 윤서와 수양 대군 둘만 남았다.

동궁과 명례궁에서 따라온 이들이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거리로 멀찍이 물러섰다.

“오늘 일, 고맙소. 내 부인에게 일러서,”

“오늘 일을 제가 사전에 알고도 덮은 것은 자가를 몹시 아끼시는 세자 저하의 성심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세자 저하께선 몹시 바르고 정이 많으신 분이시니, 자가께서도 한 가지에서 난 형제의 믿음과 신의를 부디 지켜주십시오.”

“······.”

“다음은 저도 이리 관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해치기 위해 건달 넷을 넣었다는 걸 알지만 이번은 봐주겠다는 서늘한 경고를 남긴 채 권가가 우아하게 몸을 돌려 먼저 떠났다.

“하아, 처복만큼은 내가 형보다 더 많다 자부하고 있었거늘!”

뒤에 남은 수양 대군은 과연 부인이 왜 권가를 못 죽여서 안달이었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하지만 상분지도(嘗糞之徒)라, 부차의 똥을 찍어 먹어가며 버텨 뜻을 이룬 월나라의 구천처럼.’

태어나는 순간 촛대가 부러지고, 태실에까지 부정이 탔던 홍위 그것이 기필코 단명할 운명이니.

내 오늘은 저것의 손아귀에 놀아났다만, 이 치욕을 딛고 반드시 제거하고 말 것이다.

수양 대군은 손을 말아쥐며 부르르 떨었다.

이날 수양 대군 이유는 혜민국에서 풍기문란을 저지른 사내 일곱과 의녀 열 명에게 모두 태장을 때리고 저 먼 북방에 관노로 보낼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지금 혜민국에서 개발하는 여러 약제와 치료법을 민간과 지방에도 보급할 의원과 의녀가 많이 필요하니 새로이 선발해 교육하게 해달라는 청도 올렸다. 의녀 교육의 책임 감독자는 동궁전의 권가 상궁이 적임자로 보인다는 어구도 넣었다.

수양 대군의 상소를 본 세종께서는 너무도 흡족하게 웃으시며 수양 대군과 윤서에게 비단 서른 필을 내려 치하하시고 상소의 내용대로 처결하라 명하셨다.

윤씨의 명으로 윤서의 추문을 일으킬 목적으로 혜민국에 새어들었던 왈패 넷은 입에 물려진 버선을 끝까지 뱉지 못한 채 바로 그날 의금부에 끌려가 태장을 맞다가 숨이 끊어졌다.

그 소식을 윤씨는 수양 대군에게서 들었다.

“이번 일은 부인이 경솔하셨소. 권가가 다행히 입을 다물어주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늘 부인은 큰일을 당했을 거요. 권가는 보통내기가 아니니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세워 철두철미하게 상대해야 합니다!”

혼인 후 처음 듣는 꾸짖음이었다.

대군이라면 모름지기 기생이며 여종이며 심지어 반가의 처녀까지도 가리지 않고 끼고 희롱하고 첩 서넛은 기본으로 들이는데, 한결같이 자신만 아껴주던 자가께서 하필 권가 그 요물을 만나고 오신 날에 꾸짖으시다니!

대군의 사랑을 듬뿍 받는 보답을 구실로 마음껏 정치적 야망을 키워온 윤씨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침 자리끼 물을 봐주러 들어온 여종을 다짜고짜 쟁반으로 내리쳤다.

여종의 얼굴에서 흥건한 피를 보고서야 매질을 멈춘 윤씨는 인정이 울려 통행이 금지되었는데도 조 전언을 형부 한계미에게 보냈다.

“아무래도 세자빈 간택 주청은 가장 센 곳에서 나와야 할 것 같아요, 형부. 우리 왕실에서도, 주상 전하께서도 감히 함부로 대하실 수 없는 그곳 말입니다!”

조 전언이 한계미에게 전한 윤씨의 말이었다.

< 제 51화. 수양 대군 권가를 만나다 (3) / 일부 내용 수정 > 끝

ⓒ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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