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관계의 불평등과 한 줌의 존엄
15세기 한양의 밤은 어찌나 어두운지 칼로 한 자락 베어내면 역청 같은 새까만 덩어리가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윤서는 자선당 서온돌에 딸린 북쪽 곁방에서 조그만 창을 통해 그 완벽한 어둠을 때로 올려다보며 세붓으로 글자를 써 내려가며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현대에서 윤서는 주말에 하루는 반드시 오래 달리기를 한 후 미지근한 물에 오래 샤워하고, 집에서 평소 입는 늘어진 목티 따위가 아니라 고급 면 재질의 옥스포드 맞춤 셔츠와 마찬가지로 일자로 딱 떨어지는 맞춤 면바지에 벨트까지 맨 후, 책상에 앉아 매끄러운 노트 위에 사각사각 만년필로 일주일간 느낀 상념을 적어 내려갔다.
이 의식은 때때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폭력을 들어야 하는 상담가가 내담자로부터 받아온 마음의 어둠을 씻어내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윤서는 지금 조선에 온 후 처음으로 앞의 두 의식은 여건상 생략한 채 세 번째 의식을 만년필 대신 붓을 들고 행하는 중이었다.
창호지 문 하나 사이로 우리 홍위는 고롱고롱 잠들어 있고, 첫날의 어설픈 입맞춤과는 달리 능수능란한 입맞춤으로 윤서의 혼을 빼놓았던 이향은 대청마루 건너 동온돌에 잠들어 있다.
방을 비웠다가 돌아가면 매번 누가 뒤진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궐이기에, 윤서는 그간 글로 생각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했다.
반 시진 전.
앞이 훤히 터져 있어 측면의 행각에서 잠 못 이루며 창호지 틈으로 훔쳐보는 나인들의 시야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대청마루에서 이향은 윤서에게 오래도록 입맞춤을 했다.
그 이상의 수위로 나아가지 않는 입맞춤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그 이상을 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히 달콤한 입맞춤이었지만,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을 때 습관적으로 심리의 양태를 분석하는 윤서의 머리 한구석에 경고등이 켜지게 만드는 입맞춤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정리하기 위해 잘게 헐떡이는 숨결로 방에 돌아와 홍위 곁에 누웠을 때,
그리고 옷고름 대신 쥐여준 천을 구원의 동아줄인양 꼭 쥐고 잠든 홍위의 앙증맞은 손을 살짝 쥐었을 때,
매금이가 왔다.
아무런 기척 없이 벽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들어온 매금이가 딱 한 마디 했다.
“나와.”
필요한 말이 아니면 절대 입을 열지 않는 매금이기에, 윤서는 등을 들어 깊게 잠든 홍위를 확인한 후 매금이를 따라나섰다.
어둠에 잠긴 뜰에서 박 상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균이 죽었다. 술 한잔 올리고 저승길 노잣돈 좀 보태자.”
순간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며 주저앉으려는 걸, 매금이가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을 본 박 상궁이 매섭게 속삭였다.
“전하 앞에서 처벌을 해 달라 고할 때 이 결과를 몰랐더냐? 네가 그날 그렇게 고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내가 술잔을 올려야 하는 건 네 제사상이었을 거다. 명심하거라, 권가야. 안 얽히는 것이 최고이지만 일단 권력 다툼에 얽혔을 땐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죽여야 한다. 반드시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악에 받친 상대가 널 죽이려 들 테니.”
그리고 윤서의 팔을 끌고 가며 말을 더 덧붙였다.
“궐이란 게 이런 개 같은 판이어서, 나는 맹한 네가 좋았다. 너는 그저 받은 걸 모두 다 네 거머리 같은 이부 형제들에게 다 털리고 거지처럼 나한테 뭘 받아먹으면서도 만사태평 헤헤거려서, 그렇게 순진하고 무해한 네가 나는 좋았다. 내가 행해야 하는 이 치열한 짓거리에서 너는 영영 자유로울 것 같았으니까.”
평소와 달리 속내를 털어놓는 말씀이 길었다.
벌써 이런 일을 여러 번 보았고 몇 번은 틀림없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박 상궁이지만, 오랜 기간 궐에서 권력을 다퉈온 정적의 비참한 말로에 한 가닥 연민과 함께 자신도 언제든 같은 처지일 수 있다는 평소 덮어두었던 두려움도 드는 듯했다.
박 상궁이 끌고 간 곳은 엄 상전의 거처였다.
근무 후엔 편한 옷으로 갈아입던 평소와 달리 엄 상전은 왕실 공식 행사에서나 입을 금관조복 차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박 상궁도 어여머리에 당의를 갖춰 입고 있었다.
“권가 널 부르지 않으려고 했는데, 박 상궁이 내일 알게 되면 심적인 동요가 클 것이라고, 오늘 알게 해 마음을 대비할 시간을 주자고 하더구나. 내일 천추전에서 전하를 알현해야 하지 않니?”
평소 반쯤 공대를 하며 공손하게까지 대하던 엄 상전이 오늘은 평범한 나인 대하듯 윤서를 대했다.
“향을 피우고, 술 한 잔 올리고, 절을 하거라.”
거처의 북쪽으로 벌써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과일 몇 덩이와 약과, 초 두 개, 그리고 [田畇大殿內官神位] (전균대전내관신위)라 적인 종이가 놓여 있는 상에 다가서, 침향 세 개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상주 노릇을 하는 엄 상전이 따라준 술잔을 상 위에 올리고 두 번 절을 올렸다.
엄 상전과 박 상궁의 얼굴은 침중하였다.
절을 올리자 엄 상전은 윤서의 양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평소 불러야 할 때 어깨에조차 손을 올리지 않던 엄 상전이 윤서의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전하와 저하를 모시는 궁인의 운명이 무릇 이러한 것이다. 세자 저하께서 지극히 너를 연모하시어 결국 빈으로 맞아들이실 것이고, 그분은 널 평생 지극히 아끼실 성품이지만 너의 운명이 본질적으로 여기 맞아 죽은 전균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야 윤서는 대청마루에서 이향에게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똑똑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결코 동등해질 수 없는 상대에게 느끼는 위화감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윤서는 늘 선택당하는 신데렐라이고, 그리하여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신데렐라일 수밖에 없다는 관계의 근원적인 불평등.
그것이 황홀하게 깨어나는 몸의 욕망과 달리 머리 한쪽에서 차갑게 경고등이 반짝거리게 된 이유였다.
“그럼 왜 이런 길에 절 밀어 넣으셨습니까? 왜 제게,”
“내가, 밀어, 넣었더냐?”
“···아닙니다.”
아니다.
엄 상전이고 박 상궁이고 그리고 윤서이고.
그 누구이고 우리는 결코 왕족과의 관계에 누굴 밀어 넣을 힘이 없는 자들이다.
그 관계의 본질을 잘 알고 있기에 엄 상전과 박 상궁은 윗전의 뜻을 힘껏 살펴 그 뜻에 부합하게 행동을 해왔고, 선택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에 제 사람을 끌어들여 함께 생존을 도모해 왔다.
“그러니 권가야. 오늘 술을 올리고 돌아가 전균에 대한 가책 같은 건 조금도 가지지 말거라. 네가 그리 고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가 옷을 차려입고 예를 갖추어 술잔을 올려야 하는 이름이 너였을 것이니.”
엄 상전도 박 상궁과 같은 말을 했다.
두 사람이 윤서를 부른 것은 날이 밝으면 저 요물이 저하의 총애를 받아 대전내관 전균을 죽게 만들었다 수군거릴 궁인의 혐오와 두려움과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의 눈빛에 미리 윤서를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수족처럼 부려온 자를 말 한마디로 때려죽이는 궐에서, 두 사람이 윤서를 내세워 전균처럼 참혹하게 죽지 않기 위해 행하는 권력 투쟁의 일환이기도 했다.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가 틀어쥔 권력이기에 그 밑에서 아무리 동동거려도 결코 완전하게 쥘 수 없는 권력의 파편을 쥐기 위해서 벌이는 투쟁. 지면 맞아 죽는 투쟁.
무게를 가진 듯 내리누르는 짙은 어둠 속에 홀로 자선당으로 돌아오면서, 윤서는 숨 쉬듯 내뱉는 후궁들의 악의가 성품이 사악해서만도, 고작 몇십 걸음의 좁은 공간에 죄수처럼 갇혀 살아서만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지상 최대의 권력, 언제고 말 한마디로 저렇게 때려죽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의 지붕 아래 목숨 부지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삶의 한 방편으로 본능처럼 내뿜는 생존전략의 일환이었다.
[인간이 왜 자유와 평등을 위해 그리 오랫동안 목숨을 바치며 투쟁해 왔는지, 오늘에서야 나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권력자의 선의에 기대 삶을 얻어내야 하는 삶의 조건에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존엄할 수 없다.
이향이 나를 대하는 애정의 방식은 그 깊이가 아무리 깊고, 그의 입장에서 진심이라고 하나 결국 애완 고양이를 대하는 집사의 방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는 언제든 간택할 수 있는 입장이고, 내가 끝내 마음을 주지 않기로 선택한다 하여도 힘으로 육체를 얻어낼 수 있는 세자이고.
근현대에서라면 인형으로 살기 싫다고 트렁크를 챙겨 나갈 수 있다지만, 여기는 보따리 챙겨 도망칠 곳이 없는 중세.]
여기까지 쓰고 윤서는 붓을 놓고 다시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붓을 들어 썼다.
[정말로 도망칠 곳이 없는가.]
붓을 놓은 후 윤서는 다시 팔을 교차해 어깨 위에 올리고 힘껏 껴안았다.
몸을 힘껏 껴안는 행위는, 공포에 젖어 이성이 마비될 때 함께 잃는 몸의 감각을 자극해 깨우기 위해서이다.
오랫동안 학대와 공포에 시달린 이들은 온전한 신체 감각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각을 차단하는 것이 오래되면서,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능력까지 함께 퇴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화된 몸의 감각은 주변의 상황을 온전하게 파악할 직감을 잃어,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되는 원인이 된다.
[도망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
윤서는 다시 종이 위에 쓰고, 고개를 돌려 창호지 문 넘어 잠들어 있는 홍위를 보았다.
윤서가 도망칠 방법을 찾아내더라도 끝내 도망치지 않을 크나큰 이유가 바로 저기 옷고름 대신 쥐여준 천 조각을 목숨줄처럼 쥐고 자는 홍위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붓끝으로 스며 나온 생각의 타래가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뛰는 서울 국제 마라톤으로 흘러갔다.
두 번 참가한 적 있는 마라톤 코스는 광화문 앞 종각에서 출발해 동대문을 지나 군자역을 달려 다시 서쪽 서울숲을 거치고, 다시 동쪽으로 달려 잠실대교를 건너 잠실 주경기장까지 달리는 코스이다.
윤서의 머릿속에 지금은 분명 산과 들로 길이 이어지지 않을 곳이 많을 마라톤 코스가 펼쳐졌다.
도망치기로 마음먹으면 매금이의 도움으로 궐을 빠져나가 잠실 나루까지 쉬지 않고 달리고, 조금 더 상류로 뛰어가 유속이 빠른 대신 강폭이 좁은 곳을 선택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물결과 함께 떠내려오다 보면 닿을 수 있는 한강 이남의 강둑에 올라서,
그로부터 또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려가기까지, 그래서 혹시 쫓아올지 모를 추격대를 따돌리기까지.
그리하여 분명 거칠고 힘들 낯선 환경에서 또 다른 삶을 찾아내기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선명하게 삶의 선택지 하나를 그려낸 윤서는 마침내 붓을 들어 마지막 상념을 적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견딜만한 것이, 즐길만한 것이 된다.]
윤서는 애써 쓴 종이를 잘게잘게, 누가 찾아내더라도 무엇이라 썼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이 작은 조각으로 찢어 비단 주머니에 넣은 후 서안의 상판을 들어내 안에 숨겼다.
그리고 잠자리로 돌아가 홍위를 단단히 안았다.
이제 한 줌의 존엄은 끝까지 유지한 채 세종을 뵐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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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네가 스스로 안고 토닥거린 연유가 무엇이냐? 왜 그러한 짓을 하는 것이냐? 그리고 그 이후 너는 왜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당당해져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것이냐?”
천추전에 들어 예를 갖추고 엎드렸을 때 등에 떨어진 세종의 첫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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