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천추전에서 세종과 이향 (2)
처음 보이는 낯선 모습의 아들을 세종은 오래 바라보았다.
스물두 살, 양녕을 밀어내고 세자로 책봉된 지 두 달만에 왕위에 올랐을 때 주변에는 온통 부왕 태종의 신하들뿐이었다.
부왕께서 승하하신 후에도 노신들은 걸핏하면 양녕의 기행을 구실삼아 죽이라고 자신을 압박했고, 그런 신하의 기세를 눌러 진정으로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세자 나이 무렵에서부터였다.
우리 세자도 제 발걸음을 뗄 준비가 된 것이다.
권력은 부자 사이에도 나누기 어려운 법. 군주로서 본능적으로 드는 괘씸함을 아비의 정으로 누르며, 세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납 비리를 치려는 게냐?”
“···예, 아바마마.”
각 지방의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는 공납은 중앙 정부와 왕실 수입의 6할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컸다.
그런데 생업에 종사하기 바쁜 백성들이 공물을 마련할 짬을 내기 어려우니 일반적으로 그 고을 수령이 대신 먼저 공물을 납부하고 그 값을 나중에 백성들에게서 받아내는 대납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농간이 끼어들 여지가 많았고, 몇몇 수령은 중앙의 권문세족과 결탁한 업자들과 짜고 본래 공물의 값보다 몇 배나 더 높은 값을 백성에게 받아냈다.
그래서 황희, 김종서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공납의 폐해를 호소하는 상소를 기근 때마다 올리곤 했다.
그러나 상업 발달이 저조하여 달리 물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현실과 왕실 친인척들이 대납 이권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세종조차 개혁안에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해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그런데 하필 홍위를 세손으로 세워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려는 이 시점에 세자가 대납 비리에 손을 대고자 한다!
그 의도는 너무도 명확했다.
“어디까지 가려고 하느냐?”
늘 인자하던 세종의 목소리가 칼날을 품은 듯 서늘했다.
“······.”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묻지 않느냐?”
세종이 이리 엄히 묻는 것은 공납 비리의 중심에 조선 최고의 부호 중 하나인 윤번과 그의 아들 윤사균의 파평 윤씨 가문, 그리고 명나라 선덕제의 후궁 공신부인을 누이로 둔 한확의 청주 한씨 가문이 있기 때문이다.
윤번은 수양 대군의 부인 윤씨의 친정아버지였고, 한확은 신빈 김씨의 아들 계양군 이증의 장인이었다.
그리고 신빈은 어릴 적 수양 대군을 돌본 공으로 수양 대군과 아주 가까웠고, 그래서 신빈의 자식, 특히 세종의 총애가 깊은 계양군과 수양 대군이 아주 가까웠다.
그러니 공납 비리를 겨눈 칼끝은 윤씨와 한씨가 될 것이고, 그 최종은 수양 대군이 될 것을 세종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납은 가호(家戶)를 단위로 부과되기에 대납의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집을 버리고 떠돌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소신은 이 기회에 공납을 대신할 제도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향의 말은 세종조차 반박하기 어려운 바른 명분을 가지고 있다.
“하아······!”
탄식하며 세종은 머리를 짚으셨다.
그러나 조선 최고 성군의 고심은 길지 않았다.
“공납 개편안을 정인지와 김종서랑 만들거라. 인지가 숫자에 밝아 공법을 주도했으니 공납을 대신할 제도를 만드는 데에도 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지는 머리가 좋은 반면 게을러 세심한 실행을 못 하는 폐단이 있다. 반면 종서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시종일관 뚝심 있게 한결같이 밀고 나가 반드시 실행하고야 만다.”
세종이 아끼는 신하를 둘이나 내어주었다.
이향이 감격에 겨워 외쳤다.
“예, 아바마마. 오 년 안에 반드시 실행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이권이 많이 걸린 것을 개혁할 땐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친 후 기습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적들에게 반격할 시간을 주면 안 되느니. 인지한테 어디 가서 입을 나불거리면 죽여버리겠다고 단단히 경고해 두거라.”
세종은 오만하도록 우직한 김종서에 대해선 따로 경고하지 않으셨다.
“예, 아바마마. 공물로 확보하는 각종 물품을 무리 없이 구할 수 있으려면 상업이 어느 정도 발달해 있어야 합니다. 물자가 풍부하게 유통되면 아바마마의 숙원 사업이신 화폐 통용도 함께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폐 유통’이란 말이 나오자 세종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선대왕 태종부터 당신에 이르기까지, 화폐 역할을 하는 쌀과 면포를 저화(종이돈)나 동전으로 대신하게 하려고 부단히 시도했으나 모두 처참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좋다. 네가 하겠다니 내 전력을 다해 밀어주마. 다만 한 가지는 약조하거라.”
“···무엇이옵니까?”
다른 때 같으면 두말없이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명만 하소서.’ 답했을 이향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런 아들을 물끄러미 보던 세종이 갑자기 훅 치미는 울음 같은 것을 삼키며 목멘 소리로 외쳤다.
“죽이지는 말거라. 내 아들들을 죽이지는 마. 형제의 피를 네 손에 뭍히지 말거라, 향아!”
“아바마마!”
“어려울 것이다. 어려울 것이야. 왕실에서는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천 배, 만 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나, 향아. 내가 해냈지 않느냐. 그러니 너도, 해내거라!”
‘하오나 아바마마의 형제들은 손도 쓸 수 없이 난봉꾼이거나, 속세에서 한발 물러난 승려거나 하였지요. 저의 형제는 야심에 걸맞는 실력을 지닌 수양이거나, 풍류남아로 또래 사대부를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안평입니다!’
외치고 싶은 말을 차마 뱉지 못하며 이향은 ‘아바마마!’ 탄식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너도 보았잖니. 장인어른께서 참혹하게 돌아가시기 전에 네 어머니가 얼마나 햇살같이 밝고 따스한 여인이었는지. 그 일 이후에 네 어머니는 껍데기만 남아 어미 노릇, 왕비 노릇을 그럴듯하게 해냈다만, 그게 본심이 실렸더냐?”
“아바마마!”
이향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세종이 자신의 모후 원경왕후 민씨의 비극을 울며 보았듯, 이향도 자신의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의 비극을 울며 보았다.
제발 아버님의 목숨만 살려달라 애원하며 울다 혼절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그날 이후 어머니는 이따금 이씨 성을 가진 자신과 동생들을 아주 낯선 이를 보듯 차갑게 보았다는 것도.
아바마마께서 새로이 후궁을 취해 서자를 줄줄이 볼 때도 어마마마는 후궁이든 그들의 자식이든 공평하게 자애롭게 대하였는데, 그것이 현숙한 아녀자의 도리라기보단 마음 한 구석이 어디 부서져 버린 사람의 체념 같아 보였다.
“그런 네 어미가 자식마저 앞세우면 살 수가 있겠느냐? 그러니 향아! 향아! 약조를 하거라. 약조를 해. 죽이지는 않겠다고!”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바마마.”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한다.”
다짐을 하면서도, 세종과 이향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죽이지 않으려 해도 저쪽에서 먼저 역심을 품고 나오면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그것이 세상 최고의 고귀함을 누리는 대가로 왕가가 치러야 하는 숙명이었다.
이향이 물러간 후 세종께선 아주 오래 홀로 침묵하셨다.
그리고 대전 내관 전균을 불러들였다.
“간밤에 세자가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 독대를 청했는지, 정확히 알아 오거라.”
반쯤 짐작하면서도 세종은 정확하게 확인하고자 하셨다.
*****
원손 홍위는 바로 다음 날부터 동궁의 세자 처소인 자선당의 서온돌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 고이 꾸며 보냈거늘, 받으라는 승은은 안 받고 내게서 원손 아기씨를 빼앗아 가느냐?”
양 귀인은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자 곁에 원손이 있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낫다는 윤서의 설득에 결국 수긍했다.
다만 정치의 달인답게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거기 가면 홍 승휘를 비롯해 저하의 후궁들 텃세가 아주 대단할 것이다. 밤낮 독수공방이니 악에 바친 걸 네게 풀고자 할 것이야.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오거라. 내 중전마마께 고해 중재해 줄 터이니. 대신 너는 저하께 내 아들들을 잘 말씀드려주어야 한다.”
“예, 마마님. 조만간 좋은 물건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윤서가 거듭 사과를 올리는데도 양 귀인은 어지간한 기와집 한 채 값인 향낭을 달고도 세자를 자빠뜨리지 못했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곤 다시 불굴의 눈을 빛내며 이제 동궁전에 머물게 되었으니 밤마다 세자의 거처를 얼쩡거리라고 조언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것이 남녀 관계에도 적용된단다. 주상 전하께서 세자 저하 병문안을 올 때마다 내가 그 네게 준 나인복을 입고 얼마나 얼쩡거렸게?"
그렇게 끝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고 양 귀인은 못내 아쉬운 얼굴로 윤서와 홍위를 동궁으로 전송했다.
홍 승휘에 대한 양 귀인의 우려는 상당히 정확했다.
엄 내관과 박 상궁이 원손 아기씨를 앞세우고 동궁에 도착했을 때 자선당 뜰에 승휘 다섯과 궁인 후궁 둘이 화려하게 성장하고 서 있었다.
모두 허리를 깊게 숙인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꾸민 후궁이 한 발 앞으로 나와 인사를 건넸다.
“원손 아기씨, 오셨습니까?”
승휘 홍씨였다.
실제 역사에서도 문종의 재위 시에 ‘내궁(內宮)’으로 불리며 왕비처럼 대우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승휘 홍씨는 미모가 현대적으로 화려했다.
이향은 고양이처럼 눈꼬리가 올라간 여인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는데, 이 얼굴이 어른들 보이엔 좀 얌체같아 보이는지라 홍 승휘가 왜 세자빈으로 끝내 책봉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우리 세자 저하께 의외로 후궁이 많았네. 일곱이나 되다니.’
품에서 홍위를 내려놓으며 윤서는 홍씨를 비롯해 한결같이 미모가 빼어난 후궁 일곱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승휘 품계를 받은 양반가 출신 간택 후궁이 다섯, 그리고 궁녀 출신으로 승은을 입었지만 내명부 품계를 받지 못한 정6품 수칙이 둘이었다.
이렇게나 후궁이 많은데 왜 이향은 자녀를 많이 보지 못한 것인가.
자녀가 잘 태어나지 않거나, 낳았어도 금방금방 죽은 것이 많이 이상하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중세라지만 바로 윗대 세종께서는 자그마치 18남4녀를 두시고 그중 거의가 다 무사히 장성하였는데
‘혹시······?’
당신이 손을 쓴 것인가.
윤서가 의혹의 눈초리로 홍 승휘를 살피는데,
금박 무늬가 화려한 연두빛 화려한 당의에 연보라 스란치마를 받쳐입은 홍 승휘도 매섭게 윤서를 쏘아보았다.
사실 홍 승휘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세자빈 권씨가 죽은 지 2년, 이제 슬슬 자신이 세자빈으로 올라서서 저하와 함께 자선당 서온돌에 거하리라 꿈을 야무지게 꾸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손이 그 방을 꿰차버렸다.
‘게다가 저것이 어젯밤 사향 냄새 진하게 풍기며 비현각에 들었었다고.’
승은을 받은 건 아니라지만 시중드는 환관까지 물리고 단둘이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홍 승휘는 그 사실이 더 기분 나빴다.
차라리 후다닥 취하고 말았으면 널린 게 여인이니 싫증을 내기라도 쉽지.
이야기라니!
잠자리를 하러 와서도 딱 볼일만 보고 가는 분께서.
마음 같아서는 저 탐스러운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고 싶지만 당장 잡을 꼬투리가 없으니, 홍 승휘는 권가가 목숨 걸고 위한다는 원손을 대신 살짝 건드려 분풀이를 할 작정이었다.
“우리 금아가 아기씨를 무척 기다렸답니다.”
홍 승휘가 손을 잡고 있던 여자아이를 원손 앞으로 슬쩍 밀었다.
여자아이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오더니, 홍위 앞에서 배시시 웃었다.
“오나버니.”
홍 승휘의 딸로 홍위와 나이가 같은 현주였다.
“금아야, 낙찌하까? 우리 거가 나잉이 낙찌때 만들어쪄.”
그러면서 홍위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윤서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후궁들 시선이 일제히 윤서를 향했다.
'네년이 저하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는 그년이로구나.'
자신들은 말의 대화는 커녕 몸의 대화조차 제대로 나눠본 적 없거늘.
무심한 이향에 대한 야속함이 모두 권가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파사삭 타오르는 살벌한 눈빛이었다.
이향을 어찌할 생각이 없는 윤서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권가 나인은 낮번이라지? 그럼 밤번은 누구냐?”
홍 승휘가 물었다.
얼핏 들으면 평범한 질문이었는데, 묻는 의도가 사뭇 사악했다는 것이 이어진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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