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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83화 (283/284)
  • 283화

    95. 처음과 끝(2)

    자리에 누운 채로도, 정약전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놀라야 하겠지만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돌아왔느냐.”

    “예, 형님.”

    그들이 혁명 동지인 정치국 위원이 아니라 옛 형제로 돌아갔다는 것은, 정약용이 손에 들고 온 탕기와 그릇으로도 명백해 보였다.

    환자에겐 양 많은 음식은 오히려 부담이다. 노인의 한 손에도 각각 들릴 정도로 작은 그릇에는 역시 적은 양의 식사뿐이었다.

    탕기에는 얼큰해 보이는 국물이요, 쟁반에는 잘 썰어 놓은 생선살이다. 정약용은 그것을 내려놓았다.

    “제가 일가 된 도리로 뵙고 싶다 하여 시준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것을 전해 달라 하였지요. 닭 튀길 때부터 궁금했지만 부엌일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아직도 모르겠소이다.”

    “주석 동지의 현묘한 재주야 어찌 사람이 다 헤아리겠느냐.”

    “핫핫. 그건 수평도에 어긋나는 말씀 아닙니까?”

    잠시 침묵하던 정약전이 물었다.

    “혁명은 완수하였느냐.”

    “예.”

    “잘했다.”

    정약전은 더 묻지 않았고 정약용도 부연하지 않았다. 그런 게 없어도 형제끼리는 서로 알 수 있다.

    정약용은 손수 형의 수발을 들었다. 정약전은 먹는다기보다 닿는다에 가까운 동작으로 맛을 보더니 눈을 감았다.

    “농어로구나. 지금이 제철이다. 탕도 솜씨가 절묘하다.”

    “과연 어물에도 해박하십니다. 털고 일어나시거든 저와 함께 강진에 가셔서 낚시나 즐기시지요.”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은 엷게 웃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이미 내가 누워 있는 사이 대세는 결정된 듯하구나. 괘씸한. 제자가 이토록 나태하다니. 네가 재여(宰予)의 일을 가르치지 않았더냐?”

    “파문한 지 오래되었소이다. 원체 혁명적인 제자가 되어놔서요. 제 말을 들어먹을 리가 있습니까?”

    “결국 나도 다시 바위섬 사이에서 미역을 다듬고 조개를 주워야 하겠군. 그것도 물론 떳떳한 일일 게다.”

    그러자 정약용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간 듯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강진에서 머잖은 곳에 좋은 차밭[茶山]이 있습니다. 의주로 귀양을 오지만 않았다면 거기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을 테지요. 감자며 고추, 담배를 일구고 이랑마다 국화를 심기 좋습니다. 심심하실 틈은 없을 겝니다.”

    “귀농(歸農, 정약용의 아명. 동시에 농사로 돌아간다는 뜻)이라. 이름대로 가려는 게냐.”

    “처음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지요.”

    정약전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정약용이 슬며시 초조한 기분을 느낄 때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한미한 선비로서 사교를 섬겼다고 하여 내쳐졌고, 가문은 뿌리가 뽑히다시피 했다. 그러니 무엇이든 잡을 수밖에. 처음 흑산도로 네가 구하러 왔을 때는 그저 군주가 바뀌었구나 하는 정도의 심정밖에 없었다. 정시준은 곧 왕을 칭할 거라 생각했지.”

    “그렇습니까.”

    “허나 그 후에 소위 혁명이라는 것을 하면서, 고금의 어떤 책에도 없는 외줄타기를 하면서…….”

    정약용은 그 과정에서 형이 혁명의 대의를 깨닫게 되었다거나, 정시준의 영용함에 감복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약전은 곧 말을 이었다.

    “참 재미있구나 생각했다.”

    “예?”

    “소년처럼 가슴이 뛰고 어린아이처럼 달리는 나날이었다. 하나도 쉬운 게 없었어. 공전절후라는 말이 달리 있지 않았다. 전범이라고는 찾을 수도 없었지. 엎어지고 자빠지고 코가 깨지며 그래도 달렸다. 세월밖에 의지할 게 없는 노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더구나.”

    정약용은 가볍게 웃었다.

    “맞습니다. 전 요 몇 년간 없었지만, 틀림없이 요즘도 그랬을 겁니다. 아니, 전쟁을 치렀으니 더했겠지요.”

    “그래. 나는 그저 좋았다. 가진 재주와 가지지 않은 재주 모두를 꺼내 내던져야 하는 그게 즐거웠어. 얼어붙은 논바닥 위에서 팽이를 채찍으로 후려치며, 그저 그것이 돌고 있는 모습에 코가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황홀해하는 아이처럼 좋았다.”

    정약전은 이제 정약용이 대답을 하든 말든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말한 낚시도 좋고, 농사도 좋다. 찻잎을 따서 학문을 강론하며 한 잔 향기를 즐기는 것은 더욱 좋지. 하지만…….”

    정약용은 그 순간 피할 수 없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다음 말이 바로 형의 유언이다.

    그는 급하게 정약전에게 다가들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높낮이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이뤄야 할 혁명 과업들만이 계속해서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정약전은 눈을 감았다.

    마치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지쳐서 잠드는 듯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약용은 김유근의 임종을 지켰을 때의 기랑과 같은 방식으로 확신했다.

    그의 형은 이제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는다.

    정약용은 혁명의 예법이 아닌 조선의 예법으로 통곡했다.

    ***

    죽는 자가 있다면 태어나는 자도 있다.

    2년 전 태어나 이제 자기 이름을 알아들을 정도가 된 프로이센인 아이는 죽음에 대해서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안겨 신기하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이자, 친한 사람들에게는 하인리히(Heinrich)라고 불리는 변호사는 아이를 외면한 채 권위주의적인 프로이센 가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며 걷고 있었다.

    그 하인리히의 옆에는 젊은 프로이센 장교가 걸음을 나란히 했다. 기품과 행동거지에서 독일 귀족의 자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전쟁광 같다는 말이다.

    두 신사는 모두 프로이센인이다. 정다운 사교라든지 유쾌한 농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하인리히가 입을 연 건 두 사람이 헤어질 때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명예로운 소개에 감사하오. 몰트케 소위.”

    “아닙니다. 변호사님. 저도 이 기회에 명사를 사귀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독일, 아니, 전 유럽을 통틀어도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는 사람의 저택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 저택의 주인은 유대인이다. 그런데 독일인은 대개 유대인을 보기만 해도 내부의 파시즙이 지독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선천성 질환을 갖고 있다.

    그러한 독일 한복판에 이런 저택을 짓고 산다는 점을 볼 때 보통 인사가 아님은 분명했다.

    중견 변호사에 불과한 하인리히는 물론, 햇병아리 장교인 몰트케 역시 원래대로라면 아무리 귀족이라 하더라도 그 집의 주인과 면식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몰트케는 남들이 감히 감당하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는 대가로 극동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유럽의 로트실트(로스차일드) 가문에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정시준 의장의 편지 한 장만 들고 왔습니다만 이토록 환영받을 줄이야. 저도 놀랐습니다.”

    “실로 그렇소. 그 동양인에 대한 소문은 나도 들었지만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몰트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군요. 비범한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허나 저는 아직도 그자가 능숙한 사기꾼인지, 대학생들이 헤겔의 강의 뜻도 모르고 떠드는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인지 어느 쪽으로도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인리히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 일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측면이 있소?”

    “글쎄요, 군사적으로는 인상 깊은 면이 없었습니다. 있다 한들 그건 그의 작은 일면일 겁니다.”

    그 이상 정시준에 대한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유럽인인 그들에게 있어 더 비중 있고 중요한 사람은 그들이 만난 나탄 로트실트, 영어로는 네이선 로스차일드다.

    영국에서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온 네이선은 바쁜 귀향 일정에도 정시준의 소개라는 말에 즉시 그들을 만났다.

    그는 프로이센 장교인 몰트케는 약간 불편해했지만 – 프로이센 장교를 편안하게 대하는 인간은 유럽에 별로 없어서 몰트케도 크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 같은 유대계인 하인리히에게는 친밀감을 보였다.

    사자는 잘 때 경계하지 않고, 강자는 조심을 안 해도 되는 법. 막강한 부호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품격 있는 다과회와 함께 ‘정시준이 예언한 유대 왕국의 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심해야 할 것은 몰트케 쪽이다. 그는 유대인의 왕국 따윈 수용소에서나 건국하는 게 어울린다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꽤 힘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로스차일드는 유대인의 정체성에 애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루터교로 개종을 했지만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으며, 동시에 몰트케가 관련된 소송 사건을 우연히 맡게 된 하인리히가 한번 만나서 얼굴도장을 찍어 둘 만한 자였다.

    “그분이 우리 아들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건 호의의 표시로 봐도 되겠지. 원래 이 아이의 가운데 이름[Zwischenname]은 내 이름을 땄었으나 나는 그분이 준 게오르크(Georg)로 기꺼이 바꾸겠소.”

    “그렇다면 아이의 이름은 카를 게오르크 마르크스(Karl Georg Marx)가 되겠군요. 멋집니다. 마르크스 씨.”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마침내 갈림길에 다다랐다.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카를이 이 낯선 남자에 대한 탐색을 위해 어머니의 품을 꼭 붙든 채 몰트케를 빤히 쳐다보는 동안 그는 하인리히 마르크스와 악수했다.

    “그럼 살펴 가시길.”

    “소위께서도. 나중에 다시 뵙길 바라겠소.”

    두 사람은 딱딱하게 헤어졌다. 몰트케는 몇 걸음 만에 하인리히에 대해 거의 잊어버렸다.

    이제 하인리히가 몰트케에게 받을 수임료는 꽤나 할인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덴마크 왕국의 가짜 신분을 벗어던진 몰트케는 앞으로 반세기 이상 바쁘다. 그는 지금부터 정시준처럼 조국을 통일하고 대륙을 정복할 구상을 해야만 했다.

    ***

    공화국의 궐기대회는 잔치의 성격이 짙다.

    게다가 이번에는 주석 동지가 당연하게도 거둔 위대한 승리를 경축하는 의미가 컸기에 각지 인민위원회의 씀씀이도 더욱 후했다.

    그것은 더 이상 변경은 아닌 이 아오지 탄광에도 마찬가지였다.

    고기로 표현된 주석 동지의 은혜는 목이 멜 정도로 뿌려졌다.

    그건 말 그대로 목이 멜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국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공화국 사람들도 대부분 아는 시준의 프라이드 치킨이 아오지 노동교화소에 특식으로 배급되었다.

    일반인에게조차 이 시대의 고기 요리는 국물로 양을 불리는 게 기본임을 감안할 때, 죄수에게 이 대접은 인류사상 최초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진짜로 맛이나 한번 볼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이전까지 뼈가 들어갔다 나온 국물 맛밖에 못 보던 반동들로서는 천상의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이 멍청한 놈들. 그러니까 너희가 만년 교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침 질질 흘리기 전에 반동에게도 고루 미치는 주석 동지의 이 은혜에 먼저 감사하란 말이다!”

    그렇게 외치는 자는 혁명군이나 내무군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아오지 탄광에서 똑같이 교화 받고 있는 반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동 중에서도 좀 특별하다.

    인생의 대부분은 이병원이라는 이름을 쓰고, 짧은 기간 이품이라는 이름을 썼던 그 사람은 바로 과거 조선의 왕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모략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말이지 나라가 망하지만 않았어도 속도의 선조, 유연함의 인조와 함께 나란히 3대 명군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연 정략군주답게, 이품은 원래 김조순과 함께 있던 은광에서 여기로 옮겨지고 나서도 능숙한 수완을 발휘했다.

    정치장교들도 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격렬한 충성을 보인 이품은 여기서도 곧 십장(什長)이 되었다.

    정치국의 의도대로 반동 출신 십장들은 다른 반동을 착취하며 통제함과 동시에 흔들림 없는 충성을 보였다. 공화국에서 그를 버리는 순간 갈가리 찢겨 죽을 테니까.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카포(Kapo)로 유명해진 이이제이책이지만 나치 하는 짓이 다 그렇듯 독창적인 발상은 아니다. 고대 제국부터 지금 공화국까지 절찬리 사용되는 실무 방침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품은 십장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략군주 이품은 쇠솥을 탕탕 치며 동료 반동들을 닦달했다.

    “너희가 무엇을 얼마나 받느냐는 이 십장 어른의, 아니 동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거기 가장 앞에 줄 선 반동. 너 저번에 담배 바치는 일을 게을리 했으렷다?”

    “시, 십장 나리, 아니 십장 동지…… 진짜 뭐라도 뱃속에 기름기 안 넣으면 당장 말라 죽겠습니다요. 다음엔 두 배로 갖다 드릴 테니…….”

    그러나 이품은 그 수감자를 매몰차게 밀쳐 버렸다.

    이품과 달리 제대로 못 먹어 비실비실한 반동은 그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늘의 특식도 십장의 자의대로 배분되었다.

    허나 이 아오지 탄광에는 많은 작업소가 있고 그 작업소 안에 십장도 여러 명이다.

    다른 조에서 그나마 공정하게 받아 온 듯한 한 사람이 그 불쌍한 반동에게로 다가왔다.

    “딱하게 됐군. 이거 먹게.”

    초췌한 인상의 선비처럼 보이는 그 중늙은이는 – 여기 대부분이 선비 출신이다 - 자기 몫을 그대로 쓰러진 자에게 건네주었다.

    쓰러진 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고깃조각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손을 멈추었다. 본능적 경계심 때문이다.

    “왜, 왜 주시는 거요? 보아하니 우리 조도 아니라 내가 도움을 드릴 만한 것도 없는데.”

    선행을 베푼 선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내가 별로 이걸 안 좋아하네.”

    쓰러졌던 사람은 더 이상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는 허겁지겁 고기를 빼앗아 톡 털어 넣었다(부피가 너무 작아 씹는다거나 베어 문다고 표현할 수 없다).

    그러고 나서야 사단(四端)이 좀 돌아왔는지, 그는 머뭇대며 말했다.

    “함자라도 알려주시면 나중에 꼭 보답하도록 하겠소이다.”

    “됐네. 들키면 저자가 또 야료를 부릴 터이니 어서 돌아가 보게.”

    얻어먹은 자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듯 떠났다. 그리고 선비는 허핍하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건 그자를 위한 일이었다. 만약 들켰다간 자기와 원수지간인 이품은 저 사람을 더욱 혹심하게 괴롭힐 테니까 말이다.

    왕은 아니지만 조선의 전 최고 권력자였던 김조순은 다른 조에서 여전히 배분되고 있는 닭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품과 김조순이 극명한 반대 입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오지 탄광의 생활은 처참 그 자체였다. 만약 있었다면 유엔 인권사무소가 열렬히 성토할 만행이다.

    하지만 그건 현대인의 감성이다. 김조순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이었다면 이 사람들을 이만큼 목숨 붙여 놓을 밥도 없어서 다 목 자르고 끝냈다.

    공화국이 ‘노동교화’를 실시하는 건, 그만큼 이들을 가둬 놓을 관치(官治)가 되어 있고 그만한 재부를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건 튀긴 닭이다. 조선이 무슨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고기 구경도 못 한다고 할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원할 때는 언제든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할 만한 나라도 아니었다(그런 나라는 지금 없다).

    하지만 아무리 교화소의 폭동이나 집단 아사를 막는 목적이라 한들 닭 국물도 아니고 튀긴 닭이라니, 이건 진실로 뜻밖이었다.

    닭도 닭이지만 기름은 또 얼마나 비싼 물건인가. 이것만 봐도 현재의 공화국이 옛 조선 왕국에 비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알 만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또 하나 더 있었다.

    튀겨서 주라고 내려온 닭이 있다면, 그중 최소한 8할은 중간에서 빼돌리고 나머지 2할로 국물만 묽게 내서 주는 게 맞다.

    그것이 조선의 상식이다. 조선 시대에는 딱히 횡령이라고 규정짓기도 힘들었다. 그게 공무원 성과급 주는 방식이었으니까. 못 받으면 그놈이 멍청한 거다.

    조선이 미개해서 그러한가 하면 결코 아니다.

    조선의 뒤를 이은 대한민국의 국군 역시,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위에서 감사 나오는 날이면 병사들 식판에 그날‘만’ 정량대로 담긴 고기가 넘쳤다(또 다른 계승자 조선인민군은 감사고 뭐고 그냥 고기가 없다. 여긴 21세기에도 일관적이다).

    인간의 공통 속성인 것이다.

    하물며 이들은 국가에 복무하는 병사도 아니다. 왜 죽이지 않는지가 더 궁금한 정치범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횡령이 없었다는 건 공포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실제로는 물론 일부 있었겠으나 튀긴 닭을 삶은 닭으로 바꿔야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너는 대체 무엇을 만든 것이냐. 정시준.’

    이제 식사 시간 끝났다는 의미로 시끄러운 영길리종이 땡땡 울렸다. 그러나 김조순은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품과 달리 그는 위에 아부하여 십장 자리 꿰차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국의 정병을 휘두른 권력자의 풍모가 어디 가지는 않아서 이쪽 조의 십장은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조순은 잠깐 더 여유를 즐길 수도 있었다.

    그는 십장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달려들어 핥을 수 있는 빈 솥을 힐끗 쳐다보고 한숨을 토했다.

    “그때 쟁반으로 가득히 바쳐 올릴 때 한번 맛이나 볼 걸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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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칼 마르크스(1818년생)의 풀네임은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입니다. 그 부친 하인리히에 대한 서술도 모두 역사와 같지만, 몰트케와의 소송 인연은 창작입니다. 그리고 딱히 나치 없었던 그때도 프로이센은 유대인을 박해했습니다. 하인리히가 개종한 것도 그 때문.

    2. 로트실트 본가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데,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영국 담당으로서 아직은 종통이 아닙니다. 영국 로스차일드가 종가가 되는 것은 20세기 초 독일 본가가 몰락한 이후입니다.

    3. 카포란 관리자를 뜻하는 말로써, 절멸수용소에서 수감자를 통제하는 수감자를 말합니다. 당연히 수감자 입장에선 용서할 수 없는 앞잡이이기 때문에 나치가 몰락한 후에는 찾아내는 대로 죽임을 당했죠. 다만 이렇게 통제 대상자 중에서 관리자를 선발하는 방식은, 작중 나온 것과 같은 이점이 있어 고대부터 어디랄 것도 없이 광범위하게 써먹었기에 카포가 특별하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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