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95. 처음과 끝(1)
시준은 묻는 눈길을 보냈다. 별로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그러자 푸셰는 양손을 폈다.
“나? 아니야. 그간 쌓은 우리 우정의 이름으로, 내가 그렇게 유치한 제안을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을 텐데. 상임위원회, 국무당, 혁명군, 재판소는 이제 자네 없이 권한의 분립을 처음 시험해야 해. 그 자리에 가장 걸맞은 사람들을, 자네는 중국 갔을 때의 경험으로 알고 있겠지?”
“후계자라니, 그건—”
“—인민이 뽑아야 한다 이거지. 하지만 인민은 무조건 자네만을 뽑을걸?”
시준은 부정할 수 없었다.
“후계자를 확실히 해 놔. 그리고 그자에게 투표하는 것이 곧 자네에게 투표하는 것이라고 인식시켜. 그게 남은 1년 동안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야.”
시준은 ‘어떻게?’라고 물으려다가 곧 그것을 멈췄다. 그는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당신이 왜 왔는지 알겠군요.”
“그렇지? 내 도움이 필요할 걸세.”
공화국 국무당 선전선동부장 조제프 푸셰는 히죽 웃었다.
쾌활한 언동을 보니 푸셰의 명줄도 원 역사보다 상당히 길어진 것 같았다.
지금은 비록 병석에 누워 있지만 정약전 역시 수명보다 오래 살았다. 과로가 건강에 나쁜 것은 분명하지만 귀양살이의 실의보다는 나은 것이다.
푸셰 역시 비슷하다.
원래 그는 이때쯤 해서 말년의 모든 정치적 재기 시도가 실패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가 죽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자양분인 권력이 공급되고 있다.
그리고 푸셰가 그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뿌리는 항상 배반과 모략이었다.
정약전이 없는 지금, 푸셰는 정약전에 대해 다시 한번 약간의 ‘배신’을 실행했다.
목적만 유지된다면, 푸셰에게 있어 수단은 고집의 대상이 아니다.
주석의 권력을 반석에 올려 자신과 정치국 위원들의 안위를 보장받는 대신 ‘주석 동지의 뜻을 따름으로써’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다.
시준의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스스로 협조를 청해 왔다. 그는 푸셰와 굳게 손을 잡았다.
“원하는 것은? 프랑스에 돌아가고 싶다면 외교관 자리를 마련하죠.”
“무슨 농담을. 특사 정도라면 한 번쯤 갈 수 있지만 주재관은 사양이야. 거긴 날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많아. 그리고 어차피 내 명은 공화국에 바쳤네. 이 나이에 ‘외국’ 가서 고생해 봐야 뭘 얻겠는가?”
시준도 푸셰처럼 마주 웃어 주었다. 정말이지 초지일관하게 뻔뻔한 것이 이 사람의 매력이었다.
***
영국 정부가 한번 탄압의 고삐를 늦추자 조지당은 폭발적으로 퍼져갔다.
물론 도시 노동자에게 투표권이 생긴 건 아니라서 아직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토마스 코크란 제독이 결집시키고 있는 급진파는 일반 참정권의 초석을 하나하나 쌓아 갔다.
거기에는 고려가 간접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로버트 스튜어트와 젠킨슨 내각은 꿩 대신 닭이라고 싱가포르의 확보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상하이와 대만을(그리고 고려와의 동맹국 지위도) 지키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고려 공사관에 추파를 던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정약용과 이강회는 조선 사람들의 사교술을 발휘했다.
영국 의회에서 보수파로 분류되는 의원이 정부 내각의 일원으로 협상하러 오거나, 혹은 친교를 다질 목적으로 방문하거나 하면 두 사람은 명백한 푸대접을 돌려주었다.
그렇다고 티 나게 따돌리거나 박대한 건 아니다. 그건 너무 직접적이고 위험하다.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얘기만 늘어놓다 가게 한다거나 우연히 자리에 없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중요한 정보는 토마스 코크란을 통해 연결된 급진파 의원들과 주로 공유했다.
아무래도 조선 방식이라 조금 늦게 파악하기는 했으나, 결국 ‘고려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인사’들의 공통점을 파악해 낸 젠킨슨 내각은 싫어도 그 파벌의 의원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양국의 뜻이 일치하자 이제 남은 것은 조인 절차였다.
아무래도 영국 쪽이 장거리 운송 수단을 운영하기 쉬운지라 그쪽에서 공화국으로 본국의 훈령과 지시를 보내기로 했다. 중국 공사 조지 스턴튼과 ‘대리’ 직함 떼고 공사로 승격된 토마스 매닝이 국왕을 대신하여 조약에 서명한다.
관련국의 의사 자체는 이미 일치했다. 따라서 이는 형식주의자에게는 중요하지만 실질주의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만큼의 가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학자 정약용의 경우, 그 배가 가는 길에 (공짜로) 자신과 일부 고려 사람들을 본국에 데려다줄 수 있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이제 뒷일은 이강회가 알아서 할 수 있을 터. 베이커 가 오리엔탈 파이터즈 역시 맨체스터에서 충분히 자격을 증명한 오계순 등 신규 인원이 계승할 것이다.
정약용은 오랫동안 고향을 보지 못했던 고려 사람들을 몇 데리고 영국을 떠났다.
과거 세인트헬레나에서 영국까지 정약용을 호위했던 HMS 벨레로폰이 다시 그 역할을 맡았다.
혁명력 10년(1820년) 여름, ‘1기 영길리 공사관’ 일행은 마드라스에 도착했다.
문순득은 정약용과 같이 돌아온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흔도사단에 도착할 때까지는 지루한 항해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하품을 연발했다.
그러나 마드라스에 기항하자 문순득의 머릿속에서 따분함이란 단어는 날아가 버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벌써 삼화부에 도착한 것인가 생각했다.
물론 그러려면 이 HMS 벨레로폰이 1786년 취역한 전열함이 아니라 1906년 취역한 드레드노트 전함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마드라스에 있는 게 맞았다.
그러니까, 공화국에 있어야 할 문순득의 가족이 마드라스까지 왔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문순득은 항구에 나와 있던 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이역만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도 황망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남 여환(吕還)이 자기 이름대로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주석 동지의 배려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께서 항해에 고생하셨지요.”
“그러게 말이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갈 터인데 왜…….”
여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께서는 아직 모르십니까? 총괄서결부장 동지(정약전)가 말씀 올려 주셔서, 주석 동지께서 특별히 아버님을 팽저보방(旁遮普邦, 펀자브. 시크 왕국을 말한다)의 공사대리로 임하셨고 정치국에서도 후보위원으로 선출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가솔도 같이 거느리라 하셔서 온 것인데…….”
“뭐?”
아무리 혁명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문순득은 더 놀랄 기운도 없어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여환도 당황하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품에서 봉인된 서찰을 꺼내 내밀었다.
“저는 이게 그저 특지(임명장)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마 여기에 사정이 나와 있을 듯합니다.”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순득 대신 정약용이 그것을 먼저 받아 읽었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지가 여기에 농상진흥부장 동지(이강회)와 처음 왔을 때, 흔도사단의 머리를 싸매는 자들(시크교도) 흉내를 냈던 것을 기억하는가?”
“물론이지요.”
“내가 예전에 고총련 회장 동지(기랑)에게 전해 듣기로, 그 교도는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젊은 패왕 한 사람(란지트 싱)이 황제를 칭했는데 그 기세가 가히 혁명적이라 하네.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자객을 손수 쳐죽이고, 곧 수만의 군대를 몰아 사방으로 나아가니 그 광대함이 중원에 필적하는 팽저보방 전토의 제후와 백성이 모두 복종했다던가.”
“마치 우리 주석 동지 같군요!”
“허허. 어떻게 주석 동지에 비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 영용함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 다만 아쉬운 것은 혁명적이지 못하게도 무슨 상제(上帝, 시크교 우주의 창조자 와헤구루를 말한다)의 이름을 빌어 사람을 모은다는 점인데…….”
아무튼 객관성이란 걸 상실했다는 면에서는 정약용도 똑같았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태조가 일으킨 가르침일세. 회회교도와 흔도사단 사람들(무슬림과 힌두교도)이 까닭 없이 천역을 압제하고 부인을 학대하며 승려들의 체면을 위해 번잡스런 교의를 강요하므로 그것에 분개하여 일어선 사람이라네.
그래서 이것저것 쓸데없이 금하거나 헛된 제의로 심신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어. 가난한 자를 돕고 이득을 거짓 없이 얻으며 정성과 신실로 살아가는 것을 으뜸으로 치지.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일체 같아서 서로 아끼고 도와야 한다는 거야.”
문순득은 과연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될 만큼의 혁명성을 보여주었다.
“그건 수평도가 아닙니까?”
“길이 다르나 비슷한 곳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구먼. 그래서 주석 동지는 그 나라와도 친교를 트려 하는 거야. 어쩌면 그 나라는 세상에서 수평도가 가장 빨리 들어갈 나라가 될 수 있어. 지금까지 영길리에서 불학무식 탐욕무도한 오랑캐들 상대하던 고생에 비하면 훨씬 나을 걸세.”
“그, 그런데 왜 굳이 여기서도 혁명을 전해야 할까요? 동지의 말씀대로라면 그 나라는 반동의 무리가 별로 없지 않겠습니까?”
잠깐 고민하던 정약용은 자신이 짐작해낸 사실도 말해 주기로 했다. 이제부터 독자적인 외교를 수행할 문순득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내버려 두면 이 흔도사단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영길리 해적의 손에 틀림없이 멸절될 테니까. 그러고 나면 영길리국은 또 인민과 재물을 착취하여 강대한 힘을 얻을 터. 나라끼리 긴밀히 연결해 그 꼴을 면해 보려는 게지. 동지도 그들의 잔인함을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주석 동지의 지혜가 어디까지 내다보는지 궁금해지는군. 아무튼 동지는 지금 대단한 신임을 받는 걸세.”
“아니. 그런 중임이라면 외사통호부장 동지라거나…….”
“이 늙은이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주석 동지의 빗나감 없는 광명영도로써 지목한 바이니 사양하지 말게. 그리고…….”
정약용은 잔잔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형님, 아니, 총괄서결국장 동지께서 위독하시다더니 그 와중에도 옛정을 잊지는 않으셨나 보군. 마지막에 당신 때문에 고향 떠나 살게 된 동지를 부탁하신 것일세.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니! 두 단계는 건너뛴 출세가 아닌가.”
정상적인 현대 국가라면 용납할 수 없는 밀실인사지만 조선 사람들 기준으로 봤을 때는 더없이 화기애애하고 모범적인 도리였다.
그래서 문순득 역시 다른 면에서만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마지막이라뇨. 불길한 말씀 마십쇼. 좀. 아니, 나도 사람 된 도리로 총괄서결부장 동지를 문안하러 갈 참이었는데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국의 명은 인민의 명이니 따를 수밖에. 간찰이라도 쓰게. 내가 전해 주겠네. 아, 그리고 팽저보방은 여기에서 수천 리……. 아니, 2천 킬로미터 건너 북서쪽 흔도사단 반대편에 있으니 차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게야. 차라리 배를 타는 게 낫겠군. 여기 총독(휴 엘리엇)이 나와 교우가 있으니 그건 내가 부탁해 주지.”
문순득이 허둥지둥 정약전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가족들도 안심하자(자칫하면 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갈 뻔했으니까), 정약용도 한가해졌다.
그는 이미 예전에도 와 본 적 있는 마드라스의 이국적이고 시끌벅적한 공기에 다시 눈을 돌렸다.
허나 이번에 정약용이 바라보는 곳은 마드라스 동쪽 바다라기보다 그 너머였다.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이라. 실로 그렇군. 내가 아니라 문순득 동지에게 맡긴 네 뜻도 알겠다. 그래서 고맙구나. 소광(疏廣)을 본받는다 할 수 있을까마는 역시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함이 없는[知足不辱 知止不殆, 『도덕경(道德經)』] 법이라. 나도 혁명을 다른 인민들에게 맡기고 너와 함께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다.’
시준을 권좌에 못이라도 쳐서 박아 놓고 싶어 안달하는 정약전이나 푸셰, 혹은 정감록 패거리들과 달리 정약용은 시준을 혁명 이전부터 봐 왔다.
그래서 그가 권력이 탐나 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정약용은 시준에게 더 이상의 연임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약용이 시준을 편하게 해 주려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꾸나. 내가 너를 위해 고금의 경전과 사서를 서양국의 사세와 비교해 설하여 많은 문건을 써 놓았으니 돌아가기만 하면 이를 정리할 것이다.’
***
지유가 물었다.
“왜 한여름에 갑자기 몸을 그렇게 떨어?”
“그, 그러게. 뭔가 소름이 끼쳐서 말이다.”
지유는 몸을 맞대고 있던 시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별로 차갑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옷을 제대로 안 걸쳐서 그런가. 해도 떴으니 이제 차려입어. 머리 빗고 나가봐야지.”
“아, 오늘은 집에서 하려고. 너한테 물어볼 것도 많고. 어제 말한 동삼성 부녀회 명단은 어디 있지?”
“넌 가끔 우리 회장보다 독촉이 심해. 그게 하루 만에 어디 되니?”
자기 옷고름을 묶은 지유는 홑옷 차림으로 일어났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제 공화국 사람들 역시 주석의 21세기식 처리 속도에 익숙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오늘까지 되죠?’라고 지껄이는 주석 동지의 예술영도지만 따라가지 못한다면 혁명의 속도전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러느라 엄청난 숫자의 꼼수와 날림이 만연한다 해도 또 그럭저럭 돌아가는 게 19세기 행정이다.
그래서 지유도 동삼성의 중요한 대표자 명단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준은 그것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건 왜? 여기 보니까 다른 모임 명단도 있는 것 같은데. 이 모태사공회(慕太史公會, 사마천을 본받는 모임)란 건 뭐지?”
상영귀가 결성한 고자연합이라고 말해 줄 수 없었던 시준은 그냥 대충 넘겼다.
“옛날 청조에서 일하다가 전향서 쓴 사람들의 모임이야.”
“그래? 그러고 보니 다 압록강 북쪽에 있는 사람들이네.”
“맞아. 아직 거기 사람들은 궐기대회(蹶起大會)에 익숙하지 않잖아. 이번에 북쪽으로 이주하는 사안에 대한 정치국 회의가 끝나면 궐기대회를 지도해야 해.”
시준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공화국’에서 왜 이 짓을 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혁명 초기 정치국의 결정은 월간 대혁명이나 각지 인민위원회로 가는 파발을 통해 하달되었다.
TV나 라디오가 없으므로, 글을 모르거나 생업에 바쁜 사람들을 위해 학생들이라거나 정치 지도원이 생산 현장에 나가 그것을 전파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아무래도 누락과 왜곡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라도 사람들을 모아서 공적인 권위의 보증하에 전달하는 자리가 필요했는데, 혁명경연(생활총화)은 보통 사업 단위 자체 문제를 점검하는 시간이고 모든 사람이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본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던 행사인 궐기대회의 성격이 2기 때부터 변화되었다.
정치국 회의의 결론이 떨어지면 각지에서는 그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단합대회가 열린다. 사람들은 자기 고을이나 농장, 공창에서 어떻게 하면 ‘중앙인민회의와 정치국이 제시한 혁명적 목표를 점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설하고 토론한다.
그래도 그 공화국보다는 나은 점이 있었다. 거기처럼 줄 맞춰 각 잡고 설 필요까진 없고 게다가 군것질거리나마 조금씩 씹을 수 있는 소규모 잔치에 가깝다는 점이다.
물론 끝나고 나서는 궐기대회에서 결정된 추진 방향을 현수막에 크게 써서, 주석 동지에 대한 충성 맹세와 공화국의 혁명 만세를 외치며 현수막 들고 행진한다는 건 비슷했다.
북한의 실상을 시준이 모르는 것도 아니요, 그의 사상이 원래 의심스럽던 것도 아니다.
시준 역시 예전에 TV 화면으로 볼 때는 부조리 코미디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안 믿어서 그렇지 혁명은 진짜로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허나 막상 닥치고 보니, 이 웃기는 행진조차 정치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었다.
궐기대회를 냉소하거나 오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자기 동네 사람들이 전부 함께 즐겁게 소리치며 나아가는 것을 보면 위기감이 들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집단에서의 배척이 살해보다 무거운 형벌일 정도로. 파문[Excommunicate]은 모임[communicate]에서 배제한다[Ex]는 뜻. 한 마디로 왕따라고 번역하면 된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정치국 회의 한 번 할 때마다 고을 사람들이 연단 놓고 목청 가다듬은 채 모이게 되는 광경도 더 이상 진풍경이 아니었다.
어쨌든 궐기대회 자체로는 지유에게도 익숙한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방에 쳐들어온 명주를 안으며 물었다.
“그래? 그러면 이번에 봉천도(奉天道, 봉천성)나 길림도(吉林道, 길림성)로 다시 갈 거야?”
“아니. 나는 안 가. 그래서 오늘은 너와 얘기하자고 한 거야. 김부용 동지가 대신 가서 부녀회 궐기대회를 지도했으면 하는데.”
지유는 어차피 네가 가든 안 가든 그런 분야별 궐기대회는 책임자들이 지도하는 거 아니냐고 하려 했다.
허나 그녀는 문득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너 이거 몇 번째 하는 얘기야?”
시준은 웃어버렸다. 그의 치명적 과오만 아니면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을 양심에 찔리지 않고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네 생각이 맞아. 이번 궐기대회에서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해. 각지 인민위원회는 평준위원장(김창시)이 맡을 거고, 군대는 총정치국장(이제초)가 맡아서 가. 그 사람들도 지금까지처럼 내가 수결한 글 읽는 게 아니야. 사실 부녀회장이나 평준위원장, 총정치국장 같은 중임의 인사들이 궐기대회에 직접 나서는 일은 드물잖아?”
“그럼 전부 위임하려는 거야? 중국 갔을 때처럼 아예 나눠서 임명하지 않고 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
“그건 너무 티가 나니까. 드러나지 않게 하고 싶어.”
정치국 회의에서 결정되는 안건은 포괄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국가 보편적인 사안을 다뤄야 하는 게 국무회의니 말이다.
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할 구체적 실무 방향은 세부적으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과정은 각 책임자들이 국무당에 보고하고 시준이 결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고 나면 이것은 공화국에 적용된다.
그러나 시준은 그 절차를 생략했다. 이는 단지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그러면 자기 생각에 따라 사업을 벌일 수 있겠지. 그 사람들은 모두 현명하니까 별로 걱정은 안 해.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람만’ 지정했다는 거야. 궐기대회의 총책인 선전선동부에서는 그것을 힘써 알릴 거고.”
궐기대회만이 아니다. 앞으로 ‘후계자’들이 하는 일에는 시준의 철저히 간접적인 후원이 뒤따른다.
시준은 그들의 발표에만 은근히 동의하거나, 그 사람의 생각을 다시 되풀이해 인용하여 말해 주거나 할 것이다.
지유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흐음. 그러면 인민들은 네가 ‘누구에게’ 권세를 주려는지 자기가 눈치챘다고 생각하겠구나?”
“내가 준다는 말은 좀 그렇잖아? 그저 그간 인민들을 위해 힘써 온 사람이 나만이 아님을 알리는 거라고 생각해 줘.”
“하긴 그 말도 옳네. 네가 가면 다른 동지들이 열심히 일해도 사람들은 너만 보고 있을 테니.”
지유는 안심했다. 남편의 일은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하고자 했다.
지유는 짐짓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기왕이면 아내를 두둔하는 게 맞지 않아? 나도 꽤 오랫동안 부녀회 부회장을 하고 있는데.”
시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지금 인민에게 가장 신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사람으로 골랐어.”
“어머? 나는 아니라는 거야?”
“네가 김부용 동지를 꺾고 회장 자리에 오른다면 물심양면으로 지지해 줄게. 3기는 어려워도 4기쯤에는 해볼 만하지 않겠어? 뭐, 그땐 내가 주석은 아니겠지만.”
시준은 제 발 저려서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회장인 기랑이의 경우도 궐기대회에 지명하진 않았어. 회장인 건 맞지만, 기랑이는 고총련 사람들이 충성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하고는 친하지도 않고 그래서 인민들이 잘 알지도 못해. 너도 기랑이 사람됨을 알잖아? 차라리 조선공장회의 정대운 동지나 고총련 안의 다른 사람들 중에서 고르고 있어.”
지유는 눈을 껌벅껌벅했다.
뒤쪽의 변명은 듣지도 않았다. 지유가 궁금해하는 건 그것이 아니었다.
사실 지유도 무슨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 이 짓 하는 건 아니다. 지유가 가진 동기의 절반 정도는 시준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지유는 시준이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나와 같이 한가롭게 살자’는 말을 해 주리라 여겼다. 어쨌든 그녀는 현대인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그렇게 착각할지라도, 시준은 지유와 기랑의 사업을 자신에게 종속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기는 일 그만둔다. 시준은 확고하게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혁명을 이어받을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들 역시 원하는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시준의 가족이 되기 이전부터 혁명가였다.
“내가 주석 자리에서 물러나면 할 일이 뭐겠니. 이제 한적한 곳에서 살다가는 의심이나 받을 테니 뭔가 사업을 해야 해. 아마 장사를 다시 하겠지? 그때 네가 부녀회장이 되어 있다면 면직소 쪽의 융통이나 알선을 내가 도와줄 수 있잖아. 기랑이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번에는 시준이 도와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녀들이 시준에게 큰 도움이 된 것처럼 말이다.
지유는 커다란 웃음을 지었다.
시준이 없으면 더 이상 국가 공무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은 기뻤다.
이렇게까지 아내(들)을 충심으로 섬기는 남편은 없었을 것이다.
지유는 이제 어미 품도 싫증 내기 시작한 명주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시준의 목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역시 너는 주석이든 아니든 우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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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문순득의 아들 이름은 실제로 여환이 맞습니다. 원 역사에서도 오랜 표류 끝에 돌아왔다(혹은 ‘여송에서 돌아왔다’고도 해석 가능)는 뜻으로 정약용이 지어 준 이름이죠.
2. 소광은 아들과 나란히 한나라의 고관을 역임한 사람으로, 작중 나온 저 말을 하며 (특별한 허물이 없음에도) 아들과 함께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입니다. 원전은 도덕경입니다만 소광의 발언이 더 유명하긴 하죠. 이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고 나서도 사람들의 시기를 받을까봐 (당대 다들 하던) 사채놀이나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불리지 않고 한량처럼 살다 천수를 누리고 갑니다.
3. 펀자브가 넓긴 하지만 중원만큼 넓지는 않습니다. 정약용의 말은 대강 어림잡아 말한 겁니다. 다만 마드라스에서 펀자브가 2천 킬로미터쯤 되는 건 맞습니다.
4. 북한은 실제로 정치국 회의라든지 당 전원회의라든지 하는 행사 이후에 각지에서 궐기대회(행사 방식에 따라서 군중모임이라고도 함)가 개최됩니다. 형식상으로는 보도를 보고 ‘혁명의 신심이 끓어 넘쳐’ 각계각층에서 ‘스스로 개최’하는 행사입니다만…… 한번 사진에서 표정들만 봐도 실상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북한처럼 체계적으로 일상화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군사정권 시절에는 비슷한 행사가 국가개입으로 많이 개최되었습니다.
5. 파문을 뜻하는 Excommunicate의 communicate는 지금 떠오르실 커뮤니케이트, 즉 소통과 친교가 원래 뜻이지만 종교적 파문에서 말할 때는 성체성사를 의미합니다. 성사에서 성체를 나눠주는 일에서 쫓아낸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