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94. 혁명의 뒤편(3)
문순득의 말대로 기사의 대부분은 전쟁과 폭동 얘기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아시아 원정군은 중국 황제의 체포, 동인도 회사령의 확보, 동아시아에서의 안정적 무역 이익 확보 중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간신히 폐지는 면할 듯한 동인도 회사이나, 이사장 윌리엄 아스텔의 퇴진은 면하기 힘들 것으로 ……>
<토마스 코크란 제독의 인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 주가 조작에 대한 처벌을 회피시킨다는 내부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귀한 장병의 목숨과 국가의 명예를 낭비하는 것은 용납되는가?>
<전사자 통보의 누락과 선거권 요구가 맞물려 런던에서 재차 폭동! 한편 ‘조지당’을 키운 것은 베이커 가의 빈민 구호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이에 대해서 런던 시경은……>
그러나 그러한 영국 내부의 얘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과 고려에 대한 주목도 빠질 수 없었다.
안목 있노라 하는 익명의 신사(숙녀일지도 모른다)들은 주로 잡지에 실린 꽤 긴 사설로써 이 정세에 대해 분석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왕 첸 약방은 이미 3개월 전부터 동인도 회사 주식과 영국 전쟁국채를 매각해 왔다. …… 상식적으로 동맹국의 패배를 전제로 한 작전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 대상이 영국군이고 적이 중국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이 예언자[Oracle]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동맹국의 패배를 어떤 신비로운 방식으로 예측하였으며, 그 와중 최고의 이익을 거두는 방법을 택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반왕 정시준은 영국군이 패배하는 와중 그들을 구출하고 동시에 담당 전선에서 획기적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은 치욕스러운 겁쟁이가 되었고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포모사 섬과 류큐의 이득을 지키는 것 정도가 협상에서의 최선으로 보인다.
정시준의 앞에서 어떤 왕도 군주의 위엄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연합왕국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전쟁이 어쩌면 일반적인 동기가 아닐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저명한 중국학자이며 현 중국 공사 조지 스턴튼 씨의 견해를 소개하면, 지금부터의 중국은 이전까지의 중국과 완전히 다른 나라다.
……
그 전 수천 년간 없었던 이념에 의해, 이들은 옛 독일 영방이나 지금 그리스에서 일부 실현, 혹은 논의되었던 ‘문화 공유자들의 개별 자치’를 실험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반전제 혁명 자체가 처음부터 그랬듯 정시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
가장 최근의 소식에 따르면 그는 새로운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방법으로 민족 국가주의[ethnic nationalism]를 제안했다. …… 이는 특이하게도 정부가 아니라 혁명 중앙의회(중앙인민회의를 말한다)의 이름으로 발표된 바, 선거의 대표성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는 우리 연합 왕국과 비슷해 보이나 완전히 다르다. 전통, 종교, 혈통을 공유하는 집단이 한 공통 정부에 외교와 군사권을 양도하는 중국의 새로운 연방 방식은 …… 평등은 구별을 전제하는 것. 하나가 되려면 오히려 나뉘어야 한다는 그 역발상은 정의에 기초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져 중국인들을 크게 고무시키고 있다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이로써 극동아시아에는 그들의 전통적 친밀감과 함께 반군주, 반억압의 가치를 공유하는 거대한 국가 동맹체가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 이는 유럽인, 특히 영국의 동아시아 이익 확보에 있어서 큰 난관으로 작용하며 …… 따라서 중국 황제를 빼돌린 러시아인들의 선수(先手)에 모든 것을 빼앗기기 전에 즉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런던 증권거래소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왕 첸 약방의 승승장구는 과연 정시준의 예지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서 눈 날카로운 신사들이 왕 첸 그룹의 배후 설립자라고 평가하는 로스차일드 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언자를 내세워 정치에 요직을 침투시키고 숙원을 이루려 하는 로스차일드의 행보는 그야말로 예언자 엘리사의 사적을……>
주식 시장의 짜릿한 자극으로 역치가 너무 올라간 이강회에게 딱딱한 사설은 좀 심심한 것이었다.
이강회는 그것을 치워 두고 약간 화려한 표지의 책에 손을 대었다.
과연 판매 부수 올리기 위해 약간 과감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은 기사는 이 시대에도 있었다.
<본지에서는 정시준의 사도로 유명한 윌리엄 자딘 박사를 초빙하여, 교활한 프랑스인 조제프 푸셰의 왜곡된 평전에 의해 가려진 정시준의 정치학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지금까지 그는 여러 명의 정부(情婦)를 두어 국가 기관을 통제한다고 알려져 왔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서사를 다룬 ‘정시준의 검은 책’과 더불어 프랑스인의 음란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덕망 높은 침례교 목사로서 인도와 동아시아에서의 역정 끝에 간신히 본국으로 돌아온 윌리엄 캐리 씨는, 정시준이 사악한 비밀 의식을 통해 악마에게 예언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도가 그리스도의 기적을 증언함과 다를 바 없이 간증할 수 있다고 맹세했다. …… 그에 따르면 이번의 전쟁 또한 아스타로트에게 피의 제물을 바치려는 정시준의 책략에 놀아난 것으로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이미 꼬드김에 넘어가……>
이강회는 탄식했다.
“공화국 사람들이 이걸 볼까 봐 두렵군. 세상에, 점쟁이에 난봉꾼, 요술사라니! 사형제지간이었다는 이유로 나까지 같은 소릴 듣는 건 아니겠지?”
저쪽에서 좀 더 진지한 기사를 보고 있던 정약용이 안경을 내렸다.
둘만 있는 자리라 정약용도 이강회를 정치국 위원이 아니라 제자로서 대했다.
“그게 참말이라면 스승인 나는 뭐가 되겠느냐? 하긴 너도 여기서 목불인견의 무당패 모리배 노릇을 하였으니 두 사람을 길러낸 내 허물이 크기는 하다.”
이강회는 사형에 비하면 난 점잖은 선비라며 항의했다. 대단히 억울하다는 투였으나, 정약용이 정시준류 무시법으로 매몰차게 외면하자 얼마 안 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문득 보던 신문을 뒤집어 펼쳤다.
“꾸며내 붙이는 말이 허황되어서 그렇지, 그래도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허. 난봉꾼만 빼고 하나도 맞는 게 없지 않느냐. 일전에 말했듯 시준의 예지는 총명함으로 옛일을 살피는 것이지 무슨 요술이 아니니라.”
어쨌든 국무당 정치국 위원 두 사람이 주석 동지 놀리려고 모인 건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곧 진지한 분석에 돌입했다.
“대강 보니 알 만하오이다. 영길리인들은 공화국보다는 아라사를 경계하고 있고, 주석 동지에게 놀아난 것을 지탄하기보다 싸움에서 진 것을 지탄하고 있습니다. 조지당을 공화국과 연관 지어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도, 근본은 저들이 공화국과 주변 나라 사람들을 모두 깔보기 때문입니다.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게지요.”
“그렇다 하여도 다행이지. 혐의는 쓰지 않을 듯하구나. 시준은 이 모두를 헤아렸던 것이 틀림없다.”
“잘된 일이지만 왜 약간 울화가 들까요? 주석 동지, 아니 사형은 정말 어릴 때부터 미꾸라지 같군요.”
“그건 미꾸라지가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다고 하는 게다. 네 사형처럼 어서 수평도의 극의를 깨달아라. 어쨌든 주전(主戰)하는 무리는 소수. 영길리국은 지금 조지당과 공화국을 종사경물(綜事經物, 종합하여 잘 처리함)로써 깨끗이 할 수가 없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으니까.”
“맞습니다. 한쪽을 당기면 다른 쪽이 떨어지지요. 자작이 와서 할 얘기란 것도 짐작이 갑니다.”
두 사제가 마주 본 채, 방금까지 자기들이 씹던 주석 동지만큼이나 사악한 미소를 지었을 때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가 공사관에 도착했다.
차림새는 장관답게 흠잡을 데 없었으나 그 정신은 조지들의 외모보다도 더 후줄근해진 채였다.
***
1819년의 겨울은 빠르게 흘러갔다.
영국 정부는 조지들의 임금 인상, 투표권 보장, 선거구 재조정 중 어느 것도 해 주지 않았다.
다만 다른 곳에서 변화가 있었다. 의회는 발효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6개조법의 효력 대부분을 정지시키고 조지당에 대한 탄압을 중지했다.
이는 ‘천민들에게는 허락할 수 없지만’ 현재 향사나 귀족층 신사들이 친 노동자적인 정파를 만들어 의회에 진출하는 것까지는 타협하겠다는 얘기였다. 즉 현재도 있는 급진파의 확대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건 영국으로서는 정말이지 엄청난 양보다.
그 양보를 이룬 결정적 진전은, 로버트 스튜어트를 갖고 놀던 주 고려 영국 공사관에 드디어 돌아온 토마스 코크란이 도착하고부터였다.
토마스 코크란의 주장은, 전투에 대한 상세 보고를 빼고 나면 다음과 같았다.
“주가 조작범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 다만 군인의 명예를 포기하는 것은 두렵기에 말해 두겠는데, 중국은 결코 당신들이 생각하는 약체가 아니다. 이는 내가 가지고 온 정시준 의장의 보증으로도 증명된다. 나는 폄하하더라도 전쟁에 승리한 반왕의 말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간 짜하게 퍼진 정시준의 위명은 그 말의 설득력을 높였다. 그리고 코크란은 지금 당장 영국 정부가 할 일을 제시했다.
“현재 시급히 고려인민공화국과 협상하여 중재를 요구하지 않으면 중국의 수억 인민에 의해 상하이와 포모사에 남은 영국군은 몰살당한다. 아시아에서 대화가 통할 만한 근대식 정부를 갖춘 국가는 고려뿐이다.”
어째 그간 좀 수상한 방식으로 세뇌된 것 같은 찬양도 이어졌다.
“고려는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면에서 영국보다도 선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제 군주의 아집에 의존하겠는가? 아니면 미친 반란군의 이성에 의존하겠는가? 주중 영국 전권공사도 고려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훈령을 보내는 것이 옳다.”
중간이야 어쨌건 결과적인 사항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나 정도 있었다. 이 시점에서 영국 군부와 의회는 거의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럼 책임은 누가 지는데?’
물론 꼼꼼한 제독은 그것도 준비해 왔다. 제독의 상세 보고에는 이 사태를 일으킨 최악의 패장이 누군지 기록되어 있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영국 육군의 야전 역량을 소멸시켜 버린 닐 캠벨 대령이 그 제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천진에서 입은 중상이 회복되지 않은지라 제대로 변론을 펼 수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오는 배 위에서 죽는 게 좋았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불운아 존 빙의 고사는 19세기에 와서 재현되었다.
총살까지는 좀 너무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이미 공화국과 조지당 양쪽에 어느 정도 양보하여 이 지긋지긋한 사태를 끝낼 생각만 가득했던 내각은 자비가 없었다.
로버트 스튜어트가 다른 유럽 국가마저 영국을 조지로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사이 일은 하나하나 처리되었다.
다음 해, 그러니까 혁명력 10년(1820)년 봄이 되자 임칙서는 강녕부(난징)에서 정시준의 서신을 받아 볼 수 있었다.
“흠. 영길리국에게는 송강부(상하이)만 장사하도록 터주고 머물 곳 외의 땅은 주지 않되, 이주(대만)는 홍기방 해적을 토벌한 공을 감안하여 시비하지 않는다라.”
그 짧은 ‘권고’ 외의 나머지는 정시준 자신이 십만 군대 끌고 온다는 영길리 놈들을 달래어 나머지 개항장을 포기하게 만드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임칙서로서는 정시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정약용과 이강회에게 놀아난 로버트 스튜어트가 상하이와 대만이라도 보존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모른다.
합리적인 제안이기도 했다.
영길리가 과연 십만 대군을 끌고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물러날 곳 없이 발악하는 마족 함대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천진에서 황상신이 성사시킨 화공선 기습은 그때 수병 대부분이 북경을 치러 갔기에 요행히 이룬 기적에 가깝다. 두 번은 안 된다.
그리고 정규 해군 전투가 된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영국 잔존 함대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여기에서는 짐짓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게다가 임칙서는 고려가 어찌하여 강해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창구를 혁명당이 통제할 수 있는 선인 상하이 하나만으로 축소시키고, 사세를 봐서 조금씩 영길리와 통교한다면(급하게는 못 한다. 영국은 중국에 너무 많은 원한을 쌓았다) 국가 기본 역량 자체가 큰 중국은 금세 성장할 수 있다.
송주령과 기랑이 나눈 대화처럼 이제 천하의 울타리는 무너졌다.
중화인민공화국도 언제까지나 서양 오랑캐 싫다고 등 돌리고 있을 수는 없을 터이다.
‘결국 세상 이치는 수평 두 글자로 모인다. 물처럼 흐르는 시대의 격류를 거부하지 않는 것 또한 혁명이리라.’
그리고 지금 임칙서의 앞에서 둑이 터지는 듯한 ‘격류’를 준비하는 난징의 12만 인민해방군 또한 혁명이다.
아직 ‘혁명걸음’은 익히지 못했지만 총칼을 비껴들고 서 있는 그 의기만은 고려 혁명군에 뒤처지지 않는 듯 보였다.
임칙서는 그들 앞에 섰다.
마침 혁명당의 본향인 강남을 한 번 위무할 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임칙서의 목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송주령)은 내몽고의 반동을 토벌하는 인민의 공무 중이기에, 본 위원장이 중화인민공화국 혁명당 정치국의 위임을 받아 대신 선언한다.”
지금 오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중화 혁명당뿐이다.
그래서 여러 파벌이 모여 중앙인민회의를 이루고 그 의회가 정부인 국무당을 지명하는 공화국과 다르게, 여기는 말 그대로 일당독재(一黨獨裁)가 되었다.
그러나 일당이 모든 인민을 품는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다. 중국은 역시 하나여야 제맛이다.
임칙서가 그런 생각을 하느라 잠시 침묵하자, 인민해방군 가운데에서는 하나둘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송주령에게 밤낮으로 제압당하는 것 같은 임칙서의 위엄이 그녀를 대행하기에 좀 모자라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허나 그건 오산이다. 임칙서는 원래 역사에서 아무 군대 없이 홀몸으로 마족에 대항한 의열지사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는 십만 해방군이 있다. 못할 게 무엇이랴.
그는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동지들. 저 남월(南越)의 반동에게 인민의 철퇴를 내릴 때는 지금이다!”
청에게 패배하였으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인민에게 지은 죄를 반성해야 하거늘, 그 패배를 설욕하러 이 혼란 와중 슬금슬금 묘족의 땅을 잠식해 들어가던 자롱 황제는 용서할 수 없는 반동이었다.
묘족은 오족의 하나. 중화 혁명당은 수평한 동지의 구원 요청을 외면할 수 없다.
아직 총선거는 없었지만 연방의 기초는 마련되었기에 각 족속의 구원병이 즉시 모였다.
칼카족과 쇼호트족의 기병대가 앞장을 서고 한족의 총병이 그 뒤를 따랐다. 물론 자기 땅을 지키려는 묘족 또한 열심히 치중을 대고 좌우 날개에 벌려 섰다. 위구르족의 거친 전사들이며 티베트의 승려들도 멀지만 성의껏 사람들을 보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짓을 한다. 정시준의 방법이었다.
국내의 혼란을 다 수습하기도 전, 중화인민공화국은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은 고대부터 제국주의 국가를 상대로 거의 무적에 가까운 승률을 자랑하는 나라이며 역사가 바뀐 지금도 그 상성관계는 여전하다.
사쓰마의 경우 제국주의자 영국 놈들에게 인민의 락을 보여주려다 무참히 밟혔지만, 베트남은 바로 그 영국 해군을 상대로도 이겼다. 도광제에게는 비록 패배했어도 거꾸로 침공까지는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은 그들이 반동이고 침략하는 쪽이 혁명이었다.
국경의 급보를 받은 자롱 황제는 자신이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
그때 시준은 제법 한가했다.
요서까지 얻었다 해도 만주 인구가 적은지라 새롭게 대표를 뽑을 일은 많지 않아서 이주 문제만 신경 쓰면 되었다.
그래서 명주랑 놀아줄 시간도 낼 수 있었다. 이제 제법 말문이 트인 명주는, 말하기 시작한 아기들이 그렇듯이 곤란한 요구를 계속해 왔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동생이 갖고 싶어요!”
“……여명이가 안 놀아주니?”
“복여명 동지는 무슨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고 하는걸!”
“새 친구를 찾아 주어야겠구나. 우리 명주도 얼마 안 있으면 학교를 가니 걱정 말거라. 학교에 가면 동무들이 많단다.”
“친구 말고 동생! 집에 사는 동생 달라니까. 어휴!”
명주는 제법 고개를 흔들며 땅을 팡팡 치기까지 했다. 하긴 그 나이대의 가장 큰 고민은 멍청한 어른들이 도통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꾸 말을 돌리는 시준이 잘못한 게 맞다. 옆에서 보던 지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곧 동생이 생길 터이니 잠시만 참고 기다리렴.”
“진짜? 얼마나 남았어요?”
그리고 지유는 완벽하게 의도한 동작으로 시준을 쳐다보았다.
“기랑이가 뭐래? 지난달에 소식은 들었는데 그게 몇 달째더라. 얼마 남았대?”
“내,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애는 혼자 배니?”
“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나 나간다!”
적반하장으로 그렇게 화낸 시준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쉽게도 모녀 중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가벼운 웃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다시 들어가기가 참 난감해졌다.
그런 시준을 구원한 것은,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조제프 푸셰였다.
“아, 주석 동지. 댁에 계셨군요. 드릴 말씀이 좀…….”
시준은 살다 보니 푸셰가 반가울 때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래서 인생은 예측불허다.
“잘 오셨소. 나가서 얘기합시다.”
푸셰는 이번에야말로 주석 동지가 자신의 충성을 알아주는 줄 알고 감동했다.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 않아도 비밀히 드릴 말씀이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런 임기응변을 발휘하면 안 되지 않았을까 하고 시준이 후회한 것은 조금 후였다. 곧 자리를 옮긴 푸셰는 프랑스어로 용건을 꺼내놓았다.
“이제 내년으로 다가온 3기 총선거 말인데.”
시준은 수도 없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난 안 나갑니다.”
“그럴 줄 알았지. 나도 무리하게 강요하지는 않겠네. 대내외적인 공화국의 인식으로 봤을 때 과도한 장기 집권은 좋지 않다는 것, 동의해. 하지만 아직 전후 처리가 마무리되지 않았잖나. 한 번만 더 직임을 맡아 주길 바라네. 자칫하면 대규모로 영토를 확장한 공화국은 그대로 산산조각 나게 돼.”
둘의 논쟁은 이전보다는 건설적이었다.
시준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3연임이건 10연임이건 할 수 있다는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고, 푸셰도 주석 동지가 진짜 퇴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래서 시준의 말재주도 좀 더 건설적으로 정교해졌다.
“그건 어느 독재자나 댔던 핑계입니다. 아직 국가사업이 끝나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 조지 워싱턴이 왜 두 번째로 끝냈는지 모르겠습니까? 용납되는 건 두 번까지예요. 당신이 내게 가르쳐 주었던 수비학(數祕學, numerology)으로 말하자면 3은 완성이고 도달점의 상징입니다.”
푸셰는 워싱턴이 프리메이슨이기는 하지만 무슨 수상한 주술사가 아니라 그냥 노예 농장주일 뿐이라고 말하려 했다.
푸셰의 견해로는, 워싱턴이 3연임을 거부한 것도 민주주의 어쩌고가 아니라 솔직히 그때 미국 대통령이란 게 농장주만도 못한 지위가 아닌지 의심될 만큼 초라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일단 백악관은 확실히 워싱턴 저택보다 좁다.
하지만 시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3연임이면 15년. 그게 다 지날 때쯤엔 당신이나 지금 정치국 위원들 같은 혁명 첫 세대가 은퇴하고 2세대가 올라오게 됩니다. 그 전에 나도 같이 물러나야 해요. 그다음부터는 내가 내 의지로 되돌릴 수 없단 말입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섬겨지는 자, 군주가 될 거라고요. 마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푸셰는 한숨을 쉬었다. 반박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무의미한 낭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도 이제 늙었나.’
원래 역사대로라면 3기 총선거를 보지도 못하고 죽을 테니 늙긴 했다. 그를 도와줘야 할 정약전도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정력의 고갈을 느끼고 맥없이 물러난다면 조제프 푸셰 이전에 프랑스 남자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푸셰도 짐작했다.
“그래. 하지만 그냥 훌쩍 떠나버리는 것 또한 너무 무책임한 일. 자네는 모를지라도 자네에게 운명을 건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공화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이상론인가? 그러나 혁명을 한 자, 결코 닿을 수 없는 아킬레우스의 거북이 같은 잔인한 이상을 잘 아는 법이지. 이 말 오랜만에 하는데, 자꾸 모른 척하지 말게.”
시준은 등을 조금 뒤로 젖혔다. 옛날 혁명을 막 시작할 때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뭔가 준비해 온 타협 재료가 있을 텐데요.”
“이렇게 되어야지. 난 이렇게 유연하게 진행되는 자네와의 대화에 항상 매력을 느꼈다네. 자네 말이 맞아. 물론 가지고 왔어.”
“뭡니까?”
“혁명은 전위만이 아니라 후열도 중요하지. 뒤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항상 전면을 지탱하는 법이야.”
푸셰 특유의 연출하는 버릇을 시준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과연 푸셰는 시준의 예상대로 극적인 투를 과시하며 결론을 말했다.
“후계자를 지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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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수비학은 피타고라스 이래의 수학적 전통으로 이어진 학문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도 종교적 색채가 좀 있었고… 이 수비학은 마술과 연금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며(예를 들어 관짝의 길이 비율이라던가)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학문이었습니다.
꼭 무슨 음지의 주술 같은 건 아니고, 양지의 기독교 세계에서도 칠죄종이라든지 사주(네 개의 큰 덕목)라든지 하는 개념도 일정 부분 이런 전통의 영향이 있습니다. 숫자 각각의 상징하는 바와 관련해서요.
2. 아킬레우스의 거북이는 유명한 제논의 역설입니다. 준족으로 유명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달리기를 할 때, 거북이가 일정 거리 앞에서 출발하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의 위치에 도달했을 때 거북이는 약간 앞에 가 있고, 그 위치에 또 도달하면 거북이는 또 아주 약간 앞서 있어 영원히 그를 잡을 수 없다는 논리적 유희죠.
물론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는 거야 그 시대 사람들도 다 알았지만 논리적 반박이 불가능해서 유명해졌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무한급수의 수학적 개념이 엄밀하게 정의된 19세기 초중반으로 작중 시점 즈음입니다. 그 공을 세운 프랑스 수학자 코시는 지금 30대,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젊은 교수겠군요(얼마 뒤 루이필리프에게 쫓겨나서 망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