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78화 (278/284)
  • 278화

    93.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5)

    전위대는 말 그대로 앞에 서는 부대다.

    따라서 정약용이 지금 위치한 군중의 ‘가운데’에서 전위대를 이끌고 나선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처럼 사람이 엄청나게 밀집한 곳에서는 삽질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전위대의 혁명은 집중적이 아니라 분산적으로 일어났다.

    시위대 외곽에서 사람을 풀 자르듯 베어 치던 맨체스터-살포드 요멘리 기병대가 그 첫 번째 지점이었다.

    의용기병대장 휴 벌리 대위는 일종의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막는 팔을 칼로 찍어 자르고, 비명 지르며 도망치는 빈민을 쫓아가 등짝을 베어내릴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에게는 너무나 정당하고, 만족스러운 살인이다. 하느님이 주시고 개인이 갈고닦은 부를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벌레들’이 갉아먹으려는 음모를 자신이 분쇄하고 있다.

    게다가 저들은 무기가 없으니 자기가 죽을 염려도 없다. 이것보다 만족스러운 군사 작전은 고금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의용기병대장 휴 벌리 대위는 익숙하지 않은 충격을 느꼈다.

    우악스러운 팔이 밑에서 쑥 뻗어 올라 그의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친 것이다.

    “크어억!”

    대위는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었다. 낙마의 충격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본래 기병이 맨손의 인간에게 제압당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잔인함을 과시했다 해도 그들은 기껏해야 민병대. 이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전투가 아니라 유희에 가까웠다.

    휴 벌리의 기병대는 대형이고 전술이고 없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쾌락 살인만을 즐기는 상태였다.

    ‘기병’은 적수공권의 인간이 어찌할 수 없지만, 그저 ‘말 탄 도적’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게 의용기병대가 멍청해서는 아니다. 그렇게 놀아도 충분한 상대이기 때문에 방만하게 게임을 즐긴 것이다.

    방심하여 말에서 떨어졌다 하여도 몸을 일으켜서 베어버리면 그만. 맨손의 상대 따윈 두렵지 않다.

    벌리 대위는 급히 자신의 기병도를 찾아 땅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기병도의 행방을 알아챘을 때, 대위의 얼굴에 처음으로 공포가 떠올랐다.

    칼을 깔끔하게 빼앗겼다는 것과, 그 칼을 가지고 있는 자가 난생처음 보는 이종족이라는 두 가지 사실 모두에서 비롯된 공포였다.

    “너는 대체 누구냐!”

    “살려달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의외로 깔끔한 영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찰총국의 통역사이며 이번에 이강회를 따라와 오리엔탈 파이터즈에 편입된 요원 오계순이었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청 황제의 심문을 맡았던 유능한 인재이기도 하다.

    벌리 대위는 주위를 돌아보며 악을 썼다.

    “뭣들 하나! 어서 와서 이놈을 죽여!”

    그러나 부하들이 대장을 구하러 달려오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참 목에 핏대를 세우던 대위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인정해야 했다.

    부하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물에 휘감겨 말에서 떨어지거나, 품속에 몰래 숨겼던 짧은 쇠꼬챙이에 찔렸거나, 그도 아니면 사람의 무게에 덮쳐져 몰매를 맞고 있었다. 기병은 달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후속 부대는 아예 인파에 의해 단절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허나 어차피 그곳도 꼴은 비슷하리라.

    “이, 이게 어떻게 된…….”

    전위대는 공화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혁명이 있는 곳엔 항상 자기 목숨을 불살라 앞장서 나서는 선봉대가 있다.

    애초에 여기 있는 정찰총국 오리엔탈 파이터즈는 오계순 하나뿐이다. 고려 사람들은 숫자가 적은지라 직접적 싸움보다는 연계와 통신의 역할을 주로 맡았다.

    나머지는 조지당의 전위대[Vanguard], ‘성 조지의 창[St. George‘s Spear]’이었다.

    이 시위의 공식적 입장은 비무장 비폭력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시민을 학살하는 데에 무장 여부 따위는 전혀 관련 없다는 사실 정도야 누구나 잘 안다.

    그래서 비상시를 대비해 수뇌부의 탈출과 안전한 해산을 도울 목적으로 조지의 창이 여기저기 분산 배치된 것이다.

    맨체스터 시위를 계획한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다. 유혈 사태는 ‘가능성이 있다’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고 따라서 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대비는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위대 안으로 너무 깊숙하게 들어온 민병대와 일부 정규군 기병들은 전술적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조지당 전위대는 마치 밀림에서 튀어나오는 맹수처럼 그들을 사냥했다.

    다만 이는 아주 위험한 임무였다.

    공식적으로 장검이나 총 같은 본격 무기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나이프 정도로 비상 상황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다.

    헨리 헌트 주위에서 체포에 저항하다가 허무하게 칼 맞은 굴뚝 조지도 여기 소속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희생을 줄이고 올바른 전술적 행동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 정약용은 헨리 헌트와 협의하여 일종의 현장 지휘관으로서 정찰총국 요원들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계순은 그 목적을 훌륭히 수행했다.

    오계순은 벌리 대위의 기병도를 주인의 목에 들이대었다.

    그러자 대위는 앉은 채로 손을 들었다.

    “항복하겠소! 나는 비무장이오!”

    오계순은 벌쭉 웃었다.

    “그래. 네게 죽은 동지들도 마찬가지였지. 역겨운 반동 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오계순은 칼을 횡으로 휘둘렀다. 들어 올린 대위의 양 손목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

    정약용이 생각했던 바와 같이, 그는 현재 런던 공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런던 공사관에 와 있는 이강회가 2대 주영 대고려인민공화국 특명전권공사인가 하면 그것도 애매하다.

    이강회는 아직 영국 왕에게 신임장을 바치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볼 때 현재 고려 공사 자리는 비어 있는 상태다.

    과거 그와 함께 정시준의 기적을 목도한 친구로서 이강회를 보러 왔던 윌리엄 자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공사 각하……. 아니, 아직 아니라고 하셨죠. 장관 각하께서는 이런 뻔한 수작이 먹히리라고 보는 것입니까?”

    정약용이 조지당의 시위에 함께 있었다 한들 그는 공사가 아니었으므로 외교와는 관계없다.

    그리고 그러한 ‘고려국 인민 정약용’의 일탈을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2대 공사는 그 시점 아직 영국 왕으로부터 신임장을 인정받지 못했으므로 역시 책임이 없다.

    대충 그런 논리였다. 아이작 뉴턴조차 감탄하며 자기 주먹으로 작용 반작용의 물리법칙을 실험하고 싶을 만큼의 논리학이다.

    윌리엄 자딘은 영국군이 대체 극동에서 어떻게 패배했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강회와 함께 영국에 들어온 최종적 패배 소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코크란 제독이 돌아와야 알 수 있는 것이라 오리무중이었다.

    ‘영국군이 얼마나 추태를 보였으면 동양인이 영국 정계를 이토록 우습게 취급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자딘은 즉시 이강회의 어리석음을 성토하지 못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이유’ 때문이다.

    “이건 이번에도…… 정시준 의장의 지시입니까?”

    “뭐, 대강은 그렇소.”

    이강회는 자딘이 뭐라고 입을 떼기 전 설명했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오. 이건 영국의 조야에게 핑계를 주는 것이란 말이오.”

    “핑계라니요?”

    “자, 외사통호부장 동지나 나를 영국에서 처벌하려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공화국과 영국은 사이가 불편해지겠지. 그러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소?”

    “어…… 러시아겠군요. 듣자 하니 이번에 땅을 많이 넓혔다지요?”

    정부 인사가 아닌 윌리엄 자딘으로서는 그 정도의 감상밖에 없지만, 지금 영국의 외무부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특히 (아직도 외무장관 하고 있는)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가 제일 심했다. 원체 우울증이 심했던 터라 하루에도 두세 번쯤 권총을 관자놀이에 갖다 댄다고 할 정도였다.

    빈에서 개고생을 하며 작센과 폴란드를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날로 처먹는 사태를 막아 놨더니, 러시아는 엉뚱한 극동에서 이권을 크게 넓혔다. 이제 부동항까지는 한 발짝이다.

    다시 한번 아시아에 대군을 파견하여 판을 뒤집기도 수월치 않다. 러시아와 대립해서 그리스 독립 문제를 다 태초의 상태로 돌리기도 힘들거니와 에스파냐와 나폴리에서는 대놓고 빈 체제를 거부하는 반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모든 것은 영국군이 극동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더 최악인 것은 동맹인 고려는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이제, 최소한 극동에 10만 단위의 군대를 보내 다 쓸어버릴 여력이 생기기 전까지 고려의 호의에만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영국은 어느 정도 고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어느 정도’까지다.

    양아치는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면 안 된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칼을 쑤실 테니까.

    고려가 영국 보기에 좀 심하게 거들먹거린다면, 영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협상하여 고려-러시아 대 영국-중국 구도를 만들어 고려를 축출한다는 발상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려가 대놓고 영국에서 급진주의 폭동을 사주한다거나 하면 영국은 이를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국가의 체면이라거나 국제 이익 같은 거창한 문제가 아니다. 영국을 지배하는 기득권층의 이득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로서도 이번 조지당 공작에서는 ‘어느 정도’의 배려가 필요했다.

    “주석 동지의 예지를 의심 없이 따라 사막에 뛰어든 러시아 사람들은 정당한 보답을 받았소. 주석 동지는 사방 수백 마일 안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에서 위기에 처한 러시아 사람과 우리 동지들을 정확한 예단으로 구해내셨소. 중국 황제를 손아귀에 넣고 전쟁도 이겼으니 모든 패는 공화국의 손에 있는 거요.”

    “그야 정시준 의장이라면 그 정도 예지는 당연하지요.”

    자딘은 한마디 반론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이강회는 설명을 이어 갔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나 고려가 영국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 여기에서 괜히 수틀리면 영국은 본전도 못 건지는 거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조지당 일을 아예 모른 척한다? 그건 또 자기 나라 안에서 체면이 안 서지. 그렇게 앞도 없고 뒤도 없으면 너무 난처해지지 않겠소? 그러므로 이 정도 ‘성의’는 준비해 줘야 하는 것이올시다.”

    명분을 주는 것. 그럼으로써 짐짓 납득한 척 물러날 수 있게 퇴로를 열어 주는 것. 시준이 의주 근문소를 운영하던 시절부터 잘 써먹었던 수법이었다.

    말도 안 된다는 건 영국인들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강회는 하품을 하며 깍지 낀 손을 쭉 폈다. 혁명을 하고 나니 선비 체면에도 이런 짓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영국 정부가 만약 공화국과의 우의를 지속하고 싶다면, 그리고 이주(대만)와 송강부(상하이) 등 지금 남은 항구라도 지키고 싶다면……. 그들 나라에 혁명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거요.”

    윌리엄 자딘은 등골을 따라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강회가 잡담인 척 이런 얘기를 해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이러한 말을, 자신을 통해 영국 정부에 전하려는 속셈이다.

    그리고 자딘은 자신이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는 점을 확신했다.

    이미 그의 사업은 고려가, 정확히는 정시준이 없이는 성립하지 않을 정도다. 명시적인 계약 관계만 없지 윌리엄 자딘은 정시준의 부하나 마찬가지다.

    자딘은 그 사실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언자의 사도. 기업가 입장에서 이보다 더 이득 되는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자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기병대의 소멸은 영국군 지휘부에게 약간 늦게 감지되었다. 밖에서 봐서는 병사들이 시위대를 열심히 죽이고 있는지 파묻혀 버렸는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치안판사 윌리엄 헐튼과 총지휘관인 존 빙(John Byng) 장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들은 즉시 대포에 포도탄을 장전하도록 명하고 보병대를 정렬시켰다.

    “반란자들에게 맞서 제군의 할 바를 다하라. 사격 준비!”

    ‘최선을 다하지’ 못해, 그 시대 패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총살까지 된 같은 이름의 종조부를 가진 자가 하는 말인 만큼 그 명령에는 꽤나 결기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핏줄은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시위대 쪽을 보고 있던 영국군 부대의 후방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존 빙 장군은 절망감을 느끼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원래 역사의 피털루 학살 당시, 여기 6만 명의 군중이 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 이상은 수용하지 못할 만큼 광장이 좁아서다. 들어오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시내 곳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그 인원은 3만 명에 달한다.

    ‘조지의 창’에서도 많은 인원이 거기 섞여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여기서는 무장을 한 채였다.

    왕 첸 사냥용품점에서 만들어 조금씩 빼돌렸던 브라운 배스 머스킷의 완벽한 복제품이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복제품이라는 게 중요하다. 엔필드 조병창의 물건과 구별할 수도 없고, 거기에 다른 소규모 무기 공창에서 중구난방 빼돌린 무기와도 의도적으로 뒤섞어 놓았기 때문에 나중에 증거가 추적당할 염려는 적었다.

    물론 더 많은 창과 칼도 함께였다. 무슨 중국에서나 볼 것 같은 대규모 냉병기 보병이 밀려드는 모습을 보고 영국군은 아연실색했다.

    “쏴, 쏴버려!”

    포도탄이 아무렇게나 발사되고 사람이 짓이겨지며 시체 조각이 날았다.

    시위대에는 각계각층이 섞여 있어서 그것은 사내들의 것만은 아니었다.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지당의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었다.

    “압제자의 개를 전부 죽여라!”

    영국군이 대포를 아무리 빨리 쏜다 한들, 대포란 건 거리가 있어야 본령을 발휘하는 무기다. 포가 식기도 전에 포대를 꽉 메워버리는 인파 앞에서는 저항이 어려웠다.

    유일한 개활지인 광장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데다 나머지는 건물이 들어선 시가지이니 ‘군대’가 발휘할 장점이 거의 없었다.

    몇몇 군데에서는 이미 학살자와 피학살자의 입장이 역전되었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에게 압도당한 병사들은 산 채로 찢긴다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맛보아야 했다.

    영국 정부가 200년이나 그 존재를 부정할 피털루 학살은 이제 정말 사라졌다.

    왜냐하면 이제 이 사건은 피털루 ‘혁명’으로 명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30분 뒤, 존 빙 장군은 명예로운 결정을 내렸다.

    “왕의 군대가 왕의 신민을 학살할 수는 없다. 일단 물러난다!”

    명예롭기 그지없는 영국군은 지휘관의 결정에 전폭 찬동하여 신속히 퇴각했다.

    다만 그 와중 별로 명예롭지 못한 민병대에게는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수뇌부 모두 민병대의 지나친 난폭 행동이 이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영국군 지휘관들은 민병대를 분노한 시위대의 먹이로 던져 주고 정규군을 보존한다는 작전에 텔레파시로 합의했다. 원래 군대의 인화단결이 잘되면 무전기 같은 건 필요가 없다.

    “군이, 군이 후퇴합니다!”

    “저 개새끼들이 뭐 하는 짓이야!”

    민병대는 패닉에 빠졌다.

    하긴 어용 폭력집단의 최후라는 건 고금을 통틀어 똑같다. 결국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최후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시준도 강철군주에 의해 그렇게 소모될 뻔했다. 이용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단물 다 빨고 내빼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 미묘한 분기점을 놓치면 150년 뒤의 종로 누구처럼 반란군 인기몰이 소재로 활용되어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간판 건 채 조리돌림 당하고 처형되는 거고, 그걸 잘 잡아 손절하면 지금 고려 평양성의 누구처럼 혁명의 수령이 되는 거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맨체스터-살포드 요멘리 기병대는 이미 거의 전멸했다. 나머지 다른 의용병들도 속속 비슷한 결과를 맞았다.

    그들은 대부분 무기가 없는 시위대의 주먹에 맞아 죽고, 발에 밟혀 죽고, 심지어 이빨에 물어 뜯겨 죽기까지 했다.

    그들이 흘린 피는 평양성 앞과 비슷하게 활용되었다.

    민병대가 걸치고 있는 옷까지 빼앗아서 조지당의 깃발이 ‘물들여졌다’. 그것은 미리 만들어 둔 다른 깃발과 함께 세워졌다.

    공화국의 영향을 받은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이 으레 그렇듯, 이도 공화국의 깃발인 붉은 적기를 활용한 도안이었다.

    적기 구석에 상대적으로 작게 조지의 십자가를 그린 이 문양은 조지당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나타내 주었다.

    정약용은 주석 동지의 기적을 목도한 이들이 아직도 그들의 왕가가 섬기는 서양 사직(社稷) – 그리스도를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 을 받드는 것이 마뜩찮았지만 그건 관대하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공화국에도 아직 절은 꽤 많으니까.

    정약용은 흥분과 긴장 때문에 거의 반미치광이가 되어 자신을 향해 뭐라고 떠드는 헨리 헌트를 무시했다.

    그러고는 그저 동쪽을 향해 손을 뻗어 자신의 소환장을 들어 올렸다. 후텁지근한 여름 바람이 그 종이를 잡아채어 날렸다.

    이제 이역만리 영길리국에서의 혁명은, 우선 그 효시를 쏘았다.

    그의 영국 공사 임무도 진정코 끝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완수되었다고 말하기는 한참 이르지만, 후대는 더욱 유능하고 혁명적인 동지들의 몫이다.

    정약용은 과거 그가 섬겼던 군주인 정조의 말을 무심코 반복했다.

    “결국, 정도가 비처럼 내리면 사도는 모두 스러지는 것이다. 혁명의 불길이 닿는 모든 곳에 반동은 짚검불과 같이 타서 사라지리라.”

    ***

    혁명의 깃발이 모두 고려에서 유래한다는 건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같았다.

    그들 역시 적기의 바탕에 중화의 수평한 오족과 그 모두를 감싸안는 혁명을 표현하는 여섯 개의 별을 그려 깃발을 만든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이것은 정시준이 중국에 갔을 때 직접 제정하여 선물하였다는 면에서 더욱 특별한 동지애를 상징한다. 아무래도 오랜 우의가 있는 두 나라인 만큼 영길리국이 금세 따라잡을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 우의는 이번에도 발휘되었다.

    서로 약간의 건전한 경계는 있다 하여도 영국, 일본과의 사이에 비하면 두 나라는 혈맹이라고 해도 좋다(러시아의 경우는 여기 딱히 나라라고 할 게 없다. 정확히는 베니그센과 시준이 친한 거다).

    그래서 연계 작전도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속으로야 어쨌든 고려인민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산해관 정벌에 적극 찬동하였으며, 요서에 깔린 영원성 등 청 제국의 잔존 군사기지를 때맞춰 공격해 주었다.

    산해관과 요서 방어선은 표리일체의 위력을 발휘한다.

    거꾸로 말한다면 그들이 연결하지 못할 때 그 방어력은 급감한다.

    공화국으로서는 산해관의 지원 없이 고립된 요서 방어선을 손쉽게 함락할 기회고,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도 이제 그저 장성의 관문으로 전락한 산해관을 큰 희생 없이 털어버릴 천재일우였다.

    결과적으로 피털루에서 조지당의 깃발이 올라간 바로 그때, 거의 반년에 걸친 공방전을 끝낸 이 산해관 위에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육성홍기가 세워지게 되었다.

    중화 반동 최후의 요새 산해관의 종언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반동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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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성 게오르기우스는 창으로 용을 찔러 잡았다는 전승이 있습니다(이미 항복한 용을 도살한 것이라 용이 좀 불쌍하긴 합니다). 그래서 게오르기우스의 창은 무력형 성유물로서 여러 매체에 등장하곤 하죠.

    2. 캐슬레이 자작 오랜만에 나왔군요. 영국에서 이강회와 로스차일드가 전쟁국채 야바위 처음 칠 때 나왔던 그 사람입니다. 이때까지도 외무장관을 하고 있었는데, 작중 나온 대로 이때 사세가 참 안 좋은지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 와중에도 탈레랑과의 협조와 유연한 재주로 영국의 이권은 거의 모두 지켜내는 곡예를 부리나,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얼마 안 가 자살하게 됩니다.

    3. 영국 정부는 실제로 2007년까지 자국 군대가 맨체스터에서 자국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정했습니다.

    당대에도 아주 약간은 켕겼던지, 그때 시위대에서 부상당하고 며칠 있다 죽은 사람들 중에서는 치안판사가 강제로 시체를 빼앗아서 ‘자연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검하고 자연사 처리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희생이 있으면 그 뒤에는 정부에서도 좀 유화적으로 나오는 게 보통인데, 영국 정부는 이 일로 더 맨체스터 옵저버의 편집자들을 체포, 투옥하고 각종 노동 운동을 더욱 극렬하게 탄압합니다. 영국 전역에서 무장 반란이 일어날 거라는 위기감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이 다음해에는 내각 전원을 암살하려는 폭탄 테러 시도도 있었고… 결국 항복하고 선거권을 보장할 한참 뒤까지의 영국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혼란 와중이었습니다.

    4. 존 빙이라고 하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당시 패배해서 요새를 빼앗기고, 패전죄로 총살당하는 무슨 고대 중국식 처분 당한 제독으로 유명하죠. 보통 이럴 땐 감옥 좀 갔다가 사면되는 게 관례지만, 하필 그때 여러 가지로 아귀가 안 맞는 바람에…

    그러나 여기 나온 존 빙은 미래 스트래포드 백작으로서, 당대 실제로 이 지역 군사 책임자였던 동명이인입니다. 그 처형당한 존 빙은 오늘 나온 존 빙의 작은할아버지가 되죠.

    본가는 토링턴 자작 가문으로, 그 존과 이 존은 둘 다 방계이고 본가는 아닙니다. 이 가문이 존과 조지라는 이름을 번갈아가며 쓰는 바람에 동명이인이 많아서 참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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