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90. 마지막 싸움(3)
한편 성경부를 빠져나가 서진한 김유근 여단은, 예상보다는 한참 늦긴 했지만 결국 청군을 마주치게 되었다.
성경 장군 송윤의 군사를 벌써 만난 건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꽤 서쪽에 있다. 이들은 내몽골 지역 맹(盟) 휘하에 있는, 일종의 관군이었다.
‘일종의’라고 하는 이유는, 청군이라는 집단을 일원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민족 동군연합의 측면이 꽤 강한 청이다 보니 내몽골 역시 중국 본토와 다른 규칙으로 다스려졌고 상당히 강한 자치권도 있었다.
이는 고려군이 만주를 침공했는데도 내몽골에 군사가 집중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자치권이 있는 곳은 자기 책임도 있는 법이다(영국군 탓이 가장 크기는 하다).
동시에, 황제가 오란찰포로 가 있는 동안 서명아를 비롯한 청의 우국지사들이 별로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의 행정 체계는 본토와 맞물리지 않았기 때문에 빠른 연락과 협조가 어려웠다. 간단히 말해 이곳은 청의 입장에서도 외국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공화국 혁명군에게 고려되지 않았다. 어쨌든 저들은 반동 황제의 주구에 불과했다.
5천 명에 달하는 김유근 여단은 불과 백 명도 되지 않는 몽골병을 손쉽게 격파했다.
지도와 척후의 보고를 세밀히 살핀 매경은은 곧 결정했다.
“이곳에 달단 사람들이 진 치고 있던 이유가 있었군. 여기에 있으면 오란찰포에서 성경부로 넘어오는 어느 길로든 재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우리도 여기에서 우선 지친 말을 쉬게 하도록 하자.”
그러고는 곧 복대(중대)별로 멀리 정찰을 내보냈다.
나아가던 그들은 위험이 없으면 단대(소대)별로 쪼개져 중계점을 마련했다. 원하던 것을 발견하면 즉시 주체신기전 3호를 써서 신호를 올릴 것이다.
매경은의 출신을 따지자면 원래 조선군 별무사로서, 시준이 안주성 일대를 손에 넣을 때 항복했던 사람이었다.
별무사는 본래 고급 기마군관에 해당하는 지위였지만 날이 갈수록 그 위상이 하락했다.
합리적인 군제 개혁은 생각보다 많았으나, 너무 합리적인 나머지 써 보고 괜찮으면 여기저기 과하게 돌리거나 확대하다가 재정 문제에 봉착하는 것은 조선군 병과의 필수 코스 중 하나였다.
열정페이를 강요당한 해당 병과는 당연히 질적 하락의 길로 직행했다. 별무사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그렇게 세상에 불만인지(대충 알 만은 하다) 하는 일마다 속이 꼬인 것 같은 정조는 일반 마군에게도 별무사와 같은 무과 응시자격을 부여했다. 하다하다 나중에는 별무사 군관 일부에게 군포까지 징수한다.
이는 군역의 대가인 군포를 군인에게 징수한다는 부당함 외에 한 가지 사실을 더 시사한다.
더 이상 그들을 양반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철군주 시점의 별무사는 벼슬아치가 아닌 백성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혁명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붉은 깃발 든 매경은은 혁명전쟁 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현재는 혁명군 기병대의 정신을 체화하는 선두 기수로서 월간 대혁명에도 여러 차례 실린 혁명영웅이었다.
이제 아무도 그가 과거 평양에서 은 몇 냥 받고 혁명군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모를 지경이었다.
그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매경은은 자신이 김유근 여단의 여단장으로 발탁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다고 믿었다.
혁명 3초식으로 대표되는 절륜한 무공, 주석 동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 무엇보다 불타는 혁명 정신 등 다 세자면 끝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국가의 정규 부서로서 꼴을 갖춘 지도 오래인 혁명무력부는 그렇게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유는 매경은이 삭제하고 싶어 하는 조선군 경력에 더 있었다.
한마디로, 매경은은 그 퍼포먼스 좋아하는 성격과는 별개로 기본을 잘 지키는 장수였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창의적인 기책(奇策)은 위기 시에 쓸 것이 못 된다.
도박이기 때문이다. 기발한 발상은 원래 일 조져도 뒷걱정 적은 안정기에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기본’의 충실함은 안정기가 아니라 위기 때를 맞아서야 빛난다.
병법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정찰을 충실히 지킨 매경은의 노력은 곧 보답을 받았다.
그는 며칠 있지 않아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을 보게 되었다.
주체신기전 3호가 그다지 섬세한 물건이 아니다 보니 신호 체계는 간단했다.
지금 망원경 들고 있는 관측병의 보고가 없어도 매경은은 그것을 해독할 수 있었다.
“남서쪽, 22킬로미터! 발견, 긴급!”
이제는 공화국의 모두가 미터법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매경은은 그 거리라면 이미 가는 동안 전투가 끝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바로 느꼈다.
그는 말고삐를 당겨 쥐었다.
“어서 채비하자, 동지들이여! 혁명적인 속도전으로 간다!”
“오오!”
달리는 김유근 여단의 주위에는 물론 점재한 몽골 부락이 있었다.
그리고 초원 유목민의 시력은 유명하다. 그들은 어렵잖게 이 말도 안 되는 침입을 눈치챘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현명하게 판단했다.
그들 역시 최근의 난리는 소문으로 전해 들었다. 거기에 남의 나라 기병대가 수천 명이나 대놓고 활보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도 볼장 다 봤다고 판단했다.
하긴 중국 역사를 봤을 때 평균적으로 200년이면 대강 끝날 때가 됐다.
그 순간 그들은 이 이후의 200년도 순식간에 뛰어넘었다.
세계의 공포로써 적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기마 전사가 아니라, 21세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것처럼 속세의 오탁한 때를 벗고 자연에서 안빈낙도의 유목 생활을 영위하는 부족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몽골족은 아무것도 못 봤다. 그들은 그저 노래를 부르며 양 떼를 몰았다.
혁명적 진보라고 해도 좋았다.
***
송윤의 군대는 남쪽에서부터 왔다.
그래서 베니그센은 천천히 방어진을 펴며 동쪽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송윤 역시 후퇴하도록 내버려둘 리는 만무하다. 만주 주방팔기는 빠르게 쫓아왔다.
카자크 2천이 흉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강맹한 일격을 가했으나, 최초의 충돌 이후 청군은 카자크와 정면 백병전을 피했다.
의외의 희생을 낸 만주병들은 저 옷 걸친 짐승 새끼들을 조금 더 존중해 주기로 결정했다. 팔기는 유연하게 말을 몰아 돌아나가며 활을 당겼다.
총이 언제 어디서나 문명의 상징인 건 아니다. 이 경우에는 활이 낫다.
물론 카자크족 대부분은 기병총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에 한 발만 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말 위에서 전장식 머스킷 장전하는 곡예를 부리다가 화살 맞고 낙마하는 수밖에 없었다.
쫓아가면, 그들도 도망쳤다. 게다가 숫자가 적어서 섣부르게 끝까지 달려 부딪치기도 어려웠다. 예르몰로프는 울부짖었다.
“이 타타르 새끼들아, 와서 싸우자는 말이다!”
여진족은 유목민도 아니고 타타르와는 큰 관계가 없다. 폴란드인에게 게르만 야만족 새끼라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금의 몽골족은 어디까지나 사랑과 평화의 부족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그의 노호성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팔기가 지금 사용하는 전법은 확실히 타타르의 것과 유사했다.
그들은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조금씩 카자크 부대를 갉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공화국 점령지에 진입하면 어쨌든 이쪽이 목적 달성이다.
하지만 송윤 역시 그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이틀 뒤, 베니그센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포위되었군.”
송윤은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짜증 나는 공격을 지속하면서도, 약 5천 기를 따로 갈라 보내 동쪽으로 전력 질주하게 했다.
거기까지 가 볼 것도 없이 너무나 명백한 기동 차단 시도였다. 베니그센은 재빠르게 명령했다.
“수레와 천막을 모두 사각으로 둘러쳐라. 기병대는 기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약간 떨어져서. 그리고 본진에 있던 4개 중대는 말에서 내리도록. 이제부터 귀관들은 용기병이다. 허, 참. 보헤미아의 방진을 현대전에서 재현할 줄이야.”
기병대 또한 언제든 풀고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비슷한 방진을 쳤다.
이러고 나면 청군 기병도 함부로 접근하지는 못한다. 마상총이라도 어쨌든 여진족 활보다야 사거리가 길다.
그리고 베니그센은 여진족에게 다른 갈등 요소를 하나 더해주기로 했다.
“황제와 고위 대신들을 끌고 나와라. 예르몰로프 장군.”
그 명령만 기다리던 예르몰로프는 희희낙락하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얻어맞기만 하던 카자크 기병대 또한 화풀이 대상이 생겨서 좋다는 태도였다.
예르몰로프는 아예 대놓고 황제의 깃발을 꺼내 펼친 다음 그 아래 도광제를 세워 놓고 모가지에 칼을 들이댔다. 옆에는 마찬가지 신세인 고위 대신과 황족들이 줄줄이 꿇어앉혀졌다.
물론 청나라 사람들은 반항했다. 눈앞에 자기 군대가 있으니 힘이 더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카자크들은 그들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나왔다.
더 창의적인 병사들은 변발을 잡아채기도 했다. 아무튼 그 헤어스타일은 싸우기에는 좀 안 좋았다. 군인들 머리가 대개 짧은 이유가 있다.
다만 만주족에게는 전투에 더 좋은 풍습도 존재한다.
한족은 기본적으로 하드코어한 가학 성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훼손되고 뒤틀린 발[足]을 보면 성적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사드 후작은 애초부터 동양인에게 이길 수 없었다. 그가 현재 정시준에게 이 바닥 최고 인기 작가 자리를 뺏긴 이유가 있다.
그래서 한족들은 자기 자식의 발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다.
이는 입술에 나무토막을 끼워 늘리거나 목에 고리를 쌓아 길게 뽑는 일보다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생물학적 족쇄가 채워진 한족 여인들은 유의미한 수준의 보행이 불가능하다.
반면 만주족은 여인에게 전족을 시키지 않는다.
즉 그녀들은 뛸 수 있다.
그래서 황후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은 달려서 달아나려는 굉장히 용기 있는 결심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카자크족 역시 전족을 안 한다.
병사들이 달려가 몸을 날려 덮쳐 쓰러뜨렸다. 분명 지금은 러시아 쪽이 수세로 몰리는 상황이건만, 저열한 폭력성을 순간적으로 만족시킨 기병들은 낄낄대며 그녀들을 끌고 와서 내세웠다.
이 광경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보기에 공개 강간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실제로 카자크 중엔 해도 되냐고 묻는 병사도 있었다). 많은 장교들이 분개하여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당장 저놈들을 들이쳐 주멸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 역시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알았기 때문에, 청나라 장교들이 기대하던 대답은 ‘황제 폐하께서 인질이 되어 있으시니 조금만 기다려 봐라.’ 정도였다.
하지만 송윤은 언제나 부하들의 바람을 잘 들어주는 장군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군.”
그는 군재 없는 자기 대신 세부적 지휘를 맡긴 부도통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숫자가 많다. 기책에 의존할 것 없이 그대로 에워싸서 다가가며 한 놈 한 놈 찔러 죽인다면 어떻겠는가?”
“장군의 혜안이 옳소이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너희는 그저 내가 시켜서 그리했다고 말하면 된다.”
군교들은 눈물을 흘렸다.
대청은 죽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알았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황제가 아니었다. 바로 장군 송윤이나 그들과 같은 모든 신민들이었다.
군주국을 위해서 싸우기는 하지만, 그들은 송윤과 마찬가지로 이 순간 혁명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의 포진은 거침이 없었다.
그때 카자크 부대는 떠올렸다.
타타르에게 지배당했던 공포를.
멍에 아래에 눌려 있었던 굴욕을.
몽골로이드 기병대가 다시 한번 그들을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마차 방진 안쪽에 있던 기랑의 입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가장 총 잘 쏘는 포수 열 명만 나와라.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게 총을 재어서 쉴 새 없이 건네줘.”
정석대로라면 총이 맞건 안 맞건 숫자가 많은 쪽이 좋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화약과 총탄을 낭비할 수 없고 사수가 설 물리적 자리도 한정되는 이 형국에서는 한 발의 정확도가 중요하다.
“회, 회장 동지. 그렇다면 저놈들이 지금…….”
“그래. 해보자는 거다. 황제가 죽는다 해도.”
길명이는 결연한 태도로 나섰으나 기랑은 그를 손짓으로 물려 버렸다.
포수들은 낄낄대며 자기끼리 명사수를 추렸다. 죽을 때도 여유가 있는 베테랑다운 태도였다. 곧 뽑힌 선방사수 열 명은 기랑과 함께 가장 좋은 총을 쥐었다.
베니그센은 통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놈들이 설마 황제도 버릴 각오였을 줄이야. 그럴 거면 대체 여긴 왜 쫓아온 거지?”
그 대답은 저들과 같은 동양인이며, 비록 쓰는 일은 드물지만 정약용에게 고전도 배운 기랑이 더 잘 알았다. 그녀는 간단히 대답했다.
“놓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황제가 확실히 죽는 게 낫다. 그러면 새 황제를 추대할 수 있어. 한 나라에 두 군주는 없는 법이다.”
“으음……. 대립정부의 불안함을 감수할 수 없다 이건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고려에 먼저 사절을 보내 원병을 요청할 걸 그랬군. 일생의 불찰이다.”
기랑은 동쪽을 돌아보았다.
“아니, 분명히 혁명군은 온다. 시준은 사람을 보냈을 거야.”
“어떻게 그걸 알지? 시준이 비범한 지혜를 가졌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편지 한 장 안 받고 예측하여 딱 맞게 행동할 수는…….”
상한가를 치는(상한가 같은 개념은 아직 딱히 없다. 기분이 그렇다는 의미다) 의료업체와 사냥업체의 기업연합체, ‘왕 첸 그룹’의 주식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윌리엄 자딘과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들었으면 역시 믿음이 적은 자는 어쩔 수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랑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말했다.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 인민의 총의는 정시준을 추대한 것이다.”
***
한편, 북경성의 코크란 제독은 서명아와의 협상을 타결했다.
서명아는 영국군이 모두 맨몸으로 떠날 것을 요구했으나, 코크란 제독은 이 어이없는 요구에 천안문 문루를 불태워 버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영국식 봉화는 멀리서도 잘 보였다.
결국 자기도 뒤가 급한 서명아는 중화기 인솔 금지, (약탈품을 싣고 갈) 수레 금지 정도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군은 양껏 재물을 짊어졌다. 별 쓸데도 없을 것 같은 총은 그냥 버리고 남는 힘으로 금은이나 도자기 들겠다는 병사도 많아서 코크란 제독은 끝내 몇 명을 매달아야 했다.
북경 성내의 영국군 약 5천여 명은 제독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인질 수백 명을 잡고 북경성을 떠나 천진으로 향했다.
물론 중국 상대로 인질을 쓰다니, 무슬림 바이어에게 한돈 세트를 써서 영업하는 것보다 어리석다.
많은 장수들은 인질이고 나발이고 즉각 쫓아가 다 죽여버리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명아는 고개를 저었다.
“영길리국이 망한 게 아니다. 저들이 아무리 더럽더라도 우리만은 깨끗해야 다음에 또 쳐들어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회수(淮水) 북쪽까지 쳐올라오고 있다는 반란군이 더 급하다.”
서명아의 근왕군은 할 일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 중 북경성의 탈환과 정리는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중화 혁명당 인민해방군은 도대체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모를 기세로 북상하고 있었다.
강노지말의 고사를 인용할 것도 없이, 모든 군대는 멀리 진격할수록 숫자와 사기가 줄어든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건 세인트헬레나에서 정시준을 저주하고 있는 나폴레옹도 잘 안다.
그러나 이놈들은 달랐다.
숭정의화단, 북두맹 등 장강과 황하 사이에 점재하고 있던 혁명 조직들은 완전히 말살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인민해방군이 오자마자 신속하게 달려왔고, 임칙서는 기꺼이 이 단체의 수장들에게 중화 혁명당 중앙위원회 위원 자리를 내주었다. 이 조직들이 가지고 있던 지역적 연결망도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따라서 해방군과 접촉한 지역의 신민은 대부분 곧바로 그들의 증원 전력이 되었다.
말 그대로 좀비였다.
북경성을 안정시키고 기다렸다가 농성한다는 선택지도 불가능하다. 그때는 인민해방군에 의해 근거지를 잃어버린 근왕군 병력 대부분이 와해될 것이다.
따라서 영국군은 이제 신경 끄고, 즉시 병력을 돌려 그들을 쳐야만 했다.
그러나 국내의 영국군을 간과하느니 차라리 몸속에 들어온 사마외도의 무슨 벌레를 간과하는 게 낫다. 그건 작품의 장르에 따라선 비폭력적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다.
후환을 방치하였다가 호된 대가를 치렀던 여러 고사를 들며 한목소리로 염려하는 장수들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서명아는 그들을 깨우쳐 주듯 말했다.
“그간은 군이 나태하여질까 봐 일부러 숨겼소만, 몇몇 장군들은 알고 계시리라 믿소. 이미 그들은 천진으로 가 봐야 더 뭘 할 수가 없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산동 순무가 보낸 함대가 마치 적벽의 오병(鏖兵, 모조리 죽임)처럼 통쾌하게 영길리 함대를 무찔렀소. 영길리 군선은 모두 불타거나 달아났지요. 천진에 영길리 배는 하나도 없소이다. 우리는 그들을 틀림없이 보내주었으니, 그 뒤에는 헤엄쳐서 조선으로 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하시오.”
만약 그들이 천진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산해관 쪽의 육로를 잡는다면 그때는 그 어떤 위기에서도 철수시키지 않았던 산해관 병력이 지친 영길리군을 몰살시키면 된다.
그때는 영국에도 할 말이 있다.
저들이 먼저 천진으로 철수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다시 민간인 지역을 통과하며 범죄를 일으키지 않았는가.
군대가, 그것도 영국군이 통과하는데 민간인 피해가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건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기초로 전략을 세워도 된다.
청군 막료들은 모두 잔인하게 웃었다. 하늘의 뜻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허겁지겁 삼화부로 도망쳐온 헨리 호프 함장을 만나고 있던 혁명해군 1함대제독 겸 농상진흥부장 이강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다만 이쪽은 그 무슨 반동 같은 천명이 어떻고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역시 주석 동지의 예지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주식 시장도, 국가 대계도 모두 주석 동지의 손아귀 안에 있을 뿐이다. 이강회는 청군 장수들보다 훨씬 깊숙한 웃음을 지었다.
유구에 있다가 최근에 돌아온 탓에 이 위대한 해방전쟁의 시작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마지막 싸움에서는 혁명의 발자국을 깊게 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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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베니그센이 말한 ‘보헤미아 방식’ 이란 14~15세기 후스 전쟁 당시 얀 지슈카가 펼쳤던 마차 방진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기병을 막으려는 목적이 컸지요. 지슈카가 워낙 명장이다 보니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그가 처음은 아닙니다. 마지막도 아니고요.
잘 알려진 사례만 꼽아 봐도 고대 중국에는 마륭의 방진이 있고, 조선군과 명군에서도 썼으며,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마차 배달부들도 도적의 습격 때 활용했지요. 현대에도 시위 진압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전술은 공통적으로 ‘상대가 대포 등 중화기를 쓸 수 없을 때’ 유용합니다.
2.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몽골의 침입 이후로 수백 년간을 타타르족에게 지배당했고 그들의 문화는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일례로, 현재 남아 있는 무슨무슨 비치 하는 러시아식 부칭도 그 영향 중 하나입니다. 이 지배 기간을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릅니다.
3. 전족이 성적 페티시였다는 말은 과장이나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전족한 발을 모은 모양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뭘로 포장하든 신체개조물 이상성욕에 속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죠. 그리고 사드 후작은 처음 작중 언급되었던 1811년경엔 살아 있었으나 지금은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