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68화 (268/284)

268화

90. 마지막 싸움(2)

이때, 백의종군했다가 진강의 그 무지막지한 싸움에서도 살아남은 성경 장군 송윤은 서명아의 인솔대로 북경에 돌아와 있었다.

이 바닥이 다 그렇듯, 일단 송윤을 처벌한 황제가 사라졌으니 송윤도 은근슬쩍 다시 장군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동료들끼리의 기수열외가 무섭지 공식적인 직함 강등은 실제 조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때도 설마 병사들과 친구 먹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송윤 또한 근왕군의 고위급 정보를 어렵잖게 접할 수 있었다.

서명아를 비롯한 수뇌부는 황제를 빼돌린 게 근왕군 내부의 누군가이거나 수없는 반란 세력 중 하나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송윤은 공화국과 직접 싸워 본 사람이었다.

송윤이 보기에 공화국은 그저 영길리의 협박에 못 이겨 수족으로 참전한 놈들이 결코 아니었다. 그놈들은 영길리국에 비견할 만한 힘과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

인심 잃기 싫었던 고려는 비공식 경로를 통해 ‘(옛날 효종 시절 너희가 조선에 강요했던 것처럼) 영국에 핍박받아 차병하였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송윤은 절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건 조선 충선왕(효종) 때처럼 마지못해 보낸 원군이라기에는 너무나 격렬하고 적극적이었다. 애초부터 딴마음을 먹은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송윤은 약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설마 조선 놈들이……?’

어떻게 그 먼 거리에서 이런 일을 조종하느냐는 의문은 이 경우 쓸데가 없다.

그런 의문은, ‘어떻게’ 그 가난하고 무력했던 조선이 환골탈태하여 이상한 이름 달고 압록강을 넘어왔는지에 대해서부터 가졌어야 했다.

송윤은 바로 서명아를 찾아갔다.

“공께서 제가 본래 이끌던 병사를 산해관과 영원성에서 빼내 주신다면, 제가 그들을 이끌고 황제 폐하의 어가를 찾아보겠습니다. 몇 군데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서명아 또한 송윤이 말하려는 바를 짐작했다.

“동쪽으로 어가가 향했을 거라 보시오?”

“예. 어쩌면 조선인들이 어가를 납치했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3천 명의 아라사 병사도 홀연히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아라사가 고려와 손잡았다고 의심해 볼 만합니다.”

서명아 역시 상식인이었으므로 그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송윤은 두 번 세 번 간곡하게 청했다.

서명아가 끝내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송윤의 말이 옳다고 여겨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미리 와서 허락을 구한다는 그 태도가 중요했다.

이는 황제를 찾으면 바로 자신에게 알리겠다는 뜻이다. 서명아의 입장에서는 귀중한 우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명아에게는 송윤이 혹시나 해서 덧붙인 말도 필요가 없었다.

“산해관과 영원성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느낀바 고려의 군사는 치밀합니다. 미친 도적 떼가 아니라 육사(六師)의 이치를 갖추고 제대로 된 통솔을 받는 군사입니다. 병사가 약간 빠진다고 한들 그것 때문에 함부로 치고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긴 어차피 송윤의 병사란 건 본래 산해관 주둔 병사가 아니다.

요동에서 ‘증원’된 병사를 도광제가 거기 추가 배치한 것이다. 그게 빠진다고 방어가 특별히 더 약해질 이유는 없다.

혹시 뭔가 일이 기가 막히게 잘못되어 – 요즘 청이 처한 불운을 생각하면 피해망상도 아니었다 – 고려국의 병사가 산해관을 넘어온다 한들, 그들의 목표인 북경은 그 전에 되찾고 방어 태세를 굳힐 수 있다.

서명아가 받은 편지대로 영길리군을 무사히 보내주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결국 황제가 먼저다.

잠시 생각하던 서명아는 결정했다. 그는 송윤에게 원래 그의 직하병 외에 다른 병사들까지 추가로 얹어서 후히 전송했다.

***

혁명무력부와 혁명군은 요사이 꽤나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공화국, 아니 조선 시대 전부를 더듬어 보아도 유례가 없는 군사적 업적을 달성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은 세종을 초월했다. 이제 여진족은 그 종족에 새겨진 공포의 이름으로 세종과 김종서 대신 혁명군과 정시준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심양에 주둔한 혁명군 사이에서는 이대로 장성을 넘어 북경으로 짓쳐들어가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군중의 요언을 단속해야 하는 정치장교 자신들이 드높은 신심으로 떠드는 상태라 남공철도 골치가 아팠다.

나름대로 근거는 있었다. 평양은 혁명의 심장이고, 계룡산은 혁명의 단전이다.

그리고 심양은 일찍이 정치국에서 논했던 대로 혁명의 머리다.

그렇다면 ‘머리’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당시 시준은 정치국이 혁명의 심장 평양보다 심양을 윗줄에 놓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역시 두뇌가 신체의 명령권, 즉 말 그대로 두령(頭領)이 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준은 아직도 19세기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다.

이때 뇌와 전기신호의 관계까지 어렴풋하게 파악되기 시작하던 –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방식 시체 벌떡쇼가 유행하던 –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의 경우 아직 뇌는 눈물과 콧물을 만드는 기관이라는 설이 주류였다.

특별한 발상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흐르는 콧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머리가 나오니 직관적이라고 해 줄 수도 있다.

물론 뇌가 아무짝에도 쓸데없다고 생각해서, 존경하는 사람의 영생을 빌며 뇌를 다 끄집어내 2회차 미라 인생 무뇌로 살게 만들어 버린 이집트보다는 조선이 발전했다. 한의학에서도 뇌는 기의 주요한 통로이며 골수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신명(神明), 즉 의식과 정신은 어디까지나 심장이 관장했다.

따라서 공화국 사람들에게 머리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일생이 다양한 폭력으로 얼룩졌던 평안도 신디케이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건 한마디로 들이받는 것이다. 상대의 코뼈가 으스러지도록.

그것이 정치 중심지 평양, 경제 중심지 단전성과 대비되는 군사 전진기지 심양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심양은 지금 이제까지의 열기가 장난으로 보일 만큼 뜨겁게 끓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공화국 국무당의 주석이었고, 가끔은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으며, 더 가끔은 혁명재판소장이기도 했지만 지금 시준은 오랜만에 혁명군 총사령으로서의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군총사령관이라면 전선 시찰은 한 번쯤 해 줘야 한다. 시준은 의주에서 지유가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심양에 먼저 북상했다.

그리고 시준은 인민이 자신에게 부여한 군권에 의거하여 선언했다.

“지금 여기 모인, 네 개 사단에서 차출된 용맹한 기병대 동지들은 이제 하나의 부대가 된다. 동지들은 특별한 임무를 위한 여단(旅團)으로 녹명(편제)하며, 본 여단의 동지들은 저 가혹한 적진으로 홀로 달려 들어가 우리 혁명 동지들을 맞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유지하던 전선을 깨고, 서쪽으로 달려가야 한다.

기초적인 보급은 있겠지만 전체 혁명군이 그 뒤를 따라 전역을 확대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아직 만주가 안정되지도 않았거니와 공화국의 목표는 도광제의 어가, 정확히는 거기 있는 혁명 동지들의 구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주 위태로운 임무가 될 것이다.

시준은 그런 그들에게 걸맞은 명예를 주기로 했다.

“혁명의 전위 중에서도 전위, 그 눈앞과 양옆에는 적지밖에 없는 이 험난한 투쟁에서, 본 여단에 인민이 수여할 이름은 하나뿐이다.”

병사들은 그 이름을 이미 입소문으로 들어 알면서도 눈을 빛냈다.

불세출의 영도자 정시준 주석 동지는 기대감에 차 떠돌던 소문을 진실로 확정했다.

“일찍이 반동의 굴혈이던 저 어둠의 한양군에 홀로 들어가, 남조선혁명당을 규합하고 끝내 사대문 안에 혁명의 불씨를 지펴 종국에는 위대한 전 조선 인민 해방전쟁의 승리를 일구어낸 자, 혁명 역사에 영원토록 회자될 바로 그 열사의 이름이야말로 이 임무에 어울리는 것이다.”

억제하지 못한 탄성과 환호가 곳곳에서 줄줄 새어 나왔다.

여기에서는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분위기를 잘 고양하는 길이다.

시준 역시 다년간의 연설 경험으로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단숨에 몰아내듯 외쳤다.

“공화국 혁명육군 김유근 여단! 전 세계 인민의 최전위에 선 그의 이름으로, 동지들의 무운을 빈다!”

심양에 아직도 늘어서 있는 반동 황제의 전각이 진동할 정도의 함성이 터졌다.

여단기를 수여받은 – 비밀한 침투 작전이라 실제로 쓰지는 못하겠지만 – 여단장 매경은이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우리 김유근 여단은 혁명열사 김유근 동지가 보여준 불굴의 혁명 정신과 투쟁 기풍을 모두 온전히 계승하여, 반드시 인민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매경은이 출세 지향적인 사람이긴 했지만, 이번만은 여단장 자리 받았다고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게 아니었다.

‘반동의 영역에서 위기에 처한 동지들을 구출한다’는 주석 동지의 교시는 그야말로 전 혁명군을 진감케 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은 이득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했다.

영토를 넓히거나 전략적 목표를 점거하는 것도 아니다.

도광제란 인물의 가치도 혁명의 인민들에겐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중화 혁명당이 중국 혁명을 달성하면 그는 그저 반동 1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운 세월을 같이 한 친구는 잊어선 안 되고, 술지게미를 나눠 먹은 처는 버리지 않는 법[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후한서(後漢書)』].

혁명을 함께한 동지는 이해를 초월하여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지들 중에 주석 동지와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건 그런 괘씸한 모함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사람은 주석 동지와의 관계 이전에 공화국 인민에게 널리 인정받는 혁명가였다. 당장 여기의 혁명군 중에도 고총련 출신이 몇몇 섞여 있다.

기랑은 시준에게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인민에게 중요한 사람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그렇듯이.

김유근 여단은 임무 완수 때까지 다시 울리지 않을 나팔 소리와 함께 출진했다.

천진에서 산동 대함대를 마주한 헨리 호프 제독이 두 번째 설사를 하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

기랑과 베니그센이 잡은 경로는 내몽골 북부를 통과해 만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이는 중국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몽골족이나 여진족이 이용하던 길이다.

보통 인간이 살기에는 영 좋지 않은 황무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식량 조달부터가 어려웠다. 도광제가 무한금고 중 현금화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 가져온 금은은 막대했으나 그걸 씹어 먹을 수야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여기도 엄연히 청의 영토 한가운데다.

화북이나 강남보다야 드물긴 하나 곳곳의 관문이며 관청, 그리고 군대를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다.

황제를 데리고 있는데 그쯤은 무사통과가 아닌가 하겠지만 현재 이들은 ‘러시아 공사관’이지 황제의 몽진 행렬이 아니었다.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모든 부월과 의장, 깃발과 장식은 철저히 제거되었다.

당연히 황제가 어디 있는지 알면 떼거지로 몰려올 놈들이 많아서였다.

그들은 절대 들키면 안 됐다. 앞질러 파발을 보내 공화국에 확실하게 원병을 청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적은 숫자만을 파견했다가 붙잡히면 만사 끝장이고, 많은 숫자를 갈라 보내면 이 행렬이 습격당했을 때 더욱 위태로워진다. 제일 고려사항은 기도비닉이었다.

그래서 도광제 역시 일반인의 차림을 한 채 걸어야 했다.

도광제는 평생 안 하던 장거리 도보를 감행하느라 허리가 다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허리가 동강 나는 것보다는 낫다.

카자크 기병의 살벌한 분위기는 그 말이 허풍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실제로도 황제를 대신해 화내던 몇몇 근시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도광제는 부옇게 흐려지는 눈을 들었다.

그의 길을 인도하는 빛은 완연히 탁해져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

아무리 되뇌어 봐도 결정적인 실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위로 하늘의 명에 따르고, 아래로 백성에게 자애로웠다.

안으로 기강을 바로잡았으며 밖으로는 오랑캐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중외를 어루만졌다.

굳이 흠을 말한다면 애비와 벌인 연금술 대결 정도가 있는데, 원래 어떤 성군이든 사소한 잘못은 있다.

고민하던 도광제는 곧 원인을 깨달았다.

‘모두 신하들이 모자라서다.’

천자의 좌우를 보필하기에 터무니없이 무지무능한 것들이 스스로 권귀입네 하고 중임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라가 이 꼴이 됐던 것이다. 사실 원래 역사의 도광제도 했던 고민이다.

지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는가. 도대체 왜 아무도 자기를 찾아 달려오지 않는 것인가?

옹립할 만한 친족은 다 데려왔으니 설마 그사이에 새로 황제를 새우는 일이 쉬웠을 리는 없고, 솔직히 말해 자신을 못 찾아서 그랬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갑갑했다. 도광제는 다시 한번 저 광막한 내몽골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먼지 때문에 눈이 침침해서 그런지…….

‘먼지?’

도광제는 눈을 비볐다(다행히 베니그센은 황제에 대한 예우로 수갑을 채우지는 않았다).

분명 그건 그의 눈가에 낀 흙먼지가 아니라 저 멀리서 치솟고 있는 구름이었다.

그 역시 기초적인 병법은 익혔다. 흙먼지가 높게 치솟는다면 전차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낮고 넓게 깔린다면 보병의 것이다[塵高而銳者 車來也 卑而廣者 徒來也, 『손자병법』]

먼지는 장대한 높이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시대를 2천 년 정도 착각한 게 아니라면 전차대일 리는 없다. 저것은 기병이다.

도광제는 함부로 환호하려다 숨을 들이켰다.

어쨌든 저들은 한참 멀다. 그리고 아라사 놈들의 칼은 바로 옆에 있다. 게다가 저들이 우군인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도광제는 진심으로 저들이 근왕군이기를 기원했다.

한나라 헌제가 왜 어차피 꼭두각시 신세 될 줄 알면서도 피난길에 만난 조맹덕을 반가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선 살아야 했다.

그리고 망원경을 가진 기랑의 경우, 도광제의 기원이 이루어졌음을 전해 주는 영광을 맡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쌍욕을 씹어뱉었다. 원래 말을 잘 안 하고 거친 말은 더 잘 안 하는 기랑이었던지라 길명이는 깜짝 놀랐다.

어쨌든 기랑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길명이 말고는 딱히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기랑은 즉시 베니그센에게로 갔다.

“봤지?”

베니그센은 우울하게 망원경을 내렸다.

“봤다. 낭패로군. 너무 느렸어.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만 명 정도 되나?”

“더 돼. 아무리 적어도 일만 오천이야.”

“그래. 반면 우리는…….”

기랑도, 베니그센도 3천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우선 그간의 전투와 행군 동안 누락된 숫자가 있다. 그리고 이 행렬의 목표인 황제와 조신, 식솔들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6, 700여 명은 빠져야 한다.

아무리 빠듯하게 세어도 2천 명 정도가 한계다.

예르몰로프는 열 배 정도까지는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 저들은 척 봐도 정예군이다.

그럴 만도 하다. 저들 중 절반은 비록 패잔병이라 하나 성경 장군 송윤의 직하병, 다시 말해 만주 팔기 최후의 생존자들이었으니까.

베니그센은 칼자루를 잡았다. 그제야 그것에 유의한 기랑은 한 가지를 눈치챘다. 과거 북경에서 베니그센이 시준에게 빌려주었던 그 검이었다.

“도주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느려. 그리고 저들은 이미 우리의 의도를 알고 있다. 눙치는 짓은 통하지 않을 테지. 싸운다. 만약 전력이 열세하여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엔…….”

“그 경우엔?”

베니그센은 왜 여태까지 그가 좌절하지 않았는지를 깔끔하게 설명했다.

“황제와 그의 가족을 저들의 눈앞에 끌어내고 목에 칼을 들이댄 뒤 퇴거를 종용한다. 예르몰로프 장군. 그 일은 자네에게 맡긴다. 인질은 귀관이 목적 달성에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활용해도’ 좋다. 황제만 죽이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자유다.”

“알겠습니다. 공사 각하.”

***

송윤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다는 사실에 우울함을 느꼈다.

저들은 황제를 데리고 있다. 그리고 고려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 광대한 내몽골에서 이 행렬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성경부와 그 인근의 지리를 전부 아는 성경 장군이기에 가능한 위업이었다.

그가 파견한 신중하고도 재빠른 척후들은 자취를 잘 탐지했고 송윤은 최적의 경로를 따라 앞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송윤은 지금도 베니그센의 생각을 앞지르고 있었다.

베니그센은 황제를 인질로 잡으면 청군이 감히 자기들을 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황제는 직위이지, 사람이 아니다.

천자가 무엇이고 천명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서양인의 한계였다.

송윤이 자기 사업에서 주안점을 두는 지점은 황제가 ‘살아 있는 채’ 외국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송윤은 도광제가 가진 그릇의 한계를 체험했다.

황제는 복사가 금지된 명령서를 보냄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위해 신하들을 속이고 대계를 어그러뜨렸다.

그가 백의종군을 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로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패장으로서는 오히려 가벼운 처벌이다. 어차피 송윤은 이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자기 목숨을 굳이 이어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중요할 때 스스로 사람들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인도하는 임무를 팽개친 황제는 필요 없다.

도광제는 북경에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졌어야 했다.

송윤은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서명아에게 말한 대로 황제를 구하러 왔다.

새 황제의 앞길을 막을 뿐인 폐주의 관뚜껑 못을 박아 그 죽음을 확실히 확인함으로써 대청 수억 인민의 앞날을 보장하는 일은 확실히 ‘황제를 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도광제를 구하는’ 일이 아닐 뿐이다.

송윤은 마지막까지 나라를 위해 죽어간 동료 장군 부준을 떠올렸다.

아직도 연명하겠다고 살아서 오랑캐에게 끌려다니는 저 ‘폐주’와 너무나 대비되었다.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그 순간 송윤은 혁명가였다.

그는 휘하 장병들에게 명령했다.

“저들이 황제 폐하를 억압하고 있다. 지휘는 성경 부도통이 대행하라. 니루 어전 등 군교들은 부도통의 군령을 힘써 따르도록. 수단은 묻지 않는다. 오랑캐를 격멸하고 어가를 되찾아오라.”

‘황제가 그러다 죽으면요?’ 하고 묻는 장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과거 송윤과 함께 그 굴욕을 겪었던 병사들이다.

팔기 중에서도 청조의 근본은 당연히 여진족의 만주 팔기다.

그리고 그 최후의 생존자들은, 여진이 낳은 가장 위대한 제국의 군주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도열했다.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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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성경 장군 송윤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다시 등장했군요. 작중 서술된 대로, 이전에 송윤이 도광제와의 복잡한 면피 싸움으로 북경에 복귀했을 때 그의 병사들은 산해관으로, 송윤은 백의종군하느라 남쪽으로 갔었지요. 몇 화 전의 일이라 다시 설명이 들어갔습니다.

2. 이때 유럽에서는 뇌가 보내는 신호가 전기라는 사실에 대해 감을 잡아가는 상태였습니다.

기존에 데카르트가 주창했던, 인간은 유압 파이프 비슷한 것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인형이며 신경계를 지나는 액체의 압력과 신호로 움직인다는 설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전에 언급된 것처럼 이때 전기를 이용해 시체를 움직이는 쇼가 유행했으며, 이때 출간된 메리 셀리의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전기 쇼크를 통해 시체를 되살리는 것도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3. 동의보감은 내경편에서, 황제내경을 인용하여 “눈물과 콧물은 뇌에서 나오는데, 뇌는 음이다. 뇌가 스며나와 콧물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게 미라 만들 때 뇌를 부숴서 빼냈던 이집트처럼 뇌를 가치 없는 기관이라 생각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도 설명되었듯, 뇌는 기맥의 주요 통로이고 상단전이라 불리는 중요 기관이었습니다(중단전은 심장, 하단전은 그 단전입니다).

조선 시대의 관용어구로도 지휘부를 ‘두뇌’라 칭하는 등, 메커니즘은 몰라도 머리가 중요하다는 관념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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