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65화 (265/284)
  • 265화

    89. 갈망의 도시(2)

    도광제의 국토 연성진, 천계령은 해안의 방어와 내륙의 장악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강남 전체에 걸쳐 내륙 수비가 튼튼해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요충지와 그 길목을 틀어쥔 것이다.

    그리고 조정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지역 외의 다른 곳은 요충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원 창고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징병과 수탈에 견디다 못해 도망갔다. 따라서 논밭은 황폐화되며 시장도 다 죽어버렸다.

    간신히 도망쳤다가 돌아온 고향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결국 광서와 귀주의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중화 혁명당에 합세했다.

    혁명당이 시준처럼 곡식을 풀어 인민을 구제한 건 아니다.

    임칙서와 송주령은 정시준과 달리 주가 조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재보가 없었다. 시준 자신이 온다 해도 조선과 비교가 안 되는 강남의 인구 상대로 그 짓을 했다간 금세 빈털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후방의 군량이 보관되어 있는 현청과 곡창을 급습할 조직을 꾸려 주었다.

    저들을 따라가면 약탈이든 뭐든 해서 배를 채울 수 있다. 이것이 요 1, 2년 ‘해방구’가 급격히 많아진 이유였다.

    청이 영국과 고려에 맞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동안, 진압된 줄 알았던 중화 혁명당은 엄청난 끈질김으로 부활했다.

    ***

    당 중앙위원회 군사위원장 송주령은 매섭게 외쳤다.

    “저 대운하를 누가 팠는가!”

    “중화의 오족 인민이오!”

    “그렇다면 저것은 누구의 것인가!”

    “인민의 것이오!”

    “언제까지 저기로 곡식과 돈을 멍하니 날라, 반동 여진 황제의 배를 채워 줄 것인가!”

    “오오오!”

    “저기에서 노 젓는 거룻배 하나마다 또 다른 오족 인민이 고통받는 것이다. 대륙을 쳐서, 동포를 구한다! 동지들, 가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따라 외쳤다 해도 송주령의 말이 그 수만 명 모두에게 들리는 건 아니다.

    허나 꼭 내용을 알아들어야 납득하겠는가.

    강남에서 한중, 사천을 거쳐 다시 되돌아오는 이 무지막지한 대장정에서 그들의 적은 관군만이 아니었다.

    더 공정하게 말한다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그들의 적이었다. 소름 끼치는 추위와 익어버릴 것 같은 더위, 맹수와 굶주림과 피로와 역병이 교대로 찾아들며 너무나 많은 동지들을 죽였다.

    조금이라도 서로 나누기를 거부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장 약한 사람부터 순식간에 죽어갔다.

    그리고 그다음엔,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 약한 사람에게 도움받고 있었던 강한 사람도 약자가 되어 죽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싫어도 그래야 했다.

    그 혁명의 여로에서 한마음이 된 혁명당원들은 모두가 정신 연결체나 다름없었다. 물론 새로 합류한 강남 빈민들 역시 즉시 텔레파시 링크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심지어 귀머거리조차 송주령의 말을 즉시 이해했다.

    그들은 장강을 떨어 울릴 만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간 불가피한 사정으로 조용히 지내면서 몸을 풀었다가 – 송주령에겐 칼 맞을까 봐 아무도 대들지 못했기 때문에 임칙서가 동지들 앞에서 일종의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 이제 오랜만에 전선에 나서는 것인 만큼, 송주령의 기세는 활기차고 의욕은 충만했다.

    그리고 그 휘하 군세도 마찬가지였다. 송주령은 전투 경험 있는 고참 인민해방군 병사들을 선봉에 세웠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제 염군도, 구 천리교군도 없다.

    그들은 출신에 상관없이 어깨를 맞대고 함께 늘어서서 자기들의 뒤를 따라오는 빈민의 방패이며 창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머뭇대며 따라오는 저 신참 빈민 무리 역시, 조금만 있으면 그들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 등을 보여주는 혁명당원이 될 것이다.

    혁명의 연쇄는 계속된다.

    중화의 인민 모두가 하나의 중국으로 대동단결하여, 해동 고려국과 남쪽 유구국에 이어 여기에도 만인 수평한 세상을 만들 때까지.

    ***

    중화 혁명당 인민해방군의 공격 전법은 기본적으로 한중을 점거할 때와 비슷했다.

    진강현의 청군은 당시의 한중부 지부 엄여익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밀려드는 인민해방군은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오족공화! 소멸여진(掃滅女眞)!”

    “수복대륙(收復大陸)! 해구동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중국 종교결사 농민반란군의 공포 극복과 사기 유지 수단이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이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청군에게는 그 고함이 “으어어어”라든지 “그웨에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좀비 아포칼립스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좀비가 꼭 느릿느릿하고 멍청한 것만은 아니다.

    시준이라면 증언해 줄 수 있겠지만 창의적인 현대 좀비 영화에는 한도가 없다. 달리는 좀비부터 시작해서 총 쏘는 좀비, 헬기 모는 좀비, 연애하는 좀비, 심지어 가라테 하는 무술좀비까지 있다.

    인민해방군 대열 곳곳에서 튀어나온 구 천리교 협객들, 즉 남두성권의 계승자들은 바로 마지막 부류에 속했다.

    과거 상하이에서 펼쳐졌던 그들의 남두성권이 다시 폭발했다.

    물론 지금은 당시 공화국이 전해 준 북두신권의 묘가 합쳐졌다. 권법가들은 브라운 배스 머스킷을 쏘고 권총을 당기며 개머리판으로 반동의 머리통을 박살 내었다.

    그때와는 연공의 깊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웅혼한 내공에 압도당한 청군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현재의 항주 장군 살병아(薩秉阿)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마라! 어차피 백성의 무리일 뿐! 영길리의 강포 악독한 해적에게도 실함되지 않았던 이 진강현을 폭도 따위에게 내주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야 그때는 25만 군사가 있으니까 실함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진강현에 남은 청군과 저 폭도의 숫자를 비교해 보자면, 흡사 얼마 전의 영국군과 청군의 처지를 뒤집어 놓은 수준이었다.

    물론 살병아는 두 무리의 정예도 역시 영국군과 청군 이상으로 차이 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보답받았는지, 끊임없이 밀려오던 저 폭도 무리는 청군의 무작스러운 학살에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살병아는 안타깝게도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원래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니다.

    그건 그냥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위기를 발생시키는 것은 그 틈을 노려 쳐들어오는 다른 인간이다.

    이 경우는 인민해방군의 반대편, 그러니까 동쪽에서 강을 타고 밀려드는 붉은 옷의 무리가 그러했다.

    살병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후방에서 크게 고함이 들리며 진이 어지러워지자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장군답게 후방에서 지휘했기 때문에, 바로 이쪽을 기습한 다른 적군과는 거의 최전선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선두에 선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벽력같이 소리쳤다.

    “북두성이 바로 오늘 이곳을 비추었다! 여기, 혁명의 인민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강림하는 진인 정시준이 왔다!”

    동시에 후방 곳곳에서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났다.

    과연 화둔술을 극성으로 대성하여, 천공장군을 콧바람으로 날리고 제천대성도 눈 아래로 비웃는다는 정시준의 도력이었다.

    정시준이 아니고서야 이런 조화가 일어날 리 만무했다.

    모든 사람은 지금 여기 정시준이 강림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건 병사들 얘기고, 살병아 정도 되는 장군이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일거에 믿을 리는 없다.

    하지만 저놈들의 위험성만은 정시준이 있건 없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낫다. 살병아는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전부 돌아와서 정시준을 잡아라!”

    ***

    말할 필요도 없이, 그건 예전에도 중국에서 이 짓 많이 해 본 공화국 해병대 1영대장 김덕춘이다.

    무기를 보냈다면 그것을 싣고 온 자가 있는 법. 공화국 해병대가 바로 그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시준이 보낸 모든 무기보다는 이들이 더 귀중한 전력이었다.

    해병대는 그들의 ‘전통’대로 이번에도 영길리군에 ‘약수’를 공급하러 왔다며, 군량 운반선인 척하고 뻔뻔하게 상하이에 기어들어 왔다.

    상하이는 주력군이 모두 떠나 한산했다. 중국군이 정 여기로 밀고 들어오면 다 버리고 대만으로 튀라는 지시를 받았던지라 – 구해줄 방법이 없었으니 그런 지시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영국군도 별로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해병대 역시 일상적 수준의 감시를 피해 하나둘 사라질 수 있었다. 은근슬쩍 빼돌리고 휘파람 불며 몰래 눈앞에서 없어지는 것은 원래 수적 출신인 해병 1영대의 특기다.

    그들은 캠벨 대령이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쉽게 장강을 거슬러 올라 진강현에 다다랐다. 영국군도 억울하면 갤리선 끌었어야 했다.

    현재와 당시는 지키는 청군의 규모 및 태세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변명은 필요 없다.

    지금 해병 1영대도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영국인의 근성이 부족해서다. 근성으로 가득한 해병대의 무공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황급히 달려드는 청군을 전우들이 근육과 클레이모어로 베어 넘기는 동안, 해병들은 배에 실어온 주체신기전 1호를 던지듯이 늘어놓았다.

    어차피 천천히 전선을 형성하며 싸우는 전투가 아니다. 김덕춘은 대충 주체신기전이 땅에 놓였다고 느끼자 바로 명령했다.

    “불 질러!”

    해병대원들은 왜 불을 ‘붙이라’가 아니라 ‘질러라’인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주체신기전 1호와 그것을 올린 작은 수레를 청군 쪽으로 밀어젖혔다. 그러고는 타오르는 주석불을 거기에 내던졌다.

    조심스럽게 다뤄도 사고가 빈발하는 것이 화기인데 그런 무지스러운 취급을 당했으니 다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주체신기전 1호는 그대로 터져나갔다. 물론 해병대 쪽으로도 날아왔지만 대부분이 잽싸게 엎드려서 화를 면했다.

    살병아가 본 것은 바로 그 불꽃이었다.

    ***

    십인지맹 제4번도 정길룡은 자신을 갑자기 공화국 해병대에 넣어 여기 보낸 정 진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영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정감록 일족의 도력을 증명한다면 위격의 상승도 꿈이 아니다. 이것은 신앙의 시험이었다.

    따라서 지금 전쟁터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정길룡의 고민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일종의 신학적 고뇌에 빠져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그래? 내가 정시준으로 보이나 보지?’ 하며 용맹히 총칼을 휘두르고 있는 김덕춘은 그에게 상당한 갈등을 선사했다.

    정길룡은 여기에서 정치장교로서 진인의 사칭범에게 엄중한 교훈을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혁명군의 일원으로서 김덕춘의 탁월한 전술 선택을 지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치가인 주석 동지의 권한은 다른 동지들에게 위임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국무당 전원이 그런 대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도를 닦은 진인이자 정감록 신앙의 궁극적 체현인 정시준의 권능이 다른 사람에게 위임될 수 있는가?

    수많은 목숨이 격렬하게 헐값으로 거래되는 이 숨 가쁜 현장에서, 정길룡은 그 모두를 무시한 채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인께서 계시를 내려주시기를…….’

    신과 인간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을 모방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바라는 모두를 해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신은 구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준다.

    따라서 내게 구하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조선의 인민은 수평한 생지당권의 탈환을 원했고 진인은 강림했다.

    중화의 인민은 오족이 공화하는 하나의 중국을 원했고 역시 진인은 손을 내밀었다.

    정길룡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곧 계시가 떨어졌다. 떠올랐다고 해도 된다.

    ‘이 또한 진인의 뜻이 아닐까?’

    김덕춘은 시준을 사칭해서 돈을 우려내거나 사욕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공화국의 승리를 위한 전술인 것이다.

    만약 김덕춘의 저 짓이 진인도 허락한 바라면, 아니. 그렇다기보다 오히려…….

    ‘진인이 1영대장의 몸을 통해 화신으로 드러나신 것이라면?’

    정길룡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덕춘과 해병대원들을 바라보았다.

    한 달에 두 번은 씻나 싶은 저 지저분한 놈들의 몸이라니 소름이 끼쳤지만, 어쨌든 정 진인은 공화국의 영광을 위해 그 정도 고난은 감수할 것이다.

    그에게 총의를 맡긴 다른 모든 인민이 그러한 것처럼.

    ‘진인은 모두의 안에 있다.’

    이미 시준이 로드 암허스트를 상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정 진인은 세상에 편재(遍在)한다.

    그렇다면, 정길룡의 안에도 정 진인이 있을 것이다.

    정길룡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저 폭발 때문이 아니다. 진리가 그의 시야를 밝혔다.

    정 진인이 인도한 전 조선 인민 해방에 이어 두 번째로 해방된 기분이었다.

    그는 해병대의 독문병기인 주체신기전 3호를 들었다.

    그러고는 소리 높여 외쳤다.

    “정시준이 왔다!”

    별로 조준해서 맞힐 생각도 없었기에 그냥 폭파시켜 버린 주체신기전 1호는 청군의 기를 순식간에 죽였다(폭발의 여파로 아무 데나 날아가는 로켓은 진짜 무서웠다).

    그렇게 멈칫해 버린 청군의 앞에서, 정길룡은 주체신기전 3호를 높이 쏘아 올렸다.

    저편에서 군을 지휘하던 송주령은 그 신호를 보고 기성을 질렀다.

    “정시준이 왔다!”

    다른 인민해방군 간부들도 질세라 목청을 높여댔다.

    “정시준이 왔다!”

    “북두 장군이 도래했다!”

    북두성이 비끼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자, 정시준이었다.

    거대한 함성이 터졌다.

    “전 세계 인민 동시 존재(存在) 정시준이다!”

    다시 기세를 얻은 인민해방군은 물러났다 몰아치는 파도처럼 재차 밀려들었다.

    사실 해병대의 전력은 대단하지 않다. 만약 여기의 청군과 정면으로 싸운다면 몰살당했을 것이다.

    인민해방군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무슨 갑자기 숫자가 늘어난 게 아니다.

    전쟁이 순수한 전투력의 싸움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결과가 바뀔 요인이 없었다.

    물론 그런 관점은 틀렸다. 전쟁은 전투력 싸움이 아니다.

    해병대가 습격한 곳은 살병아가 있는 후군 본진에 가까웠다. 당황한 살병아는 해병대의 숫자가 적은 것을 보고 재빠르게 처리하려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치명적이지는 않은 판단이다. 하지만 이 명령은 진채 전방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연쇄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별로 싸우기 싫었던 청군은 극한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뒤쪽이 소란한데?”

    “방금 몇 개 신(汛, 녹영의 최소 부대단위)이 달려갔어.”

    “본영이 기습당한 거 아냐?”

    “뒤에서? 잠깐, 거기는…….”

    그쪽에는 진강현 일대에서 청군 십여 만을 몰살시켜 버린 살인 기계, 영길리 오랑캐 놈들이 있었다.

    그간 쉬지 않고 처리 작업을 했음에도, 지금 진채에 있는 병사들 역시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픽픽 쓰러질 지경이다.

    청군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곧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영길리 놈들이 반란자와 합세하여 뒤를 쳤다!”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

    청군이나, 항주 장군 살병아의 수준이 원래부터 저질인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저질이 아닌 병사를 서명아가 거의 전부 데리고 갔다는 점이었다. 이래서야 살병아가 아무리 유능한 장수라도 어쩔 수 없다.

    혁명력 9년 – 그러니까 반동의 시간축으로는 도광 5년(1819년) 정월, 중화 혁명당 인민해방군은 영국군조차 점령에 실패했던 진강현의 대운하 합류부를 손에 넣었다.

    육로를 통해 장강부터 북경까지 근성의 북상을 실행한 서명아의 10만 대군이 북경성을 완전 포위했을 무렵이었다.

    ***

    시준은 이때 평양에 돌아와 있었다.

    물론 저질러 놓은 죄가 있는 이상 돌아와서 태연히 업무 시작한 건 아니고,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다. 진짜 힘들었다.

    그러나 우선 지금은 정상 궤도에 올라가 있다고 봐도 좋았다.

    만주의 완전 장악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으나, 중국 상황은 지금 한 변곡점에 접어들었다.

    시준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읽었던 서류를 다시 뒤적거렸다.

    그건 도광제가 강남에 군사를 보내기 전 공화국에, 아니, 국교가 없으니 정확히는 정시준에게 보냈던 그 편지였다.

    거기에는 청과 동맹하고 - ‘신속’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했다. 도광제도 바보는 아니었다 - 영길리와 손을 끊는다면 만주와 요동의 혁명군 점령지를 양도하겠다는 암시가 있었다.

    물론 성경과 영고탑만은 제외였지만 그것만 해도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로 통 큰 제의였다.

    허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준은 그 제안을 믿지 않았다.

    몇 번이나 겪은 일이다. 상대가 지나치게 후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시준은 그 제안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뭔가 ‘쫄리는 것’이 있음을 간파한다.

    그리고 그 약점을 잡아 더 뜯어낸다. 그것이 신디케이트 수장으로서의 정시준과 그 친구들이었다.

    ‘똥줄 타나 보군.’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다른 통상의 인류에게는 영국이 더 위험할지라도, 공화국에게는 아직 청이 훨씬 위험하다.

    게다가 이 제안은 무의미하다.

    남만주와 요동이 아니라 산해관 동쪽 전부를 준다 해도 마찬가지다. 영국만 물러가면 언제든지 도로 빼앗을 수 있으니까.

    혁명은 자유 낙하와 같다. 일단 시작한 이상 멈출 수도, 거꾸로 돌아갈 수도 없다.

    강철군주 이공에게 처음 창을 겨눈 이후로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해방전쟁을 지속해야 했던 것처럼, 한번 중화 혁명의 불꽃을 올린 이상 청은 멸망해야만 했다.

    그래서 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혁명무력부장 차형기와 정찰총국장 방우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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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살병아도 이때쯤 실제 항주, 복주 장군을 한 사람입니다. 자금성에 가서 황제 앞에서 기마 시범을 보이기도 했던 용장이죠.

    2. 다른 좀비는 물론이고 가라테 좀비도 실제로 있는 영화입니다. 제목은 ‘Karate a muerte en Torremolinos’라고 스페인 영화죠. 유럽 좀비 영화 중에 이런 게 종종 있습니다.

    3. 262화에서 도광제는 강남에 군대를 파견하고 천진 기습을 얻어맞기 직전 시준에게 편지를 보냈죠. 시준이 읽은 것은 그 편지입니다. 물론 이 시점에 처음 본 건 아니고, 대응을 결정한 것이 지금 시점입니다.

    4. 작중 나오는 ‘소멸여진’, ‘수복대륙’, ‘해구동포’는 장제스가 작사한 노래 ‘반공복국가’의 가사이거나 그것을 약간 바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멸여진’의 원래 가사는 소멸주모(消灭朱毛)로서 주더와 마오쩌둥을 없애자는 뜻입니다.

    물론 시준이 그 노래를 아는 건 아니고, 같은 나라 사람들이 비슷한 대의에 의해 만든 가사다 보니 그런 거지요.

    5. “따라서 내게 구하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는 신약성서 요한복음의 구절입니다. 구약에도 표현은 약간 더 구약스럽게 거칠지만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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