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59화 (259/284)

259화

87. 대륙은 붉게 뒤덮이고(3)

영국군이 쓰는 콩그리브 로켓 중 가장 통상적인 32파운드형의 경우, 사거리는 약 1.7마일 정도다. 불경함을 정화해서 말한다면 대략 2.7킬로미터다.

그러니까 영고탑에서 부준이 마주했던 사격보다 사실은 훨씬 더 길게 나간다.

다만 모든 투사병기가 그렇듯, 여러 요인이 적당히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최대 사거리에서 쏠 일이 드물었을 뿐이다.

그래서 청군은 생각보다 먼 거리에서 그 지긋지긋한 신기전 사격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다만 미리 각오를 하고 있었던 데다, 대장들의 말마따나 안 그래도 명중률 안 좋은 주체신기전은 달리는 청군에 그다지 큰 타격까지는 입히지 못했다.

발 느린 보병들이야 뒤에서 구슬픈 비명을 질렀으나 그쪽은 어차피 대부분이 백성과 노비다. 개나 돼지와 다름없으니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다.

그런 건 전사의 무예와 그것을 실어 나를 준마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얻을 수 있다.

그들 만주족이 과거 조선에서 그러했듯이.

팔기 갑병들은 웬만한 인간보다 더 아끼는 자기 말과 한마음이 되어 땅을 박찼다.

군주의 명예와 그 자신의 전리(戰利)를 위해, 갑병들은 말고삐를 단단히 감아쥐고 마상총과 활을 움켜잡았다.

압제자에 대한 탈환과 대등한 동료 인민이 맡긴 대의를 위해, 혁명군은 기름 바른 약포를 물어 찢어내고 총검 번쩍이는 머스킷을 치켜들었다.

무엇이 옳은지는 이 전투의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전사집단의 황혼을 장식하는 자들과 국민군대의 여명을 맞이하는 자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영고탑에서의 패배에 대한 책임 때문에 맨 선두에 나서서 달리던 알추카의 효기교(驍騎校, funde bošokū) 커싱거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겪었던 조선군의 신기전이나 작은 양포(洋砲, 6파운드 야포)은 더 짧은 거리에서도 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거의 맞지 않는 먼 거리에만 몇 발 떨어뜨렸을 뿐이다.

조선인들은 더 이상 포를 쏘지 않았다.

이제 얼마 안 가면 청군의 마상총이나 활로도 쏠 수 있는 사거리에 들어간다.

과연 가까이에서 보니 조선군은 아무리 두터운 곳도 전열이 4열을 넘지 않았다. 조선군의 총포가 아무리 맹렬하다 한들, 물리적인 법칙은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처음 줄 서서 싸울 때부터 이어졌던 법칙. 한 지점에 집중되는 체중이 적은 쪽이 밀린다.

전열보병의 머스킷 사격이 무적의 화망이었다면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군을 비롯한 유럽 군대가 아직까지 돌격용 중기병을 유지할 까닭이 없다.

여기의 청군 또한 숫자의 절대치나 병사 하나하나의 용맹 둘 다 조선군에 부족하지 않다. 따라서 접촉하면 그대로 뚫린다.

이미 그들을 상대해 본 커싱거는 조선군이 겁먹어서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는 긴장하여 전방을 주시했다.

‘무언가 계교가 있다.’

예상되는 것은 위를 살짝 모래로 덮어 놨다가 밧줄로 당겨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뚝 같은 대기병 장애물이나, 조란환(鳥卵丸) 비슷한 부류의 근접 산탄포 정도다.

그러나 그 정도는 기병이 당연히 각오해야 하는 난관이지 경악스러운 병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커싱거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다잡았다.

‘어차피 이젠 돌이킬 수도 없어.’

선두에 서서 명예롭게 죽거나, 아니면 적을 첫 번째로 격파하는 영광을 누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그리고 커싱거가 전자의 위험 때문에 후자의 기회를 거부할 사람이었다면 대청 만주 팔기의 효기교라는 지위까지 오르지도 못했다.

그는 활을 들어 올렸다. 이제 진짜 몇 발짝만 달리면 청군의 소화기 사거리에 들어간다.

막 시위를 당기던 커싱거는 거기에서 다시 섬뜩한 불협화음 같은 직감을 받았다.

‘그런데 홍건적 놈들은 왜 안 쏘고 있지?’

조선 총은 분명 청군의 마상총이나 활보다 사거리가 훨씬 길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아직 방포하지 않았다.

더 가까이 끌어들여야 잘 맞기 때문에? 그것도 합리적인 이유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까 괜히 먼 거리에서 포를 쏴서 화약을 낭비한 일이 설명이 안 된다.

커싱거의 끝없는 탐구심은 안타깝게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다음 순간, ‘발밑에서’ 폭음이 울렸다.

커싱거는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내장만 몸속에서 붕 뜨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하늘. 땅. 하늘 땅. 하늘땅하늘땅하늘땅. 희푸른 색과 거무스레한 갈색의 정신없는 교차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커싱거는 낙마의 충격보다 그 시야의 혼란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팽이를 방불케 하는 속도로 굴러간 커싱거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후열의 말발굽이 누워 있는 자기 얼굴 바로 위까지 덮쳐드는 광경이었다.

***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랑을 통해 인도에 전파된 주석탄은, 자신들의 사냥 패배가 다 이 총알 때문이라고 강변하는 영국 장교들 덕에 본국에도 빨리 소개되었다.

일찍이 연탄 특허 내고 공장 돌리던 윌리엄 자딘의 도움으로 정약용은 그 신형 총탄의 특허를 낼 수 있었다.

영국의 발명가와 기술자 사이에서는 금세 이 ‘반왕의 마탄[Anti-king’s magic bullet]’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물론 군대에서 신기술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획일성이다.

게다가 특허료 예산 아깝다는 비밀스러운 이유도 더해져서, 주석탄이 단숨에 영국군에 보급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려면 강선총부터 대량 생산해야 하는데, 엔필드(Enfield) 조병창은 이제 막 가동을 시작했을 뿐이다.

다만 이는 사냥을 즐기는 귀족과 일부 특이한 취향의 연대장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정부 공식적으로 대량 구매하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윌리엄 자딘은 로스차일드와 손잡고 ‘왕 첸 사냥용품점’이라는 소박한 이름의 무기 생산업체를 출범시켰다.

자딘은 밀무역상의 정체 때문에, 로스차일드는 그들의 비밀주의 때문에 이름을 드러내길 원하지 않아서 붙은 사명(社名)이지만 이는 많은 신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엔필드 조병창이 극히 최근 설립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영국군은 이때까지 무기 생산의 상당 부분을 민간 업체나 소규모 공방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딱히 법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19세기나 21세기나 돈 많으신 분들께는 법이 미칠 수 없다.

법은 부자들이 만들며, 인간이 신을 거역할 수 없듯 피조물은 창조자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왕 첸 사냥용품점은 교외의 공장에서 생산한 무기를 베이커 가 왕 첸 약방 옆에서 팔았다.

많은 신사들이 방문하여 주식 동향도 듣고 겸사겸사 사냥에 좋다는 총과 총알도 사 갔다.

사람들은 도시 땅값도 비싸고 시끄러우니까 교외에 공장을 차렸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 공장에 심심찮게 나타나 상자 몇 개씩 가져가는 조지 무리에게는 아무도 유의하지 못했다.

정약용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영길리국은 하고자 한다면 철이며 화약, 쇠 깎는 기기와 여러 물건을 정말이지 쉽게 구할 수 있구나. 나라의 근간부터가 비할 바 아니로다. 공화국도 어서 이렇게 되어야 할 텐데…….”

그 말을 들은 윌리엄 자딘은 냉큼 권유했다.

“동인도 회사만을 통하니 거래처가 다변화되지 않아 시장 저변 확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광산부터 무기 제조까지 제가 아는 다양한 사업체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리엔탈 파이터즈……가 아니고 각하의 수행원들이 이 왕 첸 사냥용품점에서 보고 배운다면 돌아가서 큰 도움이 되겠지요.”

“그대의 도움에는 항상 감사할 뿐이오.”

“정시준 의장의 우정에 보답하려면 멀었습니다. 다만 돌아가셔서 제 얘기를 좀 잘 전해 주시면…….”

“물론 주석 동지께서 그대가 말한 거래를 결심하신다면 조선약방(자딘 조선 메디컬 컴퍼니)이 응당 가장 첫줄에 놓이겠지요.”

“역시 말이 빨라 좋습니다.”

시준이 전쟁 준비를 하던 1817년 런던에서는 이런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총 갖고 짐승 쏴 죽이는 게 취미였던 목사(멜서스를 보면 알 수 있듯 영국에는 암흑사제가 좀 많다) 알렉산더 포사이드(Alexander John Forsyth)와 정약용이 접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포사이드는 10년쯤 전 뇌산수은을 구리 뚜껑에 담아 공이로 격발하는 총기 시스템을 개발했다.

전장식 총기의 최종형이라는 퍼커션 캡이 그것이다.

이는 방아쇠를 당기는 즉시 발사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우천시에도 총격전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혁신적 발명이었다. 장전과 발사 속도의 상승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주석탄을 채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영국군은 그것을 채용하지 않았다.

영국군은 포사이드가 죽고 특허권이 소멸할 때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이를 근성으로 버텼다. 그러고 나서야 영국군은 비 올 때도 잘 나가는 총을 가지게 된다.

영국 정부가 끝내 포사이드의 공훈을 인정하여 보낸 첫 번째 연금은 그가 죽고 나서야 도착한다. 자국민에게나 외국인에게나 평등하게 지독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10년 동안 소소하게 사냥용품이나 팔던 포사이드 목사는, 왕 첸 사냥용품점의 제안에 아주 쉽게 넘어왔다.

영국 증권거래소를 사실상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고려-유대 자본은 이제 정시준의 예언도 필요 없었다.

왕 첸이 가리키는 주식은 언제나 폭등한다. 그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만들고 있었다.

영국 정부가 참아 주는 아슬아슬한 선 안에서만 놀았다 해도 정약용과 로스차일드가 몇 년간 쓸어 담은 돈은 엄청났다.

정약용의 경우 대부분을 가난한 본국으로 보내긴 했지만, 포사이드 목사에게도 섭섭지 않을 만큼의 보수를 챙겨 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정약용은 그에게 일차로 구매한 대량의 퍼커션 캡을 그대로 고려에 실어 보냈다. (특허인 만큼 공개가 안 될 수는 없는) 상세한 설명까지 첨부한 채였다.

그리고 1818년이 되어 그것을 받은 시준은 뛸 듯이 기뻐했다.

시준이 뇌산수은을 저 혼자 만들 지식은 없다. 그러나 지향성 폭발 때와 마찬가지로 이게 무엇인지는 알았다. 결과론적인 지식도 때로는 중요하다.

물론 고려의 화공업 수준으로 당장 베껴 생산하는 것은 무리다. 당시는 전쟁이 바로 코앞인 시점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이것을 단발성인 총에 당장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당시 유럽에서도 막 태동하기 시작한 개념인 압력감지식 지뢰를 제작했다.

무슨 센서가 있는 건 아니고, 밟으면 방아쇠 장치가 작동해 공이가 캡을 때리는 물건이었다.

개념 자체야 화약의 발명과 함께 탄생했을 만큼 오래된 물건이지만 ‘확실하게 터지는’ 수단이 생기기 전까지는 신뢰도가 낮아 군대에서 쓰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퍼커션 캡이라면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대강 크림 전쟁 시기부터 기뢰와 지뢰가 군용으로 본격 발명 및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 진보와 무관하지 않다.

몇 개를 사고로 날려먹은 끝에 혁명군은 안전하게 이것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남공철은 그것을 가장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혁명군이 무리하게 진격하지 않고, 청군 3만이 돌격해 오는 그 진군로에 먼저 가서 그저 대기하고 있던 것은 이런 이유였다.

혁명군은 전장을 반드시 선점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19세기 초의 화약 수준이 뻔했기 때문에, 최대한의 폭발력을 발휘하기 위해 그 크기는 현대의 대전차 지뢰를 가볍게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남공철은 처음부터 청군이 추행진으로 돌격해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지뢰는 혁명군과 평행하게 가로로 매설되어 있었다.

커싱거의 뒤를 쐐기꼴로 따라오던 청 기병은 잠시 후 하나의 사선(死線)에서 차례차례 걸려들게 되었다. 뒤로 갈수록 옆으로 넓어지는 진이니 당연하다.

게다가 이 폭발이 혁명군의 포격인 줄 알고 더욱 속도를 높였기에 참상은 더 끔찍했다.

그 아비규환의 대폭발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혁명군 총정치국장으로서 마땅히 본군 쪽의 앞장을 선 이제초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적기를 휘둘렀다.

“이것이 정 진인의 화둔법 제3장, 신묘막측한 지뢰법(地雷法)이다! 제갈량이 오과국 사람들을 다 태워 죽인 것처럼, 예부터 오랑캐에게는 지뢰가 특효약이었느니라!”

제갈량도 있었으면 썼겠지만, 오랑캐에 대한 특효약은 하나 더 있다. 홍총각이 즉시 명령했다.

“동지들은 모두 방포하라!”

선형진을 이룬 혁명군이 부준의 예측대로 일제히 총을 갈겼다.

지뢰 때문에 말이 놀라 주춤대던 후방 청군은 그대로 그 포화를 뒤집어썼다.

이 거리에서라면 명중률이 상당히 높다. 대부분의 청군은 자기 총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부준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피가 흘렀다. 원통함에 입안을 깨물어 흘러나온 피였다.

마치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 같았다.

이 노릇이 도무지 말이 되는가? 동방의 척박하고 가난한 땅에서 툭하면 갈마드는 흉년과 역병에 피폐해진 조선의 백성들이 대체 무슨 조화로 이리되었다는 말인가?

길림 장군 부준은 손수 창을 들고 말에 올랐다. 그 의도를 눈치챈 성경 장군 송윤이 놀라서 말렸다.

“장군은 무슨 짓을 하려 하시오! 대장의 임무는 하찮은 편장의 용맹을 보임이 아니라 뒷일을 보살펴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산성과 성경부의 진지에 의지해 지킬 수 있소!”

부준은 잠깐 멈추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활을 메고 창을 앞으로 치켜들었다.

“그것이라면 나보다는 성경을 오래 다스린 장군께서 더 잘하실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이미 귀한 장병의 목숨을 헛되이 버리게 하고 나라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패장이오. 이는 죽음으로밖에 속죄할 수 없소.”

“안 되오! 얘들아. 무엇 하느냐. 어서 장군을 모시지 못할까!”

그러나 부준은 결기 어린 동작으로 창을 흔들어 자기에게 다가오는 군관들을 쫓아냈다.

“게다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소. 비록 지금 잠시 주춤하였지만, 대장이 손수 남은 철기를 몰아 뒤를 받쳐 준다면 뚫을 수 있소. 이게 마지막 기회요. 이를 완수한다면 나는 백번이라도 죽겠소이다!”

그 말도 옳았다. 돌격한 청군은 2만에 가깝고, 아무리 선형진이라도 한 번에 발사되는 총은 수천 단위. 그중에서 맞는 것은 반쯤이라고 해도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따라서 혁명군이 물리적 격돌 전에 청군을 글자 그대로 전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장군이 나아가 사기를 올리고 뒤를 받쳐 준다면 희망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결국 송윤은 부준을 보내주고 말았다. 부준은 그대로 말을 달리며 창을 휘저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용사만이 내 뒤를 따라와라!”

부준 직속의 철기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말배를 걷어찼다. 송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부준의 말대로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마쳤다.

허나 그중 아무도 ‘황제를 위해’ 죽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송윤이나 다른 병사들은커녕 부준 자신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은 엄연히 사실이었다.

먼저 돌격한 청군 기병대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어서 혁명군을 뚫는 것만이 살길임을 알고 있었다.

청군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무모한 몇 기의 선두는 벌써 혁명군의 얼굴이 잘 보일 거리까지 육박했다. 그들은 노호하며 창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혁명군의 화력은 총과 신기전, 지뢰뿐만이 아니다.

3킬로그램포는 영길리의 것이지만 혁명군은 거기에 조선의 전통 기술을 접목시켰다.

조란환 수백 발이 무수한 3킬로그램포에서 쏟아져 나왔다.

푸셰가 제안한 프랑스식 반동 처형법인 포도탄은 그 목적을 충실히 이행했다. 삼국의 우의가 어우러진 무기라고도 부를 수 있었다.

커싱거는 과연 효기교다운 선구안을 가졌던 것이다. 간신히 혁명군에게 가 닿았던 청군은 투창 몇 개만 겨우 던지고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리고 후열의 혁명군이 나와 다시 사격을 퍼부을 무렵, 거의 붕괴되어 가는 청군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도착했다.

“이 오만방자한 놈들이 어디서 함부로 날뛰느냐!”

오면서 아무 데나 일단 총을 쏴 갈긴 부준은 몽골 팔기의 전통대로 마상 투창을 던졌다.

부준을 뒤따라 그의 철기가 일제히 던진 무수한 투창이 혁명군을 덮쳤다.

이는 병자호란 때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꽤 유효한 수단이다. 드디어 청의 칼날이 혁명군에게 닿은 것이다.

어차피 한족 병사들은 다 도망쳐 버린 상황이라 부준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언어인 만주어로 외쳤다.

“전사들이여! 어릴 때부터 말을 달리고 활을 쏘던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나라가 그대들에게 귀사족의 영화를 보장하고 봉은을 내린 보람이 무엇인가! 저 나약한 농민에게 쓰러질 셈인가. 장군이 왔다! 장군이 왔다! 어서 일어나라! 일어나서 저 하찮은 하민 놈들을 찢어 죽여라!”

총정치국장 이제초는 귓가를 스치는 총탄과 화살, 투창이 마치 보이지도 않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주 말은 몇 개의 단어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탄식했다.

“대충 알았다. 너희들의 사상…….”

너무 반동적이라서 죽이고 싶어졌다.

저놈들은 여전히 혁명군을 멀리서 총만 쏠 줄 아는, 그저 화기의 우월로만 이기는 군대로 인식하고 있다.

그 착각은 오로지 정면으로 부숴 줘야 한다. 그것이 혁명이니까.

이제초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깃발을 들 것도 없이 그가 망토처럼 두른 붉은색 전포 전체가 혁명적으로 휘날렸다.

저격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총정치국장의 용맹이었다.

“동지들, 혁명의 정면돌파전이다!”

여전히 혁명육군 최정예라 자부하는 2사단 1영대 장병들이 일제히 총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미 기병대와 보병 대열이 부딪쳤기 때문에 말은 멈춰 있었다.

염파와 황충이 부럽지 않은 노익장을 발휘하여 주위의 조선놈들을 척살하던 부준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팔기가…… 병장기를 겨루어서 밀린다고?’

확실히 여진 기병, 그것도 길림 장군 부준이 가진 친위대의 위용은 동아시아 최후의 직업 전사라 할 만했다(사무라이는 직업 문사(文士)로 전직한 경우가 많아서 애매하다).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집트 맘루크와도 비교할 만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의 프랑스 육군에게 정신도 못 차릴 때까지 능욕당한 그 맘루크 말이다.

여진 기병 하나는 혁명군 하나를 무리 없이 쓰러뜨린다. 그러나 만 명의 혁명군은 만 명의 여진족을 압도할 수 있다.

혁명군은 각 방대장(분대장)의 지휘에 따라 극소규모의 방진을 즉각 이루었다. 여진족의 소원대로 선형진이 풀렸지만, 이제 그들은 어디로 뚫고 나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병 한 명당 최소한 다섯 개의 총검이 날아들었다. 이것을 모두 뚫어버리는, 무슨 리처드의 환생 같은 자에게는 이강회가 라이온하트의 칭호를 양보해도 좋다.

부준은 피에 젖은 창을 들어 올렸다. 창보다 눈꺼풀이 더 무거운 것 같았다.

그래서 힘겹게 뜬 눈에 비친 거한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말과 사람이 한가지로 덩치가 엄청나게 컸다.

그 순간 그는 직감했다. 전사의 직감이었다.

이 자가 나를 죽일 자다.

그 예감은 정확했다. 문답무용으로 휘둘러진 홍총각의 클레이모어는 부준의 목을 한칼에 날려 버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부준의 머리는 극히 짧은 순간 기능을 유지했다.

그의 뇌는 더 이상 그것을 정보로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으나, 타의적으로 뒤쪽을 보게 된 그의 눈은 정신없이 퇴각하는 송윤의 나머지 본군을 비추고 있었다.

***

대륙을 붉게 뒤덮는 것은 공화국 혁명군과 중화 혁명당 인민해방군만이 아니었다.

사실 붉다고 하면 다른 쪽이 원조다.

붉은 옷의 마군(赤魔軍, Redcoat), 전 세계의 대적자 영국군은 20배에 달하는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사납게 이빨을 드러냈다.

청도 그렇지만 중국 왕조는 전통적으로 그냥 대륙의 기상을 보여줌으로써 전투를 마무리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리라 내심 기대했던 청군 지휘관들은 꽤 놀랐다.

싸움은 짧고, 거대했다.

청군이 미처 오녀산성에 다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뒤쫓아 간 홍총각 본군이 송윤을 격파하고 산성을 점령했을 무렵, 강남에서 벌어진 이 전쟁 중 가장 대규모의 전투도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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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커싱거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다만 만주인 중 이런 인명을 가진 군관이 다른 시대에 있기는 했습니다.

2. 제갈량 시대에는 물론 화약이 없었기 때문에 오과국 등갑군을 계곡에서 몰살시켜 버린 일은 연의의 창작입니다.

3. ‘청사’는 청나라 역사가 아니고, 푸른 대나무에 쓴(중국에서 책의 원조는 죽편이죠) 사서란 뜻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관용구입니다.

4. 영국군은 약 2만, 청군은 25만인데 왜 20배냐면 영국군의 인원 다수가 해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청군도 지원 인원을 제외해야 하므로 양측 모두의 차감분을 따져서 그 정도입니다. 전투병력만 센 숫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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