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55화 (255/284)

255화

86. 무너지는 근본(1)

시준은 비늘을 긁어낸 참돔의 목덜미를 살짝 누르듯 쓰다듬었다.

회를 뜨려면 단단한 턱 아래에서 부드러운 살이 시작되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아직 설죽은 도미가 약간 꿈틀대었다. 곧 날카로운 칼이 그 부분을 갈랐다.

원래부터 기술이 있는 데다 경험도 많은 시준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곧이어 척추를 능숙히 피한 칼은 꽁무니까지 깊은 흠을 내어 놓았다.

이제 한쪽 면의 포를 뜰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시준은 그냥 애초에 장사꾼 하지 말고 요리사를 할 걸 그랬다는, 엄청나게 뒤늦은 후회를 약간 느꼈다.

기랑은 도미를 유린하는 시준의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던 그녀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왜 한양 가는 거였더라?”

꼭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할 말이 없어서 묻는 것 같았다. 무심코라고 말하면 적당할 듯한 이유다.

시준 역시 작업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몰랐어? 아, 그래. 넌 중국 갔다 와서도 이리저리 바빠서 못 들었을 수도 있겠구나. 공화국 인민내무군(人民內務軍) 창설 때문에.”

“그게 뭔데?”

“글쎄다……. 포도청 정도 되려나. 아냐. 그건 국가보위총국이고.”

시준은 포 떠낸 살과 껍질 사이에 칼날을 밀어 넣었다. 빠르지만 부드럽게 앞뒤로 움직이는 칼날 아래 껍질이 깔끔하게 벗겨졌다.

“이건 순군(巡軍)이나 금례(禁隸)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아무튼 밤에 야경(夜警)하고 도둑을 잡는 사람들이다.”

***

조제프 푸셰는 마치 공화국의 치안이 매우 안정되어 있는 듯이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선 왕조의 치안기구와 향촌 감시기구는 혁명 과정에서 전부 소멸했다.

게다가 고총련의 존재로 인해 체계적인 총기 소유 금지라든지 무력에 대한 제한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수들이 어느 날 백 명 정도 모여 도(道) 인민위원회를 들이친다고 해도 보복은 할 수 있을지언정 예방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시준이 오만가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계속 기랑을 우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현재의 집권 안정은 물론이요, 은퇴한 뒤에도 기랑이 있다면 후임 주석은 여전히 시준을 함부로 숙청할 수 없다.

그래도 포수는 혁명 공화국의 기득권 계층이라 오히려 안전한 편이다.

정말 위험한 것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가 상실한 자들이다.

땅 뺏긴 지주의 친우와 가족(지주 본인은 아오지에 있으니까), 옛 영광을 되찾기만 고대하며 숨죽이고 있는 경화사족 잔당, 혁명한다 해놓고 세금 걷어서 불만인 일부 자영농까지. 일일이 다 세자면 의욕을 잃을 정도다.

물론 불안 요소가 전혀 없는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화국은 예비 반란군에게 목숨만큼 절실한 사유까지는 주지 않는 수준에서 그 불만을 잘 억제해 왔다.

그러나 견물생심이라. 내게 그다지 재물이 필요하지 않아도, 돈 가진 놈이 작고 만만해 보이면 갑자기 욕심이 생기는 게 사람 심리다.

배부른 사자는 절뚝거리는 톰슨가젤이 보여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부른 인간은 반드시 달려든다. 노리기 때문에 약점을 찾는 게 아니라, 약해 보이면 노려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개시하면 공화국 내의 유일한 무력집단인 혁명육군이 사라진다.

대청은 군대의 ‘일부’만 동원해도 될 만큼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실제로도 현재 혁명육군은 예비대로 남은 제1사단을 제외하고 ‘전부’가 중국 전선에 나가 있다.

따라서 현재 공화국은 무력 공백 상태. 국가 치안이 대단히 위태롭다.

인민위원회와 각종 단체, 그리고 주석의 사적 친분으로 묶인 여러 겹의 감시망 덕분에 심각한 사안까진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시준은 전쟁 이전부터 일종의 준군사조직 겸 경찰기구를 새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다만 이번 임기 끝나면 이제야말로 은퇴할 결심 만반인 시준으로서는 주의가 필요했다.

시준은 이미 공화국 입법, 행정, 군사, 사법의 합법적이고 명시적인 관리자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 핑계로 경찰기구를 만들어 그 장까지 해먹으면 정말 후대에도 돌이킬 수 없다. 지금까지 이런 독재자는 없었다.

그래서 시준은 미리 계획을 짰다.

시준은 우선, 경찰이라면 내가 전문이라며 내게 맡겨달라는 조제프 푸셰의 호소를 가볍게 묵살했다.

그러고는 상임위원장의 권한으로 중앙인민회의 내무위원회(內務委員會)를 소집했다.

기본적으로 중앙인민회의 대의원은 모두 군, 현, 부, 도의 대표들이다.

그런데 이들 지자체의 위상은 원래 같지 않다.

군과 현과 부는 본래 서로 격하와 격상이 자주 이루어지던 행정구역이니 동격으로 취급한다 쳐도, 경기도 인민위원장과 포천군 인민위원장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현재는 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8명이 모인 내무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인민위원회를 대표했다.

원래는 군현 인민위원들이 도 인민위원회를 이루어 선거하기에 일반적으로 큰 군현의 인민위원장이 도 인민위원장 역시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2기 공화국의 겸직 금지 헌법으로 몇몇 도에서는 재선출이 이루어졌다.

지방 행정과 자원의 분배, 각 지역 간 협의 사항은 여기에서 처리했다.

그런데 시준은 처음부터 ‘평안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아니라 ‘평양부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다.

평양부와 단전성은 평안도나 충청도에 속한 행정구역이 아니다.

두 도시의 인민위원장 역시 각도 인민위원장과 동격인 일종의 광역지자체장이다.

하지만 내무위원회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지역별 대립과는 상관없는 문제다. 부녀회에 굳이 남자가 오지 않고 형평사에 굳이 사족 출신을 들이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두 전위의 도시는 이미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내무위원회에서까지 이익을 주장해서는 곤란했다.

결론적으로 내무위원회와 시준은 전혀 무관했다.

그러므로 경찰기구로 하여금 내무위원회의 지휘를 받게 하면 시준이 끼어들 여지는 없게 된다.

시준은 내무, 그러니까 행정이라는 이름에 착안해서 원래 행정안전부 소속인 경찰을 여기 집어넣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인민내무군이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명칭은 있을 수 없다. 시준도 이제는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

이미 공화국 인민내무군 초대 사령관, 그러니까 경찰청장도 내정해 두었다.

그 사람은 바로 이강회가 서울에서 사업할 때 신세 졌던 동기 사제 이택규다.

당시 시준이 살림 필 때까지 이강회는 이택규 집에서 묵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으니 한성 사람들도 불만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택규는 혁명을 배신하지 못한다. 바로 그 아버지 이승훈이 반동 조선 왕가에 의해 처형되었으니 말이다.

사족 자손이었던 이강회가 겨우 정월보름 쇨 보리쌀 몇 말 때문에 시준이 시키는 대로 바늘 장사에 뛰어들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집안 다 망했던 이택규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랄 수 없어서였다.

부모를 해한 자와는 불구대천. 그 대의에 따라 이택규는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이강회는 나중에 충분히 보답했다. 농상진흥부의 이런저런 사업과 여러 보이지 않는 권한을 나눠 받은 이택규는 이제 서울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위치다. 이래서 사람이 손님 대접을 잘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택규의 인민내무군은, 형식상 내무위원회의 지시를 받겠지만 시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코드인사가 습관이 되어버린 시준은 뭐가 이상한지 깨닫지도 못했다.

그저 이토록 독재 회피를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깨끗한 이름이 만세토록 빛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을 뿐이었다.

***

시준은 한양군에 공화국의 치안본부를 두어 불온분자를 감시함과 동시에 한성부가 소외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려 했다.

그러려면 일제가 조선총독부에서 그러했듯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한성부 출신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수뇌는 평양에서 확실하게 장악지도해야겠지만.

평양에 내무위원회가 있으므로, 서울에는 비유하자면 일제 강점기 종로 경찰서 같은 것이 세워진다고 보면 된다.

결국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몰라서 양심에 거리낌도 없는 시준은 신나게 회칼을 휘두르며 떠들었다.

“외사통호부 부부장 동지(김시택)를 통해서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의 간부들을 움직여 보기로 했어. 아마 거의 다 됐을 거야. 이번에 나는 무슨 대장을 해먹는 게 절대 아니야. 진짜 축하만 해주러 가는 거고,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도 있는 거지.”

기랑은 그 옛날 시준과 같이 장사 소개받으러 역관 김시택을 찾아갔다가 검계와의 싸움에 휘말렸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그 뒤통수 맞고 쓰러진 역관? 좀 맹해 보이던데.”

그녀는 그보다 더 최근, 중화 혁명당의 첫 봉기 당시에도 분명히 김시택과 함께 상하이에 있었다. 김시택은 그때보다는 똑똑한 모습을 상하이에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는 시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양 사람들의 인심을 모으려면 그보다 나은 인재도 없지.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의 앞장을 서서, 반동의 성채인 육조거리를 불태운 용맹무비의 혁명영웅이니까.”

시준은 말하면서도 낄낄거렸다.

물론 사실과 다른 점은 없다. 김시택은 분명 한양 봉기 때 육조거리에 주석불을 던졌다. 그리고 그 불꽃은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 동시 궐기의 봉화가 되었다.

월간 대혁명이 최근 낸 특집기사 <아! 그 영광된 나날을 추억하며 – 혁명의 영웅 열전 –>에서 그렇게 위엄찬 칭호가 붙을 만도 하다.

하지만 김시택이 동인도 회사와의 협상을 위해 데이비드 스콧에 처음 올랐던 시절부터 여러 어설픈 꼴을 많이 보아 온 시준의 입장에서는 영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여자 두 명도 책임 못 지는 시준이 공화국 억조창생을 영도한다느니 어쩌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위화감이 드는 기랑처럼 말이다.

기랑은 뒤퉁스러운 심정으로 생각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웃기는.’

그러던 기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분노가 맞는 건지 약간 의심이 들었다.

만족스럽고 편안한 상태와는 거리가 있지만 화난 것과도 달랐다.

생선을 봐서 그런지, 송주령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펄떡대는 생선을 잡는 것은 뜰채다.’

기랑의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최대한 근사치에 가깝게 묘사하자면, 무언가가 몸통을 안에서 움켜쥐고 천천히 꽉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간질간질하면서 맥박이 몸 밖에서 치는 듯한 그 감각은, 생선을 뒤집어 반대편도 포를 뜨는 시준의 뒷모습을 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가서 뒤에서 끌어안으면 자기가 느끼는 심정을 똑같이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기랑은 그렇게 했다.

인내심은 혁명가의 덕목이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한다.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이유가 없었다.

보람은 있었다. 시준은 과장 없이 심장이 멈출 정도로 놀랐다.

“어?”

둘 다 서 있었는지라 기랑의 얼굴은 시준의 목덜미쯤에 닿았다. 기랑의 목소리는 공기가 아닌 시준의 피부를 울렸다.

“계속해.”

“어, 어, 어떻게 계속, 하, 하냐?”

“도와줘?”

기랑은 칼을 잡고 있던 시준의 손목에 자기 손을 얹었다.

그것을 황급히 피하려던 시준은 결국 손을 베이고 말았다.

시준은 그나마 찢어놓은 게 자기 손가락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이 이상한 분위기 끝내는 대가라면 싸지. 그런데 얘 왜 이래? 술 먹었나?’

물론 주석의 예측은 작전주 팔아먹을 때나 광명영도지 이런 면에선 하나도 맞은 적이 없다.

기랑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갈라져서 피가 배어 나오는 시준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다가 그 손을 잡아챘다.

“응?”

시준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시준은 기랑을 막지 못했다.

그러려면 다른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그 손에는 생선살을 으스러뜨리지 않을 만큼 날카롭게 갈린 식칼이 들려 있다.

칼을 놓으면 되지 않느냐는 친절한 지적은 이 경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건 정신 회로가 정상일 때나 작동할 수 있는 기제다.

그래서 기랑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천천히 시준의 검지를 핥았다.

영원과 같은 시간이 지났다.

주석 동지가 고총련 회장 동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선실이기에, 혁명적으로 눈치가 빠른 하백 선원들은 전혀 그 근처에 접근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분위기를 깨 줄 만한 난입자 따윈 존재할 리 없었다.

기랑의 생각대로, 시준은 그녀가 아까 느꼈던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손가락에는 심장이 하나 더 생겨난 듯했다.

그리고 아마 그 대가로 두뇌는 없어진 듯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기랑의 경우도 비슷했다. 다만 그녀는 자기 생각과 다르게 아까의 불만족스러운 감각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것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 땔감을 요구하는 불에 장작을 던져 넣으면 불이 만족하고 꺼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지듯이.

하지만 여기에서 전부 태워버릴 수는 없다.

시준은 적어도 그녀가 고생한 만큼은 고생해 봐야 했다.

지유도 찬성할 것이다.

그래서 기랑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젖어 있는 시준의 손가락에서 새롭게 피가 얼비치고 있었다.

기랑은 소매를 능숙하게 찢어 그것을 싸맸다. 그리고 ‘유난스러운’ 시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 만날 거라 깨끗한 옷이니까 괜찮을 거야.”

“너…….”

“한양에서 봐.”

기랑은 포 떠 놓은 도미회를 들고 돌아서 나가 버렸다. 시준은 입을 다문 채 한참 선실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상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을씨년스럽게 남은 도미 대가리와 뼈가 자리하고 있었다.

시준은 짐짓 기운차게 중얼거렸다.

“매운탕이나 끓여볼까.”

더 비참해졌다.

***

시준이 모든 것을 잊기 위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냄비 불을 올리는 데에 온 신경을 쏟고 있을 때쯤, 동부 전선의 길림 장군 부준 역시 솥 속의 물고기가 된 듯한 경험을 해야 했다.

청군이 혁명육군 제3사단과 처음 조우한 때는 오후였다.

청군은 그때부터 거의 저녁때까지 돌격을 반복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혁명군은 그저 웅크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애초에 백윤구가 제3사단을 이끌고 이쪽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가. 만주 동부의 청군을 붙잡아두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어차피 영고탑 수비병이 얼마 안 되자, 기동성 있는 기병대는 따로 갈라져 멀리까지 분탕질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사이 본대를 이끌고 도착한 부준은 혁명군에 기병대가 없다고 착각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슬슬 땅거미가 질 때여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불문율대로 전투가 끝날 시각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부준의 본영은 적의 역습에 대한 대비를 거의 하지 않은 채, 손해 본 마군의 수습과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 옆에서 비스듬히 찔러온 혁명군 기병전대(대대)의 강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주체신기전의 사격을 멀리서 보고 급히 돌아온 전대의 숫자는 프랑스군의 전례를 따라 4개 복대(중대) 600기에 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이 제시한 보병 대 기병의 이상적 숫자는 1:6. 만 명 정도 되는 제3사단 중 1,200명은 기병대였고, 벌써 반대편에서도 전대 하나가 더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전대의 선봉에 설 대장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다름 아닌 혁명군의 최고 무공 고수 매경은이었다.

매경은은 백윤구가 지시하여 발사한 벵갈 라이트(Bengal Light)의 희푸른 빛을 따라 똑바로 달려갔다.

어둡다는 이유로 혁명이 멈출 수는 없다. 혁명은 바로 그러한 인세의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기 때문에.

조명탄이라는 물건을 난생처음 본 여진족과 군마들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매경은은 그 경악보다도 더 크게 고함질렀다.

“동지들! 우리의 앞길은 주석 동지께서 인도하신다! 기수가 겁먹으면 말도 주춤하는 법! 전진, 또 전진! 신심 드높이! 오랑캐 놈들을 모조리 처치하라!”

혁명군 방진을 치러 갔던 여진 기병이 되돌아오면 난전이 된다. 그 전에 끝내야 한다.

다시 말해, 청군 입장에서는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부준은 침착하게 영을 내렸다.

“징을 쳐서 나갔던 군을 불러들여라! 저 멍청한 놈들은 우리 군 사이에 끼어 형체도 남지 않으리라!”

혁명군 기병전대 두 개는 달려오면서, 그리고 청군은 당황하여 선 채로 사격을 주고받았다.

쓰러질 자들은 쓰러지고 이제 양편의 총은 비었다. 남은 것은 사나이의 무용뿐이다.

여기에서 부준이 칼춤을 추며 달려 나가 자웅을 결한다면 참으로 멋진 광경이겠지만 부준은 총사령관인 데다 60이 넘은 노인이다.

그래서 영고탑 좌령 후푸타이가 용맹하게 말을 박찼다. 하긴 좌령이 매년 받는 봉은(俸銀)이 얼만데 이럴 때 돈값을 못 해 주면 곤란하다.

그래도 명색이 대국의 군관인 만큼, 후푸타이는 김좌근보다야 좀 나은 대응을 했다.

후푸타이는 재빨리 활을 들어 올렸다. 창을 들고 돌진하는 매경은을 한 살에 꿰어놓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는 매경은의 성명절기 혁명 3초식을 받아내기에 좀 부족하다.

그 누구도 끝까지 볼 수 없었다는 매경은의 무공은 이번에도 2초식까지만 발휘되면 충분했다.

혁명 3초식이 절기인 이유는 어느 상황에든 대응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경은은 상대가 뭘 들었건 대담하게 창을 내던졌고, 김좌근이나 후푸타이나 황급히 몸을 피해야 하는 것은 같았다.

그러는 사이 거리가 몇 걸음만 더 좁혀지면 다음은 역시 똑같다.

활은 자세를 잡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무기이며 말 위라면 더더욱 그렇다. 후푸타이는 허망하게 권총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혁명군은 크게 기세를 올렸다. 부준은 이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책을 지시했다.

“전열(前列)이 저놈들의 쇄도를 맞받아쳐라. 잠깐이면 된다. 곧 우리 편이 돌아온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부준이 보냈던 기병들은 뒤통수에 총을 갈겨대는 혁명군 보병의 사격을 무릅쓴 채 퇴각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닌 점이 한 가지 있다면, 혁명군은 청군 본영에 들이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 정도였다.

좋은 장수란 자신만 강해서는 안 된다. 부하들 역시 강하게 만들어 줘야 양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매경은의 신호에 따라 움직인 2개 기병전대의 움직임은 마치 혁명 제2초식과 비슷했다.

그들은 창을 들어 부딪치지 않았다. 대신 백병전을 대비한 청군 기병대의 앞을 크게 돌며 권총을 쏘았다.

기병이란 달려야 그 본질이 발휘되는 법. 멈춰 있는 부준 본영의 기병대는 사실 보병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청군 역시 크게 성내며 활과 총을 쏘아대었으나, 움직이고 있는 혁명군에는 잘 맞지 않았다. 2개 전대는 적은 희생만 낸 채 부드럽게 돌아 아군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니 그때 아까 나갔던 타격대가 열심히 돌아와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망치는 매경은 부대를 쫓아가려던 본영 기병대와 얽혀 끔찍한 교통사고만을 유발할 뿐이었다.

게다가 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부준은 오늘의 전투가 패배가 아니라고 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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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이택규는 작중 초중반 시준이 서울에서 사업할 때 이강회가 머무르는 집 주인으로 언급되었었죠. 오랜만에 다시 나오네요.

다만 역사에는 이택규의 막내동생 이신규가 더 중점적으로 기록됩니다. 이신규는 아버지 이승훈의 무죄를 철종 때 격쟁으로 주장하여 결국 신원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순정왕후의 병도 고쳐 벼슬까지 받죠(능참봉이지만). 그러나 고종 초기 재개된 박해 때 다시 걸려 서소문 밖에서 참수, 그리고 이승훈의 면해졌던 죄도 도로 원복됩니다. 조선이 이런 면에서는 진짜 칼같았습니다.

작중에서 가문의 대표가 아닌 이유는 형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준과 또래라 너무 어려서 그렇습니다.

2. 벵갈 라이트는 영국이 (인도산의 풍부한 초석을 이용해) 썼던 일종의 원시적 조명탄입니다. 작중 열병식 때 썼던 조선산 불꽃놀이도 있지만 그건 대포에 넣어서 쏠 만큼 규격화 개량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3. 후푸타이는 실존 인물로, 닝구타 좌령을 하고 있던 때는 작중 시점보다 몇 년 전입니다. 다만 그 사이의 정치적 혼란을 감안하여 아직까지 승진을 하지 못한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4. 엄밀히 말해 당대 프랑스군에서 4개 기병중대가 모이면 대대가 아니라 연대입니다. 혁명군은 알기 쉬운 군대를 지향하는지라 직관적으로 저 모임을 대대(전대)라고 합니다.

5. 주방팔기의 군관들은 계급에 따라 은으로 보수를 지불받았습니다. 좌령의 경우는 1년에 105냥의 은을 받지요. 이외에 황제가 잡아오라고 하는 호랑이를 잘 잡아온다든지 하면 또 부상으로 노비 같은 게 하사되기도 했습니다.

도광 이전까지의 황제들은, 특히 건륭제와 가경제는 호랑이 잡아오는 데 엄청나게 집착해서 계속 만주 병사들을 갈궜습니다. 그것도(궁정에서 기를) 새끼 호랑이를 요구했는데, 짐승이 얼마나 새끼를 집착적으로 보호하는지 생각하면 두 배로 어려운 일이었죠.

호랑이가 없다고 하면 “만주는 대영웅의 발상지인데 그 기운을 받은 땅에서 호랑이가 없다는 게 말이 돼?”(진짜 이렇게 말함) 하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이었습니다. 도광 연간부터는 아무래도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좀 줄어듭니다.

6. 일제는 고의적으로 조선인의 생산 기반을 파괴하고 전반적 학력을 낮춘 다음 저학력도 입사할 수 있는 공직 직종으로 ‘경찰(순사)’을 열어놓았는데요. 안정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직업이어서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하급 경찰을 많이 했습니다. 식민지인으로 식민지인을 지배하는 전통적 방법 중 하나였죠.

7. 작중 나온 회뜨기 방법은 비교적 초보적인, 그러니까 맛을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쉽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 방법입니다(시준이 얻은 건 생존 기술이니까요). 회를 뜰 때는 실력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생선살이 뭉개지지 않도록 예리한 칼날을 쓰는 게 기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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