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85. 인간의 전쟁(1)
다행히 명주는 걷는 것에 재미 붙인 나이답게 한참 전부터 마당을 빨빨대고 돌아다녔던 모양이다.
잠시 칭얼대던 명주가 금세 잠들자 두 사람은 조용히 얘기할 시간을 얻었다.
“몸은 좀 어때?”
“네가 준 약 먹고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 그때 중국에서 약 가지고 오겠다는 말은 나도 흘려들었는데 잊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네게는 신세만 지는구나.”
“아니야.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냐.”
그 어조에는 굉장히 힘겨운 무게가 배어 있었다. 지유는 기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랑은 어떻게 말을 꺼낼까 하다가 그냥 옛날처럼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도 지유는 다 알아들을 것이다.
“만약 8년 전……. 처음 시준이 이 모든 일을 시작할 때의 나였다면 봤어도 안 가져왔을지도 몰라.”
기랑은 그러면서 그 당시 자신이 (내용도 모르면서) 시준을 유혹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예상대로 지유는 화내지 않았다. 지유는 묵묵히 기랑을 바라볼 뿐이었다.
기랑이 말했다.
“예전에 네가 한 말 기억나? 나중에 시준을 부탁한다는 거.”
“그래. 그랬지.”
“미안하지만, 그때 나는 네가 정말 곧 그렇게……. 될 것 같았어.”
지유가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사람 명줄이라는 게 툭 끊기기도 하지만 정말 질기기도 하더라.”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저 친구가 살아서 좋다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기랑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만약 네가 죽고 시준이 내게 온다면, 그러니까 시준이 나를 귀애해서가 아니고……. 솔직히 다른 여자 찾으러 다닐 시간도 없는 사람이니까 아마 그렇게 될 거라는 거야.”
“그렇게 허둥대지 말고.”
“으응.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은’ 게 되어버려.”
지유는 참을성 있게 친구의 말을 기다렸다.
기랑이 어리석지는 않지만 자기주장을 조리 있게 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별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지유는 그것이 가슴 아팠다.
기랑의 목소리는 텅 빈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가 시준과 같이 살기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네 부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시준이 정말 기랑을 사랑해서 그녀에게 가는지도 알 수가 없다.
조선 시대에 드문 일인 과부의 개가도 보통은 자의가 아니다. 대개 생계 문제이거나, 약탈혼에 가깝게 ‘거두어지는’ 일이 많다.
기랑은 그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건 그녀와 시준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지유의 사망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지유가 살아 있어야 기랑의 시도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주체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식 개념은 지유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어렴풋한 공감은 느낄 수 있었다.
기랑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족하기 위해서 너를 살리려고 한 거야.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지유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기랑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자꾸 스스로를 욕하지 마. 너는 내 자매와 같은 가족이야.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네게 무엇이든지 줄 수 있어. 나에게 가장 중한 것도 무엇이든지. 명주도 너를 나처럼 어머니로 섬길 거야.”
지유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내게 가장 중한 사람인 시준도 똑같아.”
기랑이 지유의 품 안에서 흠칫했다.
지유는 별로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나도 약 받았다고 그냥 ‘가만히’ 눈감아 준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야. 네가 내게 생명을 주었는데, 나도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어? 네가 스스로 나서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도 스스로 나선 게다. 그 약이 없었어도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어.”
기랑이 몽골에서 결심한 일과 같다.
주체 두 글자야말로 혁명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기랑이 무어라고 말하려 하기 전에 지유는 몸을 떼었다. 그녀는 기랑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리고 첩과 비(婢)를 선물 삼아 주고받거나 빼앗아 하사하는 것이 어찌 반동 시절의 사내들만 할 수 있는 일이겠느냐? 게다가 나는 하찮게 여겨서 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하게 여겨서 주는 것이니 마음에 깨끗하고 거리낄 것도 없지.”
이번에는 웃음기가 조금 어려 있었다. 확실히 정약용이 본다면 즐거워했을 것이다.
‘초나라 춘신군이나 진나라 여불위, 한나라 효원황제를 모두 데려온다 하여도 어느 사적이 이와 같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수평의 극치로다!’
아무튼 시준은 인복이 없었다. 주체적이지 못한 자의 운명은 이러한 것이다.
지유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기랑은 눈물을 흘렸다.
“나, 나는…… 중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포기하고 평생 혼자 살려고 했었어. 한 번도 날 봐 주지도 않고…….”
“어머? 이제 와서 왜 이러니? 시준이 널 ‘봐 주는’게 아냐. 네가 시준을 ‘보는’ 거지.”
지유는 기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건 맞아. 너도 그럴 생각이었잖아?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시준이 집에서 처첩 거느렸노라 하고 으스대는 꼴은 못 보지. 흥. 만약 그러면 우리가 다투어 가며 검은 머리와 흰머리를 뽑아[爭拔白黑髮, 『지봉유설(芝峯類說)』] 대머리로 만들어 버릴 노릇이지 뭐냐.”
처첩 갈등은 복수의 여인이 남편의 재산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많이 기인한다.
물론 배우자의 공유 또한 기분 좋을 리는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분 문제고 생계의 안건은 그보다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지유나 기랑이나 재산이 아쉬운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따로 살며 독립적인 생계를 구성한다면 문화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인 첩과는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시준이 마음에 들어 버렸으니 안 되면 혼자 살아야지 어찌하겠니. 사내들은 마누라보다 못한 여자하고도 정분이 난다지만 우린 안 그렇잖아. 너도 이제 다른 남자는 눈에 안 차지? 너 좋다고 쫓아다니는 그 길명이라든가.”
“그놈의 길명이는 왜 자꾸 나와?”
기랑은 눈물 자욱이 아직 남은 얼굴로 화를 냈다. 지유는 다시 웃었다.
원래 지유에게 당당히 탈취 선언을 하러 왔던 기랑의 처지가 퍽 우습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랑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는데, 지유 역시 얌전히 ‘탈취당할’ 수준으로 혁명 정신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유는 기랑이 친구를 배신하고 오명을 덮어씀으로써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채를 삭감할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
바깥에서 결과만 보는 사람들은 지유를 동정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기랑의 패배라고 할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지유는 표정을 바꿨다.
“그저 좋은 일 시키자는 건 아냐. 주체가 뭔지는 너도 알잖아? 이제 너에게 달렸어. 네가 시준을 취하지 못하면 그건 네 탓이야.”
“알아.”
“자신 있지?”
중국 가기 전이었다면 기랑은 여기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갔다 와서, 그녀가 더 이상 몰리지 않는 태도로써 시준을 마주보았을 때 거꾸로 몰리는 것 같았던 시준의 태도는 기랑에게 많은 관계 변환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하여간 송주령의 말마따나 배짱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나랑 지유가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 거야. 괘씸한 녀석.’
그때 명주가 잠에서 깼다.
아이의 세상은 오로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위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긍정적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은 아이에게 상당히 낯설고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아기들은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려고 노력한다. 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괜히 노래를 부른다거나 배운 것을 읊는다거나.
그리고 그처럼 천진한 착각을 되도록 오래 유지시켜 주고 싶은 것이 부모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냉혹한 벽에 부딪쳐 혼자 남몰래 좌절할 때까지.
그래서 기랑은 자기와 지유가 어떤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지도 모르고 자박자박 그 사이로 걸어오는 명주를 안아 들었다.
경험이 없어서 약간 서투르기는 하지만, 명주도 제 아비와 달리 그리 까다로운 아기는 아니기에 금세 답삭 안겼다.
기랑은 지유를 보고 마주 웃었다. 세상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밖에 본 적 없는 미소였다.
“그럼.”
***
물론 그렇다고 기랑이 당장 시준에게로 달려간 것은 아니다.
삼남 내려가 봐야 하는 일도 바빴거니와, 그건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행동 방식이다. ‘이 분위기’와 ‘그 분위기’는 다르다.
무엇보다 시준이 지금 평양에 없었다.
시준은 오랜만에 고향 의주로 내려와 있었다.
홍 장주는 오랜만에 온 사위가 자기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꿍얼거렸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준은 압록강을 무겁게 건너다보았다. 아무튼 방금 두 여자의 공공재로 합의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눈빛 중에서는 가장 진중한 축에 속했다.
과거 그는 정약용과 기랑 등 현재의 동료들과 함께 이 압록강을 건넜다.
연경에 있는 황제에게 번봉(藩封)의 대표로서 진하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다시 압록강을 건너려 한다.
이번에는 수만 명의 군대와 함께, 연경에 있는 반동의 우두머리에게 혁명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시준이 선봉과 함께 진짜로 배를 타지는 않는다. 그의 역할은 후방을 조율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지휘하는, 말 그대로 혁명군 총사령의 임무다.
그래서 지금 시준의 옆에 있는 사람은 혁명무력부 제1부부장 남공철이었다.
“영길리국 수사제독(토마스 코크란)은 자기들이 청군을 붙잡아 두는 동안 신속하게 산해관을 넘으라고 독촉하고 있소이다. 더 미루면 한겨울이 닥쳐 진격할 수 없으니 남쪽에서의 희생이 커진다는 것이지요.”
“하여튼 해적 놈들의 기만이란 너무 뻔뻔하군요. 제1부부장 동지의 생각은 어떻소?”
“그 말씀대로입니다. 주석 동지.”
종묘사직의 명운을 걸고 해적 토벌을 천명한 도광제의 한 수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천계령으로 영국군과의 공수를 뒤바꿨다.
또한 그렇게 모인 백성들은 내륙의 밀도를 높이고 관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갈데없는 백성들은 관청밖에 의지할 데가 없고, 관이 할 일이 많아지면 권한도 커지는 게 자명하다.
이로써 중화 혁명당 또한 상당히 위축되었다.
그 와중 발생한 엄청난 희생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대의명분을 사용하여 상당 부분 무마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저 사악하고 비열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영길리 해적과 그에 부화뇌동한 반역자들에게 천벌을 내리기 위해서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적대하는 시준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정진정명한 대의였다. 과연 빛의 길을 닦는 황제라 할 만했다.
그렇다 보니 시준은 영국군을 돕는다는 식의 생각을 하기 싫었다.
이를테면 (시준은 모르지만) 2차 대전 당시의 핀란드 같은 심정이었다.
핀란드는 분명 추축국의 동맹이었다. 허나 나치를 돕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신 소련을 물리치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런 와중에 코크란은 자기들이 희생을 감당한다는 식으로 생색을 낸 것이다.
‘산해관을 넘으라고? 어디 한번 네가 와서 해 봐라.’
고려의 군대로는 진짜 시준이 어디서 천마적룡이라도 소환하지 않는 이상 산해관을 정면 돌파할 수 없다. 아마 영국군이 직접 와도 어려울 것이다.
산해관 성벽은 이 시대의 대포에 무너질 물건이 아니며, 고려에는 당연히 공군이 없다(영국도 없다).
게다가 산해관을 함락하기 어렵다는 것은 단지 그 요새 하나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다.
누르하치를 좌절시켰던 영원성 등 주변의 요동 방어선 모두가 ‘산해관’이라 부르는 것의 진짜 총체다. 물론 청의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최전선 기지가 아니었지만, 도광제가 머리가 있다면 당연히 현재 그렇게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영국도 안다. 따라서 영국이 원하는 건 모루가 되어버린 영국군을 망치로 변환시키고 원래 역할을 고려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이다.
애초에 고려가 산해관을 진짜 넘어 자금성을 먼저 함락시키면 영국군은 즉시 반전하여 고려를 공격할 게 뻔하다.
해적의 간계에는 넘어가선 안 된다. 그 정도는 몰트케 소위가 말 안 해 줘도 문명인이라면 다 안다.
“무리한 희생을 내어서는 안 되오. 병법에도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라 하였지. 유리한 때를 놓친다 하여도 좋소. 영길리국의 진퇴를 반드시 보아가며 움직여야 하오. 영길리가 우리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영길리를 이융하는 거요.”
이 말은 혁명군이나 홍총각, 차형기 앞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혁명 열의를 주석이 과소평가했다고 여길 테니까. 하지만 남공철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석 동지.”
***
병사들은 자신이 주석 동지의 친림에 걸맞은 완벽한 준비태세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홍총각을 비롯한 고급 군관과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상태가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둘 다 틀리지 않다. 그런 모순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군대가 원래 그렇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홍총각은 시준과 남공철보다 두 단계쯤 앞서 걸음을 옮기면서 재빨리 잘못된 점을 수정했다. 시준의 눈에 이런 게 보이는 사태는 최대한 막아야 했다.
‘너 이 새끼…… 아니, 병사 동지. 모자 앞에 기워 붙인 거 뭐야?’
‘아, 송구하오이다. 사단장 동지. 그저께 공탄 때면서 졸다가 그슬리는 바람에 좀 기워놔서…….’
‘잠깐 저 뒤쪽으로 꺼져 있어! 여기 정치장교가 어떤 빌어먹을 동지야? 나오시오!’
그러던 중 전령이 말발굽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도착했다.
홍총각은 또 무슨 안 좋은 소식일까 하여 주석 동지가 오기 전에 급히 달려 나가 보고를 받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화약 실은 마차가 오는 길에 대폭발을 일으켰다든지, 의주 무력위원회의 지시가 전달되지 않아 나룻배 준비가 전혀 안 됐다든지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홍총각은 곧 시준에게 달려와서 말했다.
“아오지의 혁명군 제3사단에게서 천리마 봉화(텔레그라프)로 전갈이 왔소이다. <사단장 이하 3사단 전원 두만강 도하 성공. 경애하는 정시준 동지와 인민의 이름으로 북벌의 초탄(初彈)을 명중시켜 일격에 반동을 말살할 혁명적 각오!> 시작되었습니다. 주석 동지!”
진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술렁였다.
예정대로 전쟁이 개시된 것이다.
“정말 고생하셨소. 동지들!”
시준은 마치 3사단장 백윤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치하했다.
‘약속된 날짜’에 ‘약속된 방식대로’ 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준과 남공철 등 몇몇 사람은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다.
군대라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친구 10명 이상의 모임이 날짜, 장소, 인원 모두 맞춰서 개최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고대 진나라부터 현대까지 날짜를 어기는 데에 대한 군법이 왜 그렇게 엄격한가? 대부분 어겼기 때문이다.
이건 어떤 면에서 공화국 혁명군이 그 전까지의 전근대 국가 체제를 어느 정도 탈피했다는 증거다.
아무리 돈 없어도 꾸역꾸역 장작더미 같은 텔레그라프나마 지어 두고, 종이가 없으면 길가에 붙어 있는 선전용 포스터를 뜯어서라도 문서 행정을 강제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 시준 혼자만의 힘으로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로를 마련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익숙해진 데에는 인조가 정묘호란에 대비해 마련한(하지만 작동하지 않은) 압록강 유역 방어 네트워크도 그 기반이 되었다. ‘국경을 따라 연결되는 통신선’이라는 개념이 조선 사람들에게 이미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전쟁군주의 업적을 생각하는 인간 따윈 아무도 없었다.
먼저 시준의 주위에 있던 간부들이,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아 병사 전체가 외쳤다.
“북벌! 북벌! 북벌!”
“혁명! 혁명! 혁명!”
중강(中江)은 벌써 얼음이 얼었다. 결코 따뜻하지 않은 북방의 가을에도 불구하고, 시준은 여기 있는 수만 혁명군의 위쪽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단조로운 고함은 원시적인 형태의 욕구를 증폭시켰다.
인류 역사의 여명기, 이웃의 대갈통을 부수고 다리뼈를 깨어 골수를 꺼내 먹자고 결의할 때도 아마 사람들은 똑같은 형태로 외쳤을 것이다. 들고 있는 게 총이 아니라 주먹도끼라는 것만 다르다.
생물학적인 면에서 그때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은 완전히 동일하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알몸의 시체일 경우 5만 년 전의 인간과 현대인은 전혀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살아 있을 경우는 완전히 다른 생물이다.
여기에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이제 이웃을 잡기 쉽고 맛도 좋은 사냥감으로 규정하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무지스러운 폭력의 침범에 대한 반사적 분노로 소리 지르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그런 일을 영구히 없애기 위해, 이들은 유전자의 자기 보존 명령을 거부하고 혁명의 동포들을 구하러 간다.
지구 40억 년의 역사에서 오직 한 종의 생물만이 할 수 있는, 자존심을 위한 싸움이다.
해적 놈들의 더러운 돈 욕심 따위, 감히 끼어들 여지가 있겠는가?
시준은 영국의 작전 수행이 잘되도록 혁명군의 진로를 변경하거나 작전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 하고 싶다면 영국이 그렇게 해야 했다.
해적과 반동이 사이좋게 공멸하는 것이 최상이다. 두 불한당이 서로의 가슴을 맞찌르고 엎어져 죽으면 고려와 중국 양쪽의 인민은 그 시체 위에서 해방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
청은 전통적으로 천계령과 유사하게 봉금지의 조선 국경에서 상당 구간을 비워 두었다.
그 안에는 보급할 만한 민간 구역이 별로 없다. 그래서 혁명군은 그 안에서는 쾌속 진격을 해야 했다. 다음 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훨씬 북쪽일 것이다.
3사단장 백윤구는 충분히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다. 용장 밑에는 약졸이 없고, 3사단 장병 또한 모두가 과거 공포군주 삼부자의 여진 파괴 행렬을 더욱 혁명적으로 뛰어넘을 것이라 다짐하고 있었다.
시준은 병사들과 침식을 함께하며 계속 영내를 돌아다녔다. 시준이 군대와 같이 진격할 수도 없으니 이게 마지막 기회였다. 사실 그 외에는 시준이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시준은 자기가 혹시 시찰 시 꼭 병사 식당에서 밥을 처먹겠다고 개고집을 부려 여러 사람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소탈한’ 4성 장군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허나 기우였다. 병사들은 모두가 ‘주석 동지의 은혜에 목메어’를 합창했다.
그러느라 혁명육군에 벌써부터 발생하고 있는 여러 사고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며칠은 남공철이나 홍총각, 방우준 등이 뒤에서 심각한 문제들을 수습하며 혁명육군의 첫 국외 출전을 단속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닷새 뒤, 제3사단이 두만강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청군 부대인 훈춘 협령(琿春 協領)을 격파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제 의주 본군의 차례였다.
길림 장군(영고탑 장군의 현재 명칭) 부준(富俊)도 이제 대응을 시작했을 것이다.
혁명군 총사령 정시준의 호령이 떨어지자 나팔과 깃발에 따라 거대한 함성이 출렁였다.
“경애하는 정시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중앙인민회의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사수(死守)는 죽음으로[死] 지킨다[守]는 뜻이다.
도광제가 들으면 침략군 주제에 뭘 지킨다는 거냐고 물을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의주에서 압록강으로의 행진을 개시한 혁명군의 발걸음 속에 준비되어 있다.
“하나, 둘! 하나, 둘!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 만세!”
“만세! 만세! 만세! 혁명—만세!”
혁명을 지킨다. 폭군의 압제는 자유롭고 수평한 인민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끔찍한 모욕과 침략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지켜야 한다. 중앙인민회의는 국무당과 달리 ‘공화국 중앙인민회의’가 아니라 ‘혁명의 중앙인민회의’다.
고려 하나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의 중심이자 사령탑. 전 인류 자유의 기수인 것이다.
여진족의 치하에서 신음하는 중화 인민 동포를 해방시키는 일은 곧 중앙인민회의의 사수와 동치다.
혁명군 제2, 제5사단 및 다수의 자주전대(독립대대)를 포함한 2만 6천여 명은 한 번 머뭇대지도 않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러고는 지난 4백 년간 조선의 충성스러운 사신이 걸었던 바로 그 행로, 동팔참(東八站)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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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늘도 기네요.
1. 춘신군, 여불위, 원제는 모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애첩이나 궁녀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준 사람들입니다. 춘신군은 이화접목의 고사, 여불위는 진시황으로 익숙하실 것이고 원제가 보낸 궁녀는 그 유명한 왕소군입니다.
2. 지봉유설은 일종의 백과사전입니다. ‘해학’편에는 전해오는 웃긴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처첩과 관련된 이야기도 모아 두었습니다. 대부분 스토리는 남편이 처음엔 첩을 총애했으나 곧 첩은 겉으로만 잘할 뿐이고 실제 정성은 본처가 더 있었던 것을 알게 되어 본처에게로 돌아간다는… 아마 조선 사람 보기에는 아름다운 교훈일 이야기입니다.
처첩의 남편 머리 뽑기 이야기[妻妾爭拔白黑髮說話]도 그 중 하나인데, 이쪽은 약간 스토리가 다릅니다. 첩은 남편을 젊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흰머리를 뽑아 주고(궁녀가 왕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시대에는 종종 머리를 이렇게 다듬어 주었습니다. 이도 잡고요.) 부인은 첩이 남편을 멀리하게 하도록(늙어 보이도록) 검은 머리를 뽑으니 두 사람이 흰머리와 검은머리를 번갈아서 뽑다가 남편은 대머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유가 지봉유설을 읽은 건 아니고, 애초에 널리 전해오는 구전 설화를(위의 이야기는 송대부터 전해졌다고 합니다) 수록한 거라 들어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3. 이전에 영고탑 장군이라고 계속 나왔는데, 이는 (작중 공충도를 충청도라고 부른 것처럼) 지명과의 연계로 이해를 돕기 위해 썼던 구(舊) 명칭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고탑 일대의 군사 관할권이 길림성에 포함되면서 길림 장군으로 변경되었으므로 청 입장에서는 이 명칭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