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84. 전초전(2)
시준과 몰트케의 대화가 끝난 뒤, 조제프 푸셰가 시준을 보러 와서 물었다.
“그래서, 프로이센과의 동맹을 수락하신 겁니까?”
“동지는 내가 바보로 보입니까?”
푸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했다.
“방금 주석보필국장 동지가 말하길, 주석 동지께서 몰트케 소위에게 적잖은 돈을 내어주었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그 정도는 줘야 본국에 돌아가서 쓸데없는 소릴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오.”
푸셰는 그쯤에서 납득했다. 그래서 시준은 ‘군인임과 동시에 작가 지망생으로서 자신의 소설을 아는 것 같은 몰트케에게 절대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주석 동지 친필 사인본 몇 권을 내주어 호의를 사 두었다’는 얘기까지는 안 해도 되었다.
시준도 푸셰가 더 캐묻기 전에 빠르게 말했다.
“그가 프로이센군의 정예도가 높고 정교한 군사 체계를 갖추었다며 그토록 자랑했으니 뭔가 혁명군에게 자문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거요. 프로이센과 동맹은 안 하더라도 괜히 척질 필요는 더더욱 없고. 따라서 며칠 구경이나 시켜 주며 연락장교로 쓰고자 하는데, 그 일은…….”
“바로 저밖에 할 수 없겠군요. 바라던 바입니다. 제게 모든 것을 일임해 주십시오. 주석 동지.”
“……전쟁 준비로 바쁘지 않소? 휘하 국장에게 지시하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국장 동지들은 매우 유능하지만, 유럽인을 적절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일 겁니다. 프로이센 놈들은 숙녀가 기다리는 침대에서도 군사 교본대로 ‘진격’할 것들이죠. 호전적이고 융통성은 찾아볼 수 없는 데다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충돌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준은 적어도 몰트케 소위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융통성 없는 사람이 BL 도색소설 같은 것을 가져가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도 없기에, 그는 결국 허락했다. 이런 일 가지고 더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이번 추석에는 각 지역에 내려가 있던 중앙인민회의 대의원, 그러니까 국회의원 겸 지자체장들이 전부 소집되었다.
2기 공화국 정부에서 처음 있는 중앙인민회의 전원회의였다. 물론 그에 어울리는 중대한 사안을 의결하기 위해서다.
우선 국무당의 주석으로서 연단에 선 시준은 자기 생각에는 정부의 대표 같은 겸손한 자세로 연설했다.
“폭압하는 군주에게 반대하여 투쟁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 있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우리의 혁명 동지입니다. 저 여진 반동 폭군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말살책동 때문에 중화 혁명당 동지들의 생명과 당권은 바야흐로 풍전등화입니다.”
대청 전쟁을 공식적으로 의결하기 위한 개의였다.
이미 정치국에서 합의된 지는 오래됐고 많은 인민들이 기정사실로 여기기는 했지만, 공화국 헌법에 따라 수교, 단교, 개전, 종전(휴전 따위는 혁명에 있을 수 없다)의 권한을 가진 중앙인민회의의 허락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정치국 위원인 조제프 푸셰는 대의원들의 질의에 대비한 설명을 위해 참석했다.
따라서 그가 데려온 몰트케 역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대단히 많은 사람이 모였군요. 저들은 각 지방의 제후들입니까?”
몰트케가 묻자 푸셰는 기다렸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다.
“아니. 제후라니, 그 무슨 반동적인 말인가? 모두 당당히 인민의 손에 선거된 대표자들일세. 각자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을 대표하지. 영주들의 사교 모임에 불과한 자네들의 제국의회[Reichstag]와 비교하지 말아주게.”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부유층이나 권력자, 대지주가 많지 않겠습니까?”
“하하! 자네는 젊은이 특유의 냉소주의에 빠져 있군. 결국 정치판이 그렇고 그런 거다 이건가?”
“그건 프랑스인의 태도죠. 저는 효율의 입장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전쟁의 문법[Grammatik]은 정치에 구애되어서는 안 됩니다. 병사로 끌려나갈 입장의 서민에게는 당연히 전쟁은 회피하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개별 국가가 존재하는 한, 어떻게 전쟁이 사라지겠습니까?”
과연 혈관을 갈라 보면 붉은 피 대신 검은 파시즙(汁)이 흐른다는 프로이센인다웠다.
푸셰는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이 완수되면 자연히 전쟁도 없어진다’는 둥 파쇼에게는 씨도 안 먹힐 소리를 하는 대신 빙긋 웃었다.
“과연 자네 말대로 비효율적인지 지켜보게.”
다행히 시준의 연설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배부해 드린 안건을 모두 익숙히 읽으셨을 테니, 긴말로 혁명의 속도전을 지체케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륙을 공격하여 동포를 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누구의 명령도 아닌 바로 우리 인민의 끓는 의지로 벼려낸 쇠와 그것을 담금질할 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이 뜨거운 혁명 열의에 부디 동참하여 의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몰트케가 어쩐지 친숙한 ‘철과 피’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 동안, 평준위원회 위원장 김창시가 연단에 올랐다. 모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돈을 담당하니만큼 당연했다.
“방금 경애하는 주석 동지께서는 인민의 대표인 우리에게 이 중국 인민 해방전쟁의 횡간(예산)을 요청하셨습니다.”
김창시는 무겁게 말했다.
“그러나 저는 혁명무력부와 정치국이 제출한 국무당의 안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좌중이 술렁였다. 그리고 몰트케는 거보라는 표정으로 푸셰를 바라보았다.
허나 푸셰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였다.
“주석 동지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니, 본인이 거론하겠소이다. 혁명 전선의 투쟁에 익숙하실 존경하는 대의원 동지 여러분은 이 횡간이 지나치게 적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정치국에서 그 정도를 몰랐을 리는 없지요. 여기에는 군대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군량, 그중에서도 곡식값이 적소이다. 왜 그렇겠습니까?”
김창시는 모두가 아는 질문을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던지는 재주를 부리며 의사당을 둘러보았다.
“바로 주석 동지께서 사재를 헐어, 중국의 곡식을 거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인민 중 누구도 주석 동지에게 그것을 청하지 않았고 주석 동지께서도 방금 보셨듯 전혀 자랑하지 않으셨소. 하지만 주석 동지께서는 분명히 하셨소이다.”
토벌군 출동을 늦추기 위해 시준이 서상과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직례의 군량을 사들였던 그 일이다. 서상의 주요 인사이기도 한 김창시의 입장에서는 꼭 언급해야 할 사안이었다.
반면 시준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유치한 연극이라고 비웃으면 어쩌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준 혼자뿐이었다.
“모두 일전 대함거선 열여섯 척의 일을 아실 것이오. 그리고 주석 동지께서는 다시 한번 재물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셨소. 고금의 반동적 군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의 요순 때도 이와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창시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명색이 두 번에 걸쳐 평준위원장을 하고 있는 본인이 하찮은 쌀자루와 돈꿰미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이 수치스럽소. 누군가 나에게 혁명의 멸사봉공이 과연 무엇인가 묻는다면, 본인은 다만 정시준 세 글자를 말할 수밖에 없소이다.”
“오오오!”
“정시준! 결사옹위!”
“정시준! 결사옹위!”
사방의 함성에 맞서기라도 하듯, 김창시는 크게 소리쳤다.
“이 중국 인민 해방전쟁은 혁명의 총력전! 정시준 동지께서는 구구한 언명이 아니라 묵묵한 행실로써 우리에게 앞으로의 투쟁 방향을 세세히 밝혀 주시었소.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부터 재산을 의연(義捐)으로 내어놓을 것이오. 대의원 여러분이 동참해 준다면 바로 전 세계 동시 인민 혁명에 부끄럽지 않은 이 대전에 마땅한 횡간이 완성될 것이외다!”
사람들은 모두 광기에 젖어 “내 돈을 가져가시오!”라 외치고 있었다. 몰트케는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제프 푸셰는 아까 몰트케가 자신한테 지었던 표정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이제 알겠나?”
몰트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몰트케는 이제야 깨달았다.
푸셰가 의도한 방식이 아니라 그만의 방식대로.
조제프 푸셰의 말이 옳다. 물론 프로이센식의 기본은 왕자건 서민이건, 병사건 돈이건 공평하게 몽둥이로 패서 내어놓게 하는 것이지만 개도 때리면 사람을 무는데 인간이라면 반드시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그것은 비효율적이다.
반면 지금 혁명정부와 같이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회를 만든다면 자발적 정당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가 형식적으로라도 찬성한 일이라면, 그것이 설사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라도 웬만하면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합리화하고 방어 논리를 내재화하여 극단으로 치닫는 사례가 훨씬 잦다.
‘그리고 그 비결은 아마도 정시준이 군권과 통일전쟁의 실적을 바탕으로 하여 사실상 자기 찬성파로만 의회를 구성한 데에 있다. 독일을 이렇게 묶을 수 있다면, 두 번째의 나폴레옹이 나타나더라도 맞설 수 있을 텐데.’
프로이센은 병정놀이 성애자 프리드리히(애비와 아들 둘 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나폴레옹에게 엉망진창 당하기만 했다.
몰트케는 그 이유가 국가의 체급 부족이라 진단했다.
따라서 독일은 통일되어야 한다. 무슨 신성 로마 제국이니 하는, 거지발싸개와 직조법이 유사한 누더기 나라 말고 진짜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정시준은 군대로 고려를 통일했다. 그것이 그가 가진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와 국민의 자발적 복종의 이유다.
그리고 독일 민족의 미래에 있어 그 임무는 (시준은 인정하지 않는) 군사 강국인 프로이센의 몫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게르만인의 생각에 진정한 국가의 통합은 군대로밖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놈들은 나약하게도 국가 발전을 침대에서 하려고 하니까 나폴레옹에게 당한 것이다.
‘라이히스탁은, 그래. 푸셰의 말대로 애들 놀이터에 불과하지. 의회의 권한이 강할 필요는 없지만 정당성을 대표하지도 못하는 건 문제야. 프로이센이 군사적 통일을 이룬다면 지금의 정시준처럼 각 나라에 대표권 선출의 권한을 주는 척하면서 의회의 의석과 업무 권한을 잘 조절할 수 있다. 그러면 국가의 힘을 매끄럽게 집중시켜 큰 전쟁도 손쉬워져.’
이상이 몰트케의 분석이었다.
하여간 로마인들이 라인강을 안 건넌 이유가 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조제프 푸셰가 들었다면 도대체 뭘 본 거냐며 멱살을 잡았겠지만 어차피 혈통적 파시스트의 뇌에 다른 생각이 떠오를 리 없다.
헬무트 폰 몰트케 소위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감명은 의결 후 혁명군의 시찰을 나갔을 때도 이어졌다.
***
몰트케는 푸셰의 요청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혁명군 총참모장 홍총각에게 물었다.
“사단 편제는 유럽에서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인데, 대단히 선진적이군요. 그러면 이 대규모의 부대에 필요한 행정적 소요는 어떻게 감당합니까?”
푸셰는 통역에 꽤 고생을 해야 했다. 잠시 후 홍총각이 대답했다.
“치중의 계량과 배분, 군관의 임면, 진퇴의 계획은 본인이 따로 거느리고 있는 참모부(參謀部)와 중앙전대(본부근무대)에서 도맡아 하고 있소.”
“지금이 전시라서 확대된 겁니까?”
“아니오. 일전에 공화국의 주석이며 혁명군의 총사령관이신 정시준 동지께서 본관을 영광스러운 총참모장의 자리에 임명하셨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해 오고 있소이다.”
사실 기존 혁명군 지휘관을 시준의 측근에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도 없고, 놔두자니 배운 게 별로 없어 올라오는 문서가 죄다 엉망진창이라 시준이 학생들을 좀 붙여 준 것이었다.
그러니까 근대 참모본부의 역사를 시준이 알았다기보다는 자기 갔던 한국 군대식으로 행정계원들을 딸려 준 것에 가깝다.
그러나 몰트케는 아직 유럽에 없는 ‘상시 참모본부 제도’에 주목했다.
그리고 홍총각이 총참모장 겸 단위부대 지휘관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참모와 장군이 항상 나뉘어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은 유기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인사 경로가 겹쳐야 하지. 다만 고려처럼 겸직을 하기보단 번갈아 수행하는 편이 낫겠어.’
그냥 혁명군 장악을 위해 자기 사람에게 군대 감투 씌워 준 시준의 정치질은 삽시간에 새 시대 참모본부의 모범 사례로 바뀌어 갔다.
정찰총국의 운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찰총국이 혁명군에 속한 조직이다 보니 정찰총국 요원들은 혁명군 군관의 직책을 가진 채 중국을 넘어 다녔다. 딱히 요즘 전쟁 때문이 아니라 정찰총국의 시초란 게 원래 만상 신디케이트 밀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라 그런 것이다.
“평시에는 무역과 공무, 상업과 첩보로 외국을 방문, 관찰하다가 유사시에 군을 지휘한다…….”
몰트케는 자기 안에서 모호하게 그려지던 사상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나중에 확립할 프로이센 참모부는 장교들의 외국 여행을 중시했다.
관전무관이니 전령 임무니 하는 식으로 외국의 사정을 미리 봐 두면 지휘관으로서 침공하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웃 나라 여행도 침략을 위해서만 한다는 게르만족의 기상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몰트케 소위는 그렇게 고려에서 대접을 잘 받고 돌아갔다.
그러고는 정시준이 말한 대로 ‘고려는 영국과 함께 청에 맞서 싸울 것이며 양국의 전쟁 협조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전달했다.
그는 코크란 제독에게 개인적 해석도 덧붙였다.
“정시준은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중국 반란군과의 선도 꽤 갖고 있는 듯 보이니, 고려가 중국 분할에 찬성하도록 만들려면 상당한 공작이 필요할 듯합니다.”
코크란은 몰트케가 선물로 받아 온 고려 궐련을 맛있게 피웠다.
“하하, 분할이라…….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중화 혁명당이라는 친구들도 꽤 마음에 드는데 말야. 웬만하면 둘 다 별로 싸우고 싶지 않군. 이 담배도 더 얻고 싶고.”
“진심이십니까, 제독?”
그렇게 물은 것은 몰트케가 아니었다.
코크란 제독의 옆에 있던 육군 대령 닐 캠벨 경이었다.
과거 더 타임스에서 ‘그 책’을 받아, 엘바의 나폴레옹에게 갖다 주고 탈출을 방조한 그 사람이다.
나폴레옹의 신변을 훌륭히 책임졌던 캠벨은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은 프랑스에서 점령군 지휘관으로 있다가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코크란 제독은 캠벨 대령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코크란은 가벼운 약 기운에 낄낄대며 연기를 내뿜었다.
“알아, 알아. 우리가 불쌍한 아시아인의 방패가 되어주지 않으면 저 강간마 타타르족이 북쪽에서 쳐내려온다는 얘기지. 하지만 신중히 가자고. 한 번에 하나씩. 우선은 중국 황제가 목표야. 그리고 나는 이미 한 번 황제를 포박했던 경에게 기대하고 있네.”
동서의 황제를 모두 그의 손으로 잡아 묶는다면 닐 캠벨 경은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 그와 캐릭터가 겹치는 반왕 정시준보다도 더.
용의 목을 겨누는 기사(Knight)처럼 황제 사냥꾼의 자리를 노리는 캠벨은 군도의 칼자루를 쓰다듬었다.
“물론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
1818년(혁명력 8년) 음력 9월, 영국군은 대만을 정식으로 동인도 회사령에 편입하고 그것을 중국에 통보했다.
청 조정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안이 시끄러워 참아 줬더니 이것들이 정말 미쳤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공사인지 무엇인지 하는 야만인 관리의 목을 베고 그 피로 군기에 제사 지낸 후, 천병 백만을 휘몰아 남방의 영길리인을 주멸해야 합니다!”
“이제 한중과 사천도 평정되었습니다. 소위 혁명당은 쥐새끼처럼 구멍에 숨었으므로 당장의 근심이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흔들리는 도의를 바로 세울 때입니다!”
이미 자기 자식들은 가지각색 핑계로 팔기의 군적에서 뺄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고위 관료들은 한목소리로 그렇게 주장했다.
도광제 역시 이자들의 자제를 정말 군역에서 빼 주고 싶었다. 부친이 죽으면 상을 치러야 하니까 군 면제가 가능하다.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 북경 앞에서 20배가 넘는 대군이 한순간에 괴멸당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치매가 틀림없으니 전부 파면해야 마땅했다.
물론 지금의 청군은 그때보단 낫다.
허나 제반 조건은 그때보다 더 나쁘다.
지금의 형세에서 영국군을 ‘주멸’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개항장은 본토에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바다를 통해 적이 쉽게 오가며 보급과 침투를 반복할 수 있는 이상 육지에서 개항장을 쳐 봐야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개항장은 영국 전력의 핵심이 아닌 데다 이렇게 되면 전투의 시점과 장소를 영국군이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청의 해상 전력은 솔직히 말해 고려만도 못하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고 여진족이 바다에는 좀 약하다. 괜히 조선 왕실이 강화도 쾌속 크루즈 계획을 세운 게 아니다.
그나마 있는 함대도 최근 10년 안에 다 박살 났다. 주로 영국에 의해.
다시 협상을 해 보자니 영국 놈들이 요구할 게 뻔하다. 코크란 제독이 성대히 개최한 예포 행사는 중국에도 그 의미가 잘 전달되었다.
고려도 이제는 (영국 해군이 왔으니까) 더 숨기지 않는 형편이다.
중앙인민회의 무력위원회는 출진안을 최종 검토하고 상임위원회에 보고를 올렸다.
이번에는 주석 자리에서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로 옮겨 앉은 시준은 – 이제 슬슬 수치심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 재차 방문한 몰트케의 묘한 시선을 받으며 개전을 승인했다.
이 소식은 당연히 벼락처럼 번졌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성경 장군은 북경에 급보를 쳤다.
도광제는 배신감에 울부짖었다.
“정시준, 이 애비 셋 가진 종놈의 네 번째 애비는 영길리 해적이냐! 그간 내가 너희 무군무부한 놈들을 얼마나 관대하게 잘 봐줬는데 뒤통수를 쳐! 과연 동이(東夷)질(도적질)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구나!”
전 세계가 청나라를 몰매 치는 것처럼 보였다. 대충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광제는 절망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같으면 그대로 짜부러져야 하겠지만,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싸워도 된다.
그들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니까.
그것이 바로 천조다.
도광제는 갑자기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력하게 얻어맞고 있어야만 하는가?’
자기 일 아니라고 백만 대군이니 서양 토벌이니 막 던지는 신하들처럼 열등한 차원은 아니다. 허나 도광제 역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줌도 안 되는 변방 오랑캐들이, 대국을 깔보는 바가 분수를 넘지 않았는가.
청으로서도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 여기에서 더 만만하게 보이면 진짜 나라가 망한다.
중화 3천 년의 지혜는 오랑캐 따위가 미칠 바 아니다. 도광제는 마치 연금술의 심원한 비의와도 같은 그 명철을 발휘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영국군은 물론 정시준과 임칙서, 송주령까지 관련자 모두는 도광제가 펼친 빛의 영도에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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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헬무트 폰 몰트케는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소설도 썼지만 대부분은 에세이나 군사 저술, 혹은 그것의 번역 작업이었지요. 불우했던 시절 이걸로 자기 군마도(조선도 그랬지만 유럽이라고 군마를 다 지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려고 했다는 것을 보니 꽤 받았나 봅니다. 언어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는지 6~7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합니다.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었지만요.
2. 근대 참모본부 제도가 이전과 다른 점을 모두 서술하긴 어렵습니다. 그만큼 전쟁사를 바꾼 개념 중 하나죠. 하지만 서술된 대로 참모단 상시 근무, 장교단의 ‘평시’ 외국 여행, 지휘관과 참모의 커리어 교대, 그리고 작중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군주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유악상주권(帷幄上奏權, 프로이센식 제도를 받아들인 일본의 표현입니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3. 몰트케는 클라우제비츠(지금 프로이센에서 사관학교장 하고 있음)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쟁은 독자적인 ‘문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전쟁은 어디까지나 일관되게 정치의 일부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주장과 달리 전쟁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개전과 종전이 정치적 사안이라는 점은 동의했지만, 전쟁 중에는 정치와 관계없어야 한다는 거지요.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앞서 말한 유악상주권 등 군의 강한 독립과 맞물려 군대의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원인도 됩니다. 이걸 배워다가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써먹은 게 일제 군부죠.
게다가 몰트케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부정해야 할 절대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그것(전쟁) 없이 지낼 수는 없다. 인간의 삶, 인간성 전체는 현재를 개선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투쟁 이외의 다른 것은 아니다.”라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긍정하는 쪽이었죠. 독일이 워낙 근대 이전까지 여기저기에서 처참하게 짓밟힌 경험이 많다 보니 생존으로서의 전쟁 긍정이 발달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만 ‘철과 피’는 몰트케가 아니라 비스마르크가 한 말입니다.
4. 닐 캠벨 대령 오랜만에 나왔군요. 고려와 영국이 처음 수교할 즈음 더 타임스 사장 존 월터와 시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입니다. 아직 장군으로 승진하진 않았고 기사 작위만 있습니다. 실제로 1818년까지 프랑스 점령군의 지휘관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