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45화 (245/284)

245화

82. 굴뚝을 구부리고 땔감을 옮기다(2)

물론 시준이 두만강을 통해 만주를 기습한다든가 하는 비효율적 우회 기동 작전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해 봐야 지리산 등반에 이은 흑역사가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그래서 시준은 얌전히 있었고, 계획은 혁명무력부 제1부부장 남공철이 주로 수립했다.

조정 출신들 중 많은 수가 정치국 위원인데 남공철은 아직 부부장이라서, 사기 진작 겸 새로 자리를 만들어 부부장 중 최고 수위로 임명한 것이었다.

이름만 다른 건 아니다. 이로써 남공철 또한 정치국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의 지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모자란 창의성을 증오했지만 남공철은 승진에 기뻐했다.

은퇴를 앞둔 차형기 다음의 혁명무력부장 자리를 남공철에게 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례적으로 한 부처에서 2명의 정치국 위원이 나온 혁명무력부 자체도 위상이 상승했다.

시준은 선군정치라는 단어를 애써 떨쳐내려 노력했다.

대신 오늘 제3사단이 모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더 이상 영대(연대) 단위로 다룰 수 없을 정도로 폭증한 혁명군은 이제 사단으로 편성되게 되었다.

1개 사단에 4~5개 영대가 들어가고 포병 등 기술병과는 따로 포함되며, 기타 여러 자주전대(自主戰隊, 독립대대)와 중앙전대(본부근무대)를 합쳐 만 명 안팎이다.

혁명군도 이제 많이 발전했다. 처음처럼 시인성을 위해 무조건 숫자를 맞추거나 단순화된 체계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새로 들어온 신병들은 여전히 불타는 혁명 정신 하나밖에 없지만, 그간 많은 경험을 한 고참과 정치장교들이 친절하게 ‘장악지도’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혁명육군 제3사단은 이번 만주 침공에서 선봉을 맡을 부대다.

왜 북경과 요동 등 요충지에서 한참 먼 이곳에서 전쟁을 시작하는가 하면, 바로 이곳이 한참 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공(助攻)이었다. 만주의 청군이 동쪽으로 쏠리면 번개처럼 서쪽을 친다.

중화 혁명당의 반란을 이용하는 장대한 작전까지 하면 이중 조공 인 셈이다.

공화국의 국력으로는 인명과 재물의 손실을 쉽사리 복구하기 어렵기도 하고, 어떻게든 위험을 회피하려는 시준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청군이 바보도 아니고, 무시한 채 바로 압록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하면 그만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주 동부의 특이한 위상 때문에 청은 그러기가 힘들다.

시준은 바로 그 점을 중점적으로 연설하여,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거짓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혁명 대전의 중추임을 인식하도록 했다.

“동지들! 평안도 사단들이 진격할 심양이 지난 조선 인민 해방전쟁에서의 한양군과 같다면, 동지들이 해방시켜야 할 영고탑(寧古塔, 닝구타)은 그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전주와 같다.”

심양이 만주의 실질적 중심지라면, 영고탑은 정신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훨씬 서쪽에 있는 누르하치의 고향과는 다른 곳이다.

허나 이 만주 동북의 원조 영고탑도 청 황실에게 아주 중요한 곳이며, 앙방장경(昂邦章京)을 두어 동북의 여러 도적 – 그러니까 러시아 같은 – 을 막아내던 요충지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시준은 일부러 설명을 뭉개며 두 도시를 고의적으로 섞었다. 그럼으로써 마치 흑룡강성 영고탑이 청 황실의 고향인 것처럼 말했다.

“저 반동 여진족은 사방에서 일어서는 중국 인민들의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무슨 역적이니 반란이니 하는 헛소리만 외치며 군비증강과 모략책동에 광분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부(심양)와 영고탑은 그러한 반혁명적 발악의 선봉장으로 되는 성경 장군과 영고탑 장군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시준마저도 정치국 회의에서 이 두 도시를 자주 헷갈렸을 정도니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이 두 성을 함락하는 일은 수평하여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옛 발해의 상경 용천부를 인민의 품으로 되찾아 오고 반동 여진의 치하에서 신음하는 인민을 해방시키는 그 영광된 직무를 수행할 부대는, 바로 이 차가운 북변에서 인민의 방패가 되고 있는 제3사단 동지 여러분이다!”

이 일만 명 중에 상경 용천부가 뭔지 아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시준도 전생에는 몰랐다).

유득공이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건 유득공과 복어 나눠 먹고 벼루 탈취하던 친구들이나 아는 거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처음 듣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게 뭔데 씹덕아’ 하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의문은 필요 없다. 주석 동지의 영도를 한 길로 따라가면 된다.

교육을 바탕으로 동의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동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편이 훨씬 쉽다.

“혁명군 총사령관 정시준 동지 만세!”

열화와 같은 성원이 함성의 형태로 솟구쳤다.

시준은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두만강을 여진족의 시체로 메우고 그 위를 짓밟으며 뛰쳐나갈 기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시준도 이대로 혁명군을 뒤에 달고 직접 두만강을 건너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시준은 왕이 아니므로 친정한다 해도 ‘주석 동지의 옥체를 어찌’ 하는 식의 반발은 안 나올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보다 위험한 홍총각 출전 씨름대회에도 그냥 내보낸 동료들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은 개전의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개전했다 하더라도 최고 지휘관의 위치는 당연히 중군이어야 하지 선봉은 어불성설이다.

이건 용기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다. 만약 시준에게 그러고도 위험하지 않을 무력이 있었다면 차라리 일전에 생각했던 대로 혼자 가서 도광제 머리 깨고 오는 게 낫다.

시준이 오늘 여기 온 목적은 혹시 자기들이 직접 요동을 떨어뜨릴 수 없다고 서운해 할지도 모르는 3사단 장병들에 대한 격려와, 마지막 준비 태세의 점검 차원이었다.

군대의 본령은 줄 맞춰 서는 것. 일단 그 점에선 합격점이다. 그리고 시준은 혼자 다 알 수 없었지만 혁명무력부 제1부부장 남공철과 3사단장 겸 부참모장 백윤구가 보고하는 무기, 탄약, 옷감, 군량 등의 준비를 보니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시준은 ‘국가’라는 체제가 이루어낸 이 광경에 새삼 놀라며 침묵했다.

이 거대한 규모의 무력은 자신이 명령하면 즉각 죽고 죽이러 나설 것이다.

이제 주석도 두 번째. 2기 공화국도 중반을 넘기면서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위화감이 들었다.

시준은 옛일을 떠올렸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생각했다고 해도 될 것이다.

군대의 창설과 유지, 부대의 편성과 운용을 계획하고 지시한 때가 투쟁의 시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혁명은 당사자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직접 무기를 들고 생면부지의 인간을 쑤셔서 생을 종결시킨다. 그가 가진 미래의 모든 가능성과 과거의 모든 인연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파괴한다. 왜? 그놈도 내게 그러했기 때문에.

그리고 마찬가지 논리로, 나 자신 또한 매 순간 그렇게 될 각오를 마친다.

전생에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조용히 그 자리를 피했을 미친 생각을 실행한 것은 대동강에서 단 백 명의 오죽당을 데리고 뛰쳐나간 그때다. 적어도 시준에게는 그랬다.

‘그랬나?’

원래부터 나에게 그 정도 숫자의 ‘부하’들이 있었나?

시준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북쪽을 돌아보았다.

제3사단 장병들은 주석 동지가 저 광활한 만주를 혁명으로 가득 채우리라는 신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시준은 이 싸움에 있어서 최초의 동료를 떠올리고 있었다.

4백 년을 이어온 국가를 상대로 싸우기로 처음 결심했을 때 시준에게는 그 어떤 동료나 부대도 없었다.

책문에서의 그 시점에서는, 평안도로 돌아가서 자신의 포부를 밝혀 봤자 동료들이 시준의 지적 능력을 난폭하게 지적하며 떠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정약용조차 자신이 시준에게 방해만 될 것을 인식하고 사제의 절연을 받아들였다.

허나 그때 단 한 사람만은 시준의 제안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정치국 회의에서, 시준은 서쪽의 정세를 탐지하기 전까지는 공격에 나설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 말은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다. 이미 청군은 서쪽으로 출발했고, 소식이 오가는 시간을 감안했을 때 이미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때를 놓치면 공화국의 작전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시준은 기랑이 지금쯤 중국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건 시준은 국가에 몸 바치기 위해 태어난 철인이 아니다.

19세기는 물론 21세기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이 특히 더 그렇듯, 시준도 케네디의 ‘너희가 먼저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라는 말에는 ‘그러니까 총 맞아 죽었지’라고 답하는 타입이었다.

조제프 푸셰와 친구인 이유가 있다. 시준도 가장 중요한 결정은 대의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윤리를 따랐다.

기랑이 시준을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면 시준도 기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지유를 위해서 혁명을 일으켰듯이 말이다.

고래로 여자 때문에 대사를 망친 여러 영웅들의 장대한 교훈이 엄습할 시간이지만, 시준은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므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시준은 ‘소식이 올 때까지’, 즉 기랑이 귀환할 때까지는 전쟁을 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시준이 국가를 외면한 건 아니다.

이들에게도 시준과 동료들의 인연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와 가족, 연인이 있다. 기랑이 가져올 더 자세한 소식이 있다면 전략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기랑이 중국에 있는데 공화국이 중국을 공격함으로써 그녀를 위험에 빠지게 하지 않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점검을 끝내고 병사들의 방방 뛰며 울부짖는 환송을 받으면서(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었다) 평양으로 돌아간 뒤에 더욱 강화되었다.

존 레디의 협상 제의와 주영 고려 공사 정약용의 급전이 동시에 도착한 것이다.

***

동인도 회사가 요란하게 거행한 웰링턴 공작의 출전 요청을 정약용이 모를 수는 없다. 따라서 바실 홀이 아시아에 도착했을 때 정약용의 전갈도 도착한 상태였다.

“동인도양행의 주재관(존 레디)이 영국 공사대리(토마스 매닝)를 통해 전한 말에 따르면 청이 영길리 장사꾼을 심하게 억누르므로 조만간 그 책임을 묻겠다 하더이다.

외사통호부장 동지의 말로 이는 동인도양행이 흔도사단에서 손해 본 일을 메우기 위해서라는데, 더 알아봐야겠지만 우선 사세가 급해 이 소식부터 보낸다고 했습니다.”

외사통호부 부부장 김시택의 보고였다. 정치국 위원들은 미심쩍다는 듯 한마디씩 던졌다.

“서양인이 ‘책임을 묻는다’하면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오. 그런데 영길리 놈들이 전쟁을 한다면 전쟁에 드는 돈보다 많이 얻어내겠다는 수작이지. 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텐데.”

“이주(夷州, 대만) 정도로 그놈들의 사나운 욕심을 채울 수 있을 리가 없소. 아마 중국의 반은 가져가려 할 거요.”

영국이 마주친 그 어떤 비백인 국가보다 우대해준 게 고려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평가다.

그러나 프랑스 출신인 푸셰와 인류사의 오점으로 남고 싶지 않은 시준의 지속적인 풀무질이 있었고, 게다가 사람에게는 본능적 위협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에 영국에 대해서는 정치국의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다.

시준이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와 중화 혁명당으로 반동 여진을 완전히 격멸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던 차에 큰 도움인 것은 사실이오.”

정약전이 쯧 하는 잇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주석 동지. 만약 영길리국이 중국의 땅과 사람을 탐내고 있다면 ‘하나의 중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중화 혁명당은 우리더러 배신자라고 욕할 테고요.”

“영길리국은 그런 말 안 했잖소?”

“예?”

“우리가 짐작할 뿐, 영길리국은 중국 땅을 갈라 먹겠다든가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소. 이주는 어차피 예전 영길리국이 그곳의 홍기방을 멸살했을 때부터 영길리 땅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나머지 땅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존 레디는 바실 홀이 말한 대로 영국의 최종 목표를 전달하지 않았다.

고려가 반대하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는 반드시 반대할 것이다.

산동과 직례를 영국이 거의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영국질’은 중화 혁명당 이전에 고려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청을 확실하게 굴복시키고 목표한 영토를 뜯어낼 때까지는 고려에게 최종 목표를 숨긴다.

그 사이 양의 가면을 써서 고려를 동맹, 최소한 중립으로 묶어두는 것이 영국이 그린 청사진의 대강이었다.

물론 숨긴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긴 하다. 툇마루에 나타난 뱀이 우호를 호소하며 몸을 비비 꼰다고 마음 편안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고려에게 말하지 않은 이상 고려는 그런 흉계를 ‘모른다’.

비록 이 설계가 누구에게나 뻔히 짐작되는 일이라 해도, 영국이 그걸 요구하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모르고 승낙한’ 고려의 책임은 상당히 줄어든다.

시준에게 이 건은 의외로 그렇게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는 향수에 젖어 전생을 회고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거역 못할 진상 민원인일 수밖에 없는 국회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가 대정부 질문이다.

법에 규정된 사정이 없다면 정부는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를 무조건 주어야 하며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허나 이런 아름다운 뜻과 달리, 실무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거의 스무고개에 가깝다.

‘10년간 이 사업으로 지원한 업체 현황을 제출하시오.’

‘지난 10년간 373개 업체에 해당 지원금이 지급되었음. 끝.’

‘장난하냐? 연도별로 자세히 달라.’

‘2010년 33개, 2011년 24개……. 끝.’

‘내가 원하는 건 업체의 이름과 대표자 현황이다! 엑셀 전부 내놔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제공이 불가능함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이다. 한 번 문서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데 며칠씩 걸리니 이 술래잡기가 끝나기 전에 국정감사든 예산심의든 끝나서 더 질문할 동기가 없게 되면 관청의 승리요, 반대라면 국회의 승리다.

(특히 신참) 보좌관들은 대개 자신이 창의성 있게 관청의 허점을 찔렀다고 여기지만, 업무 당사자 입장에서는 질문지만 봐도 의원실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을지 뻔히 보인다.

공무원들은 당연히 국회에서 원하는 바를 아주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러 아주 협소하게만, 문언 그대로만 들었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고는 반드시 해야 하는 최소한도만을 수행한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공무에서 지레짐작이나 선심성 처리는 절대 금기다.

대의 민주주의의 높은 뜻에 동감하여 풍부하게 제공한 자료 때문에 장관이 국회에 끌려 나가 먼지 나게 털리고, 안 해도 되는 대국민 설명 자료를 다시 만들며, 최악의 경우 사업이 붕 떠서 표류하는(폐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다) 환장할 꼴을 겪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공무원은 직책상 의무 없는 일을 앞장서 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허나 그렇지 않다. 의무 없는 일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인 것이다. 이게 분업의 진정한 의미이며 관료제의 기초다.

따라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중화 혁명당의 ‘하나의 중국’을 고려는 절대 지지한다. 중국 갈라 먹고 싶다는 말을 영길리 오랑캐가 감히 지껄였다면 혁명적 동지애로써 결사반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길리국은 그런 말 안 했다.

괜히 앞서 짐작해서 중화 혁명당을 위해 영국을 배척할 여유가 있을 만큼 청나라가 만만하지는 않다. 따라서 들은 대로만 대처한다.

그 이상은 없다.

그렇게 아련히 지난날을 추억하던 시준은 눈앞의 보고서를 툭 쳤다.

“영길리국과는 오히려 명명백백한 약조가 필요하오. 고려국과 영길리국은 청에 맞서서 함께 싸운다 정도면 되겠군. 뭣하면 ‘고려국은 이주를 탐내지 않는다’까지는 넣어도 좋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어떤 말이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말이 들어가지 않느냐라는 거요.”

시준의 말을 이해한 정약전이 감탄하며 수염을 쓸었다. 김시택 역시 공화국의 외교투쟁 방향을 구체화하여 밝혀주시는 주석 동지의 영도를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시준은 계속 말했다.

“영길리국도 문서로 된 약조에 중국 땅을 집어삼키겠다느니 하는 말을 넣자는 소리는 못 하겠지. 가능하다면 전쟁을 개시하는 즉시 그 약조를 중화 혁명당에 공화국의 이름으로 추달해야 하오. 나중에 절대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이 말은 곧 영국 함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전쟁은 보류라는 뜻이다. 내심 청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지 걱정하던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찬성했다.

그래서 시준 역시 기랑이 돌아오기 전까지 전쟁을 보류할 수 있게 되었다.

사단장들의 호언장담과 달리, 솔직히 객관적으로는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고 하기는 좀 힘들었던 혁명군의 태세를 다듬을 시간도 얻게 된 것은 덤이다.

***

청 역시 서쪽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곳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성경 장군은 국경 일대에 집중되는 군대를 감지했으며,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는 없으니까) 비공식적인 경로로 탐색과 항의, 협박을 계속해서 보냈다.

물론 공화국은 이미 조선 때부터 천진 조약에 의해 엄연한 독립국이다. 그런 내정 간섭에 굴복할 이유는 없다.

시준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대한 대처와 같은 요령을 발휘했다.

아무도 모르는 주석 동지 전생의 가락이 만주 벌판에 펼쳐졌다.

‘아, 그거? 겨울철 수렵이다.’

‘그게 어떻게 수렵이냐? 군사 훈련이지!’

‘같은 말 아니냐? 조선 시대부터 그랬는데 왜 이제 와서 시비냐?’

‘장난하냐? 영국 덕에 독립인지 뭔지 했다고 까부는 거냐? 너희 정말 장목왕 꼴 나 볼래?’

‘아이고! 중국 놈들이 조약을 어긴다! 아무리 그놈들 이름이 그렇다지만 이것들이 진짜 영길리를 좆으로 보네! 이보시오, 영길리 공사 거기 있소? 다음엔 당신 나라 차례요!’

‘어허, 씁.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고 우리끼리 얘기 좀 하자. 꼭 이웃 간에 이렇게 버성겨서야 되겠냐? 얌전히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군사 철수시키면 아무 말 안 하겠다.’

‘야. 우리 수도가 어딘지 몰라? 너희 놈들 코앞인데 뭘 믿고 군사를 물려?’

웬만하면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성경 장군은 조공 책봉 질서라는 게 얼마나 강력했던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대등한 관계가 되니 저놈들은 정말이지 상대하기 싫을 정도의 양아치로 변모했다.

그렇다고 만몽팔기를 조선에 투입해 전쟁군주마저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청의 힘을 보여주자니, 그 힘은 다 서쪽에 가 있다.

성경 ‘장군’과 영고탑 ‘장군’은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듯 군권, 다시 말해 수비 책임을 맡은 자리다. 이 상황에서 책임은 군을 서쪽으로 보낸 도광제에게 있는 게 아니라 ‘군권 줬더니 해결 못 하는 장군’에게 있다.

그런데 지금 성경부는 자체 군사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체중 감량을 거친 도광제의 군대는 분명 강력했지만, 이전처럼 제국 곳곳에서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규모의 힘은 많이 떨어졌다.

지금 고려가 심상찮으니 ‘황군’을 동원하자고 하면, 물론 북경 팔기가 오긴 할 것이다.

무능한 성경 장군의 인수와 모가지를 회수하러 말이다. 안 그래도 성경부는 일전 가경제의 편을 들었던 전력 때문에 사사건건 의심받고 있다.

결국 현재 성경 장군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뿐이다.

자금성으로 올리는 보고를 보류한 채 지속적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것. 한마디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니다. 이 정도라면 아직 성경부의 전결(專決) 범위 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 놈들이 국경을 넘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는 사이 고려는 꾸준하게 준비를 쌓아갔다. 청도 청이지만 영국이라는 대화재에도 대비해야 한다.

묵묵히 굴뚝을 구부리고 땔감을 옮기는 사이 1818년의 봄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도광제의 닦달에 못 이긴 청의 십만 대군은, 더 이상 날씨 핑계로 미룰 수가 없어지자 하릴없이 한중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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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영고탑이라 불리는 고장은 요령성에 한 곳, 헤이룽장성에 한 곳이 있습니다. 누르하치의 고향은 전자이며, 후자 역시 누르하치의 확장 초기에 편입되는 후금 시절부터의 세력권이긴 합니다. 그 전에는 동해여진의 땅이었죠.

왜 이름이 중복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누르하치가 자기 고향에 탑을 쌓았는데, 이 이름이 와전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정식’은 청이 관리를 설치한 헤이룽장성 쪽인 것 같습니다.

2. 성경부가 가경제의 편을 들었단 얘기는 일전 이득제의 훈련도감 패거리가 도망쳤던 때, 그것을 당시 지친왕 도광제의 뜻과는 반대로 (가경제의 명에 따라) 받아 준 곳이 성경부였기 때문입니다. 직후 가경제가 우연히도 급사하는 바람에 처지 난감하게 된 거죠. 나온 지 좀 된 얘기라 다시 해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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