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80.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1)
이번 정치국 회의의 결과, 그러니까 ‘혁명군의 확충’이 그저 정약전과 조제프 푸셰 두 사람의 막후 조종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정치국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나머지 위원들 또한 바보가 아니다.
정약전과 푸셰처럼 구체적 행동에 나설 만큼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해도, 그들 또한 각자의 분야에서 공화국이 ‘불가피하게’ 이런 흐름으로 갈 것임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원들이 찬성한 것이다.
심지어 시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시준이 일차원적으로 청과의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만 생각했다면 혁명군의 확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정치국 위원의 한 사람인 시준이 어떻게 그것을 혼자 ‘허락’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허점을 종종 이용당한다 해도 공적인 자리에서의 시준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자다.
주석 자리는 새삼 논할 필요도 없다. 그는 혁명군의 총사령으로서 군권을 쥐고 있고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 예산을 감독한다.
시준이 정말 거부한다면 정치국 회의 결정이야 어쨌든 혁명군의 확대 따위는 탁상공론조차 되지 않는다.
허나 시준은 허가했다.
그리고 그 요인은 긍정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시준이 생각했던 것처럼 남만주와 요동 획득의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을 결심하기에는 부족한 이유다.
웬만큼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내가 돈 가지면 좋다는 이유로 지나가는 옆 사람을 찌르고 빼앗겠다는 발상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 그 사람도 칼을 가졌다면 더더욱 그렇다.
시준을 움직인 더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부정적 측면이었다.
시준 자신도 어느 정도는 정약전의 심계를 감지했다. 그리고 시준은 정약전이 내비친 염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약전이 푸셰에게 말했던 ‘징조’는 과장이 아니었다.
흉년이 끝나자, 역설적으로 흉년이 지탱했던 공화국의 총력전 체제도 동요의 조짐이 보였다.
아직 붕괴라고 말할 때까지는 한참 남았겠지만, 그렇게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내버려 두지 않기에 이들이 공화국을 2대째 떠받치는 인재인 것이다.
전쟁, 그것도 선제공격을 상정한 군비 확충은 얼핏 대단히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국무당 정치국의 이번 결정은 극히 수동적인 것이었다.
***
시준은 평소 즐겨 먹던 커피에 어제 정치국 회의에서 쓰고 남은 설탕을 약간 부어 넣었다.
아직까지 설탕이 약으로 쓰이던 시대라 지유에게도 권해 보았지만, 지유는 비위 상한 사람의 모든 표정을 지으며 그걸 뱉어 버렸다. 하긴 아메리카노에 시럽은 사문난적이라는 위정척사파는 21세기에도 있었다.
“마치 국에 감초 넣은 것 같아. 이상해.”
“미, 미안해. 어? 명주야! 그거 헤집으면 안 돼! 손가락 빨지 마!”
시준이 급히 명주를 안아 들자, 지유는 설탕 주머니를 다시 묶고 입을 닦았다. 이제 제법 부부의 육아 호흡이 맞는 것 같았다.
다만 난생처음 맛본 설탕에 감동하여 더 달라고 칭얼거리는 명주를 달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시준이 아기 이 썩는다고 손가락에 소금 묻혀 억지로 양치를 시키는 바람에 명주가 도리질 치며 성을 냈기 때문이었다.
지유는 간신히 진정시켜 놓은 명주가 울음을 터뜨리자 남편을 유난스럽다는 듯 흘겨보았다.
그런 소동이 지나고 나자 별로 신기하지는 않은 일이 일어났다.
시준과 지유는 커피 한잔하면서 나누기로 했던 얘기가 뭔지 잊어버렸다.
먼저 기억해 낸 것은 시준이었다. 그에게서 명주를 빼앗아 간 지유는 아무래도 딸에게 신경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맞다. 임차료(賃借料)에 대해 사람들 얘기가 어때? 부녀회에서도 무슨 말이 나오고 있을 것 아냐.”
지유는 조금 후에야 대답했다.
“네가 말했던 대로야. 상조농장에서야 잘됐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 땅 가진 사람은 당연히 불평을 하겠지. 세금하고 다를 게 뭐냐는 얘기까지 나왔어.”
시준은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아니라도, 도로 닦고 조선소를 짓는다거나 면포 공창을 세우는 등 전 국토에 걸쳐 혁명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공화국에서는 한 푼의 재원이 아쉽다.
시준이 영국에서 가져온 돈이 있기는 하나 그걸 당장 모두 써버릴 수는 없다.
귀금속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금은의 경우 외국에서 자재와 기계를 수입하는 데 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상인을 대표하는 평준위원장 김창시와 공인을 대표하는 조선공장회의 정대운이 제기하는 ‘수평하지 못한’ 문제가 꽤 컸다.
‘상고(商賈)들은 항해 시에 그 항로를 개척한 서상에게 구문(수수료)을 내고, 고총련에 속한 공창에서 포수와 혁명군에게 총포를 만들어 대는 공장이나 야장도 연결회에 역시 구문을 낸다. 서상이나 고총련이 인민의 공사(公社)이고 보면 이것도 세금을 내는 셈이다. 농사짓는 인민만 예외일 수 있겠는가?’
결국 작년 겨울, 기랑이 짐승 사냥하고 있을 무렵 국무당에서는 내년부터 자영농에게 ‘토지 임차료’를 걷는다는 공화국 농지법(農地法)을 초했다.
일종의 정부안이라 할 수 있는 이 법안이 중앙인민회의 농상위원회와 법제위원회를 거치면 상임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한다.
특별법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시준에게 복통을 선사했던 서유문은 ‘초대 주석만 빼고 겸직 금지’라는 공화국 헌법의 대업적을 세운 그 사람이다.
그는 앞의 ‘특별’ 자를 떼버리고 정규 위원회가 된 법제위원회의 장이었으며, 적극적으로 주석 동지의 법을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유문의 각오는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법제위원회까지 가지도 못한 채 농상위원회에서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모든 토지가 인민의 것이고 자영농은 그것을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념적 정당성은 그럼 자영농은 인민이 아니냐는 반박에 가로막혔다.
“과거 상조농장에 땅을 ‘팔았던’ 사람들은 그 값을 받았소. 그 전례를 놓고 보면 원래 가지고 있던 땅은 분명히 땅 주인의 매매를 나라에서 허여한 것인데, 매매를 허여했다는 말은 그 소유를 승인한 것. 이제 와서 본래부터 그건 너희 땅이 아니라고 한다면 필시 사람들이 분개할 것이외다.”
중앙인민회의에 두 번째로 진출하여, 기존 농상위원장을 자질 시비로 불신임시키고 그 자리에 오른 예안부 인민위원장 이야순의 말이었다.
자기는 이제 땅이 없는데도 자영농을 대변하는 이야순의 공명정대함은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 국무당의 뜻이라면 곧 주석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북부 출신의 많은 대의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수평하게 곡식을 나눠 사람 목숨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이제 먹는 형편이 좀 나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선전선동부에서 그렇게 대풍년이라고 선전해 놓았으니까.
독재는 안 된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던 시준은, 정작 처음으로 민주주의의 쓴맛을 보자 어떻게 대응할지 얼른 생각이 안 났다.
하지만 인민의 뜻이 그러시냐고 물러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상조농장에서도 내가 팔았던 땅 물러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실제로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거봐. 역시 자기 땅 가지고 버티는 게 옳았다’ 운운하게 되면 안 그래도 별로 좋지 않은 집단농장의 노동 효율은 급전직하한다.
결국 자영농에게 이대로 무세 정책을 유지하는 일은 두 가지 유쾌하지 않은 결과를 부른다.
하나는 상조농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인민위원회의 약화이고, 나머지 하나는 공화국 재정의 부실로 인한 세금의 부활이다.
어차피 토지 임차료가 이름만 다른 토지세 아닌가 하겠지만, 공화국이 멀쩡할 때 명분을 대어 세금을 부활시키는 것과 불가피하게 떠밀려서 산적 떼 급히 약탈하듯 세금 걷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한두 가지씩 양보하게 되면 공화국은 시나브로 제 2의 조선이 되어갈 게 뻔하다. 차이점은 정치국이 왕 노릇 한다는 정도다.
아니, 그것조차 낙관적이다. 인민들은 공화국 체제가 과연 옳았는지 의심할지도 모른다.
이 대혼란을 겪어 가며 원래 살던 대로 돌아간다면, 차라리 원래 체제에서 바뀌지 않는 게 낫지 않았겠는가?
시준이 역사에 약간 관심이 있었다면, 왜 소련이 치명적 타격을 입을 때까지 집단농장을 포기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농은 물론 자영농까지 탄압한 이유도.
물론 실제로 소련이 사람을 떼죽음 시켜 가며 집단농장을 강제한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하다.
허나 결국, ‘이념상 그게 옳아서’라는 단순무식한 사유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은 비슷했다.
그리고 시준만 알고 있는 몇 가지 요인은 시준으로 하여금 소련과 유사한 선택지밖에 떠오르지 않게 했다.
시준이 역사를 줄줄 외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초 정보만 있으면 간단한 추론만으로도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의주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병인년이었지. 그러면 병인양요는 그때부터 한 갑자. 몇십 년 내에 온다. 병인양요가 왔단 얘기는 나폴레옹 3세가 아시아에 달려들었다는 것이고, 영국도 마찬가지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는 얘기야. 지금까지는 먹고살기 바빴지만 이제부터는 진짜 군함과 공장, 무기 개발에도 투자해야 해.’
소련이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해야 했던 이유와 똑같다.
차이점은 스탈린의 경우 복잡한 추리 해 가며 미래를 내다볼 필요가 없었다는 것뿐이다. 당시는 공산주의자를 씨도 안 남기고 말살하겠다며 호언하는 나치가 바로 동시대에 있었다.
‘산업화라…….’
시준은 자기가 어느새 사람들이 바라는 ‘공화국의 미래를 이끄는 주석 동지’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시준의 앞에 있었다.
지유는 고민하는 남편을 방해하지 않았다. 시준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지유가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시준은 그녀에게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유는 아기답게 아까 일은 잊어버리고 아버지에게 방싯방싯 웃으며 다가가려는 명주의 앞에서 노리개를 흔들어 주었다.
명주를 보기 전까지의 시준이었다면 나 죽고 난 다음이야 내 알 바냐며 시원하게 자영농을 풀어줄 수도 있다. 그것이 자유로운 수평도에도 더 걸맞은 일이다.
그러나 자기 딸이 있는 곳에 양귀자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생각하자 시준은 등골을 얼음 칼날이 찌르는 기분이었다. 시준은 ‘19세기의 유럽인’이 어떤지 이제 아주 잘 안다.
시준은 독재를 거부하고 싶은 양심과 뻔히 보이는 안 좋은 미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확실하게 다잡았다.
‘집단농장에 모든 농민을 묶는 것도 아니고 고작 세금만 부과한다는 거다. 이것도 이루지 못하면 결국 서상이나 거대 상단이 부양하는 선심성 국가밖에 안 될 거야.’
19세기는 수천 년간 이어진 부당한 모순적 체제와 그것을 단숨에 교정하기 위한 극단적 반발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그렇다 보니 19세기 사람이 일단 혁명에 맛들이면 21세기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은 급진파가 되기도 한다.
시준이 경계심을 느낀 ‘선심성 국가’도 분명 이 시대에 제시된 이상 체제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의 극단적 사회 실험은 좌파든 우파든 교훈만 남기고 실패했다. 둘 사이에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중도를 취한 결과가 시준이 아는 21세기 국가들의 사회 체제다.
시준은 혁명의 흐름을 약간 늦출, 최소한 변경할 필요성을 느꼈다.
‘필요하다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해서라도 공화국의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
정치국의 주장대로 당장 압록강을 건널 의사는 없었지만 적어도 현재의 협동 총력전 체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시준은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태도를 취했다.
정약전과 푸셰는, 보나마나 주석 동지가 토지 임차료 건에서 한발 물러날 줄 알고 이번 혁명군 확충과 엮어 몰아붙일 공작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들을 불러 말하는 시준의 태도와 그 내용에 꽤 놀랐다.
***
조제프 푸셰는 유쾌한 것처럼 보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Exitus acta probat].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오래된 금언이던가. 그러나 살다 보면 전후와 상하가 뒤집히는 일도 있는 법이지. 마치 혁명처럼! 그것이 바로 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먼.”
푸셰의 혼잣말처럼 지금은 거꾸로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는 상황이었다.
비록 그 ‘수단’이라는 것이 정약전과 푸셰에게는 정시준의 오랜 영도와 공화국의 단결이었고, 시준의 경우에는 미래 이 지역을 덮쳐올 파국에 대한 대비였지만 결국 그 수단은 동일했다.
이번 임차료 건의 통과와 혁명군의 확대가 그것이다.
만주 공격이라는 ‘목적’은 사실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거꾸로 ‘수단’을 이루기 위한 명분이다.
“주석 동지께서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멸적의 높은 각오로’ 혁명군 확충의 세목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신 이상, 이제 거칠 것은 없게 되었소.”
그는 갈던 먹을 내려놓고 종이를 폈다.
이제 국무당의 관리 대부분은 연필이나 펜을 썼지만 정약전은 아직 세필이 더 편했다.
정약전은 다소 거칠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붓끝을 바라보고 그것을 혀로 핥았다.
마치 칼날을 핥는 불한당(제대로 검술 배운 무사들은 칼 망가질까 봐 그런 짓 안 한다) 같았다.
허나 문인들에게는 일상적 동작이다. 수도꼭지가 항상 옆에 있지 않은 시대의 임시방편은 훌륭히 작동했다.
붓끝은 가지런히 모아졌다.
그가 바라는 공화국처럼.
“하나가 되려면 하나의 하고자함[欲]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면 엇나가는 터럭들을 다스려야 하지.”
정약전은 어떤 칼날보다도 위험한 그의 붓을 휘둘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듯, 그의 생명을 사르는 듯한 불꽃이 화려하게 터져 나왔다.
***
정약전의 첫 번째 공격은 자영농에 대한 것이었다.
자영농은 솔직히 조선 혁명에 그렇게 기여했다고 말할 수 없는 계층이었다.
숫자가 많고, 지주에 대항해야 했기 때문에 공화국에서도 그들을 섭섭지 않게 대우했지만 혁명의 면에서 본다면 현재 자영농 중 할 말이 있는 자는 구 남조선혁명당 출신 정도뿐이다.
정약전은 그 점을 찔렀다.
‘주석 동지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분이 벌어들인 재산의 태반을 큰 배 열여섯 척으로 바꿔 국가에 헌납하였다. 헌데 자기 땅이라는 고집만 세우며 나라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겠다는 자들이 있다.
……
그 소위 자기 땅이라는 것은 누구의 덕에 악랄한 반동 지주와 권세가들에게 빼앗기지 않았는가? 누구의 덕에 여진족이나 영길리인, 왜인에게 짓밟히지 않았는가?
……
이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덕을 입어 살기에 모두가 하나라는 주석 동지의 교시를 외면한 채, 자기 창고에 있는 물건은 다 자기 것이니 자손에게만 주겠다는 반동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이는 자영농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싶은 평준위원회 위원장 김창시의 명의로 중앙인민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여론은 삽시간에 기울었다.
자영농이 혁명 과정에서 기여를 그다지 하지 않은 공화국의 상황은 단순한 명분론 외의 다른 면에서도 그들에게 불리했다.
혁명과 통일전쟁에 지속 참여한 다른 파벌은 그 과정에서 밀고 당기며 결속을 이루었다.
그러나 자영농은 그러지 못했다.
회사 복도 모퉁이에서 서로 부딪치고 욕설을 퍼붓건 어쨌건 일단 만나야 연애를 할 게 아닌가.
솔직히 과정이나 감정 따윈 상관없다. 붙여놓으면 언젠가는 붙어먹는다. 정치 파벌이란 것도 비슷하다. 필요한 것은 접촉과 시간이다.
이야순이 자영농을 대변한 게 바로 그 파벌 형성을 위해서였긴 했으나, 그는 남조선혁명당 출신도 아니었고 아직 시간이 부족해 세가 강고하지 못했다.
그리고 구 남조선혁명당을 끌어들이기도 어려웠다. 그들은 정약전의 말마따나 ‘누구의 덕에 지주와 권세가들에게 땅을 빼앗기지 않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외롭게 저항할 때부터 힘을 빌려준 평안도 정치 세력의 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야순은 곧 중앙인민회의에서 고립되었다.
마침 누군가에 의해 ‘농상위원회 위원장이 총선거 때 학생들에게 술 먹이고 인민패를 몰래 가져다 썼다더라’는 의혹까지 제기되자, 이야순은 황급히 타협해야 했다. 그는 당혹과 부끄러움에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떤 놈이? 야학 학생들이 개망신 당하려고 스스로 말하지는 않았을 테고, 어차피 예안에 있어서 여기 일은 알지도 못할 텐데…….’
시준이 작정하고 국가보위총국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가 활용을 자제해서 그렇지, 시준의 독재 권력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보다 더 악독해질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지도자들보다 시준의 명시적 권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야순이 ‘평준위원회 위원장 동지의 설득에 감화’되어 찬성표를 던지자 토지 임차료 건은 볼 것도 없이 통과되었다.
지유도 남편이 잘 하지 않는 부탁에 기쁘게 응했다. 부녀회는 농상진흥부에서 나눠 받은 이권 중 하나인 면포 사업을 활용해서 시준의 정책을 지원했다.
토지 임차료에 저항하는 지역 유지나 자영농 집단(공화국의 수많은 시민단체처럼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은 곧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자영농이라고 공화국의 집단 경제체제와 완전히 유리된 게 아니다.
그 집에서도 부녀회 소속의 면직소(綿織所, 소규모 방직공장)나 그물짜기 사업에 나가 반찬값이나 쏠쏠히 해 오는 가족 구성원이 있었다.
그 일거리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아니면 인민위원회에서 가난한 집에 지원하는 옷감 같은 것이 은근슬쩍 취소되기 시작했다.
물론 임차료를 군말 없이 인민위원회에 갖다 바치는 집은 예외였다.
자기가 탄압당했다고 생각하는 자영농도 적지는 않았다. 허나 그보다 더 많은 자영농은 정신 건강을 위해 생각을 바꿨다.
‘이제 우리도 혁명에 당당히 한몫을 하는 동지들이다!’
그 논리가 정약전이 불어넣어 준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지, 이치를 따져 가며 믿지는 않는다.
게다가 사실 이것이 세금을 걷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물론 국가 경영에 돈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세금은 한 나라의 구성원이 소속감을 느끼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다.
고대부터의 많은 지도자들은 자기 신민이 단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교를 퍼뜨리거나 언어를 강제하거나 의복과 머리 모양을 통일하는 등 갖가지 애를 썼다.
머리카락을 남기면 대가리를 남겨 두지 않겠다는 청조의 잔혹해 보이는 선언은, 거꾸로 말해 이발만 하면 너도 대청의 신민이라는 뜻이다.
문명의 발전은 사상의 면에서도 가속되어, 앞으로는 이 용도로 ‘민족’과 ‘이념’이라는 신기한 개념도 발명되게 된다.
그러나 그 여러 변천사에서도 세금, 즉 재부의 공유라는 소속성의 증명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21세기에도 마찬가지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레퍼토리인 ‘네가 감히 세금 내는 나를 무시해!’가 이를 압축적으로 증명한다.
혁명군 확대와 산업화의 재원 보충은 부차적인 것. 이로 인해 얻어진 진정한 단결이 더 핵심적이었다.
그리고 그 단결은, 단결했기 때문에 찔러야 하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수단이 목적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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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공화국은 북한이 아니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복잡해서 생략되었지만, 북한에서는 지도자를 지칭할 때 흔히 ‘그이’라고 합니다.
‘그분’이라든지 하는 말은 계급 평등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지(하지만 실제로 평등하지가 않기 때문에, ‘그이께서는’ 이라는 식으로 우리 듣기에는 좀 괴상한 어법이 정착되었죠), 아니면 그냥 그쪽이 보편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사한 맥락에서 북한에서 ‘님’자가 뒤에 붙을 수 있는 자는 김일성(‘수령님’)과 김정일(‘장군님’)뿐입니다. 김정은도 어디까지나 ‘(총비서/국무위원장/최고사령관) 동지’죠.
2. 산업 혁명이라 하면 면직을 빼놓을 수 없죠. 영국도 대규모 방직공장 이전에는 집에서 각자 일감을 받아 하는 데에서 출발해 소규모 공장, 대규모 공장 순으로 발전했습니다. 작중 공화국이 아직 이 중간 단계인 거죠.
3. 이야순은 2기 총선거 편에서 야학 학생들에게 술 먹이고 인민패를 얻은 적이 있었죠. 시준이 어릴 때 병인양요 연도 추측하는 장면도 초반부에 한 번 나왔었습니다.
4. 정대운도 오랜만에 나왔는데 서울에서 시준에게 협력했던 대장장이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조선공장회는 고총련 탄생 당시 잠깐 언급되었었지요.
5. 가끔 나와서 헷갈리실까봐 설명하자면, 작중 공화국에서 정찰총국은 대외 첩보/특무기관, 국가보위총국은 국내 대상으로 비슷한 임무를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6. 머리를 남기려면 머리카락을 남기지 말고[留頭不留髮], 머리카락을 남기면 머리를 남겨 두지 않겠다[留髮不留頭]는 실제 청 초기 변발 강요 당시의 슬로건이었습니다. 태평천국은 청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일부러 변발을 없애고 머리를 길렀기 때문에 ‘장발적’이라 불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