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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34화 (234/284)
  • 234화

    78. 류큐 해방(1)

    멸적의 포문을 연 것은 유화뿐만이 아니었다.

    유화와 같이 있던 2척의 프리깃도 마찬가지였다. 도합 120문이 넘는 포 중 사쓰마 함대를 향할 수 있었던 절반 가까이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5급 프리깃이라도 반동은 어쩔 수 없다. 곳곳에서 밧줄과 술통이며 잡동사니가 나동그라졌다. 몇몇 군데에서는 혁명해군 장병들도 비슷하게 굴렀다.

    그러나 그것은 사쓰마 함대가 당한 꼴에 비하면 평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야쿠마루 나가사에몬이 시게히데가 엄격하게 금지했던 무사들의 집단행동을 결의한 이상, 시마즈 가에서도 무게감을 맞추어 견제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정 총대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분가(分家)인 이마이즈미[今和泉] 시마즈 가의 젊은 가독 시마즈 타다아츠[島津忠厚]였다.

    타다아츠는 그를 임명한 시게히데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그는 종말 같은 첫 번째 포격이 끝나자마자 민첩하면서도 냉철하게 판단했다.

    “뛰어내려—!”

    피를 토하듯 길게 끄는 그의 괴성은,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두 번째 굉음에 먹혀 버렸다.

    천지가 뒤집혀 뭐가 뭔지도 모를 혼돈이 덮쳤다. 물이 깨져나가고 배가 출렁였다.

    슬루프 크기도 안 되는 한두 척의 포함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관선이다. 크기로 따지면 조선 전선보다도 못하고 내구도는 더 낮았다.

    이때 북방에서 집적대는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막부와 북부 번들은 나름대로 중무장한 군선을 만들었다. 모리오카 번에서 건조한 류쇼마루[龍翔丸]가 대표적이며, 그 다중 망루와 방호 체계는 이번에 사쓰마에서 내세운 포함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분명 출발할 때는 웅장해 보였다.

    일천 석, 다시 말해 약 150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고 현재의 일본 내에서는 가장 큰 배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봐야 그건 기존 사관선(似関船)의 발전형에 불과하다. 오랜 평화기로 인한 군사 기술의 지체는 꼭 조선이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충무공이 살아 돌아온다면, 너희 200년 동안 뭐 했냐고 어이없어하며 똑같이 반 동강을 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주석 동지의 예술영도 아래 모든 부분에서 입체적으로 과학화‧근대화 투쟁을 전개했던 혁명해군에게는 더더욱 비웃음거리밖에 될 수 없었다.

    너무 과학적이다 보니, 포강 청소는 나중에 한꺼번에 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신속하게 포환을 장전하느라 몇몇 (공화국제) 대포가 고장나거나 폭발했지만 그런 건 혁명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테니 상관없다.

    ‘포탄을 명중에로 이끄는 주석 동지의 영도’를 받기 위해, 모든 수병은 과거 문순득이 전라우수영 함대를 격파했을 때의 노래를 합창했다.

    “혁명의 전법! 신묘한 전법! 정 진인 쓰신다!”

    사쓰마 배에서도 물론 대포를 쏘았다. 이 시대 대포라는 게 기술 수준의 편차에서 그리 극단적이지는 않은지라 이쪽도 분명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문제였다.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조준하고 명중시킬 수 있으면 인간도 아니다.

    또한 공화국 배와 다르게 사쓰마 배는 영국식 플린트락 발화 장치도 없어서 사람이 직접 불을 붙여야 했다.

    무엇보다 사쓰마에는 정 진인의 신묘한 전법이 없었다.

    결국 유화의 선수 부분을 약간 파손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사쓰마 해군이 포격전에서 그 이상 기대할 성과는 없어 보였다.

    결국 야쿠마루 나가사에몬은 결단했다.

    그의 파벌이던 몇 척의 배가 조용히 전장에서 이탈했다.

    그러자 부하 무사 하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이, 이래도 되겠습니까? 적전 도주는…….”

    나가사에몬은 당장에라도 그 건방진 놈의 목을 칠 듯이 칼을 들어 올렸다.

    “도주라니! 누가 도주를 한다는 말이냐? 지금 꼴을 봐라. 대포로는 강약이 같지 못하고, 배의 크기가 너무 차이 나서 기어오르지도 못한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류큐에는 사쓰마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러니 우리는 즉시 상륙해야 해! 안의 우리 편과 내응해서 슈리 성을 점거하고 성벽에 웅거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전술안을 갖추지 못한 그 하급 무사는 황급히 엎드렸다.

    여기서 황급하다는 것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예의라는 뜻이지 정말 정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인이라면 설사 달군 철판 위에서라도 도게자를 능숙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사는 흔들리는 배 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확한 자세로 엎드렸다.

    “얕은 헤아림을 용서하십시오!”

    “명심해라. 이것은 도주가 아니다. 거꾸로 들이쳐서 기고만장한 적을 놀라게 하는 것이니 바로 역돌격(逆突擊)이라 한다. 일단 땅에서 창검으로 싸운다면 저 이상한 놈들은 우리 상대가 아니다!”

    모든 무사들이 나가사에몬의 빛나는 지혜에 감탄했다. 칼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머리도 잘 쓰는 모양이었다. 과연 일파의 개조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쿠마루 나가사에몬의 실수가 있다면, ‘역돌격’에 그들보다 훨씬 능한 자들이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포격을 피하는 데 급급했던 게 탈이었다. 사쓰마 무사들은 공화국 함대가 나하 항 근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했다.

    쇼코 왕의 전폭적 협조하에 나하에 입항한 공화국 해군은 원정 함대가 오기도 전 류큐 안의 사쓰마인을 모조리 체포했다(그 김에 삼사관 등 쇼코 왕이 지목한 ‘사쓰마와의 내통자’들도 체포했다).

    그리고 이강회는 여기에서 약간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이 포로는 차후 사쓰마와의 협상에서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쇼코 왕도 그 중요성을 알았다. 왕은 슈리 성의 감옥에 그들을 가두길 원했다.

    허나 이강회는 그것을 거절했다.

    수평한 공화국 인민인 이강회는 왕 앞에서도 무릎을 꿇거나 하지는 않는다. 쇼코 왕은 그 설명을 받아들였다. 자기가 만만해서 무릎 안 꿇는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서 이강회는 당당히 선 채 말했다.

    “대왕께서 말씀하셨듯, 잠통모반자 중 나라의 고관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의 가병(家兵)이며 가솔들이 어찌 원수를 갚고 가장을 구출하러 오지 않겠습니까? 유구국의 군병도 태반이 그들 손에 있었던바 믿기 어려우므로 용맹한 공화국 해병대가 옥리의 노릇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라를 이따위로 관리해 놓은 멍청한 네놈에게 어떻게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기겠냐?’라는 소리다. 100년 뒤 고종이 외국 고문단에게 한목소리로 들었던 타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쇼코 왕은 이때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어전에서 침을 찍찍 뱉고 있는 저 ‘공화국 해병대’는 유구의 어떤 군대보다 그에게 가까이 있었다.

    그는 결국 ‘나중에 영국인들이 들어오면 괜찮겠지’ 수준의 고종 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최후의 트집을 시도해 보았다.

    “옥이 아니라면 그들을 어디에 둘 생각인가? 어설픈 울타리나 유막에 가두었다가 달아나기라도 하면 뒷일이 작지 않을 터이다.”

    그 질문을 예상했던 이강회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우리 공화국에는 천출명장의 예술영도로 언제나 승리하는 우리 주석 동지께서 이미 보여 주신 혁명사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층 수평해진’ 포로들은 부드러운 모래땅에 파인 수 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던져졌다. 행주산성의 정략군주 이품과 같은 꼴이었다.

    류큐의 백사장과 푸른 바다는 과연 21세기까지 유명 관광지가 될 만큼 아름다웠다. 포로들은 아우성을 쳤다.

    “이 백기나 항우 같은 놈들아! 사람을 이렇게 죽이려는 것이냐!”

    “어어, 저기 밀물 들어온다, 어어, 파도친다니까? 이러다 산 채로 물에 잠겨 죽겠다!”

    1영대장 김덕춘이 영민한 사람이긴 하나 일본어도 잘 모르는데 류큐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다. 그는 귀를 후비다가 말했다.

    “저놈들이 계속 시끄럽게 떠들면 저번 흑산도 영길리 놈들에게 갖다 줬던 해병약수나 먹여 주어라!”

    약학에 재주 있다 자부하던 몇몇 해병대원이 구덩이 가로 다가가서 바지춤을 끌렀다.

    인간의 상상 범위를 넘어서는 짓이다 보니 류큐의 귀족들과 사쓰마인은 영문 모르고 그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다행히 그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쪽에서 조선말로 몇 번 짧게 고함이 울리자 해병대원들은 다시 급히 바지를 추스르고 뛰어갔다.

    구덩이 안에 있는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바로 그때 젖고 지친 야쿠마루 나가사에몬과 사쓰마 무사들이 나하 근처 해변에 상륙한 것이다.

    ***

    공화국 해병대와 사쓰마 무사단의 수는 비슷했다.

    무사들은 상대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자 용기백배했다. 일단 땅에만 내리면, 그리고 산성만 없다면 조선인은 일본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공의 기합을 보여 주십시오!”

    그들은 즉시 나가사에몬에게 대장다운 선봉을 권했다. 무릇 사도를 익숙히 한 무사라면 이럴 때 앞으로 나서서 이름을 밝혀, 자기 가문을 빛내고 원정의 정당성을 설파하여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려야 했다.

    나가사에몬은 이 시대착오적 미치광이들의 제안에 갈등했다.

    허나 어쩔 수 없다. 그런 놈들이 아니면 여기 왜 따라왔겠는가.

    6백 년 전쯤 이름도 똑같은 고려 놈들이 몽골 환경주의의 대의에 동조하여 일본까지 쳐들어왔을 때, 나노리[名乗り] 하려다 화살에 꼬치가 된 무사들의 전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때 무사들 역시 다른 나라도 자기들이랑 풍습이 같을 줄 알고 멍청하게 나선 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아군의 예기를 살려야 하는 게 대장의 역할이라 그런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무사에겐 자기 이름을 알리는 일이 대단히, 어쩌면 목숨보다 중요했다.

    나노리 문화가 거의 사라진 전국시대에도 무장들은 전투 전 이름 새겨진 나무패를 교환하며 어떻게든 자기 PR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대 프리랜서가 명함을 돌리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다. 21세기나 전국시대나 먹고 살기는 이토록 힘들다.

    결국 여기서 이름을 떨치지 않으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되는 나가사에몬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그는 한때 세계 최대규모의 총병을 보유했던 나라 출신이며, 어느 정도 이상 떨어지면 총으로 사람을 맞히기 힘들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나가사에몬의 눈대중은 대강 정확했다. 그는 목소리는 어찌 들리지만 조총으로 사람을 정확히 저격하기에는 힘든 거리까지 다가갔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은 우렁차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바로 사쓰마 최강의 검호, 야쿠마루 지겐류의 나가사에몬이라고 불리는 카네타케다! 도쿠노시마의 대관이자 시마즈의 가신으로서, 남의 신하와 내통하여 변경을 침노한 너희 조선인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릴 자 나 말고 누가 있으리! 목검으로 투구를 쪼개는 이 나의 노래 한 구절을 듣고 싶은 자는 누구든 덤벼라!”

    나가사에몬이 안전거리를 상당히 길게 잡았기에, 그 목소리는 공화국 해병대보다 아군 측에 훨씬 잘 들렸다. 하긴 나노리에는 그런 목적이 더 크다.

    “오오오!”

    무사들은 열광하여 함성을 내질렀다. 이제 저 조선인들은 분로쿠, 게이죠 연간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것이 분명했다.

    나가사에몬 역시 그대로 상대의 답을 기다리다가 총 맞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최대한 명령을 내리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뒤로 슬쩍 물러났다.

    “저놈들은 겁을 집어먹고 꼼짝도 하지 못한다! 사쓰마의 건아들이여! 가자!”

    무사들은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남해의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그 검광 하나는 봐줄 만했다.

    그들은 공화국 해병대를 목표로 일제히 땅을 박찼다.

    평균 키 154센티미터의 사무라이 군단 돌격이었다.

    ***

    김덕춘이 본 것은, 왜놈의 대장 같은 자가 몇 걸음 나와서 뭐라 떠드는 꼴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왜놈이 뭐라고 하든 반동에게 내려질 인민의 판결은 동일하고 자명하다.

    김덕춘은 저편에서 왜놈의 대형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을 보자 명을 내렸다.

    “동지들, 방포 준비!”

    공화국 해병대는 총을 들어올렸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절도라기보다는 난폭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꿈틀거림에 더 가까웠다.

    나가사에몬도 당연히 총격은 예상했다.

    ‘백 걸음, 아니, 여든 걸음? 저놈들이 무슨 재주를 부려도 두 번 정도 쏘면 끝난다.’

    총밖에 모르는 저놈들이 재장전하느라 허둥대고 있을 때 들이닥쳐 베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무식해 보이지만, 훈련이 선행되지 않은 군대는 기관총을 가졌다 해도 발검 돌격을 막기 어렵다. 싸움에서 기세가 차지하는 영향은 그토록 크다.

    실제로 반세기 뒤 일본 내란에서도 쏠쏠히 먹히던 전법이니 나가사에몬이 잘못한 건 아니다(다만 1세기 뒤에는 잘 안 먹혀서 망하게 된다).

    그러나 브라운 배스 머스킷과 주석탄의 조합은 나가사에몬의 생각보다 월등한 사거리를 보장했다.

    해병대의 사격 실력이 솔직히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훈련 상황과 같은 꼴이다. 개활지에서 당당히 몸을 드러내고 달려온 사쓰마 무사들은 픽픽 쓰러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예상 범위 내다. 어차피 뭔가 쏘는 데 도통한 조선 엘프의 위명은 이웃 일본이 가장 잘 알고 있던 바다.

    이쯤은 이미 각오했다. 그래서 나가사에몬은 애초부터 엘프의 전통적 약점인 근접전으로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달려라! 달려! 저놈들은 우리가 코앞에 들이닥치면 총을 내팽개치고 도망갈 것이다! 비겁한 놈들의 등을 한칼에 갈라 주자!”

    앞으로 한 번의 사격만 더 버티면 된다. 나가사에몬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공화국 해병대가 예상을 웃도는 화력을 퍼부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해병대는 첫 번째 사격 이후로 주저 없이 총을 내던졌다.

    나가사에몬은 아무리 조선인이라도 너무 일찍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해병대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등에 짊어지고 있어 지금까지 잘 안 보였던 칼을 뽑았다.

    검술의 달인으로 무예백반에 통달했다는 나가사에몬조차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칼이었다.

    그것은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무사들의 일본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넓은 클레이모어의 검신은 훨씬 위압적인 빛을 반사했다.

    큰 것은 검뿐만이 아니다. 조선에서도 체구가 컸던 북방 사람들과 일본인을 비교하면 평균 키가 10센티미터 이상 차이 난다.

    신체 비율 대 키 차이를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욱 크게 체감된다. 180센티미터가 느끼는 190센티미터와, 150센티미터가 느끼는 160센티미터는 많이 다르다.

    모든 국면에서 크고 아름다운 해병대원들이 그 칼끝을 어디에 겨냥하는지는 명백했다. 김덕춘의 노호성이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저 비역질 좋아하는 반동 왜놈들의 볼기짝에 이 영길리 대검을 처박아 줘라!”

    해병대원들은 괴성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

    공화국 해병대는 그간 영국 해군과 가장 친하게 지낸 부대 중 하나다. 흑산도의 영국군에게 친절히 식수를 갖다 준 이후로 그들은 ‘프렌드’였다.

    따라서 영국군의 영향도 가장 많이 받았다.

    엉덩이 얘기가 아니고 자코바이트 반란 때 스코틀랜드인이 썼던 전법 얘기다. 하이랜드 차지(Highland Charge), 아니 고려 차지(Korea Charge)라고 해야 할 돌격이 공화국 해병대의 손에서 발휘되었다.

    이미 총에 맞아 숫자가 많이 줄어든 데다, 무사들은 설마 조선인들이 ‘칼을 빼 들고 돌격’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김덕춘은 해병대 전부를 돌격시킨 게 아니라 일부를 남겨 두었다.

    그들은 대나무 통에 넣은 주체신기전을 직사로 쏘아대었다.

    아무리 주체신기전 명중률이 기도에 좌우될 정도라 해도 이 정도 거리라면 안 맞을 수가 없다.

    ‘주체신기전 3호’라 불리는 이것은 공화국 해병대를 제외한 다른 부대에서는 모조리 폐기될 정도로 위험했다.

    콩그리브 로켓을 보병용으로 경량 개조한다는 발상은 좋았으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 영국군이 이미 했을 것이다. 2할은 터져버리고 2할은 땅에 처박히며 1할 정도는 아예 공중에서 휘리릭 한 바퀴 돌아 아군 대열을 들이받으니 쓸 수가 없었다.

    물론, 공화국 해병대에겐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해병대원들은 폭죽처럼 주위에서 터지는 주체신기전 3호를 보며 환호했다.

    “인민의 주체적 무력이다!”

    아군 오사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콩그리브 로켓은 해병대원의 대열 사이를 가르며 앞질러 날아갔다.

    사쓰마 무사들은 장렬하게 폭사하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미 가속이 붙어 멈출 수도 없다.

    그 와중에도 고수답게 살아남은 나가사에몬은 진노했다.

    “지금까지 잘도 까불었겠다!”

    해병대원의 거친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오자, 그는 카타나를 오른손에 단단히 쥔 채 그의 자랑인 소태도를 왼손으로 뽑아 들었다.

    “쳐라!”

    이미 붙은 이상 사쓰마 무사들의 검술은 무시할 수 없다.

    절대로 받아내서는 안 된다는 사쓰마의 첫 칼질이 해병대원들에게 내리꽂혔다. 붉은 군복을 더 붉게 적시며 적지 않은 해병대원이 쓰러졌다.

    사쓰마 지겐류의 일검은 두 번째를 생각하지 않는다. 방어도 회피도 전혀 없다.

    오직 첫 번째에 적을 죽인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죽으면 된다.

    실로 남자다운 검술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남자답다는 평가를 받는 게 보통 그렇듯이 이쪽도 사소한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서의 문제는, 이게 일대일 대결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첫 내려 베기에 모든 힘을 쏟아낸 사쓰마 검사들은 뒤에서 뛰쳐나오는 다른 해병대원의 클레이모어에 거짓말처럼 머리가 부서졌다.

    물론 무사들이 전쟁과 대결을 착각한 건 아니다. 보통 이렇게 앞사람을 배꼽까지 쪼개놓으면 2열은 기세가 꺾여 괴멸되기에 사쓰마 무사들은 막부군의 대포 앞에서도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허나 상대가 겁먹지 않으면 냉병기의 위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반동 앞에 등을 보이고 달아난 자, 짧은 혁명역사에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공화국 해병대는 일찍이 김덕춘이 피력한 대로 주석 동지의 영광스러운 ‘직속 부대’였다.

    “이 난쟁이 새끼들이!”

    그들은 곧 장신과 체중, 그리고 검의 크기를 무기로 강맹한 반격을 개시했다.

    이런 마구잡이 싸움이 되면 당연히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 그리고 체중 차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무술은 모든 무술의 왕 건법을 제외하면 없다.

    이중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 사쓰마 무사들은 하나둘 옥쇄하기 시작했다.

    최후까지 분투하던 나가사에몬은 결국 자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다시 말해 이제부터 자신의 행동을 증언할 자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나가사에몬은 몸의 일부처럼 아끼던 소태도를 내던졌다.

    “나는 막부의 관리요! 그대들 조선인이 일본 전부와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내가 살아 있어야 말을 해 볼 수 있을 것이오!”

    물론 그런 긴 왜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해병대원은 아무도 없다.

    칼을 버린 멍청한 놈의 대가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김덕춘의 클레이모어는 그게 조선말이었더라도 이미 멈출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나가사에몬은 과연 고수였다. 그는 항복의 선언을 외침과 동시에, 도게자의 작법을 정확하게 지키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오는 길에 배에서 같은 짓을 했던 하급 무사도 꽤 대단했지만 지금 나가사에몬의 민첩함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사쓰마 최강의 검객이라는 자기소개는 허언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허공을 헛쳐버린 김덕춘은 한 바퀴 빙글 돌게 되었다.

    일본 검술 천 년의 역사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회피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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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사쓰마와 조슈는 서양 문물 수입에 적극적인 영주들이 있었고, 이때부터 쌓인 기초가 나중에 영지 단위로 증기선을 찍어내는 기틀이 되지요.

    이를 촉발한 19세기 중반기 흑선내항의 충격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전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 일본의 건함 의욕을 자극한 것은 러시아의 남하였습니다.

    분카 로코(文化露寇, 문화로구)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분카(문화) 연간의 러시아 도적이라는 뜻입니다. 작중 시점으로부터 11년 전, 1806년경 러시아의 외교사절 니콜라이 레자노프(알래스카를 개척한 그 사람 맞습니다)는 통상 요구를 하러 왔다가 일본이 안 들어주자 빡쳐서 그대로 군함으로 북부의 여러 거점을 공격합니다.

    모리오카 번과 마츠마에 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공격에서 일본은 일방적으로 털리고 러시아군은 신나는 약탈과 방화를 일삼습니다. 일본에게 다행인 건, 이게 황제의 승인도 없는 독단 행동이라 결국 황제가 철수를 명령한다는 거죠.

    이때부터 막부도 부랴부랴 몇 척의 배를 건조하게 됩니다. 본문의 류쇼마루 말고도 젠진마루, 쥬쇼마루 등등 환(丸, 마루)자 돌림의 여러 배가 만들어집니다. 그래 봐야 서양 함대에 대적하기는 무리였습니다만, 러시아도 이쪽에 본격적으로 뭘 보낼 형편은 아니었고 해서 그럭저럭 넘어간 모양입니다.

    2. 콩그리브 로켓은 기본적으로 로켓 무기인지라, 추진력 배분이 이상하게 된 경우 휙 뒤집혀 아군 쪽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실제 영국군에서도 가끔 있었다고 합니다.

    3. 154센티미터는 당대 일본 남성의 평균 키입니다. 남부는 대체로 더 작은 경향이 있긴 한데, 모두 사족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이 정도로 설정되었습니다. 이때 조선은 약 10센티미터 더 큰 165센티미터 정도이고 북방 사람들은 더 컸습니다.

    4. 나가사에몬의 대사에서 노래라는 말은, 그가 목검으로 투구를 쪼개어 결투에서 이기고 나서 시 한 수를 읊은 일에서 유래합니다.

    5. 어느새 주체신기전도 3호까지 나왔네요. 그 전에 나온 1호는 콩그리브 로켓 복제판, 2호는 탄두 강화형, 3호는 오늘 서술된 대로 보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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