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77. 폭풍과 가랑비(2)
혁명은 류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인민 혁명은 지구 어디에서나 물고 물리며 연결되었다.
시간을 반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1816년 여름, 런던 베이커 가의 빈민 구호소는 오늘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정시준이 예언한 재해’가 진짜로 들이닥치자 굶주리고 병든 자들은 더 살기가 고달파졌다.
노예 비슷한 일자리마저 떨어지고 어디서 구걸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된 그들은 비척비척 베이커 가로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가서 낸 소문 때문에 다음 날엔 사람들이 더욱 몰렸다.
왕 첸 주식방, 아니 약방을 방문한 신사들은 그 악다구니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물론 돌아가는 게 아니라 발을 재촉하는 것이다. 여기에 와야 고려인민공화국 특명전권공사가 어떤 상품에 투자할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너희는 겉옷만 남기고 다 팔아 이웃을 도우라, 너희 중 가장 낮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던 그리스도의 언명을 실천하는 자는 여기의 수많은 기독교도 중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뿐이었다.
주 런던 고려인민공화국 특명전권공사 정약용은 친히 구호소에 나왔다.
그는 마치 경전을 읽듯이 ‘서양의 성현’의 ‘본받을 만한 경구’를 큰 소리로 외웠다. 원래 직업이 그거인 만큼 그 낭랑한 음색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청교도 목사나 성공회 사제들이 보았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준엄한 이단 심판을 내릴 광경이었지만, 그자들은 빈민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여기 오지도 않았다.
반면 빈민들은 먹을 것만 준다면 훈족 약탈자라도 예수님이라고 불러 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약용을 제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문순득은 다소 날카로운 표정으로 끓는 죽솥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노동 때문은 아니다. 일 자체는 거의 고용한 영국 빈민이 했으니까.
문순득의 불만은 구휼이 좀 과하다는 것이었다. 공화국 사람들도 툭하면 굶는데 말이다.
보유 채권 이자로 구휼을 해보자는 정약용의 구상을 들었을 때, 문순득은 당연히 조선식 구휼을 생각했다.
‘그럼 환곡 장부를 만들어 보겠소이다. 이자는 1할이면 적당할까요? 취리(取利)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여기는 우리 땅이 아니라 함부로 몽둥이 들고 돌아다니면서 걷으면 사람들이 달갑잖아할 텐데요.’
‘이자는커녕 원곡(원금)도 받지 않네. 제독 동지. 백급(무상환곡)일세. 다만 그냥 곡식을 주는 것보다는 죽을 끓여서 주도록 하지. 그 편이 양도 많아 보이고 무엇보다 따뜻하니까. 그 따뜻함이 요체인 걸세.’
문순득은 크게 놀랐다. 반대하는 그를 정약용은 타일렀다.
‘어차피 이 채권이니 주식이니 하는 것의 이익은 사람 마음 따라 불어나고 꺼지는 것. 허망한 거품과 같네. 내 가만히 보니 왜 소위 그 증권거래소의 사람들이 미쳐 가는지 알겠더군.
그건 실(實)이 없는 마음속의 돈에 지나지 않지. 그러나 그 이익을 마치 빌려주어 계약한 돈처럼 응당 얻어야 한다고 눈 부릅뜨고, 잃으면 뜻하지 않은 흉작이라도 덮친 것처럼 이 갈며 슬퍼하니 이게 완전히 귀신에 홀린 소치가 아니고 무언가.’
하긴 명색이 선비의 자손으로서 부채 들고 춤추던 이강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거의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긴 했다. 주식이 무섭긴 무섭다.
‘어차피 잃어도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베풀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이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의 땅에 주석 동지의 이름을 펼쳐 수평도로 교화해 보세.’
마지막 대사는 문순득을 설득시켰다. 그래서 그는 바쁜 정약용 대신 베이커 가 구휼소의 실무를 맡아 지금까지 훌륭히 지휘했다.
그러나 문순득의 타협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정말 공짜로’ 죽을 가져가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차례가 온 빈민 하나가 그릇을 내밀었다. 오늘이 처음인지 그저 간절한 눈빛 하나만 가진 채였다.
얼마나 못 먹었는지, 짓밟은 볏짚 같은 머리칼은 뭉텅뭉텅 빠진 데다 땟국물 흐르는 낯짝은 골이 패일 지경이었다.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광경이건만 문순득은 그를 쏘아보았다.
그 빈민과 대조되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노숙자 하나가 배식을 맡고 있었다.
분명 며칠 전까진 길거리를 같이 뒹굴고 있었으나 운 좋게 왕 첸 약방에 고용된 사람이었다.
그는 솥에 그릇을 넣어 김 펄펄 나는 오트밀과 귀리죽을 퍼 올렸다. 빈민은 그것을 간절히 쳐다보았다.
문순득이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빈민은 습관적으로 자기 이름을 말하려 했다. 그러나 오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말이 생각났다.
‘고려 사람들은 우리 왕의 이름 가진 자를 좋아한다네.’
어차피 자기 이름에 별로 애착 가져본 적도 없는 빈민은 쉽게 결심했다.
“조지라고 불러주십쇼.”
그러나 그 성의에도 불구하고 문순득은 그걸 바로 내어주지 않았다.
팔을 들어 배식을 제지한 문순득은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 무엇을 얻고 싶은가?”
그 빈민은 멍청한 눈으로 문순득을 바라보았다.
“뭐긴요. 그 손에 든 죽이지요. 제발 자비를 베풀어…….”
문순득은 다시 준엄하게 물었다.
“무엇을 얻고 싶은가?”
(빨리 받고 싶은) 뒷사람이 나서서 ‘반왕 정시준의 기도문’으로 알려진 어떤 경구를 잽싸게 속삭여 주었다.
그는 더듬더듬 그것을 따라 했다.
“온 세상…… 인민의 것…… 뭐? 아, 경애하는…… 만세?”
단숨에 문순득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큰 소리로! 안 들리잖아! 그 목소리로 혁명 할 생각을 해?”
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빈민은 넋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 죽을 받아야 내일까지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다. 생명의 절박함은 기적의 두뇌 활동을 일으켰다. 빈민은 그 짧지 않은 ‘기도문’을 단숨에 외워버렸다.
“우리가 잃을 것은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온 세계다! 경애하는 정시준 의장 동지 만세!”
항상 그렇지만, 유럽 가는 정약용에게 서양사 아는 척한다고 그런 구호 가르쳐 준 시준이 가장 잘못했다(마르크스는 후년쯤 태어나지만 시준이 그걸 알 리가 없다).
문순득은 마치 이 사람을 보라는 듯이 격정적으로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좋아! 아주 활기차군!”
그러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저 녀석에게 그 ‘혁명’ 하나 내줘.”
혁명적으로 가득 담은 죽 한 그릇과, 수상하기 짝이 없는 어떤 동양인 남자의 초상화 한 장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문순득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낮게 말했다.
“자네 보아하니 오늘이 처음이군. 한 그릇 더 먹고 싶으면 이따 판 걷을 때 찾아오게.”
***
오늘부로 조지라고 이름을 바꾼, 구체적으로 말하면 282번 조지 정도 되는 그 사람은 올해 17세의 소년이며 동시에 10년 경력의 굴뚝 청소부였다.
그를 전혀 소년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문순득이 들었다면 “37세 아니고?”라 반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법을 아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적어도 법률적으로 봤을 때 그 경력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이 시대에도 산업안전보건법 비슷한 게 있었다. 굉장히 최근이긴 한데, 약 30년 전 최초의 근대적 산업재해 관련법이 바로 이 영국에서 제정된다.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다.
문명의 빛을 선도하는 최선진국 영국은 ‘8세 이하(18세가 아니다)는 굴뚝 청소부로 쓸 수 없다’는 혁신적 진보 법안을 제정한다. 국정감사 결과 ‘검댕이 고환의 주름으로 침투하여’ 어린이들이 너무 많이 음낭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많은 고용주가 숯검댕 때문에 병에 걸리다니 비과학적이라며 격렬히 항의했다.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됐다. 열심히 일하는 자본가들의 생산 의욕을 가로막아 경제를 저하시키는 악법에 불과했다.
일해서 돈 벌고 싶어 열망하는 7세 어린아이들의 정당한 노동의 자유는 어쩌라는 말인가? 자본가의 재산을 시기하는 부랑당패들의(아직 빨갱이라는 말이 없다) 음모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법은 법이었다. 그리고 산업 혁명 시대 사장님도 21세기 사장님들만큼은 법을 지켰다.
다시 말해, 사업주들은 독일처럼 청소부들에게 갑옷을 입히는 것보다는 7살짜리를 좀 덜 자란 8살이라고 사기 쳐서 들여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갑옷값보다야 벌금이 싸다.
물론 그 아이가 7살이라는 것은 상호 알고 있으므로 임금은 당연히 8살짜리보다 저렴해야 한다. 기업가는 항상 이윤 추구에 합리적인 법이니까.
그래서 이쪽 조지도 7살 때는 평균 지름 18인치의 굴뚝을 닦다가 몸이 커지자 공장 굴뚝 같은 곳으로 옮겼다. 워낙 먹은 게 없어 빨리 자라지도 못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음낭암은 면했지만 폐병은 피할 수 없었다. 조지는 그대로 해고되었다.
목요일에 내쫓겼으니 일주일을 채우지 못했으므로 그 주 주급은 당연히 받지 못하고, 밀렸던 전 주급조차 ‘갑자기 일을 못 하게 된 탓에 손해를 입은 고용주에 대한 배상’으로 뜯겼다.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벌써 2천 년 전, 예수와 동시대 사람인 대(大) 플리니는 그의 역사서에 후세인들을 위한 조언을 남겼다.
‘석면 광산에서 일한 노예는 사지 마라.’
현대어로 바꾸면 ‘중고차 시장에선 침수차를 조심해라’와 완벽하게 같은 뜻이다. 인류는 석면이나 굴뚝 연기로 인한 산업 재해를 고대부터 아주 잘 알았다(석면이 21세기에서야 사용 금지가 된 건 그게 해로운 줄 몰라서가 아니라 값이 싸서다).
라틴어 고전 정도는 기본 교양으로 장착한 이 시대 영국 신사들이 그만한 사적을 모를 리 없다. 아무도 기침 쿨룩쿨룩 하는 조지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작년의 주가 거품 폭락에다가 러다이트 운동의 폭풍까지 겹치고, 무엇보다 올해의 흉작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자 망하는 공장주가 많이 생겼다. 조지는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느꼈다.
조지는 뒷골목에서 쥐와 먹을 것을 다투었다. 사람 시체 뜯어먹고 개만 하게 살찐 쥐는 인간의 귀찮은 골칫거리에서 만만찮은 대적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결말은 ‘합리적이고 자연적’이었다. 진 쪽이 먹힌다.
빈민을 도와 ‘자연적으로 사라질’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어떻게 계산해도 그런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계몽된 정부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학의 대척점에 있는 종교가 나섰다. 일부 뜻 있는 사제들이 유럽 전통대로 기독교적 자선을 발휘하려 했다. 그러나 교회라고 이 대흉작에 곡식이 남아날 리는 없다.
몇몇 군데에서 점점 배식이 줄어들고, 빈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은혜도 모르는 놈들’에 대한 여론은 더더욱 나빠졌으며 그나마 있던 구호소마저 사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철수했다.
예수가 재림해서 빵과 물고기를 복사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런던에서 단 한 곳, 이 베이커 가에서는 정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굴뚝 청소부 조지를 포함해서, 한 50여 명쯤 되는 조지는 그날 밤 왕 첸 약방에 모였다. 문순득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죽 한 그릇씩을 돌렸다.
제한된 사람들을 위한 특식이라 그런지 고기와 기름도 좀 보였다. 정찰총국 오리엔탈 파이터즈가 약이라고 먹는 장어 젤리 남은 것까지 다 처넣어서 그런 거지만, 어쨌든 영양학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조지 군단은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퍼먹었다. 그것을 인자하게 바라보던 정약용은 강의를 시작했다. 의주 희만당 훈장의 가락이 발휘되었다.
게다가 정약용은 그저 그런 훈장이 아니다. 그는 무작정 자신의 지식을 떠드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관찰했다. 공자가 말한 바 ‘그 재주에 맞추어 가르친다[因材施敎]’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약용은 기독교에 대해 웬만한 기독교도보다 더 잘 안다. 사학죄인 집안 출신 짬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본래 사람이 힘써 농사짓거나 장사하거나 새끼 꼬고 궤짝 짜서 버는 돈은 일가가 풍족하게 사는 정도요, 그보다 더 부자라면 필시 남의 것을 속여 후리거나 노략하지 않고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 동양인에 의해 해설되는 성경 강의 시간이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았다 말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본래 자기 혼자서 이룩했다는 것은 없다. 곡식을 매매하여 거상이 된 자는 농부의 덕을 입은 것이요, 농부는 그 낫과 망치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덕을 입은 것이며, 대장장이는 광부의 덕을 입은 것이다.
이들은 각자 자기 욕심에 따라 일했을 뿐이라 하겠으나 그렇지 않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덕을 입히고, 또 입은 것이니라.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은 인민 모두의 것인데, 그것을 모두 나의 덕이노라 하며 아무 노고 없었던 내 자식에게만 주겠다는 소리는 반동의 소치다.”
무덤에 있는 애덤 스미스가 벌떡 일어날 소리지만 여기에서 반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반동[Reactionist]이란 무엇입니까?”
그중 호기심 많은 조지가 손을 들고 묻자 정약용은 흐뭇하게 웃었다. 시준도 이처럼 학구열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반동이란 혁명으로 나아가는 물을 틀어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자를 말한다.”
“혁명이라 하면 그 왕과 귀족을 죽인 프랑스 사람 같은 것인가요?”
다른 조지가 놀라서 물었다. 이 조지는 견문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다. 불랑국 사람들처럼 누구를 죽이고 불 지르는 일은 혁명의 본의라고 할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는 또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도 하였지 않느냐? 참으로 이 말이 옳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한 사람처럼 흐르는 것이다.
다시 너희의 현인 그리스도의 말을 들자면 그는 율법을 없애기 위해 온 것이 아니요, 새롭게 하여 주러 왔노라 하였다. 이처럼 혁명이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다. 바로 인(仁, Humanity)이 그 극에 달하여야 탄생하는 것이므로, 혁명이 구습을 훼철하지 않는 새로운 물길임은 자식이 부모를 없앨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유익하고 학문적인 종교 토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정약용은 회중시계를 슬쩍 쳐다보았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구나. 오늘도 혁명의 인을 내가 보여주리라. 모두 와서 이 빵을 떼어가라.”
일자리 있을 때도 좀처럼 볼 수 없는 흰 빵과 좀 묽긴 하지만 분명히 홍차였다. 차례 기다리던 굴뚝 조지는 앞의 조지가 울음을 터뜨리자 깜짝 놀랐다.
“오오, 당신은 동방에서 온 성인(聖人)입니까?”
“성인이라 함은 자기를 완전히 이기고 예로 돌아가 마침내 그 마음이 하늘의 마음과 같은 자를 말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혁명의 성인이라 한다면…….”
정약용은 그윽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지들의 눈에는 그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오직 모든 인민의 총의로 추대된 정시준 동지가 있을 뿐이다.”
***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 자딘은 공사관으로 출근한 정약용을 만나 보았다.
“공사 각하. 런던 시경이 지금 베이커 가에서 창궐한다는 ‘조지당(George’s Party)’에 대해 캐묻던데요. 뭔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처음에는 이름으로 봐서 신흥 왕당파인가 생각했던 경찰들도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정약용은 태연히 답했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경전을 가르쳤소. 거기 조지라는 자들이 많더군.”
“무슨 폭동의 조짐이 보인다 하던데……. 쓸데없는 짓 말라며 주의를 주고 가더군요.”
정약용은 준엄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짓이라니?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라. 역대 성군이라 불린 제왕 그 누구도 구휼을 게을리한 자가 없소, 오로지 그대들 서양의 열후를 제외하고는 말이오! 송나라 재상 범중엄이 보리 오백 석 실은 배를 친구에게 그대로 주어버린 아들을 오히려 칭찬한 뜻을 모르시겠소?
내가 친우라고 일컫는 그대 영길리국 사람들에게 부족하나마 그 일을 대신 행하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거기에 다른 뜻이 있을까 의심이나 하다니, 이로써 천하 사람들이 왜 영길리국을 벗하기 꺼려하는지 알게 되었도다!”
시준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윌리엄 자딘을 불쌍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정약용의 장광설 공격을 얻어맞은 윌리엄 자딘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급하게 사과했다. 베이커 가 주식 리딩방을 날려 먹을 수는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쪽은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길에 나가서 아무 조지나 붙잡고 물어보시오. 내가 한 일은 오로지 그대들이 모시는 그리스도의 경전을 공부하여 강(講)한 일밖에 없소.”
“그럼요. 런던 경찰이란 자들은 제 마누라도 진짜인지 침대에서 의심할 놈들이라 그렇습니다. 물론 신실한 종교 강의였겠지요.”
윌리엄 자딘은 땀을 닦고 나서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본국(고려)에서 온 서신이 있습니다.”
고려가 영국까지 무슨 정기선을 마련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연락은 자딘 조선 메디컬 컴퍼니나 동인도 회사를 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자딘이 가져왔다면 평시 연락이 아니라 뭔가 더 긴밀한 용건이라는 뜻이다. 자딘은 봉인이 단단히 붙어 있는 서신을 그대로 정약용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고려의 기밀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정중하게 자리를 떴다. 절대 정약용이 더 수다를 늘어놓을까 봐서는 아니다.
시준은 런던까지의 거리를 감안하여 최신 소식은 항상 정약용에게 먼저 보냈다. 이는 올해 초여름에 난 정치국 결정 – 다시 말해 류큐 공격과 대중국 공작에 대한 대강의 계획 및 방침이었다.
지금은 가을. 한 계절 만에 왔으니 엄청나게 빠른 셈이다. 봉인을 뜯고 암호를 능숙하게 해독한 정약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어났다.
그는 공사관 창문을 통해 날씨를 알기 힘든 런던 하늘을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아마 기랑이가 흔도사단으로 출발했겠군.’
편지를 쓴 시점에서는 시준이나, 심지어 기랑 본인조차도 떠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정약용은 정치국이 러시아와의 연계를 꾀한다는 것만으로도 두 가지 사실을 파악했다.
첫 번째는 공화국에서 사람을 보낼 때 영국 개항장을 통해 청 관리들이 득실대는 내륙을 가로지르는 것보다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을 택하리란 사실이었다.
중화 혁명당은 한중과 사천에 있으니, 그 가혹한 험로의 고난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쪽이 안전하다.
두 번째는 고려총포사연결회에서 총을 사들이는 만큼, 전면에 나서기 힘든 공화국이 정부 요인을 보내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준이 신뢰하면서도 능력이 있고, 무엇보다 러시아 인사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적당하다.
다만 아무리 정약용이라도 예상하지 못한 건 기랑의 커밍아웃이었다.
기랑의 성별을 시준 다음으로 대충 짐작하고 시준에게 그녀를 부탁한 사람이었던 정약용은, 제자가 심신 양면에서 심한 고생을 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시준은 제자가 아니다).
잠시 생각하던 정약용은 사람을 불러 네이선 로스차일드에게 연락했다.
그는 주책맞은 늙은이의 즐거움을 정확히 느끼며 혼자 웃었다.
“시준의 그릇은 어느 면모로 보아도 매우 커서 영웅이라 할 만하나, 여인을 거느리고 가내를 다스리는 데에서는 그렇지 못하니……. 어떻게 그 아이를 혼자 멀리 보낼 수 있다는 말이냐. 어리석음이 믿기지가 않는구나.”
정약용은 마치 옛날 제자 시절의 시준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꾸짖고 파이프를 물었다. 세인트헬레나에서 가져온 그 물건이었다.
“아무리 수평의 대의가 있다 하여도 여기에서는 연만한 어른이 도와야겠지. 자칫하면 기랑이가 크게 서운할 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올해처럼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데……. 잠깐, 혹시 이거 설마?”
정약용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떨쳐내고 실제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려 노력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것은 곧 결실을 맺었다.
흔도사단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려면 필시 토번이다.
영국 공사를 하고 있던 정약용은 광대한 북동 인도 전역에 걸친 영국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움직여 보는 데에는 공화국의 주석보다 주 런던 고려 공사가 나을 수도 있다.
특히 그 공사가 대부호 네이선 로스차일드를 런던 증권거래소의 동지로 삼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인간 사이의 여러 관계 중 하나인 채무관계는 어떤 엄숙하고 충성스러운 군신관계보다도 더 사람을 옭아맨다.
그들은 충분히 기랑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 예를 들어 지금 막 전쟁이 끝나 긴장 상태인 벵골-네팔 국경을 슬쩍 열어준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외방의 장군과 총독이며 고관대작 중에서 작년과 올해 우리 돈을 갖다 쓰지 않은 사람도 별로 없으렷다.’
정약용은 그 짧고 즐거운 상상을 금세 끝내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정약용은 잊지 않았다. 인도의 끈을 당기는 일은 스승으로서의 개인적 여가 활동일 뿐이다. 시준이 자기 친구 부탁하려고 영국까지 서신을 보낸 건 아니다.
그의 공식 임무는 공화국의 미묘한 움직임 사이에서 영국의 적대감을 사지 않는 일이었다.
로스차일드가 도착할 때까지, 정약용은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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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굴뚝 청소부와 음낭암 얘기는 1775년 의사 퍼시발 포트에 의해 발표된 내용입니다. 그것을 근거로 법이 제정된 것도 맞고요. 이 당시 의학 수준으로 거의 정확히 알아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콜타르의 피부 침착은 피부암의 원인이 된다고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2. 아직 영국에는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습니다. 노동자의 참정권이 없으니까요. 영국 노동당의 탄생은 차티스트 운동 등 여러 유혈사태를 거치고도 한참 뒤, 앞으로 반세기 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