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76. 여름이 없는 해(1)
알렉산드르 1세는 애용하던 바이콘(bicorne) 모자를 실내에서도 쓰고 있었다.
전 리투아니아 대공을 대하는 예우로 모범적이지는 않았지만, 베니그센이 그 정도로 러시아 최중요 인사라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베니그센은 알렉산드르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또한 합을 맞춰 주었다. 베니그센은 마치 여기가 실외라는 듯 모자를 벗어 예를 표했다가 다시 썼다. 황제도 그의 태도에 만족한 듯 보였다.
노인의 지혜란 이런 것이다.
이 당시 조선에서는 대머리가 존경받는 요소 중 하나였고, 서양에서도 흉이 될 사유는 아니었다.
허나 대머리와 로맨스를 한 손에 움켜쥔 남자는 기나긴 유럽사에서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정도가 있을 뿐이다.
로맨스 판타지 궁정을 현실에 체현한 국가 19세기 러시아로서는 민감한 일이다.
러시아의 활달하고 애정 넘치는 궁정 사교계엔 이미 정시준의 ‘그 책’이 좍 퍼진 지 오래다.
‘그 동방의 소설’은 그야말로 러시아 귀족들의 취향에 꼭 맞았다. 많은 부호들이 어떻게든 주영 고려 공사에게 접촉하여 ‘그 책의 진본’을 수집하려 했다.
정시준이 러시아어를 못한다는 점은 문제가 안 된다. 이미 프랑스어 번역본은 있고, 러시아 귀족들 중 러시아어를 못 읽는 자는 있어도 프랑스어를 읽지 못하는 자는 없다.
결국 알렉산드르는 모자를 쓰고 다니게 되었다. 그를 풍성한 미남으로 묘사한 시준 때문에 이렇게 되다니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황제로서는 고려에 선전포고라도 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 책과 황제의 머리를 번갈아 쳐다본 몇 명이 이미 대가를 치렀다. 명목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음란한 책의 소지’였다.
억울하다 말해선 안 된다. 교정 불가능하고 개인의 선택과 무관한 결함을 조롱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대 러시아 제국이라 할지라도 지금 차르나 21세기의 그 차르나 공히 어찌할 수 없는 게 탈모다.
전능한 신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되 딱 두 가지만은 금지했다. 그중 하나가 대머리의 엔트로피 역전이다(나머지 하나 역시, 점잖은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남자들의 염원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따라서 알렉산드르가 비난받을 여지는 없다. 그건 신의 뜻이니까.
소설 내용을 부정하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러시아 궁정이 로맨스의 본산이라 그런지 황후 엘리자베타와 서로 경쟁적으로 정부를 만들어대는 완전한 자유 결혼을 수행하고 있으니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한다고도 할 수 있다.
궁정 애정전선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나, 그는 농노 해방을 검토하고(검토만 했다) 그 전까지 신라 화백회의 비슷하게 돌아가던 귀족 정치에서 근대 관료제로 이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방면에서 의욕적인 황제 알렉산드르는 당연히 해외의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금쯤이면 장군도 들었겠지. 영국에서 고려 공사가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고 있다 하오.”
베니그센은 황제의 모자 쪽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폐하. 로스차일드가 협력하여 영국 국채를 능란하게 가지고 놀았다지요. 독일의 로트실트 본가도 급히 정시준과 접촉하려 제게 연락한 적이 있습니다.”
“아, 그것도 맞소. 그러나 내가 말하는 건 그 일이 아니외다. 지금,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 말이오.”
베니그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르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러시아 제국의 황제와 일개 은퇴 장군의 정보 수집력이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작황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지금 서유럽은 난리도 아니지.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사람과 짐승이 물어뜯으며 먹을 것을 다툰다면서?”
“크게 과장된 소문은 아니로군요. 본래 가난한 자들이 더 딱하게 됐지요.”
“그래요. 농사를 다들 망친 모양인데, 영국의 여러 곡물 거래소(corn exchange)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어왔소.”
이 당시 영국은 기초적인 선물거래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선물거래는 미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해 대규모로 거래되면서도 가치 변동이 우려되는 대표적 재화, 곡식이 그 선두주자였다.
단순하고 원시적이라 체제에 파고들 틈이 많으며, 현대처럼 엄밀한 규정도 없기에(있어 봐야 지키는 사람도 없기에) 여러 가지 거친 폭력과 비열한 사기가 난무하기는 하지만 이때 영국의 선물시장도 현대와 근본 개념은 같다.
따라서 21세기와 19세기의 곡물 선물거래자들이 갈망하는 소원도 같다.
‘제발 올해 날씨를 미리 알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 앞에, 동방의 예언자 정시준의 사도 정약용이 나타났다.
유럽에 희귀하던 중국학자 몇 명만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 정약용의 예언은 다음과 같았다.
“남방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뜨거운 불꽃이 땅에서 터져 나와 양기(陽氣)가 천지를 가득 채웠다. 음양 대체의 조화는 수평을 그 처음과 끝으로 삼는지라. 찬물에 갑자기 뜨거운 물을 부으면 냉기가 온수에 침투하여 마침내 미지근해지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올해는 이 북방에서 음기(陰氣)가 성하리라. 주석 동지의 교시대로 너희가 기르는 감자와 밀이 찬비와 서리를 맞고 시들어 버리는 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굶주릴 터이므로 서양 열국의 왕후장상은 특히 인민을 보살필 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유럽에는 환곡 그런 거 없다. 부자의 창고를 쥐새끼처럼 갉아먹는 빈민 놈들이 죽어 나가는 일이라면 유럽 대부분의 부유층과 지도자가 환영할 것이다.
공자가 동쪽 가서 살고 싶다 했지 서쪽은 언급도 안 한 이유가 이것이다. 서쪽에는 도통 도덕과 윤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약용이 강조한 복지 대비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정약용이 곡식 선물을 대량 매수하는 그 움직임에만 주목했다.
윌리엄 자딘과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기존에 남아 있던 영국 채권까지 팔아 선물을 사들였다. 그 성패의 근거를 묻는 자들에게 두 사람은 신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듣지 않으려 하는 자에게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다.”
사람들은 모두 작년 말을 떠올렸다. 야수의 심장 왕 첸은 베이커 가에서 이 비슷한 짓을 했다.
그때 망한 투자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떠올려 보면 또 공화국 놈들이 이상한 짓 벌일 때는 끼어들지 않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주식쟁이가 으레 그렇듯, 선물 투자자들은 긍정의 화신이었다.
‘로스차일드와 왕 첸이 팔았을 당시 제때 같이 매도해서 큰돈 번 녀석들도 많잖아?’
사람은 결론을 정해 놓고 생각하지, 생각을 해서 결론을 내는 동물이 아니다. 곧 투자자들은 자신의 결론에 적합한 근거를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엔 왕 첸처럼 수상한 점술이나 신비 의식이 아니라고. 특명전권공사가 정식으로 정부에 권고한 일이야. 분명 학문적 근거가 있지 않을까?”
“자딘 박사가 말하기를 몸이 체액의 균형을 맞추려 하듯, 이 세계도 마찬가지라서 한쪽에 열기가 치솟으면 한쪽은 냉기가 덮일 수밖에 없으니 그게 바로 동양의 지혜라던데.”
“그 새끼 의사 맞냐?”
“하지만 꽤 그럴듯하잖아. 때 맞춰 팔기만 하면 전혀 문제없어. 난 하련다. 지난번에 너무 많이 잃어서 이번에 복구해야 돼.”
도박과 금융 투자의 수없이 많은 공통점 중 하나는, 본전 집착하는 순간 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돈에 집착이 없는 사람이 왜 주식을 하는가.
결국 사람들은 이번에도 베이커 가 주식 리딩방에 몰리기 시작했다.
정약용은 시티오브런던에 있으므로 왕 첸 약방은 문순득이 혼자 책임지고 있었다.
정약용의 호령이 두려웠던 문순득은 점복을 그만두었지만, 이런저런 부가적 장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증권거래소의 신사들은 셔츠 안쪽이나 구두 뒤축에 남모르는 부적을 품고 다니기 시작했다.
차르 알렉산드르는 다소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 여름까지의 농사가 완전히 망했지 않소! 고려 사람들이 가진 증권 대부분은 가을 수확기에 맞춘 것이라 아직도 폭등하고 있어. 물론 작년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정부는 먼저 제재하려 했지만, 특명전권공사가 채권 이자를 활용해서 대규모 빈민 구호소를 조성하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는 모양이오.”
만약 지금 정약용을 막으면 폭동이 일어날 테니까 말이다.
황제는 유럽에서 흔했던 기독교적 자선의 관점으로 얘기하고 있으나, 아시아 경험이 있는 베니그센 장군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관념을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했다. 그들의 치부에서 그 목적은 영광과 정복보다 복지와 윤리에 더 맞추어져 있다.
“그렇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대충 대답하던 베니그센 장군은 알렉산드르의 얼굴에 떠오른 위험한 빛에 움찔했다.
러시아를 한동안 떠나서 잊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르는 합리적 개혁가(지망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비주의와 미신에 큰 관심이 있는 호사가이기도 했다.
다만 이런 태도는 당대 유럽 상류층에서 특이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서유럽에서 스팀펑크 찍는 동안 꿋꿋하게 판타지 로맨스 찍었던 러시아다. 백 년 뒤에도 라스푸틴의 질척한 안수기도가 먹히던 나라 아닌가.
그래서 알렉산드르의 말에는 들뜬 자신감이 있었다.
“정시준이 그토록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면 우리는 그와 손을 잡아야 하오. 투르크를 지금 당장 깨버릴 수는 없는 이상, 선조들이 개척하신 씨비르(시베리아)를 발판 삼아 극동에도 부동항을 검토할 필요가 있소.”
베니그센은 러시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부동항이란 말에 성적 흥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장군이기는 했던지라, 그 역시 부동항이 러시아인에게 가지는 의미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베니그센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일전에 진행하던 대로, 고려와 어떤 우호적 접촉을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고려하시는……?”
베니그센의 물음에는 네가 정말 그따위 책 내놓은 정시준과 공화국을 인정할 거냐는 의미도 조금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는 이미 자기 안에서 합리화를 완성했다.
유럽에 알렉산드르가 어디 한둘인가. 군주 중에서만 따져도 많다. 심지어 투르크에도 같은 이름의 이스칸다르가 있다.
그놈은 자기가 아니다. 머리카락 있지 않은가. 그 다른 알렉산드르가 나폴레옹과 무슨 짓을 하든 관계없다.
그보다는 국익이 중요하다. 단 한 번의 결단으로 국익과 자신의 사적 명예를 모두 보호한 알렉산드르의 어투에는 기쁨이 넘쳤다.
“바로 그거요! 이제 전쟁도 끝나고, 보나파르트를 그 불측한 소문과 함께 영구히 그의 무덤이 될 대서양으로 내쫓아 버린 이상 우리도 한숨 돌렸지. 그때 중단했던 사업을 재개할 때가 왔소.”
알렉산드르는 지도를 펼쳐 놓고 베니그센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베니그센도 옛날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땐 말도 안 된다고 웃어넘겼던 그 계획이었다.
구체적 방법론은 딱히 없지만 바로 그래서 그 결론은 웅혼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간단했다.
(이때는 그런 이름이 아니지만) 에베레스트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일직선으로 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북쪽은 전부 러시아 땅이다.
정말이지 루스키들이나 뿜어낼 법한 패기가 아닐 수 없다. 어설픈 각오로는 이 패기 앞에서 의식을 유지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젤토로시아(желтороссия), 그러니까 황(黃)러시아라고 불리는 이 계획은 사실 정규 국가 정책은 아니며 그런 논의가 정말 공론장에서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계획이 가리키는 목표를 향해 러시아가 19세기 중후반기에 본격적으로 돌진하는 것은 명백하다. 러일전쟁 때 최종 실패 판정을 받기 전까지 이 장대한 그림은 많은 러시아 민족주의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런 종류의 계획이 그렇듯 비슷한 구상은 그 전부터 엉성하게나마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알렉산드르로 하여금 역사보다 수십 년 일찍 의욕을 발휘하게 했다.
하긴 현대인이 보기에나 현재 극동 러시아의 지도가 익숙하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별로 아름다운 국경이 아닐 수 있다. 쥐 파먹듯 아시아 극동의 해안가 영토만 차지하는 것보다 그 옆까지 ‘안정적으로’ 다 얻는 것이 안보 면에서 좋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중국이 양해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젤토로시아가 본격 발동된 아편 전쟁 이후의 다 죽어가는 청나라도 그렇게는 해 주지 않았다. 물론 다른 열강의 방해도 고려해야겠지만, 지금의 청나라는 러시아가 단독으로 그 정도의 영토 할양을 강요할 만큼 약하지 않다.
그러나 알렉산드르는 지금 청의 정세가 19세기 후반기와 같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내가 정보를 모아 보니 중국은 영국의 침략과 내부 반란으로 나라가 거의 무너져가고 있다 하오. 장군은 일전 타타르인들과의 친분에 기반하여 뛰어난 외교 수완을 보여주었지.”
‘너희 타타르, 아니면 그쪽 타타르?’라고 물었다간 얼마 남지도 않은 수명이 단축될 터. 독일인 베니그센 장군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폐하.”
“그 일을 다시 한번 해주길 바라오. 고려와 중국 겸임 전권공사 신임장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지원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보상을 약속하겠소. 노구인 장군에게 미안하지만 조국을 지키는 지난 대전 때 그러했듯 부디 애써주시오.”
베니그센은 그 자리에서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미 모스크바로 불려올 때부터 이런 전개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차르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독일인을 백안시하는 타타르 귀족들에게는 아주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다. 러시아를 위해 안락한 노후를 통째로 포기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베니그센은 한 가지 사소한 욕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세계의 명사가 되어 있는 옛 친구 정시준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다.
베니그센은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마지못하다는 듯 수락했다. 곤란하게도, 알렉산드르는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기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
불타오르는 현청을 뒤에 둔 채, 중화 혁명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임칙서는 오족공화를 나타내는 육성홍기를 치켜들었다.
“동지들! 오늘 우리는 처음 이겼지만, 오늘부터 우리 혁명에는 승리뿐이리라. 저 반동 여진족은 처음 졌다 여기겠지만, 오늘부터 저들에게 남은 건 패배뿐이다. 이는 동방의 북두 정시준 동지가 보장한 연속 혁명, 연속 승리의 첫걸음이다!”
피로에 지쳤던 대장정 참여자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중화 혁명당원들은 정신과 육체의 고통도 잊고 커다란 함성으로 화답했다.
대장정을 시작한 지 거의 10개월. 광서성 오주부(梧州府) 등현(藤縣)은 중화 혁명당에 의해 함락되었다.
등현은 원 역사 태평천국의 난 당시 반란군의 주요 거점이자 경유지 중 하나였던 곳이다.
태평천국군의 진군로는 당시 기근이나 전화로 발생한 유민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관군에 쫓기던 초기 태평천국은 이 유민을 많이 흡수했다. 거대한 메뚜기 떼처럼 되어버린 반란군은 양광, 사천, 귀주 등 강남을 따라 동서로 오가며 여러 고을을 휩쓸었다.
중화 혁명당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 진군했다.
물론 일개중국, 오족공화를 앞세운 중화 혁명당을 그런 사이비 종교와 같이 보면 곤란하다.
임칙서가 지휘하는 대장정 역시 단순히 반란군 비적 떼의 집결이 아니었다.
중화 혁명당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적절한 위치와 적절한 시점에서 민초의 불만을 선동하고 사람을 집결시켰다. 100여 년 뒤의 대장정이 그러했듯 관군은 죽여도 죽여도 더 늘어나는 듯한 이 사람의 흐름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공화국에서 전달된 북두의 계시’ 덕분이었다.
서쪽으로 가라는 그 권고 서신 얘기가 아니다.
당시 시준이 생각한 대로 고려로서는 중화 혁명당에 더 이상의 대규모 지원이 곤란하다. 그러나 연락까지 끊긴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임칙서는 정시준의 예언, 그러니까 올해 여름부터 연기가 저 하늘을 가려 냉해가 덮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선이나 일본처럼 여기도 운남성 등 몇몇 곳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미리 곡식을 확보해 두고 흉년이 일어난 곳을 따라 혁명의 불꽃을 일으키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
“하지만 올해 남방의 흉년이 정말로 오다니, 정시준은 정녕 그대들의 말대로 신인이었던가.”
자신을 송주령(宋朱齡)이라 소개한 염(捻, 백련교 비밀결사)의 우두머리는 임칙서와 합류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증화 혁명당의 출현에 놀라 맞서던 등현은, 뒤에서 염군 마적 무리가 들이닥치자 허무하게 무너졌다.
지금은 이미 현청이 불타고 ‘반동 무리’가 줄줄이 기둥에 매달려 처형당한 지 오래였다.
대장정 이후 처음으로 몸 누일 곳을 얻은 중화 혁명당은 임칙서의 ‘해방구’ 선언에 맞추어 혁명 만세의 외침을 터뜨렸다. 동방의 북두성 정시준의 영도는 정확했다.
“그대들이 처음 정시준이라는 자의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는 어디서 운 좋게 때를 얻어걸린 방사가 날뛰는 것쯤으로 생각했소. 허나 이제는 감복할 수밖에 없겠구려. 다음에 또 온다면 꼭 만나보고 싶군. 그가 정말 혹세무민하는 무리라면 한 칼에 처치하겠지만…….”
송주령의 오만하기까지 한 발언은 허세가 아니었다.
염군이라 하면 태평천국의 난과 비슷한 시기 반란을 일으켰던 비적 무리 정도로 취급된다.
그러나 만약 이들이 태평천국과 제대로 연계만 했으면 청조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중국은 절대 외침에 의해서 망하지 않는다. ‘바깥’이라는 게 없으니까. 명을 멸망시킨 게 사실상 이자성이듯, 청을 멸망시킨 것도 염군과 태평천국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이 밀수꾼, 도적, 살인자 등으로 이루어진 잔혹하고 음습한 비밀결사의 대장은 이제 서른도 안 되어 보일 만큼 젊은 여자였다.
건륭과 가경 연간 대탄압을 당한 백련교의 자금을 관리하던 송지청(宋之淸)이 그녀의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당시 백련교의 총대장이 19살의 소녀 왕총아(王聰兒)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종교결사의 총대장이 대개 그렇듯 송주령도 백련교나 도술 자체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그건 수단일 뿐이다. 염군 같은 음지의 협(俠) 결사는 백련교보다도, 어쩌면 국가보다도 훨씬 오래된 개념이며 백련교니 팔괘교니 하는 것은 중화의 협객이 수천 년간 그때그때 바꿔 끼우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정시준이 자기와 같은 부류인지, 아니면 이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임청처럼 (대장정 중에 아무도 그를 안 챙겼다) 자기 거짓말에 자기가 빠지는 하찮은 인간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의 결과로 보면 아무래도 정시준은 ‘진짜’인 듯했다. 송주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동쪽을 쳐다보았다.
“허나 만약 일세의 영웅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해야 하오. 수평의 대의는 협과도 통하기에 합류했소만, 동지들이 정시준의 이름에 정신 못 차리는 것 같으니 내가 부득이 고언(苦言)하리다. 중화 혁명은 정시준의 고려국으로 하여금 이득 보게끔 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오. 알량한 ‘지원’으로 저 서양인들처럼 이것저것 뜯어가게 놔두어선 안 되오. 이건 우리의 혁명이오.”
이 젊은 여인이 풍기는 범상치 않은 기세에 잠깐 아연하던 것도 잠시, 임칙서는 곧 혁명당 중앙위원회 위원에게 마땅히 갖춰야 할 예우를 다했다.
“그렇소.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에 정시준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지만, ‘하나의 중국’만은 여기에서 간난신고를 함께하는 우리 중화 혁명당 동지들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이 틀림없소.”
염군의 근거지는 호북과 사천이다. 주로 강남에서 근거한 천리교 중심의 초기 중화 혁명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상성이라 할 수 있었다.
임칙서도 단지 시준의 편지 하나만 가지고 서방행을 결정한 게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아직 대규모 이주와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사천 일대는 상대적으로 조정의 통제력이 약했고, 따라서 훌륭한 혁명의 근거지가 될 수 있었다.
남의 집 신세 져야 하는 임칙서가 아무래도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사유다.
송주령이 약간 고압적으로 나오는 이유도 동일하다. 중화 혁명당의 대규모 인원이 사천에서 합류하면 염군도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동지의 뜻이 앞으로도 변치 않기를 바랄 뿐이오. 그리고 그 정시준이라는 자의 뜻도.”
“정시준을 경계하는 깨우침은 고맙소. 그러나 정시준은 하나의 중국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오. 아마 동지도 언젠가 그를 높이 평할 날이 올 거요. 불요불굴(不撓不屈)의 혁명 외길을 걷는 그 강대한 뜻은 고금의 어떤 사서에서도 읽은 적이 없는 것이었소이다.”
불요불굴의 강대한 퇴직 의지뿐인 시준이 들었다면 누구 얘길 하나 싶었을 것이다.
어쨌건 임칙서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송주령도 더 씨루지는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부하들에게 걸어갔다.
임칙서도 흥분한 동지들을 수습했다.
이 등현은 영구 거점이 되기엔 모자라다. 여기에서 재화와 인민들을 정돈하여 대장정을 서둘러 재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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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19세기 영국의 곡물 거래소는 거의 대도시마다 하나씩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성업했고, 현물은 물론 선물 거래도 활발했습니다.
2. 4체액설은 물론 이 시대에도 비과학적 이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렇게 반응한 거죠.
3. 젤토로시아, 즉 노란 러시아 자체는 러시아의 동방정책에서 실제로 있었던 계획입니다. 작중에서 이 계획이 불분명하다고 한 건, 과연 국가 정책이 저 에베레스트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라는 패왕색 패기의 영역까지 다다랐는가가 불분명하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그러한 영역 설정이 여러 문헌에서 언급은 되고 있습니다.
4. 송주령은 가상의 인물입니다. 다만 그 아버지로 설정된 송지청은 실존 인물이며, 백련교의 자금책도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집안을 뒤져 발견한 잔액만 은 2천 냥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규모였던 듯합니다.
당시 수괴 중 하나로 지목된 유지협의 위아래 사제간은 줄줄이 낚여 처형되었기에 일종의 측선 인물인 이 사람의 가계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송지청이 동료에게 살해당한 것도 송주령이 백련교 자체에는 큰 미련이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당대 체포당한 백련교도의 진술서가 남아 있기에 백련교 내부 관계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되어 있습니다. 관심 가시는 분들은 찾아보셔도 좋겠군요.
5. 작중 나왔던 장강 하류 개발처럼, 건륭-가경 시기에는 사천에 대한 대규모 이주와 개발도 본격 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