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24화 (224/284)

224화

75. 주석 동지의 기묘한 선거(2)

시준이 2대 총선거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런던에서는 때아닌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말로 해결하기는 좀 쑥스러운 치정 사건,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그래서 더 열 받는) 모욕, 서로가 상대방이 비열한 협잡꾼을 지지한다고 확신하는 정치적 견해차 등등 ‘불가피하게 결투가 필요한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으로 권총이 선호된 지는 오래되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증권거래소의 신사들은 세수할 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저 새끼의 마치 아이작 뉴턴과 같은 통찰력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거울을 쏴버리지 않은 건 최후의 분별력이라 할 것이다.

이때 런던은 러다이트 운동이 한창이었다. 기계에 의한 인류 지배를 200여 년 앞서 심각하게 우려하던 선각자들의 그 운동 맞다.

기계와 결탁한 자본가에 맞서 방적기와 방직기를 가차 없이 파괴하며 맹위를 떨치던 런던의 인류 저항군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망치와 도끼를 든 채 멈추었다.

‘공장주가 죽었다고?’

‘어, 물론 그들은 죗값을 받아야 하겠지만. 너무 반성을 심하게 하는 거 아냐?’

‘딱히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그냥 돈이나 다시 주면 되는데…….’

‘아니, 가만있어 봐! 왕 첸 약방에서 가져온 이 책에 따르면 반동에게 자비는 있을 수 없다고 되어 있어! 타협과 동정은 타락의 제 일보라고 하지 않나!’

‘그, 그럼 어쩌지? 계속 부술까?’

‘계속 부숴! 다 박살 내 버려!’

어쨌거나 죽은 사람은 공장이 부서지건 말건 관계가 없다. 그거라도 차압해야 하는 채권자들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총알 하나로 그 막대한 빚을 무효 처리해 버렸으니 그들 최후의 재테크는 훌륭한 가성비로 성공했다.

주식쟁이들에게 돈 빌려준 채권자 무리 역시 자기들도 그 방법을 본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자꾸 서랍을 힐끔힐끔 쳐다볼 정도였다.

다만 이 시대에는 권총과 총알도 그렇게 싸구려가 아니다. 그래서 굳이 죽는 순간에 빚을 하나 더 늘려야 하나 고민하던 더 많은 사람들은 그저 런던 브릿지로 가 템즈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아섰다. 강 전체에서 폭발하는 지옥 같은 악취와 그 냄새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 풍경은 삶에의 의지를 다시 가속시켰다. 저기 뛰어내렸다간 익사일지 병사일지 사인조차 불분명할 것 같았다.

대신 그들은 권총을 가졌지만 아직 자기 관자놀이에 그걸 쏴버리지 않은 명사를 찾아갔다. 최근까지 먼 국외에 있다 돌아온 귀족이라면 이 광기의 거품에 휩쓸렸다가 퍼퍼펑 터져나가지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 그 사람은 많이 바빴다.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을 방어하고 자신이 격상시킨 ‘영국의 국익’을 고위층에게 납득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 중국 공사 윌리엄 피트 암허스트는 좀 뒤늦게야 허겁지겁 시티오브런던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사실 암허스트가 손해 본 것은 별로 없어야 했다.

그는 거품이 끼기 전의 채권과 주식을 소유했고, 대폭락의 관성 때문에 본전에 비해 약간 하락하기는 했으나 그 낙차는 크지 않다.

게다가 많은 영국 귀족처럼 그의 재산도 대부분이 토지나 부동산이었다. 신흥 귀족이나 군인, 벼락출세한 상인 및 자본가들과 전통적 봉건 귀족은 약간 결이 다르다.

그러나 많은 귀족처럼, 암허스트 역시 자기가 중국 가 있는 동안 자산 관리 대리인에게 전권을 맡겨 놨다는 게 문제였다.

암허스트의 대리인들은, 돈이 복사가 되는 올해의 런던에서 실적을 내지 못한다면 무능을 증명하는 꼴이 될 거라 생각했다.

기독교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태복음 25장의 비유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달란트를 나누어 받은 하인 세 명 중 그것을 가지고 장사하여 이득을 낸 두 명의 하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었다.

반면 그것을 그대로 땅에 파묻어 두었던 하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다.

물론 그 ‘무익한 종’은 주인의 저주와 함께 내쫓기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도무지 물가 상승률이나 감가상각이라는 개념을 모르고, 한 달란트가 묻어 두면 영영 한 달란트인 줄 아는 어리석은 하인의 모자란 경제관념은 그렇게 통렬한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고 그리스도는 역설했다.

다만 애석한 건, 성경에 ‘그러다 꼴아박았을 경우’에 대해서는 안 나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라클 모닝을 외치는 자기계발서에 (일자리를 보전한 채) 전날 밤 일찍 퇴근해서 자는 방법은 안 나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로드 암허스트는 분명히 땅이어야 할 자신의 재산이 돈으로 바뀐 다음, 국채를 비롯한 ‘왕 첸의 보증 주식’에 투자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그건 모두 증발해서 하느님 나라로 사라졌다.

암허스트는 당장 대리인도 똑같이 천국으로 보내주기 위해 그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가 천국에 가기 모자라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한 대리인들은 거의 전부 인세의 갈피로 튀어 버렸다.

도망치지 않은 사람은 알아서 먼저 천국행 편도 티켓을 끊은 뒤였다. 암허스트는 아직도 초연이 풀풀 올라오는 것 같은 티켓 발권기를 쳐다보다가 괴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그 강경한 기세 앞에서는 외무장관의 관저 직원들조차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

외무장관 로버트 스튜어트는 신사의 예법에 어긋나게도 홍차를 술처럼 후루룩 마셨다.

안 그러면 이걸 눈앞의 저 새끼한테 끼얹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말이오. 남작. 이 폭락 사태에 내가 관여했느냐는 그 소리는 그만 짖어도 되오. 벌써 일곱 번째 들었으니까. 그리고 관여한 게 맞소.”

“뭐요?”

안 그래도 윌리엄 드루리 때문에 아일랜드인에게 불만이 많던 암허스트는 발끈했다.

그러나 그는 곧 품 안으로 가져가던 손을 멈춰야 했다.

그가 동아시아에선 무소불위의 병력을 휘두르는 권력자였을지 몰라도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애초에 당시 총리 스펜서 퍼시발이 왜 그를 중국에 보냈는가. 가서 객사해도 별 부담이 없어서다.

그는 ‘의심스러운 경영 능력’으로 소환된 전 공사일 뿐이다.

로드 암허스트가 명문가 출신이며,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와도 친분이 깊다는 사실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그 정도 타이틀 가진 인간쯤이야 런던에 득실거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눈앞에 있는 로버트 스튜어트도 아서 웰즐리와 같은 ‘얼스터맨(Ulsterman)’, 아일랜드계 정치인이다.

“하지만 관여했다는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하시오. 제기랄, 난 정말 최선을 다해 막았단 말이오! 처벌받지 않는 선행은 없다[No good deed goes unpunished]더니만, 런던의 멍청한 투기꾼들이나 그에 충동질당한 당신이나 똑같은 수준이군! 내가 그 두 사람을 설득하지 않았으면 런던 증권거래소는 말끔하게 새단장할 수 있었을 거요. 아마 깨끗하게 불타버렸을 테니!”

스튜어트는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로드 암허스트는 런던 증권거래소 회원 전체가 아시아인과 유대인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럼 그걸 가만히 놔두었다는 말이오? 이건 고려와 유대의 더러운 자본이 문명인의 자본 체계를 뒤에서 칼로 찌른 것이 아니오! 이 심대한 배후중상을 내버려 두고 나서야 전쟁에 몇 번을 이기든 무슨 소용이 있소? 무슨 핑계를 대서든 모두 죽여 버렸어야지!”

로버트 스튜어트는 자기도 그 생각 잠깐 했다는 고백은 하지 않았다. 그건 신사답지 못하다. 그래서 스튜어트는 그저 버럭 소리 질렀다.

“이봐! 내가 왜 당신 뒤처리를 가장 더러운 방식으로 해야 해? 어쨌든 그 벽지에 조용히 박혀 있던 청의 속국을 이렇게까지 국제무대로 올라오게 한 건 당신이야! 베이커 가로 권총이라도 들고 찾아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쇼. 하지만 나는 평화적 해결을 선호한단 말이오.”

암허스트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였다.

영국인이 평화적 해결을 이야기하다니 저자는 미친 게 틀림없다.

비록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로버트 스튜어트는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친 거나 다름없는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암허스트는 그 내용을 물었다. 그리고 스튜어트는 선선히 대답했다.

“전쟁이 끝나면 군축은 필수적이오. 빈에서 협의될 내용을 미리 지불한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보유분을 전부 팔아버리는 사태를 막는 대가로 내각은 고려인민공화국에 대한 군함의 양도를 허가했소.”

암허스트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미쳤다. 그리고 그는 말을 속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군함을? 당신 미쳤어?”

“당신만큼은 아니오. 당신처럼 아무 소득 없이 군함을 말아먹진 않았거든. 게다가 그건 ‘허가’의 대가고, 군함의 대금 자체는 그들의 일부 채권을 다시 영국 정부에 매각하는 형식으로 치렀으니 엄연한 판매요.”

“젠장, 그건 그 아일랜드 새…… 드루리 제독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서, 무슨 배요?”

“배‘들’이지. 전열함 같은 거야 줘도 못 쓸 테고 해서 모두 프리깃이오. 큰 것만 따지면 4척이군. 아폴로, 안드로마케, 오로라, 그리고 봄베이에 있는 도리스까지. 자잘한 보급함이나 포함도 있지만 그건 제하고……. 어차피 하층민들 손에 결딴날 방직기랑 펌프 등 기계류도 좀 실어줬소. 공사 정약용의 말에 따르면 정시준은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지도자 같더군.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었어.”

유럽에서는 전략 자산이라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전부 30문 이상의 본격적 신형 전투함이다. 로드 암허스트는 그게 아시아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게 다 얼마인지 알아? 5급 프리깃 4척에 무장까지 포함이면 아무리 싸게 잡아도 15만 파운드야!”

암허스트가 소리를 지르자 스튜어트도 더 참지 않았다.

“거지 같은 야만인 군대 상대로 힘자랑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얼간아!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인조차 너보다는 똑똑하니까 하나 마나 한 소리 좀 꽥꽥대지 마! 고려 공사가 군함값으로 영국 정부에 매각한 채권은 20만 파운드다!”

암허스트는 말문이 막혔다. 그게 ‘일부’라는 말인가?

‘이 새끼들 대체 얼마나 쓸어간 거야?’

그리고 그러는 사이, 로버트 스튜어트는 노기를 가라앉히려 (정약용이 선물한) ‘고려 담배’를 물었다. 잠시 후 침착을 되찾은 스튜어트는 암허스트가 계속 화를 낼 명분조차 틀어막아 버렸다.

“어차피 군축 과정에서 팔 물건이어서 해군경도 동의했소. 밴시타트(Vansittart, 당시 영국 재무장관 니콜라스 밴시타트) 장관도 좋아하더라고. 10년 가까이 된 배들을 건조비 다 받고 판 것이나 다름없다며 말야.

여기까지 말했으면 원숭이도 이해하겠지만 원숭이만도 못한 당신에게는 특별히 설명해 드리지. 고려 공사가 비싸게 내고 간 건 그들이 호구여서가 아니야. 이건 영국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공화국의 제스처라고. 그런 국제 사정까지 고려해서 내각에서 다 추인된 일이니 당신 따위가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은 없소. 됐소? 용건이 끝났으면 나가보시오.”

더 떠들면 고려 말고 로스차일드에 내어준 한층 은밀한 거래도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스튜어트는 거기서 대화를 끝냈다.

스튜어트에게는 그깟 프리깃 4척보다 그쪽이 더 뼈아팠다.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군함 대신 더 음침하고 치명적인 것을 가져갔다.

물론 로스차일드가 당장 영국 정부에게 이스라엘 내놓으라고 할 처지는 못 된다.

그 땅이 술탄 마흐무드 2세의 것이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었다. 영국이 언제부터 자기 것으로만 정직하게 거래했다는 말인가.

그런 사유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다만 지금의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단독으로 어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스만이 딱히 강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나라가 방해할 게 뻔해서다. 게다가 지금 다시 그런 대전쟁을 일으키느니 그냥 로스차일드가 채권 다 팔아버리는 쪽이 낫다.

그것을 잘 아는 네이선은 무리하지 않았다.

그저 전통적인 ‘밑준비’를 조금 더 확대했을 뿐이었다.

그 막대한 금력을 바탕으로 정부에 자기 사람과 눈을 심는 일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예전부터 해 오던 일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미래 세대에서의 이스라엘 건설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추천’했다는 점이다.

공무원 채용 시험 같은 게 없는 영국에서 인맥과 추천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유대인의 심복들이 물감처럼 퍼져나간다면 분명히 언젠가 뒤집기 힘든 판이 온다.

암허스트가 이 일까지 알았다면 배후중상이 어쩌고 다시 반복했겠지만 그는 거기까진 듣지 못하고 쫓겨났다.

스튜어트는 들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 찻잔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불가해한 신경질에 사로잡혀 그것을 벽에 힘껏 내던져 버렸다.

***

고려인민공화국 2대 총선거 준비위원회의 결성 자체는 서둘러 발표되었다.

그 날짜는 조선 사람들이 통상 ‘아직 설날이 한창’이라고 인식하는 정월 초엿새였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상임위원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의원들 중에서 뽑아 구성한 준비위원회는 결성을 발표한 열흘 후부터 전국의 선거 후보자 활동을 허가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간 전국에 좍 깔린 천리마 봉화(텔레그라프) 덕분이다.

어차피 지금의 공화국이 새 영토를 얻을 곳은 없다. 그러나 영토 내의 밀도 확대는 영토의 확대와 비슷하거나 더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그간 정치국도 도로는 다 못 닦을지언정 오두막이나마 텔레그라프는 촘촘히 세워 두었다.

물론 급조인만큼 중간에 오독되거나 끊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삼화에서 서신을 가진 배가 출발하여 제주도에 닿았을 때쯤에는 그럭저럭 전국에 2대 총선거 소식이 전달되었다.

거기에 명시된 선거의 대강은 1대 총선거와 같았다.

각 고을에서 인민위원회 위원을 선거하며, 위원들이 위원장을 선거하고 그 위원장들이 대의원으로서 평양에 모여 상임위원회를 선출하는 원시적 간접선거제였다.

그리고 이 상임위원회의 주도로 국무당 간부와 주석을 뽑게 된다. 혁명군 지휘관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규모다. 단순히 지역구가 전국으로 확대된 것뿐만이 아니라, 후보 수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폭증했다.

이제 고려 사람들은 ‘열여섯 살만 넘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수평하게 출마’할 수 있다는 정치국의 선전을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더 이상 정치는 ‘원래 그런 거 하던 사람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심지어 몇몇 지역에서는 집안 여자들까지 출마하라고 떠밀었다(이건 시준도 놀랐다). 부녀회가 남자들이 간섭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권력을 쥐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선 사람이 대부분 가난해서 기탁금 같은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지라, 특별히 후보자에게 제한을 두지 않았던 점이 패착이었다.

평양 인근에서 한 동네 주민 1할이 후보자로 나오려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익순은 자신이 주도하는 첫 번째 사업에 암운이 드리웠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익순은 거품을 물고 시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제 보직이동 확정된 기분으로 마음 떠난 시준은 너희 준비위원회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김익순은 원래 역사에서 홍경래에게 항복할 때도 그처럼 고민하지는 않았을 진지한 태도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가 보기에 이건 2대 주석을 당연히 할 게 뻔한 정시준 주석 동지의 ‘시험’이었다. 기껏 준비위원장 자리 받았는데 여기에서 ‘주석 동지의 원만한 재선출’에 기여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서 그의 자리는 없을 게 분명했다.

이틀도 되지 않아 급한 대책이 ‘추가 공지’되었다. 이제 나도 인민위원장 되어 보자고 나섰던 전국의 여러 정치 꿈나무들은 좌절했다.

“인민위원회에 출마하려면 백 명의 이름을 받아야 한다고?”

게다가 그 방식도 서명 같은 편리한 – 그래서 위조하기 쉬운 – 것이 아니었다.

백 명의 인민패(人民牌)를 모아 와야 한다는 인간 사냥꾼 같은 규칙에서 정치의 달인 김익순의 꼼꼼함이 빛났다. 중복 서명이나 서명 부풀리기는 불가능하다.

차마 이제 와서 공탁금 내라는 식으로 수평도를 모독할 수 없는 공화국의 처지를 감안하면 김익순의 대처는 꽤나 훌륭한 것이었다. 출마 열기는 끓어올랐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식었다.

총선거 한 달 전까지는 후보 등록을 마쳐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래도 백 명은 모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하는 유력자들, 혹은 지난 5년간 인민의 인망을 많이 얻었노라고 자신하는 기존 인민위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시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준도 안다. 김창시는 이미 자신의 퇴위를 받아들인 것 같지만 – 안타까운 착각이었다 – 공화국에 간부가 그뿐만은 아니다. 지금부터 자신이 출마하지 않겠노라고 말하면 반대할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으냐?’

시준은 후보 등록이 마무리되는 바로 그때,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물으면 그때 대답해 줄 생각이었다.

규정상 도저히 그를 후보로 등록할 수 없는 시점의 폭탄선언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 후 2대 주석이 자신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어떻게 결정할지 갈팡질팡하는 동안 이강회가 싣고 오는 돈 받아서 노후 정리를 하면 된다.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었다.

이처럼 시준의 준비는 더할 나위 없이 치밀했다.

총선거와 동시에 가부 투표를 거행할 ‘고려인민공화국 헌법’도 마찬가지였다.

시준은 섣불리 여기에 ‘연임 금지’ 얘기를 넣지 않았다. 주석은 종신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르니까.

처음 계획했던 겸직 금지만을 넣었을 뿐이다. 다만 특별법제위원회에서 ‘초대 주석은 예외’라는 어디서 많이 본 단서조항을 삽입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쪽도 무작정 정시준이니까 된다는 게 아니다. 근거가 있었다.

특별법제위원회의 위원장이며, 예전엔 충청 감사 했던 서유문이 말했다.

“이미 주석 동지께서는 인민의 열망에 따라 여러 직위를 겸하고 계시는데, 이 헌법이 승인되면 주석 동지께서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게 되오이다. 이는 괘씸한 반동들이 주석 동지의 예술영도를 폄하하는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정통 명문가의 후손으로 조선의 최고 고관 중 하나였던 서유문의 발언에서는 과거 유신의 흔적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제초의 스피드에 치어 날아가면서 머릿속에서도 뭔가 날아간 것 같았다.

시준은 뭔가 불안했지만 ‘내가 2대 주석 안 하면 그만이지’ 하며 그쯤에서 타협했다.

그런저런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다행히 아직은 시준에게 출마 안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해가 내일은 어느 쪽에서 뜨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인민 모두는 주석 동지가 100명을 못 모아서 뛰어다녀야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평양 부민 중 많은 수가 ‘나는 주석 동지를 위해 인민패를 아껴놓겠노라’며 평양부 인민위원회 출마 희망자들을 난감하게 하고 있는 상태였다.

시준은 이때부터 슬슬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주석 동지만의 눈치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쯤 귀환하고 있던 농상진흥부장 이강회는 이 혁명의 대성과를 한시바삐 인민과 주석 앞에 바쳐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강회는 한편으로 고용주로서 강권하며 한편으로는 영국 해군의 항해술에 대한 자존심을 교묘히 건드렸다. 베이커 가의 왕 첸으로 길러진 그의 능력은 투박한 군인쯤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공화국에 ‘고용’된 신분인 함장들은 떨떠름해하면서도 이강회의 말을 따랐다.

HMS 도리스까지 합류한 영국 프리깃 4척과 포함 3척, 기타 보조함 9척 등 16척의 대함대는 케이프타운에서 통상 항로를 따르지 않고 동진했다.

‘울부짖는 남위 40도대’의 맹포한 바람이 시준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이강회를 동쪽으로 실어날랐다.

그 군함에 실린 막대한 금은과 곡식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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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러다이트 운동은 시준이 일으킨 게 아니라 이때 원래 한창이었습니다. ‘처벌되지 않는 선행은 없다’란, ‘물에 빠진 놈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와 비슷한 뜻입니다.

2. 열거된 군함 모두는 실제 이때쯤 해서 영국 해군이 다른 나라에 매각한 배들입니다. 프랑스, 오스만,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 팔려나갔죠. 이하 나머지 정보는 본문과 같습니다. 다만 HMS 오로라와 HMS 안드로마케는 원래 프랑스 배였습니다.

3. 마태복음 25장의 그 비유는, 오해를 막기 위해 통설 해석을 덧붙이자면 ‘알아서 재테크 해 놨어야지’ 하는 무슨 오백원 주고 빵 사고 천원 거슬러 오라는 수준의 얘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은총과 재능을 썩히지 말고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이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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