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74. 희만 선생의 기묘한 모험(1)
정약용은 눈을 부드럽게 내리깔았다.
“그저 만나는 것뿐이라면 내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 귀양지의 관헌에게 물으면 될 테니. 어디 속마음을 말해 보시오. 비록 혁명 동지는 아니나, 우리는 오륙 년이나 함께한 벗이 아니오?”
그레테 자작은 정약용의 우호적 태도를 보고 결심한 듯했다.
그는 정약용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였다.
“적절한 교섭이 있을 경우, 나폴레옹 황제는 세인트헬레나 같은 오지에서 벗어나 그 신분에 어울릴 만한 의료와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경계할 테니 유럽에 돌아오기는 힘들겠지만 아시아라면 또 다르죠.”
“그를 공화국으로 데려가라고? 영길리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겠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려와 영국이 향후 우호적 관계를 맺는다면, 영국은 고려를 믿고 나폴레옹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도 황제의 처우에 대해 계속 거론될 국제적 구설수가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게다가 세인트헬레나가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외딴 섬 같지만 생각해 보면 미국과는 상당히 가깝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미국인들이 황제의 해방을 위해 모금도 하고 있다 합니다. 그런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먼 고려에, 그것도 영국의 우호국에 보낸다면 런던도 안심하겠지요.”
이미 훌륭한 평안도 신디케이트의 일원인 정약용의 감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남을 꾀려는 자 특유의 사기꾼 냄새다.
원격지의 통제력 약화 문제는 중국 공사와 극동함대가 있다 해도, 영국이 미쳤다고 그 악마의 두뇌 조제프 푸셰가 있는 곳에 나폴레옹을 보내겠는가.
푸셰라면 2년쯤 뒤에 황제의 구출자로서 나폴레옹을 대동한 채 파리에 짠 하고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헛소리 그만두라고 호통치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에 부채를 내렸다.
“만리의 강산에는 만리의 세상. 하나의 천자에게는 하나의 신하라[萬里江山萬里塵 一朝天子一朝臣]. 불랑국이 뒤집힌 이상 그대는 혁명 이전의 주군(부르봉 왕가)을 찾아갈 생각이라 하지 않았소? 이제 와서 패왕을 위해 일하려 들면 본국에서도 의심할 텐데.”
“유럽의 정치는 아시아와는 다릅니다. 나폴레옹과 오래 전쟁을 했지만 아직 많은 유럽인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제가 세인트헬레나의 죄수를 개인적으로 방문한다 해서 유럽에서 큰 불이익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내가 그를 만난다 하더라도 특별히 영길리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지는 않겠구려?”
그레테 자작은 정약용이 넘어왔다고 생각하고 웃음을 감추었다.
“그렇습니다. 몽똘롱(Montholon) 후작 샤를 트리스탕(Charles Tristan]이 유배행에 기꺼이 함께했다 합니다. 영국군이 허가를 내 주면 그를 통해 면담을 추진하면 될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편지 한두 번은 주고받은 적이 있으니 박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자는 믿기 어렵습니다. 황제를 위해 가족을 이끌고 세인트헬레나까지 따라간 후작보다 더 열렬한 충신은 없겠지요.”
그 평가는 사실이다. 몽똘롱 후작은 정말 열렬하게 황제에 대한 충성을 바쳤다.
얼마나 충성스러운가 하면,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이 자기 부인 알빈(Albine)과 관계를 가지는 것도 묵인했을 정도다.
몽똘랑 후작의 끈적한 충성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나폴레옹의 침실 하인 두 명은 후작이 충실하게 믿었던 하녀를 두고 삼각관계에 있었다. 그 둘은 교대로 하녀와 연애했고 끝내 한 명이 결혼까지 한다.
위아래로 아주 잘하는 짓이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나폴레옹도 유배지 생활이 어지간히 편했던 모양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남대서양의 섬 세인트헬레나에서는 이렇게 뜬금없는 치정 로맨스가 꽃피고 있었다.
물론 귀양지의 로맨스라면 정약용도 만만치 않다.
허나 지금은 시준 덕분에 강진에서 오래도록 있지 않아 작첩할 일도 없었기에 떳떳하다. 게다가 천하의 정약용이라도 도저히 그런 일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정약용이 짐작할 수 있었던 사항은, 그레테 자작이 굳이 ‘충성심 열렬한’ 측근을 접선자로 추천하는 이유였다.
그토록 총애하는 근시라면 반드시 나폴레옹의 탈출에 마음을 두고 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정약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도착하거든 형세를 봐서 얘기해 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각하. 사실 제 희망뿐만은 아니고, 명사의 사교에서 이러한 기회도 흔치 않습니다. 패배했다고는 하나 일세를 풍미한 영웅이니 그가 가진 전략적 안목과 재능은 필시 각하의 깊은 학문과 어울릴 것입니다.”
그리고 공화국의 군대를 강화시켜 줄 수도 있다.
영국 체계와 이상한 고려식 체계 – 정치장교 등, ‘주석 동지의 예지’로 들어간 사상 의심스러운 체제다 – 가 좀 섞여 있기는 하나 혁명군은 기본적으로 프랑스식 훈련을 받았다.
따라서 나폴레옹의 지휘도 잘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야전 지휘관으로서의 나폴레옹은, 항우가 그러했듯이 마지막 전투를 제외하면 대체로 무적이었다.
‘대체로’라는 점에서 항우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정약용은 그 설명에 사람 좋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레테 자작은 열정적인 태도로 정약용의 손을 잡았다.
“아마 영국도 입장이 있으니 공식적으로 놔주지는 못하겠지요. 형태는 아마도…… 가벼운 탈출극이 될 겁니다. 각하의 교섭과 손발을 맞춰 제가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잘만 된다면 공화국은 이 시대 최고의 명장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받을 수 있겠지요.”
“든든한 일이오.”
보통 일이 아닌 만큼 자작 또한 원래 마드라스에서 세인트헬레나까지 가는 기나긴 시간 동안 천천히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아시아인 외교장관은 예상보다 쉽게 넘어왔다. 그레테 자작은 뒤돌아서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
어쨌든 나폴레옹의 일은 어디까지나 가외적인 것. 정약용의 공식 임무는 다망하다.
그는 우선 마드라스에서 인근의 초석이나 기타 공화국이 수입하는 물건을 조사하고 여러 거래처 후보를 방문했다. 동인도 회사가 값을 얼마나 사기 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일단 사기를 친다는 건 기본 전제였다).
마드라스 총독 휴 엘리엇(Hugh Elliot)은 정약용을 그런대로 환영했다.
다만 그가 은근슬쩍 돌리는 말로 물어본 ‘런던에 명성 자자한 고려의 책’에 대해, 정약용이 기쁘게 월간 대혁명을 내놓았던 일은 그를 약간 아쉽게 했다. 정약용은 불민한 제자들과 달리 그런 음란소설 같은 거 모르는 고아한 선비다.
허나 일거에 모든 종류의 신분을 척결했다는 공화국의 사례는 저명한 노예폐지론자 휴 엘리엇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엘리엇 개인적으로도 영국의 귀족 제도는 다소 불만이었다.
자기 아내를 빼앗아간 불륜남에게 총칼 좀 휘둘렀다고 그렇게 따돌리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몽똘롱 후작 샤를처럼 밸도 없는 인간은 유럽 신사의 기준에 미달이다. 간음하는 금발 양아치 따윈 당연히 강철로써 훈도해야 하지 않는가?
귀족원(상원)은 그런 정당한 행위를 비난하기보다 휴 엘리엇이 백작가의 자손이라는 점을 더 무겁게 고려했어야 했다.
그래도 엘리엇 가문의 명문 외교관 계보에서 휴 엘리엇이 쌓은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그의 아들 찰스 엘리엇이(진짜 아들 맞다) 중국에서 홍콩을 빼앗아 옴으로써 경(sir) 칭호 받고 가문의 위명을 드높이니 오욕의 세월도 길지는 않은 셈이다.
그런 것까진 알 도리 없는 정약용도 휴 엘리엇을 격려했다.
“허어. 그런 일로 선조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게 하다니 딱하게 되었습니다. 총독의 행동은 비록 병기를 들었다 하나 옛 협(俠)의 이치에 닿아 있는 것인데. 무릇 대장부의 큰 뜻을 위해서라면 검을 드는 의기와 벌을 두려워 않는 용기를 어찌 마다하겠소이까?”
상간남에게 칼빵 놓은 업적으로 자객열전에 올려 달라 하면 사마천도 주저할 것이다.
하지만 외교가 뭔지 아는 정약용은 그렇게 말해 주었고 휴 엘리엇은 크게 기꺼워했다.
“역시 사람의 도덕은 동서양이 모두 같은 법. 외교장관 각하의 풍부한 교양 덕분에 매우 유익한 토론이었습니다. 그 ‘평평한 물의 사상[水平道]’은 이름대로 과연 공평무사한가 봅니다.”
“이 사람이야 무어 대단할 게 있겠소. 모두가 우리 주석 동지의 영도 덕분이지요.”
“그러시다니 저도 꼭 정시준 의장을 만나고 싶군요. 지금 아시아 쪽의 외교가 진행되는 상황으로 봐서 고려도 정식 공사가 얼마 안 가 주재할 것 같은데, 그때 뵙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만약 그대의 왕께서 우리에게 소견을 묻는다면 총독을 힘써 천거하겠소이다.”
엘리엇은 정약용을 정중히 맞이하고 머무르는 동안의 편의를 돌봐 주었다.
공화국이 인도까지 배를 보낼 처지는 아니지만 엘리엇의 주선으로 소소한 현지 무역이 이루어졌다. 정약용은 이미 런던에서도 높게 평가받는 의료 대국 조선의 약재를 인도에 전했다.
그렇게 인도에서의 용건을 마친 사절단은 다시 출발했다.
폐선 처리될 배라 그런지 여기저기 불안하기는 했지만, 데이비드 스콧은 덩칫값은 할 만한 배였다. 또한 선장 존 로크도 그 거선을 다루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고려인민공화국의 사절단은 몇 번의 풍랑을 제외하고는 별일 없이 항해했다.
그해 겨울, 데이비드 스콧은 케이프타운을 거쳐 남대서양에 진입했다.
***
현실적으로 나폴레옹을 다시 한번 탈출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른 것 다 제치고 그들이 탄 배가 누구의 배인지만 떠올려 봐도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나폴레옹이 더 이상 유럽에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영국이 고려와의 관계를 감안하여 다시 한번 모른 척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려가 나폴레옹에게 그렇게까지 해 줄 의리가 있는가?
게다가 그레테 자작이 그 정도로 나폴레옹에 대한 충성에 불타는 열사인가?
정약용이 보기엔 둘 다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중에서 정약용은 후자에 집중했다.
이 프랑스인은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 정세에 어두울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정약용은 엄연히 일국의 외교 책임자다. 그가 보기 싫어도 각종 자료와 지식이 취합된다.
무엇보다 ‘주석 동지의 예지’는 이강회에 이어 정약용에게도 주입되었다.
애초에 그레테 자작이 조제프 푸셰와 달리 마음 놓고 공화국을 떠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혁명정부나 나폴레옹보다는 부르봉 왕가 쪽에 더 기울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담스러운 계획을 굳이 추진할 이유가 없다. 도주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나폴레옹의 석방 교섭 시도만 해도 영국의 비위를 크게 상하게 할 일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레테 자작이 어째서 날이 갈수록 정약용에게 나폴레옹의 장점을 늘어놓고 있는가?
정약용은 지금 평양에 있는 가형과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우리가 영길리국과 버성기기를 원하기 때문이지. 교활한 오랑캐 녀석.’
정약용이 나폴레옹의 위명에 홀려, 군사력 빈약한 공화국 혁명군을 보충하기 위해 그를 영포(英布)의 자리에 놓으려 무리수를 두는 것이 바로 자작의 희망 사항이다.
비록 공화국에서는 초연한 듯이 행동했지만 프랑스로 돌아가서 변명 대신 내밀 공이 필요한 것은 그레테 자작도 푸셰와 같다.
고려인민공화국이 영국과만 수교를 맺었다면 조제프 푸셰 사절단의 임무는 완전히 실패다.
비록 나폴레옹이 시킨 임무라고 하나, 극동아시아에서 전열함 4척을 잃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부르봉 왕가라고 해서 딱히 더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와서 고려에게 대충 망한 프랑스와도 수교하자고 해 봐야 비웃음밖에 살 게 없을 테니, 남은 선택지는 밥상을 엎는 것뿐이다.
나폴레옹의 탈출 시도가 고려인민공화국에 의해 획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고려와 영국의 관계는 화끈하게 뒤틀어진다. 영국에게 있어 고려와의 외교는,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지만 나폴레옹보다 무거운 사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작이 얻어갈 것은 하나 더 있다.
부르봉 왕가 치하에서 무사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과 적대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그가 유달리 야심이 강해서가 아니다. 이건 출세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다.
바로 그래서 그레테 자작은 ‘탈출극’을 언급한 것이다.
그간 철저하게 공화국에 녹아든 푸셰와 달리,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의도 하에 거리를 두었던 그레테 자작이 본 조선인은 단순했다.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그냥 항아리와 시멘트로 해결하는 족속 아닌가.’
(당연히 잘 안될) 이감(移監) 교섭이 실패했을 때, 혁명 세력이라면 조선 말마따나 ‘과부 보쌈’하듯 나폴레옹을 납치하려 시도하는 것도 부자연스럽지 않다고 자작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레테 자작은 그곳에서 ‘부르봉 왕가를 위해 나폴레옹의 탈출 시도를 저지’함으로써 조국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배신은 가장 가까운 자가 가장 최후에 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법이다.
아마도 혁명군이 그저 광기의 집단이라 여겨서 이런 함정을 팠으리라.
하지만 그레테 자작은 정약용을 두 가지 면에서 깔보았다.
정약용은 혁명의 장량이라 불리는 지략가였다.
그리고 가문 전체가 사학죄인으로 몰렸던 정약용과 그의 집안은, 나폴레옹 따위보다 훨씬 귀양에 조예가 깊다.
***
이 시점의 세인트헬레나는 영국령이 아니라 동인도 회사령이다.
배가 거의 모두 이곳을 거쳐 가는 동인도 회사로서는 중요한 곳이었다.
남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 도중, 서아프리카 해안을 집적대는 프랑스인과 마주치지 않고 보급과 휴식을 해결할 수 있는 요지다.
그렇게 작은 보급항으로서 목가적 생활을 영위하던 세인트헬레나는 거인 나폴레옹 한 사람 때문에 바뀌게 되었다.
오로지 그의 탈주를 막고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세인트헬레나와 주변 섬에 영국군과 전함이 본격적으로 배치된다. 곧 빠르게 총독이 파견되며 종당에는 영국령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을 여기까지 실어 온 조지 콕번(George Cockburn) 제독은 그 과도기에 있는 인물이었다.
나중에, 그러니까 현재 시점으로 보면 내년에 정식 총독 허드슨 로우(Hudson Lowe)가 부임할 때까지 임시로 콕번 제독이 나폴레옹의 처우를 결정했다.
나폴레옹에게 불운한 것은, 두 사람이 모두 나폴레옹을 싫어했다는 점이다. 그간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고 홀려대던 나폴레옹으로서는 낯선 일이었다.
백악관의 파괴자 조지 콕번 제독은 나폴레옹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며, 웰링턴 공작 인증 정신이상자인 허드슨 로우는 한층 더 나아가 나폴레옹을 심각하게 증오했다.
패배해서 유배나 온 주제에 정말 프랑스인 같은 한가한 치정극 찍어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열 받을 만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들의 처우는 극단적 괴롭힘에 가까웠다. 특히 허드슨 로우는 나폴레옹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당대에도 받았다.
정약용이 미래는 몰라도 그 사정은 이해했다.
시준과 만나기 전, 조선국 강진현에 유배 가 있을 당시 그도 자기와 거의 원수지간이던 강진 현감 이안묵 때문에 고생깨나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측근인 몽똘롱 후작 샤를을 통해 보낸 ‘접견 거부’ 의사에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콕번 제독은 이 면담 요청에 대해 ‘보나파르트의 의사에 맡긴다’며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정약용은 자기라도 거절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제독이 나폴레옹을 존중한다는 말이 아니다. 풀어줘 보고 함부로 나대면 영국인의 괴롭힘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귀양 경험이 부족한 그레테 자작은 매우 놀랐다.
분명 그는 몽똘랑 후작을 처음 만났을 때 암시와 우회로 충분히 전달했다.
신비한 동방 무술을 익힌 동방 혁명가들이 황제를 구출하고, 정약용이 콕번 제독을 달래 외교적으로 이를 무마해 줄 수 있다는 그의 뜻은 나폴레옹도 숙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부라니?’
황망해하던 자작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샤를 트리스탕은 난처해하며 대답했다.
“그 고려라는 나라 때문에 황제께서는 받지 않아도 될 모욕을 추가로 덮어쓰셨소. 매번 영국인들이 황제에 대한 존경을 표하느니 하고 찾아와서 ‘배가 툭 튀어나온 게 그림과 좀 다른데?’ ‘바지라도 벗어 보시지. 정말 이 책대로인지 보도록.’ 어쩌고 하며 시정잡배 같은 폭언을 쏟아내어 황제께서는 크게 상심하신 상태이시오.”
그레테 자작은 입을 쩍 벌렸다. 정말 그 짓 하려고 대서양을 건넜다니 영국인도 대단한 종족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 그럼 고려 외교장관 각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미안하오. 자작. 황제께서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하셨소이다.”
자작은 급히 정약용을 돌아보았다. 힐난이 담긴 그 시선에도 정약용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몽똘롱 후작과 그레테 자작이 무슨 책 얘기를 하는지 모르니까.
정약용은 능숙한 프랑스어로 말했다.
“상심할 것 없소. 우리나라의 통찰력 있는 신사(선비)로 연암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소. 어떤 사람을 보고 기뻐하려면 무릇 짐짓 화난 척을 하는 법[將欲示歡 怒而明之, 『연암집(燕巖集)』]이라고. 사람은 원래부터 있던 것에는 감사할 줄 모르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이 베풀어지면 크게 감복하여 앞뒤를 가리지 못하게 되는 법이거든. 나폴레옹 황제가 그대를 소원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 게요.”
박지원이 주창한 츤데레의 이치가 먼 세인트헬레나에서 설파되는 순간이었다.
그레테 자작은 이자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샤를 트리스탕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마치 급하게 봉합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면 용건은 전했으니 이만 가보겠소. 당신들도 경솔히 행동하지 마시길.”
후작은 꽤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가 두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 금 담뱃갑을 두고 간 것은 별로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레테 자작은 허둥지둥하며 그것을 들고 나가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점잖게 그 행동을 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었다.
“내가 말했잖소?”
담뱃갑 안의 종이가 정약용의 손에 이끌려 나왔을 때, 그리고 그것이 프랑스 제국군의 군용 암호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레테 자작은 마치 자기가 ‘열등한’ 유색인종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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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정약용이 말한 ‘만리강산만리진, 일조천자일조신’은 명나라의 탕현조(湯顯祖)가 쓴 시입니다. 별건 아니고 군주가 바뀌면 신하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정치의 기초인 코드인사를 말한 것입니다.
2. 알빈 드 몽똘랑과 나폴레옹의 불륜은, 당대의 광범위한 서신에 의해 정황적으로 추정될 뿐 무슨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인들(후작의 하녀를 빼앗은 남자들은 나폴레옹의 침실 시종이었습니다)의 치정로맨스 역시 단순히 증언과 소문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알빈이 세인트헬레나를 떠날 때 나폴레옹이 눈물을 흘렸고, 그때 같이 있었던 프랑스 장군 가스파르 구르고에 의하면 그녀가 나중에 나폴레옹의 딸을 낳았다고 하죠. 당대 유럽의 풍토를 생각해 본다면,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얼마나 사랑했건 간에) 사실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세핀 앞에서 알렉산드르가 여자였다면 그를 내 정부로 삼았을 것이다 이런 소리 하던 시대라서요. 뭐 그 깡촌 섬에서 달리 할 것도 없고…
3. 콕번 제독도 나폴레옹을 푸대접하긴 했지만, 허드슨 로우의 경우는 집착적인 괴롭힘에 가까웠습니다. 나폴레옹을 물리적으로 폭행했다는 소문도 있죠.
오죽했으면 나폴레옹의 주치의 베리 오메이라는 같은 아일랜드계였던 허드슨 로우에게 나폴레옹의 정보를 제공했지만 나중에는 학을 떼고 오히려 나폴레옹 편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웰링턴 공작 아서도 그를 불안한 정신으로 ‘모든 세계를 의심하고 적대하는’ 사람으로 혹평했고, ‘신사답지 못한’ 태도가 널리 알려져 허드슨 로우의 말년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4. 원래 콕번 제독은 워싱턴 전체를 전소시키려 했지만, 다른 지휘관들과의 의견 조율 끝에 백악관과 의사당만 태우는 것으로 끝냈다고 합니다.
5. 아편 전쟁의 주인공 중 하나로 유명한 빅토리아의 아편장수 찰스 엘리엇은 본문에 나온 대로 휴 엘리엇의 아들입니다. 결투 때문에 작위 수여 평생 미끄러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게 이 사람이 주 작센 전권대사였던 시절이라 일반인이 결투한 것과는 좀 다르긴 했습니다. 다만 불륜남에게 사과는 받았다더군요.
어째 오늘 불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찰스 엘리엇은 그때 아내가 아니고 다른 아내 소생이라 뻐꾸기 알은 아닙니다. 휴 엘리엇은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독일에서 납치하고(이때도 불륜 중이었음) 코펜하겐에 가둬놓은 뒤, 얼마 안 가 20살(!) 연하의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데 여기서 태어난 게 찰스입니다. 불륜했다고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한 것 같습니다.
휴 엘리엇은 실제 역사에서도 이때 마드라스 총독을 하고 있었고, 그 전후로도 각지 총독이나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 분야에서 강력한 커리어를 쌓습니다. 아들이 중국에서 전권대사로 활약한 것도 아버지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죠.
6. 엘바에서의 나폴레옹과 지금 나폴레옹의 처지가 좀 다르게 느껴지실 텐데, 엘바 귀양 시절의 그는 엄연히 엘바의 대공으로서 그곳의 ‘통치자’ 였지만 세인트헬레나에서는 진짜 죄수라서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은 두 번째 퇴위 당시 ‘모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로 선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