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71. 금의환향(2)
시준은 홍콩에서 출발하고 나서야 선두 쾌속선 편으로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비밀 유지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행사 같은 거 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몇 번 당해 왔기에 시준은 자신의 의사를 우회나 비유 없이 명백하게 전달했다.
그래서 삼화부에는 별다른 환영 행사 같은 것이 준비되지 않았다. 몇 명의 정치국 위원이 급하게 평양에서 삼화로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인파 자체는 꽤 많았다. 기랑과 함께 배에서 내린 시준은 여기저기 걸린 붉은 현수막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병귀신속, 만시지탄! 물고기 철[盛漁期]을 놓쳐서는 안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혁명적 그물만들기 투쟁으로 조기산성(助氣山城)을 점령하자!>
그 아래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칡껍질[葛皮]이나 삼베(서초 때문에 풍부하다)를 꼬고 있었다.
정약용이 반갑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늦여름이라. 조기가 많이 잡힐 때로군!”
거듭된 흉년 때문에 공화국은 정약전이 기초를 마련해 놓았던 어장 사업을 크게 확대했다.
청어잡이도 나날이 규모가 커졌지만, 조선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청어뿐만이 아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아 보자면 조기가 있다.
‘나라 전부에 넘쳐흘러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라 여기는[流溢國中 貴賤共珍之,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생선인 만큼 어획량도 매우 풍부했다.
시준이 받은 생존 지식에는 먹을 것, 그러니까 사냥과 식생에 관한 것도 있었다.
어릴 때 기랑과 포수 놀이하며 놀러 다니던 시절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 이후로는 그다지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한 지식이었다.
허나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로켓 스토브와 안전난로가 어느새 진인 화둔법 1, 2장이 되어 있듯 그건 착각이었다.
바다의 너무나 막대한 생산량 때문에 마치 수확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양식이 아니고서야 어업은 엄연히 수렵에 속한다.
생존에 있어 수렵은 필수적 지식 중 하나다. 그리고 시준이 하는 일은 국가 단위의 서바이벌이었다.
혁명 이후 시준은 그 지식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서바이벌 지식뿐만 아니라 전생에서 공무원 생활 할 때 주워들은 것까지 다 쏟아부었다.
대화퇴어장(大和堆漁場) 등 일제 강점기에 가서 탐사된 황금어장의 정보가 추가되었다. 거기에 정약전과 문순득 등의 실전 경험도 합쳐지니 꽤 충실한 물건이 나왔다.
그렇다 보니 풍어기와 어장, 종류별 보관과 손질 방법을 총망라한 서적이 바닷가 인민위원회마다 배포된 지도 오래였다. 지금 주석보필국장 하느라 바쁜 서유구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를 저술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그물 또한 시준의 지식에 의해 개선된 것이다.
조기처럼 대량을 어획하는 어종에는 전통적으로 주머니 모양의 주목망(柱木網)을 으뜸으로 친다. 조선의 방식은 이것을 배에 달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잡는 식이었다.
이를 대체한 게 19세기 말엽 일본에서 들어온 안강망(鮟鱇網)인데, 시준은 이것을 차용해 주목망을 개량했다.
다만 주목망과 안강망의 개념이나 구조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사소한 개선을 제외하면, 차이점은 설치 방식에 있다.
안강망은 조류를 따라 물밑에 설치하는 방식이라 더 편하게,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역사를 모르는 시준은 단순히 주목망의 발전형 개념으로 이것을 전파했다.
시준도 이론으로만 아는 거라 처음에는 몇 번 실패했다. 허나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어부들은 ‘주석 동지의 빛나는 예지’를 믿어 의심치 않고 끈질기게 도전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시준이 중국 가기 전만 해도 한두 해는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와서 보니 벌써부터 웬만큼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
이 시대는 합성섬유가 없어 그물이 소모품에 가깝다. 배에 다 실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잡히는 이 시기의 조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이 필요했다.
보아하니 인근 주민은 거의 전부 동원한 것 같았다. 농번기다 보니 장정은 아니고, 노인이나 아이 혹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헐떡대며 힘든 노역에 시달리는 후줄근한 백성들을 연상하면 안 된다.
어장은 이제 수영(水營)의 돈벌이 수단이나 관리의 편리한 토색질 창구가 아니다. 바로 인민의 것이다. 조선에 도둑놈이 많았지, 고기가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 있는 인민 모두는, 이 그물만들기 투쟁으로 정치국이 제시한 조기산성(현대전이 없어서 고지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의 목표에 돌격해 점령할 혁명적 열의에 차넘쳐 있었다.
그리고 여인이 이렇게 많이 몰려나오게 할 수 있는 단체가 어디인지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부녀회장 김부용이 돌아다니며 이미 쉬어버린 목소리로 사람들을 격려했다.
“바야흐로 주석 동지께서 만국의 수평도와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을 일으켜, 청인(淸人)의 배가 황해도와 평안도에 감히 나타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소. 인민의 바다는 바로 우리의 논밭! 그물이 없어 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아무리 김부용이 전직 기생이라 바깥 활동에 익숙하다지만, 5년 전만 같았어도 여자가 얼굴 드러내고 소리소리 지르는 광경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멍하니 그것을 보던 시준은 기랑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유도 나왔네.”
시준은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의심되는 속도로 고개를 홱 돌렸다. 지유가 한쪽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시준은 집안을 오래 비운 가장이 느껴야 할 응당한 책임과 분노를 한꺼번에 맛보았다.
“누가 아픈 사람을 여기까지 데리고 나온 거야!”
시준보다 더 지유의 사회적 위치를 잘 아는 기랑은 이번의 삼화행이 지유의 의사라고 생각했지만 시준은 그러지 못했다. 시준은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좍 갈라졌다. 각지 유력 인민위원회 위원장도 있었지만 시준은 그들에게 인사 한 번 건네지 못했다. 지유가 입을 약간 벌렸다.
“일찍 왔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아냐. 일단 마차에 들어가. 평양에 돌아가서 얘기하자. 기랑아! 어서…….”
하지만 지유는 난감하게 웃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작게 말했다.
“조금 이따가 갈게. 응?”
김부용이야 계몽 최전선에 서 있다 해도, 만인 앞에서 부부가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일은 아직 조선인에게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시준도 그것을 알기에 일단 입은 다물었다.
그러면서 지유 앞에 놓인 커다란 탁자를 보니, 거기에는 또 이상하게 생긴 부적이 쌓여 있었다.
“이게 뭐야?”
거기에 대답한 사람은 지유가 아니었다. 어느새 헐떡대며 주석에게로 달려온 조제프 푸셰였다.
“보면 알겠지만 조업 시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부적일세. 후우. 벌써 올 줄은 몰랐군. 나한테는 더 미리 얘기를 해 주지 그랬나.”
어찌나 급했는지 속사포 같은 프랑스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푸셰의 오래된 평판과 그 다급한 태도 사이에서, 시준은 어떤 추론을 해내었다.
시준은 한 계절 만에 만나는 푸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시선에는 오랜만에 해후한 친구에 대한 반가움이 없었다.
푸셰는 저런 시선을 어디서 본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로베스피에르가 누군가를 체포하기 직전, 다시 말해 죽이기 직전의 눈이다.
푸셰는 황급히 혁명 시절의 가락을 발휘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웠다.
“나, 나는 절대 아니야! 이건 아마도 개천군 인민위원장 동지(이제초)가 한 일이 아닌가 싶은데, 부적은 그 열 개의 칼날[十刃之盟, dix épées]인가 뭔가 하는 단체의 사업 아닌가?”
지금 계룡산에서 단전성 건설을 지휘하고 있는 이제초가 들으면 엄청나게 억울했을 것이다.
프랑스어는 몰라도 분위기는 파악한 지유가 나서서 시준의 사적인 숙청을 막아 주었다.
“성내지 말아. 내가 나오자고 한 거야. 부녀회장(김부용)이나 다른 사람들은 다 말렸어.”
주석이 일찍 오면 이렇게 될 줄 알았던 부녀회 위원들이 잽싸게 지유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다.
그러나 지유는 완강하게 버텼고, 시준도 여기에서 지유를 끌어내면 그녀의 사회적 체면이 손상된다는 점은 짐작했기에 조용히 물러났다.
시준은 푸셰를 보고 작게 으르렁거렸다.
“이따가 설명 좀 들읍시다. 예?”
“아니, 나 아니라니까 그러네. 무슨 음모는 다 내가 꾸미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면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은 푸셰는 그제야 공적인 발언을 시작했다. 즉, 조선말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부녀회 부회장 동지(지유)께서 이리 모범을 보여, 굴강한 혁명 의지 앞에서는 병마 따위도 소용없음을 몸소 증거하고 있으니 실로 크게 고무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시준은 뚱하게 푸셰를 쳐다보았다. 푸셰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기 용건을 말했다.
“주석 동지가 없는 동안 내가 뒤에서 조력한 수많은 사업은 나중에 보고드리겠소이다. 아마 깜짝 놀라실 거요. 그건 너무 많아서 여기서 다 말하기는 힘들고……. 우선, 평양에 돌아가시면 가장 먼저 해 주실 일을 확언 받으러 왔소.”
“그게 뭐요?”
“내 아들 말이오. 이제 이름을 주어야지요.”
시준은 잠깐 동안 프랑스에서 배가 왔나 하다가 곧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강철군주의 아들, 역사대로라면 이영(李旲)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을 그 아이였다.
‘이름’은 자아를 부여하는 인생의 중대사이며, ‘증인’은 그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된 대상자를 인지하고 최초의 사회적 관계가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이 중요성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정약용도 그 싸리 울타리 뒤에서 시준의 이름을 지어 준 뒤로는 서울에서 학식과 품행으로 이름 높다 하는 친우들을 초청해 정식 관례를 치렀다.
그래서 시준도 이해한다. 신라와의 전쟁 당시 그 아이의 대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필 지유가 있는 데에서 하는 저놈의 무신경함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의 정치적 감각은 다 어디에 팔아먹었나 싶었다.
“내가 한 약속은 기억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서 일 보시오.”
그렇게 서둘러 푸셰를 보낸 시준은, 지유의 눈치를 살피다가 문득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니, 저 새끼……. 내가 얘기를 길게 끌지 못할 걸 알고 여기서 말한 건가?’
아무리 푸셰가 나폴레옹의 말대로 ‘완전무결한 배신자’라 한들 그 정도는 아니다.
푸셰는 방금 시준을 발견하고 급하게 온 것이고, 다른 정치국 위원들이 푸셰처럼 시준에게 ‘주석 부재시의 성과’를 자랑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장 중요한 용건을 먼저 말한 것이다.
그저 21세기 소시민이었을 뿐인 사람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려 놓다니 정치란 게 역시 무섭긴 무섭다.
시준이 조제프 푸셰의 의도에 대해 가장 음침하고 나쁜 방향으로 상상을 가속시키는 동안, 지유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긴, 그 아이가 어머니를 계속 찾는다고 하더라. 부친은 찾지 않는 게 다행일까. 아무튼 복공 정도 되는 선비라면 잘 키워 줄 거야.”
“그, 그렇지?”
지유는 시준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여기 사람들이 널 보고 싶어 할 테니 천천히 돌고 와. 나도 그때쯤이면 일 끝날 테니 같이 평양에 돌아가자. 내 몸은 평소에 돌봐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준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냥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알았어.”
***
원 역사의 효명세자는 강철군주의 아들이다.
그리고 그 이공의 모가지를 단두대에서 날려버린 자가 시준이다.
그런데 시준은 그 아이의 ‘대부’ 가 되어 주기로 약속했다.
아무리 관대하게 봐 줘도 사이코패스나 할 짓이다. 하지만 푸셰는 그 아이러니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고, 시준도 그것에 대해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굳이 시준을 위해 변호하자면, 지유의 말마따나 그 아이도 아버지에게 별로 애착이 없다는 사실이 하나의 변명거리가 될 것이다.
강철군주는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김조순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왕비 김씨와 소원해졌고 아들에게 애정을 쏟은 적이 없다. 게다가 평양 진공 때에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행군까지 강요했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조선 왕가에서 부자간 사이가 험악한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지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냥 시준이 그들의 인격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시준은 한성 부민 이공이나 그 아들에게 최소한의 정치적 중요성 외의 고려를 하지 않았다. 이공은 죽었으며 아들은 푸셰의 영향력하에 들어갈 테니 합리적으로는 더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그건 시준이 보통 사람보다 강력한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조선 왕가의 말예보다 더 중요한 사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준의 관심은 ‘저 협잡배 프랑스 놈’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아내에게 돌려져 있었다.
그래서 시준은 이럴 경우에 남자들이 흔히 선택하지만 사실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높은 수단을 고르고 말았다.
그는 다른 화제에 지유가 빠져들게 만들면 방금의 일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준은 짐짓 시침 뚝 떼고,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영국 국채에 대해 열띤 설명을 이어갔다.
“진짜 우리 집 궤짝에 있던 돈은 기실 2할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내가 서상 대방이라서 보살피고 있던 자금이긴 하지.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해. 잘만 되면 그 돈이 2배, 아니, 3배도 될 수 있다니까.”
지유는 애매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시준은 그것이 자신의 투자 안목에 대한 불신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자기가 조선에 떨어진 것처럼 현대인 전쟁천재 한 놈이 엘바에 있던 나폴레옹의 육체를 빙의로 갈취하기라도 했으면 어쩌자는 말인가.
시준은 ‘내가 아는 형에게 들었는데 이번 작전주는 반드시 뜬다’고 말하는 남편의 기분을 느끼며 다급하게 덧붙였다.
“일이 잘못되어도 국채란 건, 말하자면 내가 영길리국에 장리(長利)를 놓은 셈이야. 예전 부잣집 마나님들이 그렇게 해서 돈 모으는 거 너도 많이 봤잖아? 당장 팔지 않고 갖고 있어도 그 어음에 적힌 이자는 계속 나오니 걱정할 것 없어.”
“흐음?”
시준의 생각과 달리 지유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시준의 투자를 힐책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녀의 상식에서는 이런 것을 굳이 집안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남편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그것은 일반적인 조선 가장의 처신이라 할 수 없었다.
지유의 상상력이 미친 범위는, 자신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홍 장주 집에 추가 자금 융통을 부탁하려고 이러나 하는 정도였다.
시준은 홍득주의 양자이기도 하나 홍득주의 아들로 입적된 것은 아니다. 가산의 분배 요구는 원칙적으로 지유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지금도 의주의 부호인 홍득주에게 돈 빌리려고 지유를 설득하려는 것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준은 이것저것 설명하면서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좀 더 들어주려던 지유는 그냥 시준의 손을 잡았다.
“그래. 잘 되겠지.”
잠깐 말을 멈춘 시준은 애써 미소지었다.
“잘 될 거야. 꼭. 이군(李君, 여기서는 이강회)이 돈을 갖고 돌아오거든 내 임기도 끝날 때쯤일 테니 그때는 정말 계룡산이든 어디든 따뜻한 데 가서 편히 살자.”
“그럴 돈이 없어서 멀리 영길리국에까지 선대(투자)한 건 아니잖아? 그 정도면 지금 있는 돈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그건 그렇지만…….”
시준은 말끝을 흐렸다. 이 이상은 지유에게 말하기가 힘들었다. 비밀이어서가 아니라 지유가 걱정할까 봐서였다.
시준도 바보가 아니다. 그가 은퇴한다 한들 공화국의 정계와 완전히 무관해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치에 간섭한 자가 정치에 간섭받지 않길 바라는 것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 위반. 주식 못하는 아이작 뉴턴도 격노할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시준에게는 은퇴 후에도 공화국 정부에 대한 영향력이 필요했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는 시준에게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것은 공화국 성립 전부터 시준이 가지고 있던 직위인 서상의 대방이다. 다른 모든 직위와 다르게 이것은 시준이 인민에게 빚진 바 없는 자리다.
그런데 그 서상은, 의도했다기보다는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현재 공화국을 지탱하는 초거대 국영기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중 및 대일 무역, 수운, 내륙의 곡물과 면포 유통, 약재 판매 등 서상이 발을 뻗치고 있는 분야는 한두 마디로 정리될 게 아니다.
시준은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함선 제조 분야를 (살아남은) 강상에게 주고 삼남 육운을 보부상과 송상에게 남겨주는 등 여러 가지 애를 썼다. 그러나 자본량이나 역량은 둘째 치더라도 정치권력이라는 면에서 그들은 서상에게 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준이 은퇴를 하더라도 서상만 장악하고 있다면, 공화국 ‘2대 주석’은 절대 시준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한다. 2대 주석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의 카리스마가 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밥 없이 혁명군을 움직이지는 못할 테니까.
대강 그런 것이 시준의 계산이었다. 이쯤 되면 피해망상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시준은 사람이 긍정적이지 못할지언정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얘기를 지유에게 하면 (정상인인) 지유는 당장 심각한 사태의 징조가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거라 판단했다.
무엇보다 지유의 트라우마를 다시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준은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자신 있게 들리길 바라며 말했다.
“우리만 사는 게 아니니까. 자손들에게도 편히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고 싶어.”
아오지 탄광에 있는 삼남의 지주들이 들었으면 거품을 물었을 대사였다.
우리 재산은 부당한 상속이라며 다 빼앗아 놓고 너는 자손만대로 부유하게 살 생각이냐는 원통한 호곡이 저승에서 메아리치는 듯했지만 공화국의 주석은 반동의 항변 따위 듣지 못한다.
지유에게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다만 그녀의 경우는 다른 이유였다.
지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시준이 의아해하자 지유가 한숨처럼 말했다.
“자손이라……. 그러고 보니까 아까 복공이 양자를 들인다는 얘기를 했지.”
뜨끔한 시준은 지유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나는 네가 있어야 하는 거지, 네가 낳아 줄 내 자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야. 힘든 일은 시키고 싶지 않아.”
시준은 이번에도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혼자만 괜찮으면 되는 게 아니다. 지유는 그것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나는 갖고 싶어. 아무리 힘들더라도. 네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일도 그런 거잖아?”
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시준은 지유의 얼굴에서 있을 리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 가닥, 그리고 두 가닥과 세 가닥으로 늘어나는 밝음이었다.
그 미소는 곧 시준에게도 옮겨왔다. 시준은 부부만이 할 수 있는 화법으로 물었다.
“진짜야?”
“너 중국 가고 나서 지금까지…… 없었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지유는 얼굴을 살짝 물들이며 시준의 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지유는 마치 어린 시절, 시준을 산으로 들로 끌고 다니던 그때처럼 말했다.
“이제 아버지가 될 텐데, 사내가 그렇게 잔걱정이 많으면 처자가 마음을 놓지 못한단다. 나는 너만 있으면 오막살이에 산다 하더라도 괜찮아.”
지유가 시준과 닮아가는 것처럼 시준도 조선 사람을 닮아갔다. 그래서 시준의 얼굴은 확 뜨거워졌다.
그러면서도 지유의 입술이 볼에 닿았다 떨어지는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이대로 평양 돌아가서 지옥 악귀들 같은 정치국 위원들을 만나는 일도 영원히 미뤄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다.
물론 시준의 소망이 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안타까운 점이 있기는 했다.
평양의 모든 인민은 시준을 일각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평양과 공화국의 인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었다.
이제 시준은 동아시아 전체는 물론, 서쪽의 열강도 주목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만약 지금 「타임」지가 있었다면 올해의 표지를 장식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 만큼 현재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초강대국,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와 동의어였던 중국도 예외일 리는 없다.
이제 그만 내외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연탄의 연금술사에서 위대한 연금군주로 발돋움하고 싶은 애신각라 면녕 또한 시준과 고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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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늘은 금요일이라 더욱 많은 분량으로 찾아뵙게 되었군요.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1. 합성섬유가 들어오기 전 그물은 작중 나온 것처럼 삼베, 칡껍질, 그리고 부유한 자들은 면화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2. 조기는 이 시대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에서도 많이 잡혔습니다(서해 전역에서 잡힙니다). 본래 조기는 (일설에 따르면 ‘종어’에서 변형되었다고 추정되는) 고유어이며, 본문의 한자 助氣는 기운을 북돋는다는 뜻으로 나중에 음에 끼워 맞춰 덧붙여진 말입니다.
3. 물고기는 일정 주기(몇 년에서 몇십 년, 혹은 몇백 년인 종도 있습니다)로 어장이 바뀌는 경우가 있지요. 일례로 조기를 말린 굴비는 영광 굴비가 유명한데, 영광 앞바다의 어획량이 최근 많이 줄어들어서 현재의 ‘영광 굴비’는 대부분 영광에서 ‘가공한’ 굴비를 말합니다. 진짜 영광에서 어획부터 시작하는 굴비도 없지는 않지만 희귀합니다.
4. 아직 이강회의 성과가 전달되지 않았는지라 시준이 말한 2배, 3배는 시준의 성격대로 최대한 보수적인 예상치입니다. 원 역사의 로스차일드는 당시 영국 국채 매매로 ‘20배’의 이득을 보았다고 전해지지요. 이쪽도 과장되긴 했겠습니다만.
5. 타임지는 1923년에 창간되었습니다.
6. 대화퇴어장의 대화는 그 야마토가 맞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야마토 호(전함이 아니라 초계함)가 발견해서 이름이 그렇습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황금어장 중 하나입니다.
여기를 공무원 출신 시준이가 왜 알고 있는가 하면... 한일 양국의 공동수역으로 외교적 이권이 대립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북한과도 인접해 있어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민 표류 같은 것이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