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15화 (215/284)

215화

71. 금의환향(1)

존 메이틀랜드 소장은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속았군요.”

다시 옛 기함 파워풀호를 이끌고 있는 제독 윌리엄 드루리 역시 그 진단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창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메이틀랜드 소장은 제독의 신음이 마치 환호처럼 들린다고 생각하며 그를 쏘아보았다.

“돌아가지 않으실 거요?”

그가 지금 배를 지휘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그렇지, 메이틀랜드 소장도 윌리엄 드루리에 비해 경력이나 계급이 그렇게 낮지 않다.

허나 드루리는 보편적인 뱃사람의 습관대로 행동했다. 즉, 이 파워풀호는 자기 배이니 여기에서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었다.

윌리엄 드루리는 실로 파워풀하게 선언했다.

“국왕 폐하의 배(HMS)가 어떻게 야만인들 앞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날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예전 저놈들의 비겁한 기습에 낭패를 보았던 굴욕을 되갚아줄 때다!”

존 메이틀랜드는 격심한 산수 계산에 시달렸다.

지금 이자를 쏴버리고 자기가 교수형을 당하면 영국 해군은 2명의 피해로 이 바보짓을 끝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대로 메이틀랜드 소장이 침묵한다면, 그들은 눈앞에 나타난 전투 함대와 싸워야 한다.

아시아 최강 베트남 해군의 프랑스식 전열함 5척이 그것이었다.

일주일 전, 중국 민중봉기 세력의 지도자라 자칭한 임칙서라는 남자는 영국군에 협상을 청해 왔다.

그들은 정시준과 자기와의 연결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고는 정시준의 소재를 알려 줄 테니 무고한 중국 인민들을 더 이상 주륙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영국 하면 또 사냥 게임의 전통이 있다. 보이는 중국인 전부를 아메리카 들소처럼 쏘아 죽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극동함대 해병대’는, 상당히 힘들었지만 일단 살육과 약탈을 멈추었다.

임칙서로서도 이가 갈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영국까지 적대할 수는 없다. 반동 여진족의 관군이 더 급한 상대이기도 하고, 무기 수급의 문제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영국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들의 기세가 악랄하다 한들 천 명도 안 되는 해병대 가지고 중국 내륙으로 진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양자의 교차점 앞에서, 임칙서는 영국군이 – 정확히는 해병대를 싣고 온 윌리엄 드루리 제독이 – 무시할 수 없는 말을 꺼내었다.

“정시준은 광주(廣州, 광저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배를 탔소. 이야기를 듣자 하니 신안현(新安縣, 홍콩)에서 남쪽으로 가 원병을 청한다는 것 같소.”

거기서 남쪽으로 가 원병을 청할 만한 곳이라면 한 군데밖에 없다. 드루리 제독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안남!”

7년 전, 서양에서 안남이라고 부르는 베트남 해군은 드루리 제독에게 독보적으로 유니크한 경력을 남겨 주었다.

육군이라면 사례가 드물지 않지만, 영국 ‘해군’이 비백인 국가의 해군에게 패배하는 일은 박물관에나 전시해야 할 정도로 희귀하다. 역사적 사나이가 된 윌리엄 드루리가 복수심에 눈이 뒤집히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메이틀랜드 소장은 이 정보의 진위를 더 확인해 보자는 입장이었으나, 드루리 제독은 당장 쫓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정시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 – 예상대로라고 해야 하겠지만 – 영국 해군 전열함 1척과 포함 3척, 슬루프함 1척을 가로막은 것은 같은 숫자의 전열함과 그 두 배쯤 되는 슬루프, 그리고 프리깃이었다.

해남도(海南島)와 영흥도(永興道, 현대의 파라셀 제도 우디 아일랜드)를 오가며 지친 돛과 팔뚝을 쉬던 청나라 어부들은 유럽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대규모 전함의 집결에 크게 놀란 것처럼 보였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개판을 주시하고 있던 차에, 아무 전조도 없이 영국군 함대가 남하하니 당연히 침공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논리적으로 틀릴 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귀납이라기보다 연역 추론이라고 봐야 한다. 영국인이 침략 외에 도대체 뭘 하겠는가?

따라서 자롱 황제의 함대는 영국을 상대로 무슨 깃발을 올린 뒤 정선을 요구하고 사절을 보내 문정하는 따위의 비효율적인 낭비를 하지 않았다.

세상에 모기를 상대로 피를 빨지 말라고 설득하거나 밭에 내려온 맹수와 협상을 시도하는 머저리 따윈 없다. 베트남 해군은 항해하는 그 모습 그대로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존 메이틀랜드는 드루리 제독을 붙잡고 말했다.

“제독. 아무래도 우리가 불리하오! 싸우더라도 돌아가서 함대를 증편한 뒤에 싸워야 합니다!”

드루리는 오히려 메이틀랜드에게 호통을 쳤다.

“여태까지 아시아의 해군을 무수히 보았잖소. 저건 그냥 모양만 갖춰 나온 것에 불과해. 배의 크기만 보고 겁먹지 마시오! 원숭이에게 총이 쥐어졌다고 해서 총알에 맞을 걱정을 하는가? 우리는 원숭이가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정도에만 대비가 되어 있으면 되오! 더 이상의 반발은 지휘권 침해로 간주하겠소!”

“이 망할 놈의 아일랜드 새끼야!”

메이틀랜드 소장의 마지막 고함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베트남 함대에서 발사한 포탄이 영국 해군의 주변에 요란하게 착탄했기 때문이다.

***

영국 해군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뒤, 홍콩의 바위섬 사이에서 혁명모자 하나가 쑥 올라왔다. 그 모자 아래에는 사방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는 망원경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망원경에 걸리는 것이 없자 그 아래에서 다시 숨죽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갔지?”

조선말을 못 알아들어도 그가 뭐라고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시준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낮추고 있으니 덩달아 그러고 있던 존 레디 소령이 허리를 폈다.

“벌써 아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각하. 중국에서의 용맹한 모습과 달리 여기에서는 유달리 신중하시군요.”

시준은 화가 났고, 그래서 화를 냈다.

“이보쇼. 이게 지금 누구 때문인지 알아? 당신네 프락치…… 가 아니고 어떤 첩자가 윌리엄 암허스트에게 내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 아니오! 내가 외국에서 객사하면 동인도 회사는 편할 줄 아나 보지?”

존 레디 소령은 무안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말씀대로 아무래도 말이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의장 각하. 사죄드립니다.”

“도대체 영국군이 왜 나를 적대하는 거요? 우리는 심혈을 기울였소. 영국 개항장에는 어떤 피해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끼치지 않았소. 이 광란의 혁명 한가운데에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시오?”

시준이 굳이 ‘공식적으로’라는 군말을 덧붙인 이유는, 그가 파악하지 못한 우발적 충돌이 있었을 가능성도 엄존하기 때문이다. 아니, 시준은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영국 해군이 출동했을 거라고는 믿기 어렵다. 개항장의 다툼이나 사고야 시준이 개입하기 전에도 매일같이 일어나던 사건 아닌가.

“잘 압니다. 각하의 명예로운 행동에는 마땅한 보답이 있어야 한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다만…….”

레디는 시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연하지만 서양인의 예법상 사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준에게 더 가까이서 말하기 위해서였다.

“로드 암허스트는 당신에게 이 민중봉기의 혐의를 두고 있습니다. 조약상 해적 단속을 핑계 삼아 당신을 체포, 공화국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이 봉기를 무력화하고……. 그럼으로써 중국 황제의 간섭을 배제한 채 치안이 소멸된 이 중국 남부에서 더 영향력을 확대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일석삼조의 참 좋은 생각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시준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존 레디는 그 주먹이 자기를 후려치기 전에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드루리 제독은 어떤 핑계를 대서든 안남 해군과 다시 설욕전을 하려 들 테고, 이기더라도 그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이 틈에 어서 귀환하시지요.”

시준 역시 상황 변화에 도움도 되지 않는 성토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동인도 회사는 이 사태에 대한 보상조로 조선을 향한 배편을 마련해 주었다.

시준과 정약용, 기랑 등 공화국 출신 동료들은 중국인 고용 선원으로 꾸미고 거기 탑승할 생각이었다.

본래는 경로상 대만에 있는 영국 함대의 감시를 피하기 어려웠겠지만, 지금 그 대만 쪽의 지휘자인 존 메이틀랜드 소장이 저 남쪽으로 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전생에 미래인이라서가 아니라 공화국의 주석이라는 위치 때문에 시준은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드루리 제독의 숨기고 싶은 비밀인 패전 경력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안심하고 남쪽을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곧 몸을 돌렸다.

물론 시준이 베트남과 무슨 밀약을 맺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자롱 황제는 의심의 여지 없는 유교식 군주의 전형이며, 해상 무역이라거나 대외 개방이라는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상대가 군주도 하늘도 없다 주장하는 고려인민공화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건 시준이 베트남과 아직 변변한 무역을 못 해 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채널은 있었다. 베트남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양식 근대 육해군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십 년 전부터 프랑스인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탕득(Thăng Đức)의 후작 장 밥티스트 샤뇨는 그 역사를 홀로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며 베트남 대해군의 사실상 건설자다.

이는 베트남의 이전 세대 개척자인 피에르 피뇨 드 비에인 주교의 헌신과 함께 베트남이 프랑스를 외면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샤뇨 역시 자롱 황제가 무수한 군주 후보 중 하나였을 무렵부터 그를 보좌했다.

샤뇨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자롱 황제는 모든 역경을 딛고 끝내 창업군주로 발돋움했다.

그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공신에게 마땅한 대우를 베트남에서 받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리고 조제프 푸셰가 외방전교회와 유럽의 끈으로서 그간 샤뇨를 이용해 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지배하에 있는 인도양과 남중국해에서, 푸셰가 유럽과 그동안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통로 중 하나가 샤뇨였다.

푸셰는 그의 사제 경력과 (앞으로의) 왕당파 경력을 끌어당겨 샤뇨에게 어느 정도 우호적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탕득의 후작, “그랜드 만다린[Grand Mandarin, 萬人之上]” 장 밥티스트 샤뇨가 푸셰나 공화국을 위해 움직이는 호인 짓거리를 할 리는 없다. 정치 경력이 오래된 조제프 푸셰도 그런 풋내기 짓을 하지는 않았다.

푸셰가 그에게 심어 준 것은 마땅한 진리와 사실뿐이었다. 즉, 그는 영국군의 만행을 알리고 로드 암허스트가 품은 야심을 전달했다.

그럼으로써 푸셰는 그가 마치 샤뇨의 동아시아 정보원인 것처럼 행동했다. 굳건한 부르봉 왕당파인 샤뇨는 푸셰에게 무슨 도움까지 줄 생각은 없었지만 – 푸셰는 로베스피에르의 왼팔이었다 – 푸셰가 가져오는 정보 자체는 쓸만하다고 생각하고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그래서 샤뇨는 공화국이나 청에 대해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채 영국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롱 연간에만 50번이 넘게 일어난 베트남의 민란 때문에 이쪽 꼴도 엉망이라 그 이상 나서기도 사실 어려웠다.

그러던 중 영국군의 함대가 해남도 남쪽, 그러니까 베트남 해군의 관할 영역으로 쳐내려온 것이다.

게다가 척후에 따르면 그 배는 7년 전 그의 대함대에게 혼쭐이 나 쫓겨난 드루리인지 뭔지 하는 그 얼간이의 배였다. 여기에서 황제의 해군이 어찌 숨을 수 있겠는가.

윌리엄 드루리는 깔보았지만 장 밥티스트 샤뇨가 없더라도 모든 베트남인은 능숙한 조선공이며 숙련된 항해자다. 국내 사정이 어떻건 마족 영국의 침공은 최우선 사항. 해군은 즉시 출동했다.

공화국이나 시준과 베트남은 어떤 인연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평양에서 지유에게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부녀회와 주석 부인을 한꺼번에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조제프 푸셰도 베트남에 특별히 군사적 지원을 요청한 적은 없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동맹군 출진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악에 대항하는 인류의 의지는 하나이기에.

***

얼마 전 조선 인민 해방전쟁 당시, 북쪽에서 시준이 고려를 선포하고 영남에서 김회연이 신라를 제창하였지만 호남 일대에 웅크렸던 조선은 딱히 백제의 깃발을 들지 않았다.

김좌근이나 김희순을 살려내서 물어본다 하더라도 그럴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런 광기에 함께 뛰어들기엔 그들은 너무 덜 미쳤고, 그래서 가장 먼저 패배했다.

그러나 백제의 기운은 엉뚱한 북경에서 되살아났다.

로드 암허스트는 천 년 전 견훤이 맛보았던 기분을 다시 느껴야 했다. 그는 책상을 쾅 내리쳤다.

“또 졌어!”

또 졌다. 윌리엄 드루리 제독은 동아시아 토착 해군에게 두 번이나 지는, 로열 네이비의 장구한 역사 전체를 뒤져봐도 유례가 없는 남자가 되었다.

사실 이기면 이상한 전투였다. 아무리 영국 수병이 상대적으로 경험과 기량에서 우수하다 하더라도 상대는 전열함 5척에다가 그에 딸린 전투함도 거의 전부 유럽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드루리 제독의 치욕을 경감시키지는 못했다.

드루리는 이 보고 끝에 ‘자결로써 명예를 수호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암허스트에게까지 보낸 걸 보니 아마 옆에 있던 존 메이틀랜드 소장이 안 말린 모양이다.

그리고 암허스트 역시 말리고 싶지 않았다.

암허스트는 마치 눈앞에 드루리 제독이 있는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큰소리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일랜드 촌놈 새끼야. 한 페니 가치도 없는 네 목숨 따위 알 게 뭐냐! 귀중한 함대를 부득부득 끌고 나갔으면 정시준의 모가지는 따 왔어야지!”

그 정시준을 공화국으로 가는 배에 태우고, 시침 뚝 뗀 채 천진으로 돌아와 있던 존 레디 소령은 이 비보에 매우 놀란 척했다.

“이거 아무래도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는데요. 함대와 병력이 크게 손상되었으니 중국 내 민중봉기에 직접 손을 쓰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나도 알아!”

지금 영국 극동함대의 병력은 다시 보충하기 어렵다.

나폴레옹은 언제 다시 돌아와서 날뛸지 모르고(아직 여기서는 워털루 전투를 모른다) 설사 엘바에 그대로 처박혀 있다 해도 유럽 열강의 합종연횡이 전부 새로 직조되는 이 판세에서 본국에 뭘 더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병사 자체보다 기세가 꺾인 것이 더 큰 문제다. 7년 전의 기억을 무지막지한 살육과 폭압으로 간신히 잊히게 만든 마당에, 이제 다시 청의 제후국인 베트남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중국인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뭐지? 사실 좆밥이었나?’

이렇게 되면 영국은 중국 민중봉기를 여유롭게 제압하여 청 정부에 빚을 지운다는 야망을 접어야 한다.

이번 일만 없었어도 폭도 따위 수만이건 수십만이건 갈아버릴 자신이 있었지만, 기세 오른 폭도는 때로 정규군보다 무섭다.

이런 상황에서 암허스트가 자랑스럽게 의회에 보고했던 6개 도시의 개항은 오히려 악수가 된다. 병력에 비해 지킬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암허스트는 결국 상식적인, 그래서 속 뒤틀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동인도 회사의 연락망을 전부 동원해서 전해! 함대 전부는 6개 개항장에 나누어 주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친 폭도들의 침공을 막는다! 그리고 공화국에는…….”

암허스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는 오판을 두 번 할 타입은 아니었다.

“이번 일은 정시준과는 아무 관련 없는 거다. 우리는 정시준이 중국에 온 것조차 몰랐던 거야. 나불대는 주둥이는 하나라도 줄이고 싶으니 윌리엄 드루리 그 새끼는 자살하고 싶으면 빨리 자살하라고 하고, 포트 요크(흑산도)에 주둔시켰던 병력도 전부 귀환시켜!”

중국 내 영국 조차지를 방어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암허스트는 거기에 영국인다운 그럴싸한 생색도 덧붙였다.

“내 명의로 서신을 써 줄 테니 이건 ‘평양에 있을 정시준’에게 직접 전하게. 포트 요크는 영국 해군이 정당하게 양도받은 영토지만, 공화국 인민의 전통적 영유권을 존중하고 의장 정시준에 대한 영국의 우정을 보여주기 위해 선의로 반환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해야 해. 나중에 판세가 바뀌면 언제든 진입할 수 있게 거점 유지 기능은 남겨 놓고.”

존 레디는 정말 놀라운 외교술이라며 암허스트를 칭찬했다. 암허스트는 그동안 사사건건 걸리적대던 존 레디가 호의적으로 나오자 본능적 수상함을 느꼈지만, 그가 친고려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서 더 뭘 꼬아서 머리 썼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 이후 영국에 망명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일전 엘바에서 자신의 탈출을 방조했던 영국이 혹시 같은 일을 두 번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전쟁의 패배로 맛이 갔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나폴레옹이 원래 영국인에게 인기가 있었고, 또 지금은 동양의 누구 때문에 그 인기가 더 높아졌다 해도 공개적으로 망명을 받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프로이센군의 추격을 피해 영국 배에 도망치듯 올라탄 시점부터, 나폴레옹은 두 번 다시 유럽 땅을 밟지 못했다.

그를 바다에 띄워 둔 채 열강의 이해관계, 재편되는 동맹, 향후의 질서 등을 가늠해 본 영국 정부는 그냥 나폴레옹을 버리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었다.

황제에 대한 예우인지 조롱인지 모르겠지만 영국은 프랑스 배에 나폴레옹을 바꿔 태웠다. 그러고는 그가 평생을 천착했던 유럽에서 멀리, 아주 멀리 추방했다.

테메레르급 전열함이었으나 프랑스 배가 언제나 그렇듯 영국에 약탈당해 국왕의 배가 되어 있는 HMS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는 그해 여름 아무 이상 없이 대서양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배 하나가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황해를 가로질렀다.

동인도 회사 소속의 대형 선박이며, 강화도에 나타나서 조선 정부에게 개항을 강요함으로써 이 모든 일을 만들어내었던 데이비드 스콧이었다.

그간 동인도 회사의 다른 업무 때문에 정세와 상관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던 데이비드 스콧은 그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 마지막 항해를 끝으로 세인트헬레나에 들렀다가(나폴레옹과는 상관없다) 그레이브젠드(Gravesend)에 돌아가 폐선 처리될 예정이다.

그래서 항해사는 펌프 빨리 잡지 못하겠냐며 선원을 닦달하지 않았고 갑판장도 썩어가는 밧줄이나 훼손된 삭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따라서 선창에 각자 취향껏 널브러져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도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데이비드 스콧이 삼화부에 도착했을 때, 시준과 기랑 및 ‘북두의 계승자’들은 영광에 찬 귀환병이라기보다는 피로에 찌든 범선 승객에 가까웠다.

이 시점에서 시준의 업적은, 우스운 일이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총괄서결부장 정약전은 흑산도 영국군의 철수 사정을 대강 파악했고, 조제프 푸셰는 베트남 해군의 예기치 못한 참전과 승전 소식을 접수했다.

그리고 외사통호부장 정약용은 중화 혁명의 별빛을 인도하는 북두성 정시준의 위업을 잘 정리해 둔 상태였다.

이제 영국, 청, 중화혁명당의 삼파전에 돌입한 중국은 당분간 고려에 어떤 방식으로도 간섭할 수 없다. 물론 공화국은 ‘하나의 중국’만을 절대 지지하므로 이 투쟁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마땅하다.

한편 런던에 있는 농상진흥부장 이강회는 ‘주석 동지의 계시가 다시 올 때까지’ 영국 채권을 팔지 않는다고 말하여 네이선 로스차일드를 애태우는 참이었다.

이 이상한 고집은 시준과 (시준이 돈 끌어다 쓴)서상에게 기대하지 않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런던과 평양의 거리 때문에 소식이 오가는 데에는 1년이 족히 걸린다. 익절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안전주의자 시준이 즉시 매도하라고 지시한다 해도 거의 고점에 가까운 시세에 채권을 팔 수 있다.

이 모든 사항은 각 간부들에 의해 부분적으로만 파악되었을 뿐 거리나 시간, 혹은 정치적 사유 탓에 종합적으로 공유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핵심 관계자 중 근간의 사업 효과에 대해 가장 아는 게 적은 사람이 시준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하지만 시준은 그것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임기 마지막 해 늦여름, 시준은 자신조차 다 모르는 업적과 함께 평양에 귀환했다. 한 계절만의 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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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작품 초중반 윌리엄 드루리 제독은 베트남 해군과 싸워 패배했지요. 그때도 작중 설명되었지만, 1808년의 그 전투는 실제 있었던 일로 결과도 역사와 같습니다. 베트남 해군은 장 밥티스트 샤뇨와 피에르 주교 등의 노력으로 당시 전열함급만 15척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조선과 항해에 능숙하다고 평한 것은 반세기쯤 뒤 미군 장교 화이트의 평가입니다.

2. 탕득은 베트남의 지명으로 후작 작위도 자롱 황제가 내린 것입니다. 장 밥티스트 샤뇨가 ‘그랜드 만다린’이라 불린 것도 사실인데… 마땅한 번역어가 통용되는 게 없어 ‘만인지상’ 이란 번역은 작중 창작입니다. 만다린은 고관이라는 뜻이죠.

3. 포트 요크라는 말은 오랜만에 나왔네요. 작중 초반 영국군이 흑산도를 처음 점거했을 때 붙였던 지명입니다. 당시 해군경 찰스 필립 요크의 이름에서 땄습니다.

4. 그레이브젠드는 템즈강 하구의 도시 이름입니다. 실제 데이비드 스콧의 모항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 워털루 전투로 상승한 영국 국채는 1817년 겨울에 정점을 찍습니다. 로스차일드가 딱 이때 채권을 파는데, 로스차일드가 시점을 귀신같이 잡았다기보단 그가 채권을 판 게 원인이 되어서 이때가 고점이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즉, 채권이 이제부터 내려가서 판 게 아니라 로스차일드가 채권을 팔았으니 가격이 내려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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