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69. 별이 빛나는 밤에(1)
암허스트는 이때 상당히 바빴다.
황제가 ‘의문사’하고 지친왕이 정계 개편을 시도하면서 영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경전의 원인을 말하자면 사소한 오해 때문이었다.
지친왕의 사정부터 보자면, 가경제가 예기치 못하게 죽는 바람에 그는 청의 전통인 저위밀건을 못 받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지친왕은 애비를 두 번 죽일 뻔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후계자 대비도 해 놓지 않았다는 말인가.
허나 본래 지친왕 앞에서 황태자 자리 흔들어 대며 그를 굴복시킬 생각이었던 가경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죽기 전에 깔끔하게 건물 물려달라는 자식과, 그러고 나면 자식이 바로 치매 판정 때리고 요양원에 처박을 것임을 아는 부모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면 된다.
궁정의 수많은 눈을 모두 피해 비밀을 유지한 채 건천궁 편액 뒤에 자기 이름 몰래 숨겨놓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아직 그는 황제가 아니고 궁의 최고 어른도 아니다. 지친왕에게는 명목상 어머니가 되는 효화예황후(孝和睿皇后) 뉴호록씨(鈕祜祿氏)가 바로 그 위치에 있다.
아비를 죽였는데 어미는 왜 못 죽이겠느냐마는, 이 자금성의 보안과 난방 수준은 가마 따위와 차원이 다르다.
엄중한 석재 통로로 정교하게 구분된 아궁이와 구들 아래 통로는 연기를 일절 허용치 않은 채 오로지 따뜻한 공기만이 방 아래에서 순환케 한다.
일산화탄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탄의 연금술사 애신각라 면녕이라도 연성진 자체를 못 그리는데 어쩔 수가 없다. 석탄까진 아니지만 가지각색 암살을 대비하기 위한 궁정의 전통적 감시 체제도 껄끄럽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황자 중 경쟁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다. 뉴호록씨도 이성적인 사람이라 자기 아들을 황제 올리겠다는 야망까지는 품지 않았다. 지친왕에게 만족스러운 거래를 얻어내려는 정도에서 그쳤을 뿐이다.
그래서 지명 못 받은 게 치명적 난관이라고까지는 못 한다. 허나 곤란한 장애 정도는 되는 사항이었다.
그래서 지친왕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즉위 권유’를 ‘덕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사양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좀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정식 즉위 전에 영국이 체면을 세워 주는 것이 그렇다.
‘무력하게 영국에 쓰러진 선황제’와 ‘그것을 극복하고 양이에게마저 존경을 받는 자신’의 대비가 그의 목적이었다. 죽은 가경제가 아들에게 하려던 짓을 거꾸로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영국이 천진의 활동을 잠깐만 축소하고, 황제에게 애도를 표하며 조기를 내건다거나 수병들을 한 달 정도만 단속해 주어도 충분한 제스처가 된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지친왕은 반대파의 입을 닥치게 하고 즉위할 수 있다. 그런 후에는 영국에게 지금 이상의 편의를 보장할 수도 있었다.
지친왕은 영국과 싸워본 장본인이며 그래서 영국의 힘을 잘 안다. 여기저기 반란이 들끓는 지금 형세가 아니라도 영국과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두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과 같은 권고로 표현되었다.
“천붕(天崩)을 당하여 온 천하가 애가 끊어지는 한마음으로 비통해하는 차에, 영길리인이 예법을 잘 모르는 듯하다. 도학을 배우지 못한 무지는 그들의 죄가 아니므로 내가 너그럽게 가르치겠다. 국상이 끝날 때까지는 항구에서의 매매를 멈추고 병사들이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않도록 단속하며, 길거리에서 아편을 피우거나 술 먹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지척에 선황제의 관이 있는데 약탈살인강간 파티 좀 그만하고, 아편 밀매도 적당히 눈치껏 줄이고, 더하여 지친왕에 대한 존경도 표해 달라는 얘기였다.
지친왕이 갈망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그저 로드 암허스트가 보내는 겉치레 서신 한 장이다.
내용은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적장자로서 정당하게 그분을 대행하는 대왕의 고귀한 위엄에 복종하는 것은 저의 명예입니다. 그간의 실책을 사과드리며 기쁘게 권고를 수용하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하다.
실제로는 영국이 전혀 행실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 지친왕은 머저리의 왕이 아니라 지혜의 왕이므로 영국이 진짜로 그럴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앞의 호칭이다.
체면이 뭔지 아는 중국인이라면 지친왕이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도 없이 해결된다.
중국이 아니라 조선인, 아니, 21세기 한국인조차 최소한의 사회 경험만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이다.
여기에서 연극 한 번만 해 주면 모두가 좋게좋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오랑캐는 그게 안 되니까 오랑캐 소리를 듣는 것이다.
로드 암허스트는 완전히 오해해 버렸다.
황제가 바뀌더니 이제 영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 보려는 건방진 시도를 하는 것인가 싶었다.
‘국상 기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동안 장사를 하지 말라고? 그 대머리가 간지러워서 총알로 긁어 달라는 뜻인가?’
물론 교양 있는 귀족인 암허스트가 정치적 식견이 모자라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제 아재비 제프리도 그렇지만, 윌리엄 암허스트 역시 비백인을 상대로 그들의 정치적 입장이라는 변수를 고려하기 힘들었다.
물론 공화국의 수도 입지 관련해서 암허스트가 존 레디와 논쟁했던 때를 보면 고려할 능력은 있다.
그러나 그건 일단 정시준이 그에게 유럽인 같은 인상을 준 것도 주요하게 작용하고, 무엇보다 유럽인에게도 익숙한 이익의 상충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의 봉건 질서와 계승 문제 등에 관련된 여러 입장을 헤아리라는 조언은, 암허스트에게 있어 바다코끼리 하렘의 서열을 참작해서 사냥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암허스트는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고관이자 전통 있는 귀족, 그리고 영국 신사답게 정말 많이 참았다. 당장 병사를 이끌고 자금성을 습격해서 황제의 관을 끌어내 불태워 버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는 대신 ‘문명인의’ 신호를 보냈다.
그간 영국 수병이나 동인도 회사 직원, 기타 암매상과 거기 따라붙는 부랑배들의 범죄는 사실상 방임이었다.
허나 외교에는 도덕적 부채라는 게 있다. 영국인은 물론 도덕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외국인은 알고, 상대가 자꾸 회담에서 그런 문제를 끌고 나오면 영국도 귀찮다.
그렇다 보니 공사관에는 고관을 면전에서 두들겨 팼다거나, 술 먹고 민가에 쳐들어가 부녀를 겁탈하고 일가를 몰살했다거나 한 자들 몇이 형식적으로 구류되어 있었다.
이 정도로 막나가는 놈들은 영국으로서도 좋아하기는 힘들다. 그 짓이 나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영국인에게도 비슷한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청 정부가 가장 체포하길 바라는 부류는 더 많은 해악을 끼치는 무기 및 아편 밀매상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공사관 위에서 암허스트와 술 마시고 있지 지하 감옥에 있지는 않다.
그래서 우선 뒷배 없고 뇌물도 없는 주제에 범죄를 저지른 자들만 잡아다 이렇게 해 두고, 중국에 우리는 ‘너희보다 앞선 근대적 사법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영사재판권이 계속 필요하다 주장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암허스트는 이들 모두에게 공식 무죄 판결을 내려 버렸다.
암허스트가 영국의 규범을 어긴 건 아니다. 저쪽 아메리카 노예국도 그렇지만, 영미법이란 게 원래 판사 그날 기분에 따라 1세기 징역과 무죄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하지만 대륙인들은 대륙법밖에 모른다. 조야는 분노하고, 지친왕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지친왕은 이제 황제 오르고 싶으면 영국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영국과 싸우고 나면 황제에 오를 이유가 없다. 잿더미 나라 황제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암허스트도 마냥 막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어쨌든 그의 공사관은 북경 안에 있다. 그리고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돌이나 불붙은 술병(암허스트는 이걸 공화국에서 본 적이 있다)이 날아들었다.
안전 때문에 천진으로 옮기면 굴복하는 것이고, 아무리 청이 호구라도 대규모 병사를 북경 안에 주둔시키거나 할 수도 없다. 지친왕은 그러느니 그냥 전쟁을 할 테니까.
누구나 파리를 때려잡을 수는 있지만 누구도 전 지구의 모든 파리를 멸종시킬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암허스트 자신이 실토했듯 그들은 수억 대청 인민과 언제까지나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캐나다 인디언과 달리 중국인은 살려두는 쪽이 더 돈이 된다.
그래서 암허스트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에게 익숙지 않은 ‘협상’이라는 것을 시도 중이었다.
영국은 중국에서 장사를 해야 하며, 전 중국 대륙의 합법적 통상권을 허가할 수 있으면서도 딱 뜯어먹기 좋을 만큼 허술한 청 왕조야말로 최고의 상대였다.
그런데 정시준은 그 최고의 상대를 박살 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암허스트는 이제 더 놔둘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
암허스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정시준을 잡아야겠어.”
그때 공사의 방 한편에 앉아 중국 도자기를 들여다보고 있던 – 필시 뇌물로 받은 것이리라 – 존 메이틀랜드 소장이 고개를 들었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공사 각하?”
암허스트는 자기 말을 되풀이해서 들려주지는 않았다.
“메이틀랜드 소장.”
“예.”
“상하이에 정시준이 있다. 무슨 수작을 꾸미는 것 같은데, 아마 중국 남부에 대한 민중봉기를 유도하려는 것이겠지.”
“오. 일국의 지도자가 직접 말입니까?”
“그래. 우리도 무기를 팔았으니 대충 어떤 놈들인지는 짐작이 가. 그 사교도들일 거다. 망할 놈이 선을 넘었어. 조선 안에서라면 봐주겠지만 여기서는 안 돼.”
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비협조적인 프린스 지(Prince Zhi, 智親王)에게 경고를 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봅니다만. 물론 군인인 제 소관은 아니나, 아예 그 사교도를 지원해 친영 정부를 수립하는 건 어떻습니까?”
암허스트는 자기보다도 더 중국의 정체(政體)에 관심이 없는 듯한 메이틀랜드 소장의 말에 혀를 차고 싶었다.
로드 암허스트는 여전히 눈을 가리고 몸을 뒤로 젖힌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진절머리난다는 어투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프린스 지가 앙탈 부리는 것쯤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그런데 중국 정부가 무너지면 그 광대한 내륙과 수억 인구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 여기에 조선처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해 보세. 자넨 중국 민중이 우리를 여전히 좋아할 거라고 보나?”
‘여전히’라고 말하기에는 어느 시간의 어느 누구도 영국인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그런 물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메이틀랜드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군요. 반발이 심하겠지요.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해 줄 정부가 없다면 더더욱.”
“맞아. 우리 장사가 안정적으로 되려면, 지금까지처럼 돼지 놈들 몇이 적당히 봉기하고 같은 돼지 놈들 손에 찔려 죽는 일의 반복이 되어야 해. 그래야 적당히 행정과 치안의 구멍이 생기고, 구멍이 있어야 장사를 하지.
그동안 우리는 이쪽 대장 돼지의 멍에만 잡고 있으면 돼. 알겠나? 이것만이 중국 경영의 유일한 길이라고. 가끔 사람 놀라게 하는 정시준이 거기서 무슨 일을 벌이는 바람에 큰 내전으로 번지면 사업이 아주 곤란해져.”
김시택이 임칙서에게 말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정시준이 들었다면 곧 하나의 중국 만들어 줄 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짜증냈을 것이다.
하지만 암허스트는 야만 부족민들을 상대로 인내심을 발휘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메이틀랜드 소장에게 말했다.
“군대도 없이 외국에 나오다니, 돌아버린 건가? 언제까지 그런 도박수가 통할 줄 알고. 모험을 저들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야. 메이틀랜드 소장. 윌리엄 드루리 제독과 협조해서 HMS 파워풀에 해병대를 편성하도록. 자네가 인솔자다.”
여기서의 해병대는 유럽에 있는 진짜 왕립해군 해병대가 아니라 그동안 증원 및 교체된 군대로 꾸려 놓은 임시 육전대다.
하지만 그런 급조 부대라고 해서 고전할 리는 없다. 이 촌구석 변방에서 영국 해군은 컨디션이 어떻건 무적이다. 베트남 해군이 상대일 경우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서 메이틀랜드 소장이 긴장한 이유는 전투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소장은 자기 짐작이 틀렸길 바라며 물었다.
“작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암허스트는 갑자기 튕겨오르듯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두 팔을 확 벌려 의자 팔걸이를 내려치듯 움켜쥐었다.
“상하이로 가서 정시준을 체포해라.”
소장은 침을 삼켰다.
“공화국과 충돌이 있을 경우는?”
“우리는 조약에 의해 중국 내 개항장의 치안을 단속하는 것이다. 멍청한 녀석이 비밀이랍시고 비공식적으로 온 게 실수야. 그럼 우리도 비공식적으로 잡아 주지. 우리는 반란을 선동하는 ‘어떤 조선인’을 확보할 뿐이며, 가로막는 자는 모두 정당한 군사 행동의 방해물이다. 섬멸해.”
더 반대할 명분도 없다. 닥치는 대로 죽이라는 명령은 영국 해군의 취향에도 딱 들어맞는다. 소장은 우아하게 경례하고 공사관을 나섰다.
***
팟!
찢어질 듯이 펼쳐진 큼지막한 홍포(紅布). 당장이라도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염색한 지 얼마 안 돼서 진짜로 물감이 깃대에 묻어나고 있었다 – 깃발 위에서 여섯 개의 노란 별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북두의 화신 정시준의 초상화가 같이 펄럭였다.
원래는 임청 것도 있었는데, 다 곯은 약쟁이 몰골은 젊고 건강한 청년의 당당한 풍채와 영 비교되었다.
천리교도의 임청에 대한 존경은 여전했으나, 세상에는 AI와 그래픽 툴로도 미화가 불가능한 인상이라는 게 있다(인공지능이 최종적으로 인간을 지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임청도 그중 하나였다. 결국 임청 얼굴은 눈치 보며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시준의 얼굴과 오족공화의 깃발 아래 모였다.
“우와아아!”
상하이에서 꽤 떨어진 강녕부(江寧府, 난징)의 이 시점 ‘확인되는’ 인구는 약 204만 명. 조선의 내로라하는 도시를 다 합쳐도 비교가 안 될 대도시이며 유서 깊은 중국 강남 지배의 상징이다.
개개의 완성도라기보다 압도적 규모로써 그 경이를 드러내는 강녕부의 주거 지역에서, 성벽에 종기처럼 돋아난 빈민굴에서, 심지어 병영과 일부 관청 건물에서까지 붉은 기가 우뚝 솟았다.
강녕부가 워낙 큰 도시라 위에서 보면 잘 표시가 안 나지만 그 수는 물경 수천에 달했다.
그리고 마치 붉은 시냇물처럼 골목에서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은 곧 성내의 대로를 채웠다.
“오족공화! 일개중국!”
“반공만청(反攻滿淸, 만주 청나라를 다시 몰아내어)! 해구동포(解救同胞, 동포들을 해방하고 구한다)!”
강녕부의 관군들은 얼이 빠졌다.
그들도 송강부(상하이)의 경천동지할 소식은 이미 입수했다. 그제야 정신 차린 현 강소 순무 왕지이(汪志伊)가 주변 행정구역에 긴급한 요청을 보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지만 공화국의 두령 정시준이 상하이에 있다는 정보는 여러 경로로 교차 확인됐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여기의 관군 대부분은 청포현 등 반란을 일으킨 몇몇 현을 진압하러 나간 참이다.
그런데 정시준은 바로 여기에서 앞장서서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조반유리! 혁명무죄!”
“조선의 북두 정 진인을 따라라!”
그 두 도시의 거리는 평양에서 한양군의 거리보다 멀다. 그러나 정시준은 너무나 명백히 자신을 과시했다.
변복이라도 하고 힘껏 달려왔다면 못 올 정도는 아니나, 그건 일국의 최고 지도자가 할 처신이 아니다. 여기는 생판 모르는 외국. 그 사이의 여러 관문과 도로에서 무슨 횡액을 당할 줄 알고 그런 도박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정시준은 바로 그것이 혁명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정시준은 붉은 깃발을 창처럼 앞으로 내뻗었다.
왠지 초상화와 별로 안 닮은 것 같지만 여기 홍건을 두르고 나온 중국인 중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 이 시대의 초상화가 실물과 그렇게 썩 유사하지는 않다. 게다가 결국 시각이란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재구성하여 그려낸 것이다. 눈은 창구 중 하나에 불과하며 시각의 중추는 두뇌다.
복잡한 과학적 설명은 필요 없다. 누구나 매일같이 그런 경험을 한다. 눈을 감고 있지만 생생하게 보이는 ‘꿈’만 생각해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미 ‘중화 혁명군’의 뇌는 지금 그들을 인도하는 자가 서양인이라 해도 정시준으로 착각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정시준이 그려내는 궤적 또한 바로 꿈의 그것이었다.
“이것이 북두성이 부리는 천지의 조화다!”
정시준은 그렇게 외치며 깃발로 관군을 가리켰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폭음이 들렸다. 허둥지둥 나왔던 관군은 떠밀리듯 쓰러졌다.
“오오오! 이것이 해동의 도술!”
사람들은 용기백배하여 허공에 죽창과 박도를 휘둘렀다. 얼마 안 되는 관군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방의 2층집과 누각에 숨어 있던 공화국 해병대는 지금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은 동료와 달리 자기가 주석과 좀 더 닮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다시 총알을 재었다.
그러한 일은 저 장대한 대운하가 연결된 고을에서라면 어디에서든지 일어났다. 다시 말해, 전 중국의 내로라하는 주요 도시에서는 ‘거의 동시에’ 정시준이 목격되었다.
난징의 반대편, 상하이 남쪽 영파(寧波, 닝보)의 높은 누각에서는 정시준이 위구르인들과 함께 나타나 지붕을 부수고 붉은 깃발을 꽂았다.
대운하의 시작인 항저우의 항구에서도 정시준은 갑판과 돛대 위를 내달렸다.
물에 빠지고 돛줄에서 미끄러지면서 그 뒤를 개미 떼처럼 덮친 민중은 얼마 가지 않아 조운선과 병선을 점거했다.
불쌍한 뱃사람과 관군들은 여진에게 아첨한 간신의 이름을 달고 돛대 위에서 참수당했다. 콸콸 쏟아지는 피가 누른 돛을 붉게 물들였다.
한참 북쪽 회안(淮安, 회음)에도 난데없는 정시준이 출현했다. 티베트 라마승이라고밖에 안 보이는 권법가 무리는 3킬로그램짜리 쇳덩어리가 발사되는 신묘한 장법으로 관군을 제압했다.
이들은 부족한 공무원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영국에게 밀수한 아편을 싣고 있었다.
보스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메리카 사람들이나 원래 역사의 임칙서처럼 물에 영국인의 더러운 짐을 버렸다간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선량한 라마승들은 그것을 잘 꺼내어 갈무리해 두었다. 불도의 핵심은 환경과의 조화에 있다.
아무리 포달랍궁의 무공이 고강해도 대륙 반대편까지 와서 난리를 치기는 힘들다는 사실은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
이것으로써 청은 티베트를 의심하고, 안 그래도 옛날 네팔의 침공 때 별로 큰 도움을 못 받은 티베트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는 심정으로 반발할 수 있게 되었다.
북두성의 별빛은 모든 곳에서 비끼었다. 모든 인민이 고개만 들면 별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툭하면 고립되어 섬멸당하기 일쑤였던 천리교 반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붉은 깃발을 들면, 그가 온다.
북두칠성이 보이는 어디에서든지 정시준은 강림할 수 있다. 컴컴한 암흑의 시대일지라도 별이 빛나는 밤이라면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반란은 파도처럼 퍼지는 것이 아니라 죽순처럼 일어났다. 혁명의 함성이 송곳이라면, 청나라 동반부는 이미 그물 비슷할 정도로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암허스트가 가질 수 있는 정보의 한계로 봤을 때 시준이 상하이에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말은 틀릴 수가 없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심지어 산동성의 대도시 어디를 지목했더라도 그 지적은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시준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도 없었다.
천진에서 출발하여 위풍당당하게 상하이에 상륙한 메이틀랜드 소장은, 동인도 회사가 주저하며 내민 ‘정시준이 있다고 파악된 17개 도시’의 목록을 보고 하늘을 향해 괴성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
작가의 말
1. 저위밀건법에서 후계자가 적힌 상자는 건천궁의 ‘광대정명’ 편액 뒤에 두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황후 뉴호록씨는 양황기 출신의 정통 만주 귀족으로, 원래 역사에서도 별다른 분쟁 없이 자기 아들들이 아닌 도광제를 옹립하고 황태후로 잘 살다 갑니다.
2. HMS 파워풀은 작중 초중반 윌리엄 드루리 제독이 베트남 해군과 맞붙어 깨졌을 때의 기함이며, 존 메이틀랜드 소장도 비슷한 시기 작중 나왔던 영국 해군 선상 육박전의 전문가입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다시 해설이 들어갔습니다.
3. 난징의 인구 204만 명은 1809년 기준입니다.
4. 반공만청 해구동포의 오리지널은 반공대륙 해구동포(대륙을 다시 공격하여 동포를 구한다). 장제스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유언입니다. 다만 장제스가 정말 이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도 있습니다.
5. 강소 순무 왕지이는 당대 실제 강소 순무로 근무했던 인물입니다. 복건 순무도 했을 정도로 고관이죠.
6. 회안은 회음후 한신의 고향인 그 회음으로 더 익숙하실 겁니다. 명의 초기 수도였던 남경이 더 유명하긴 한데 회음도 남경에 비견할 만한 대도시였죠.
여담이지만 옛날 동아시아에서 도시 이름 짓는 방식 중 하나가 강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강 이름을 따서 남쪽에 있으면 음, 북쪽에 있으면 양 이런 식이었지요. 낙(洛)의 북쪽에 있는 도시는 낙양, 회수의 남쪽에 있는 도시는 회음이라는 식입니다.(현대의 화이안 시와 회음현의 위치는 약간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조선의 한양 또한 한수(한강)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한양입니다.
7. 구르카(네팔)족은 지금은 영국군과 싸우고 있지만, 건륭제 시절에는 티베트를 침공했습니다.
가는 길마다 장대에 매달린 사람 머리가 숲처럼 늘어서고 라싸 전역의 보물이 싹 약탈당했다고 하는 대참사였습니다.
명성 높은 전투종족답게 건륭제가 처음 보낸 군대는 깨졌고 장군은 자살, 골라 보낸 정예 팔기도 상당히 고전하지요.
결국 국력에서 상대가 안 되는 네팔이 청에 형식상 입조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하기는 했는데(이게 청의 마지막 대외 원정이며, 건륭제의 십전무공 중 하나입니다. 건륭제가 열 개를 꼭 채우고 싶었기 때문에 십전무공 중에는 이렇게 좀 어거지가 많습니다), 이때 티베트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데다 티베트가 공물로 네팔에 바쳐야 하는 은(銀)을 청이 준 것도 아닌지라 불만이 많았을 겁니다.